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4일 수요일
2026년 여름. 宮(泮宮.學宮).太學.成均館자격 성균관대 유생이 평가하는 세계적인 대학들.세계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 백과사전, 참고서, 학술서등에 기반함.
2026년 여름. 宮(泮宮.學宮).太學.成均館자격 성균관대 유생이 평가하는 세계적인 대학들.세계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 백과사전, 참고서, 학술서등에 기반함.
세계적인 대학들. 세계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 백과사전, 참고서, 학술서등에 기반함. World class Universities. It based on World History Text books, Korean History Textbooks, Encyclopedia, Reference Books,Scholarly Books, etc.
필자의 견해는 정사(正史)인 세계사와 한국사 및 백과사전, 학술서등과 한국법.국제법을 종합해서 제시한것입니다.
{I}. 서유럽학자들 이름이 많이 나오는 세계사인데, 세계사가 변경되기전에는 2차대전때문에 형성된 강대국 기준으로, 세계사의 다음과 같은 기득권 대학들에 대한 현상개변을 원치 않습니다.
- 다 음 -
한(漢)나라 태학(太學).그 이후의 국자감(國子監. 국자감은 京師大學堂으로 대체되고 北京大學으로 계승됨), 볼로냐 대학(Università di Bologna), 파리대학(Université de Paris).
그리고 황하문명 및 세계종교로서의 유교 자격, 2차대전 이전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정신적 지주인 오래된 제도와 자격을 가지신 교황성하 제도.
필자[성균관대 출신 윤진한(宮 儒). 성균관대 경상대학 무역학과 주간, 1983학번. 경제학사]는, 세계사의 대학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승전국등 국가별로 국가주권을 행사하는게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합니다. 과거 역사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변치말아야할 인류역사중 한 부분으로 세계사는 중요하며 이를 대체할만한 문헌은 없습니다. 한국사도 그렇습니다.
중국은 중화민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UN대표국의 지위가 변경된 나라인데, 2차대전 이후에 형성된 UN안보리 상임이사국 명단에서 중국과 프랑스의 순서가 먼저 나오는 것은 세계사의 오랜 전통을 반영하여서 그렇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으로 유교의 세계종교[중국은 수천년간 유교의 천자(天子)국이었음. 황제제도가 없어졌어도 중국천자 제도의 상징성은 어떤 나라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위치가 크게 흔들렸는데, 세계사의 내용이 그대로 유지되어, 이를 토대로 세계종교로서의 유교지위를 유지시키고자 필자는 세계사를 이용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차대전이후에 형성된 새로운 강대국 기준이나 다른 나라들 기준으로, 중국의 태학.국자감(베이징대로 승계),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프랑스 파리대학, 이탈리아.독일에 소재한 교황윤허 대학등에 대한 격하를 시도하면 않됩니다.
2차대전 결과와 상관없이,세계사와 한국사를 바꾸지 못하면,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 학술서적상의 기득권 대학 학벌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참 복잡한 특성인데, 2차대전 결과와 세계사(World History) 및 국사(National History)와 연관지어 이 대학 학벌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나라나 출판사, 학술단체,개인들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대학 학벌문제는, 수많은 갈등과 반복을 통하여 오랫동안 定說.正論으로 유지되어온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中高生 학습서 포함), 학술서적상의 유서 깊은 대학들이나 기득권을 가진 측에서 설립한 대학을 기준으로 하는게 가장 정통성을 인정받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필자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세계사.한국사 교과서(참고서), 사전, 학술서가 바뀌지 않는한 유구한 역사의 기득권들도 바뀌지 않음.
시중에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교과서(참고서), 사전, 학술서에 바탕한 대학들을 비교해도 유구한 역사의 대학들이 바뀌지 않는한 이에 연관된 대학들의 기득권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한편, 2차대전 승전국이 되어 UN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이 된 나라들의 주요 대학들도 변하지 않습니다.
{II}. 세계의 대학들. 세계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 백과사전, 참고서, 학술서등에 근거함. World class Universities. It based on World History Text books, Korean History Textbooks, Encyclopedia, Reference Books,Scholarly Books, etc.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세계사에 나오는 대학들을 먼저 알아야 현대의 세계적인 대학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계 4大文明은 존중하지만, 세계의 대학들은 기존 인식대로 아래의 대학들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필자는 世界史 4대 文明, 유교, 중국 한(漢. 太學)과 이에서 이어진 국자감(國子監. 베이징대로 승계됨), 서유럽의 볼로냐, 파리대학, 韓國史 成均館(성균관대로 계승됨) 중심입니다.
* 중국 漢나라 太學.그 이후의 국자감(國子監)이나, 서양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등은 세계사 교과서에 등재되었기 때문에, 누군가 합의하여 漢나라 태학(太學).그 이후의 국자감과 볼로냐 대학을 세계사 교과서에서 삭제하기 까지는 그 세계 최초의 대학(볼로냐는 동일 이름 가진 세계 최초의 대학) 정통성을 잃지 않음.
* 중국은 세계 최초의 대학인 漢나라 太學이후 魏나라 太學, 隋나라 國子監, 唐.宋 國子監, 元.明.淸 國子監, 淸나라 말기 京師大學堂, 중화민국 시대 北京大로 이어짐. 天子國의 수도에 세워져 天子의 子弟들이 공부하던 대학계보라 할 수 있음.
* 이태리 볼로냐대학은 수도원의 대강당에서 시작된 동일 이름 가진 세계 최초의 대학인데, 볼로냐가 敎皇領이었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중세시대 서양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교육되어 온것 같음. 교황령이던 볼로냐는 이태리에 합병되었으나, 지금도 世界史 敎科書에서는 중세시대 서양에 세워진 최초(漢나라 太學이 세계사 교과서에서 세계 최초 대학으로 가르쳐지기 때문에, 볼로냐가 세계 최초대학이라면 동일 이름가진 세계 최초 대학을 의미할것)대학으로 교육되고 있음.
* 한국은 高句麗 太學부터 유교 최고대학이 있는데,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이던 成均館은 해방이후 成均館大學校로 600년 전통이 이어지고 있음.
[1]. 세계사(世界史,World History)의 대학들.
1]. 중국(中國, China): 베이징대학교. 1898년, 원·명·청 시대에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국자감(國子監)을 대체하여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으로 창설.
세계 최초의 대학, 한(漢)나라 태학[太學(유교대학)]. 이후 위(魏)나라 태학(太學), 수(隋)나라 국자감(國子監), 당.송(唐.宋) 국자감(國子監), 원.명.청(元.明.淸)의 국자감(國子監)으로 이어지다가 청(淸)나라말기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으로 명칭이 바뀌고 나중에 다시 북경대학(北京大學, 베이징대학, Peking University)으로 명칭바뀜.
중국(中國) 한(漢)나라 태학(太學)이 세계사에 나타나는 세계(世界) 최초(最初)의 대학임은 정설(定說)입니다. 한국의 두산백과에 나타난 바로는, 청(淸)나라말기 원.명.청(元.明.淸)의 국자감(國子監)을 이어 설립된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은 태학과 국자감에서 이어진 대학 계보고,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에서 이어진 중국대학이 북경대학(北京大學, 베이징대학, Peking University)입니다.
1. 두산백과에 나오는 베이징 대학교 설명.
베이징대학교
[ Peking University , 北京大學(북경대학) ]
요약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있는 중국 최초의 국립 종합대학교.
국립
1898년
중국 베이징
2.73㎢
4,206명
대학 1만 5128명, 대학원 1만 5039명
www.pku.edu.cn
1898년, 원·명·청 시대에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국자감(國子監)을 대체하여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으로 창설하였다. 1902년 경사대학당의 교육학원이 오늘날의 베이징사범대학교로 떨어져 나갔고 1912년 중화민국 성립에 수반하여 국립 베이징대학으로 개칭되었다. 1917년 학장으로 취임한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개혁으로 신문화운동의 중심이 되어 근대 학술연구와 토론의 자유 학풍을 확립하였고, 특히 1919년의 5·4운동이 재학생들에 의해서 추진된 이후 학생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20년 난징대학교에 이어 중국에서 2번째로 여학생 입학을 받아들였다. 중일전쟁중인 1937년에 국민정부가 칭화대학, 난카이[南開]대학과 함께 후난성 창사[長沙]의 오지(奧地)로 모아서 합병하여 창샤임시대학교로 만들었다가 1938년 다시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으로 옮겨 시난[西南]연합대학을 조직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6년 연합대학은 해산되어 각각의 학교로 분리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1952년의 대학 재편성에 의하여 옌징[燕京]대학을 합병하고 칭화[淸華]대학과의 조정이 단행되어 문·이과계의 기초이론을 중심으로 한 종합대학으로 개편되었다. 1952년 베이징 도심에서 옛 옌징대학 캠퍼스 자리로 옮겼으며 1966~1976년의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는 1970년까지 3년 동안 휴교조치가 내려졌다. 1977년부터 국가통일 입시제에 의하여 입학자를 선발하고 있으며 2000년 베이징의과대학교를 합병하여 베이징대학교 보건 캠퍼스를 조성하였다.
2010년 수학, 물리학, 의학, 생명과학, 전기·컴퓨터공학, 환경공학, 역사, 중국학·문학, 심리학, 고고학·박물관학, 철학, 외국어, 예술, 국제학, 경제학, 경영학, 법학, 정보경영학, 사회학, 마르크스학, 언론통신학 등 38개 학원(学院;단과대학)·계(系;독립학과)·부에서 학부과정과 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베이징의 주 캠퍼스와 보건 캠퍼스, 광둥성[廣東省] 선전[深圳] 캠퍼스가 있다. 베이징 서쪽 교외지역에 위치한 주 캠퍼스는 이화원과 원명원 등 역사 유적이 가깝고, 이공계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칭화대학과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도 인접해 있다. 웨이밍호[未名湖]로 둘러싸였으며 청 왕조의 정원이 자리 잡았던 곳이어서 옛 건물, 정원, 정자 등 중국 전통적 경관이 남아 있다. 선전 캠퍼스에는 선전대학원이 있다...
. 출처: 베이징대학교 [Peking University, 北京大學(북경대학)] (두산백과)
2. 중국어판 북경대학 소개자료.
a). 중국의 바이두백과에 나타나는 베이징대(北京大学).
http://wenku.baidu.com/view/3c077fda6bec0975f465e290.html
위에 나타난 baidu. 필자가 첨언하면 Baidu는 중국의 百度文库(백도문고)입니다.
북경대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北京大学
北京大学,
中国最高学府,
创办于
1898
年,
初名京师大学堂,
是中国第一所国立大学,
也是中国近代最早以
“
大学
”
身份和名称建立的学校,其成立标志着中国近代高等教育的开
端。
北大是中国近代唯一以最高学府身份创立的学校,
最初也是国家最高教育行政机关,
行
使教育部职能,
统管全国教育;
并开创了中国高校中最早的文科、
理科、
政科、
商科、
农科、
医科等学科的大学教育,
是近代以来中国高等教育的奠基者。
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
最高学府
——
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又开创了
中国近代高等教育先河,可谓
“
上承太学正统,下立大学祖庭
”
。在中国近现代史上,北大始
终与国家民族的命运紧密相连,深刻的影响了中国百年来的历史进程。
* 필자가 주안점을 두는 문구는 다음 문구임.
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
最高学府
——
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
북경대는 중국 수천년의 국가 최고학부를 전승해오고 있다. 태학(국자학, 국자감)적 학통-
중국고대 최고학부정통을 이전에 계승했었다.
b). 125교육망 중국연구생 (학생모집) 정보네트워크에 나타난 베이징대(北京大学).
http://www.125edu.com/puyan/zhinan/201508/647c98380.html
125edu.com은 중국어판 125教育网【中国研究生招生信息网입니다. 125교육망 중국연구생 (학생모집) 정보네트워크입니다.
一、北京大学
北京大学,中国最高学府,创办于1898年,初名京师大学堂,是中国第一所国立大学,也是中国近代最早以“大学”身份和名称建立的学校,其成立标志着中国近代高等教育的开端。北大是中国近代唯一以最高学府身份创立的学校,最初也是国家最高教育行政机关,行使教育部职能,统管全国教育;并开创了中国高校中最早的文科、理科、政科、商科、农科、医科等学科的大学教育,是近代以来中国高等教育的奠基者。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最高学府——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又开创了中国近代高等教育先河,可谓“上承太学正统,下立大学祖庭”。在中国近现代史上,北大始终与国家民族的命运紧密相连,深刻的影响了中国百年来的历史进程。
* 필자가 주안점을 두는 문구는 다음 문구임.
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最高学府——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
2]. 서유럽.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 프랑스 파리대학교.
1.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Università di Bologna). 1088년 페포네(Pepone)와 로마 법학자 이르네리오(Irnerio)가 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교회법(Canon)과 민법을 가르침으로써 볼로냐 법학의 기초를 세움. 1158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플드맇 1세(재위 1152~1190)는 이 지역의 학생집단을 자치단체로 공인하고 칙령내림.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볼로냐 대학교.
볼로냐대학교
[ University of Bologna ]
요약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州)의 주도(州都) 볼로냐에 있는 주립 종합대학교.
원어명구분개교일소재지교훈홈페이지
Università di Bologna
주립
1088년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 볼로냐
Alma mater studiorum(모든 학문이 퍼져 나간 곳)
www.unibo.it
1088년 페포네(Pepone)와 로마 법학자 이르네리오(Irnerio)가 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교회법(Canon)과 민법을 가르침으로써 볼로냐 법학의 기초를 세우게 되었다. 1158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재위 1152~1190)는 이 지역의 학생집단을 자치단체로 공인하고 칙령을 내렸다.당시 학생들은 도시로부터 독립한 독자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것이 볼로냐대학의 핵심이 되었다. 13세기 후반에 이르러 교사(校舍)를 짓고, 법학뿐 아니라 신학·철학·의학도 강의하게 되었는데, 특히 의학부는 세계 최초로 해부학을 교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1802년 국립대학으로 개편되었다.
이전까지는 프리드리히 1세가 칙령을 내린 1158년을 대학 설립일로 삼았지만, 19세기의 역사학자인 조수에 카르두치(Giosuè Carducci)가 1088년에 처음으로 교육기관이 세워졌다는 사실을 밝혔고, 2000년 세계 최초의 대학임을 강조하기 위래 ‘모든 학문이 퍼져 나간 곳(Alma Mater Studiorum)’이라는 새로운 교훈을 지었다. 주정부가 재정을 지원한다.
2010년 기준 농학부, 건축학부, 인문학부, 경제학부, 교육학부, 공학부, 운동·체육학부, 언어·문학부, 산업화학부, 법학부, 수학·물리학·자연과학부, 의학부, 약학부, 정치학부, 문화유산보존학부, 심리학부, 통계학부, 수의학부 등의 23개 학부에서 다양한 학부·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입학 후 3년 과정 라우레아(Laurea) 학위를 딴 후에 이어서 비슷한 수의 학생들이 2년 과정의 전문학위인 라우레아 스페찰리스티카(Laurea specialistica) 학위를 따게 된다. 그러나 일부 과정은 5년 기간의 한 가지 학위과정으로만 이루어지기도 하며, 의학 부문은 6년이 걸린다.
볼로냐 캠퍼스 외에 체세나(Cesena) 캠퍼스, 2001년 문을 연 포를리(Forlì) 캠퍼스, 라벤나(Ravenna) 캠퍼스, 리미니(Rimini) 캠퍼스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도 캠퍼스가 있다. 부속시설로는 도서관, 팔라초 포지박물관, 정보공학·통신을 위한 전자체계연구센터, 암학부연구센터, 이슬람학학제연구센터 같은 연구기관 등이 있다...
출처: 볼로냐대학교 [University of Bologna] (두산백과)
2. 프랑스. 파리대학교. 1215년 파리공교회(公敎會)의 부속학교 등을 모체로 하여 설립. 13세기에 자치권 획득을 위하여 몇 차례 투쟁을 벌인 결과 로마 교황과 프랑스 국왕으로부터 자치권 획득.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파리 대학교.
파리대학교
요약 1215년 파리에 설립되어 1968년에 해체될 때까지 프랑스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 된 대학.
파리대학교
원어명
Université de Paris
1215년 파리공교회(公敎會)의 부속학교 등을 모체로 하여 설립되었다. 설립 당초에는 모두 같은 성직자 신분을 가졌던 교수와 학생의 연구·교육을 목적으로 한 길드(동업조합)였으나, 13세기에 자치권 획득을 위하여 몇 차례 투쟁을 벌인 결과 로마 교황과 프랑스 국왕으로부터 자치권을 얻었다.
중세 전체를 통하여 학사과정(자유학부)에서는 3학(문법학, 수사학, 논리학과 4과(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를 가르쳤다. 학사학위 취득자는 다시 석사학위·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하여 전문과정(신학부·법학부·의학부)에 진학할 수 있는 제도로 되어 있었다. 유럽 전역에서 많은 영재들이 이들 학문을 배우기 위해 파리대학교로 몰려왔으며, 특히 신학부가 유명하였다. 신학부의 중심은 13세기에 가난한 신학생들을 위하여 로베르 드 소르본(Robert de Sorbon) 신부가 세운 기숙사 겸 연구소였던 소르본 학사(學舍)였으며, 소르본이라는 이름은 그 후 파리대학교 전체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다. 르네상스이후 파리대학교는 근대과학의 발전에 따라가는 능력을 잃고 점차 정체되었다. 프랑스 혁명후인 1790년대에는 혁명의회로부터 국권이 미치지 않는 학자와 학생들의 경직된 길드라는 비난을 받고 학부(faculté )라는 명칭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1세의 '제국학제(帝國學制)'가 확립되면서 다시 학부라는 명칭이 부활되었다.
또한, 국가를 대신하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권한이 인정되고, 1806년에는 교회와의 관계도 완전히 단절되었다. 1893년과 1896년에 제정된 2개의 법률에 의하여 1개의 대학구(大學區)에 있는 몇 개의 대학의 집합체에 '유니베르시테(université )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게 되면서 법인격과 재정면에서 자치권을 가진 학부의 통합체로서 파리대학교가 성립되었다. 이와 동시에 지방에도 1개 대학구에 1개 대학교(유니베르시테)라는 시스템이 확립되어 20세기 들어 크게 발전하였다.
1966년 11월에 열린 '제2회 칸회의'(고등교육과 학술 연구 개혁을 위한 최고 전문가회의)에서는 당시 전국 대학생의 30%에 해당하는 20만 명의 재학생을 갖고 있던 파리대학교의 개혁을 중심으로 전국 23개 대학의 학생수를 적정규모(최대 2만 명)로 억제하기 위한 과제가 토의되었다. 여기에서 파리 지역에는 15개 전후의 대학을 설치하는 안이 제출되었다. 그후 '포르 개혁'이라고 불리는 교육제도 개편의 결과 1970년대 초까지 파리대학교를 비롯한 전국 23개 대학의 해체·재편작업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70여 개의 신제 대학이 구제의 학부를 대신하는 새로운 교육·연구단위기관으로 발족하였다.
파리대학교가 해체되면서 파리 시내의 '파리대학구'에 파리 제1대학에서부터 파리 제9대학까지가, 시외의 '베르사유대학구'에 파리 제10대학과 파리 제11대학이, 역시 같은 시외의 '크레테유대학구'에 파리 제12대학과 파리 제13대학이 설치되어 모든 국민에게 개방된 신제 국립종합대학교로 재출발하였다.
. 출처: 파리대학교(두산백과)
{III}. 한국사(韓國史,Korean History)의 대학. 성균관대(국사의 성균관 자격 승계). 성균관대학교의 연원은 1398년(태조 7)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성균관에서 시작.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으로서 국가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전통적인 유학 교육을 실시.
한국 국사 교과서(참고서 포함)에서 가르치는,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을 승계한대학은 현재의 성균관대학교(成均館大學校,SungKyunKwan University)로 600년 역사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국정부의 대통령령으로 발행한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를 적용시, Royal대는 국사 성균관 자격을 가진 600년 넘는 역사의 성균관대[한국 최고(最古,最高)대]입니다.
.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 나타나는 성균관대학교.
성균관대학교
[ 成均館大學校 ]
이칭별칭
이칭 성균관대, 이칭 성대
유형:단체
시대:현대
목차:정의개설연원 및 변천기능과 역할현황
정의: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개설
성균관대학교의 성균관이라는 명칭은 1398년(태조 7)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조선왕조 성균관에 연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성균관의 전통을 계승하여 교시(校是)인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의 유도정신(儒道精神)을 바탕으로 바른 인성을 갖고 글로벌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교육목표를 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1895년 갑오개혁과 함께 신학제가 실시되면서 성균관에 3년제 경학과(經學科)가 별도로 설치되었는데, 성균관은 제향 기능을 담당하고 경학과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여 유학 경전을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역사학 · 지리학 · 수학 등 근대적인 교과목도 부과되었다. 이밖에 교육의 목적, 교육과정의 운영, 입·퇴학 절차, 각종 시험 및 학생의 특전, 학기제 채택 등 전통적 교육기관에서 근대학교로의 제도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중세사회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성균관이 이로부터 근대적인 고등교육기관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권상실 뒤 일제에 의하여 경학원(經學院)으로 개편되면서,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은 사라지고 문묘(文廟)의 제향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의 기능만 수행하게 되었다.
1946년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할 대학 설립을 위한 성균관대학기성회가 유림대회(儒林大會)를 통하여 조직되고 김창숙(金昌淑)의 주도로 종전의 명륜전문학교의 재단을 병합한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발족하면서 같은 해 9월 정규 단과대학인 성균관대학이 인가되었다. 설립에 필요한 대지는 독지가 이석구(李錫九)가 재단법인 학린사(學隣舍)의 토지를 희사하였다. 문학부와 정경학부를 설치하고, 초대 학장에 김창숙이 취임하였다.
1953년 2월 종합대학인 성균관대학교로 승격되어 문리과대학 · 법정대학 · 약학대학의 3개 단과대학과 1개 대학원의 편제를 갖추었고, 같은 해 6월 각 도의 향교재단(鄕校財團)에서 재산을 기부함에 따라 재단법인을 성균관으로 확대해 개편하였다.
.출처: 성균관대학교 [SUNGKYUNKWAN University, 成均館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서강대는, 세계사의 교황제도 반영, 국제관습법상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연합국 국가원수들의 포츠담선언(포츠담선언은 미군정의 상위법, 일본관련, 포츠담선언은 카이로선언도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불교 Monkey 일본.*서유럽과는 다르게 한국,대만,아시아,쿠릴열도에 적용되는 포츠담선언의 일본관련 조항들.*일본이 교육기능 폐지시킨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 미군정때 성균관을 복구하는 법률(공자묘 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이 제정되었음. 이때 성균관과 관련없고 일본 동경대를 졸업한 교육관련 담당자와 주변인들이,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폐지)시켜야 할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하면서, 서울대를 성균관 앞에 놓는 방법으로 성균관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하였음. 미군정에서 교육정책 입안자로 등용되니까, 하위법인 미군정령을 이용해,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의 취지(일본의 주권은 한국에 없고, 경성제국대는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할 일제잔재임)에 어긋나는 교육정책을 만들었던것. 그러나 상위법 우선의 원칙을 따라야 함. 카이로선언은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축출)될것"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또한, 미군정은, 교육분야 아닌 타분야에서 연합국의 적국인 일본의 재산을 적산재산으로 하여, 일본이 카이로선언의 연합국 적국이라는 시각을 따르고 있었음. 미군정기에는 유교국가인 조선.대한제국의 한문성명.본관을 등록하는 조선성명 복구령도 시행되었음. 교육분야에서, 미군정기의 과도기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될 경성제대 활용(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의 정제되지 않은 정책에, 위기를 느낀, 전국 유림들이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유림이면서 임시정부 요인출신 김창숙 선생)를 개최하여, 성균관대를 설립(성균관의 교육기능 승계형태임)하기로 하였음. 새로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성균관장이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하고, 성균관대 학장.성균관장을 겸임하였음.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성균관대가 대학기능을 승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것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며, 고구려 태학이후 한국 최고대학 계보 성균관이었음. 태학(고구려),국자감(고려),고려말 성균관,조선.대한제국 성균관. 일본 강점기때 교육기능 중단 및 왜곡*일본이 항복하여, 미군정부터는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가, 대학교육 역할을 담당하여, 한국 최고 대학 계보임.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미군정때, 국사 성균관 교육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에도, 계속 국사 성균관교육을 실시. 국사교육을 중요시하여, 정부의 각종 고시, 공무원시험등에 국사 채택. *국사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라는건 성균관대, 성균관, 여러 백과사전 공통된 견해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4090602113
{IV}. 필자가 백과사전, 참고서,주요 학술서적에서 보고 익힌 세계의 대학들.
[1]. 동아시아 유교권.
1]. 중국(中華人民共和國). 베이징대(北京大學, Peking University,북경대학교)외에도 칭화대학(淸華大學, Tsinghua University), 베이징 사범대학[北京師範大學, 1902년에 경사대학당사범관(京师大学堂师范馆])으로 개교]이 있음. 중국 태학이나 국자감,경사대학당은 유교권 천자가 세운 전통으로, 황제들이 황태자때 공부하고 천자(황제)가 됨.
2]. 태학에서 공부하던 천자의 아들들. 연암집 제 10권 별집. 原士편
천자의 원자(元子)와 적자(適子)가 태학에 입학하여...
.출처:한국 고전번역원/신호열 김명호 공역/2004
3]. 태학생의 선발과 출로.
태학생의 선발과 출로[편집] 太學生-選拔-出路 한대 박사의 임명 및 태학생의 선발은 태상경(太常卿)의 권한에 속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태상경이 18인 이상을 선발하여 '박사제자'로 충당하는 규정을 세웠으나, 그 뒤에는 지방의 관리들이 추천한 학생도 태학에서 면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경(公卿) 자제들은 정식추천을 거치지 않고 입학할 수 있어 다소의 문란을 초래하였다. 그래서 태학 학생들의 출신성분은 다양했다. 공경 자제, 지방정부에서 추천한 공사비(公私費) 평민학생, 부호출신, 빈한한 가정 출신도 있었고, 외국인 흉노 유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이 졸업한 뒤의 진출상도 다양하여 하급관리로부터 공경·제왕(帝王)도 있었다.
. 출처: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4]. 중국에서 황태자등을 가르치던 국자감 설명. 국자(國子)와 연관되어 설명하고 있음. 國子監과 國子 두가지 설명.
a). 국자감(國子監): 중국에서 황태자(皇太子)와 태자 및 귀족 자제(子弟)와 민간 수재(秀才) 들을 가르치던 대학(大學). 여기의 교수(敎授)를 국자박사(國子博士)라 했는데 당(唐)의 한유(韓愈, 자 퇴지退之)가 국자박사를 지냈음.<사물기원事物紀原><한유韓愈 진학해進學解>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성종(成宗) 때부터 유학(儒學)을 가르치던 관아로 후에 성균관(成均館)으로 명칭이 바뀌었음.
b). 국자[ 國子 ]: 공경대부(公卿大夫)의 자제.<주례周禮>
.출처: 한시어 사전, 전관수, 2007.7.9, 국학자료원
c). 주나라 천자가 건립한 벽옹.
벽옹(辟雍): 중국 주(周)나라때 천자(天子)가 도성(都城)에 건립한 대학(大學)
.출처: 벽옹(辟雍) (한국 고전용어 사전,2001.3.30,세종대왕 기념사업회)
d). 한 무제가 세운 한나라 태학.
무제는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가 사상을 국가 통치의 원리로 삼았다. 이에 따라 수도 장안(오늘날 시안)에 국립 대학인 태학을 설치하고 오경 박사를 두어 유교 경전을 가르치게 하였다.
.출처: 중국문화의 기틀을 다진 한나라(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2011.9.5, 휴머니스트)
e). 국립국어원의 국자학 설명.
국자학 國子學.
. 고려 시대에, 국자감에서 삼품관 이상 고관의 자제만 입학하던 전문 학과.
. 중국 진(晉)나라 때에, 무제가 귀족 자제나 영재를 가르치기 위하여 만든 교육 기관. 한(漢)나라 때에는, 태학이었으며, 수나라 이후 국자감으로 이름을 고쳤다.
f). 동아시아 유교권의 현대 대학들.
가). 중국. 칭화대학교. 중일전쟁 중인 1937년에 국민정부가 베이징대학, 난카이[南開]대학과 함께 후난성 창사[長沙]의 오지(奧地)로 모아서 합병하여 창샤임시대학교로 만들었다가 1938년 다시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으로 옮겨 시난[西南]연합대학을 조직.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칭화대학교.
칭화대학교
[ Tsinghua University , 淸華大學(청화대학) ]
요약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국립
1911년
중국 베이징
자강불식 후덕재물(自强不息 厚德載物:스스로 끊임없이 강하게 만들고, 덕을 쌓은 위에 물질적인 발달을 꾀한다)
3.95㎢
4,868명(2009)
대학 1만 3915명, 대학원 1만 2831명(2009)
www.tsinghua.edu
1911년 4월 26일, 의화단(義和團) 운동의 결과로 인해 중국 정부가 서구 열강에 대한 배상금 명목으로 미국에 조차하던 지역에 미국 유학생 양성기관인 '칭화학당[淸華學堂]'으로 설립하였다. 이후에 ‘칭화학교’로 개칭하였고 종합대학으로 바뀌었으며, 1928년 국립대학으로 개편하면서 국립칭화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중일전쟁 중인 1937년에 국민정부가 베이징대학, 난카이[南開]대학과 함께 후난성 창사[長沙]의 오지(奧地)로 모아서 합병하여 창샤임시대학교로 만들었다가 1938년 다시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으로 옮겨 시난[西南]연합대학을 조직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6년 연합대학은 해산되어 각각의 학교로 분리되었다.
1952년 중국 정부가 결정한 ‘전국 공학원(工學院) 조정방안’에 따라 공학부에 베이징대학과 옌징[燕京]대학의 공학계통을 통합 흡수하고, 문학·이학·법학은 베이징대학교로 옮겼다. 1978년부터 1980년대 초에 걸쳐 이과, 경제경영, 인문사회과학, 건축학, 법학, 의학 부문 등을 만들었고 다시 종합대학교가 되었다.
2010년 기준 건축, 토목수리, 기계공정, 우주항공, 마르크스주의, 정보과학기술, 이과, 경제관리, 공공관리, 인문사회과학, 법학, 신문방송, 미술, 의학의 14개 학원(단과대학)에서 학부과정과 석사·박사과정을 제공하며 1985년 설립된 칭화대학계속교육학원[淸華大學繼續敎育學院]이 있다. 특히 공학 계열은 중국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며, 대학 부설 연구소로 46개 연구소와 167개의 다양한 실험실을 보유한다.
. 출처:칭화대학교 [Tsinghua University, 淸華大學(청화대학)] (두산백과)
나). 중국. 베이징 사범대학교. 1902년에 경사대학당사범관[京师大学堂师范馆]으로 개교.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베이징사범대학교.
베이징사범대학교
[ 北京師範大學校(북경사범대학교) ]
요약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있는 국가교육부 직속 사범대학교로, 중국에서 설립된 최초의 사범대학이다.
국립
사범대학
1902년
중국 베이징
사람의 모범이 되기 위해 배우고, 세상의 모범이 되도록 행동하라[学为人师,行为世范]
794,355㎡
http://www.bnu.edu.cn/
중국 국무원이 지정한 10대 중점 사범대학으로, 1902년에 경사대학당사범관[京师大学堂师范馆]으로 개교하였다. 1923년 베이징사범대학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31년에 베이핑여자사범대학[北平女子师范大学], 1952년 푸런대학[辅仁大学]과 합병하였다. 1959년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의해 최초의 전국 중점대학으로 지정되었다.
대학교 내 학부와 학과, 대학으로는 교육학부, 지리과학학부, 심리학부, 물리학과, 천문학과, 법대학, 철학대학, 경영대학, 마르크스주의 대학, 중국 사회 관리 아카데미/사회학 대학, 체육 스포츠 대학, 중국어문학대학, 중국어문화대학, 외국어문학대학, 저널리즘 및 커뮤니케이션대학, 역사대학, 수리과학대학, 화학대학, 시스템과학대학, 통계대학, 환경대학, 생명과학대학, 인공지능대학, 원자력과학기술대학, 정부대학, 사회개발 및 공공정책대학, 예술 및 커뮤니케이션대학, 평생교육 및 교사훈련대학, 일대일로(Belt and Road)대학, 미래교육대학이 있다. 이중 수학, 환경/생태, 지구과학, 농업과학, 신경과학 및 행동과학, 화학, 정신의학/심리학, 공학, 물리학, 재료과학, 사회과학총론, 식물학, 축산학, 생물학 및 생물화학, 임상의학과 같은 전공 분야는 세계 대학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연구소로는 경제자원관리연구소, 형사법률과학연구소, 물과학연구소, 재난경감방재연구소, 세계변화 및 지구시스템과학연구소, 기본교육품질평가협업혁신센터, 베이징 문화혁신 및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중국 정보처리 연구소, 베이징문화개발연구소, 신소재 연구소, 교재 연구소가 있다.
