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3일 수요일

즐겁고 풍요로운 추석[秋夕, 중추절(仲秋節)]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2026년 9월 25일은 음력으로 8월 15일 추석(중추절)입니다. 한국은 9월 24일부터 27일까지 추석(중추절) 공휴일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중추절[仲秋節,中秋節]로 표기하면 쉽게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조상에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하면서(조상제사), 보름달에 소원도 비는(관습적으로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한국인이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유교명절 추석의 전통적인 제천의식의 하나) 추석 명절.

즐겁고 풍요로운 추석[秋夕, 중추절(仲秋節)]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2026년 9월 25일은 음력으로 8월 15일 추석(중추절)입니다. 한국은 9월 24일부터 27일까지 추석(중추절) 공휴일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중추절[仲秋節,中秋節]로 표기하면 쉽게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조상에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하면서(조상제사), 보름달에 소원도 비는(관습적으로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한국인이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유교명절 추석의 전통적인 제천의식의 하나) 추석 명절. [1]. 한국에서는 추석(秋夕)이라고도 많이 부르는데, 세계적으로는 중추절[仲秋節,中秋節]로 표기하면 쉽게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하고, 중추절(中秋節)이라고도 한자로 표기하는데, 국어사전 식으로는 중추절(仲秋節)이고, 유교 경전에서도 중추(仲秋)를 사용하므로, 중추절(仲秋節)로 쓰면 한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세계적으로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그러나, (中秋節)도 같이 사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본적으로 역사적 특성상 한국은 역사적인 기자조선 이후, 정사로도 분명한 위만조선.한사군이후 수천년 유교 국가임.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기때문, 유교를 국교로 하던 조선,대한제국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할것임. 물론 현행 헌법상 국교가 없고 종교의 자유는 있지만, 미군정기때 모든 한국인들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유교국가인 조선의 한문성씨와 본관을 호적이나 주민등록에 등재해서 모두 유교도 자격을 가지고 있음.그리고 교과서로는 삼강오륜 유교교육과 유교의 인.의.예.지.신 교육, 충효교육을 많이 받아옴. 또한 유교 전통명절인 설날.대보름.한식(청명절).단오절.추석(중추절)등의 주요 명절 및 24절기의 주요 기념일 및 여러가지 절일(節日), 문중별.가족별 제사를 행하고 있는 유교국가임. 추석의 달맞이, 그리고 명절이나 특정 기일에 행하는 조상제사는, 유교 경전에 나오는 구절등을 본받아서 그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 설날, 추석의 차례. 설날과 추석에 지내는 차례(茶禮)는 유교 오경이나 사서 같은 고대 유교 경전에 직접적인 명문 규정이나 근거가 없습니다. 차례의 근거는 고대 경전이 아니라, 주자가 정립한 의례서인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사당 의식과, 한반도 고유의 농경 사회적 천신(薦新) 풍속이 결합하여 조선 중기 이후 정착된 것입니다. 구체적인 문헌 및 역사적 근거를 정리해 드립니다. @ 유교적 근거: 《주자가례》의 ‘참례(參禮)’와 ‘속절(俗節)’ 유교에서 차례의 형식적 뼈대가 된 것은 송나라 주자가 쓴 영당·사당 의례서인 주자가례입니다. [1] 정초·초하루·보름의 참례(參禮): 《주자가례》의 사당(祠堂) 편을 보면, 매월 초하루(삭일)와 보름(망일), 그리고 정월 초하루(새해 첫날)와 동지에는 가문의 조상을 모신 사당에 나아가 인사를 올리는 ‘참례’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정식 기제사처럼 복잡하게 술을 여러 번 올리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과일과 함께 차(茶)를 올리는 예법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차례(茶禮)'라는 명칭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속절(俗節)의 천신: 《주자가례》에는 민간의 명절인 '속절'이 오면 그 계절에 새로 나온 제철 음식을 사당에 올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이 '속절'의 개념을 조선의 대표 명절인 설날, 단오, 추석 등에 대입하여 의례를 확장했습니다. [2]. 전통적인 유교국가(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2차 대전후의 중국인들의 신생국가(대만,싱가포르)에서 특별한 사유없이, 명절에 해의 神, 달의 神, 별의 神 숭배에서 이어진 여러 명절들을 거부하거나,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고 일부러 거부하는것은, 원칙적으로 無君無父의 금수일(祖上도 몰라보는 금수)뿐입니다. 기자조선(기자조선의 후손이 삼한을 건설. 