2025년 10월 4일 토요일

즐겁고 풍요로운 추석[秋夕, 중추절(仲秋節)]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2025년 10월 6일은 음력으로 8월 15일 추석(중추절)입니다. 한국은 10월 5일부터 9일까지 대체휴일을 포함하여,추석(중추절) 공휴일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중추절[仲秋節,中秋節]로 표기하면 쉽게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즐겁고 풍요로운 추석[秋夕, 중추절(仲秋節)]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2025년 10월 6일은 음력으로 8월 15일 추석(중추절)입니다. 한국은 10월 5일부터 9일까지 대체휴일을 포함하여,추석(중추절) 공휴일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중추절[仲秋節,中秋節]로 표기하면 쉽게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조상에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하면서(조상제사), 보름달에 소원도 비는(관습적으로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한국인이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유교명절 추석의 전통적인 제천의식의 하나) 추석 명절. [1]. 한국에서는 추석(秋夕)이라고도 많이 부르는데, 세계적으로는 중추절[仲秋節,中秋節]로 표기하면 쉽게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하고, 중추절(中秋節)이라고도 한자로 표기하는데, 국어사전 식으로는 중추절(仲秋節)이고, 유교 경전에서도 중추(仲秋)를 사용하므로, 중추절(仲秋節)로 쓰면 한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세계적으로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그러나, (中秋節)도 같이 사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기본적으로 역사적 특성상 한국은 역사적인 기자조선 이후, 정사로도 분명한 위만조선.한사군이후 수천년 유교 국가임. 국사에 나오는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궁 성균관대)는 대학의 학벌 측면에서는 교황 윤허의 Royal대인 서강대와 협력.동반자 관계임. 그러나 종교로는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기때문, 유교를 국교로 하던 조선,대한제국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할것임. 물론 현행 헌법상 국교가 없고 종교의 자유는 있지만, 미군정기때 모든 한국인들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유교국가인 조선의 한문성씨와 본관을 호적이나 주민등록에 등재해서 모두 유교도 자격을 가지고 있음.그리고 교과서로는 삼강오륜 유교교육과 유교의 인.의.예.지.신 교육, 충효교육을 많이 받아옴. 또한 유교 전통명절인 설날.대보름.한식(청명절).단오절.추석(중추절)등의 주요 명절 및 24절기의 주요 기념일 및 여러가지 절일(節日), 문중별.가족별 제사를 행하고 있는 유교국가임. 추석의 달맞이, 그리고 명절이나 특정 기일에 행하는 조상제사는, 유교 경전에 나오는 구절등을 본받아서 그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유교국가(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2차 대전후의 중국인들의 신생국가(대만,싱가포르)에서 특별한 사유없이,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고 일부러 거부하는것은, 원칙적으로 無君無父의 금수일(祖上도 몰라보는 금수)뿐입니다. 기자조선(기자조선의 후손이 삼한을 건설. 삼한중 마한지역은 백제, 진한은 신라, 변한은 가야가 됨)은, 은나라왕족 기자가 세운 나라인데, 은나라와 주나라의 신앙과 문물,교육은, 춘추전국시대 공자님의 儒家가 성립되는 토대가 된 始原유교의 시대에 해당됩니다. 한나라때 위만조선을 정벌하여 한사군이 세워졌는데, 한나라때는 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걸쳐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된 시기에 해당됩니다.한사군중 낙랑은 부여보다 선진문화였고, 부여는 고구려보다 선진문화라고 할수 있습니다. 고구려 건국자 주몽의 후손이 남하하여 백제를 건설하였습니다. 통상적으로 고구려 태학이 세워진 고구려, 백제(오경박사), 신라(국학,화랑)순의 국력과 문화수준으로 인식됩니다. 신라는 국학이 설립되기전에는, 추석.설날같은 유교명절과, 기자조선.삼한의 始原유교(제천의식, 명절, 팔조법금)를 이어받고, 중국.고구려.백제의 선진문물과 유교제도를 받아들이는 상태였다고 인식됩니다. 내물왕때 맹자의 환과고독을 구휼하던 정책이 보입니다. 환과고독(鰥寡孤獨). 홀아비·과부, 어리고 부모 없는 사람, 늙고 자식이 없는 사람 등을 일컫는 말로, 맹자(孟子)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下) 5에 나오는 용어입니다. 한국 역사의 경우, 그 환과고독에 대한 수취의 감면이나, 구휼책의 사례도 있습니다. 봄에 사신을 보내어 환과고독을 무문하고 각각 곡식 3곡씩을 주었고, 효제로 남다른 행실이 있는 자에게는 관직 1급씩을 주었다. ; 春 發使 撫問鰥寡孤獨 各賜穀三斛 孝悌有異行者 賜職一級 [삼국사기 권제3, 1장 뒤쪽, 신라본기 1 내물이사금] . 출처: 환과고독 [鰥寡孤獨]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 설날.추석때 장기간 공휴일을 주는것은, 명절때 의무를 다하라고 만든것이며, 명절 의무 이행않고,놀라고 만든 취지는 없습니더. 설날.추석 명절의무 이행하지 않겠다면, 이런 저항자들은, 보너스도 주지 말고, 공휴일에 나와서 근무하도록 하는게 맞습니다. 즐겁고 풍요로운 추석 명절 보내십시오. 코로나 방역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이제 다시 수천년 추석명절의 전통으로 돌아왔습니다. 설날.추석 명절때, 의무를 다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드는 유전자가 있는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추석은 차례나 성묘처럼 중요한, 달맞이(보름달에 소원비는 의식)의 제천의식 성격도 아주 강합니다. 추석(중추절)은 수천년 유교명절로,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십수억명의 최대 명절 중 하나.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국가중 하나인, 한국인들은, 이렇게 유교 명절때, 제사하고, 성묘하고, 소원빌고, 가족.친척을 만나며, 명절을 즐기는 유전자가 수천년동안 체화되어 살아왔습니다. 삼한시대에 시작된 제천의식 단오. 유교는 제천의식, 地神제사, 山川제사, 조상제사, 공자님제사가 대표적인데, 고대 한국은 삼한의 상달제, 시월제,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등 제천의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천의식들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조선초에 제천의식 폐지하였다가 대한제국때 부활)를 거치며, 현재도 설날,대보름,단오,추석류의 제천의식(전국적인 조상제사도 포함된 명절이 설날과 추석임)들과, 조상제사인 한식등 대표적인 명절이 있습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현대는 토지부족으로, 화장 및 납골당등이 세계적 대세. 인구가 적을때는 유교,가톨릭등 기독교(개신교포함),이슬람교등이 토지와 산등에 사자의 시체를 매장했음. 인도는 토지에 비해 인구가 많은 특성상 종교와 별개로 불교이전 인더스문명의 브라만교전통에서 사자의 시체를 태워,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강물에 뿌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여겨짐.