교훈은 “사람의 모범이 되기 위해 배우고, 세상의 모범이 되도록 행동하라[学为人师,行为世范]”이다. 본교는 베이징시 중심부에 있으며, 캠퍼스 부지 면적은 794,355㎡에 달한다. 베이징사범대학교는 약 500여 개의 대학과 국제기구, 3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매년 900명 이상의 국제적인 교수와 학자를 수업 및 연구에 초청하고 있다. 또한 2000여 명의 장기 유학생이 있으며, 이같은 규모는 중국 대학 내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 출처: 베이징사범대학교 [北京師範大學校(북경사범대학교)] (두산백과)
다). 한국. 서강대학교. 1960년 2월 재단법인 한국예수회에서 서강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같은 해 4월 개교. 1948년 한국 가톨릭교회의 발의와 교황 비오(Pio) 12세의 윤허로 대학 설립이 기획됨.
한국은 Royal대인 宮 성균관대(한국 최고대), 서강대(성대 다음 Royal 예우)가 Royal대학임. 세계사를 반영하여, 교황성하 윤허로 설립된 귀족계파 예수회에서 설립한 서강대는 宮성균관대 다음의 Royal대로 예우함. Royal대인 서강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대학으로, 귀족계파인 예수회 산하의 대학입니다. 불법.강제의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에서,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한나라이후 동아시아의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를 겪고 있고, 서유럽은 이탈리아.독일이 패전국이 되어서 과거의 빛나는 명성만큼 못한 상태입니다. 세계사의 자격은 그대로 유효한 상태라 다행이기는 합니다. 한국은 대중언론에서 발호하는 일제 강점기 잔재대학들의 도전에, 宮성균관대에게 꼭 필요한 대학이 서강대학교로, 공생관계를 이어가며 유교.가톨릭의 세계사적 세계종교의 기득권을 계승해야 합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중국 태학.국자감(베이징대로 승계),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 한국 성균관(성균관대로 승계)의 과거 위상이 이전같지 않은 상태에서 유교.가톨릭 그리고 오랜 대학역사를 계승하기 위해 공생관계로 이어져야 할 동아시아의 중요한 대학이 서강대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불교 Monkey일본 항복후, 미군정 때,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의무적으로 주민등록(이전에는 호적 포함)에 조선 유교 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해야 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으로 복귀하였습니다. 5,000만이 유교도입니다. 그러므로 서강대는 한국 유교의 틀 내에서, 학내에서만 자치성격의 가톨릭 예수회 학교로 존재하며 일제 강점기 잔재를 극복해야 하겠습니다.
.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 나타나는 서강대학교.
서강대학교
[ Sogang University , 西江大學校 ]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에 있는 사립종합대학교. 1960년 4월에 개교하였다.
서강대
단체
현대
대학교, 사립종합대학교
1960년 4월
게페르트(Theodor Geppert)
정의
서울특별시 마포구 백범로(신수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연원 및 변천
1960년 2월 재단법인 한국예수회에서 서강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같은 해 4월 개교하였다. 1948년 한국 가톨릭교회의 발의와 교황 비오(Pio) 12세의 윤허로 대학 설립이 기획되었고, 예수회 게페르트(Theodor Geppert) 신부의 주도로 1956년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발족되면서 대학의 설립에 이르게 되었다.
초대 학장에 킬로렌(K. E. Killoren) 신부가 취임하였으며, 영어영문학과·사학과·철학과·수학과·물리학과·경제학과를 두었다. 1963년 독어독문학과·생물학과·경영학과를 신설하였다. 1964년 국어국문학과·화학과를 설치하고 제1회 졸업생 62명을 배출하였으며, 같은 해 4월 「사립학교법」에 따라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학교법인 서강대학으로 개편되었다.
1966년 무역학과, 1967년 대학원, 1968년 신문방송학과, 1969년 전자공학과를 신설하였고, 1970년 3월 종합대학인 서강대학교로 개편하여 초대 총장에 데일리(J. P. Daly) 신부가 취임하였다.
1973년 대학원에 박사과정을 설치하고 1980년 경영대학원, 1988년 공공정책대학원, 1997년 국제대학원·정보통신첨단기술대학원을 개원하였다. 1999년 학생설계 전공제도를 시행하였고, 벤처산업 육성을 위한 서강창업보육센터를 설립하였다. 2001년 8월 경영관 마태오관을 건립하고, 2002년 예비대학을 신설하였다...
2017년 현재 12개 대학원, 8개 학부에 학부생은 8,119명, 전임교원은 424명이다.
표어는 ‘그대 서강의 자랑이듯, 서강 그대의 자랑이어라’이다. 가톨릭 예수회 세계관에 입각하여 학문을 탐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인간의 생명가치를 존중하는 인재 양성을 교육목적으로 하고 있다.
6년 이상 근무한 전임교원에게 1년간 강의나 기타 학교업무를 일체 맡기지 않고 휴식기간을 제공하는 교수안식년제를 국내 최초로 채택하여 현재까지 실시해오고 있다.
또한 개교 당시부터 결석 초과로 인한 과목낙제제도로 대표되는 출결석 관리를 철저하게 시행하였고, 지금도 강의실 좌석을 지정해서 앉게끔 하는 등 철저한 학사관리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 출처: 서강대학교 [Sogang University, 西江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기독교권(基督敎圈,Christian Culture).
1]. 서유럽(Western Europe).
1. 이탈리아. 로마대학. 이탈리아는 세계사의 볼로냐대학이 대표적이지만, 교황이 설립한 로마대학도 있습니다. 로마대학은 1303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스투디움 오르비스(studium urbis:도시대학)라는 이름의 문과와 법학과를 가진 일반 대학으로 세움.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로마대학교.
로마대학교
[ University of Rome ]
요약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Università Degli Studi di Roma
국립
1303년
보니파키우스 8세
이탈리아 로마
볼로냐대학교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1303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스투디움 오르비스(studium urbis:도시대학)라는 이름의 문과와 법학과를 가진 일반 대학으로 세웠으나, 얼마 못 가서 교황의 아비뇽 유수(幽囚)와 교회분열로 말미암아 쇠퇴하였다.
1431년 교황 에우제니오 4세가 재건에 착수한 이래, 교황 레오 10세와 식스토 4세·알렉산데르 7세의 손을 거쳐 학부(學府:palazzo della sapienza)가 완성되었으며, 1871년 이탈리아 왕국이 수립된 후부터 국가의 중심적인 대학으로 발전하였다. 1935년 국립대학이 되었으며, 새로이 건설된 대학도시(cita universitaria)로 이전하였다. 법학·정치학.경제학.문학.교육학.의학.약학.공학.건축학.사서학등의 학부가 있다.
부속시설로 개발도상국 연구 센터, 인간자동화 센터(CISADU), 생물의학 시스템 모델·정보분석 종합연구 센터(CISB), 역사적 건축 보존 기술과학 종합연구 센터(CISTEC), 자연·인공 시스템 인식 프로세싱 연구 센터(ECONA), 국제 상대론적 천체물리학 센터(ICRA), '산 마르코 프로젝트' 연구 센터 등이 있다.
. 출처: 로마대학교 [University of Rome] (두산백과)
2. 바티칸시티. 이탈리아의 로마 북서부에 있는 가톨릭 교황국. 교황이 원수(元首)로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는 국가. 그레고리오 대학이 대표적[전 세계 추기경(195명)의 3분의 1, 주교(약 4700명)의 4분의 1, 성인 21명, 교황 16명을 배출한 대학].
. 가톨릭 평화신문에 나타나는 그레고리오 대학교.
가톨릭 평화신문
<가톨릭대학교-평화신문 공동기획>
로마 그레고리오대학
수많은 인재 배출한 예수회 교육사업 '심장부'
2003.12.07발행 [751호]
전 세계 추기경(195명)의 3분의 1, 주교(약 4700명)의 4분의 1, 성인 21명, 교황 16명을 배출한 대학….
올해로 설립 452돌을 맞는 로마 그레고리오대학(Pontifica Universita Gregorina, 총장 프랑코 이모다 신부)의 외형적 업적이다.
신학대학에서까지 서열을 따지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그레고리오대학이 가톨릭 최고 신학대학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227개 고등교육기관을 설립, 운영하고 있는 예수회가 교육사업의 '마지막 보루', 또는 '심장부'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대학이 그레고리오대학이다.
하지만 명성에 비하면 대학 건물과 규모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왜소하다. 로마 시내 필로타 광장 부근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석조건물에는 세월의 흔적 같은 더께가 두껍게 덥혀 있다. 장서 500만권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은 책을 얼마나 층층이 빽빽하게 쌓아놓았는지 출구가 헷갈릴 정도다. 이런 곳에서 신학계 거장들이 신학흐름을 주도해오고, 세계 각국에서 젊은 인재들이 모여들어 신학탐구에 몰두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레고리오대학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신학연구의 중심축이 독일권에서 로마권으로 완전히 기울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학 학풍과 흐름은 칼 라너·라칭거·발터 카스퍼·한스 큉·이브 콩가르 등 쟁쟁한 신학자들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주도했다. 한스 큉 박사가 교황 무류권 논쟁을 촉발시켰듯이 이들 신학자들의 진보적 학설과 주장은 때로 로마 교황청과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과 오스트리아 신학대학들이 성소와 재정 부족으로 침체되자 교황청은 유명 신학자들을 로마로 집결시키고 있다. 한때 독일에서 튀빙겐학파를 이끌었던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교황청 일치평의회 의장, 독일 교의신학의 거장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신앙교리성장관을 맡고 있는 것이 이같은 분위기를 포착할 수 있는 사례다. 교황청은 그레고리오대학과 라테라노대학(로마교구 설립)을 신학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모다 프란치스코 총장 신부는 "사회변화가 심하고, 사상 문화의 흐름이 워낙 빠르기 때문에 몇년 전 강의한 내용으로는 오늘날의 학생들을 가르칠 수가 없다"며 "예를 들어 한 교수는 동성애 윤리를 연구, 강의하다 그걸 접고 최근 AIDS 윤리로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대학을 명문(名門)으로 만드는 주인공이 교수인가, 아니면 학생인가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라는 질문과 같다. 그러나 고레고리오대학만큼은 교수가 전통과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학측이 유명 신학자, 특히 기초·교의 신학 거장들을 강단에 세우기 위해 쏟는 열정은 대단하다. 예수회 회원 가운데 그 분야 최고 전문가가 없다면 타수도회와 타대학에서 전문가를 데려오는 데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독일 강단의 신학자들이 초빙교수 자격으로 와서 한 학기 강의를 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그러면 그 교수 밑에서 공부하는 독일 학생들도 로마로 따라 내려온다. '그리스도 은총론'의 기스펠트 그레사케, 신약성서 주석학의 대가 마틴 헹엘 같은 독일 신학자들이 현재 이 대학에서 열강하고 있다.
신학자 입장에서도 대학측 강의 제의는 그 분야의 손꼽히는 교수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미국 대학은 '돈'으로 교수를 끌어오지만 그레고리오는 '명성'으로 끌어온다"는 말이 회자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두뇌'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지금도 교황청에 다양한 신학적 조언을 하는 집단이 바로 이 대학 교수진이다.
그레고리오대학의 명성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요소는 전통과 실험정신의 조화다. 전통은 교황 최측근에서 16~17세기 종교개혁자들의 거센 도전을 신학적으로 반박한 역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레고리오대학이 문을 연 1551년은 종교개혁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이에 따른 교회분열을 수습할 목적으로 소집된 트리엔트공의회가 한창 열리고 있던 때이다. 유럽 중심의 정통신학(제1세계 신학)에 집중하는 전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레고리오대학의 명성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요소는 전통과 실험정신의 조화다. 전통은 교황 최측근에서 16~17세기 종교개혁자들의 거센 도전을 신학적으로 반박한 역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레고리오대학이 문을 연 1551년은 종교개혁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이에 따른 교회분열을 수습할 목적으로 소집된 트리엔트공의회가 한창 열리고 있던 때이다. 유럽 중심의 정통신학(제1세계 신학)에 집중하는 전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로 인해 강의시간에 호기심많은 학생들이 남미나 아프리카 신학과 관련된 얄궂은 질문을 던지면 교수들은 "우리는 1세계 신학만 다루기 때문에 답변할 수 없다"는 농담으로 받아넘긴다고 한다.
실험정신은 예수회의 개방적 교육전통과 맞물려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 이 대학에서 강의한 자크 뒤퓌 교수는 인도선교 중 체득한 힌두사상을 기초로 '그리스도교 종교 다원주의 신학을 향하여'(1998년, 국내 미번역)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서구교회에서 큰 화제가 됐던 이 책은 종교 다원주의의 오류가 발견되는 책이라는 평이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주님이신 예수님'(2000년)이라는 선언을 통해 그리스도 및 교회에 관한 진리를 재천명한 것은 그의 저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로마 신학자들의 얘기다.
유럽 대학에서는 드물게 영어·불어·스페인어 등 6개 언어가 대학 공식언어라는 점에서도 실험성과 개방성을 엿볼 수 있다.
그레고리오대학은 1930년 이전까지 볼로메오 궁(현 콜레지오 벨라르미노) 근처에 있었다. '콜레지오 로마눔'이라는 19세기 유명 학파는 당시 예수회 신학자인 벨라르미노 신부가 동료 신학자들과 그곳에서 태동시킨 학파다.
현재 박준양(서울)·조학균(예수회)·노우재(부산)·김종강(청주)·김주영(춘천)·옥현진(광주)·고태훈(수원)·노연호(서울)·이호봉(대구) 신부 등 한국신부 14명이 수학 중이다. 로마=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가톨릭평화방송 (cpbc.co.kr)
3. 영국. 옥스포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이 대표적. 1167년 헨리 2세가 영국 학생들이 파리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을 금지한 것을 계기로 급속히 발전.
a). 옥스포드 대학교.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옥스포드 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 University of Oxford ]
요약 영국 잉글랜드 옥스퍼드셔카운티(Oxfordshire county) 옥스퍼드시(市)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 영어권 국가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서 30여 개의 칼리지와 상설사설학당(PPH)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 보들리언 도서관
공립
미상(1096년 강의 기록)
헨리 2세
영국 잉글랜드 옥스퍼드셔카운티 옥스퍼드시
Dominus Illuminatio Mea(The Lord is my Light;주는 나의 빛)
대학 1만 1772명, 대학원 9850명(2013)
www.ox.ac.uk
영국은 물론 영어권에서는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설립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1096년에 이미 강의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167년 헨리 2세가 영국 학생들이 파리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을 금지한 것을 계기로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1209년 옥스퍼드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 간에 발생한 분쟁을 계기로 일부 학생들이 케임브리지로 이동하여 케임브리지대학교가 태동하게 되었다. 13세기에 대학을 구성하는 칼리지(유니버시티칼리지·베일리얼칼리지·머턴칼리지)들이 구체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설립 초기에는 학생과 시민 간에 과격한 충돌이 자주 일어났는데, 1354년 충돌이 있은 다음해에 에드워드 3세가 학생 편을 지지하여 그들에게 특허장(特許狀)을 줌으로써 대학의 지위가 견고해졌다.
교육 내용은 자연철학·도덕철학·형이상학 등을 강의하였는데, 모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기본으로 삼았다. 14세기에는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교수가 교회의 악폐를 비판함으로써 영국의 종교개혁 운동에 선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15세기에 와서는 종교적 기초가 동요하면서 침체 경향을 보였으나,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사이에 이탈리아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돌아온 토머스 리너커(Thomas Linacre), 존 콜렛(John Colet), 휴 래티머(Hugh Latimer)를 위시하여 토머스 모어(Thomas More),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Desiderius Erasmus) 등을 포용함으로써 영국 문예부흥의 중심이 되었다.
19세기에는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교수를 중심으로 하여 가톨릭 전통 회복을 통한 영국 국교회 쇄신을 주장하는 옥스퍼드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근대적 학과목도 추가하여 산업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동시에, 여자를 위한 학교도 설립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세틀먼트, 대학확장 운동을 통하여 교외교육(校外敎育)에도 힘을 기울여 민중교육의 진흥에 기여하였다...
재학생의 3분의 1 이상이 유학생이며, 수업은 튜터(Tutor)에게 지도를 받는 면담수업(Tutorial Class)으로 이루어진다. 캠퍼스는 옥스퍼드 시내 중심지와 외곽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이밖에 부속기관으로 1602년에 설립된 보들리언도서관과 보들리언법학도서관·인디언학도서관·래드클리프과학도서관·동양학도서관을 비롯한 100개 이상의 도서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인 애슈몰린박물관(1683년)과 피트리버스박물관(1884년), 자연사박물관, 식물원, 크라이스트처치미술관 등이 있다...
. 출처: 옥스포드 대학교[University of Oxford] (두산백과)
b). 케임브리지 대학교. 1284년 최초의 칼리지인 피터하우스를 설립하였으며, 그 후 프랑스의 파리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를 모방하여 대학 조직을 개편하다가, 1318년에 교황 요한 22세로부터 일반연구소(studium generale)로 인가.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케임브리지대학교
[ University of Cambridge ]
요약 영국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셔 카운티의 케임브리지 카운티 타운(county town)에 있는 종합대학교.
국립
1284년
영국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셔 카운티의 케임브리지 카운티 타운
Hinc lucem et pocula sacra(From here, light and sacred draughts)
8,614명(2008)
대학 1만 2018명, 대학원 6,378명(2008)
www.cam.ac.uk
옥스포드대학교와 함께 영국에서 가장 오랜 전통과 유서를 자랑하는 대학교이다. 이 대학교의 기원은 1209년 옥스퍼드시(市)에서 학자와 시민 간에 일어난 분쟁을 계기로 여러 학자들이 케임브리지로 이주하여 학생들을 교육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다. 1284년 최초의 칼리지인 피터하우스를 설립하였으며, 그 후 프랑스의 파리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를 모방하여 대학 조직을 개편하다가, 1318년에 교황 요한 22세로부터 일반연구소(studium generale)로 인가되었다.
. 출처: 케임브리지대학교 [University of Cambridge] (두산백과)
4. 독일. 필자는 교황성하께서 윤허하신 하이델베르크대학등의 역사와 전통은 인정하되, 고통당한 나라와 민족이 많아 일본, 독일등의 UN적국 해제는 힘들다는 지론가짐.
a). 하이델베르크 대학교(Ruprecht-Karls-Universität Heidelberg).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1385년 교황의 인가를 얻은 후 1386년 선제후 루프레히트 1세가 세워서 대학 명칭에 그 이름이 포함.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 University of Heidelberg ]
요약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Ruprecht-Karls-Universität Heidelberg
국립
1386년
루프레히트 1세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하이델베르크
Semper apertus(The book of learning is)
4,196명(2008)
26,741명(2008)
www.uni-heidelberg.de
정식 명칭은 ‘루프레히트 카를스 하이델베르크대학교(Ruprecht-Karls-Universität Heidelberg)’이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1385년 교황의 인가를 얻은 후 1386년 선제후 루프레히트 1세가 세워서 대학 명칭에 그 이름이 포함되었다. 설립 당시 철학부,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를 갖춘 가톨릭계 대학으로 출발하였으나, 하인리히 선제후의 종교개혁(1556)으로 인문주의적 신교대학으로 전환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신교(프로테스탄트)와 구교(가톨릭) 간에 벌어진 30년전쟁(1618∼1648)의 영향으로 폐쇄와 개교를 반복하다가 1803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칙령으로 자치권이 인정되면서 근대대학으로 개편하고, 교수어도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바꾸었다. 이때 옛 바덴주(州)의 공작인 카를 프리드리히의 이름이 교명에 더해졌다. 1899년에는 남녀공학이 되었다.
2010년 기준 신학대학, 법과대학, 기초의과대학, 이론의과대학, 철학대학, 현대언어대학, 경제·사회학대학, 행동·문화학대학, 수학·컴퓨터학대학, 화학·지구과학대학, 물리·천문학대학, 생명과학대학의 12개 단과대학에서 학부과정과 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또한 중국의 베이징대학교[北京大學校], 일본의 교토대학[京都大學] 등 세계 여러 대학들과 자매결연을 맺었고 미국·일본·남미의 대학과도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캠퍼스는 세 곳이 있는데, 인문·사회과학 관련 대학과 연구소들이 있는 하이델베르크 구 시가지 캠퍼스, 과학·의학 대학, 부속병원이 있는 시 외곽의 노이엔하이머 펠드(Neuenheimer Feld) 캠퍼스, 하이델베르크-베르크하임 캠퍼스가 있다. 하이델베르크-베르크하임 캠퍼스에는 2009년 3월 경제·사회학대학과 경제·정치·사회학 연구소, 도서관이 들어섰다.
부설기관으로 도서관, 동물센터, 대학병원, 식물원, 박물관, 생화학센터, 남아시아연구소, 과학연산협동센터, 신경과학연구소, 하이델베르크분자생물연구소, 미국학연구소, 천문학센터, 사회개발센터 등이 있다...
. 출처: 하이델베르크 대학교[University of Heidelberg] (두산백과)
b). 쾰른대학교(Universität zu Köln). 1388년 우르바노 6세의 칙서를 얻어 설립. 독일은 학문의 나라이므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이어 이번에 별도로 쾰른대학 추가함.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쾰른 대학교.
쾰른대학교
[ University of Cologne ]
요약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쾰른시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 독일에서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다음으로 오래된 대학이다.
Universität zu Köln
공립
1388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쾰른시
www.uni-koeln.de
1388년 우르바노 6세의 칙서를 얻어 설립되었고 1389년 1월부터 수업을 시작하였다. 1794년 프랑스군(軍)이 쾰른을 점령한 후 1798년 대학의 교수들이 프랑스공화국에 대한 충성서약을 거부하고 대학의 독립을 원하였다는 이유로 폐쇄하였다. 1919년 3월 19일 프로이센 정부가 쾰른 시의회의 청원을 받아들여 현대식 종합대학으로 재건하였다. 당시 상학·경제학·사회과학부, 의학부가 있었으며 1920년 법학부와 예술학부를 설치하였다. 1980년에는 라인란트교육학교(Rhineland School of Education)의 2개 학과를 병합하여 교육·특별교육학부로 만들었다. 독일에서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다음으로 오래된 대학으로, 현재 독일에서 몇 안 되는 캠퍼스 중심 대학교이기도 하다.
경영·경제·사회과학부, 법학부, 의학부, 예술·인문학부, 수학·자연과학부, 인문과학부의 6개 학부에서 다양한 학부·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주요 연구대상은 아프리카, 컴퓨터과학, 라틴아메리카, 유럽 및 동유럽 부문이며 생명과학, 환경 및 우주항공 연구에도 힘쓴다.
캠퍼스가 있는 쾰른이 미디어 중심지라는 입지적 여건 탓에 대학에도 연극연구소, 영화·텔레비전연구소, 방송법연구소, 유전학연구소, 1992년에 설립한 방송경제연구소 같은 미디어연구 관련 부설연구소가 많다. 프랑스의 클레몽페르낭트대학, 파리소르본대학교, 미국의 펜실베이니아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학교, 일본의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등 세계 여러 대학과 학술교류 및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 출처: 쾰른대학교 [University of Cologne] (두산백과)
5. 스페인.
a). 살라망카 대학교(Universidad de Salamanca). 중세시대인 1218년에 레온 왕국의 국왕 알폰소 9세(Alfonso IX)의 칙령으로 설립했으며 에스파냐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교 중 하나로 손꼽힌다. 1225년 유럽에서 최초로 대학교(Universidad) 자격 취득.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살라망카 대학교.
살라망카대학교
요약 에스파냐 카스티야이레온 자치지역(Comunidad Autónoma de Castilla y León) 남서부 살라망카주(Provincia de Salamanca)의 주도 살라망카에 있는 대학교.
원어명구분개교일소재지전임 교원수(명)학생수
Universidad de Salamanca
공립
1218년
에스파냐 카스티야이레온 자치지역 살라망카주 살라망카
1252명
약 2만 8000명
살라망카주 중앙부에 위치한 주도 살라망카의 파티오데에스쿠엘라스 거리(Calle de Patio de Escuelas)에 있다. 중세시대인 1218년에 레온 왕국의 국왕 알폰소 9세(Alfonso IX)의 칙령으로 설립했으며 에스파냐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교 중 하나로 손꼽힌다. 1225년 유럽에서 최초로 대학교(Universidad) 자격을 취득했다. 오늘날 에스파냐에서 최상위권 대학교로 명성을 떨치고 있어 외국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다.
거의 전 학문 분야에 걸쳐 총 2,453개 학과가 개설되어 있는데 특히 인문학 분야에서 강세를 보인다. 비에스파냐어권 재학생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에스파냐어 강좌가 훌륭한 것으로 유명하며, 매년 평균 2000명 이상의 외국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한다. 교내에 풍부한 장서량을 갖춘 여러 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자료 중에는 매우 귀중한 고문헌과 고문서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교내에 있는 많은 고풍스러운 건물은 대부분 중요한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출처:살라망카대학교(두산백과)
b). 마드리드 대학교. 살라망카 대학교와 함께 마드리드 대학교도 소개합니다. 1293년 카스티야 왕국의 산초 4세(Sancho IV)가 설립한 알칼라 일반 학교(Estudio de Escuelas Generales de Alcalá)가 그 시초. 1499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Alexander VI)에 의해 정식 대학교로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
마드리드콤플루텐세대학교
요약 에스파냐의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국립 대학교.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대학교 중 하나이자 에스파냐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학교이다.
원어명구분개교일소재지전임 교원수(명)학생수
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
국립
1293년
에스파냐 마드리드
9731명(2009)
9만 1251명(2009)
마드리드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지역에 광대한 규모로 자리 잡고 있는 에스파냐 최대의 국립 대학교이다.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대학교 중 하나로, 1293년 카스티야 왕국의 산초 4세(Sancho IV)가 설립한 알칼라 일반 학교(Estudio de Escuelas Generales de Alcalá)가 그 시초이다. 1499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Alexander VI)에 의해 정식 대학교로 문을 열었다. 현재 에스파냐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명문 대학교로, 2009년 기준 학부생 6만 1598명과 대학원생 2만 9653명을 합쳐 총 9만 1251명이 재학하고 있다. 그중 외국 유학생 수가 5000여 명이다. 교수를 포함한 교직원 수는 2009년 현재 총 9731명에 달한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설립 이래 각 방면에 걸쳐 수많은 인물을 배출, 에스파냐 국가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학교로 평가받는다. 학문의 거의 전 분야에 걸쳐 학과가 개설되어 있는데, 특히 법학, 문헌학, 지리학, 역사학, 고고학, 의학, 교육학, 경제학, 문학, 정치학 등의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교내에 30개가 넘는 도서관이 있다.
. 출처: 마드리드콤플루텐세대학교(두산백과)
6. 포르투갈. 코임브라대학(Universidade de Coimbra). 1290년 문학에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포르투갈의 6대왕 디니스(D. Dinis)가 교황 니콜라스 4세의 허가를 얻어 리스본에 ‘에스투두 제랄(Estudo Geral:Studium Generale)’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포르투갈 최초의 대학교이다.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코임브라 대학교.
코임브라대학교
[ Coimbra University ]
요약 포르투갈 중부 코임브라주(州)의 주도(州都)이자 고대도시인 코임브라에 위치한 포르투갈 최초의 대학교. 세계적으로도 매우 오래된 대학으로 꼽힌다.
공립
1290년
포르투갈 6대왕 디니스
포르투갈 중부 코임브라주 코임브라
1,663명
1만 9921명(2008)
www.uc.pt
약칭은 ‘UC’이다. 1290년 문학에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포르투갈의 6대왕 디니스(D. Dinis)가 교황 니콜라스 4세의 허가를 얻어 리스본에 ‘에스투두 제랄(Estudo Geral:Studium Generale)’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포르투갈 최초의 대학교이다. 설립 당시 예술학부, 교회법학부, 시민법학부, 의학부가 있었고 이후 수준 높은 교육과 연구를 통해 사회 지배세력을 양성하고 정치·사회적으로 포르투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010년 기준 인문학부, 법학부, 의학부, 과학·기술학부, 약학부, 경제학부, 심리학·교육학부, 스포츠학·체육학부의 8개 학부에서 다양한 학부·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캠퍼스는 교회로부터의 자유 문제로 1307년 코임브라로 이전했다가 1338년 가 아폰수 5세가 다시 리스본으로 옮겼고 이후에도 도 도시 간으로 이전을 반복했다. 1537년 주앙 3세(Joao III) 때 리스본에서 코임브라로 완전히 이전하였다. 주 캠퍼스는 몬데고강(Rio Mondego)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오래된 교회와 좁은 도로들 사이에 있다.
부속기관·시설로는 중앙도서관, 과학박물관, 아카데믹박물관, 과학입문센터, 식물원, 학술원, 운동장, 종합경기장, 천문대, 출판사, 1500년대 초에 건축된 상미겔교회(Sao Miguel Chapel) 등이 있다. 1985년 설립된 유럽의 선도적 대학연합회 '코임브라그룹(Coimbra Group)' 소속이다...
. 출처: 코임브라대학교 [Coimbra University] (두산백과)
7.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1384년 신학부가 부설되면서 파리에서 초청한 신학자 앙리 드 강이 파리대학을 모델로 대학을 재조직. 1623년에 예수회에서 인수.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빈 대학교.
빈 대학교
[ University of Vienna ]
요약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Universität Wien
국립
1365년
루돌프 4세
오스트리아 빈
6,408명(2009)
약 8만 5000명(2009)
www.univie.ac.at
1365년 3월 12일 오스트리아 대공인 합스부르크왕가(王家)의 루돌프 4세가 형제인 알베르트 3세, 레오폴트 3세와 함께 프라하대학에 대항하여 독일 문화권 제2의 대학으로서 빈에 설립하였다. 설립 당시에는 법학·의학·문학의 3학부로 출발하였으나 1384년 신학부가 부설되면서 파리에서 초청한 신학자 앙리 드 강이 파리대학을 모델로 대학을 재조직하였다. 1520년에는 독일어권 대학 중에서 가장 많은 학생을 수용하기에 이르렀으나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급격히 쇠퇴하여 1623년에 예수회에서 인수하였다.
18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교육개혁에 의해 부활되고, 의학·법학·역사학 등의 분야에서 빈학파를 형성하여 그 이름을 떨쳤으며, 1848∼1850년 문교부장관 L.튤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 많은 개혁을 단행하였다. 전세계의 독일어권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대학교이며 중앙 유럽에서 3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또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교육·연구기관이기도 하다.
2010년 기준 가톨릭 신학, 프로테스탄트 신학부, 법학부, 사회과학부, 경제학부, 학부, 철학·문화학부, 철학·교육학부, 수학부, 지구과학·지리학·천문학부 등 15개 학부에서 170개 이상의 다양한 학위과정을 제공한다. 학위과정은 학사학위 52개, 석사학위 108개, 박사학위 10개 외에 7개의 수료과정과 많은 교사 훈련과정이 있다.
캠퍼스는 따로 정해지지 않고 빈 전체적으로 60여 군데에 흩어져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비엔나 역사지구’의 링슈트라세(Ringstraße)에 위치한 메인 건물은 1877~1884년에 지었으며 대학의 주요 행정·실무 사무소들이 자리 잡았다. 부설시설로는 도서관, 식물원, 통역학센터, 스포츠학·대학스포츠센터, 분자생물학센터 등이 있다.
. 출처: 빈 대학교 [University of Vienna] (두산백과)
8. 벨기에. 루뱅가톨릭대학교(Catholic University of Louvain ). 1425년 교황 마르티노 5세(Martinus V)와 브라반트(Brabant)의 요한 4세가 처음 설립.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루뱅 가톨릭대학교.
루뱅가톨릭대학교
[ Catholic University of Louvain ]
요약 벨기에 브라반트주(州) 루뱅라너브(Louvain-la-Neuve)에 위치한 벨기에 최고(最古) 대학교.