삼한중 마한지역은 백제, 진한은 신라, 변한은 가야가 됨)은, 은나라왕족 기자가 세운 나라인데, 은나라와 주나라의 신앙과 문물,교육은, 춘추전국시대 공자님의 儒家가 성립되는 토대가 된 始原유교의 시대에 해당됩니다. 한나라때 위만조선을 정벌하여 한사군이 세워졌는데, 한나라때는 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걸쳐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된 시기에 해당됩니다.한사군중 낙랑은 부여보다 선진문화였고, 부여는 고구려보다 선진문화라고 할수 있습니다. 고구려 건국자 주몽의 후손이 남하하여 백제를 건설하였습니다. 통상적으로 고구려 태학이 세워진 고구려, 백제(오경박사), 신라(국학,화랑)순의 국력과 문화수준으로 인식됩니다. 신라는 국학이 설립되기전에는, 추석.설날같은 유교명절과, 기자조선.삼한의 始原유교(제천의식, 명절, 팔조법금)를 이어받고, 중국.고구려.백제의 선진문물과 유교제도를 받아들이는 상태였다고 인식됩니다. 내물왕때 맹자의 환과고독을 구휼하던 정책이 보입니다. 환과고독(鰥寡孤獨). 홀아비·과부, 어리고 부모 없는 사람, 늙고 자식이 없는 사람 등을 일컫는 말로, 맹자(孟子)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下) 5에 나오는 용어입니다. 한국 역사의 경우, 그 환과고독에 대한 수취의 감면이나, 구휼책의 사례도 있습니다. 봄에 사신을 보내어 환과고독을 무문하고 각각 곡식 3곡씩을 주었고, 효제로 남다른 행실이 있는 자에게는 관직 1급씩을 주었다. ; 春 發使 撫問鰥寡孤獨 各賜穀三斛 孝悌有異行者 賜職一級 [삼국사기 권제3, 1장 뒤쪽, 신라본기 1 내물이사금] . 출처: 환과고독 [鰥寡孤獨]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3]. 설날.추석때 장기간 공휴일을 주는것은, 명절때 의무를 다하라고 만든것이며, 명절 의무 이행않고,놀라고 만든 취지는 없습니더. 설날.추석 명절의무 이행하지 않겠다면, 이런 저항자들은, 보너스도 주지 말고, 공휴일에 나와서 근무하도록 하는게 맞습니다. 즐겁고 풍요로운 추석 명절 보내십시오. 코로나 방역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이제 다시 수천년 추석명절의 전통으로 돌아왔습니다. 설날.추석 명절때, 의무를 다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드는 유전자가 있는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추석은 차례나 성묘처럼 중요한, 달맞이(보름달에 소원비는 의식)의 제천의식 성격도 아주 강합니다. 추석(중추절)은 수천년 유교명절로,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십수억명의 최대 명절 중 하나.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국가중 하나인, 한국인들은, 이렇게 유교 명절때, 제사하고, 성묘하고, 소원빌고, 가족.친척을 만나며, 명절을 즐기는 유전자가 수천년동안 체화되어 살아왔습니다. 삼한시대에 시작된 제천의식 단오. 유교는 제천의식, 地神제사, 山川제사, 조상제사, 공자님제사가 대표적인데, 고대 한국은 삼한의 상달제, 시월제,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등 제천의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천의식들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조선초에 제천의식 폐지하였다가 대한제국때 부활)를 거치며, 현재도 설날,대보름,단오,추석류의 제천의식(전국적인 조상제사도 포함된 명절이 설날과 추석임)들과, 조상제사인 한식등 대표적인 명절이 있습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현대는 토지부족으로, 화장 및 납골당등이 세계적 대세. 인구가 적을때는 유교,가톨릭등 기독교(개신교포함),이슬람교등이 토지와 산등에 사자의 시체를 매장했음. 인도는 토지에 비해 인구가 많은 특성상 종교와 별개로 불교이전 인더스문명의 브라만교전통에서 사자의 시체를 태워,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강물에 뿌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여겨짐.@ 중요한것은 유교나, 가톨릭같은 수천년 세계종교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최고의 절대적 창조자로 숭배한다는 점임.인구과밀로 묘지가 부족해지면, 사진.영정,위패를 모시고 수천년 조상제사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설날, 추석 명절의 본질은, 금전문제.정치문제 다툼이 아니고, 하느님을 숭배하며, 달의 神에 기도하고, 부차적으로 조상에 대한 차례등을 행하는 것입니다.명절의무를 피하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날에는 차례지내고, 어른들이나 존경하는 스승등을 찾아 세배하고, 덕담도 주고 받는 미풍양속을 잘이해하고 오랫동안 못 보던 가족과 친인척,지인들을 찾아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흔치않은 기회입니다. 수천년 유교명절 중추절(추석)때,달의 神에 기도하고,할아버지.할머니는,오랫만에 보는 손자.손녀들의 재롱을 보고,자녀들은 부모님의 건강도 살펴야!@생로병사의 하느님 섭리에 따라,사람은 하늘나라로 魂이 돌아갈때 되면,주변을 정리하는 생각을 하게되고,선해진다고 함. 설날(元日,元旦,춘절),중추절(추석) 민요는 단순한 유흥 넘어 새해의 복을 기원,한 해의 풍요에 감사하며,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종교적·사회적 의미@기자조선,위만조선,漢사군,삼한을 거쳐,전통 유교사회였던 한국에서,민요는 명절의 세시풍속과 밀접하게 맞물려 발전. 중추절(추석)은 夏의 해.달.별 숭배,殷의 上帝(조상神.인격 天의 기원)숭배시대 거쳐,周로 계승.漢때 제자백가중 유교가 漢의 국교 되며,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 확산.고대에 달은 신비롭고 숭고한존재로 여겨졌으며,사람들은 달이 생산.사회생활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고 생각. 