@ 중요한것은 유교나, 가톨릭같은 수천년 세계종교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최고의 절대적 창조자로 숭배한다는 점임.인구과밀로 묘지가 부족해지면, 사진.영정,위패를 모시고 수천년 조상제사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설날, 추석 명절의 본질은, 금전문제.정치문제 다툼이 아니고, 하느님을 숭배하며, 조상신을 섬기는것입니다. 이런 민감한 문제들은, 나와 다른 견해가 있음을 인정하고, 웃으면서, 잘 마무리 하면 될뿐입니다. 이런걸로, 명절의무를 피하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날에는 차례지내고, 어른들이나 존경하는 스승등을 찾아 세배하고, 덕담도 주고 받는 미풍양속을 잘이해하고 오랫동안 못 보던 가족과 친인척,지인들을 찾아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흔치않은 기회입니다. @ 백제와 신라의 설날. 그리고 신라의 추석. 국사 편찬위원회, 우리 역사넷. 수확을 의미하는 추석, 신라 3대 유리왕 9년(32)에 왕이 육부(六部)를 정하고 이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이 각각 부내의 여자를 거느려 편을 나눈다.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육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고 을야(乙夜, 밤 10시경)에 파하며,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의 많고 적은 것을 살핀다. 지는 편이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때 가무백희(歌舞百戲)를 행하니 이를 가배라고 한다. 기록에서처럼 추석의 유래는 신라의 가배(嘉排)에서 찾는다. @ 국사편찬위원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풍속. 설날의 풍속 * 백제의 설날 풍속 남당에 앉아 정무를 처리하다 삼국사기 > 백제본기 제2 > 사반왕(沙伴王)·고이왕(古尒王) > 남당에 앉아 정무를 처리하다 남당에 앉아 정무를 처리하다 ( 261년 01월01일(음) ) 28년(261) 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자주색 소매가 큰 두루마기와 푸른색 비단 바지를 입고, 금꽃[金花]으로 장식한 검은 비단 관을 쓰고, 흰 가죽띠를 두르고, 검은 가죽신을 신고 남당(南堂)에 앉아서 일을 처리하였다. * 신라의 설날 풍속:651년 이후부터는 정월. 초하루에 왕이 백관의 신정 하례를 받는 하정례賀正禮 의식을 행하였다. [3]. 한국은 기자조선이후, 위만조선을 거쳐, 한사군 설치로, 세계종교 유교국가로 수천년 이어져 온 나라입니다. 유교를 중심으로, 도교나 불교도 부분적 수용. 동양은 제자백가가 경합하다가 유교가 세계종교, 서양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기독교)이 공존하다가, 로마가톨릭이 세계종교됨. 인도는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부처의 불교가 주변국에 단순포교를 해, 한때 고대세계 세계종교였지만, 발원지 인도에서 천 몇백년동안 선발신앙인 브라만의 힌두교에 억눌려 탄압받으며 현재에 이름. 한국은 세계사의 정설로,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국으로 수천년 이어진 나라임.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때 외래종교 형태로 단순 포교되어, 줄곧 정규교육기관도 없이, 주변부 일부 신앙으로 이어지며 유교 밑에서 도교.불교가 혼합되어 이어짐. 단군신화는 고려 후기 중 일연이 국가에서 편찬한 정사인 삼국사기(유교사관)를 모방하여, 개인적으로 불교설화 형식으로 창작한 야사라는게 정설입니다. 유교,공자.은,주시대始原유교때 하느님.조상신숭배.세계사로보면 한나라때 공자님도제사,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성립.2차대전이후, 싱가포르와 대만(차이니스 타이페이라고도 함, 정치적 문제와 별개로,대만도 유교를 믿음)까지 합쳐 전세계 십수억명 유교도가 존재함. 수천년전승.한국은殷후손 기자조선 기준왕의 서씨,한씨사용,三韓유교祭天의식. 국사에서 고려는 치국의道유교,수신의道불교.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고려 국자감은 고려말에 성균관이 되고, 조선 성균관, 해방후 성균관대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한국은, 기자조선이 있어서, 하느님을 숭배하고, 조상신도 숭배하는 수천년 전통이 있어온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예의범절있는 동방예의지국으로 대우받게 한 기자조선. 인도발 외래신앙인 부처 Monkey의 불교가, 하층주변부 신앙으로 살면서, 하느님.창조신을 거부하고 부처가 창조신보다 높다고 하거나, 조상제사를 거부하는 금수 부처의 불교를 막아내고, 하층주변부나 억압대상으로 살아오게 한것은 잘한일입니다. 기자조선이 있어서, 삼한의 제천의식이 있었고, 세계종교 유교의 성립으로 한사군 낙랑의 선진문화를 흡수한 부여 영고, 부여의 선진문화를 흡수한 고구려 동맹의 제천의식이 있었습니다. 기자조선과 한사군의 유교문화가 강하게 스며든, 삼한의 제천의식,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이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초까지 이어지고, 대한제국때 다시 부활하여, 현재는 고종 후손 황사손(이 원)의 제천의식인 환구대제가, 해동天子國전통을 가진 현대의 한국에서 시행중. 또한 황사손(이원)의 종묘대제, 사직대제. 그리고 성균관.향교의 석전대제.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삼한시대에 시작된 제천의식 단오. 유교는 제천의식, 地神제사, 山川제사, 조상제사, 공자님제사가 대표적인데, 고대 한국은 삼한의 상달제, 시월제,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등 제천의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천의식들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조선초에 제천의식 폐지하였다가 대한제국때 부활)를 거치며, 현재도 설날,대보름,단오,추석류의 제천의식(전국적인 조상제사도 포함된 명절이 설날과 추석임)들과, 조상제사인 한식등 대표적인 명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상제사로는 왕가의 종묘제사부터, 일반인들의 문중제사.가족별 조상제사가 있고, 조상제사와 달리, 동지같은 명절 및 24절기의 주요 명절등이 있습니다. 유교의 부분집합 중 하나인 공자님제사(석전.문묘제사)는 성균관을 필두로 전국의 향교에서 거행하는데, 참석인원은 성균관.향교에 등록된 유림들만 참가하여 50만 정도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한국은 한국에 주권이 없는 일본잔재의 주장과 달리, 무교도가 없으며, 5,000만 국민 모두가 유교의 각종 명절과 제사에 여러가지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포교된 일본 신도(일본 불교에서 파생된 후발 국지적 일본의 신앙), 불교, 기독교(일본의 극소수 신앙)가 있는데, 한국영토에 주권없이 유교를 같이 믿고 있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였고, 일본이 항복하면서, 일본의 주권은 한국영토에 없어졌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을사조약.