Université Catholique de Louvain
자유대학교
1425년
벨기에 루뱅라너브, 브뤼쉘, 몽스, 샤를루아, 나뮈르 등
30,957명(2018년)
https://uclouvain.be/
1425년 교황 마르티노 5세(Martinus V)와 브라반트(Brabant)의 요한 4세가 처음 설립했다. 이듬해 1426년 강의가 개설되었으며 설립 초기 신학과 민법, 교회법, 의학, 인문학의 5개 학부를 두었다. 1516년 대학교 내 콜레기움 트릴링궤(Collegium Trilingue)가 설립된 후 유럽 전역에서 학생들과 학자들이 모이면서 유럽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가톨릭대학으로 1519년 쾰른대학교(Universität zu Köln)와 더불어 루터(Martin Luther)의 사상을 최초로 비판하는 등 16세기 있었던 종교개혁에 학문적으로 대항하였다. 1755년 응용수학과 응용과학 과목이 신설되었다. 1794년 벨기에가 프랑스에 병합된 후 1797년 폐교되었다가 1816년 다시 개교하였으며, 당시에는 수리자연과학부 1개 학부를 갖추고 있었다.
학교의 공식 언어는 네덜란드와 프랑스어 두 가지였는데, 1960년대 말 두 언어를 사용하는 그룹 간 문화 갈등이 심화되었고 결국 폭동으로 이어졌다. 이에 1966년 가톨릭 교계의 회의를 거쳐 1968년 학교는 네덜란드어 사용 학교와 프랑스어 사용 학교로 분리되었다. 네덜란드어 대학교는 루뱅에 남아 1970년 교명을 ‘Katholieke Universiteit Leuven’라 하였으며, 프랑스어 사용 학생 및 교수들은 루뱅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대학 도시인 루뱅라너브(Louvain-la-Neuve : 신 루뱅)를 조성하고 1971년 2월 교명을 ‘Université catholique de Louvain’이라 하였다.
2020년 기준 학부는 보건과학, 과학기술학, 인문학의 3개로 구분된다. 보건과학부 내에는 의학·치의학부와 약학·바이오의학부, 공공보건학부 등 4개 학부, 과학기술학부에는 과학부와 생물공학부 등 4개 학부, 인문학부에는 법학부와 신학부 등 6개 학부로 총 14개 학부를 갖추고 있다. 학부와 석사, 박사과정이 제공된다. 캠퍼스는 총 7개로 루뱅라너브가 메인캠퍼스며, 다른 캠퍼스는 브뤼쉘(Brussels)을 비롯해 에노주(州)의 몽스(Mons)와 샤를루아(Charleroi), 투르네(Tournai), 나뮈르주(州)의 나뮈르(Namur) 등에 위치한다.
교내에는 2개의 대학병원, 19개의 도서관 등이 있다. 대학도서관은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고딕 및 르네상스 시기 필사본을 포함한 수십만점의 자료가 소실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도서관은 전쟁 후 미국과 다른 유럽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1928년 재건되고 자료들도 채워졌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재가 발생해 많은 자료들이 소실되었다.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었던 기록물은 현재 대학기록관에 보존되고 있으며 벨기에 국립기록보관소의 자료들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 출처: 루뱅가톨릭대학교 [Catholic University of Louvain] (두산백과)
9. 스웨덴. 웁살라대학(Uppsala universitet). 1477년에 웁살라 대주교 야코브 울브손(Jakob Ulvsson)의 주도로 북유럽 최초의 대학으로 설립.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웁살라 대학교.
웁살라대학교
[ Uppsala University ]
요약 스웨덴 중동부 웁살라주(州)의 주도(州都) 웁살라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Uppsala Universitet
공립
1477년
스웨덴 중동부 웁살라주 웁살라
Gratiae veritas naturae(Truth through God's mercy and nature)
6,000명
대학 19,900명, 대학원 2,000명(2008)
www.uu.se
1477년에 웁살라 대주교 야코브 울브손(Jakob Ulvsson)의 주도로 북유럽 최초의 대학으로 설립하였다. 50여 명의 학생으로 개교하였으며 설립 당시 덴마크 지배하의 연합왕국이던 스웨덴의 문화적 독립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설립 후 얼마 동안 재정 빈곤과 학교 내외의 분쟁으로 자주 운영이 침체되었으나, 구스타브 2세(1611~1632)가 강국 스웨덴의 기반을 마련하고 국내에도 다양한 개혁을 실시하면서 능력 있는 관리 양성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구스타브 2세가 1624년 대학 설립을 위해 넓은 토지를 기증하였고 1626년 대학헌장을 선포함으로써 대학으로서의 기초가 확립되었고 코펜하겐대학과 함께 북유럽의 학문적 중심이 되었다.
2010년 기준 문리·사회과학, 의학·약학, 과학·기술의 3개 부문에 신학·법학·예술·언어학·사회과학·교육학·의학·약학·과학기술의 9개 학부가 있다. 각 학부에서 학부과정과 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캠퍼스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으며 웁살라 곳곳에 대학 건물이 산재한다. 대학 본관을 비롯한 주요 건물은 퓌리스강(River Fyris) 서쪽 연안의 대성당 주변에 위치한다. 네오클래식 양식의 대학 본관은 1880년에 세워졌고 대성당의 첨탑 건너편에 북유럽 고대 문자인 룬(Rune)이 새겨진 바위들이 있다. 대학 도서관인 카롤리나 레디비바(Carolina Rediviva)에는 4세기 울필라 주교가 성서복음을 고트어로 번역한 것 중 유일한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다.
부설시설로는 역사박물관인 구스타비아눔(Gustavianum), 국제적으로 알려진 지진연구소, 부속병원, 식물원, 린네정원, 관측소, 생물학연구소, 정보기술센터 등이 있다...
. 출처: 웁살라대학교 [Uppsala University] (두산백과)
10. 스위스. 바젤대학교. 1459년 11월 12일 바젤 시민이 세워 교황 비오 2세의 허가를 받아 설립.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바젤대학교.
바젤대학교
[ University of Basel ]
요약 스위스 바젤슈타트주(州) 주도(州都) 바젤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다.
Universität Basel
공립
1460년
스위스 바젤슈타트주 바젤
1만 1360명
www.unibas.ch
1459년 11월 12일 바젤 시민이 세워 교황 비오 2세의 허가를 받아 설립하였고 1460년 4월 4일 바젤대성당에서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처음부터 신학부·법학부·의학부·예술기능부의 4개 학부로 구성된 종합대학으로 설립되었으며, 스위스에서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독일어권 대학이다. 설립 이후 몇 세기 동안 많은 학자들이 대학교로 오면서 바젤시(市)는 일찍이 도서 인쇄, 휴머니즘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5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몇 차례 존폐 위기를 맞았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곧바로 위기를 극복하고 전통을 이어왔다. 예술기능부에 1818년 역사학부, 1937년 과학부 과정을 두었다.
2010년 기준 신학부·법학부·의학부·인문학부·과학부·경제경영학부·심리학부의 7개 학부로 구성된다. 6개의 학제연구기관, 스위스열대연구소, 프리드리히 미셔 생명의학연구소 같은 연계 연구소가 있다. 1971년 설립한 생명과학센터(Biozentrum)에서는 의학부의 약리학, 신경생물학은 물론, 과학부의 생화학, 생물물리학적 화학, 미생물학, 구조생물학, 세포생물학에 관한 수준 높은 기초연구를 수행한다.
부설시설로 스위스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서관을 비롯해, 매스터전자현미경연구소(REM)를 비롯하여 해부학박물관, 생체기계정형외과연구소, 분자미생물학이론 연구센터, 경제연구센터, 식물원 등이 있다.
. 출처: 바젤대학교 [University of Basel] (두산백과)
2]. 동유럽(Eastern Europe).
1. 체코. 프라하대학교( University of Prague). 134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룩셈부르크가의 카를 4세가 세운 중부 유럽 최초의 대학. 설립 당시에는 파리대학교를 모방.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프라하 대학교.
프라하대학교
[ University of Prague ]
요약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Universita Karlova
국립
종합대학
1348년
룩셈부르크가 카를 4세
체코 프라하
카를로바대학교라고도 한다. 체코 교육부가 직접 운영하는 국립대학이다. 134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룩셈부르크가의 카를 4세가 세운 중부 유럽 최초의 대학으로서, 프라하 시내 곳곳에 산재한 대학 건물 중 카롤리눔(Carolinum)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건물로 손꼽힌다. 설립 당시에는 설립 당시에는 파리대학교를 모방하여 신학.법학·의학·철학의 4분과제를 도입하였고, 보헤미아·바이에른·폴란드·작센에서 모인 4개 교사조합을 중심으로 자치적으로 운영되었다.
15세기 이 대학 강단에 섰던 종교개혁가 요하네스 후스의 영향으로 종교와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중세 지성들의 요람 역할을 했으나 1419년부터 시작된 후스전쟁의 여파로 독일인 교사와 학생 일부가 라이프치히로 옮겨감으로써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30년전쟁의 결과 다시 가톨릭 교단의 관장 아래 놓였다. 1882년 체코대학과 독일대학으로 분리되었고, 1920년에는 체코대학이 카를대학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나치스 지배 때 폐쇄되었다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부활하면서 독일대학은 폐지되었다.
수학·물리학, 철학, 법학, 가톨릭신학, 사회·정치과학 등 인문·사회·자연과학을 망라하는 16개 단과대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위과정은 3년 과정의 학사학위[Bakalar], 5년 과정의 석사학위[Magister]와 추가로 3년 이상을 공부하면 얻을 수 있는 박사학위로 구성되어 있다. 의학부에서는 일반의학 박사학위가 6년 과정이다.
부설연구소로 신학연구센터(CTS), 경제연구센터(CERGE), 대학사연구소, 천문연구소가 있으며 그밖에 컴퓨터사이언스센터(CUCC), 유럽정보센터, 언어직업훈련센터, 환경센터, 기초과학연구소, 중앙도서관 등의 시설이 있다. 각 단과대학은 교외지역인 펄체오에 1개, 흐라데츠 크랄로베(Hradec Králové)에 두개의 단과대학이 있고 나머지는 프라하 시내에 있다.
. 출처: 프라하대학교 [University of Prague] (두산백과)
2. 폴란드. 야기엘론스키 대학교(Jagiellonian University). 1364년 5월 12일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 3세(Kazimierz III)에 의해 일반 대학(Studium Generale)으로 처음 설립된 것으로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1400년 7월 야기에워 왕(King Vladislaus Jagiełło)에 의해 다시 설립되면서 신학부 신설.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야기엘론스키대학교
[ Jagiellonian University ]
요약 폴란드 마우폴스키에주(州) 크라쿠프(Kraków)에 위치한 폴란드 최고(最古)의 연구 중심 공립대학교.
Uniwersytet Jagielloński
공립대학교
1364년
폴란드 마우폴스키에주(州) 크라쿠프(Kraków)
39,552명(2019년)
https://www.uj.edu.pl/
1364년 5월 12일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 3세(Kazimierz III)에 의해 일반 대학(Studium Generale)으로 처음 설립된 것으로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설립 당시 인문학, 의학, 법학 3개 학부를 갖추었다. 카지미에시 3세가 사망하자 1390년대까지 문을 닫았고 1400년 7월 야기에워 왕(King Vladislaus Jagiełło)에 의해 다시 설립되면서 신학부가 신설되었다. 이후 대학은 왕립야기엘론스키대학(Royal Jagiellonian College)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5세기에는 유럽 각지에서 200명 이상의 학생이 매년 입학했고 특히 법학, 수학, 천문학 분야 교육에 명성이 높았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지역이 종교에 따라 나눠지고 16세기 후반 유럽 내 대학 수가 증가하면서 외국인 학생의 입학이 크게 줄어들었으나 학교는 계속 유지되었고, 16세기 말 교명이 크라쿠프대학(Kraków Academy)으로 바뀌었다.
1773년 국립교육위원회가 조직되고 휴고 코원타이(Hugo Kołłątaj)가 개혁을 주도하면서 1777년부터 1786년 사이 대학 조직을 개편하였다. 또한 천문대와 식물원, 대학클리닉 등의 설립이 시작되었다. 1795년 크라쿠프지역이 오스트리아로 병합되면서 1805년에는 리비우대학교(Lviv University)에 통합되기도 하였다. 1817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교명으로 바뀌었다. 1846년 크라쿠프가 다시 오스트리아에 점령된 후 대학 구조는 오스트리아식으로 개편되고 독일어가 주요 언어가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갈리지아(Galicia)에 자치권이 부여되면서 다시 학내에서 폴란드어를 사용했고 건물이 새로 설립되는 등 인문학과 과학분야의 프로그램이 모두 확대됐다. 1923년에는 농학부가 개설되고 1939년에는 도서관이 설립되었다. 제2차 세계기간 동안 나치 점령을 받으면서 폐교되었으나 1942년부터 비밀리에 교육은 다시 재개되었다. 이후 신학과 농업학, 의학부가 폐쇄되는 등 대학구조에 큰 변화를 겪었으며, 일부 학자들의 연구활동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2020년 현재 법·행정학, 의학, 보건학, 물리·천문·응용컴퓨터학, 생물학 등 16개 학부 아래 학부와 석사, 박사과정을 두고 있다. 대학중앙도서관은 많은 소장 자료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등 중세시기 작성된 원고 등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약 4만 명의 학생이 재학중이고 교직원 수도 약 4천 명에 이른다...
. 출처: 야기엘론스키대학교 [Jagiellonian University] (두산백과)
3]. 미국.
1. 하버드대학교. 1636년 매사추세츠 식민지 일반의회(General Court)의 결의에 따라 설립되었으며, 1639년 도서와 유산을 기증한 J.하버드 목사의 이름을 따서 하버드대학이라 명명.영국의 옥스포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학료(學寮) 제도를 모방한 조직으로 출발.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하버드 대학교.
하버드대학교
[ Harvard University ]
요약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케임브리지시(市)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한다.
사립
1636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시
Veritas(진리)
2,110명(2008)
대학 6,700명, 대학원 1만 3600명(2008)
www.harvard.edu
1636년 매사추세츠 식민지 일반의회(General Court)의 결의에 따라 설립되었으며, 1639년 도서와 유산을 기증한 J.하버드 목사의 이름을 따서 하버드대학이라 명명하였다.
영국의 옥스포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학료(學寮) 제도를 모방한 조직으로 출발하여, 식민지시대에는 목사 양성에 필요한 종교교육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1869년부터 40년간 학장을 지낸 C.W.엘리엇은 독일 유학의 경험을 살려 전문적 학문연구기관으로 개혁하고 선택과목제를 도입하였는데, 이 제도는 뒤의 개인지도제 및 전원학료제 실시와 함께 미국 대학 커리큘럼(교육과정)의 원형이 되었다.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한다.
대학 운영과 관리는 학장과 5인의 평의원·회계주임으로 구성된 하버드 법인(法人)과, 졸업생이 우편으로 선출하는 이사회라는 2개의 의결기관이 맡고 있다. 전자는 재정과 집행 운영을 책임지고, 후자는 조언과 자문 기능을 맡는다.
기본적으로 11개 주요 학문 조직(10개 대학과 1개 연구소)으로 구성된다. 10개 대학은 문리·의과·치의과·신학·법학·경영·디자인·교육·보건·행정이며, 각 대학은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전문대학원과 분과(division)를 관장한다. 1개 연구소는 래드클리프고등연구소(Radcliff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로, 1999년 래드클리프칼리지를 개편한 것이다. 문리대학에 학부대학인 하버드칼리지(Harvard College)과 일반대학원, 공학·응용과학대학원, 평생교육부(Harvard Division of Continuing Education)가 있다. 일반대학원은 이론에 바탕을 둔 학문 중심이며, 전문대학원은 현장실무교육과 연구 중심이다.
대학 1학년생은 전원 올드야드 기숙사에 수용되어 대학생활 오리엔테이션을 받게 되며, 2학년에서 4학년까지는 하우스라고 일컫는 각 학료에 배치되어 교양과목(liberal art)을 중심으로 각 전공분야의 교육을 받는다.
와이드너도서관을 비롯한 부속도서관에 정기간행물을 비롯한 각종 도서가 소장되어 있다. 그밖에 유명 부속시설로 하버드 미술박물관, 하버드대학교 허배리아(Harvard University Herbaria), 하버드 광물학박물관, 루이스 애거시즈 비교동물박물관, 하버드 셈족박물관 같은 박물관과 포그미술관·푸슈라이징거미술관·하버드천문대 등이 있다.
캠퍼스는 보스턴 중심에서 찰스강(江) 건너 연안의 케임브리지 시가지 하버드 야드(Harvard Yard)에 있으며, 하버드 스퀘어(Harvard Square)를 둘러싼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과 하버드 스타디움을 비롯한 여러 체육시설이 찰스강의 또 다른 쪽 연안인 보스턴 인근의 올스턴(Allston)에 있다. 또한 의과대학원, 치과대학원, 보건대학원이 보스턴의 롱우드 메디컬아카데미 지구(Longwood Medical and Academic Area)에 있다...
. 출처: 하버드대학교 [Harvard University] (두산백과)
2. 예일대학교. 1701년 10월 9일 제임스 피어폰트(James Pierpont)가 이끄는 독립파(獨立派) 목사들이 킬링워스(Killingworth)에 세운 칼리지어트 스쿨(Collegiate School)에서 비롯. 이후 세이브룩과 웨더스필드를 거쳐 1718년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대학에 많은 기부를 한 E.예일을 기념하여 학교명을 예일대학으로 바꿈.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예일대학교.
예일대학교
[ Yale University ]
요약 미국 코네티컷주(州) 뉴헤이븐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한다.
사립
1701년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번
Lux et veritas(빛과 진실)
339ha
3,619명(2009)
대학 5,247명, 대학원 6,169명(2009)
www.yale.edu
1701년 10월 9일 제임스 피어폰트(James Pierpont)가 이끄는 독립파(獨立派) 목사들이 킬링워스(Killingworth)에 세운 칼리지어트 스쿨(Collegiate School)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세이브룩과 웨더스필드를 거쳐 1718년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대학에 많은 기부를 한 E.예일을 기념하여 학교명을 예일대학으로 바꾸었다. 1787년 종합대학이 되었고, 1847년에는 미국 최초로 박사과정을 두고 학위를 수여하였다. 1930년대부터 학생들이 캠퍼스 안에서 생활하는 기숙형 칼리지를 설립하였으며 창립 이래 영국식 교육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한다. 미국에서 3번째로 오래된 대학교이다.
대학교 조직은 크게 학부과정인 예일칼리지, 문리과대학원, 전문대학원의 3가지로 구성된다. 예일칼리지는 대학교의 중심을 이루며 2009년 기준으로 2,000개 이상의 학부과정이 있고, 건축학, 예술, 신학, 연극, 공학·응용과학, 삼림·환경학, 법학, 경영학, 의학, 음악, 간호학, 보건학, 종교음악의 13개 전문대학원 과정이 운영된다. 부설시설로는 베이네케 희귀본·필사본 도서관, 스털링기념도서관, 하비커싱 의학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도서관, 미술관, 예일영국미술센터, 피바디자연사박물관, 예일악기컬렉션(Yale University Collection of Musical Instruments), 라디오방송국, 마시식물원, 예일 자연보존지역, 골프코스를 비롯하여 많은 연구센터가 있다.
캠퍼스는 뉴욕에서 동북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뉴헤이븐의 시가지에 있다. 건물 대부분은 1917~1931에 지은 신고딕풍 건물이며 그밖에 고딕풍 학부 건물, 조지아풍으로 지은 코네티컷홀(1750)을 비롯하여 대학의 상징물이 된 건물이 많이 있다. 또한 남녀공용 기숙사, 아파트 등 여러 건물이 들어서 있고, 캠퍼스 부근은 '느릅나무의 거리'라고 불릴 정도로 조용하고 쾌적하다. 많은 학생들이 캠퍼스 안의 12개 기숙형 칼리지에서 생활한다. 학문, 스포츠를 비롯한 대부분의 부분에서 하버드대학교와 경쟁관계에 있다...
. 출처: 예일대학교 [Yale University] (두산백과)
3. 조지타운대학교. 예수회에 소속된 대학으로, 1789년 1월 미국 최초의 로마가톨릭 대주교 존 캐럴(1735~1815)에 의해 미국에서 첫 번째로 설립된 로마가톨릭대학.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조지타운 대학교.
조지타운대학교
[ Georgetown University ]
요약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사립
1791년
존 캐럴
미국 워싱턴 D.C.
Utraque Unum(Both into One)
0.4㎢(주 캠퍼스)
1,268명(2008)
대학 1만 8696명, 대학원 9,676명(2008)
www.georgetown.edu
예수회에 소속된 대학으로, 1789년 1월 미국 최초의 로마가톨릭 대주교 존 캐럴(1735~1815)에 의해 미국에서 첫 번째로 설립된 로마가톨릭대학이다. 1791년 11월 22일 12명의 학생과 몇 명의 교수로 조지타운칼리지(Georgetown College)라는 교명으로 설립하였다. 1851년 의과대학과 1870년 법학대학이 각각 설립되었다.
2010년 기준 4년제 학사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으로 조지타운칼리지(1789), 간호·보건대학(1903), 로버트 에멋 맥도너 경영대학(1957), 평생대학(1956), 에드먼드 A.월시 국제·외교대학(1919)이 있고 대학원은 문리대학원(1820), 의과대학원(1851), 법학대학원(1870)이 있다. 학위과정은 학사·석사·박사 및 전문학위로 편성되며 에드먼드 A.월시 국제·외교대학, 로버트 에멋 맥도너 경영대학, 평생대학에서는 석사학위도 수여한다. 학생들에게 해외에 나가 공부할 기회가 많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고 특히 외교 부문 전공은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교수진으로 유명하다.
워싱턴D.C.에 학부 캠퍼스, 메디컬센터, 법학대학의 세 곳의 캠퍼스가 있다.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2㎞ 떨어진 번화가에 위치한 학부 캠퍼스와 메디컬센터가 주 캠퍼스를 이루며, 대학 상징이자 문화유산 건물로 지정된 힐리 홀(Healy Hall)이 있다. 수도에 자리를 잡은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정부·비정부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한다. 버지니아주 알링턴 카운티와 카타르, 터키, 이탈리아에도 교육기관이 있다.
부설기관으로 도서관, 지진관측소, 우주 천문대, 언어실습실, 우드스톡신학센터(Woodstock Theological Center), 이탈리아의 피렌체 근처에 있는 찰스아우구스투스 스트롱센터(Charles Augustus Strong Center)가 있다...
. 출처: 조지타운대학교 [Georgetown University] (두산백과)
4].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교와 샹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러시아는 동아시아 중국.한국이나, 서유럽.동유럽에 비해 대학역사가 길지 않은 나라지만, 2차대전 승전국이며 군사강대국입니다.
1. 모스크바 대학교. 1755년 1월 25일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Elizaveta Petrovna) 여제가 시인·과학자·언어학자·계몽사상가인 미하일 로모노소프의 대학 설립 제안을 받아들여 칙령을 내린데서 출발.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모스크바 대학교.
모스크바대학교
[ M.V. Lomonosov Moscow State University ]
요약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Москов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국립
1755년
M.V.로모노소프
러시아 모스크바
Наука есть ясное познание истины, просвещение разума(Science is clear truth and the education of reason)
약 2.1㎢
약 4,000명(2009)
대학 약 4만 명, 대학원 7,000명(2009)
www.msu.ru
정식 명칭은 'M.V.로모노소프 모스크바국립대학교'이고 약칭은 ‘MSU’이다. 줄여서 ‘로모노소프대학교’라고도 한다. 1755년 1월 25일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Elizaveta Petrovna) 여제가 시인·과학자·언어학자·계몽사상가인 미하일 로모노소프의 대학 설립 제안을 받아들여 칙령을 내렸고 같은 해 4월 26일 개교하였다. 1940년 미하일 로모노소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붙인 현재의 정식 명칭으로 바꾸었다.
1804년의 대학법에 의해 인문, 물리·수학, 의학, 윤리·정치학의 4학부를 설치하였다. 19세기에는 러시아 문화의 중심부를 이루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학자가 활동하였으며, 출신계급을 망라하는 교육·연구의 전통을 세웠다. 1917년 러시아혁혁명 이후 크게 발전하였다.
2010년 기준 기계학·수학학부, 물리학부, 화학부, 생물학부, 토양과학부, 지리학부, 지학부, 재료공학부, 역사학부, 철학부, 언어학부, 법학부, 경제학부, 언론학부, 아시아·아프리카학부 등의 29개 학부, 350개 학과, 야간부·통신교육부 및 대학원에서 57개의 학부과정, 168개의 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캠퍼스는 모호바야 거리에 있으며 면적 100만㎡의 레닌 힐스(Lenin Hills)를 비롯해 유서 깊은 건물들이 많다. 부설시설로는 도서관, 4개 박물관, 식물원, 핵물리연구소·역학연구소·천문연구소를 비롯한 10여 개의 연구소, 미디어센터·국제교육센터·국제레이저센터·사회학연구센터를 비롯한 20여 개의 연구센터, 과학파크, 출판국, 레크리에이션 센터, 영재기숙학교 등이 있다...
. 출처: 모스크바대학교 [M.V. Lomonosov Moscow State University] (두산백과)
2.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으로, 1724년 1월 28일에 표트르 1세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앙사범학교를 모체로 1819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으로 설립.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국립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 Sain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
요약 러시아 북서부, 핀란드만(灣) 안쪽에 있는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국립대학교.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이다.
Санкт-Петербург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국립
1724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Hic tuta perennat(Here we stay in safety)
약 6,000명(2009)
대학 약 3만 2000명, 대학원 약 4,000명
www.spbu.ru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으로, 1724년 1월 28일에 표트르 1세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앙사범학교를 모체로 1819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으로 설립하였다. 19세기 중엽 혁명적 민주주의자 N.G.체르니솁스키 등의 활약으로 러시아의 자연과학사상의 중심이 되었다. 사회과학 연구를 탄압하던 제정러시아의 사회정세 때문에 주로 자연과학 분야에서 빛나는 전통을 세웠으며, 지금도 그 경향이 남아 있다.
수학(數學)의 페테르부르크 학파로 불리는 P.L.체비쇼프, A.M.랴푸노프를 비롯하여 화학분야의 D.I.멘델레예프, 물리학의 E.K.렌츠, 생물학의 I.I.메치니코프, I.P.파블로프, 토양학(土壤學)의 V.V.도쿠차예프 등은 모두가 이 대학과 관련을 맺은 사람들이다. 1924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레닌그라드로 변경됨에 따라 교명을 레닌그라드대학(정식 명칭은 A.A.즈다노프 기념 국립 레닌그라드대학:Leningradskii gosudarstvennyi universitet imeni A.A.Zhdanov)으로 개칭하였다가 1991년 다시 원래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2010년 기준 생물학·토양학부, 아시아·아프리카학부, 경영학부, 지리학·지구생태학부, 지질학부, 언론학부, 역사학부, 수학·역학부, 의학부, 국제관계학부, 응용수학부, 물리학부, 문헌학부, 철학·정치학부, 화학부, 경제학부, 법학부, 군사학부의 20개 학부와 스포츠·체육학과에서 학부·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역사 지구 내에 있는 바실리에프스키섬(Vasilievsky Island) 캠퍼스와 페테르호프(Peterhof) 캠퍼스의 2개 주(主) 캠퍼스가 있으며 부속시설로는 도서관, 박물관, 출판부 등이 있다...
. 출처: 국립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Sain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두산백과)
{V}. 한국의 성균관대는 國史에 나오는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에서 이어진 600년 전통의 대학으로 현재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입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백과사전(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출판사 백과사전(두산백과, 종교학 대사전, 교육학사전, 중고생 학습사전) 및 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학술적 의견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성균관대학교가 일본 강점기에 교육기능을 폐지당하고 전문학교등으로 격하되는 과정을 서술하며, 國史영역(교과서 및 참고서 포함)에 나오는 조선 성균관에서 이어진 대학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필자의 World Class Universities 기준은 Historic, Royal임. 왕정전통이 없는 국가는 역사가 오래된 대학들[미국의 Harvard처럼]입니다. 미국은 왕정전통의 영국 식민지였지만, 독립전쟁을 거치고 미국인들이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인정하는 Harvard. 왕정전통을 가진 다른대학이 있어도 필자는 Harvard를 선택하겠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하버드대학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학: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1636 설립) 일류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하나.
성균관대와 학술교류를 맺는 대학은 많지만 큰 나라는 세개 정도, 강대국은 두개 정도, 대부분의 국가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오래되고 Royal전통이 있는 대학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강대국이거나 그런 나라는 아니지만 조선이란 나라가 기록문화를 가진 문화강국이었고, 불법.강제의 일제 강점기를 거친 후, 과도기에 Royal대인 국사 성균관 자격 宮성균관대(한국 최고대)와 교황 윤허 대학인 Royal 서강대(성대 다음)의 공생관계로 필요한 측면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차대전 패전국이자, 전쟁범죄국가, UN적국인 일본의 강제 불법 점령기로 수난을 겪었던 나라기 때문에, 대중언론에서는 대학이나 종교 관련, 일본 강점기 잔재나 그 추종세력들의 거센 저항을 받으며, 갈등을 겪고 있는 나라입니다.
한국에서는 Royal대인 성균관대와 교황윤허 Royal서강대(성대 다음)가 가장 학벌이 높습니다. 사설 입시지나 입시학원 배치표는 교과서나 법률,백과사전과 비교할 바 아닙니다. 주권.학벌없는 패전국 일본잔재 서울대 뒤에서 마음대로 등록하던 해방당시 신문을 이용, 국사 성균관(성균관대)에 덤벼온 왜구 서울대 카르텔은 일본으로 축출하기 전에는 끝까지 성균관대에 덤빌 운명으로 보여집니다. 불교 Monkey라 하느님에게도 덤빔. 유교도 인정않았음(해방후 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성명 유교 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하는유교국으로 복구). 일제강점기 유교를 인정 않으며 강제 포교한 일본 신도(불교),불교, 기독교중 기독교 하느님.예수도 인정않던 일본 신도.불교Monkey나라(자기들이 강제 포교 종교로 들여와 놓고 신부를 겁주고 목사를 고문.구타하며 점쇠천황이 하느님.예수보다 높다고 압박). 일본 신도(불교).일본불교 수장인 성씨없는 점쇠 賤民천황이 마당쇠賤民 서울대(불교Monkey) 전신 경성제대를 설립함. 성균관은 격하.폐지하여 해방후 미군정법령으로 성균관 복구하는 법률을 만들어, 성균관대가 그 성균관 자격으로 지금까지 이어지며, 6백년 넘는 역사 인정받고 있음. 대중언론에서는 왜구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왜구 서울대 카르텔에 공략당해옴.
여하튼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균관대학.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균관대입니다. 일제가 격하.폐지하여,해방후 미군정때,법률로 성균관을 복구시키기로 하여, 그 당시 해방한국에서 가장 신분이 높던 남.북 유림(그때는 미.소군정 시대로 남북왕래 가능) 1천여명이 모여, 독립투사이신 이승만.김구선생을 고문으로, 독립투사 김창숙 선생을 위원장으로 하여, 성균관에 대자를 더붙여 성균관대를 설치(복구형식)키로 결의하여,향교에 관한 법률로 성균관대 재정에 기여토록 법률을 만들었습니다.그렇게 이어져,6백주년 기념행사때는 세계사에 나오는 자격좋은 교과서 대학인 볼로냐.파리대학 총장과, 별도로 영국 옥스포드대.독일 하이델베르크대(교황 윤허대학) 총장등 세계적으로 유서깊은 대학 총장들이 성대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 예수회 창립자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에 대한 설명.
예수회의 창립자. 세례명은 이니고. 스페인 북부 바스크의 기프스코아에 있는 로욜라성에서 태어나고... 그는 야곱스 데 워라기네의 『황금전설』과 루돌프 폰 작센의 『그리스도의 생애』에 감동해서 회심의 빛을 보았다. 그는 죽음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21년 가을에 회복, 이듬해 3월 몬세라트의 분도 수도원을 방문해서 죄의 고백을 하고, 그 근처의 만레사에서 묵상과 고행의 생활(1522~23)을 보냈다. 이는 그의 저작 『영신수련』(1548)의 기본이 되었다. 예루살렘 순례(1523~24) 후, 바르셀로나에서 라틴어(1524~26), 알칼라와 살라망카에서 고등교육(1526~27), 파리에서 철학과 신학(1528~35)을 배우고, 36년 베네치아에서 신학을 수료해서 이듬해 6월 24일 사제로 임명받았다. 이 무렵 그는 그의 이름 이니고 대신에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37년 말부터 로마에 정주해서 『회칙초안』을 쓰고, 40년 9월 교황 바오로 3세에 의해서 예수회 창립이 인가되어 41년 4월 8일 총장으로 선발되고, 죽을 때까지 그 직에 헌신했으며 로마학원의 창립(1551)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중심사상은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과 <교회봉사>의 영성에 있다.