내몽고는 淸이후 역사적 중국영토.외몽고는 해.달.별 숭배,조상제사(上帝 祖上神숭배에서 유래)중 중국,한국,베트남과 달리,달의神(대보름,중추절등),별의 神(칠석)숭배 없고,해의神숭배 차강사르(元日,춘절,설).단오절(나담축제),조상제사(징기스칸 기념일),山川 神숭배전통 @ 백제와 신라의 설날. 그리고 신라의 추석. 국사 편찬위원회, 우리 역사넷. 수확을 의미하는 추석, 신라 3대 유리왕 9년(32)에 왕이 육부(六部)를 정하고 이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이 각각 부내의 여자를 거느려 편을 나눈다.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육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고 을야(乙夜, 밤 10시경)에 파하며,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의 많고 적은 것을 살핀다. 지는 편이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때 가무백희(歌舞百戲)를 행하니 이를 가배라고 한다. 기록에서처럼 추석의 유래는 신라의 가배(嘉排)에서 찾는다. @ 국사편찬위원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풍속. 설날의 풍속 * 백제의 설날 풍속 남당에 앉아 정무를 처리하다 삼국사기 > 백제본기 제2 > 사반왕(沙伴王)·고이왕(古尒王) > 남당에 앉아 정무를 처리하다 남당에 앉아 정무를 처리하다 ( 261년 01월01일(음) ) 28년(261) 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자주색 소매가 큰 두루마기와 푸른색 비단 바지를 입고, 금꽃[金花]으로 장식한 검은 비단 관을 쓰고, 흰 가죽띠를 두르고, 검은 가죽신을 신고 남당(南堂)에 앉아서 일을 처리하였다. * 신라의 설날 풍속:651년 이후부터는 정월. 초하루에 왕이 백관의 신정 하례를 받는 하정례賀正禮 의식을 행하였다. [4]. 이제 추석(중추절)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추석(中秋節.仲秋節,秋夕)에 대한 종교학대사전의 설명. 추석(중추절)에 대해 종교학 대사전은 대략적으로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추석은 『예기(禮記)』의 <춘조월 추석월(春朝月 秋夕月)>이란 기록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이며, 가배란 신라시대 경주지방의 방언이다. 망국(亡國)의 비애를 안고 사라진 고조선ㆍ부여ㆍ옥저ㆍ삼한(三韓)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의 추석에 관해서는 그 기록의 멸실ㆍ미흡으로 상고(祥考)할 길이 없으나 추석이 중국ㆍ신라 등지에 있었음을 미루어 보아 고조선ㆍ부여ㆍ삼한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지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지금은 신라의 가배일이야기만이 『사기(史記)』에 한 마디 전할 뿐이다. 추석에는 추석빔을 입고 햅쌀로 술ㆍ송편을 빚고, 햇과일을 마련하여 가묘(家廟)에 모신 조상 앞에 차례(茶禮)를 지내며, 조상의 산소에 성묘(省墓)한다. 산소에 우거진 잡초는 추석 전날 베는 것이 상례(常例)이나 성묘 때 베는 것도 무방한데 이것을 벌초(伐草)라 한다. 또한 이 날은 술ㆍ송편ㆍ과일 등을 나누어 먹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즐겁게 논다. * 출처:추석[秋夕]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 필자 주 1). 위의 서술에 동감합니다. ...추석이 중국ㆍ신라 등지에 있었음을 미루어 보아 고조선ㆍ부여ㆍ삼한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지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지금은 신라의 가배일이야기만이 『사기(史記)』에 한 마디 전할 뿐이다.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황사손(고종황제 후손 이 원으로 환구대제, 사직제례, 종묘제례 및 많은 제사를 주관함.)이시지만, 석전대제를 주관하는 성균관이 명절때 성묘.차례는 않는것보다 하는게 낫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성균관의 명절 예법 간소화의견은, 강행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점차적으로 의견절충해서, 문중.가족별로 조정하면 될것입니다. 또한 법규나 경전에 규정된게 아니면, 모든 예법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관계기관들의 연구하에, 조절해서 수용할수도 있습니다. 2]. 유교 경전인 禮記로 천신(天神), 지신(地神), 일신(日神) 및 추석의 月神 숭배등 제사를 살펴보고 역사적 과정을 알아봄. 1). 유교 경전인 예기에 나오는 달에 제사하는 내용이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 정월대보름과 중추절등에 달맞이등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天神, 地神, 사철의 신, 한서(寒暑)의 신, 해의 신, 달의 신, 별의 신, 가뭄의 신, 사방의 신등에 제사지내는 예기 제법(祭法)의 설명. 다음은 유교경전인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다 음 - 燔柴於泰壇祭天也 瘞埋於泰折祭地也 用騂犢 埋少牢於泰昭祭時也 祖迎於坎壇祭寒暑也 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幽宗祭星也 雩宗祭水旱也 四坎壇祭四方也 山林川谷丘陵能出雲爲風雨見怪物皆曰神 ... 나무를 단위에 쌓고 그 위에 옥(玉)과 생(牲)을 놓고서 함께 태워 그 기(氣)로 하여금 하늘에 이름게 함은, 천신(天神)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또 비단과 생을 단상에 파묻는것은 지신(地神)을 제사지내는 법인데, 이 때 그 생은 다 같이 성독(騂犢)을 쓴다. 