한일병합등이 무효(대일선전포고 포함라고 하였고, 해방이후 미군정시대에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전 국민이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 등록하는 유교국가 조선의 유교도로 복구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도 해방이후 모든 한국인은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도로, 유교의 각종 명절과 제사, 24절기, 유교교육을 주로 받는 유교도임은 변치 않습니다. ​ @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제강점기 포교종교들이 종교협의회나 어떤 모임 가진다고, 종교주권이 생기지는 않습니다.한국은 미군정때,조선성명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국교 유교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임은 변치않으며 5,000만이 유교도임.그리고 주권없이, 일본 강점기 강제 포교종교도 같이 믿는 현상이 생겨남.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나, 서유럽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 초월자이십니다. @ 공자님의 시호. 하늘이 보내신 성자이신 성인 임금 공자님은 황제 칭호인 문선제(文宣帝).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의 오랜 전통으로 호칭되어 오고 있습니다. 나중에 생긴 황제칭호를 붙이지 않아도, 유교 경전상 성인임금 요.순.우.탕.문.무는 요임금,순임금등 고대의 임금칭호가진 성인(聖人,聖天子)들로 일반 황제보다 더 성스럽고 존귀한 성인(聖人,聖天子)들 이십니다. 한나라 이후의 역대 중국 황제들은, 聖天子이신 요.순.우.탕.문.무 및 공자님(춘추전국시대에는 聖天子인 聖人의 후손이며, 선생칭호인 子를 붙여 孔子로 불리시다가, 당나라이후 문선왕 칭호를 추증 받으시고, 그이후 황제국가들에서 대성지성문선왕으로 추증되심)을 모셔왔습니다. 공자님은 당나라때 文宣王추증이후, 그이후 황제국가들에서 至聖文宣王,大成至聖文宣王으로 추증되셨습니다. 문선왕 추증전에는 先師(유교경전의 호칭)의 칭호로 공경받으셨습니다. 유교경전에서 황제칭호는 없습니다. 공자님은 요.순.우.탕과 같은 聖人(聖天子)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신 공자님. 참고로 하면, 공자님 아버지 시호는 계성왕(啓聖王)이시고 공자님 어머니 시호는 계성왕 부인(啓聖王夫人)이십니다.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그러나 세계사로 보면, 가톨릭이라는 세계종교는 너무 세계인에 일반화되어서, 국사적개념과 병립하여, 세계사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에서, 국제관습법상 세계종교 가톨릭의 자격으로 예우하는게 적절함. 일본식 개념으로, 일본 국지신앙인 일본 신도(일본의 국교), 불교, 기독교의 위상을, 한국에 적용할수는 없음. 그리고 한국과 바티칸시티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기 때문에, 한국헌법 임시정부가 선전포고하고,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일본의 종교기준을 적용하는게 맞지않음. 불교는 인도에서도 배척당해왔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 불교국 일본의 종교기준대로 하면,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아닌 사회규범이 되어, 일본 신도(불교에서 파생됨), 불교, 기독교만 포교종교고, 유교는 일제강점기의 신생종교인 원불교보다 신자수가 적은 50만(성균관.향교의 제사인구만 유교도라고 1980년대 초반에 통계청 표본조사를 실시하여, 다시 유교에 도전하고 있음)이 되어, 해방한국의 종교주권을 침해당하게 됨.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 @문화대혁명으로 모택동 주석도 비판받고,중국은 개혁.개방정책으로, 유교 전통명절인 춘절, 중추절, 청명절, 단오절의 4대명절 공휴일을 아주 길게 하였음. [3]. 이제 추석(중추절)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추석(中秋節.仲秋節,秋夕)에 대한 종교학대사전의 설명. 추석(중추절)에 대해 종교학 대사전은 대략적으로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추석은 『예기(禮記)』의 <춘조월 추석월(春朝月 秋夕月)>이란 기록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이며, 가배란 신라시대 경주지방의 방언이다. 망국(亡國)의 비애를 안고 사라진 고조선ㆍ부여ㆍ옥저ㆍ삼한(三韓)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의 추석에 관해서는 그 기록의 멸실ㆍ미흡으로 상고(祥考)할 길이 없으나 추석이 중국ㆍ신라 등지에 있었음을 미루어 보아 고조선ㆍ부여ㆍ삼한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지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지금은 신라의 가배일이야기만이 『사기(史記)』에 한 마디 전할 뿐이다. 추석에는 추석빔을 입고 햅쌀로 술ㆍ송편을 빚고, 햇과일을 마련하여 가묘(家廟)에 모신 조상 앞에 차례(茶禮)를 지내며, 조상의 산소에 성묘(省墓)한다. 산소에 우거진 잡초는 추석 전날 베는 것이 상례(常例)이나 성묘 때 베는 것도 무방한데 이것을 벌초(伐草)라 한다. 또한 이 날은 술ㆍ송편ㆍ과일 등을 나누어 먹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즐겁게 논다. * 출처:추석[秋夕]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 필자 주 1). 위의 서술에 동감합니다. ...추석이 중국ㆍ신라 등지에 있었음을 미루어 보아 고조선ㆍ부여ㆍ삼한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지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지금은 신라의 가배일이야기만이 『사기(史記)』에 한 마디 전할 뿐이다.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황사손(고종황제 후손 이 원으로 환구대제, 사직제례, 종묘제례 및 많은 제사를 주관함.)이시지만, 석전대제를 주관하는 성균관이 명절때 성묘.차례는 않는것보다 하는게 낫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성균관의 명절 예법 간소화의견은, 강행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점차적으로 의견절충해서, 문중.가족별로 조정하면 될것입니다. 또한 법규나 경전에 규정된게 아니면, 모든 예법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관계기관들의 연구하에, 조절해서 수용할수도 있습니다. 2]. 유교 경전인 禮記로 천신(天神), 지신(地神), 일신(日神) 및 추석의 月神 숭배등 제사를 살펴보고 역사적 과정을 알아봄. 1). 유교 경전인 예기에 나오는 달에 제사하는 내용이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 정월대보름과 중추절등에 달맞이등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天神, 地神, 사철의 신, 한서(寒暑)의 신, 해의 신, 달의 신, 별의 신, 가뭄의 신, 사방의 신등에 제사지내는 예기 제법(祭法)의 설명. 다음은 유교경전인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다 음 - 燔柴於泰壇祭天也 瘞埋於泰折祭地也 用騂犢 埋少牢於泰昭祭時也 祖迎於坎壇祭寒暑也 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幽宗祭星也 雩宗祭水旱也 四坎壇祭四方也 山林川谷丘陵能出雲爲風雨見怪物皆曰神 ... 나무를 단위에 쌓고 그 위에 옥(玉)과 생(牲)을 놓고서 함께 태워 그 기(氣)로 하여금 하늘에 이름게 함은, 천신(天神)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또 비단과 생을 단상에 파묻는것은 지신(地神)을 제사지내는 법인데, 이 때 그 생은 다 같이 성독(騂犢)을 쓴다. 