.출처: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tius de Loyola]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VI}. 세계사에서는 세계 4대 문명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 중국 황하문명, 인도문명과 별도로, 그리스 에게문명을 문명의 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은 중국의 한나라 태학(이후 위나라 태학, 그리고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승계),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을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대학의 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의 세계종교로는, 유교, 기독교, 불교를 고대의 3대 세계종교로 보고, 중세시대의 이슬람은 후발 세계종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계사의 4대 발명품은 중국의 종이, 화약, 나침판, 인쇄술. 이처럼 중국문화는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인 서유럽의 종교문화, 사상, 철학, 대학, 과학의 발전만큼 중요한 세계적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사로 보면, 세계 4대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 황하문명, 인더스문명)과 그리스지역의 에게문명이, 인류문명의 시초입니다. 그런데 원래 세계 4대문명과, 에게문명은 다신교신앙이었으며, 半人半獸의 형태를 가진 대상을 신격화하는 선사시대의 과정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독교사상은 다신교의 헬레니즘을 계승한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한후, 인격신 중심의 그리스도교(헤브라이즘)가 중심이 되고, 헬레니즘사상도 오랫동안 같이 병존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고대에 세계종교로 성립된 세계종교는 동아시아 유교, 로마제국 기독교, 인도 아소카왕때의 왕성한 포교로 인도지역중심 불교가 3대 세계종교였습니다. 이슬람교는 나중에 중세시대에 서아시아 중심 세계종교가 되었습니다. 인도는 불교 이전 인더스 문명과 정복민의 신앙에서 형성된 브라만교가 선발종교였음.,
그 후에,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성직자계급) 다음계급인 크샤트리아(정치.군사담당)출신 부처가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는 무신론적 특성을 보였는데, 최고계급인 브라만에 제사용품을 공급하는게 하나의 불만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부정하여, 누구나 바른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석가모니의 불교 사상이 각광받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같은 크샤트리아 계급인 아소카왕때, 적극적인 포교를 하여, 세계종교로 인정받다가, 나중에 다시 브라만교가 불교를 탄압하면서, 천 몇백년동안 인도에서는 억압받고 있습니다. 불교인구는 일본,태국 및 동남아 약소국들로, 그 수가 몇억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전통적 세계종교 유교나, 가톨릭 및 중세시대의 세계종교 이슬람교는 10억 이상의 세계종교 인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에서 싹튼 다신교 신앙중 황하문명의 유교와, 인더스문명의 브라만교는 지금도 힌두교로 이어지고 있는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지역과, 이집트 문명 지역은 중세시대의 이슬람교의 무자비한 포교로 이슬람국가로 변했습니다. 에게문명의 헬레니즘은 기독교와 경합하다가, 점차 기독교가 강력한 종교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유교는 최고신이신 하느님[(天):만물의 창조신,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최고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숭배하며, 그 밑에 여러 하위신이 있는 다신교신앙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인도의 브라만교.힌두교도 다신교 신앙입니다. 인도에서 만들어진 불교는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는 부처의 무신론적 불교 Monkey신앙. 그리고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은, 헬레니즘의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던, 로마제국에서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신앙으로 변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유태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치 않아서, 기독교사회에서 박해를 받아왔습니다.@불교는 인도정복자들이 만든 브라만교의 상당부분을 이어받았고(다시 브라만교에 억압당해 인도는 천 몇백년동안 불교를 억압하며, 브라만을 섬기는 힌두교로 이어짐) , 기독교는, 이스라엘보다,로마제국에서, 헬레니즘과 융합되어, 원죄의식등을 가지는 세계종교로 계승된 측면이 강합니다. 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으로서,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유교와 가톨릭, 한국사, 세계사, 국제법, 헌법등을 종합 반영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로 세계의 역사와 문화, 대학들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관련자료를 인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2026년 6월 20일 토요일
유교문화 24절기 하지. 2026년 6월 21일(음력 5월 7일)부터 16일간은 하지(夏至) 절기입니다. 예기(禮記)에서는 해의길이가 최극점에 이른다고 서술. 하지 이후에는 기온이 상승하여 몹시 더워진다고 합니다.
유교문화 24절기 하지. 2026년 6월 21일(음력 5월 7일)부터 16일간은 하지(夏至) 절기입니다. 예기(禮記)에서는 해의길이가 최극점에 이른다고 서술. 하지 이후에는 기온이 상승하여 몹시 더워진다고 합니다.하지(夏至) 절기때는 유교에서 최고신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 다음의 하위신으로, 오제([五帝, 다신교 전통의 유교에서 조상신 계열로 승천하여 최고신 하느님(天, 창조신이시며 만물을 주재하시며, 인간을 창조하신]하느님 다음의 하위신이 되심]중의 한분이신, 여름의 신[하(夏)의 제(帝)], 염제(炎帝)께서 다스리는 절기입니다.
[1]. 예기(禮記)에서는 해의길이가 최극점에 이른다고 서술.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긴 날이 하지입니다. 두산백과의 하지 설명편에 의하면 "하지 때는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길므로, 북반구의 지표면은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다. 그리고 이 열이 쌓여서 하지 이후에는 기온이 상승하여 몹시 더워진다"고 합니다.
하지(夏至)는 국립국어원의 (주)낱말 국어사전에서 "이십사절기의 하나. 망종과 소서 사이에 들며, 양력 6월 21일 경으로, 북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2]. 예기(禮記)에서 설명하는 하지(夏至). 예기 월령, 중하의 달(仲夏之月)편에 수록됨. 본 글에서는 하지 부분만 발췌 인용함.
是月也 日長至 陰陽爭 死生分 君子齊戒 處必掩身毋躁 止聲色毋或進
薄滋味毋致和 節者欲定心氣 百官靜事毋刑 以定晏陰之所成
이 달은 하지에 해당되고 해의 길이도 최극점에 이르러 음양의 두 기가 서로 싸워 사생이 분별되는 때이다. 따라서 군자는 재계하고 집에
안거할때는 그 몸을 가려 드러나지 않게 하여 음기 때문에 몸이 마름을 방지하며, 또 경솔히 움직이지 않고 성색(聲色)을 금지하여
동침하는 일도 없으며 자미(滋味: 음식 맛)를 엷게 하여 진미를 조리하는 일도 없고, 기욕을 절제하여 심기를 안정시킨다.
백관 또한 형벌의 일을 중지하는데, 이렇게 해서 음기가 이루어져 정해지기를 기다린다.
필자가 선택한 번역본 교재는 "신역(新譯) 예기(禮記), 역해자(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입니다.
[3]. 성균관.향교의 50만 제사인구는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 주권없는 일본 잔재 불교 Monkey 서울대등이 최근에 다시 어거지쓰고 약탈하려는 주장은 주권.자격이 없음. 저 Monkey들 어거지는 교과서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 아니라는 것임. 일본 강점기 주장을 이어받아, 다시 일본잔재 서울대 출신이 1983년에 통계기법으로 주권없이 조사한 종교인구 표본조사같은걸로, 주권없이 다시 유교 약탈.테러중. 1983년 한국갤럽의 종교인구 조사는 이듬해인 1984년에 공식 발표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 의식 보고서의 기초가 된 조사입니다. 한국갤럽의 설립자이자 당시 조사를 이끌었던 박무익 회장은 서울대학교 출신입니다. 이런 식으로, 5,000만 한국인의 국교인 유교도들의 명절,제사,24절기,유교교육등을 무종교도로 만들고 주권없는 일제 강점기 포교종교 신도수만 내세우고, 10년 단위로 현혹하고 있음. 성균관.향교 제사인구 50만명만 유교인구라고 어거지쓰는것은 패전국에 전범국,UN적국 일본 불교 Monkey들이 사기치는 원숭이 노예합창.통계청 표본조사로 종교인구 조사하는것은, 더 이상 써먹지말고, 이런 조작 중지해야 할것. 애초부터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에 따라 일본 강점기 종교정책은 주권도 없고 인정받을수 없었음. 제헌의회 임시정부 반영에도 어긋나고, 1988년의 현행헌법 前文 임시정부 정통성 승계(한일병합등 모든 불평등 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위배됨. 유교를 국교로 승계받은 줄 알고, 당연히 유교도로 사는 한국인들을 다시 기만하기 시작한것.@세계사 고대 3대종교는 유교,기독교,불교(삭제않되고 유지)@유교는 문화대혁명때 침체,중국이 여러 유교명절 공휴일 지정,24절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음력 새해 명절을 UN 유동적휴일로 건의,채택.기독교(중세이후 크게 번창),불교(브라만교가 강하게 탄압,힌두교 인도).@수천년 한국 유교문화 5대 명절에 현대적 개념 도입한 국가유산청의 5대 명절 지정. 2023년 12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5대 명절을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설(중국은 춘절)과 대보름(중국은 원소절),한식(중국은 청명절),단오,추석,동지@유교는 성당,힌두교 사원,불교(브라만에 항거한죄로,인도에서 천 몇백년 탄압중) 사찰과 달리 무형유산 유교 명절에 전국민 참여. 유교는 왕실(대한제국은 황실)의 종묘대제,성균관.향교의 석전대제, 수천년 전통명절들, 문중별.가족별 제사.차례,기도. 24절기,유교 교육등.
@ 한편,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서강대는, 세계사의 교황제도 반영, 국제관습법상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연합국 국가원수들의 포츠담선언(포츠담선언은 미군정의 상위법, 일본관련, 포츠담선언은 카이로선언도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불교 Monkey 일본.*서유럽과는 다르게 한국,대만,아시아,쿠릴열도에 적용되는 포츠담선언의 일본관련 조항들.*일본이 교육기능 폐지시킨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 미군정때 성균관을 복구하는 법률(공자묘 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이 제정되었음. 이때 성균관과 관련없고 일본 동경대를 졸업한 교육관련 담당자와 주변인들이,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폐지)시켜야 할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하면서, 서울대를 성균관 앞에 놓는 방법으로 성균관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하였음. 미군정에서 교육정책 입안자로 등용되니까, 하위법인 미군정령을 이용해,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의 취지(일본의 주권은 한국에 없고, 경성제국대는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할 일제잔재임)에 어긋나는 교육정책을 만들었던것. 그러나 상위법 우선의 원칙을 따라야 함. 카이로선언은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축출)될것"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또한, 미군정은, 교육분야 아닌 타분야에서 연합국의 적국인 일본의 재산을 적산재산으로 하여, 일본이 카이로선언의 연합국 적국이라는 시각을 따르고 있었음. 미군정기에는 유교국가인 조선.대한제국의 한문성명.본관을 등록하는 조선성명 복구령도 시행되었음. 교육분야에서, 미군정기의 과도기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될 경성제대 활용(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의 정제되지 않은 정책에, 위기를 느낀, 전국 유림들이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유림이면서 임시정부 요인출신 김창숙 선생)를 개최하여, 성균관대를 설립(성균관의 교육기능 승계형태임)하기로 하였음. 새로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성균관장이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하고, 성균관대 학장.성균관장을 겸임하였음.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성균관대가 대학기능을 승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것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며, 고구려 태학이후 한국 최고대학 계보 성균관이었음. 태학(고구려),국자감(고려),고려말 성균관,조선.대한제국 성균관. 일본 강점기때 교육기능 중단 및 왜곡*일본이 항복하여, 미군정부터는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가, 대학교육 역할을 담당하여, 한국 최고 대학 계보임.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미군정때, 국사 성균관 교육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에도, 계속 국사 성균관교육을 실시. 국사교육을 중요시하여, 정부의 각종 고시, 공무원시험등에 국사 채택. *국사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라는건 성균관대, 성균관, 여러 백과사전 공통된 견해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4090602113
[4]. 인류는 만물의 근원.창조주 하느님(乾,天)의 섭리하에,만물의 영장으로 창조된,인간의 도리를 가르치신,근본적 하느님 아들 유교 공자님(先聖,聖天子)과,기독교세계 하느님의 독생자 주 예수를 떠나살수 없음.짐승같은 불교 부처Monkey는 창조신에 도전하는 나약한 원숭이!
인류조상 베이징원인.夏의 해.달.별 숭배,殷(商)의 上帝숭배,이전 신앙 흡수하여 유교 경전에 정형화된 周나라의 天(하느님,만물의 근원 乾,天.시경 天生蒸民으로 인격天 제도화)숭배와 天子제도.漢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天子제도 승계,공자숭배.
夏의 해.달.별 숭배, 문자를 발명한 殷(商나라)의 上帝숭배, 이전 신앙을 흡수.통합하여 유교 경전에 정형화된 周나라의 天(하느님, 하늘. 시경 天生蒸民으로 인격天의 개념이 제도화)숭배와 天子제도는, 하늘로 승천하여 계절을 다스리시는 오제(五帝. 태호,염제,황제,소호,전욱으로 창조주.최고신 天다음의 계절의 神이시며, 인격神의 시조)를 숭배하며, 요.순.우.탕.문.무의 先聖 가르침을 경전에 기록함. 주나라의 혼란기인 춘추전국시대에는 殷왕족의 후손이시며, 周나라 대부의 아들로 태어나신 공자님께서 제자백가의 여러 사상중 하나로 유가의 시조가 되심. 선성과 어진 섭정 주공의 행적을 존경하신 공자님. 공자님의 가르침은 하느님(天, 하늘)의 섭리하에, 조상신.지신.산천신 숭배를 이어가면서, 인간의 도리를 하기 위해, 학습을 하면서, 仁이나 禮, 恕등으로, 세상을 교화하시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공자님은 殷나라 왕족의 후손이신데, 당시에는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나, 선생 칭호의 子를 붙여 공자(공선생님)로 불리시다가, 후세에, 선성(先聖, 先聖王으로 聖天子를 의미)으로 추존되어, 역대 중국 천자들과 사람들이 제사하는 聖人이 되셨습니다. @ 漢나라때 漢의 국교며, 동아시아 세계종교(중국,한국,베트남, 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 현대의 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에 걸쳐 십수억명 유교도)로 성립되어, 수천년 이어진 세계종교 유교.
학생때 세계사영역,중국의 제자백가. 유가,법가,도가(한국은 신선사상,풍류도),묵가. 漢나라때 유교(儒家)가 국교가 되어 수천년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의 세계종교@인도발 외래신앙 불가(불교)는 일본 불교Monkey와 주권없는 경성제대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일본잔재 대만대가 대중언론.방송.SNS,뇌과학으로 어지럽혀도 제자백가 밑!@국가 최고 의례는 왕실의 조상제사인 종묘대제,토지와 곡식의 신에 제사하는 사직대제,先聖이신 공자님에 제사하는 석전대제.유교문화에서 인정되지 않는 인도발 오랑캐 도적의 짐승신앙 불교나, 힌두교 및 다른 종교 인정하기 어려움.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다시 인도가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천민으로 핍박하는 불교.@패전국.UN적국 일본 불교Monkey들이 근대에 한국.대만지역 합쳐 내세운 불교.건축물.유물로,유럽공략 걱정됨@원숭이.코끼리.사슴에서 환생한 부처 Monkey의 윤회론도 끔찍.유교문화권에서 제자백가뒤 오랑캐 도적,짐승으로 견제받던 인도발 외래불교일뿐.
중국.로마는 주변국가들을 야만족이라고 불러옴.역사적 사실@야만족에 군사력으로 정복당해도,종교와 대학.문화로 지배 분담@유교문화권은 인도발 불교를 오랑캐 도적,사람아닌 짐승(無君無父의 禽獸)으로 분류.하느님도 모르고,윤회론의 원숭이-> 불교 부처 Monkey는 不變
인도의 불가촉 천민,조선의 천민 승려 불교.불교는 부처Monkey가 인도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 천민으로, 다시 탄압받고 있음. 원숭이.코끼리.사슴에서 환생한 부처 Monkey의 윤회사상도 가미한 짐승신앙임.건축물 중시 유산은 종교의 본질과 큰 관계없음.경전,교리,역사적 전통,제도,그 제사장,신도수,해당국들에서의 국교로서의 전통등이 중요.
동아시아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한국은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삼한을 통하여,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로 확실히 정착, 하느님.조상신을 숭배하며,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신 공자님울 聖天子(先聖)으로 제사하는 나라. 그러다보면 유교 근본주의로 해석해서, 사후 비판 할 수도 있을법도 함. 삼국시대, 신라멸망후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패전국 일본 불교 Monkey항복후의, 유교복구와 일본 잔재등 아주 복잡함.
유교경전은 후세 정치적용어 皇帝없음.만물의 근원.창조신(乾,天) 하느님 다음,유교 경전 예기의 五帝(계절신,조상신,인격신)의 으뜸신 黃帝(殷왕족 후손 공자님의 조상神)는 均天의 인격神.공자님은 후세 天子들이 제사하는 聖天子(先聖).주권있어도 한국은 종교 天子국 아님
기독교세계는 하느님의 독생자 주 예수.주 예수의 종 교황,스페인왕.영국왕등 기독교 국왕들로 이해.유교문화권 중국,한국이 후세의 정치용어 皇帝에 의거,敎皇(교화 황제)으로 번역한 Pope.유교국 정치지도자들이 皇帝라는 용어사용 시도했어도 天子는 단 한분 종교지도자.
서로마.동로마는 중국殷,周,제자백가,漢처럼 중요@헬레니즘.헤브라이즘@이집트,그리스,서아시아,인도북부 통치한 알렉산더.그리스 신화의 Chaos@수천년 세계종교 유교.기독교는 만물의 근원.창조주 하느님 중심.하느님 아들 공자님(先聖,聖天子),기독교 하느님 아들 주 예수.
殷왕족 후손 箕子의 기자조선.한국 북부->夏의 해.달.별 숭배와 殷(黃帝,殷왕족 후손은 箕子,공자님)의 上帝숭배를 후발 周 天子에게 허용받은 한국 始原유교시대.箕子후손 기준왕이 건설한 남부 三韓은 한국 始原유교지역.세계사로는 북부지역 漢사군의 유교(孔子사상)정착.
한국 마을제사->후발 周(天子제도)가 허락,선발 殷왕족제사 지속 유형.殷왕족 箕子조선.三韓제사장 주관,제천의식,地神.산천神제사.삼국시대 번창,고려까지 제지않음.조선이 확실한 天子의 제후국되어,허락받지않은 제천의식.산천제사 금지->무속이라 탄압.天子국 아닌 한국.
정교회의 러시아.강대국@성씨없는 머슴型에,수천년 야만족에,부처 Monkey에서 파생된,근대 군사강대국 일본 점쇠(히로히토등,일본 짐승국가의 상징)가,하느님.예수님보다 높고,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 아니라는 주장으로,AI뇌과학 짐승 마법사 도둑질 하는것도 경계要.
세계사 殷왕족 箕子의 기자조선(기준왕때 위만조선에 멸망),위만조선, 위만조선을 정벌한 漢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됨.한국은 기자조선의 始原유교와 세계사의 정설인 漢나라때 동아시아 세계종교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 북부의 漢사군과 별도로,한반도 남부는 殷왕족 기자조선의 후손 기준왕과 후손들이 삼한 설립(마한.진한.변한). 진한과 변한에서 신라,가야가 후발로 건국됨.漢사군의 선진 유교문화 낙랑에서 부여가 건국되고,부여에서 이동한 주몽(고주몽)이 고구려 설립. 고구려 주몽의 후손 온조가 백제건국. 진한.변한의 신라,가야는 기자조선.삼한의 始原유교에서, 선진 유교문화 고구려.백제,중국 본토와 교류하며,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국가로 본격 재정립됨.제자백가,외래신알 불교 유입.
@ 불교 Monkey의 채식주의나, 사찰음식 모방하여 살아가는것은 위험함. 유교나 기독교 국가들은 수시로 육지고기 먹어야 합니다. 황하문명의 중국 음식(이탈리아,프랑스등과 각종 요리가 발달)의 특징은 불을 이용하여 튀기고,끓여먹고,구워먹는 맛있는 음식들.유교.기독교 국가들은,하느님의 섭리에 따라서,육식을 자주해야!@불교 Monkey채식주의는,유교.기독교와 맞지 않음.일본은 불교 Monkey(스시로 육지고기 먹지 않는다고 위안삼는것으로 보여짐).
다신교인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최고 하느님이시며, 만물의 근원이시고, 인간을 창조하신(시경:天生蒸民) 하느님(天). 그 하위의 조상신(유교 경전 예기에서 계절을 다스리시는 五帝),地神.산천神 숭배 이어받으신 공자님의 가르침(하느님의 섭리하에 피조물 중 만물의 영장 인간이 추구해야 할 여러 덕목인 仁과 禮, 恕등),그리고 유교의 실천강령중 하나인 삼강오륜.
창조신에 항거한 불교 부처 Monkey는,과거에 코끼리,사슴, 원숭이라고 본생경(Jataka,本生經)이 설명@유교는 다음생,저번생같은 윤회가 없고,사람이 짐승으로 환생하는것 불인정.유교는 하느님(天)이 창조하신 인간이 가장 중요함.죽으면 魂이 하늘로 올라감.악귀는 못올라감.유교나 가톨릭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영장 인간이 가장 중요할뿐, 사람이 동물로 윤회하거나 하는것을 인정치 않습니다. 전생이나 내세도 없습니다. 다만 유교는 사람이 죽으면 혼이 하늘로 승천하고, 현세에서 죄를 지었으면 그에 맞게 악귀로 처우되어, 떠돌게됩니다. 한번뿐인 고귀한 인생, 부처 Monkey의 불교처럼 동물로 인간을 비하하지 말고 열심히 사는게 유교입니다.
@ 현재의 중국 국가주석은 종교적으로 유교국가들(중국,한국,베트남,몽고,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의 天子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것. 춘절,청명절,단오절,중추절의 법정 공휴일, 24절기 유네스코 등록@정치적으로는周 文王의 환과고독(鰥寡孤獨)구휼 위한 大同사회목표.
인구밀도가 낮은 시대에 유교,기독교,이슬람교는 매장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인더스문명의 인도는 인구밀도가 높은편이라, 고대부터 브라만교(힌두교로 이어짐),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불교는 화장문화였음. 최근에는 너무 인구밀도가 높아, 종교와 상관없이 유교,기독교,이슬람교도 납골당, 수목장등이 대세임. 유교는 화장하더라도, 집에 영정을 모시는 쪽으로 이어지면됩니다.
@ 한국 유교 최고제사장은 고종 후손 황사손(이원)임. 불교 Monkey일본 항복으로, 유교가 국교인 조선성명 복구령. 5.000만 국민이 행정법상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며, 유교 명절,제사,차례,기도 및, 초등학교때의 하느님(애국가)제창,조선 역대왕조 왕명 암기,중학교때는 유교 삼강오륜 배우게 됨. 고교때는 세계사의 고대 세계종교 유교(현재도 이어짐)@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로 설립된 예수회의 서강대는,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이 뒤로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으로 형성된 대학들.
[5].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6]. 필자의 당부사항.
서강대는 명나라때부터 중국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유교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높고, 서양에 유교와 공자님을 학술적으로 잘 소개해준 귀족계파 예수회산하 대학입니다. 불교 Monkey 일본 강점기를 거치고, 교육.종교.학교.대중언론.공무원 분야등에서, 실무권력을 갖지못한, 성균관과 유림들이었는데, 일본 항복후, 미군정때, 총독부 인원들이 재등용되어, 다시 복구한 국사 성균관(성균관대)자격을 약탈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성균관대에 도전해온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 각종 왜구학교들의 주권없는 약탈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혼란했던 대학, 중.고등학교 문제는, 법적 기준과 주권.자격 기준으로, 중.고교의 경우, 어느정도 대학진학률등이 높아왔던 학교들이, 倭잔재학교보다 우선순위를 가져야 합니다. 자체의 군사력으로, 독립하지 못해서, 왜구 잔재학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시중의 대중언론.사설입시지의 왜곡을 겪으면서,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권력이 아주 강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어떻게 할 수가 앖어, 중학교 무시험전형, 대도시 고교 평준화로 부분적 봉합을 시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법과, 역사, 사실은 아주 중요합니다. 국가주권처럼 성균관(성균관대)의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도 아주 중요합니다. 성균관의 승계 대학 성균관대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복잡한 국제법상의 갈등이 얽혀있습니다. 해방당시 다른 대학들은 이 법적 갈등의 당사자대학들이 아닙니다. 유교의 하느님숭배,조상숭배와 舊신분제 전통을 잘 이해하던 예수회의 귀족계파 서강대는,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 국사 성균관교육이 지속되면서, 양반 성대를 이해하던 대학임.이뒤로 조선성명 복구된 5,000만 한국인 뒤 주권.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불교 Monkey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대학들.@대중언론,사설 입시지, 후발 법령은, 국제법, 한국사(국사 성균관교육. 성균관대 자격), 세계사, 국가주권의 상위법.상위 국제관습법 못이깁니다.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세계사의 교황 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귀족사제 이나시오 사제가 설립한 귀족대학)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으로 보호받습니다. 그리고 성균관대의 자격은, 세계사에서 인정되는 중국의 황하문명, 한자(漢字), 한나라시대의 세계종교 유교, 중국의 태학(이후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 세계4대 발명품(중국의 발명품인데,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으로 가르침. 종이,화약, 나침판, 인쇄술)등과 결부되어, 세계사로 이해해야, 세계인들에 더욱 확실히 접근하기 쉬운 측면이 많기 때문에, 교과서로 가르치는 한국사만큼, 학교교육의 세계사도 중요합니다.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 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7]. 백과사전들에서 서술하는 하지(夏至).
1.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의 서술.
망종과 소서 사이에 들며, 음력으로 5월, 양력으로 6월 21일께가 된다. 북반구에 있어서 낮이 가장 길며, 정오의 태양 높이도 가장 높고, 일사 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은 날이다.
북극지방에서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으며, 남극에서는 수평선 위에 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동지에 가장 길었던 밤시간이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여 이날 가장 짧아지는 반면, 낮시간은 14시간 35분으로 1년 중 가장 길다.
남부지방 농촌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이전이면 모두 끝난다. 강원도지역에서는 파삭한 햇감자를 캐어 쪄먹거나 갈아서 감자전을 부쳐 먹는다.
옛날 농촌에서는 흔히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다.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의 예를 들면, 하지까지 기다려도 비가 오지 않을 때 이장(里長)이 제관이 되어 용소(龍沼)에 가서 기우제를 지낸다.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의 경우, 이장이 제관이 되어 한강지류의 소(沼) 속에 있는 용바위에서 소를 잡아 용바위에 피를 칠하고 소머리만 소 속에 넣는다. 이때 흔히 키로 물을 까불어서 비가 내리는 듯한 유사주술적(類似呪術的)인 동작도 한다.
. 출처: 하지[夏至]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의 서술.
.요약
24절기 중 망종과 소서 사이에 있는 절기로 이 때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
망종(芒種)과 소서(小暑) 사이에 있으며, 양력 6월 21일경이 시작되는 날이다. 음력으로는 5월중이다. 하지 때는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길므로, 북반구의 지표면은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다. 그리고 이 열이 쌓여서 하지 이후에는 기온이 상승하여 몹시 더워진다. 중국에서는 하지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눠서, ① 사슴의 뿔이 떨어지고, ②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③ 반하(半夏)의 알이 생긴다고 했다. 한국의 농사력에서는 모내기가 끝나는 시기이며 장마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천문학적으로는 1년 중 태양의 적위가 가장 커지는, 6월 21일경을 말한다. 태양은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게 되는데, 그 위치를 하지점(夏至點)이라 한다. 북반구에서는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태양의 남주(南中)고도가 가장 높아진다. 특히, 하지점이 적도면에서 북쪽으로 23° 27' 떨어져 있기 때문에, 북위 23° 27'인 지점에서는 이 날 태양이 천정(天頂)에서 남중한다. 그러나 남반구에서는 북반구와 반대로 하지에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태양의 남중고도가 최소가 된다. 또한 동지에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최대가 되고, 낮이 가장 긴데, 북반구에서는 그 반대가 된다. 서울(북위 37° 30')에서 태양의 남중고도는 하지 때에는 75° 57'이고, 동지 때에는 29° 03'이다.
. 출처: 하지[Summer Solstice, 夏至] (두산백과)
3. 종교학대사전의 서술.
24절기의 하나. 태양이 궤도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할 때, 즉 황경 90도에 있어서 춘분점과 추분점의 중간에 있다. 지구의 북위 23도 30분의 북회귀선에서는 바로 위에 태양을 보고, 북반구에서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높아지고 일영은 가장 짧아진다. 그리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의 길이는 가장 짧아진다. 현행의 태양력에서는 6월 21일이다.
민속
태양신 숭배가 게르만인 사이에 있었다는 것은 시저의 기술에서도 알 수 있는데, 그리스도교 공인후에는 일찍이 하지는 성 요한제, 동지는 크리스마스로 대신되었다. 그러나 성 요한제의 풍습은 오래된 전통을 수없이 남기고 있다. 하지에는 신성한 태양이 하늘의 정점에 이르러, 정지해서 농경지에 은혜를 베푼 후에 되돌아간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성대한 하지의 축하의 불을 피워 태양에 가세하여, 농경지와 가축의 번영을 기도하고, 악령을 쫓았다. 이 풍습은 19세기 중반까지 유럽 전역에서 행하여지고, 특히 남독일에서 성행하였다. 성 요한의 날의 전야에 산 위나 들판, 때로는 십자로나 광장에서 축하의 불이 피워진다.
전 마을적인 행사로, 남자가 미리 나무나 짚을 모은다. 쌓아놓은 짚의 점화를 프랑스에서는 성직자나 장로가 행하고, 노르망디 지방에서는 태양이 지평선에 가라앉는 순간에 점화했다고 한다. 축하의 불은 좋은 수확을 가져오고, 이를 행하지 않으면 밭에 피해가 온다. 불과 연기가 똑바로 위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과수의 수확이 좋고, 피는 불꽃이 많을수록 곡물의 수확이 많다고 하였다. 불은 공기를 정결히 하고 병이나 악령을 쫓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불 주위를 춤을 추면서 돌고, 불 위를 뛰어넘는다. 뛰어넘은 자는 일년중 열병, 복통, 등의 통증에서 해방된다.
젊은 남녀가 손을 잡고 손을 떼지 않고 뛰면 결혼할 수 있다고 한다. 높이 뛸수록 곡물이나 아마가 잘 자란다. 가축도 불속을 통과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 악마나 마녀를 쫓기 위해서 불에 짚인형의 마녀를 태우는 풍습도 널리 각지에서 보인다. 남은 불은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면 행운을 가져온다고 하며, 그것으로 아궁이의 불을 새로 피웠다. 차바퀴에 짚을 넣고 불을 피워서 산상에서 계곡으로 굴러 떨어뜨리는 <차바퀴 떨어뜨리기>나 판제의 원판에 불을 피워서 날리는 <원판날리기>도 마찬가지로 수확을 좋게 하는 작용이 있다고 하였다. 하지에는 샘을 정결히 하는 행사도 있으며, 약초 찾기나 보물찾기, 점대찾기에도 좋은 날이라고 하였다. 또한 성 요한제의 전야에는 요정, 마녀, 사령, 생령 등이 지상에 모습을 나타낸다고 믿고,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도 그와 같은 이야기를 배경으로 탄생한 것이다.
. 출처: 하지[夏至]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한국사전연구사)
[8]. 베이징관광국과 인민망의 하지 안내자료.
1. 베이징 관광국의 하지 안내자료
...
하지는 여름 하(夏),이를 지(至)라는 의미로 이루어진 단어며 ‘여름이 이르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는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하지 이후에는 기온이 상승하고 날씨가 시작하며 무더위가 찾아온다.
중국에서는 하지(夏至) 15일을 5일씩 끊어서 삼후(三候)로 나눠서, '사슴의 뿔이 떨어지고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약초인 반하(半夏)의 알이 생기는(鹿角解,蜩始鸣,半夏生)' 시기라고 한다.
조상에게 제사 지내기
하지 무렵이면 장마와 가뭄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일년 중 추수와 더불어 가장 바쁜 시기이다. 중국에서 예로 부터 하지 무렵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풍년을 기원한다.
명청시기 황제들은 매년 하지(夏至)에는 지단(地壇)에 가서 대지의 신, 산과 강, 바다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 수확이 풍성하기를 기원했다.
상추 및 냉국수를 먹는다
옛날에 중국에서는 ‘겨울에 훈툰(馄饨)을 먹고 하지에 국수를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매년 하지 무렵에 러오베이징 사람들은 상추나 냉국수 등 시원한 음식을 즐겨 먹는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왕성했던 식욕도 뚝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럴 때면 시원한 음식으로 입맛을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 필자 주 1). 훈툰(馄饨):만두.