소뢰를 태소에 파묻는것은 사철의 신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감단에 송영(送迎)하는 것은 한서(寒暑)의 신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왕궁(王宮)에서는 해의 신을 제사지내고 야명(夜明)에서는 달의 신을 제사지내고 유영에서는 별의 신을 제사지내고 우영에서는 가뭄을 제사지내고 사감단에서는 사방의 신을 제사지내는 것이다. 산림.천곡.구릉으로서 능히 구름을 일으키고 비바람을 이루며 괴이한 현상을 나타내는 것을 모두 신(사방의 신)이라고 한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위에서 유념해 둘 것은 유교의 전통적 다신교(多神敎) 측면입니다. 최고신인 天(太極과 연계된 天)을 중심으로, 그 하위에 지신, 사철의 신, 한서(寒暑)의 신, 해의 신, 달의 신, 별의 신, 가뭄의 신, 사방의 신, 조상신등을 숭배해 온 유교 제의가 수천년 전통입니다.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 행할수 없던 여러가지 괴이한 현상을 나타내는 것을 모두 신(사방의 신)으로 보았던 전통적 다신교적 유교의 신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게 유교입니다. . 필자 주 2). 위에서 日月神에 제사하던 祭法은 殷나라때 생겨서 후대에 天子제도로 확고한 정착이 되기 이전에 생긴 제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써 놓은 한문 문장(禮記 祭法)으로 보면 그 당시는 殷나라 天子가 아닌 殷仁으로, 周人으로 제사하던 祭天儀式, 日月神 숭배전통이 있었습니다. 이 제사가 변형 유지되어 중국 일부지방이나 殷나라 왕족 箕子의 후손으로 언급되는 箕準王의 선조 및 부여(殷正月의 曆法으로 祭天儀式인 영고를 지냄), 삼한(상달제.시월제), 고구려(동맹), 예(무천), 백제의 교천, 신라의 日月神 제사, 고려의 제천의식등으로 이어졌겠지요. 天子제도가 생긴 이후 중국 사람들이 보기에 고대 한국인들이 함부로 사당등을 지어 제사하는걸로 보여졌다면(당서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풍속에는 함부로 만든 사당이 많은바 라고 기록), 天子제도의 확고한 형성으로 天子의 제사와 諸侯의 제사, 士大夫 제사, 庶人의 제사를 구분하기 이전에 형성된 중국일부지방.한국일부지방의 풍속들이 그렇게 전승되니까 그 후에 생긴 天子부터 庶人까지의 제사법 구분으로 판단하여 함부로 사당을 짓는다고 기록했겠지만 그 당시는 중국이 고대 한국을 제지하고 그러던 시대는 아니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원나라를 거치면서 국자감 개칭등 그런 天子國 주장이 강해졌고,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을 天子國으로 확실히 대우해 주면서 조선 초기에 제천의식이 폐지되고 고종때 부활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여하튼 역사적으로 부조리할수도 있는(후세 사람이 보기에) 관습이 허용되어도 중국 天子와 海東天子(한국의 天子)는 급이 다릅니다. 有虞氏禘黃帝而郊嚳 祖顓頊而宗堯 夏后氏亦禘黃帝而郊鯀 祖顓頊而宗禹 殷人禘嚳而郊冥 祖契而宗湯 周人禘嚳而郊稷 祖文王而宗武王. 燔柴於泰壇祭天也 瘞埋於泰折祭地也 ........... 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 필자 주 3). 위의 祭法관련 작자인 전금과 후세 학자의 설에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어느 것이 결정적으로 옳은지에 대해 학자들간에 이론이 많다고 예기 譯解者(권오돈/발행처 홍신문화사/2003.10.30 발행)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 필자 주 4). 전금에 대한 설명. 중국 역대 인명사전(2010.1.20/이회문화사)에 의함. 展禽.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 대부(大夫)를 지냈다. 성은 전(展)씨고, 이름은 획(獲)이며, 자는 금(禽)이다. 유하(柳下)는 식읍(食邑)의 이름이고, 혜(惠)는 시호다. . 필자 주 5). 殷周때 생긴 천자제도로 사람들을 강제하기전 일반 백성이 日月星辰을 우러르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日月星辰 숭배 풍속이 天子제도 확립후 생긴 새로운 숭배풍속이라 하면 그 신분에 따라 의관을 정제하고,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하는게 옳겠습니다. 그러나 天子제도의 강제전에 확립된 관습으로 月神을 바라보며 단지 소원을 비는것에 대해서는 祭法에 어긋난다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의 달맞이 풍속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단지 달맞이라는 소원비는 의례로 달맞이 하는것은 그대로 전승되어야 하겠습니다. 3). 우리 유교국 한국인들은 중단하지 말고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달맞이를 행해도 됩니다. 제천의식은 황사손이 별도로 하고 계시는데, 일반인들은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행사를 하는게 가장 옳고 일반적입니다. 일월성신을 民(백성)이 우러러보는 禮記 제법의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及夫日月星辰 民所瞻仰也 山林川谷丘陵 民所取財用也 非此族也 不在祀典....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3]. 추석(中秋節.仲秋節,秋夕)에 대한 두산백과의 설명. ‘중추’라는 말은 《주례(周禮)》에 가장 처음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 고대 왕들은 음력 8월 15일 달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1년 4계절(3개월)을 1개월씩(孟 혹은 初,仲,季) 나누었는데, 음력 8월 15일은 가을의 중간인 '중추(仲秋)'라 하였다. 