소뢰를 태소에 파묻는것은 사철의 신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감단에 송영(送迎)하는 것은 한서(寒暑)의 신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왕궁(王宮)에서는 해의 신을 제사지내고 야명(夜明)에서는 달의 신을 제사지내고 유영에서는 별의 신을 제사지내고 우영에서는 가뭄을 제사지내고 사감단에서는 사방의 신을 제사지내는 것이다. 산림.천곡.구릉으로서 능히 구름을 일으키고 비바람을 이루며 괴이한 현상을 나타내는 것을 모두 신(사방의 신)이라고 한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위에서 유념해 둘 것은 유교의 전통적 다신교(多神敎) 측면입니다. 최고신인 天(太極과 연계된 天)을 중심으로, 그 하위에 지신, 사철의 신, 한서(寒暑)의 신, 해의 신, 달의 신, 별의 신, 가뭄의 신, 사방의 신, 조상신등을 숭배해 온 유교 제의가 수천년 전통입니다.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 행할수 없던 여러가지 괴이한 현상을 나타내는 것을 모두 신(사방의 신)으로 보았던 전통적 다신교적 유교의 신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게 유교입니다. . 필자 주 2). 위에서 日月神에 제사하던 祭法은 殷나라때 생겨서 후대에 天子제도로 확고한 정착이 되기 이전에 생긴 제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써 놓은 한문 문장(禮記 祭法)으로 보면 그 당시는 殷나라 天子가 아닌 殷仁으로, 周人으로 제사하던 祭天儀式, 日月神 숭배전통이 있었습니다. 이 제사가 변형 유지되어 중국 일부지방이나 殷나라 왕족 箕子의 후손으로 언급되는 箕準王의 선조 및 부여(殷正月의 曆法으로 祭天儀式인 영고를 지냄), 삼한(상달제.시월제), 고구려(동맹), 예(무천), 백제의 교천, 신라의 日月神 제사, 고려의 제천의식등으로 이어졌겠지요. 天子제도가 생긴 이후 중국 사람들이 보기에 고대 한국인들이 함부로 사당등을 지어 제사하는걸로 보여졌다면(당서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풍속에는 함부로 만든 사당이 많은바 라고 기록), 天子제도의 확고한 형성으로 天子의 제사와 諸侯의 제사, 士大夫 제사, 庶人의 제사를 구분하기 이전에 형성된 중국일부지방.한국일부지방의 풍속들이 그렇게 전승되니까 그 후에 생긴 天子부터 庶人까지의 제사법 구분으로 판단하여 함부로 사당을 짓는다고 기록했겠지만 그 당시는 중국이 고대 한국을 제지하고 그러던 시대는 아니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원나라를 거치면서 국자감 개칭등 그런 天子國 주장이 강해졌고,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을 天子國으로 확실히 대우해 주면서 조선 초기에 제천의식이 폐지되고 고종때 부활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여하튼 역사적으로 부조리할수도 있는(후세 사람이 보기에) 관습이 허용되어도 중국 天子와 海東天子(한국의 天子)는 급이 다릅니다. 有虞氏禘黃帝而郊嚳 祖顓頊而宗堯 夏后氏亦禘黃帝而郊鯀 祖顓頊而宗禹 殷人禘嚳而郊冥 祖契而宗湯 周人禘嚳而郊稷 祖文王而宗武王. 燔柴於泰壇祭天也 瘞埋於泰折祭地也 ........... 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 필자 주 3). 위의 祭法관련 작자인 전금과 후세 학자의 설에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어느 것이 결정적으로 옳은지에 대해 학자들간에 이론이 많다고 예기 譯解者(권오돈/발행처 홍신문화사/2003.10.30 발행)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 필자 주 4). 전금에 대한 설명. 중국 역대 인명사전(2010.1.20/이회문화사)에 의함. 展禽.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 대부(大夫)를 지냈다. 성은 전(展)씨고, 이름은 획(獲)이며, 자는 금(禽)이다. 유하(柳下)는 식읍(食邑)의 이름이고, 혜(惠)는 시호다. . 필자 주 5). 殷周때 생긴 천자제도로 사람들을 강제하기전 일반 백성이 日月星辰을 우러르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日月星辰 숭배 풍속이 天子제도 확립후 생긴 새로운 숭배풍속이라 하면 그 신분에 따라 의관을 정제하고,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하는게 옳겠습니다. 그러나 天子제도의 강제전에 확립된 관습으로 月神을 바라보며 단지 소원을 비는것에 대해서는 祭法에 어긋난다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의 달맞이 풍속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단지 달맞이라는 소원비는 의례로 달맞이 하는것은 그대로 전승되어야 하겠습니다. 3). 우리 유교국 한국인들은 중단하지 말고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달맞이를 행해도 됩니다. 제천의식은 황사손이 별도로 하고 계시는데, 일반인들은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행사를 하는게 가장 옳고 일반적입니다. 일월성신을 民(백성)이 우러러보는 禮記 제법의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及夫日月星辰 民所瞻仰也 山林川谷丘陵 民所取財用也 非此族也 不在祀典....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3]. 추석(中秋節.仲秋節,秋夕)에 대한 두산백과의 설명. ‘중추’라는 말은 《주례(周禮)》에 가장 처음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 고대 왕들은 음력 8월 15일 달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1년 4계절(3개월)을 1개월씩(孟 혹은 初,仲,季) 나누었는데, 음력 8월 15일은 가을의 중간인 '중추(仲秋)'라 하였다. 이것에 착안해 8월 15일 달에 제사 지내는 날을 중추절(仲秋節 혹은 中秋節)이라고도 불렀다. 이 외에도 ‘팔월에 행하는 행사’라 해서 팔월절(八月節) 혹은 팔월회(八月會)라고 부르기도 했고,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라는 뜻을 따 단원절(團圓節)이라 부르기도 했다. .출처:중추절[zhong qiu jie, 中秋节] (두산백과) . 필자 주 6). 달맞이는 유교에만 있는 고유 의식이므로, 그 성격에 충실하여 뒷동산등이나 보름달이 잘 보이는 장소에 올라 달맞이 하면 될것입니다. 굳이 높은 산에 오를 필요는 없으며 불교가 결합된 일본 양력 추석(오봉)의 영향을 잘못 받은 사람도 있을것인데, 절등에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불교는 창조주보다 부처가 더 높게 대우받는 존재이며, 無君無父의 금수라 배척받아와서 유교의 조상제사나 유교의 달맞이등을 불교시설이나 불교인등과 결부시켜서 행하면 않됩니다. 4]. 유교권 공통名節인 中秋節.仲秋節(秋夕)날은 가까운 뒷동산이나 언덕등에 올라 月神(달님)을 향해 각자의 소원을 빌며 달맞이를 하는 날입니다. 한국에서의 달맞이는 대보름 달맞이와 추석 달맞이가 대표적 의례행위입니다. 달맞이(추석) 정의 추석날 저녁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거나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 내용 추석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보름달을 보면 좋다고 하여 마을 뒷산이나 높은 곳에 오르기도 하고 혹은 마당에서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도 하며 달의 모양을 봐서 풍흉을 점친다. 