뜨거운 국수를 먹는다
또 옛날 중국 일부 지역의 사람들은 더운 여름엔 뜨거운 국수를 먹는 것을 좋아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는 나쁜일을 멀리하게 해주며 더위와 습기를 이겨내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 전(夏至饼)을 먹는다
하지는 농사일로 가장 바쁜 때이다. 보리 수확 및 타작, 모내기, 병충해 방재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옛날 중국 사람들이 수확이 끝나면 국수를 먹는 풍습이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이 밀과 물을 섞어서 전을 만들어 상추나 두부 등 채소와 같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나서 먹는다. 이는 바로 ‘하지 전(夏至饼)’이라고 한다.
완더우까오(완두떡, 豌豆糕) 를 먹는다
옛날 중국 난징 사람들은 하지 당일에 아이에게 완떠우까오(완두 떡, 豌豆糕 ) 를 먹게 해 준다는 풍습이 있으며 이는 건강에 좋다고 한다. 하지 이후에는 날씨가 더워지면서 사람들이 입맛이 떨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완두콩을 소로 넣어 반으로 가르면 초록색이 가득한 완두 떡은 산뜻한 맛이며 아이들의 입맛이 적당하다.
하지에 계란을 먹는다
중국에서는 하지 무렵에 많은 집들에서는 ‘하지 계란’을 삼는데 껍질을 까고 대추와 함께 국을 끓여 먹는다.
중국 호남 지역에는 계란을 삼아서 붉은 종이나 물감으로 계란 껍질을 빨간색으로 염색해주며 봉투에 넣어 아이의 목에 걸어준다.하지에 이걸 먹으면 몸에 땀띠가 나지 않고 피부가 매끄러워지며 건강에 좋다고 한다.
베이징관광국 한글 공식사이트 최종수정일: 2018-06-19
http://visitbeijing.or.kr/article.php?number=22403&category=74
2. 인민망의 하지 자료
http://kr.people.com.cn/n3/2016/0623/c207555-9076188.html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275696355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190490049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s://blog.naver.com/macmaca/110185393995
2026년 6월 15일 월요일
2026년 6월 19일은 음력으로 5월 5일이며, 이 날은 유교권 전통 명절인 단오절입니다. 단오날은,단양절(端陽節) 또는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합니다.
2026년 6월 19일은 음력으로 5월 5일이며, 이 날은 유교권 전통 명절인 단오절입니다. 단오날은,단양절(端陽節) 또는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합니다.
단오절은 고대 중국의 하(夏)·은(殷)·주(周) 왕조를 거치며 정착된 천체(태양·달·별) 숭배와 농경 수시(授時) 의례에서 깊은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단오절은 "병마를 제거하고 악귀와 재난을 쫓는 명절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합니다.한국의 경우, 고대 마한의 습속을 적은 《위지(魏志)》 <한전(韓傳)>에 의하면,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서로 신(神)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단오를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삿날인 5월제의 유풍으로 보기도 한다. 필자가 볼때, 결국 단오절은 상고시대 시원(始原)유교의 제천의식에서 파생되어, 삼한의 5월제로 이어지고, 지금까지 한국에 이어져 온 전통 유교풍속입니다. 단오날에는 쑥떡.망개떡.수리취떡.밀가루지짐등을 먹습니다. 남자들은 씨름등을 하고,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데, 그네뛰기 ·탈춤 ·사자춤 ·가면극 등도 곁들이는 유교 제천의식날이자 명절입니다.
[1]. 개괄 설명
1]. 표준 국어대사전에서는 단오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명절의 하나. 음력 5월 5일로, 단오떡을 해 먹고 여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며 남자는 씨름을 한다
2]. 단오절은 고대 중국의 하(夏)·은(殷)·주(周) 왕조를 거치며 정착된 천체(태양·달·별) 숭배와 농경 수시(授時) 의례에서 깊은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흔히 단오라고 하면 초나라의 충신 '굴원'의 전설을 떠올리지만, 이는 후대에 덧붙여진 인물 중심의 유래일 뿐입니다. 단오의 본질적인 기원은 고대인들이 1년 중 태양의 기운(양기)이 가장 왕성한 날을 기념하던 태양 축제에 있습니다.
질문하신 고대 왕조들과 단오의 연관성을 역사적·천문학적 근거와 함께 명확히 정리해 드립니다.
1. 하(夏)나라의 천체 숭배와 최초의 기록
중국 고대 문헌인 《대대예기(大戴禮記)》 중 하나라의 천문력과 농사 절기를 기록한 〈하소정(夏小正)〉을 보면, 음력 5월에 '약초(난초)를 채취하여 목욕을 하고 독을 배출한다'는 기록이 이미 등장합니다.
가). 중국 인민망 단오절(端午節)의 유래
May 30, 2014
[인민망 한국어판 6월 04일]
위란제(욕난절, 浴蘭節)의 기원
중국 선인들은 5월이 되면 난초를 채취해 난초물로 목욕을 하여 독을 배출해 내는 풍속을 행했다. <대대예기•하소정(大戴禮記•夏小正)>과 남북조 시대 양(梁)나라 사람 종름 (宗懔)의 <형초세시기(荆楚歲時記)>에 나온 관련 기록을 보면 이 풍속은 당송(唐宋) 시대에 까지 전해지게 되어 단오 또는 위란(浴蘭)의 달로 불리게 되었다.
* 어르(악일,惡日)說
한(漢)대 사람들은 5월 5일은 악월(惡月)•악일(惡日), 즉 5월 5일 태어난 아기는 남자 아이든 여자아이든 성인까지 부양하면 안 된다고 여겼다. 부양하게 되면 남자는 아버지를 해하고 여자아이는 어머니를 해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풍속은 전국(戰國) 시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한(漢)대까지 성행했다. 이에 관한 내용은 한나라 사람 왕충(王充)의 <논형(論衡)>, 응소(應劭)<풍속통(風俗通)> 및 <후한서(後漢書)>에 많은 기록이 있다.
* 용의 명절說
이 속설은 원이둬(문일다, 聞一多)의 <단오고(端午考)>와 <단오의 역사교육(端午的歷史教育 )>에서 유래한다. 그는 5월 5일은 고대 오월(吴越)지역 ‘용(龍)’의 부락에서 거행된 토템 의식의 날이라고 말하고 있다.
* 하지(夏至)說
1963년 황스(황석, 黄石)의 <단오예속사(端午禮俗史)>에서 처음으로 ‘하지’설이 거론됐다. 1983년, 류더첸(류덕겸, 劉德謙) 선생은 <단오시원우일설(端午始源又一說)>에서 단오가 하(夏), 상(商), 주(周)나라 시기의 하지라고 말하고 있다.
* 역사적 인물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는 說
‘단오절’하면 중국인들의 뇌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쭝쯔(粽子)와 마음 속에 기릴 만한 역사적 인물들이 있다. 오늘날 저장(浙江) 지역에는 5월 5일 오자서(伍子胥)를 맞이하는 풍습이 있으며 진지(晉地)는 개자추(介子推)를 기념한다는 말이 있다. 한(漢)대에는 천난창우(岑南蒼悟) (오늘날 광시(廣西)) 에서 백성들이 5월 5일 동성문(東城門)에서 어린이들에게 깨끗한 옷을 입혀 춤을 추게 해 믿음• 효도로 군을 다스린 태수 진림(陳臨)을 기념했다고 한다.
동진(東晋)의 문인 우예(虞預)는 <회계전록(會稽典錄)>에서 저장(浙江) 사람들이 5월 5일 효녀 조아(曹娥)를 기념하던 풍속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단오절은 ‘여아절(女兒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남북조 시대에 이르러 남조 양나라 사람 종름(宗懔)의 <형초세시기(荆楚歲時記)>에서 비로소 단오절이 ‘굴원(屈原)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기록했다. 양나라 사람(양조(梁朝)사람) 오균(吳均)의 <속제해기(續齊諧記)>에도 비슷한 기록이 남아있다. 단오절의 기원설은 매우 많지만 그 중 굴원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는 것이 가장 통념적인 설이다.(번역 감수: 김민선)
나). 태양·달·별의 관측: 하나라 시기는 본격적인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태양의 움직임(절기)과 별자리를 관측하는 '수시(시간을 백성에게 알려줌)'가 왕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5월의 의미: 음력 5월은 낮이 가장 긴 '하지(夏至)'가 포함된 달로,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서 강력한 빛을 뿜어내는 시기입니다. 고대인들은 이 시기를 태양의 기운이 극에 달한 때로 보아 신성시했습니다.
@ 태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날. 단오. *출처: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단오의 의미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계절에 따라 좋은 날을 택해 여러 가지 행사를 가져왔는데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명절로 정해졌다. 명절은 대부분 농경사회에 맞게 정해졌으며 계절적인 요소와 민속적인 요소가 포함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축일이다. 예전 명절은 거의 다달이 있었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정월의 설과 대보름, 단오, 팔월의 추석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명절이 그 의미를 잃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을 이르는 말이다. 단오를 부르는 다른 말은 수릿날, 천중절(天中節), 오월절(五月節), 중오절(重五節), 술의(戌衣) 등이지만 가장 흔한 이름은 단오이다.
단오의 단(端)은 첫 번째를 의미하고 오(午)는 다섯을 의미하는 오(五)의 뜻으로 통하므로 매달 초하루부터 헤아려 다섯째 되는 날을 말한다. 예로부터 음양사상에서는 홀수를 양(陽)의 수라 하고, 짝수를 음(陰)의 수라 했는데 양의 수를 상서로운 수로 여겼다. 그래서 양수가 겹치는 날인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은 모두 홀수의 월일이 겹치는 날로 길일로 여겼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날이면 어떤 일을 해도 탈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그 중에서 단오는 일 년 중 인간이 태양신을 가까이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큰 명절로 여겨왔다.단오의 유래단오의 유래는 중국 초나라 회왕 때 충신 굴원이라는 사람에서 시작된다. 굴원은 문장도 잘 쓰고 충직 고결한 신하였다. 이에 회왕이 특별히 사랑하였는바 간신들은 늘 굴원을 시기하고 질투하였다. 회왕이 죽고 양왕이 새 임금이 되자 간신의 무리는 임금께 굴원을 모함하여 끝내 귀양을 보내버렸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안고 살던 굴원은 초나라가 멸망하자 심한 충격을 받고 ‘어부사(漁父詞)’ 등 여러 편의 글을 지은 후 큰 돌덩이를 안은 채 멱라수(覓羅水)에 빠져 죽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해마다 그날이면 대나무통에 쌀을 넣고 소태나무 잎으로 감아 물속에 던져 굴원의 영혼을 위로하였으며 그의 영혼을 건진다 하여 경쟁적으로 배 건너기를 하기도 했다. 그날이 바로 음력 5월 5일이고 이러한 풍습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단오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대 마한 시절부터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신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단오는 절기상 봄농사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지며 신에게 제사도 지내고 흥겹게 지내며 풍요를 기원했던 것으로 보인다.단오의 풍속단오에 여자들은 특별히 치장을 하였는데 이를 단오장(端午粧)이라 한다. 단오장은 창포를 넣어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 것에서 시작한다. 창포의 특이한 향기가 나쁜 귀신을 쫓으며 창포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에 윤기가 나고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단오 때 행해지는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그네뛰기와 씨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순수 전통 놀이인 씨름은 단오뿐만 아니라 여러 명절에 행해진다. 그 중 단오씨름이 으뜸인 이유는 일 년 중에서 가장 양기(陽氣)가 왕성한 날에 행해지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씨름을 했다면 여자들은 그네뛰기를 했다.
단오 무렵에는 계절적으로 여름이 시작되어 날씨가 한창 더워지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더위를 물리치기 위해 부채를 많이 사용했다. 우리 풍속에 ‘단오의 부채는 관원이 아전에게 나누어주고 동짓날의 달력은 아전이 관원에게 바친다’는 말이 있는데, 단오 부채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주는 선물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단오에는 몸을 보양하고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는 의미로 수리취떡, 앵두화채, 제호탕 등을 먹었다. 그 중 수리취떡은 대표적인 단오 음식이다. 수리취는 우리나라 전역의 높은 산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산나물의 왕으로 불릴 만큼 영양이 풍부했다. 단오의 대표적인 후식은 앵두화채와 제호탕이다. 둘 다 여름의 더위를 잊게 하고 떨어진 입맛을 돋우는 데에 효과적이다. 단오 때 익는 앵두는 제철과일이라 하여 새로 수확한 앵두를 조상에게 바치고 제사를 지내는 단오절사(端午節祀)를 하기도 한다. 궁중에서는 임금을 가까이 모시던 신하에게 앵두를 나눠주는 풍습도 있었다. 앵두가 익을 때면 서울의 남녀는 송동과 성북동에 가서 놀기도 했는데 이를 앵두회라 했다. 제호탕은 여러 한약재를 곱게 갈아 꿀을 넣고 끓인 청량음료의 일종으로, 여름철 기력을 보강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하여 단옷날이 되면 임금님께 바치기도 했다.강릉 단오제전통사회에서의 단오제 풍속은 더운 여름철의 건강을 유지하는 선조들의 지혜와 신체단련을 위한 놀이, 풍농을 소망하는 의례 등이 있다. 마을마다 수호신에게 공동체 제의를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지역민들의 일체감을 고취시키는 의례로 마을의 풍년과 화복을 빌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군현 단위마다 큰 단오제가 행해졌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강릉단오제이다.
강릉 단오제 강릉 단오제 강릉 단오제 강릉 단오제 강릉 단오제
[대한뉴스 제1287호] 강릉 단오제(1980)
강릉단오제는 전통 민속축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단오축제이다.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강릉단오제가 맥을 이어온 것은 노인과 무녀들이 소규모라도 빼놓지 않고 단오제를 치렀기 때문이라 한다. 강릉단오제는 단옷날을 전후하여 펼쳐지는데 산신령과 남녀 수호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대관령국사성황모시기를 포함한 강릉 단오굿, 전통 음악과 민요 오독떼기, 관노가면극(官奴假面劇), 시 낭송 및 다양한 민속놀이가 개최된다. 음력 3월 20일 제사에 쓰일 신주(神酒)를 빚는 데서 시작하여 단오 다음날인 5월 6일의 소제(燒祭)까지 약 50여 일이 걸리는 대대적인 행사이다. 강릉단오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5년 11월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되었다.
(집필자 : 황은주)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포탈
설명
‘단오’는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지속하여 왔으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가치를 대표해 온 전통생활관습이자 전통지식이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양기(陽氣)가 가장 성한 날로 예로부터 중오(重午), 천중절(天中節), 수릿날이라 불렀으며, 여름의 대표 명절이다. 단오가 우리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삼국유사』이며, 단오에도 국가의례로 왕실제사를 지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기록을 통해 단오의 핵심 요소인 단오제, 그네뛰기, 단오 부채 관련 풍속도 확인이 가능하다.
다른 명절에 비해 단오는 단일 주제로 가장 많이 연구되었으며, 설과 대보름 관련 연구를 제외하고 명절로써 연구의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 단오 관련 연구는 2000년대 강릉단오제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그 이외 중국의 단오 문화를 비교연구한 주제가 다음으로 많다.
단오는 조선시대 4대 명절이었던 설, 한식, 추석에 비해 향유 집단의 폭이 넓은 명절이었다. 우리나라 명절이 대체로 조선시대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성리학적 가례를 중시하여 조상숭배 관련 의례가 강하게 남아 있는 반면, 단오는 양반과 남성뿐만 아니라 농민과 여성이 함께 명절의 향유 주체가 되어 다양한 놀이와 풍속이 전승되고 있는 명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쑥과 창포 등으로 대표되는 약초 문화 및 단오제로 대표되는 공동체문화는 한·중·일 내에서도 독자성을 견지하고 있다. 단오에는 부채, 동지에는 책력을 의미하는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오는 부채로 대표되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명절이다.
특히 현재 대규모 축제 및 의례·제의의 형태로 단오제의 자생성이 살아있는 강릉단오제·경산자인단오제·법성포단오제가 전승되고 있다. 강릉단오제는 특히 신주(新酒)를 빚는 과정부터 지역공동체의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 하고 있다.
‘단오’는 한반도 전역에서 온 국민이 전승·향유하고 있는 문화라는 점에서 이미 지정된 ‘김치 담그기’, ‘장 담그기’ 등과 같이 특정 보유자와 보유단체는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종목으로 지정하였다.
@ 지역 N문화->한국문화원연합회.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특수법인
* 농업과 인간의 삶 > 마을 공동체 활동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단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홀수가 두 번 겹치므로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다. 이 때는 양기가 강할 때 그 기운을 거두는 여러 가지 풍습이 있는데 익모초와 쑥 꺾기, 창포물에 머리감기, 부적쓰기 등이 있고 절식으로는 수리취떡을 먹는다. 궁중에서는 전주나 남원에서 진상된 부채를 임금이 신하들에게 나누어 선물하기도 하였다.
단오는 한자로 端午라고 쓴다. 단오의 단자는 처음이라는 뜻이고 오자는 다섯이라는 뜻이므로 초닷새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홀수를 양으로 치고 짝수를 음으로 쳤는데 양수가 겹치는 날을 생기가 왕성한 날이라 하여 중요한 날로 여겼다. 이중에서도 여름이 시작되는 5월 5일 단오를 가장 양기가 충만한 날로 생각하여 명절로 여겼다. 그래서 예로부터 설날, 추석, 단오를 삼대 명절로 삼기도 하였다.
단오는 다른 말로 중오절, 천중절, 단양(端陽)이라는 한자로 불리기도 하고 수릿날이라는 고유어의 이름도 가지고 있다. 중국 초나라 굴원이 이 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물에 빠져 죽었고 이를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는 고사가 전해진다. 수릿날은 수리라는 단어의 뜻이 높다와 신이라는 뜻이 있어서 수릿날은 신을 모시는 날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 날에는 다양한 먹을거리와 놀이와 풍습이 있는데 모두 단오날의 양기와 관계가 깊다.
단오날 행하는 민간의 풍습으로는 익모초나 쑥베기, 창포물에 머리감기,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부적쓰기 등이 있고, 궁중에서는 전주나 남원에서 진상된 부채를 임금이 신하들에게 나누어 선물하기도 하였다. 익모초즙은 매우 쓴 맛이 나기 때문에 단오에 내어 둔 것을 여름에 약으로 썼으며 쑥 역시 베어서 여름내내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였다. 익모초와 쑥을 단오날에 베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므로 약성도 가장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만들거나 베는 시간도 양기가 가장 강한 오시(午時)에 베어서 사용하였다. 부적쓰기 역시 이와 같은 원리로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에 부적을 쓰면 제액을 소멸하고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 일도 액을 물리치고 복을 얻는다는 제액초복을 기원하는 행위이다.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는 단오 즈음에 대추가 많이 달리는데 나무 가지에 돌을 끼워 넣어 더 많은 수확을 바라는 기풍 행위이다.
단오날에 먹는 대표적 음식으로는 수리취떡이 있다. 이 수리취는 취나물과 비슷한데 쑥떡을 하듯이 이 수리취를 생으로 빻아서 쌀가루에 넣고 떡을 해 먹는다. 또 앵두로 떡을 만들어 먹거나 화채를 만들어 먹었다. 단오날은 그네뛰기로도 유명하다. 며칠 전부터 그네줄을 준비하여 단오날에 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에 그네를 걸고 그네를 뛴다. 이 때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뛰며 누가 더 멀리 뛰나 내기를 하기도 한다. 또 씨름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요새는 단오를 많이 쇠지 않는다. 예로부터 북쪽은 단오, 남쪽은 추석을 더 크게 쳤기 때문이며 추석이 공휴일로 지정된 데 비해 단오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아 있는 단오 중에서는 유네스코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제와 요새 새롭게 복원된 자인단오제 등이 성행하고 있어 예로부터 내려온 단오의 명맥을 잇고 있다.
@[동북아신문=김성우 시인]
[김성우의 민속풀이] 단오날의 유래와 풍속
기자명 동북아신문 승인 2024.06.10
단오는 음력 5월 5일을 이르는 말이다. 단오절은 춘절(春節), 청명절(清明節), 중추절(中秋節)과 함께 ‘중국 4대 전통명절’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설날, 대보름날, 한식날, 추석날, 중구날, 동지날 등 민속명절과 함께 ‘수리날’로도 불리는 조선민족의 명절이기도 하다. 중국과 조선의 문화영향을 많이 입은 일본에서도 단오문화를 받아들여 단고노셋꾸(端午の節句)라 이름하여 무사인형(五月人形)과 고이노보리(鯉のぼり) 등 여러가지 민속 행사를 나름대로 쇠고 있다. 이렇듯 단오는 동아시아 각국의 한자권 민속문화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명절이다. 한다. 우리 나라 단오절은 2006년에 국가급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되였고 2008년에는 국가 법정 명절로 정해졌으며 2009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였다. 이보다 앞서 한국의 지방축제인 ‘강릉단오제’가 2005년에 유네스코 세계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였었다.
단오절은 이날 자연신과 조상신께 제사를 지내여 복을 빌고 화를 물리치려 하는 재래의 풍속에다가 여러가지 즐거운 오락행사를 치르고 함께 명절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보내는 일종 통합적인 민속명절이다. 단오절은 중국 전통명절에서 명칭이 가장 많고 그 유래설도 가장 많은 명절이다. 명칭으로 보면 단오절은 단양절(端陽節), 룡주절(龍舟節), 중오절(重五節), 쭝즈절(粽子節), 욕란절(浴蘭節), 창포절(菖蒲節), 녀아절(女兒節) , 천의절(天醫節), 초약절(草藥節) 등 20여 가지로 불린다. 학자들은 이러한 명칭들을 대개 세 부류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는데 첫번째는 시간에 맞추어 지어진 명칭으로서 단오, 중오, 천중(天中), 오월절, 지랍절(地蠟節), 오황절(五黃節), 하절(夏節) 등이 그러하다. 이중 ‘천중’은 하지 전후로 태양이 직사점이 북회귀선에 있어서 일년중 가장 중간에 놓여있으므로 적확한 시간관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둘째로는 기후, 월령의 풍속 개념으로 붙여진 명칭으로서 단양절(端陽節), 타오절(躲午節), 정양절(正陽節), 당오신(當五汛) 등이 그러하다. 단오가 하지와 가까우므로 이때는 해볕이 따가워 남방지역에서는 습열이 성하고 산림이 많은 지대에는 장기나 온역이 생기며 각종 벌레들이 생기고 짐승들이 출몰하는 때이다. 또한 이때는 남방지역이 증수기여서 산사태 같은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라는 때이다.셋째로는 민간전설과 풍습에서 기원한 명칭인데 이를테면 룡주절(龍舟節), 쭝즈절(粽子節), 욕란절(浴蘭節), 녀아절(女兒節), 창포절(菖蒲節), 애엽절(艾葉節), 천의절(天醫節), 초약절(草藥節) 따위가 그러하다. 이외 특히 ‘룡의 날’이라고 하여 룡절(龍節)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端)’은 ‘처음’ 또는 ‘초기’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서의 ‘초(初)’의 뜻도 갖고 있어서 오월(午月)의 첫 번째 오일(午日)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첫 번째 오일(午日)이 5일이기에 단오는 초닷새를 말한다. “당대(唐代)까지만 해도 ‘단오(端午)’라는 단어가 오월에만 한한 것이 아니고 어느 달이나 그달의 초닷새를 다 ‘단오’라고 일러왔다. 그러던 것이 송대(宋代)에 와서 ‘오월 오일’만이 ‘단오’로 부르게 되였다.”(《한족풍속사(漢族風俗史)3》 또한 단오의 ‘단(端)’은 정(正)을 의미하고 오(午)는 중(中)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이날 오시가 바로 정중지정(正中之正)이다. 천상으로 보면 한여름(중하)의 오월(午月) 오일(午日)은 《역경·건괘(易經·乾卦)》의 비룡재천(飛龍在天)과 맞먹는데 이때 이십팔수의 동쪽 창룡칠수(蒼龍七宿)가 바로 정남쪽의 중천에 있으므로 천구운행에서의 가장 중정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역경·건괘》의 구오(九五)의 효사가 “비룡재천(飛龍在天, 利見大人)”이라고 함은 해석이 “마치 룡이 머리를 쳐들고 꿈틀거리며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것과 같다. 대공을 이루어서 앞이 휘황찬란하다. 이때는 도덕이 있고 능력이 있는 웃자리에 있는 큰인물이 출현하는 것이 리롭다”라는 뜻으로 ‘대길 대리’의 상으로 본다. 이처럼 단오는 ‘비룡재천’의 길상일이고 룡과 룡주놀이 문화에는 룡 토템을 시원으로 한 원시적 무술 사유와 룡 숭배 문화의식이 깃들어있다. 이리하여 중국 ‘단오절’의 영어번역도 ‘룡주절’을 의식하여 보통 ‘Dragon Boat Festival’로 쓰고 있다.
조선조시기인 1819년에 김매순이 펴낸 《렬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수뢰(水瀨, 강여울)에 밥을 던져 굴원을 제사지내는 풍속이 있으므로 후에 ‘수리날’이라고 부르게 되였다고 씌여있다. 이는 전국시기의 굴원에 관한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전설은 대체로 이러하다. 굴원은 이름은 평(平), 호는 령균(靈抣)인데 초나라의 정치가이며 애국시인이다. 초나라 회왕(懷王)의 특별한 신임을 받아 벼슬이 삼려대부(三閭大夫)에까지 이르렀으나 간신의 무리가 그를 시기하여 왕께 참소하니 왕이 간신의 말만 듣고 그를 소원하게 되였다. 이에 굴원은 유명한 시 《리소(離騷)》를 지었다. 회왕(懷王)이 죽고 양왕(襄王)이 새로 즉위하자 간신의 무리가 더 기승을 부려 굴원은 끝내 추방되고 말았다. 비분에 넘친 굴원은 마감으로 《회사(懷沙)》 시를 지어 우국충정의 마음을 토로한 후 5월 5일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하여 죽고 말았다. 후세에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해마다 그날이면 대나무통에 쌀밥을 넣어서 물속에 던져 제사를 지내고 또 그의 혼을 건진다 하여 배의 속도겨루기를 했는데 이것이 중국 남방 풍속의 하나인 ‘경도희(競渡戲)’ 즉 ‘룡주놀이’가 되였다고 한다. 이 ‘룡주놀이’의 다른 한 유래는 더 구체적인데 한(漢)나라 건무(建武) 년간에 어떤 사람이 대낮에 장사(壯士) 구회(歐回)에게 와서 말하기를 “나는 옛적 삼려대부(굴원 자신을 가리킴)인데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제지내주는 건 고마운 일이나 그 제물을 문룡(蚊龍)이 항상 빼앗아먹어 난 먹을 수 없으니 제지낼 때 오동잎으로 제물을 싸고 오색실로 동여매여 주면 좋겠다. 이 두 물건은 모두 문룡이 꺼리는 것이다.” 라고 하고는 가뭇없이 사라졌으므로 구회가 이상히 여겨 그대로 했다. 이것이 풍속이 되여 단오날이면 쭝즈(粽子)를 만들게 되였다고 한다. 이 풍속으로 하여 지금도 단오가 되면 중국 방방곡곡에서 쭝즈(粽子)라고 하여 찰밥을 지어 대추 따위를 속에 넣고 대잎에 싸서 만든 음식을 먹는다. 이제는 쭝즈가 거의 일상의 상품화가 되여 우리나라 조선족들도 이런 한족의 단오절 식문화를 받아들여 단오 때가 되면 쭝즈를 별식으로 맛보기도 한다.
우에서 언급했지만 단오절(端午節)의 ‘端午(단오)’라는 어휘가 문자기재로 가장 일찍 보이는 것이 진대(晉代)에 나온 《풍토기(風土記)》에서이다. 하지만 5월 5일을 쇠는 풍속은 훨씬 썩 전에 있었다. 근래에 와서 중국의 많은 학자들이 상기 ‘굴원기념설’에 대해 이는 후세에 와서 부회한 것이라고 하면서 부인하고 있다. 한위(漢魏) 4백 여 년의 그 어떤 문헌기재에도 5월 5일과 관련하여 굴원이 언급되는 것이 없고 그리고 또 전래 민간전설에는 굴원이야기 하나 뿐만 아니라 충신 오자서(伍子胥), 효녀 조아(曹娥), 충신 개자추(介子推), 청백리 진림(陳臨), 월왕 구천(勾踐) 등의 이름도 단오절 기원과 관련되여 여러 가지 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굴원기원설’은 굴원이 사망한 지 몇 백 년도 더 지나서 민간에서 전설로 굳어진 굴원 이야기를 문인들이 가져다 단오절의 기원으로 부풀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사마천의 《사기·굴원렬전(史記·屈原列傳)》에도 굴원이 죽은 날자가 5월 5일이라고 밝힌 것이 없다. 굴원의 사망날자를 5월 5일이라고 밝힌 것은 굴원이 ‘사망’ 후 700여년이 지나서 남조(南朝) 때의 신화지괴소설인《속제해기(續齊諧記)》에서이다.《사기》가 본래 신빙성에서 문제가 있는 건 그렇다 치고 《사기》 이전의 사서에도 굴원을 취급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 《사기》이후 수나라 때의 학자 두태경(杜台卿)은《옥촉보전(玉燭寶典)》이라는 글에서 룡주놀이(競渡)를 하지일의 놀이행사에다 귀속시켰다. 그리고 륙조시기에 편찬된《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도 단오에 쭝즈 먹는다는 말이 없다. 중국 현대시인이며 학자인 문일다(聞一多)선생은 《단오고(端午考)》라는 글에서 ‘단오’를 ‘룡의 명절’로 단정하고 이에 대해 ‘단오절’이 옛날 백월(百越)민족의 룡 토템숭배에서 기원한 것으로 론증하고 굴원기원설을 부정하였는데 이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때문에 단오절 연원은 굴원과는 무관하고 룡주놀이는 룡의 자손으로 일컫는 예전 오월(吳越)지역의 소수민족(문일다는 ‘백월’로 지칭했음)이 5월 5일을 나름대로 룡사(龍蛇) 토템의 제사와 함께 명절로 쇠는 것으로 그 연원이 아주 오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남방의 단오풍습은 주로 ‘룡’토템숭배에 그 연원이 있지만 북방은 지역에 따라 단오날이 다른 양상을 띤다. 단오에 관한 또 한가지 기원설은 두태경의 하지설을 더 심화시켜 론증하면서 단오절이 하지절(夏至節)에서 왔다고 보는 주장인데 그 대표자가 민속학자 황석(黄石)선생이다. 그는 《단오례속사(端午禮俗史)》(1963)란 책에서 선민들의 지혜의 산물인 하력(夏曆)을 근거로 단오절이 하지절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룡주놀이 같은 것도 깊은 의미에서는 역시 악신려귀(恶神厉鬼)를 쫓아내고 역병재앙을 없애버리려는 고대민속에서 온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양수(홀수)를 생기로 여겼던 음양학의 영향을 받아 기수가 겹쳐지면 생기가 갑절 더해진다고 여겨 이런 날들인 3월 3일이나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을 예전에는 중요하게 여겨 민속명절로 굳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단오는 일 년 중 양기(陽氣)가 가장 성하여 ‘천중가절’이라 하여 큰 명절로 지내왔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단오를 고찰한 것이다.
또 다른 기원설은 단오를 ‘룡의 날’이나 ‘천중가절’로 여기고 길상일로 보는 것과는 정반대로 ‘단오날’을 아주 ‘나쁜 달의 나쁜 날’로 보고 단오를 쇠는 것이 그 해로움을 대처하기 위하여 행해진 풍습이라고 하는 주장이다. 예전 선진시기에 북방에서는 ‘오월 오일’을 불길하여 꺼리는 날 즉 ‘기일(忌日)’로 여겼다. 전국시기 제나라 재상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은 오월 오일에 태여났다 하여 하마트면 버려져서 죽을 번 하였다. 왕충(王充)의《론형(論衡)》에도 “정월과 오월에 출생하는 자식은 부모를 죽인다고 여겨 양육하려 하지 않는다(讳举正月、五月子。以正月、五月子杀父与母,不得举也。已举之,父母祸死).”라는 금기를 비판한 대목이 있다.