이것에 착안해 8월 15일 달에 제사 지내는 날을 중추절(仲秋節 혹은 中秋節)이라고도 불렀다. 이 외에도 ‘팔월에 행하는 행사’라 해서 팔월절(八月節) 혹은 팔월회(八月會)라고 부르기도 했고,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라는 뜻을 따 단원절(團圓節)이라 부르기도 했다. .출처:중추절[zhong qiu jie, 中秋节] (두산백과) . 필자 주 6). 달맞이는 유교에만 있는 고유 의식이므로, 그 성격에 충실하여 뒷동산등이나 보름달이 잘 보이는 장소에 올라 달맞이 하면 될것입니다. 굳이 높은 산에 오를 필요는 없으며 불교가 결합된 일본 양력 추석(오봉)의 영향을 잘못 받은 사람도 있을것인데, 절등에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불교는 창조주보다 부처가 더 높게 대우받는 존재이며, 無君無父의 금수라 배척받아와서 유교의 조상제사나 유교의 달맞이등을 불교시설이나 불교인등과 결부시켜서 행하면 않됩니다. 4]. 유교권 공통名節인 中秋節.仲秋節(秋夕)날은 가까운 뒷동산이나 언덕등에 올라 月神(달님)을 향해 각자의 소원을 빌며 달맞이를 하는 날입니다. 한국에서의 달맞이는 대보름 달맞이와 추석 달맞이가 대표적 의례행위입니다. 달맞이(추석) 정의 추석날 저녁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거나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 내용 추석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보름달을 보면 좋다고 하여 마을 뒷산이나 높은 곳에 오르기도 하고 혹은 마당에서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도 하며 달의 모양을 봐서 풍흉을 점친다. 중국 남송(南宋)시대 맹원로(孟元老)의 저서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중추날 밤에는 대문을 장식하고 술자리를 마련하여 달맞이를 하는데 풍악소리가 밤새도록 끊이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3 「열전(列傳)」 김유신조(金庾信條)에 “8월 보름에 왕이 월성(月城) 산 위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며 시종관들과 함께 주연을 베풀고 즐겼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성종실록(成宗實錄)』 성종 20년(1489) 8월조에 “옛 사람들이 추석에 달구경한 것이 어찌 황음(荒淫)하여 그러하였겠는가? 오늘 저녁에 경연 당상(經筵堂上)과 출직(出直)한 승지(承旨)·주서(注書)와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에게 주악(酒樂)을 내려 청량(淸凉)한 곳을 가려서 태평의 날을 즐기게 하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 후기 조재삼(趙在三)의 저서 『송남잡지(松南雜識)』 「세시류(歲時類)」 시월잉태조(視月孕胎條)에는 “쇄쇄록(瑣碎錄)에 이르기를, 날이 흐리거나 구름이 있어 추석 달이 보이지 않으면 토끼가 새끼를 배지 못하고 개구리가 알을 낳지 못하며 또 메밀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지역사례 추석날 달맞이는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풍속이다. 전남 지역에서는 달을 보고 절을 하면서 소원을 빌기도 하고, 남보다 먼저 달을 보게 되면 아들을 낳게 된다고 하여 아들이 없는 집의 사람이 먼저 달을 보도록 양보하기도 한다. 충남 지역에서는 추석날 달이 잘 보여야 보리농사가 잘 된다고 여기며, 횃불과 짚을 준비하여 달이 떠오르면 짚에 불을 붙여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 해안 지역에서는 달이 밝고 둥글면 가을 어장이 좋다고 여긴다. 부산 지역에서는 추석날 보름달이 희고 밝으면 이듬해 물이 흔해 풍년이 들고, 달이 붉으면 가물어서 이듬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한 달의 서쪽이 이지러져 있으면 서쪽에 있는 마을에 흉년이 들고, 동쪽이 이지러져 있으면 동쪽에 있는 마을에 흉년이 든다고 한다. 서울 지역에서는 추석에 달이 보이지 않으면 개구리가 알을 배지 못하고 토끼도 새끼를 배지 못하며, 메밀도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속신이 있다. 또 이날 높은 산에 올라가 달에 절을 하고 남보다 먼저 달을 보면 첫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도 한다. 의의 추석에 달맞이를 하는 행위는 달을 소생의 상징물 또는 생명력의 상징물로 여기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정월대보름과 더불어 일년 중 가장 밝고 둥근 달이 뜨는 추석에 달맞이를 함으로써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고, 내년 농사의 풍작과 못다 이룬 소망을 기원하는 것이다. . 출처: 달맞이(추석)(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추석 달맞이는 마당.누각에서 해도 月神(달님)은 소원을 빌도록 허용하고 계십니다. 본인좋으라고 하는것이니까 온국민 모두 달맞이를 하면 좋겠습니다. 5]. 추석(中秋節.仲秋節,秋夕)에 대한 베이징관광국의 설명. 중추제(中秋节,zhōng qiū jié,중추절) 소개 추석(中秋节, 중추절)은 음력으로 8월15일로, 한해의 중간쯤에 있어 중추라고도 불리우게 되었다. 추석은 중국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음력설 다음으로 중요한 명절이기도 하다. 해마다 추석이면 중국 사람들은 집에 모여앉아 월병과 과일 등을 차려놓고 먹으면서 달구경을 한다. 