중국 남송(南宋)시대 맹원로(孟元老)의 저서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중추날 밤에는 대문을 장식하고 술자리를 마련하여 달맞이를 하는데 풍악소리가 밤새도록 끊이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3 「열전(列傳)」 김유신조(金庾信條)에 “8월 보름에 왕이 월성(月城) 산 위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며 시종관들과 함께 주연을 베풀고 즐겼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성종실록(成宗實錄)』 성종 20년(1489) 8월조에 “옛 사람들이 추석에 달구경한 것이 어찌 황음(荒淫)하여 그러하였겠는가? 오늘 저녁에 경연 당상(經筵堂上)과 출직(出直)한 승지(承旨)·주서(注書)와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에게 주악(酒樂)을 내려 청량(淸凉)한 곳을 가려서 태평의 날을 즐기게 하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 후기 조재삼(趙在三)의 저서 『송남잡지(松南雜識)』 「세시류(歲時類)」 시월잉태조(視月孕胎條)에는 “쇄쇄록(瑣碎錄)에 이르기를, 날이 흐리거나 구름이 있어 추석 달이 보이지 않으면 토끼가 새끼를 배지 못하고 개구리가 알을 낳지 못하며 또 메밀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지역사례 추석날 달맞이는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풍속이다. 전남 지역에서는 달을 보고 절을 하면서 소원을 빌기도 하고, 남보다 먼저 달을 보게 되면 아들을 낳게 된다고 하여 아들이 없는 집의 사람이 먼저 달을 보도록 양보하기도 한다. 충남 지역에서는 추석날 달이 잘 보여야 보리농사가 잘 된다고 여기며, 횃불과 짚을 준비하여 달이 떠오르면 짚에 불을 붙여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 해안 지역에서는 달이 밝고 둥글면 가을 어장이 좋다고 여긴다. 부산 지역에서는 추석날 보름달이 희고 밝으면 이듬해 물이 흔해 풍년이 들고, 달이 붉으면 가물어서 이듬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한 달의 서쪽이 이지러져 있으면 서쪽에 있는 마을에 흉년이 들고, 동쪽이 이지러져 있으면 동쪽에 있는 마을에 흉년이 든다고 한다. 서울 지역에서는 추석에 달이 보이지 않으면 개구리가 알을 배지 못하고 토끼도 새끼를 배지 못하며, 메밀도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속신이 있다. 또 이날 높은 산에 올라가 달에 절을 하고 남보다 먼저 달을 보면 첫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도 한다. 의의 추석에 달맞이를 하는 행위는 달을 소생의 상징물 또는 생명력의 상징물로 여기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정월대보름과 더불어 일년 중 가장 밝고 둥근 달이 뜨는 추석에 달맞이를 함으로써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고, 내년 농사의 풍작과 못다 이룬 소망을 기원하는 것이다. . 출처: 달맞이(추석)(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추석 달맞이는 마당.누각에서 해도 月神(달님)은 소원을 빌도록 허용하고 계십니다. 본인좋으라고 하는것이니까 온국민 모두 달맞이를 하면 좋겠습니다. 5]. 추석(中秋節.仲秋節,秋夕)에 대한 베이징관광국의 설명. 중추제(中秋节,zhōng qiū jié,중추절) 소개 추석(中秋节, 중추절)은 음력으로 8월15일로, 한해의 중간쯤에 있어 중추라고도 불리우게 되었다. 추석은 중국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음력설 다음으로 중요한 명절이기도 하다. 해마다 추석이면 중국 사람들은 집에 모여앉아 월병과 과일 등을 차려놓고 먹으면서 달구경을 한다. 월병은 소를 넣은 원형의 다과로서 모임을 상징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월병을 서로 선물하기도 한다. ◇ 중국의 추석, 중추절의 유래 추석의 유래는 일반적으로 상아분월(嫦娥奔月)의 전설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다만 내용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존재한다. 아래는 그중 일반적인 이야기 중 하나이다. 아주 먼 옛날에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나타나서 대지를 아주 뜨겁게 불태우고 바닷물을 고갈시켜 백성들은 살아갈 도리가 없었다. 이 일은 후예(后羿)라는 영웅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는 곤륜산(昆侖山) 정상에 올라가 신궁(神弓)으로 나머지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고 백성들을 재난에서 구제했다. 얼마 후 후예는 상아(嫦娥)라는 미인을 아내로 얻었다. 하루는 후예가 친구를 찾으러 곤륜산에 갔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서왕모(西王母)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때 후예는 서왕모에게서 "불사약(不死藥)"을 얻었다. 이 약은 복용하면 즉시에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약이었다. 후예는 아내를 홀로 남겨둔채 승천할 수 없었기에 그 약을 아내 상아에게 잘 보관해두라고 주었다. 이 일을 뜻밖에도 후예의 식객이었던 봉몽(蓬蒙)이 알게 되었다. 봉몽은 후예가 외출한 틈을 타서 상아에게 그 불사약을 내어놓아라고 협박하였다. 상아는 봉몽의 적수가 되지 못한 것을 알고 그만 그 불사약을 입에 삼켜 버렸다. 상아는 그 약을 삼킨 후에 곧바로 몸이 땅에서 멀어지더니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상아는 하늘로 올라가면서 얼마나 남편을 그리워하였든지 더 이상 날아 올라가지 못하고 인간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달에 떨어져 선녀가 되었다. 후예가 집으로 돌아온 후 시녀들이 모든 사실을 울면서 말해줬다. 슬픔을 억누르지 못한 후예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그날밤은 달이 유난히도 둥글고 밝았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상아와 똑같이 생긴 흔들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후예는 급히 제상을 내어와 상아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과 과일을 그 위에 차려놓고 월궁(月宮)에 있는 상아에게 제사를 지냈다. 백성들도 상아가 신선이 되어 달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달 아래 제상을 차려서 상아에게 행복을 빌었다. 이때부터 민간에서는 중추절에 달에게 절하는 풍습이 전해지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 추석의 전통 풍습 중국의 주요 추석행사로는 달구경, 월병먹기, 조수보기, 등불구경 등이 있다. 음력 8월 15일의 달은 여느 때보다도 맑고 둥글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중추절을 일명 월석, 팔월절이라고 한다. 이날 쟁반같이 둥근달을 보는 것은 추석의 빼놓을 수 풍습이다. 또 멀리 타향에서 고향 부모님과 친척에 대한 그리움을 달구경을 하면서 달래기도 한다. 중국의 고대기재에 따르면 추석때에는 석월(夕月)이라는 제월제도 있었는데 바로 달신에게 제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주나라때에 와서는 추석밤이면 제월제를 지냈는데 제사상에는 월병, 수박, 사과, 붉은 대추, 배, 포도 등이 제물로 올랐다고 한다. 이중에서 특히 월병과 수박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제물이었다고 한다. 수박은 또 꼭 연꽃모양으로 쪼개놓아야 했다는 설도 있다. 