사실 오월은 기후변화가 심하고 자연재해가 잦으며 벌레나 짐승들의 활동이 극성해지는 시기이므로 사람도 그런 자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재액을 피하고 온역을 물리치며 자연에 적응하여야 하였다. 특히 많은 지역에서는 오월 단오날 오시(午時)에 오독(지네, 독사, 전갈, 벽호, 두꺼비 따위의 독)의 피해가 가장 크다고 여기고 이를 피면하려는 풍습이 생겨났던 것이다. 신께 제사를 지내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고 재앙을 물리치고 무병하기를 바라는 행위이다. 이를테면 단오날 신께 제사를 지내기전 무(巫)들이 행하던 ‘향탕 목욕’도 그중의 일례이다. 굴원(屈原)의《구가·운중군(九歌·雲中君)》에는 강신을 위해 “란초 향탕에 목욕하니 향기 넘치는 (浴兰汤兮沐芳)” 무녀가 나오는 대목이 있는데 몸을 정결히 함에 있어서 오랜 옛날부터 란초가 사용되였음을 알 수 있다. 《대대례기·하소정(大戴禮記·夏小正)》에는 “오월에는 란초를 채집하여 목욕할 때 쓴다(五月,蓄兰为沐浴也).”라는 구절이 있으며 남조(南朝)시기에 와서는 량(梁)나라 사람 종름(宗懔)이 쓴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는 “오월오일을 욕란절이라고 이른다(五月五日谓之浴兰节).”라고 하였다. 단오날 이 풍속이 대개 당송시기에 와서 욕란절이 된 것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단오제는 천제뿐 아니라 지방에 따라 구체적인 인물들이 신의 형상으로 등장하는데 굴원, 조아(曹娥), 장천사(張天師), 종규(鍾馗)… 등을 제사지내며 안녕, 무병, 벽사를 빌었고
특히 민간에서는 단오날에 흙으로 장천사 형상을 빚고 쑥을 꽂아 머리털을 형상하고 마늘을 달아 손을 형상하여 그것을 문우에다 올려놓아 벽사, 피재를 하였다. 장천사 형상을 그려붙이는 곳도 있었고 그런 그림을 팔기도 하였다. 명대에 와서는 민간에 단오를 ‘녀아절’이라고 하여 시집간 딸을 친정에 귀녕하게 하는 습속이 있었으며 돌이 채 안되는 어린애를 외할머니다 맡겨두어 이른바 ‘벽사 피재’를 하기도 하였다. 이른바 타오(躱午) 습속인데 악일인 단오날을 피하려는 의도에서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바 단오절의 유래와 내용에 대하여서 딱히 꼭 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주 오래전(굴원 이전)에 ‘오월 오일’이 중시되여 왔고 제사행위가 있었다는 것과 지방에 따라 기후에 따라 풍습 내용이 다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함의가 달라져 왔다는 것이다. 특히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때에 빈번한 전쟁과 인구의 대량 이동으로 말미암아 중원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광대한 지역에서 민족 융합이 이루어짐에 따라 각지 명절문화와 월령문화가 서로 교류, 융합도 함께 이루어지게 되였다. ‘단오절’이라는 이름이 문헌에 처음 기재된 것이 진대(晉代) 주처(周處)의《풍토기(風土記)》에서부터이다. 이렇게 ‘단오절’은 기나긴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형성된 하나의 정합과정으로서 단오명절의 개념과 내용에 있어서도 각지에서는 나름대로 취사선택을 할 수이 있는 그런 차원에서 정립된 단어라고 볼 수 있다. 굴원전설도 바로 이 시기에 단오와 결연을 맺게 된다.(《한족풍속사(漢族風俗史)2》학림출판사)
하다면 조선민족은 오월오일을 언제부터 ‘단오’라는 의미로 쇠였는가? 우에서 소개한 내용으로 추리해봐도 ‘단오’라는 이름으로 쇤 것은 가장 오래야 진대(晉代)의《풍토기(風土記)》가 나온 그 이후일 것이니 말이다. 그전에 이 단어가 쓰였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한자어휘로 수입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민족은 ‘음력 오월 오일’을《풍토기》나오기 전에 즉 ‘단오’라는 한자어를 부르기 전에 어떻게 호칭했을가? 다른 한자어나 고유어에서 찾아야 하는데 고유어로는 ‘단오날’을‘수리날’이라고 일렀다. 수리날은 무슨 뜻인가? ‘수리날’의 그 유래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ㄱ, 수리란 ‘신(神)’이라는 뜻과 ‘높다’는 뜻으로 ‘높은 신이 오시는 날’이란 뜻이라고 주장하는 설이 있다. 근거로 제주도 무당굿에서 신이 내리도록 세운 대를 ‘수리대’라고 부르는데 이에 비추어 ‘수리날’도 자연히 ‘신이 내리는 날’이라는 것이다.
ㄴ, 수리라는 말은 ‘수두’나 ‘수릿두레’에서 온 것으로 ‘수두’란 명산승지에 자리 잡은 단군의 제단이나 신단을 말하는 것이고 그 둘레에 사는 두레군들이 5월 농사 한철과 10월 추수 뒤에 천지에 기원과 감사를 드리는 그 제전을 ‘수리’ 또는 ‘시루를 올린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ㄷ,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단오날을 속어로 ‘수릿날’이라고 한다. 수리는 우리말로 수레이다. 이날에는 쑥으로 떡을 만들 때 마치 수레바퀴모양의 떡을 만든다. 까닭에 수리날이라고 한다.” 즉 단오날 산에서 자라는 수리취(戌衣翠)라는 나물을 뜯어 떡을 해먹기도 하고 쑥으로 떡을 해서 먹는데 떡의 그 모양이 마치 수레바퀴처럼 둥글기 때문에 수리날이라는 명절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경도잡기(京都雜記)》에서도 수리날(戌衣日)로 쓰면서 수리는 우리말로 수레(車)라고 하였다.
ㄹ, 《렬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는 수리날을 ‘水瀨’라고 하고 물여울로 해석하여 “이 밤(단오날밤)에 물여울에 밥을 던져 굴원을 흠향케 한다.”라고 하였다. ‘수리날’의 어원은 이상 렬거한 네 가지 외에 이날은 ‘해가 머리 정수리에 오는 날’이라는 뜻을 나타낸 말이라고 주장하는 설이 있다. 단오는 단양(端陽) 또는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 자체가 이날 정오에 정수리 바로 우에서 내리비추고 있는 태양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태양을 중히 여기고 기리는 마음에서 여름의 해살이 정수리에 바로 내리 쬐이는 이 날을 명절로 삼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수리날 정오에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다든지 쑥을 머리 위에 꽂는다든지 하는 풍속이 다 이런 까닭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필자의 생각에는 ‘수리날’의 ‘수리’ 어원을 ‘수리→ 술이→술→숟’으로 재구하여 볼 수 있으며 고대문자 ‘首’의 발음과 뜻에도 혹시 련계가 되지 않을가 한다. ‘首’는 상형문자로 머리털이 나있는 ‘머리’를 뜻하며 또한 ‘첫째, 으뜸, 최고, 우두머리’ 의 뜻으로 수리날이 일 년 중 ‘으뜸가는 날’ 또는 ‘최고의 날’의 뜻하는 것이라고 본다. ‘양기가 가장 성하고 해빛이 가장 많은 날, 가장 높고 환한 날’이란 뜻에서 ‘술의날→ 수리날’이 된 것이고 따라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보름날’이 이른바 ‘달의 날(명절)’인데 반하여 이 ‘수리날’은 옛날의 이른바 ‘해의 날(명절)’이라고 하는 주장에 근거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생각을 해본다. 이 설이 성립된다면 한마디로 ‘수리날’은 본디 ‘해를 제지내는 날’인 것이다. 그리고《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삼척의 풍속에 그 고을 사람들이 오금(烏金)으로 만든 비녀를 작은 상자에 넣어서 동헌 동쪽 모퉁이에 있는 나무밑에 숨겨두었다가 매해 단오날이 되면 아전이 그것을 꺼내여 제사를 지내고 다음날 다시 감추어 둔다. 전설에 따르면 그 오금비녀는 고려 태조 때의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뜻이 무슨 리유인지 알 수 없고 또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 행사가 계속된다. 이 행사를 관에서도 금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기재한 것이 있는데 달리 해석할 길이 없는 걸 보아 단오제사에 상징의미로 비녀는 머리(首)와 련계되고 동쪽은 ‘해’와 련결되여 천신제사에 그 뿌리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더 고증이 필요할 것 같다. 예전의 북방 여러 민족들도 흔히 이 날을 더욱 숭상하여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로 삼았다.
예전에 금(金)나라에서는 이 날에 하늘에 제사지내고 활쏘기를 하고 격구(擊毬)놀이를 하는 등 아주 성대한 놀이를 벌리여 온 나라 사람들이 즐겼다고 한다. 북방은 여름계절이 늦게 시작되고 또 빨리 지나가기에 사계절 개념이 아니고 예전의 겨울과 여름 2계절 개념으로 볼 때 음력 5월 5일이 뜻깊은 날이였던 것이다. 이런 수리날의 개념을 깔아두고 후에 중원문화의 단오문화를 수용하게 되였기에 조선민족은 룡주문화를 수용함에 있어서는 주로 굴원과 문화결연이 된 단오문화만을 받아들이였다. 즉 조선민족단오문화에서 굴원이 절대적인 문화원형으로 자리잡게 되였고 그외의 비슷한 전설들 이를테면 오자서이야기라든가 개자추이야기 같은 것은 조선민족 단오문화에는 발을 붙이지 못하였다. 이는 오랜 세월을 두고 내려오면서 량반문인사대부들의 유가정통사상에 기초하여 중국 단오문화를 수용할 때 특히《초사(楚辭)》를 중시하고 사랑한 것이 그 바탕이 되여 굴원을 수용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굴원문화는 조선문화발전에 아주 큰 영향을 주었다. 고려 때에는 소체(騷體)문학이 한때 성행하였는데 허다한 문인들이 초사를 모방하여 부를 지었다. 포은 정몽주(鄭夢周)의《사미인사(思美人辭)》가 바로 대표적인 소체시가이다. 조선조 시기에도 초사를 열독하고 연구하는 것이 류행되였는데 당시 저명한 학자 김시습(金時習)은《리소(離騷)》를 모방하여《의리소(擬離騷)》,《조상루(弔湘累)》,《멱라연(汨羅淵)》 같은 작품을 지어 당시 조정의 간녕배들을 조롱하였다. 조선문학사에서 ‘단오절’과 ‘굴원’은 한데 얽히여 표현되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시조는 두말할 것도 없고 근대 소설에서도 “오월이라 단오 명절은 굴삼려(굴원)의 넋이로다. 멱라수 맑은 물에 조리 드는 아이들아 다투어 일지 마라 천고원사 굴삼려의 넋을 건져 무엇하리.”(백화성문학전집) 등 ‘단오’와 ‘굴원’을 한데 묶어 표현하고 있다. 이만치 조선민족의 단오문화 수용은 룡주문화라기보다는 굴원에 맞춰져 있었다. 이는 조선민족의 단오문화라는 민속문화에 굴원을 수용함으로써 고결하고 풍아한 운치를 더해줌과 동시에 굴원의 애국정신을 심어주고 발양하는 것으로도 된다.
아래에 조선민족의 재래의 단오맞이 풍속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단오날에 새옷을 입는데 이를 단오빔(비음)이라고도 한다. 빔은 ‘명절이나 잔치 때에 새 옷을 차려입는 것 또는 그 옷’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보통 설빔, 단오빔, 추석빔이 있다. 《세시풍요》의 단오에 관한 시 중에 “단오에 입는 옷을 술의(戌衣)라고 한다(端午衣曰戌衣).”는 말이 있다. 단오명절을 맞이하여 특별히 지어 입는 옷이다. 단오빔은 설빔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옷감의 재료에서 차이가 있다. 이날 젊은 부녀자들은 록색 저고리에 빨강치마 즉 록의홍상(綠衣紅裳) 차림이고 지체있는 부인들은 계절에 맞게 흰 모시저고리에 파란 모시치마를 입기도 한다.
《동국세시기》에는 “단오에 부채를 서로 선사하고 소녀들이 청홍의 새 옷을 입고 창포 삶은 물에 목욕도 하고 머리도 감는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남녀의 새 옷, 청홍의 새 옷, 새로 지은 초록색 저고리와 붉은 치마와 같은 표현은 단오에 새 옷을 입었음을 말한다. 팔월 추석과 정월 설, 5월 단오 같은 큰 명절에는 아이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 옷을 선물 받는 특별한 날이다. 색동은 주로 돌부터 6, 7세 어린아이의 저고리, 마고자, 두루마기에 사용되었다. 특히 까치설에 즐겨 입는다고 하여 까치저고리, 까치두루마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색동을 제외하고도 단오가 되면 추석이나 설 때와 같이 새 옷을 만들어 입거나 준비해두었던 좋은 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창포 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어 기기다 ‘수복(壽福)’이란 두 글자를 새기고 그 끝에 연지를 발라서 머리에 꽂는다. 이러면 사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역시 단오라는 이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명절에 조신하였음을 말해준다.
단오제사: 단오를 맞이하여 지내는 조상제사를 말한다. 절사(節祀)란 계절이나 명절에 맞추어 지내는 제사를 가리킨다. 단오날 아침 집집마다 수리취떡과 전을 마련하여 조상님께 제를 올리며 집안의 평안과 오곡의 풍년 그리고 자손의 번창을 비손한다. 일반 제사와는 다르게 집안의 가장이 술을 한 잔 붓고 절을 두 번 하는 것으로 끝마친다.《례기(禮記)》에서는 천자가 중하(中夏) 즉 오월에 “앵두를 제수로 삼아 먼저 사당에 올린다(羞以含桃.先荐寝庙).”고 하였는데 여기서 ‘함도’란 곧 앵두를 가리킨다. 단오 때 앵두가 익으므로 제철 과일이라 하여 사당에 천신하는 것이다. 앵두가 익을 때면 남녀들이 앵두가 있는 야외로 가서 노는데 이를 앵두모임이라 한다. 단오에는 마을마다 수호신에게 공동체 제사의례를 지내는 경우가 많다. 가정의 명절제사는 일반 제사와는 다르게 집안의 가장이 술을 한 잔 붓고 절을 두 번 하는 것으로 끝마친다. 예전에는 이렇게 집에서는 명절절사를 지냈지만 후에 점점 이런 행사가 사라지고 지금은 단오절사를 지내는 것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일부 산간 지역에서 산멕이기라는 제를 한 것이 있었는데 원래는 예전에 4월 초순에 산간지역 화전민들이 하는 굿이였지만 동북 산악지대의 기후상 특성으로 단오날에 굿이 아닌 제를 지냈다. 대개 단오날 동이 틀 무렵 산에 올라가 먼저 나무에 산멕이기줄을 걸어놓고 상차림하고 잔을 올리고 절을 하며 소원을 빈다. 제가 끝나면 제물을 조금씩 덜어 내여 산에 두는데 산신령께 바치는 것이라 한다. 이른 새벽에 산에 가서 제를 지내고 해가 뜰 때쯤 내려온다. 역시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다.
단오 음식: 단오에 먹는 민속음식으로는 수리취떡, 쑥떡을 비롯한 여러 가지 떡과 오이소박이, 앵두화채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수리취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서 어린잎은 식용하는데 동북아의 산이나 들에 분포되여 있다. 옛날에는 쑥을 구설초(狗舌草)또는 술의초(戌衣草)라 하여 수리치와 구별하지 않고 같은 이름으로 사용했다. 수리취떡은 수리취를 채취하여 생것은 두드려 삶아서 차좁쌀가루 또는 쌀가루에 버무려 멥쌀가루와 섞어 떡을 만든 음식이다. 쑥떡도 같은 방법으로 한다. 쑥절편은 쑥을 골라 데쳐서 꼭 짜가지고 떡을 할 때 넣고 함께 쳐서 둥글게도 만들고 갸름하게도 만들어서 참기름을 발랐다. 쑥송편은 쑥을 깨끗이 씻어서 삶아 쌀가루를 넣고 고루 섞이도록 잘 주물러서 파란색이 나도록 하여 쪄서 만든 음식이다. 향긋한 쑥내음 때문에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별미이다. 단오에는 또 명절음식으로 웃기떡을 해서 먹는데 각서(角黍)라고 한다. 찹쌀가루에 대추를 이겨 섞고 꿀에 반죽하여 깨소나 팥소를 넣어 송편처럼 만든 다음 기름에 지진 음식으로 떡음식의 하나이다. 앵두화채를 만드는 방법은 먼저 잘 익은 빨간 앵두를 깨끗이 씻어서 살짝 씨만 뺀다. 다음 물에 꿀이나 엿을 넣고 끓인 후 식힌다. 그리고 앵두의 절반 량을 갈라서 채에 밭아 즙을 내여 꿀물과 섞으며 나머지 앵두는 화채그릇에 담고 거기에 앵두꿀물을 부은 다음 잣을 띄운다. 또 다른 방법은 앵두를 따서 깨끗이 씻고 씨를 빼서 설탕이나 꿀에 재워 두었다가 먹을 때 오미자 국물에 넣고 실백을 띄워 낸다. 그러면 시원하고 달콤한 화채가 된다.
창포주(菖蒲酒)·각서(角黍)·어알탕: 단오에는 창포로 빚은 창포주(菖蒲酒)를 마시는데 창포주 빚는 법은 다음과 같다. 창포를 끓인 물을 멥쌀가루에 붓고 죽을 쑤듯 버무려서 범벅을 만든 후 차게 식혔다가 누룩을 넣어 골고루 저은 다음 밑술을 잡아주고 술독에 담아 단단히 봉한 후 스무날 발효시킨 후 불순물을 걸러낸다. 찹쌀을 불궈 고두밥을 지어 차갑게 식힌 후 그것을 밑술에 넣고 고루 버무려 덧술로 술독에 담는다. 창포는 늪이나 도랑의 가장자리에서 자라는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향기가 있다. 뿌리줄기는 통통하고 마디가 많으며 잎은 뿌리줄기에서 뭉쳐나고 가는 선 모양이다. 양력 6, 7월 경에 연록색 꽃이 꽃줄기 끝에 수상화서로 피고 열매는 긴 타원형의 붉은 장과를 맺는다. 뿌리는 약용한다. 단오에 창포물을 만들어 머리를 감는데 쓰거나 술을 빚는데 쓴다. 단오에는 또 웃기떡을 해서 먹는데 각서(角黍)라고 한다. 찹쌀가루에 대추를 이겨 섞고 꿀에 반죽하여 깨소나 팥소를 넣어 송편처럼 만든 다음 기름에 지진 음식으로 떡음식의 하나이다. 어알탕은 소고기 대신 민어 같은 흰 살 생선의 살을 다져 양념하여 완자를 빚어 넣고 끓인 탕이다.
단오명절의 속신과 금기: 우리 민족도 단오날을 세상 만물이 살아 움직이는 기운이 가장 왕성한 날로 여겨 다른 명절보다 여러 가지로 금기(禁忌)가 많았다. 그래서 놀이나 심지어 음식에도 병이나 액을 물리치기 위한 주술적인 내용이 많았었다. 그중 적지 않은 것들 이를테면 ‘단오날 친정나들이’ 같은 것이 한족의 ‘녀아절’에서 온 것처럼 한족 단오문화를 수용한 것이다. 단오날에는 산이나 들에 나가 약쑥도 뜯는데 원래는 오시(午時)에 뜯는 쑥이 약효가 좋다고 하지만 지금은 북방 한족 풍습의 영향을 받아 꼭두새벽에 나가 쑥을 뜯어온다. 단오장(端午粧)은 음력 5월 5일 단오에 나쁜 귀신을 없앤다는 뜻에서 행하던 녀성들의 치장인데 벽사의 의미를 담아 옷을 해 입기도 하고 창포탕(菖蒲湯)에 머리를 감기도 하며, 여러 가지 치장을 하는 것을 말한다. 《동국세시기》에서는 창포탕에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고 목욕을 하고 홍색과 록색의 새옷을 입으며, 머리에는 창포 비녀를 꽂는 것을 단오장이라 했다. 그리고 《세시잡기》에서는 단오날 아이들을 위하여 창포를 베여 만든 작은 인형이나 호리병박 모양의 장신구를 차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다. 단오날 창포 끓인 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에 윤기가 나고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다고 하여 녀자들은 창포잎과 뿌리를 삶아 창포탕을 만들어 머리를 감았다. 창포탕에 머리를 감고 창포비녀를 꽂는다. 창포비녀는 창포 뿌리를 깎아서 만든 것으로서 부녀자들이 역병을 물리치려는 액막이로 꽂았다. 붉은 연지를 바른 창포비녀를 머리에 꽂으면 액을 물리치고 두통이 생기지 않고 무병하다고 믿었다. 그 때문에 농가에서는 습지나 도랑에 창포를 일부러 심어두기도 하였다.
또 단오날은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날이기에 이날 부적을 쓰면 잡귀를 물리칠 뿐만 아니라, 집안의 재액도 모두 없앨 수 있다고 한다. 단오날이 되면 그해 불길한 것을 제거하기 위해 주부가 절에 가서 부적을 받아와 집안의 방문 우에나 부엌 같은데 벽에 붙였다. 이런 부적을 단오부(端午符), 천중부적(天中符籍), 치우부적(蚩尤符籍)이라고도 한다. 또 장명루(長命縷)라는 것이 있는데 빨강, 노랑, 파랑, 감장, 하양의 오색실로 짜서 만든 팔찌인데 귀신과 병화를 물리치고 오래 살고 건강하라는 뜻으로 단오날에 팔목에 낀다. 속명루(續命縷)라고도 부른다. 단오날 풍습으로 지금도 어김없이 전승되여 지켜지고 있는 것이 약쑥을 베여 한 묶음 대문에 놓아두거나 달아매두면 재액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 풍속이다. 말린 약쑥은 아플 때 뜸을 뜨거나 먹기도 했다. 예전에는 수리취를 말려서 부싯깃으로 이용했다. 농사의 기풍을 위해 나무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놓아 많은 열매가 열리기를 비는데, 특히 단오 무렵에는 대추가 막 열리기 시작하므로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고도 한다. 그리고 단오에 도장을 만들어 두면 신수가 좋다고 하여 모과나무나 대추나무로 도장을 만들어 둔다. 그리고 주술용, 약용으로 쓰는 마늘도 단오날에 캐낸 것이여야만 효력이 크다고 한다. 애호(艾虎)는 쑥, 대쪽, 헝겊 따위로 만든 호랑이 형상인데 녀자들이 단오에 이것을 만들어 머리에 이면 재액을 물리친다고 한다. 단오에 내리는 비를 단오물이라고 부른다. 단오물은 실상 단오날 비가 오느냐 안 오느냐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기후점(氣候占)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오물에 대한 해석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어떤 곳에서는 단오에 비가 오면 논농사에 좋다고 한다. 대부분 지방에서는 단오에 비가 오는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지만 극히 일부 지방에서는 달리 좋지 않게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각 지역의 자연지리특성에 따라 기후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오부채: 단오부채란 단오날에 선물로 주고받는 부채를 말하는데 단오선(端午扇), 절선(節扇)이라고도 한다. 단오선은 모양과 재료에 따라 접선(摺扇), 합죽선(合竹扇), 단선(團扇) 등으로 분류된다. 예전에 조정에서 단오를 맞아 신하들이 단오첩을 올리면 대궐의 각 전(殿)의 기둥에 붙인다. 지방에서는 단오 때 부채를 만들어 진상하고 친한 사람에게 차등 있게 보낸다. 그래서 예전에 시골에서 생색을 내는 것은 여름에는 부채요 겨울에는 책력이라고 하였다. 흰 살로 이루어진 부채를 백첩(白貼)이라 하고 살에 옻칠한 것을 칠첩(漆貼)이라 하는데 살대가 40~50개나 되는 큰 부채이다. 부채의 종류는 승두선(僧頭扇), 어두선(魚頭扇), 합죽선(合竹扇), 반죽선(斑竹扇), 외각선(外角扇), 내각선(內角扇), 살 넓은 것, 좁은 것, 고리 있는 것, 고리 없는 것이 있었을 뿐이 아니라 색채도 다양했다. 예전에는 단오절이 되면 지방에서 부채를 진상하면 임금이 그것을 신하들에게 하사한다. 그러면 부채를 받은 이들이 그것을 또 일가친척과 친지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풍습이였다. 이런 단오명절 때의 진선과 사선의 풍습에 대해서는 《동국세시기》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공조에서는 단오선을 만들어 바친다. 그러면 임금은 그것을 각 궁에 속한 하인과 재상, 시종에게 나누어준다. 그 부채 가운에 가장 큰 것은 흰 화살 같은 대나무살이 40개부터 50개에 이른다. 이것을 백첩이라 하고 칠한 것을 칠첩이라 한다. 부채를 얻은 사람은 대개가 부채에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그리거나 기생,무당들이 가지는 부채에는 버들가지, 복사꽃, 련꽃 나비, 붕어, 해오라기 등 그림을 그리기 좋아한다. … 전라도와 경상도의 감사와 통제사는 절선(節扇)을 올린다. 그리고 또 예에 따라 조정의 신사(神祀)와 친지 등에 선사한다. 그리고 부채를 만든 수령도 진상하고 선사한다.”라고 하였고 《렬양세시기》에서도 “공조와 전라도, 경상도 두 감영과 통제영에서는 단오가 되면 부채를 만들어 진상한다. 그러면 조정에서는 이를 시종관 이상 삼영에까지 모두 례에 따라 차이가 있게 나누어준다. 그러면 부채를 얻은 사람은 다시 그것을 자기의 친척, 친구, 묘지기, 소작인에게 나누어준다. 그러므로 속담에 시골에서 생색내는 것은 여름에는 부채요, 겨울에는 달력이라 했다.”라고 하였으며《경도잡지(京都雜志)》에도 “전라도와 경상도의 감사와 병사는 부채를 조정과 친구들에게 보내준다.”는 등 기록이 있다. 신하들이 단오첩을 올리면 대궐 각 전(殿)의 기둥에 붙인다. 지방에서는 단오 때 부채를 지어 나라에 진상하고 친한 사람에게 차등 있게 보낸다.
대추나무시집보내기: 음력 5월 5일 단오에 대추나무 열매가 많이 열리도록 대추나무를 시집보내는 풍속을 말하다. 《동국세시기》에는 “단오날 대추나무를 시집보내는 것은 정오가 좋다. 또 단오날 정오에 도끼로 여러 과일나무의 가지를 쳐내야 과일이 많이 달린다. 지금의 풍속은 이를 본뜬 것이다.”라고 했다. 대개 과일나무시집보내기는 정월 초하루나 정월 보름날에 행하는 풍속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추나무 시집보내는 풍속도 단오날과 정월초하루에 행한다는 두 기록이 있어 시기가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지만 대추나무는 주로 단오날에 행하는 풍속으로 전해져 온다. 고대중국의 기록인 《농상의식촬요(農桑衣食撮要)》에는 “오월(五月) 오일(午日)에 대추나무 시집보낸다고 하여 도끼로 나무 위를 두루 잘 두드리면 열매가 크게 맺히고 맛도 좋아진다.”라고 했다. 반면 《농상집요(農桑輯要)》에는 “정월 초하루 해가 뜰 때 도끼를 뒤집어 얼룩얼룩한 방망이로 두드리는 것을 이르러 대추나무시집보내기(嫁棗)라고 하는데 두드리지 않으면 꽃은 피지만 열매가 없고 자르면 대추가 시들거나 떨어진다.”라고 하여 정월 초하룻날 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두 기록의 시기가 다르지만, 도끼를 사용하여 두드리는 방법은 동일하다. 대추나무를 시집보내는 풍습은 사람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것과 마찬가지로 식물도 혼인을 하여야 열매를 맺는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오날 민속놀이
중국조선족은 단오명절의 대부분 풍속을 전승하여 왔다. 뿐만 아니라 단오날이 되면 민속놀이 큰 행사로 운동회까지 열군 하였다. 운동회 주요종목은 바줄당기기(줄다리기), 씨름, 그네뛰기, 널뛰기, 배구, 축구 등이고 어떤 곳에서는 장기시합도 종목에 넣었다. 마을별로, 현(縣) 별로, 도시별로 하는 경우도 있고 더 범위를 넓혀 운동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문헌기재에는 1913년에 연길 국자가에서 이틀간 운동대회를 하였는데 룡정 명동중학교 학생들이 참가한 력사기록이 있다. 1949년 새 중국 탄생 후 단오명절을 경축하는 이런 조선족 운동대회는 줄곧 지속되여 발전되다가 ‘문화대혁명’ 때 잠깐 중단되였고 개혁개방이 되면서 다시금 활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전해내려 오던 씨름, 그네뛰기, 널뛰기는 민간에서 대중적인 오락놀이로 계속 성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우수한 국가 민족체육 경기종목으로 발전되였다. 그리고 조선족씨름은 2011년 5월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에서 비준한 국가급 무형문화유산확장종목 명부에 오르기도 하였다.( 《사진과 함께하는 중국조선족 무형문화유산 산책》참조) 아래에 대중들이 익히 아는 단오날 민속놀이 몇가지를 다시 한번 반추해보기로 한다.
그네뛰기: 그네의 유래에 대하여《동국세시기》에서는 “《고금예술도(古今藝術圖)》에 말하기를 북적(北狄)들이 한식날에 그네뛰기를 하며 경쾌하게 뛰여오르는 훈련이다. 그것을 후일에 중국녀인들이 배운 것이다. ”라고 하였다. ‘북적’이란 예전에 북쪽 지방에 사는 민족을 중원에서 낮잡아 이르던 말이다. 그네뛰기는 북방 소수민족의 놀이였던 것이 당나라 때 중원에 수용되여 한식날 당나라 궁중에서 반선희(半仙戲)라는 이름으로 성행되였고 그 놀이가 단오날로 옮겨왔다고 한다. 일명 추천이라고도 하는 이 그네뛰기는 우리 민족에게는 민족적 정서가 매우 짙은 전통적인 민속놀이이다. 그네뛰기는 무릇 녀성이면 로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참여할수 있는 놀이로서 젊은 녀인들은 너나없이 그네터에 가기를 즐겼고 중년부인들도 뒤떨어질세라 한몫 끼였으며 나이가 많은 녀성들도 앉음그네나마 뛰여보는 것이 풍속으로 되였다. 또한 그네뛰기는 주로 지역적으로 성행되는 강강술래나 놋다리밟기 같은 놀이와는 달리 전 민족적인 공통적인 놀이로서 단오날이거나 추석날이면 방방곡곡 우리 민족이 모여사는 곳이면 그네뛰기가 벌어졌고 그네터에는 부녀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네뛰기를 하려면 놀이기구인 그네가 있어야 한다. 그네는 큰 나무의 가로 뻗은 큰가지나 땅 우에 세운 두 나무기둥 우에 횡목을 걸쳐놓고 거기에 긴 바줄을 매여 늘이고 줄 끝에 발판을 달아 만든다. 그리고 줄에는 무명으로 된 안전줄을 매단다. 그네줄의 길이는 보통 10메터 좌우로 한다. 그네뛰기에는 한 사람이 뛰는 외그네와 두 사람이 마주 서서 함께 뛰는 쌍그네가 있다. 그네뛰기는 승부를 겨루는 경기놀이로서 그 경기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로 그네앞에 있는 높은 나무에서 일정한 나뭇가지나 꽃 가지를 목표물로 정하고 그것을 발끝으로 차거나 입으로 무는것 으로 내기를 하였다. 이것이 가장 일찍부터 있었던 경기방법이다 둘째로 그네 앞쪽에 방울줄을 높이 달아놓고 그것을 차도록 하는 것이다. 경기의 진척에 따라 줄을 조종하여 방울줄을 점점 높여감으로써 그네가 오르는 높이를 측정하였다. 셋째로, 그네줄 발판밑에 자눈금이 표시되여있는 줄을 매여 놓고 그네줄이 정지한 지점으로부터 공중에 올라간 높이를 측정하여 승부를 결정하는 방법이다. 이 세 가지 방법가운데서 방울을 차는 방법이 가장 편리하고 경기상황에도 알맞기에 오래 동안 이어지고 있다. 그네뛰기는 오랜 전통을 지닌 조선녀성들의 민족적인 감정 정서에 맞는 민간놀이이고 특히 녀성들의 복부 힘을 키워주고 대담성과 용감성을 키워주는 좋은 전신운동일 뿐만 아니라 경쾌하고 신바람 나는 놀이여서 단오명절의 명절분위기를 한껏 올려주는 민속적 의의가 있는 놀이이다. 그네뛰기는 1986년 2월에 국가체육위원회에서 《그네뛰기경기 규칙(초안)》을 제정하였고 같은 해에 전국 소수민족체육운동회 정식 경기종목으로 확정되였을 뿐만 아니라 2006년에는 ‘널뛰기’와 함께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에서 비준한 제1차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적 종목명부에 오르기도 하였다. ( 리임원 등 저《사진과 함께하는 중국조선족 무형문화유산 산책》참조)
씨름: 씨름은 두 사람이 맞서서 힘을 겨루고 재주를 부려 상대를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하는 경기놀이이다. 조선씨름은 조선민족이 예로부터 즐겨온 오랜 력사를 가진 전통적인 민속경기의 하나이며 남성들의 대표적인 놀이이다. 씨름은 일찍 4세기경으로 추측되는 옛무덤벽화에도 나오는데 두 사람이 서로 허리를 잡고 씨름하고 그 옆에 구경 혹은 심판을 하는 사람이 서있는 광경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씨름이 아주 오래전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그 씨름그림을 18세기의 씨름그림과 대비해보면 옷차림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씨름하는 기본 방법은 거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씨름은 단오날의 남자들의 놀이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다. 각지에서는 단오날이면 반드시 씨름대회를 열었다. 씨름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두 사람이 마주 꿇어앉아서 각기 오른손으로는 상대자의 허리 샅바를 잡고 왼손으로는 상대자의 다리샅바를 잡는다. 피차 준비가 다 되면 심판원의 호령에 따라 일시에 일어나서 서로 들고 걸고 다리를 안으로 감고 밖으로 감으며, 잡아 두루고 일어나는 등 여러 가지 기교로 싸워 먼저 넘어지는 이가 지는 것인데 누구든지 어느 한쪽이 먼저 몸이나 손이 땅에 대면 지는 것으로 된다. 흔히 아기씨름, 중씨름, 상씨름으로 나뉘는데 아기씨름은 보통 샅바를 쓰지 않는다. 씨름형식에는 바른 씨름(오른씨름), ‘왼씨름’과 ‘띠씨름(허리띠씨름)’이 있다. ‘오른 씨름’이란 왼쪽 다리에 샅바를 끼고 고개와 어깨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하는 것이고 ‘왼씨름’이란 샅바를 오른쪽 다리에 끼고 왼쪽 어깨를 대고 하는 것이며 ‘띠씨름’이란 허리에다가 띠를 매어 그것을 잡고 하는 것이다. 그외 샅바없이 하는 민둥씨름, 그냥 선채로 하는 선씨름도 있다.