월병은 소를 넣은 원형의 다과로서 모임을 상징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월병을 서로 선물하기도 한다. ◇ 중국의 추석, 중추절의 유래 추석의 유래는 일반적으로 상아분월(嫦娥奔月)의 전설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다만 내용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존재한다. 아래는 그중 일반적인 이야기 중 하나이다. 아주 먼 옛날에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나타나서 대지를 아주 뜨겁게 불태우고 바닷물을 고갈시켜 백성들은 살아갈 도리가 없었다. 이 일은 후예(后羿)라는 영웅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는 곤륜산(昆侖山) 정상에 올라가 신궁(神弓)으로 나머지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고 백성들을 재난에서 구제했다. 얼마 후 후예는 상아(嫦娥)라는 미인을 아내로 얻었다. 하루는 후예가 친구를 찾으러 곤륜산에 갔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서왕모(西王母)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때 후예는 서왕모에게서 "불사약(不死藥)"을 얻었다. 이 약은 복용하면 즉시에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약이었다. 후예는 아내를 홀로 남겨둔채 승천할 수 없었기에 그 약을 아내 상아에게 잘 보관해두라고 주었다. 이 일을 뜻밖에도 후예의 식객이었던 봉몽(蓬蒙)이 알게 되었다. 봉몽은 후예가 외출한 틈을 타서 상아에게 그 불사약을 내어놓아라고 협박하였다. 상아는 봉몽의 적수가 되지 못한 것을 알고 그만 그 불사약을 입에 삼켜 버렸다. 상아는 그 약을 삼킨 후에 곧바로 몸이 땅에서 멀어지더니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상아는 하늘로 올라가면서 얼마나 남편을 그리워하였든지 더 이상 날아 올라가지 못하고 인간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달에 떨어져 선녀가 되었다. 후예가 집으로 돌아온 후 시녀들이 모든 사실을 울면서 말해줬다. 슬픔을 억누르지 못한 후예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그날밤은 달이 유난히도 둥글고 밝았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상아와 똑같이 생긴 흔들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후예는 급히 제상을 내어와 상아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과 과일을 그 위에 차려놓고 월궁(月宮)에 있는 상아에게 제사를 지냈다. 백성들도 상아가 신선이 되어 달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달 아래 제상을 차려서 상아에게 행복을 빌었다. 이때부터 민간에서는 중추절에 달에게 절하는 풍습이 전해지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 추석의 전통 풍습 중국의 주요 추석행사로는 달구경, 월병먹기, 조수보기, 등불구경 등이 있다. 음력 8월 15일의 달은 여느 때보다도 맑고 둥글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중추절을 일명 월석, 팔월절이라고 한다. 이날 쟁반같이 둥근달을 보는 것은 추석의 빼놓을 수 풍습이다. 또 멀리 타향에서 고향 부모님과 친척에 대한 그리움을 달구경을 하면서 달래기도 한다. 중국의 고대기재에 따르면 추석때에는 석월(夕月)이라는 제월제도 있었는데 바로 달신에게 제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주나라때에 와서는 추석밤이면 제월제를 지냈는데 제사상에는 월병, 수박, 사과, 붉은 대추, 배, 포도 등이 제물로 올랐다고 한다. 이중에서 특히 월병과 수박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제물이었다고 한다. 수박은 또 꼭 연꽃모양으로 쪼개놓아야 했다는 설도 있다. 달빛아래서 온 가족이 함께 촛불을 밝히고 일일이 달신에게 제를 지낸 후 가족의 주부는 월병을 썰었다고 하는데, 집에 있든지 타향에 있든지를 막론하고 온 가족 성원의 숫자를 세어서 그 숫자대로 꼭 같게 월병을 썰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풍속이 이미 사라지고, 온 가족이 단란히 모여서 월병을 먹는 것으로 즐거운 명절의 한때를 보낸다. 또한 등불구경은 중국의 강남일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풍습이다. 이곳에서는 추석을 십여일 앞두고 참대로 등불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등불에 과일, 새나 짐승, 물고기나 벌레 등을 새기거나 중추절 축하메세지 같은 것을 새겨 넣는다. 등불의 색깔 또한 가지각색인데 추석밤이면 긴 참대에 등불을 걸어 집의 처마나 베란다에 걸어둔다. 때로는 작은 등불 여러개로 글자를 새기거나 각종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정월대보름의 등불놀이에 이어 중추절의 등불놀이 또한 그 규모가 상당하다. .출처: 베이징관광국 한글 공식사이트.2013-09-11 6]. 유교 경전이 아닌 시중의 풍속으로 인식해보는 중추절의 유래에 대한 다른 해석 중추절의 기원과 관련해 전해지는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하나는 다음과 같다. 아주 오랜 옛날 하늘에 태양이 열 개가 떠 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1년내내 뜨거운 태양이 작열해 땅이 갈라지고, 모든 작물이 메말라 죽는 등 인간들이 고통에 허덕였다. 고통 받는 인간들의 모습을 본 하늘의 제왕이 더 이상 이를 방치하면 안되겠다 싶어 활을 잘 쏘기로 정평이 난 호우이[後羿]를 불러 9개의 태양을 활로 쏴 떨어뜨리고 하나만 남겨두라고 하였다. 호우이는 명령대로 9개의 태양을 떨어뜨려 인간세상을 구하고, 영웅이 된다. 