달빛아래서 온 가족이 함께 촛불을 밝히고 일일이 달신에게 제를 지낸 후 가족의 주부는 월병을 썰었다고 하는데, 집에 있든지 타향에 있든지를 막론하고 온 가족 성원의 숫자를 세어서 그 숫자대로 꼭 같게 월병을 썰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풍속이 이미 사라지고, 온 가족이 단란히 모여서 월병을 먹는 것으로 즐거운 명절의 한때를 보낸다. 또한 등불구경은 중국의 강남일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풍습이다. 이곳에서는 추석을 십여일 앞두고 참대로 등불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등불에 과일, 새나 짐승, 물고기나 벌레 등을 새기거나 중추절 축하메세지 같은 것을 새겨 넣는다. 등불의 색깔 또한 가지각색인데 추석밤이면 긴 참대에 등불을 걸어 집의 처마나 베란다에 걸어둔다. 때로는 작은 등불 여러개로 글자를 새기거나 각종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정월대보름의 등불놀이에 이어 중추절의 등불놀이 또한 그 규모가 상당하다. .출처: 베이징관광국 한글 공식사이트.2013-09-11 6]. 유교 경전이 아닌 시중의 풍속으로 인식해보는 중추절의 유래에 대한 다른 해석 중추절의 기원과 관련해 전해지는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하나는 다음과 같다. 아주 오랜 옛날 하늘에 태양이 열 개가 떠 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1년내내 뜨거운 태양이 작열해 땅이 갈라지고, 모든 작물이 메말라 죽는 등 인간들이 고통에 허덕였다. 고통 받는 인간들의 모습을 본 하늘의 제왕이 더 이상 이를 방치하면 안되겠다 싶어 활을 잘 쏘기로 정평이 난 호우이[後羿]를 불러 9개의 태양을 활로 쏴 떨어뜨리고 하나만 남겨두라고 하였다. 호우이는 명령대로 9개의 태양을 떨어뜨려 인간세상을 구하고, 영웅이 된다. 그 후 호우이는 창어[嫦娥]라는 예쁜 부인도 얻고 인간세상을 구한 영웅으로 추앙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활을 잘 쏘는 호우이는 사냥을 매우 즐겼는데 하루는 사냥을 하러 쿤룬산[崑崙山]에 갔다가 우연히 서왕모(西王母, 신화 속의 여신으로 곤륜산에 살며 불로장생의 선도(仙桃)를 키웠다고 전해짐)를 만나게 된다. 호우이는 서왕모로부터 먹으면 하늘로 승천해 신선이 될 수 있는 신비의 묘약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인 창어를 두고 혼자 하늘로 올라갈 수 없었던 호우이는 신비의 약을 창어에게 맡겨두었다. 이 때 호우이의 부하 중 한명인 펑멍(蓬蒙)이 이 사실을 알고 약을 훔칠 기회만를 노리고 있었다. 하루는 호우이가 부하들을 모두 이끌고 사냥을 나가는 날이었다. 펑멍은 이 기회를 틈타 약을 훔치기 위해 창어의 방으로 들어갔다. 놀란 창어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하다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펑멍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그 자리에서 신비의 묘약을 꺼내 삼켜버렸다. 그러자 창어의 몸이 하늘로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남편을 홀로 두고 갈 수밖에 없었던 창어는 인간세상에서 가장 가깝다는 달에 남아 남편을 그리며 살게 되었다. 한편 사냥에서 돌아온 호우이는 시녀로부터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가슴 아파하며 통곡하였다. 그 날 이후 호우이는 달에서 창어가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내가 좋아하던 뒷정원에 제사상을 차려 향초를 꽂고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사람들도 8월 15일 불쌍한 창어가 달에서 무사 평안하게 지내길 기도하는 제사를 치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의 중추절 명절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출처: 중추절[zhong qiu jie, 中秋节] (두산백과) . 필자 주 7). 두산백과에 나오는 중추절의 유래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 다 음 -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사람들도 8월 15일 불쌍한 창어가 달에서 무사 평안하게 지내길 기도하는 제사를 치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의 중추절 명절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필자가 정리하면 중국 시중에서 전하는 속설중 하나가 호우이[後羿]의 아내 창어[嫦娥]가, 달에서 무사 평안하게 지내길 기도하는 제사를 치르기 시작해서 중추절의 유래가 되었다는 또다른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시중에서 전하는 속설로만 의미가 있는 것이며, 유교 경전으로 볼 때는 천(天, 하늘), 태양(日), 달(月)을 숭배하여 제사지내던 전통에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고대 중국의 왕들이 음력 8월 16일에 달에게 제사지내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두산백과의 중추절 설명에 잘 나타납니다. - 다 음 - ‘중추’라는 말은 《주례(周禮)》에 가장 처음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 고대 왕들은 음력 8월 15일 달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1년 4계절(3개월)을 1개월씩(孟 혹은 初,仲,季) 나누었는데, 음력 8월 15일은 가을의 중간인 '중추(仲秋)'라 하였다. 이것에 착안해 8월 15일 달에 제사 지내는 날을 중추절(仲秋節 혹은 中秋節)이라고도 불렀다... 7]. 추석(仲秋節,秋夕)에 대한 한국세시풍속사전의 설명. 중추절[ 仲秋節 ] 정의 중추(仲秋)는 가을 석 달 중에 중간 달을 의미하고 절(節)은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인 한가위를 이르는 말로 음력 8월을 달리 부르는 말. 일년 열두 달을 사계절로 나누어 1~3월을 춘(春), 4~6월을 하(夏), 7~9월을 추(秋), 10~12월을 동(冬)이라 하고, 각 계절에 속한 석 달을 나누어 첫 달을 초(初) 혹은 맹(孟), 두 번째 달을 중(仲), 마지막 달을 모(暮) 또는 만(晩), 계(季)라고 한다. 내용 『여씨춘추(呂氏春秋)』 「중추기(仲秋紀)」에 “중추의 달에 해는 각수(角宿)에 있으며, 저녁에는 견우[牽牛, 牛宿]가 남중하고 새벽에는 자휴[觜觿, 觜宿]가 남중한다.…… 거센 바람이 불고 기러기가 오며 제비는 돌아가고 새들은 좋은 먹이를 갈무리한다(仲秋之月 日在角 昏牽牛中 旦觜觿中…… 盲風至 鴻雁來 玄鳥歸 群鳥養羞……).”라고 하였다. .출처:중추절 [仲秋節]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8].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추석에 대하여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추석을 명절로 삼은 것은 이미 삼국시대 초기이었으니,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 한가위 날까지 한 달 동안 두레 삼 삼기를 하였다. 마지막 날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턱을 내고 <회소곡 會蘇曲>을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9]. 