강릉단오문화제
씨름을 하는 데는 배지기, 등지기, 딴죽걸이, 무릎잡이, 꼭두잡이, 안치기, 접치기 등의 여러 가지 씨름수가 있는데 례하면 샅바를 쥔 채 상대편을 앞으로 당겨서 배 위로 들어 올린 후 옆으로 돌려 넘어뜨리는 배지기 씨름수만 하여도 ‘왼배지기’, ‘오른배지기’, ‘엉덩배지기’, ‘맞배지기’ 따위가 있다. 주로 팔을 리용하는 씨름수를 ‘팔재간’이라고 하는데 ‘안무릎치기’, ‘뒷 무릎치기’, ‘등치기’, ‘덜미잡이’ 등이 있고 주로 다리재간을 리용하는 씨름으로는 낚시걸이, 다리후리기, 안걸어 젖히기, 발등걸이 모두걸이, 맞걸이, 샅걸이 등이 있다. 씨름군 중에서 힘이 세고 손이 빠르고 하여 련전련승하는 이를 ‘판막음’ 또는 ‘판막이’라고 한다. 라윤출의《조선의 씨름》(1958)에 따르면 예전에는지역에 따라 8도 씨름이 대동소이하게 약간씩 다른 지방특점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반도 중부 서울, 경기지역은 매년 봄과 가을에 씨름경기가 펼쳐지는데 바른씨름과 왼씨름 두가지를 따로따로 진행하였다. 일부 지방에서는 허리띠시름만 하는데도 있었다. 평안도씨름은 된샅바걸이와 망걸이 식으로 경기가 진행되였고 황해도씨름은 왼샅바걸이와 개량씨름방식을 적용하는데 사월초파일, 오월단오날에 그네뛰기와 함께 큰 씨름놀이가 벌어지며 가을 중양절에도 진행한다. 농악이 울리고 우승자에게는 기묘하게 그린 탈을 얼굴에 씌워주고 군중들은 탈춤을 위시하여 한바탕 춤판을 벌린다. 황해도씨름에서의 개량씨름이란 다리 샅바 길이를 80센치메터로 하고 왼손을 적수의 다리 샅바에 끼우지 않고 다만 두가닥을 모아 잡으며 오른손으로 적수의 허리샅바를 잡되 적수의 허리 중추이상을 넘어가지 않게 하려는 형식이다. 경상도 씨름대회는 주로 대보름날과 2월에 하는데 제물을 성황당 고목 밑에 차려놓고 제를 지내고 농악을 울리며 마을을 단위로 한다. 단체전이 있고 개인전도 있는데 특히 개인전이 치렬하다. 단오 같은 여름철에는 풀베기좋은 구역과 좋지 않은 구역을 씨름의 승패로 쟁탈하는 경기가 진행된다. 논물대기를 먼저하는 내기도 씨름으로 결정하는 것도 있고 이외 풍년을 축원하는 씨름놀이도 있다. 함경도씨름은 역시 오월단오에 그네뛰기와 함께 크게 벌어진다. 이외 팔월추석에 하는 씨름도 있고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하는 씨름놀이도 있다. 함경도 씨름은 주로 느슨샅바를 걸고 경기를 진행한다. 느슨샅바 씨름이란 약 1메터 길이의 샅바를 적수의 오른편 다리에 감고 나의 오른편 팔을 거기다 끼우되 샅바를 꼬지 않고 느스하게 끼우고 진행하는 씨름형태이다. 느슨샅바를 끼고 하기 때문에 기술을 비교적 다양하게 발휘할 수 있다. 충청도 씨름은 칠월칠석이 그해 씨름이 시작하여 대체로 팔월까지 지역을 바꿔가며 계속된다. 씨름판이 벌어지기 전에 한바탕 오락판이 벌어지는 풍습이 있다. 대체로 개량씨름을 적용하고 대전씨름판은 띠씨름이다. 전라도씨름도 칠석부터 시작하여 9월에 이르러야 끝나는데 민족기악이 타지역보다 우세여서 전반 씨름대회에 음악연주가 아주 다채롭다. 왼씨름, 바른씨름 두 방식으로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를 제비를 뽑아 결정한다. 중국조선족은 전에는 민간에서 ‘경상도마을’, ‘평안도마을’ 로 불리는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팔도씨름의 거의 모든 방식을 나름대로 다 전승하여 왔으나 그중에도 함경도 씨름방식이 가장 널리 보급되였고 후에는 발전, 개진되면서 오늘의 중국조선족씨름으로 고착되였고 규범되였다. 예전에는 단오뿐 아니라 농한기에도 농민들의 놀이로서 성행하였는데 예전부터 향촌에서는 흔히 1등상으로 황소 한 마리를 주고 그 외에 또 광목 등 농가의 생활필수품을 주었다. 조선민족은 씨름을 몹시 즐겨 명절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씨름을 많이 하였다. 샅바를 끼지 않고 하는 ‘민둥씨름’과 선채로 하는 ‘선씨름’ 등 장난 씨름은 주로 청소년들이 많이 하였다. 씨름은 체력과 기술과 투지를 조화롭게 활용하는 운동이다. 씨름은 전신의 근육활동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기에 신체를 조화롭게 발달시킬 수 있다. 또한 상대를 넘어뜨리는 기술에 따른 여러 가지 몸동작을 필요로 하기에 기초적인 신체운동능력을 길러준다. 그리고 기민하고 지구적인 근육운동으로 순발력과 강건한 투지도 길러준다. 조선족씨름은 특히 지난세기 개혁개방후인 1989년 8월 15일 전국조선민족체육초청경기가 길림성 조선족자치주 수부 연길에서 열린 씨름대회를 계기로 획기적인 발전을 하여 왔다. 현재 씨름은 조선족이 집거해 사는 곳이면 어디나 씨름이 보급되여 있어서 조선족인민대중이 즐겨하는 민속놀이로 되고 있다. 조선족씨름은 2011년 5월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에서 비준한 국가급 무형문화유산확장종목 명부에 오르기도 하였다.( 리임원 등 저《사진과 함께하는 중국조선족 무형문화유산 산책》참조)
바줄당기기: 바줄당기기는 ‘줄다리기’라고도 하는데 여러 사람이 편을 갈라서 굵은 바줄을 마주 잡고 당겨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서 대보름날, 단오날 등 민속명절에서 이채를 띠는 군중성적인 운동이다. 본래는 정초부터 시작하여 대보름날에 성황을 이루는 이 바줄당기기 행사인데 단오에도 치러지군 하였다. 처음은 열두서너살쯤되는 소년들이 두편으로 갈라져 가지고 바줄당기기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이것을 애기줄당기기라고 하였다. 바줄은 일반적으로 직경 이 10센치메터 정도 굵은 바줄을 쓰는 것이 보통이였다. 후에 지난 세기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족 일부 마을에서는 바줄당기기를 할 때 여러 갈래의 새끼를 한데 꼬고 엮어서 직경이 1메터나 되게 만든 줄을 썼고 수백명이 편을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는 장관을 연출되기도 하였다. 바줄은 굵고 수백 메터나 되는 긴 것이였다. 바줄당기기는 두 마을 또는 두 고을사이의 대항으로 진행되였는데 고을과 고을사이의 경기를 할 때는 두 편의 인원이 수백 명이나 되였다. 신호에 따라서 바줄당기기가 시작되면 각 편은 원줄에 늘여놓은 손아귀에 쥘 수 있는 2~3m쯤 되는 길이의 수많은 동줄에 달라붙어 서로 있는 힘을 다하여 당긴다. 드디여 승부가 결정되면 이긴 편에서는 진 편의 바줄까지 함께 둘러메고 의기양양해서 농악대를 앞세우고 자기 마을로 돌아갔다. 바줄당기기는 줄 하나를 통하여 전체 참가자들의 힘과 마음을 한데 묶어세우며 단결된 힘을 보여주는 집단적인 놀이로서 지금은 이미 전 사회적으로 보급된 군중성적인 체육항목으로 발전하였다.
널뛰기(跳板戱): 널뛰기는 설날, 정초에 녀성들이 즐겨하는 대표적인 놀이인데 단오날 행사에도 등장하군 하였다. 녀성들이 둘로 나뉘어 긴 널빤지의 중간에 둥근 짚단을 받치고 양쪽에서 서로 균형을 잡아가며 발로 굴러서 서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는 놀이인데 답판(踏板), 도판(跳板), 초판희(超板戱), 판무(板舞)라고도 한다. 승부는 어느 한쪽이 균형을 잃어 널에서 떨어질 때에 정해진다. 주로 설날, 정초에 놀지만 경우에 따라 정월대보름, 첫 룡날(상진일), 정월 16일 귀신날과 같이 특정한 날로 국한되기도 하며 5월 단오, 8월 추석 등 민족적인 큰 명절에도 성행된 놀이이며 지금은 민족체육운동의 한 종목으로까지 되여 환영을 받고 있다. 널뛰기 유래에 관련된 몇 가지 설로 하나는 옛날 죄를 지은 두 남자가 옥 속에 갇혀 있었다. 이들 부인 중 한 사람이 옥에 갇혀 있는 자기 남편의 얼굴을 보고 싶어 다른 죄인의 아내와 공모하여 널을 뛰면서 담장 너머 옥에 갇혀 있는 남편들의 얼굴을 엿본 데서 유래되였다고 하며 다른 한 가지 설은 옛날에 담장 안에 묶여 있던 부녀자들이 세상 밖을 보고 싶어서 널뛰기를 하여 몸이 공중으로 높이 솟을 때 담장 밖의 세상 풍경과 남자의 모습을 훔쳐 본 데서 유래되였다고 하며 세 번째는 처녀시절에 널을 뛰면 시집가서 아기를 잘 낳고 반대로 처녀시절에 널을 뛰지 않으면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속신에서 왔다고 하며 네 번째는 정초에 널뛰기를 하면 일 년 중 발에 가시나 못이 찔리지 않고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설, 다섯 번째는 귀신을 쫓기 위해서 널을 뛴 데서 시작되였다고 하는 속설이다. 그리고 일설에는 널뛰기가 발방아의 원리에 따라 창안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추측과 전설들은 널뛰기가 오랜 옛날부터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류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널뛰기하는) 여염집 부녀자들이 몇 자 높이로 올라가며 패물 울리는 소리가 쟁쟁하고 지쳐 떨어져 나가기도 하는데, 이를 ‘초판희(超板戱)’라 한다.”라고 씌여져 있다. 주황(周煌)의 《류구국기략(琉球國記略)》에는 류뀨의 부녀자들이 널빤지 위에서 춤추는 것을 판무라 하는데 이는 조선조 초에 류뀨인들이 조선에서 배워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널뛰기는 주로 설날과 정초, 정월대보름에 우리 녀성들이 즐겨 논 민속놀이였다. 이날이 오면 녀인들은 갖가지 고운 옷을 차려입고 한데 모여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널뛰기를 하면서 즐겨 놀았다. 립춘과 우수가 이 명절날들과 겹칠 때도 있었으므로 이 민속놀이는 이 절기에 맞는 녀성들의 놀이이기도 하였다. “정월에 널뛰기를 하면 그해에는 발바닥에 가시가 들지 않는다”, “처녀시절에 널뛰기를 많이 해야 시집가서 아들을 낳는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것은 녀성들이 널뛰기를 하면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적으로 널뛰기는 다리힘을 키워주고 페활량을 크게 해주며 몸매도 곱게 해주는 신체단련에 좋은 전신운동이다. 널뛰기에는 높이뛰여오르기, 재주부리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재주부리기에는 높이 뛰여올라 한 바퀴 돌아내리기(데사리)와 허리를 뒤로 젖혔다 내리기(중둥꺾기), 손을 자유롭게 놀리면서 발을 앞뒤나 량옆으로 벌리기 등이 있었다. 또한 상대자를 널에서 떨어뜨리기를 겨루기도 하였다. 경기를 할 때에 신발에 눈금을 박은 긴 줄을 매달고 솟구쳐오른 높이를 재는 방법도 있었다. (허휘훈 저《조선민속학》참조)
이런 단오날의 전통놀이들은 이미 나라의 무형문화유산종목으로 되여 줄곧 정부의 중시를 받아왔다. 이제 특히 신시대에 들어선 오늘날 이런 전통놀이들은 우수한 전통문화를 꽃피우고 민족의 문화자신심을 다지는데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출처 : 동북아신문(http://www.dbanews.com)
[2]. 한국은 단오떡, 단오부채, 씨름(남자), 창포물에 머리감기(여자), 그네뛰기등 전통 민속을 행하는 날입니다.두산백과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한국의 경우, 고대 마한의 습속을 적은 《위지(魏志)》 <한전(韓傳)>에 의하면,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서로 신(神)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단오를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삿날인 5월제의 유풍으로 보기도 한다. 결국 단오절은 상고시대 시원(始原)유교의 제천의식에서 파생되어, 삼한의 5월제로 이어지고, 지금까지 한국에 이어져 온 전통 유교풍속입니다. 단오절은 최근 중국의 4대 명절이자 공휴일[춘절(한국의 설날),중추절(한국의 추석), 청명절(한국의 한식), 단오절(한국의 단오)]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설날과 추석이 연휴가 긴 명절이자 공휴일입니다. 단오날에는 쑥떡.망개떡.수리취떡.밀가루지짐등을 먹습니다. 남자들은 씨름등을 하고,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데, 그네뛰기 ·탈춤 ·사자춤 ·가면극 등도 곁들이는 유교 제천의식날이자 명절입니다. 창조주를 부정하는 부처 Monkey의 불교가 각종 유교 명절이나, 24절기를 따라서 하는데, 불교는 절에서 부처에게 불공드리는 걸로 제 위치를 찾아야 하고, 일반인들은 유교명절이나 24절기, 유교 조상제사날에 절에 가면 않됩니다(이는 패전국 일본 불교 Monkey와 같은 잘못된 행동일뿐입니다).
역사적인 기자조선과 관련된 한국이고, 위만조선 시대에 유교가 유입되고, 세계사적으로는 한사군(漢四郡)시대에 한(漢)나라의 국교(國敎)인 유교(儒敎)가 세계종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로 성립된 고대 한국입니다.
한국의 경우, 두산백과로 파악하면 단오절은 이렇습니다.
"고대 마한의 습속을 적은 《위지(魏志)》 <한전(韓傳)>에 의하면,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서로 신(神)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단오를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삿날인 5월제의 유풍으로 보기도 한다".
음력 5월은 仲夏, 仲夏之月이라 합니다.
홀수(陽數)인 5가 두번 겹친날인 단오날(음력 5월 5일)은, 양수가 겹친 날 중 가장 햇볕이 강한 날(단양절(端陽節)입니다. 음력 5월에는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긴 날인 하지가 있습니다. 단양절인 단오부터 시작하여 하지를 정점으로, 음력 5월은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하지 이후에는 몹시 더워지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날에는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지만, 그 전에 지표면이 태양으로부터 많은 열을 받아놓은게 없어서, 덥지는 않은데, 하지 이후에는 지표면이 태양으로부터 받은 열이 쌓여서, 기온이 올라가고 몹시 더워진다고 합니다.
황하문명을 가지고, 유교종주국이며, 漢字를 발명한 중국. 그리고 세계 최초의 대학인 한나라 태학.국자감을 가진나라 중국(이후 여러 왕조를 거치며 태학에서 국자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국자감이 경사대학당으로, 경사대학당이 베이징대로 명칭이 바뀌는 과정이 있었음), 세계사에서 세계 4대 발명품을 가지고 있는 중국. 세계사란 과목을 통하여 중국의 여러가지 역사와 문물을 한국과 비교해보면 여러가지 유사점이 있습니다.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수천년의 전통유교가 침체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최근에 전통 유교명절들인 춘절(한국은 설날), 청명절(한국은 한식), 단오절, 중추절(한국은 추석)의 4대 명절이 공휴일로 되었습니다.
한국은 중국처럼 비슷한 명절을 가졌는데 설날, 단오, 추석이 전통적인 3대 명절입니다.
한국의 경우 단오절에 여러가지 풍속이 있는데 수리취떡.쑥떡.망개떡등을 먹고, 씨름등을 하고, 탈춤.가면극등을 즐겼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남자들은 창포뿌리를 허리춤에 차고 다님), 그네뛰기를 하는등 여러가지 풍속이 있습니다. 집단적인 민간행사로는 단오제를 지내거나 단오굿을 지내기도 합니다. 궁중에서는 단오부채를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수 많은 전통행사가 있습니다.
. 필자 주 1). 단오제는 유교적 개념이고 단오굿은 유교에서 변질된 민간 행사로 무속신앙(본질은 유교임)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고대의 기원으로 보면 유교문화의 단오절에서 유래된 점은 같습니다.
[3]. 성균관.향교의 50만 제사인구는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 주권없는 일본 잔재 불교 Monkey 서울대등이 최근에 다시 어거지쓰고 약탈하려는 주장은 주권.자격이 없음. 저 Monkey들 어거지는 교과서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 아니라는 것임. 일본 강점기 주장을 이어받아, 다시 일본잔재 서울대 출신이 1983년에 통계기법으로 주권없이 조사한 종교인구 표본조사같은걸로, 주권없이 다시 유교 약탈.테러중. 1983년 한국갤럽의 종교인구 조사는 이듬해인 1984년에 공식 발표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 의식 보고서의 기초가 된 조사입니다. 한국갤럽의 설립자이자 당시 조사를 이끌었던 박무익 회장은 서울대학교 출신입니다. 이런 식으로, 5,000만 한국인의 국교인 유교도들의 명절,제사,24절기,유교교육등을 무종교도로 만들고 주권없는 일제 강점기 포교종교 신도수만 내세우고, 10년 단위로 현혹하고 있음. 성균관.향교 제사인구 50만명만 유교인구라고 어거지쓰는것은 패전국에 전범국,UN적국 일본 불교 Monkey들이 사기치는 원숭이 노예합창.통계청 표본조사로 종교인구 조사하는것은, 더 이상 써먹지말고, 이런 조작 중지해야 할것. 애초부터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에 따라 일본 강점기 종교정책은 주권도 없고 인정받을수 없었음. 제헌의회 임시정부 반영에도 어긋나고, 1988년의 현행헌법 前文 임시정부 정통성 승계(한일병합등 모든 불평등 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위배됨. 유교를 국교로 승계받은 줄 알고, 당연히 유교도로 사는 한국인들을 다시 기만하기 시작한것.@세계사 고대 3대종교는 유교,기독교,불교(삭제않되고 유지)@유교는 문화대혁명때 침체,중국이 여러 유교명절 공휴일 지정,24절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음력 새해 명절을 UN 유동적휴일로 건의,채택.기독교(중세이후 크게 번창),불교(브라만교가 강하게 탄압,힌두교 인도).@수천년 한국 유교문화 5대 명절에 현대적 개념 도입한 국가유산청의 5대 명절 지정. 2023년 12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5대 명절을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설(중국은 춘절)과 대보름(중국은 원소절),한식(중국은 청명절),단오,추석,동지@유교는 성당,힌두교 사원,불교(브라만에 항거한죄로,인도에서 천 몇백년 탄압중) 사찰과 달리 무형유산 유교 명절에 전국민 참여. 유교는 왕실(대한제국은 황실)의 종묘대제,성균관.향교의 석전대제, 수천년 전통명절들, 문중별.가족별 제사.차례,기도. 24절기,유교 교육등.
@ 한편,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서강대는, 세계사의 교황제도 반영, 국제관습법상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연합국 국가원수들의 포츠담선언(포츠담선언은 미군정의 상위법, 일본관련, 포츠담선언은 카이로선언도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불교 Monkey 일본.*서유럽과는 다르게 한국,대만,아시아,쿠릴열도에 적용되는 포츠담선언의 일본관련 조항들.*일본이 교육기능 폐지시킨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 미군정때 성균관을 복구하는 법률(공자묘 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이 제정되었음. 이때 성균관과 관련없고 일본 동경대를 졸업한 교육관련 담당자와 주변인들이,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폐지)시켜야 할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하면서, 서울대를 성균관 앞에 놓는 방법으로 성균관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하였음. 미군정에서 교육정책 입안자로 등용되니까, 하위법인 미군정령을 이용해,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의 취지(일본의 주권은 한국에 없고, 경성제국대는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할 일제잔재임)에 어긋나는 교육정책을 만들었던것. 그러나 상위법 우선의 원칙을 따라야 함. 카이로선언은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축출)될것"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또한, 미군정은, 교육분야 아닌 타분야에서 연합국의 적국인 일본의 재산을 적산재산으로 하여, 일본이 카이로선언의 연합국 적국이라는 시각을 따르고 있었음. 미군정기에는 유교국가인 조선.대한제국의 한문성명.본관을 등록하는 조선성명 복구령도 시행되었음. 교육분야에서, 미군정기의 과도기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될 경성제대 활용(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의 정제되지 않은 정책에, 위기를 느낀, 전국 유림들이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유림이면서 임시정부 요인출신 김창숙 선생)를 개최하여, 성균관대를 설립(성균관의 교육기능 승계형태임)하기로 하였음. 새로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성균관장이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하고, 성균관대 학장.성균관장을 겸임하였음.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성균관대가 대학기능을 승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것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며, 고구려 태학이후 한국 최고대학 계보 성균관이었음. 태학(고구려),국자감(고려),고려말 성균관,조선.대한제국 성균관. 일본 강점기때 교육기능 중단 및 왜곡*일본이 항복하여, 미군정부터는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가, 대학교육 역할을 담당하여, 한국 최고 대학 계보임.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미군정때, 국사 성균관 교육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에도, 계속 국사 성균관교육을 실시. 국사교육을 중요시하여, 정부의 각종 고시, 공무원시험등에 국사 채택. *국사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라는건 성균관대, 성균관, 여러 백과사전 공통된 견해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4090602113
[4]. 인류는 만물의 근원.창조주 하느님(乾,天)의 섭리하에,만물의 영장으로 창조된,인간의 도리를 가르치신,근본적 하느님 아들 유교 공자님(先聖,聖天子)과,기독교세계 하느님의 독생자 주 예수를 떠나살수 없음.짐승같은 불교 부처Monkey는 창조신에 도전하는 나약한 원숭이!
인류조상 베이징원인.夏의 해.달.별 숭배,殷(商)의 上帝숭배,이전 신앙 흡수하여 유교 경전에 정형화된 周나라의 天(하느님,만물의 근원 乾,天.시경 天生蒸民으로 인격天 제도화)숭배와 天子제도.漢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天子제도 승계,공자숭배.
夏의 해.달.별 숭배, 문자를 발명한 殷(商나라)의 上帝숭배, 이전 신앙을 흡수.통합하여 유교 경전에 정형화된 周나라의 天(하느님, 하늘. 시경 天生蒸民으로 인격天의 개념이 제도화)숭배와 天子제도는, 하늘로 승천하여 계절을 다스리시는 오제(五帝. 태호,염제,황제,소호,전욱으로 창조주.최고신 天다음의 계절의 神이시며, 인격神의 시조)를 숭배하며, 요.순.우.탕.문.무의 先聖 가르침을 경전에 기록함. 주나라의 혼란기인 춘추전국시대에는 殷왕족의 후손이시며, 周나라 대부의 아들로 태어나신 공자님께서 제자백가의 여러 사상중 하나로 유가의 시조가 되심. 선성과 어진 섭정 주공의 행적을 존경하신 공자님. 공자님의 가르침은 하느님(天, 하늘)의 섭리하에, 조상신.지신.산천신 숭배를 이어가면서, 인간의 도리를 하기 위해, 학습을 하면서, 仁이나 禮, 恕등으로, 세상을 교화하시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공자님은 殷나라 왕족의 후손이신데, 당시에는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나, 선생 칭호의 子를 붙여 공자(공선생님)로 불리시다가, 후세에, 선성(先聖, 先聖王으로 聖天子를 의미)으로 추존되어, 역대 중국 천자들과 사람들이 제사하는 聖人이 되셨습니다. @ 漢나라때 漢의 국교며, 동아시아 세계종교(중국,한국,베트남, 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 현대의 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에 걸쳐 십수억명 유교도)로 성립되어, 수천년 이어진 세계종교 유교.
학생때 세계사영역,중국의 제자백가. 유가,법가,도가(한국은 신선사상,풍류도),묵가. 漢나라때 유교(儒家)가 국교가 되어 수천년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의 세계종교@인도발 외래신앙 불가(불교)는 일본 불교Monkey와 주권없는 경성제대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일본잔재 대만대가 대중언론.방송.SNS,뇌과학으로 어지럽혀도 제자백가 밑!@국가 최고 의례는 왕실의 조상제사인 종묘대제,토지와 곡식의 신에 제사하는 사직대제,先聖이신 공자님에 제사하는 석전대제.유교문화에서 인정되지 않는 인도발 오랑캐 도적의 짐승신앙 불교나, 힌두교 및 다른 종교 인정하기 어려움.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다시 인도가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천민으로 핍박하는 불교.@패전국.UN적국 일본 불교Monkey들이 근대에 한국.대만지역 합쳐 내세운 불교.건축물.유물로,유럽공략 걱정됨@원숭이.코끼리.사슴에서 환생한 부처 Monkey의 윤회론도 끔찍.유교문화권에서 제자백가뒤 오랑캐 도적,짐승으로 견제받던 인도발 외래불교일뿐.
중국.로마는 주변국가들을 야만족이라고 불러옴.역사적 사실@야만족에 군사력으로 정복당해도,종교와 대학.문화로 지배 분담@유교문화권은 인도발 불교를 오랑캐 도적,사람아닌 짐승(無君無父의 禽獸)으로 분류.하느님도 모르고,윤회론의 원숭이-> 불교 부처 Monkey는 不變
인도의 불가촉 천민,조선의 천민 승려 불교.불교는 부처Monkey가 인도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 천민으로, 다시 탄압받고 있음. 원숭이.코끼리.사슴에서 환생한 부처 Monkey의 윤회사상도 가미한 짐승신앙임.건축물 중시 유산은 종교의 본질과 큰 관계없음.경전,교리,역사적 전통,제도,그 제사장,신도수,해당국들에서의 국교로서의 전통등이 중요.
동아시아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한국은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삼한을 통하여,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로 확실히 정착, 하느님.조상신을 숭배하며,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신 공자님울 聖天子(先聖)으로 제사하는 나라. 그러다보면 유교 근본주의로 해석해서, 사후 비판 할 수도 있을법도 함. 삼국시대, 신라멸망후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패전국 일본 불교 Monkey항복후의, 유교복구와 일본 잔재등 아주 복잡함.
유교경전은 후세 정치적용어 皇帝없음.만물의 근원.창조신(乾,天) 하느님 다음,유교 경전 예기의 五帝(계절신,조상신,인격신)의 으뜸신 黃帝(殷왕족 후손 공자님의 조상神)는 均天의 인격神.공자님은 후세 天子들이 제사하는 聖天子(先聖).주권있어도 한국은 종교 天子국 아님
기독교세계는 하느님의 독생자 주 예수.주 예수의 종 교황,스페인왕.영국왕등 기독교 국왕들로 이해.유교문화권 중국,한국이 후세의 정치용어 皇帝에 의거,敎皇(교화 황제)으로 번역한 Pope.유교국 정치지도자들이 皇帝라는 용어사용 시도했어도 天子는 단 한분 종교지도자.
서로마.동로마는 중국殷,周,제자백가,漢처럼 중요@헬레니즘.헤브라이즘@이집트,그리스,서아시아,인도북부 통치한 알렉산더.그리스 신화의 Chaos@수천년 세계종교 유교.기독교는 만물의 근원.창조주 하느님 중심.하느님 아들 공자님(先聖,聖天子),기독교 하느님 아들 주 예수.
殷왕족 후손 箕子의 기자조선.한국 북부->夏의 해.달.별 숭배와 殷(黃帝,殷왕족 후손은 箕子,공자님)의 上帝숭배를 후발 周 天子에게 허용받은 한국 始原유교시대.箕子후손 기준왕이 건설한 남부 三韓은 한국 始原유교지역.세계사로는 북부지역 漢사군의 유교(孔子사상)정착.
한국 마을제사->후발 周(天子제도)가 허락,선발 殷왕족제사 지속 유형.殷왕족 箕子조선.三韓제사장 주관,제천의식,地神.산천神제사.삼국시대 번창,고려까지 제지않음.조선이 확실한 天子의 제후국되어,허락받지않은 제천의식.산천제사 금지->무속이라 탄압.天子국 아닌 한국.
정교회의 러시아.강대국@성씨없는 머슴型에,수천년 야만족에,부처 Monkey에서 파생된,근대 군사강대국 일본 점쇠(히로히토등,일본 짐승국가의 상징)가,하느님.예수님보다 높고,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 아니라는 주장으로,AI뇌과학 짐승 마법사 도둑질 하는것도 경계要.
세계사 殷왕족 箕子의 기자조선(기준왕때 위만조선에 멸망),위만조선, 위만조선을 정벌한 漢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됨.한국은 기자조선의 始原유교와 세계사의 정설인 漢나라때 동아시아 세계종교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 북부의 漢사군과 별도로,한반도 남부는 殷왕족 기자조선의 후손 기준왕과 후손들이 삼한 설립(마한.진한.변한). 진한과 변한에서 신라,가야가 후발로 건국됨.漢사군의 선진 유교문화 낙랑에서 부여가 건국되고,부여에서 이동한 주몽(고주몽)이 고구려 설립. 고구려 주몽의 후손 온조가 백제건국. 진한.변한의 신라,가야는 기자조선.삼한의 始原유교에서, 선진 유교문화 고구려.백제,중국 본토와 교류하며,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국가로 본격 재정립됨.제자백가,외래신알 불교 유입.
@ 불교 Monkey의 채식주의나, 사찰음식 모방하여 살아가는것은 위험함. 유교나 기독교 국가들은 수시로 육지고기 먹어야 합니다. 황하문명의 중국 음식(이탈리아,프랑스등과 각종 요리가 발달)의 특징은 불을 이용하여 튀기고,끓여먹고,구워먹는 맛있는 음식들.유교.기독교 국가들은,하느님의 섭리에 따라서,육식을 자주해야!@불교 Monkey채식주의는,유교.기독교와 맞지 않음.일본은 불교 Monkey(스시로 육지고기 먹지 않는다고 위안삼는것으로 보여짐).
다신교인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최고 하느님이시며, 만물의 근원이시고, 인간을 창조하신(시경:天生蒸民) 하느님(天). 그 하위의 조상신(유교 경전 예기에서 계절을 다스리시는 五帝),地神.산천神 숭배 이어받으신 공자님의 가르침(하느님의 섭리하에 피조물 중 만물의 영장 인간이 추구해야 할 여러 덕목인 仁과 禮, 恕등),그리고 유교의 실천강령중 하나인 삼강오륜.