그 후 호우이는 창어[嫦娥]라는 예쁜 부인도 얻고 인간세상을 구한 영웅으로 추앙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활을 잘 쏘는 호우이는 사냥을 매우 즐겼는데 하루는 사냥을 하러 쿤룬산[崑崙山]에 갔다가 우연히 서왕모(西王母, 신화 속의 여신으로 곤륜산에 살며 불로장생의 선도(仙桃)를 키웠다고 전해짐)를 만나게 된다. 호우이는 서왕모로부터 먹으면 하늘로 승천해 신선이 될 수 있는 신비의 묘약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인 창어를 두고 혼자 하늘로 올라갈 수 없었던 호우이는 신비의 약을 창어에게 맡겨두었다. 이 때 호우이의 부하 중 한명인 펑멍(蓬蒙)이 이 사실을 알고 약을 훔칠 기회만를 노리고 있었다. 하루는 호우이가 부하들을 모두 이끌고 사냥을 나가는 날이었다. 펑멍은 이 기회를 틈타 약을 훔치기 위해 창어의 방으로 들어갔다. 놀란 창어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하다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펑멍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그 자리에서 신비의 묘약을 꺼내 삼켜버렸다. 그러자 창어의 몸이 하늘로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남편을 홀로 두고 갈 수밖에 없었던 창어는 인간세상에서 가장 가깝다는 달에 남아 남편을 그리며 살게 되었다. 한편 사냥에서 돌아온 호우이는 시녀로부터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가슴 아파하며 통곡하였다. 그 날 이후 호우이는 달에서 창어가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내가 좋아하던 뒷정원에 제사상을 차려 향초를 꽂고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사람들도 8월 15일 불쌍한 창어가 달에서 무사 평안하게 지내길 기도하는 제사를 치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의 중추절 명절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출처: 중추절[zhong qiu jie, 中秋节] (두산백과) . 필자 주 7). 두산백과에 나오는 중추절의 유래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 다 음 -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사람들도 8월 15일 불쌍한 창어가 달에서 무사 평안하게 지내길 기도하는 제사를 치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의 중추절 명절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필자가 정리하면 중국 시중에서 전하는 속설중 하나가 호우이[後羿]의 아내 창어[嫦娥]가, 달에서 무사 평안하게 지내길 기도하는 제사를 치르기 시작해서 중추절의 유래가 되었다는 또다른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시중에서 전하는 속설로만 의미가 있는 것이며, 유교 경전으로 볼 때는 천(天, 하늘), 태양(日), 달(月)을 숭배하여 제사지내던 전통에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고대 중국의 왕들이 음력 8월 16일에 달에게 제사지내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두산백과의 중추절 설명에 잘 나타납니다. - 다 음 - ‘중추’라는 말은 《주례(周禮)》에 가장 처음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 고대 왕들은 음력 8월 15일 달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1년 4계절(3개월)을 1개월씩(孟 혹은 初,仲,季) 나누었는데, 음력 8월 15일은 가을의 중간인 '중추(仲秋)'라 하였다. 이것에 착안해 8월 15일 달에 제사 지내는 날을 중추절(仲秋節 혹은 中秋節)이라고도 불렀다... 7]. 추석(仲秋節,秋夕)에 대한 한국세시풍속사전의 설명. 중추절[ 仲秋節 ] 정의 중추(仲秋)는 가을 석 달 중에 중간 달을 의미하고 절(節)은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인 한가위를 이르는 말로 음력 8월을 달리 부르는 말. 일년 열두 달을 사계절로 나누어 1~3월을 춘(春), 4~6월을 하(夏), 7~9월을 추(秋), 10~12월을 동(冬)이라 하고, 각 계절에 속한 석 달을 나누어 첫 달을 초(初) 혹은 맹(孟), 두 번째 달을 중(仲), 마지막 달을 모(暮) 또는 만(晩), 계(季)라고 한다. 내용 『여씨춘추(呂氏春秋)』 「중추기(仲秋紀)」에 “중추의 달에 해는 각수(角宿)에 있으며, 저녁에는 견우[牽牛, 牛宿]가 남중하고 새벽에는 자휴[觜觿, 觜宿]가 남중한다.…… 거센 바람이 불고 기러기가 오며 제비는 돌아가고 새들은 좋은 먹이를 갈무리한다(仲秋之月 日在角 昏牽牛中 旦觜觿中…… 盲風至 鴻雁來 玄鳥歸 群鳥養羞……).”라고 하였다. .출처:중추절 [仲秋節]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8].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추석에 대하여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추석을 명절로 삼은 것은 이미 삼국시대 초기이었으니,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 한가위 날까지 한 달 동안 두레 삼 삼기를 하였다. 마지막 날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턱을 내고 <회소곡 會蘇曲>을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9]. 