삼국사기는 8월 15일(음력)의 추석과 관련하여 회소곡과 결부하여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三國史記 卷 第一 新羅本紀 第一(儒理尼師今) 九年(西紀 三十二) …王旣定六部 中分爲二 使王女二人 各率部內女子 分朋造黨 自秋七月旣望 每日早集大部之庭績麻 乙夜而罷 至八月十五日 考其功之多小 負者置酒食 以謝勝者 於是 歌舞百戱皆作 謂之嘉俳 是時 負家一女子 起舞嘆曰 “會蘇 會蘇” 其音哀雅 後人因其聲而作歌 名會蘇曲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유리 이사금) 9년(서기 32) …왕이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반씩 둘로 나누어 왕의 딸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部) 안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나누어 편을 짜서 가을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큰 부[部]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도록 하여 밤 10시경에 그치는데,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적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진 편은 술과 음식을 차려서 이긴 편에게 사례하였다. 이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모두 행하는데 그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탄식해 말하기를 “회소 회소(會蘇)”라고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아름다워 후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서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이름하였다. 출처 : 정구복 외 4인, 역주 삼국사기, 한국학중앙연구원 10]. 한국에 종교주권 없는 일본 강점기 포교종교들의 임의적인 해석에 의해 조상제사나 차례를 기피하는 시도가 발생하여 왔었는데, 불교,기독교는 원래부터 조상제사와는 관계없어서 그런 현상이 생기는것 같습니다. 세계종교중에서는 황하문명의 유교가 가장 오래된 종교중 하나지만, 서양의 로마 가톨릭은 그 교세가 현대에는 가장 큰 종교인데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측면에서는 상호 통하는 종교임은 분명합니다. 불교는 無神論的 경향으로 부처가 창조부보다 높게 책정되는 점이 창조주 중심.神중심의 유교.기독교.이슬람교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불교는 조상제사와 관계없는 無君無父라는게 유교측 전통 입장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어도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므로, 한국은 유교국입니다. 11]. 한편, 조선성명 복구령등에 의해 한국은 전 국민이 한문성씨와 本貫을 사용하는 유교도의 나라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일본 총독부령 83호에 의해 강제 포교된 강점기 포교종교인 일본 신도, 불교, 기독교(개신교가 대부분, 가톨릭 한두개 성당)는 한국에 종교주권은 없지만, 종교의 자유는 있습니다. [4]. 을사조약은 무효라는 고종황제의 주장은, 그 당시에도 강대국인 프랑스 국제법학자 프란시스 레이교수의 견해에 그대로 반영되어, 그 당시부터 을사조약은 무효라는 국제법상의 판례같은 역할(강대국의 저명한 국제법학자의 견해는 국제관습법으로도 적용될 수 있음)로 유효하였습니다. 을사조약은 무효(따라서 강제적인 상황에서 체결된 한일병합도 무효가 되는 논리)라는 고종황제의 주장은, 결국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반영되어,임시정부는 을사조약.한일병합등 불평등 조약은 무효라 하였고, 대일선전포고까지 하였는데, 카이로선언이후 프랑스.구 소련. 폴란드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하여서, 미군정이 한국 현지에서 국제법판례로 삼을만한 자격이 성립되었으며, 미군정의 의지와는 별도로, 국제법적 자격을 형식적으로 가지고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이기도 하였습니다. 고종의 을사조약무효 주장은 나중에 UN국제법위원회에도 그대로 채택되었습니다. 국가원수들이 합의한 포츠담선언에 따라 일본과 경성제대 및 기타 일제강점기 학교들의, 주권이 없는 상태에서, 미군정당시, 하위법인 미군정 법률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대학이던 성균관(성균관대로 성균관장이 미군정에 등록)에 하위법(경성제대를 서울대로 하고, 성균관 앞에 쓰고, 다시 서울대를 국립대로 하겠다는 발표)으로 상위법에 대항하면 이길수 있겠다는, 발상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며, 그 당시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에도 위배되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을사조약.한일병합등 무효, 대일선전포고)의 대일선전포고문과도 어긋나서, 아무런 법적 자격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헌헌법과, 1988년 2월 25일 시행된 현행헌법 前文에도 임시정부가 반영되어,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를 이길수 없는 상태로 이어져왔습니다.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이보다 자격없는 추종세력들)가, 주권이 없는데, 어떻게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를 대중언론과 나중에 새로 생긴 사설 입시지.사설 입시학원 자료로 이기려고 해왔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임시정부가 대일선전포고까지 하지 않았습니까?@2차대전 이후의 한국내 대학질서는 아주 중요합니다. 국제법,헌법,한국사, 세계사, 국가주권의 상위 기준으로 대학 학벌을 확실히 정립하는게 正道입니다.포츠담선언 제8항에서는 「카이로 선언」의 조항은 이행되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일본의 주권은 혼슈(本州), 홋카이도(北海道), 큐슈(九州) 및 시코구(四國)와 함께 연합국이 결정하는 여러 작은 섬들에 한정된다고 규정했습니다. 해방이후 미군정부터,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 僧(히로히토, 아키히토, 나루히토등,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패전국奴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僧이 세운 마당쇠 불교 Monkey). 그 뒤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의 비신분제 대학들.해방당시 미군정부터, 상위법은 승전국 국가원수들이 모여 발표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이 국제법으로 상위법 역할을 하고, 미군정령은 하위법이라, 상위법 우선의 원칙으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조선.대한제국에는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으로 성균관 하나밖에 없던 나라였음.@미군정령보다 상위법인 카이로선언 내용입니다. "또한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될 것이다". 폭력과 탐욕으로 조선.대한제국을 약탈하여, 불법.강제로 경성제대를 설립하였기 때문에, 하위법인 미군정령으로,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바꾸었어도, 한국 영토에 주권이 없으며, 또한 카이로선언에 따라, 한국영토에서 축출(제명,폐지)해야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일 뿐입니다. 그리고 상위법인 카이로선언에서, 일본에 대해 잔인한 적(brutal enemies)이란 표현을 사용해서, 적국 잔재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어떠한 하위법으로 포장해도,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없는, 적국 일본 잔재일뿐입니다. 