창조신에 항거한 불교 부처 Monkey는,과거에 코끼리,사슴, 원숭이라고 본생경(Jataka,本生經)이 설명@유교는 다음생,저번생같은 윤회가 없고,사람이 짐승으로 환생하는것 불인정.유교는 하느님(天)이 창조하신 인간이 가장 중요함.죽으면 魂이 하늘로 올라감.악귀는 못올라감.유교나 가톨릭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영장 인간이 가장 중요할뿐, 사람이 동물로 윤회하거나 하는것을 인정치 않습니다. 전생이나 내세도 없습니다. 다만 유교는 사람이 죽으면 혼이 하늘로 승천하고, 현세에서 죄를 지었으면 그에 맞게 악귀로 처우되어, 떠돌게됩니다. 한번뿐인 고귀한 인생, 부처 Monkey의 불교처럼 동물로 인간을 비하하지 말고 열심히 사는게 유교입니다.
@ 현재의 중국 국가주석은 종교적으로 유교국가들(중국,한국,베트남,몽고,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의 天子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것. 춘절,청명절,단오절,중추절의 법정 공휴일, 24절기 유네스코 등록@정치적으로는周 文王의 환과고독(鰥寡孤獨)구휼 위한 大同사회목표.
인구밀도가 낮은 시대에 유교,기독교,이슬람교는 매장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인더스문명의 인도는 인구밀도가 높은편이라, 고대부터 브라만교(힌두교로 이어짐),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불교는 화장문화였음. 최근에는 너무 인구밀도가 높아, 종교와 상관없이 유교,기독교,이슬람교도 납골당, 수목장등이 대세임. 유교는 화장하더라도, 집에 영정을 모시는 쪽으로 이어지면됩니다.
@ 한국 유교 최고제사장은 고종 후손 황사손(이원)임. 불교 Monkey일본 항복으로, 유교가 국교인 조선성명 복구령. 5.000만 국민이 행정법상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며, 유교 명절,제사,차례,기도 및, 초등학교때의 하느님(애국가)제창,조선 역대왕조 왕명 암기,중학교때는 유교 삼강오륜 배우게 됨. 고교때는 세계사의 고대 세계종교 유교(현재도 이어짐)@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로 설립된 예수회의 서강대는,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이 뒤로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으로 형성된 대학들.
[5].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6]. 한국의 단오
1]. 한국의 단오.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설명
일명 수릿날[戌衣日·水瀨日]·중오절(重午節)·천중절(天中節)·단양(端陽)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端)’자는 처음 곧 첫 번째를 뜻하고, ‘오(午)’자는 오(五), 곧 다섯의 뜻으로 통하므로 단오는 ‘초닷새[初五日]’라는 뜻이 된다. 일년 중에서 가장 양기(陽氣)가 왕성한 날이라 해서 큰 명절로 여겨왔고 여러 가지 행사가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단오는 더운 여름을 맞기 전의 초하(初夏)의 계절이며,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이기도 하다. 단오행사는 북쪽으로 갈수록 번성하고 남으로 갈수록 약해지며, 남쪽에서는 대신 추석행사가 강해진다. 또한, 단오는 중종 13년(1518) 설날·추석과 함께 ‘삼대명절’로 정해진 적도 있었다.
단오의 유래는 중국 초나라 회왕(懷王) 때부터이다. 굴원(屈原)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하여 멱라수(汨羅水)에 투신자살하였는데 그날이 5월 5일이었다. 그 뒤 해마다 굴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에 전해져서 단오가 되었다고 한다.
≪열양세시기 洌陽歲時記≫에는 이날 밥을 수뢰(水瀨 : 물의 여울)에 던져 굴원을 제사지내는 풍속이 있으므로 ‘수릿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날 산에서 자라는 수리치[狗舌草]라는 나물을 뜯어 떡을 한다. 또, 쑥으로도 떡을 해서 먹는데 떡의 둥그런 모양이 마치 수레바퀴와 같아서 수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수리란 우리말의 수레[車]인데 높다[高], 위[上], 또는 신(神)이라는 뜻도 있어서 ‘높은 날’, ‘신을 모시는 날’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단오의 풍속 및 행사로는 창포에 머리감기, 쑥과 익모초 뜯기, 부적 만들어 붙이기,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단오 비녀꽂기 등의 풍속과 함께 그네뛰기·씨름·석전(石戰)·활쏘기 등과 같은 민속놀이도 행해졌다.
또한, 궁중에서는 이날 제호탕(醍醐湯)·옥추단(玉樞丹)·애호(艾虎 : 쑥호랑이)·단오부채 등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다. 집단적인 민간행사로는 단오제·단오굿을 하기도 하였다.
민간에서는 이날 음식을 장만하여 창포가 무성한 못가나 물가에 가서 물맞이 놀이를 하며, 창포이슬을 받아 화장수로도 사용하고, 창포를 삶아 창포탕(菖蒲湯)을 만들어 그 물로 머리를 감기도 한다. 그러면 머리카락이 소담하고 윤기가 있으며,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몸에 이롭다 하여 창포 삶은 물을 먹기도 하였다.
또한, 단오장(端午粧)이라 하여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를 삼아 머리에 꽂기도 하였으며, 양쪽에 붉게 연지를 바르거나 비녀에 壽(수)·福(복)자를 써서 복을 빌기도 하였다. 붉은 색은 양기를 상징해서 악귀를 쫓는 기능이 있다고 믿어 연지 칠을 하는 것이다. 단오 때가 되면 거리에서 창포를 파는데, 이는 창포탕과 비녀를 만드는 데 소용이 되기 때문이다.
일년 중에서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인 단옷날 중에서도 오시(午時)가 가장 양기가 왕성한 시각이므로, 단옷날 오시를 기해서 농가에서는 익모초와 쑥을 뜯는다. 여름철 식욕이 없을 때 익모초 즙은 식욕을 왕성하게 하고 몸을 보호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쑥은 뜯어서 떡을 하기도 하고 또 창포탕에 함께 넣어 삶기도 하는데, 벽사에 효과가 있다고 전한다.
농가에서는 약쑥을 뜯어 말렸다가 홰를 만들어 들에서 일을 할 때 불을 붙여놓고 담뱃불을 당기는 데 사용하였다. 이 때의 약쑥홰는 약쑥 대여섯 개를 한 묶음으로 짚으로 친친 감아 연이어 길이를 2m쯤 되게 만든다. 긴 것은 불을 붙이면 하루 종일 타게 된다. 또, 농가에서는 오시를 기해서 뜯은 약쑥을 한 다발로 묶어서 대문 옆에 세워두는 일이 있는데, 이는 재액을 물리치고 벽사에 효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풍으로는 가수(嫁樹)가 있다. 가수는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아 많은 열매가 열리도록 비는 ‘나무 시집보내기’ 풍습으로 정월 대보름에도 한다. 특히, 단오 무렵이면 대추가 막 열기 시작하는 계절이기에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아 대추풍년을 기원하니 이를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 한다.
민속놀이로는 그네뛰기와 씨름 등이 있다. 외출이 뜻대로 못하였던 부녀자들이 이날만은 밖에서 그네 뛰는 것이 허용되었다. ≪동국세시기≫에는 “항간에서는 남녀들이 그네뛰기를 많이 한다.” 하여 그네가 여성들만의 놀이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동국세시기≫에 김해풍속에 “청년들이 좌우로 편을 갈라 석전(石戰)을 하였다.”고도 하며, 금산 직지사(直指寺)에 모여서 하는 씨름이나 남산(南山)·북악산(北嶽山)의 각력(角力 : 씨름)에 대한 기록도 보인다. 그밖에도 경상북도지방에서는 널뛰기·윷놀이·농악·화초놀이 등의 놀이도 하였다.
궁중에서는 단옷날이 되면 내의원(內醫院)에서 옥추단과 제호탕을 만들어 바쳤다는 기록이 ≪동국세시기≫에 보인다. 제호탕은 사인(砂仁)·오매육(烏梅肉)·초과(草果)·백단향(白檀香) 등 한약재를 가루 내어 꿀에 섞어 달인 약으로 일종의 청량제이다. 더위가 심하여 건강을 해치기 쉬울 때 사용하였다. 내의원에서 진상한 옥추단은 일종의 구급약으로, 여름철 구토와 설사가 났을 때 물에 타서 마신다.
임금은 이 옥추단을 중신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약에다 구멍을 뚫어 오색실로 꿰어 허리띠에 차고 다니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면 급할 때 먹을 수도 있으려니와 악귀를 막고 재액을 물리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임금은 애호를 신하들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는데, 애호는 쑥이나 짚으로 호랑이모양을 만들어서 비단조각으로 꽃을 묶어 갈대이삭처럼 나풀거리게 하고, 쑥잎을 붙여 머리에 꽂도록 한 것이다.
이 또한 벽사에서 기인한 것이다. ≪열양세시기≫에 “단옷날에 애화(艾花 : 쑥호랑이)가 하사되었다.”라는 기록도 있다.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천중부적(天中符籍)’을 만들어 대궐 안의 문설주에 붙였다. 이 부적은 불길한 재액을 막아주는데, 경사대부(卿士大夫)의 집에서도 붙였다. 복록을 얻고 귀신과 병을 소멸하라는 주문을 쓰거나 처용 상이나 도부(桃符 : 복숭아나무로 만든 부적)를 붉은 색의 주사(朱砂)로 그려 넣었다.
또한, 단오 무렵에 공영(工營)에서는 대나무 생산지인 전주·남원 등지에 부채도안 등 제작방법을 일러준 다음 부채를 만들어 진상하도록 하였다. 이 부채를 임금은 단옷날 중신들과 시종들에게 하사하였는데, 이를 ‘단오부채[端午扇]’라 하였다.
집단적인 민속행사로는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사지내는 단오제(端午祭)가 있다. ≪동국세시기≫에 “안변풍속에 상음신사(霜陰神祠)에 선위대왕(宣威大王)과 부인이 있다고 전하는데, 매년 단오에 선위대왕 부부를 모셔다가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과, 경상북도 군위에서는 “서악(西岳)의 김유신(金庾信)사당에서 신을 맞이하여 고을에서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강릉 단오굿’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또한, 삼척의 ‘오금잠제’ 기록도 보이는데, 이는 전설에 고려 태조의 것이라는 오금잠(烏金簪 : 검은 빛의 쇠로 만든 비녀)을 함에 모시고 지내는 제이다. 원래 제사지내는 뜻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행사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최근까지 전승되고 있는 단오굿으로는 대관령국사성황을 강릉시내 여성황당에다 모시는 ‘강릉단오굿’과, 문호장(文戶長)이라는 신령한 인물에게 올리는 경상남도 창녕의 ‘문호장굿’이 있다. 일시 소멸되었다가 복원된 경북 경산시 자인면의 ‘한장군(韓將軍)놀이’도 유명하다. 이 놀이에서는 ‘여원무(女圓舞)’라는 춤을 춘다.
이처럼 단오의 여러 행사는 벽사 및 더위를 막는 신앙적인 관습이 많고 대추나무 시집보내기와 같은 기풍행위가 주가 되며, 더운 여름에 신체를 단련하는 씨름과 그네뛰기 등의 민속놀이가 있다. 또한, ‘강릉 단오굿’과 같은 집단적 단오제로 공동체의식을 이루는 축제를 벌이기도 하였다.
. 출처: 단오[端午]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의 단오. 두산백과의 설명.
단오 [ 端午 ]
요약 한국·중국·일본 등에서 지키는 명절로 음력 5월 5일.
음력 5월 5일을 말하며 수릿날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중오(重午) ·중오(重五) ·단양(端陽) ·오월절이라고도 한다. 단오는 초오(初五)의 뜻으로 5월의 첫째 말[午]의 날을 말한다. 음력으로 5월은 오월(午月)에 해당하며 기수(奇數:홀수)의 달과 날이 같은 수로 겹치는 것을 중요시한 데서 5월 5일을 명절날로 하였다. 일본의 경우 양력 5월 5일로 지내고 있다.
단오는 중국 한대(漢代)의 문헌에 나타난다. 옛날부터 음력 5월은 비가 많이 오는 계절로 접어드는 달로 나쁜 병이 유행하기 쉽고, 액(厄)을 제거해야 하는 하는 달로 보아 예방조치로서 여러 가지 미신적인 풍습이 생겨났다. 중국의 옛 풍속을 전하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따르면 단오에는 약초를 캐고, 재액을 예방하기 위하여 쑥으로 만든 인형이나 호랑이를 문에 걸었으며, 창포주 ·웅황주(雄黃酒)라는 약주를 마셨다. 약초 ·창포 ·쑥 등을 이용한 것은 강한 향기와 약성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또 전국시대 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이 자신을 모함하는 사람들에게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멱라수(汩羅水)에 빠져 죽었는데,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뜻으로 대나무통에 쌀을 넣고 소태나뭇잎으로 감아 물 속에 던지던 풍습이 있었다. 이것이 변하여 대나뭇잎으로 싸서 찐 떡을 먹는 지금의 풍습이 되었다고 한다. 또 멱라수에 빠진 굴원을 작은 배로 구한다는 의미의 놀이로 일종의 보트레이스인 용선경도(龍船競渡)가 행해졌다.
한국의 경우, 고대 마한의 습속을 적은 《위지(魏志)》 <한전(韓傳)>에 의하면,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서로 신(神)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단오를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삿날인 5월제의 유풍으로 보기도 한다. 고려가요《동동(動動)》에는 단오를 ‘수릿날’이라 하였는데 수리란 말은 상(上) ·고(高) ·신(神) 등을 의미하며, 수릿날은 신일(神日) ·상일(上日)이란 뜻을 지닌다. 여자들은 단옷날 ‘단오비음’이라 하여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뜻에서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얼굴도 씻으며, 붉고 푸른 새 옷을 입고 창포뿌리를 깎아 붉은 물을 들여서 비녀를 만들어 꽂았다. 남자들은 창포뿌리를 허리춤에 차고 다녔는데 이는 액을 물리치기 위해서라고 한다. 단옷날 아침 이슬이 맺힌 약쑥은 배앓이에 좋고, 산모의 약이나 상처 치료에 썼다. 또 단옷날 오시(午時)에 목욕을 하면 무병(無病)한다 하여 ‘단오물맞이’를 하고 모래찜을 하였다. 이 밖에 단오 절식으로 수리취를 넣어 둥글게 절편을 만든 수리취떡[車輪餠]과 쑥떡 ·망개떡 ·약초떡 ·밀가루지짐 등을 먹었고, 그네뛰기 ·씨름 ·탈춤 ·사자춤 ·가면극 등을 즐겼다.
. 출처: 단오[端午] (두산백과)
. 필자 주 2). 일본은 고대 한국에서 유교나 한자, 도교, 중국이 전해준 불교를 같이 받아들여 단오절을 쇠는 풍습이 남아 있는것 같은데, 양력으로 단오를 쇠며, 일본 막부시절 기독교에 대항해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이 때부터 불교특성의 나라로 변한것 같음. 그리고 나중에 불교특성의 일본상황에서 불교특성의 일본 고유 신도를 새로 만들었고,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를 2중으로 같이 믿는 나라로 보여짐. 일본은 유교국은 아님.
3]. 한국의 단오. 종교학대사전이 설명하는 자료
한국
음력 5월 5일. 단오는 초오(初五)의 뜻으로 5월 처음의 말(年)의 날을 뜻한다. 음력 5월은 장마로 인한 전염병이 만연되고 여러 가지 액(厄)을 제거해야 할 나쁜 달로 보아 예방조처로서 미신적 풍습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 날 풍습으로는 5월 4일 저녁 큰 그릇에 물을 길어 두었다가 단오날 오시(五時)에 목욕을 하면 아무 탈 없이 한 해를 보낸다고 하며, 부녀자들은 일찍 일어나 상추를 뜯어다가 그 잎사귀에 묻은 이슬로 아이들의 얼굴을 닦아 주는 풍습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으며 얼굴에 버짐이나 땀띠ㆍ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다. 단오날에는 익모초(益母草)와 쑥을 뜯는 풍습도 있는데, 익모초는 산모(産母)의 몸에 좋고 여름에 입맛이 없을 때 즙을 내어 마시면 효과가 있다고 하며 쑥은 냉증에 사용되므로 약초로 준비해 두기도 하고 다발로 묶어 문 옆에 걸어두면 재액(災厄)을 물리친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단오날을 기해서 향토신사(鄕土神祠)에서 제사를 지내는 곳도 많은데 대표적인 곳이 강릉이다. 이 날에는 무당과 주민 등 수백 명이 모여 대관령 서낭신을 모셔다가 제사를 지내고 농악ㆍ관노가면(官奴假面)놀이ㆍ씨름대회 및 그네뛰기 경연이 행하여진다. 그리고 궁중에서는 단오 부채라하여 공조(工曹)에서 만든 부채를 나누어 가지고 대신들은 단오첩(帖)을 지어 궁중에 거는 풍속이 있었다. 한편 『경향잡지(京鄕雜志)』,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에 다같이 5월 5일을 수릿날이라 하였는데, 수리는 술의(戌衣)또는 수레(車)의 뜻으로 이 날 쑥잎에 쌀가루를 넣고 쪄 푸른빛이 들게 하여 수레바퀴 모양으로 떡을 만들어 먹었다 하여 술욋날(戌衣日 ; 수릿날)이라 하였다 하며 이 날은 일년 중에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때여서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불려지고 있다.
중국
<단(端)>은 <초(初)>의 의미로, 원래는 달의 최초의 오(午)의 날을 말했다. 12지의 인(寅)을 정월로 하는 하력에서는 5월은 오(午)의 달에 해당하며, <오(午)>가 <오(五)>에 통하는 것이나 양수(陽數)의 중복을 중시한 점 등에서 3세기, 위ㆍ진 이후 5월 5일을 특히 <중오(重午)>, <중오(重五)>, <단양(端陽)> 등으로 부르며, 이날에 각종 제례를 하게 되었다. 음력 5월은 고온다습한 성하(盛夏)이며, 전염병이나 독충의 피해가 심하여 악월(惡月)이라고 하였는데 이미 전국에서 한에 걸쳐서 5월 5일 태생의 아이가 오래 살면 자해하거나 부모를 살해한다고 믿어서 5월 5일의 탄생을 기피하는 풍습이 있었으며, 이는 당ㆍ송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날, 약초를 따고, 대문에는 쑥으로 만든 인형이나 호랑이, 또는 창포로 만든 검을 걸고, 오독(五毒, 전갈, 지네, 수궁, 두꺼비, 뱀)을 먹고 있는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서 사귀(邪鬼)의 진입을 방지했다. 또한 창포주나 웅황주(雄黃酒, 유황을 섞은 술)를 마셔 무병식재를 기원했는데 쑥, 창포, 웅황 등은 그 향기나 약성으로 사기악령을 불식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어린이들에게는 쑥잎이나 검은 뽕 열매를 주거나, 웅황주로 이마에 <왕>자를 그리거나, 주사(朱砂)를 이마나 복부에 그려서 마귀를 쫓아냈다. 또한 홍사(紅絲)나 오색의 끈을 무릎에 묶는 장명루도 원래는 이날의 피사(避邪)의 주물(呪物)이었다. 또한 이날, 호남, 호북, 강소, 절강, 복건, 광동 등의 남방 수향지대에서는 용주경도(龍舟競渡, 용선경도(龍船競渡), 드라곤 레이스)가 행하여졌는데, 이는 속설에서는 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 굴원이 나라를 걱정하면서 강에 투신한 것이 5월 5일로 그 시체를 건져내는 <노시> 행위가 제례화한 것이라고 한다. 용주는 선수에 용의 조각이나 장식을 단 배로, 경조(競漕)라는 오락으로서의 요소 외에 수사자(水死者)의 영을 위로하는 동시에, 교룡수수(蛟龍水獸)를 진압해서 수해를 방지하고 비를 빌고, 오독의 풍요를 기원한 것이다. 대나무 떡을 먹는 유래도 굴원 전설에 의하는데, 마찬가지로 수신(水神)을 제사지내고 풍요를 기원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단오의 기원ㆍ유래에 대해서 명시하는 문헌은 후한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없으며, 고대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졌다. 중국의 신화학에 독자적인 견해를 제시한 문일다(聞一多)는 단오에 대해 기재된 전설ㆍ풍속의 대부분이 용주경도, 대나무떡 등 용에 관련된 것이 많은 것에 주목하고, 단오절을 <용의 절일>로 하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즉, 단오는 아주 옛날에 용을 토템신앙하는 장강(양자강) 하류역의 오(吳)ㆍ월(越)족의 풍속으로서 시작되었으며, 후한 이후 오ㆍ월 지역이 개발됨에 따라서 중원문화와의 접촉을 통해서 장강 상류역이나 북방 각지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 출처: 단오[端午]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한국사전연구사)
4]. 필자의 설명.
(중국, 중국인 그리고 중국문화, 2011. 3. 3., 다락원)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단오절의 유래는 여름의 더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덥고 습한 날씨로 인해 퍼지기 시작하는 각종 질병을 예방하려는 액막이의 차원에서 단오절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대문에 창포와 쑥을 걸어 놓거나 종규(鍾旭)의 화상을 붙이는 것을 비롯하여, 어른들이 웅황주(雄黄酒)를 마시고, 어린아이들의 몸에 향주머니(香包)를 달아주는 것 모두 액막이라는 소망이 담겨져 있다. 물론 이것들이 벌레를 쫓거나 살균·해독 작용을 한다는 위생적인 측면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종교학 대사전에서 설명하는 중국의 단오는 이렇습니다. 이날, 약초를 따고, 대문에는 쑥으로 만든 인형이나 호랑이, 또는 창포로 만든 검을 걸고, 오독(五毒, 전갈, 지네, 수궁, 두꺼비, 뱀)을 먹고 있는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서 사귀(邪鬼)의 진입을 방지했다. 또한 창포주나 웅황주(雄黃酒, 유황을 섞은 술)를 마셔 무병식재를 기원했는데 쑥, 창포, 웅황 등은 그 향기나 약성으로 사기악령을 불식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어린이들에게는 쑥잎이나 검은 뽕 열매를 주거나, 웅황주로 이마에 <왕>자를 그리거나, 주사(朱砂)를 이마나 복부에 그려서 마귀를 쫓아냈다. 또한 홍사(紅絲)나 오색의 끈을 무릎에 묶는 장명루도 원래는 이날의 피사(避邪)의 주물(呪物)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단오 관련, 종교학 사전에서 설명하는 굴원관련 이야기입니다.
...대나무 떡을 먹는 유래도 굴원 전설에 의하는데, 마찬가지로 수신(水神)을 제사지내고 풍요를 기원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 필자 주 3). 필자가 볼때는 중국의 단오절은 전염병이 많고 더위가 심한 날이 시작되어서 사귀(邪鬼)나 질병을 퍼뜨리는 마귀를 쫒아내기 위한 여러가지 제사나 액막이도 행해진것으로 보여집니다.
. 필자 주 4). 필자가 볼 때, 중국에서 전해진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형태의 단오절은 고대 한국의 단오에서도, 그 풍요를 기원하는 형태를 보입니다.
두산백과의 설명입니다.
...한국의 경우, 고대 마한의 습속을 적은 《위지(魏志)》 <한전(韓傳)>에 의하면,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서로 신(神)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단오를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삿날인 5월제의 유풍으로 보기도 한다.
. 필자 주 5).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는 한국의 단오에 대해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 내용입니다.
- 다 음 -
...일년 중에서 가장 양기(陽氣)가 왕성한 날이라 해서 큰 명절로 여겨왔고 여러 가지 행사가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단오는 더운 여름을 맞기 전의 초하(初夏)의 계절이며,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이기도 하다....
[7]. 중국의 단오절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자료들.
1]. 베이징관광국 한글 공식사이트 운영팀에서는 단오절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문가 소개에 따르면 현재 쭝즈는 정월 보름에 먹는 원소, 추석에 먹는 월병과 함께 중국 3대 명절 음식으로 불리우고 있다. 매년 5월 초 많은 가정에서는 찹쌀을 담그고 대나무잎을 씻어 다양한 맛과 모양의 쭝즈를 만들고 있다.
초기 단오절은 병마를 제거하고 악귀를 쫒는 명절에서 유전되었다.
민속전문가의 소개에 따르면 고대에 5월은 "악월(恶月)", "독월(毒月)"이라 불리웠고 5일은 "악일(恶日)", "독일(毒日)"이라 불리웠다. 5월 초닷새는 악월 악일이라 사람들은 이 날을 매우 꺼려했다. 때문에 단오절은 최초 병마를 제거하고 악귀와 재난을 쫓는 명절에서 전해진 것이다.
단오절기간은 마침 여름철에 가까워지면서 한기와 열기가 서로 바뀌는 시기이다. 우수가 많아지고 독충이 번식하기에 사람들은 쉽게 병에 걸릴 수 있다. 때문에 고대 사람들은 단오절이면 쑥이나 창포, 마늘 등을 집 대문에 걸어놓는 풍속이 있었는데 사실 이는 맹목적인 미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독충을 쫓고 병균과 악취를 제거하는데 일정한 효과가 있다....
2]. 베이징 관광국 보도. 2017년 중국 명절 연휴 및 법정 공휴일 통지
지난 12월 1일 국무원에서는 <2017년 휴무일 안배 통지> 를 발표했습니다.
2017년도 중국 명절 연휴 및 법정 공휴는 아래와 같습니다.
一、원단 元旦:1월 1일(일) 휴무, 1월 2일 대체 휴무。
二、춘절 春节:1월 27일부터 2월 2일까지 연휴, 총 7일, 1월 22일(일), 2월 4일(토) 대체근무。
三、청명절 清明节:4월 2일부터 4일까지 연휴, 총 3일. 4월1일(토) 대체근무。
四、노동절 劳动节:5월 1일(월) 휴무, 주말과 함께 연휴。
五、단오절 端午节:5월 28일부터 30일 연휴, 총 3일. 5월 27일(토) 대체근무。
六、중추절, 국경절 中秋节、国庆节:10월 1일부터 8일 연휴, 총 8일。9월 30일(토) 대체근무。
[출처] 베이징관광국 - http://bbs.visitbeijing.or.kr/bbs/board.php?bo_table=C01&wr_id=178
. 필자 주 6). 元日(현대 중국은 춘절이라 하며, 전통 한자어로는 元日. 한국은 설날이라고도 함), 청명절(한국은 한식), 단오절(한국은 단오), 중추절(한국은 추석)이 유교권 국가인 중국의 전통 4대명절이고, 한국도 이와 비슷합니다.
3]. 한국의 출판물인 다락원의 자료에 나오는 중국의 단오절[端午節].
단오절은 음력 5월 5일이다. 오월오일(五月五日)이 오월오일(午月午曰)에 해당하므로 단오절(端五節 또는 端午節)이란 명칭이 생겨났다. '五'가 겹친 날이어서 중오절(重五節)이라고도 하고, 양수(陽數)가 겹친 날 중 가장 햇볕이 강한 날이라 하여 단양절(端陽節)이라고도 한다.
단오절의 유래는 여름의 더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덥고 습한 날씨로 인해 퍼지기 시작하는 각종 질병을 예방하려는 액막이의 차원에서 단오절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대문에 창포와 쑥을 걸어 놓거나 종규(鍾旭)의 화상을 붙이는 것을 비롯하여, 어른들이 웅황주(雄黄酒)를 마시고, 어린아이들의 몸에 향주머니(香包)를 달아주는 것 모두 액막이라는 소망이 담겨져 있다. 물론 이것들이 벌레를 쫓거나 살균·해독 작용을 한다는 위생적인 측면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한편 단오절이 중국인의 사랑을 받는 중요한 명절이 된 것은 굴원(屈原)의 전설에서 영향 받은 바가 크다. 굴원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시인으로서, 여러 차례 초희왕(楚懷王)에게 부패를 청산하고 국시(國是)를 바로잡기를 요구하다가 먼 곳으로 유배를 당했다. 유배지에서도 늘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며 노심초사하던 어느 날, 초나라의 수도가 진(泰)나라에 의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한 나머지 멱라강(泪羅江)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때가 바로 기원전 278년 음력 5월 5일이며, 그의 우국충정을 기리는 날이 된 것이다.
단오절에 용선경기(龍舟競賽)를 실시하고 종자(棕子)를 먹는 것도 굴원의 전설에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굴원이 멱라강에서 자살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애통해 하며 배를 내어 굴원의 시신을 찾아 나섰고,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을 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음식물을 강물에 던져 넣었다. 이후 사람들은 굴원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제사를 지내면서 강에 배를 띄우고, 대나무통에 찹쌀을 넣어 강에 던졌다. 여기에서 용선경기와 종자가 발전되어 나온 것이다....
.출처:단오절 [端午節] (중국, 중국인 그리고 중국문화, 2011. 3. 3., 다락원)
4]. 한국의 출판물인 중국 시사문화사전에 나타나는 단오절.
단오절[ 端午节 , Duānwǔjié ]
음력 5월 5일. 단양절(端阳节). 초(楚) 시인 굴원(屈原)이 멱라강(汨罗江, Mìluó Jiāng)에 몸을 던져 죽은 날을 기념하여 생긴 기념일로 전해지고 있다.
. 출처: 단오절 [端午节, Duānwǔjié] (중국시사문화사전, 2008. 2. 20., 이현국)
[8]. 단오절과 태음태양력
1]. 오픈마인드 간행 한자사전에 의하면 天中이란 "관측자(觀測者)를 중심(中心)으로 한 하늘의 한가운데"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필자가 해석하여 볼때, 천중절(天中節)이라 하면 다음과 같이 해석됩니다. 관측자를 중심으로 하여 해가 하늘의 한 가운데 있는 절기(단오절인 천중절부터 하지이후 상당기간까지)로 해석하면 적절한 것 같습니다. 주로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여 명절이 정해진(필자가 추측컨대, 고대에 달의 운행을 관찰하여 역법을 만든 문명권의 음력사용은, 뜨거운 기운이 없이 밤에 뜨는 달이 육안으로 관측하기가 쉽고,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얼굴과 눈에 직접 받아 화상이나 실명의 위험이 없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중국 태음태양력입니다.
2]. 두산백과는 태음태양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ar,太陰太陽曆]
요약
...태음태양력은 달의 차고 기울기를 주로 하면서 태양의 운행에 맞춰보려고 노력한 역법이다. 이 역법은 달과 태양의 두 운행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므로 매우 복잡하게 되기는 하지만, 실지로는 고대의 여러 나라와 여러 민족이 이 역법을 채택하였다...
이 일수 6940일을 중국에서는 장(章)이라고 하여, 이미 BC 600년경인 춘추시대의 중엽에 발견한 주기이고, 그리스에서는 BC 432년경에 메톤주기라고 하여 아테네의 메톤에 의하여 발견된 주기이다. 그리하여 19년 동안에 윤달을 7회 넣는 방법이라 하여 19년 7윤법(十九年七閏法)이라고 하였다. 태음태양력에는 바빌로니아력, 유대력, 그리스력, 인도력, 중국력, 한국에서의 음력(陰曆) 등이 있다.
한국은 중국 문화권 내에 속해 있어서 역에서도 중국력을 수입하여, 이것을 그대로, 또는 약간의 손질을 하여 우리의 역으로 써왔다. 그 중 백제에서는 중국에서 들여온 역법을 다시 일본에게 전달해 준 일도 있었다. 이들의 모든 역이 태음태양력이다...
. 출처: 태음태양력 [lunisolar calendar, 太陰太陽曆] (두산백과)
3]. 태양력[solar calendar, 太陽曆]
요약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으로서, 태음력과 상대된다. 이집트에서 BC 18세기경 1년 365일의 태양력을 만든 것이 그 기원이다. 그후 1년이 365.25일이란 것을 알게되면서 율리우스력에 채용하여 4년마다 1일 더하는 윤년이 생겼다. 1582년 그레고리력으로 이어져 현재에 이르렀다.
태음력(太陰曆)과 상대되는 역법이다. 태양력의 기원은 이집트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에서는 일찍부터 나일강(江)이 범람할 때면 동쪽 하늘의 일정한 위치에 시리우스(큰개자리 α별)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냄으로써 태양력을 만들 수 있었다. BC 18세기경 이집트인들은 1년을 365일로 하고, 이것을 30일로 이루어진 12달과 연말에 5일을 더하는 식으로 달력을 만들었다.
. 출처: 태양력[solar calendar, 太陽曆] (두산백과)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275696355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190490049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s://blog.naver.com/macmaca/110185393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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