미군정에 등용된, 한국내 일제 추종, 한국인 교육 정책 실무자들의,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각색작업에도 불구하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 영토에서 축출시켜야 될(expelled), 적국 일본 잔재일 뿐입니다. 추가적으로 설명합니다. 미군정령보다 상위법인 카이로선언 내용입니다. "또한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될 것이다". 이 문구는, 한국에서, 불법.강제의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라는 국제법적 합법성도, 연합국 국가원수들이 수용한것에 해당됩니다. 필자는 성균관대 1983학번 윤진한(宮 儒)입니다.고종후손 황사손(이원)을, 대한제국 복구의 정점으로 하여, 궁 성균관대 임금(成皇.윤진한. 1962년생. 1983학번. 승전국 미국 선교사가 세운 기독교 고등학교 전주 신흥고 출신)과 어서강대 임금(西王. 서강대 사학과 출신 서진교 교수. 필자의 고교 동창생. 이전에 서강대 기록보존소에서 근무)의 대학 학벌을 장기적인 법률제정의 목표로 삼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3528462438 [5]. 문중과 가족 회의를 거쳐, 알맞게 차리시고, 차례지내시고, 성묘하십시오. 그리고 추석 달맞이는, 대보름처럼, 일반인들이 달님을 향해 소원을 비는 몇 번 없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되신 天)께서는 해.달.별 및 우주만물, 그리고 하늘(하느님)의 기품을 닮은 인간(하느님의 기품과 땅의 형상에서 이루어짐)을 창조(시경:天生蒸民)하셨습니다. 그 이후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사냥.수렵.농사를 짓게되는데, 절대적인 초월자이신 하느님의 존재를 다시 상기하고, 질병.죽음.자연재해.배고픔.맹수의 공격등에 시달리며, 절대적인 초월자이신 하느님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면서, 이를 체계적으로 이론화하여 제사.기도의 과정을 거치며, 문자를 발명한 이후에는 유교 경전인 오경과 사서를 만들어 내고, 수천년동안 동아시아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현재도 십수억명 동아시아 유교도들은 하느님(天).神明.조상신을 숭배하며, 오제(五帝), 요.순.우.탕.문.무.주공 같은 성인의 가르침과 공자님의 가르침을 계승하며,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성인임금 공자님께서는, 하느님(天,하늘), 神明, 조상신을 숭배하는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의 도리를, 정제되지 않은 초기 상태에서, 天命.天德을 받으시고, 혼동과 갈등상태에서, 하느님을 떠나 살 수 없는 피조물 인간의 자기진단을 거쳐, 품위있는 인간의 상태로 계승하시고 발전시키신 것입니다. 유교의 하느님(天)이 창조하신 피조물 인간(시경:天生蒸民)은, 유교의 수많은 제사, 명절,교육, 하느님의 품성을 교육받은 많은 인간들의, 의지와 품성으로, 여러 제도와 의식속에, 하느님(天)께서 창조하신 우주와 지구의 영역에서, 피조물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부처는 창조신을 부정하고, 창조신보다 높다고 한 Monkey류에 불과합니다.그래서 브라만을 숭배하던 인도에서 다시 배척받게 된것입니다.@수천년 세계종교인 유교는 중국,한국, 베트남, 몽고,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 전세계 화교등을 합하며 십수억명의 유교신자가 존재합니다. 중국은 춘절(설날), 청명절(한식), 단오절, 중추절(추석)의 유교문화 4대 전통명절을 공휴일을 아주 길게 하여, 전통을 유지하는 정책을 취하였습니다. 수천년 세계종교 가톨릭은 서유럽, 중남미,필리핀과 전세계에 걸쳐 십수억명의 신자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불교는 일본과 동남아에 걸쳐 몇억명. ​ @불교는 Chimpanzee 과 부처가 기존의 브라만교에 대항해, 부처가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주장하다, 인도에서 다시 불교배격(불가촉천민으로 배척) 천 몇백년 이어짐. 패전국 일본 불교Monkey나라는 성씨없는 점쇠賤民(신생 천황)이 하느님.예수보다 높다고 강점기에 신부겁주고 목사 고문.구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성씨없는 천민 점쇠가 세운 마당쇠賤民에 불교 Monkey족.@불교는 발상지인 인도에서, 천 몇백년동안 브라만교의 힌두교신앙에 의해 소멸되다시피 배척받아옴.페르시아 불교도 소멸되고, 아프카니스탄등의 불교도 소멸상태로 배척받고 있음. 동아시아에서는 변변한 교육기관도 없이 무군무부의 금수라 하여 산속에서나 머물러야 하는 외래종교로 살아왔습니다.불교는 강대국이 아니며, 패전국인 일본,태국및 동남아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 신앙.@중요한건 하느님.창조자를 숭배하느냐 하지 않느냐입니다.하느님을 숭배하는 종교는 수천년간 유교와 로마가톨릭(후세에 항거자로 불리는 Protestant의 개신교도, 현재는 기독교의 광의의 개념에서 이해됨)입니다. 황하문명에서 이어진 유교는 그 始原性에 의해, 하느님.神明.조상신을 숭배하는 다신교적 특성이 있어왔는데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의 세계종교가 되었습니다.@유교는 중국, 한국, 베트남,몽고, 2차대전후의 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전세계 화교등에 걸쳐 십수억명의 유교신자가 존재합니다. 고대부터의 수천년 세계종교인 로마가톨릭도 서유럽,중남미.필리핀 및 타국가에 걸쳐 십수억명의 신자가 있습니다. 불교는 하느님과 창조신을 부정하는 침팬치과의 고대 세계종교인데, 인도 아소카왕때 적극적인 포교로 여러나라에 선교하였지만, 대부분 배척받으며 변두리 하부신앙으로 이어지거나, 소멸되어버렸습니다.인도에서는, 천 몇백년동안 브라만교의 힌두교신앙에 의해 소멸되다시피 배척받아옴.페르시아 불교도 소멸되고, 아프카니스탄등의 불교도 소멸상태로 배척받고 있음. 동아시아에서는 변변한 교육기관도 없이 무군무부의 금수라 하여 산속에서나 머물러야 하는 외래종교로 살아왔습니다. @불법 일제 강점기에, 불교국가 일본의 만행으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 한국 유교는, 일본에 의해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오도되어, 수난을 겪다가, 해방이후 유교국가로 복구되었는데, 1980년대 중반부터, 불교 Monkey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그 추종세력, 각종 왜구학교 잔재들이, 다시 회복된 유교를 향해 시중의 루머.야담등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때 조선성명 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으로 복구되었습니다. 5,000만이 유교 명절, 제사, 유교식 이름, 학교의 유교중심교육, 24절기를 쇠며, 살아가는 유교국가일뿐, 무교는 없습니다. 무교란게 도대체 무슨 개념인지 모르겠습니다. 주권없이 일제 강점기 사고방식을 최근 다시 재현하는것으로 보입니다.시중 루머나, 포탈에서 유명인 소수를 대상으로, 무교로 편집하는 작업을 내세우며, 무교라는 용어를 보급시키려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 * 이 글은 비영리적이며, 유교권(중국.한국.베트남.대만.싱가포르등 전세계 십수억명 유교신도)의 공통명절인 중추절(추석)에 대해, 다른나라와 비교하며 다시 한번 되짚어보자는 종교이해적 차원의 공익적인 글로 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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