삼국사기는 8월 15일(음력)의 추석과 관련하여 회소곡과 결부하여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三國史記 卷 第一 新羅本紀 第一(儒理尼師今) 九年(西紀 三十二) …王旣定六部 中分爲二 使王女二人 各率部內女子 分朋造黨 自秋七月旣望 每日早集大部之庭績麻 乙夜而罷 至八月十五日 考其功之多小 負者置酒食 以謝勝者 於是 歌舞百戱皆作 謂之嘉俳 是時 負家一女子 起舞嘆曰 “會蘇 會蘇” 其音哀雅 後人因其聲而作歌 名會蘇曲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유리 이사금) 9년(서기 32) …왕이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반씩 둘로 나누어 왕의 딸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部) 안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나누어 편을 짜서 가을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큰 부[部]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도록 하여 밤 10시경에 그치는데,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적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진 편은 술과 음식을 차려서 이긴 편에게 사례하였다. 이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모두 행하는데 그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탄식해 말하기를 “회소 회소(會蘇)”라고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아름다워 후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서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이름하였다. 출처 : 정구복 외 4인, 역주 삼국사기, 한국학중앙연구원 10]. 한국에 종교주권 없는 일본 강점기 포교종교들의 임의적인 해석에 의해 조상제사나 차례를 기피하는 시도가 발생하여 왔었는데, 불교,기독교는 원래부터 조상제사와는 관계없어서 그런 현상이 생기는것 같습니다. 세계종교중에서는 황하문명의 유교가 가장 오래된 종교중 하나지만, 서양의 로마 가톨릭은 그 교세가 현대에는 가장 큰 종교인데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측면에서는 상호 통하는 종교임은 분명합니다. 불교는 無神論的 경향으로 부처가 창조부보다 높게 책정되는 점이 창조주 중심.神중심의 유교.기독교.이슬람교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불교는 조상제사와 관계없는 無君無父라는게 유교측 전통 입장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어도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므로, 한국은 유교국입니다. 11]. 한편, 조선성명 복구령등에 의해 한국은 전 국민이 한문성씨와 本貫을 사용하는 유교도의 나라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일본 총독부령 83호에 의해 강제 포교된 강점기 포교종교인 일본 신도, 불교, 기독교(개신교가 대부분, 가톨릭 한두개 성당)는 한국에 종교주권은 없지만, 종교의 자유는 있습니다. [5]. 한국은 기자조선이후, 위만조선을 거쳐, 한사군 설치로, 세계종교 유교국가로 수천년 이어져 온 나라입니다. 유교를 중심으로, 도교나 불교도 부분적 수용. 동양은 제자백가가 경합하다가 유교가 세계종교, 서양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기독교)이 공존하다가, 로마가톨릭이 세계종교됨. 인도는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부처의 불교가 주변국에 단순포교를 해, 한때 고대세계 세계종교였지만, 발원지 인도에서 천 몇백년동안 선발신앙인 브라만의 힌두교에 억눌려 탄압받으며 현재에 이름. 한국은 세계사의 정설로,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국으로 수천년 이어진 나라임.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때 외래종교 형태로 단순 포교되어, 줄곧 정규교육기관도 없이, 주변부 일부 신앙으로 이어지며 유교 밑에서 도교.불교가 혼합되어 이어짐. 단군신화는 고려 후기 중 일연이 국가에서 편찬한 정사인 삼국사기(유교사관)를 모방하여, 개인적으로 불교설화 형식으로 창작한 야사라는게 정설입니다. 유교,공자.은,주시대始原유교때 하느님.조상신숭배.세계사로보면 한나라때 공자님도제사,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성립.2차대전이후, 싱가포르와 대만(차이니스 타이페이라고도 함, 정치적 문제와 별개로,대만도 유교를 믿음)까지 합쳐 전세계 십수억명 유교도가 존재함. 수천년전승.한국은殷후손 기자조선 기준왕의 서씨,한씨사용,三韓유교祭天의식. 국사에서 고려는 치국의道유교,수신의道불교.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고려 국자감은 고려말에 성균관이 되고, 조선 성균관, 해방후 성균관대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한국은, 기자조선이 있어서, 하느님을 숭배하고, 조상신도 숭배하는 수천년 전통이 있어온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예의범절있는 동방예의지국으로 대우받게 한 기자조선. 인도발 외래신앙인 부처 Monkey의 불교가, 하층주변부 신앙으로 살면서, 하느님.창조신을 거부하고 부처가 창조신보다 높다고 하거나, 조상제사를 거부하는 금수 부처의 불교를 막아내고, 하층주변부나 억압대상으로 살아오게 한것은 잘한일입니다. 기자조선이 있어서, 삼한의 제천의식이 있었고, 세계종교 유교의 성립으로 한사군 낙랑의 선진문화를 흡수한 부여 영고, 부여의 선진문화를 흡수한 고구려 동맹의 제천의식이 있었습니다. 기자조선과 한사군의 유교문화가 강하게 스며든, 삼한의 제천의식,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이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초까지 이어지고, 대한제국때 다시 부활하여, 현재는 고종 후손 황사손(이 원)의 제천의식인 환구대제가, 해동天子國전통을 가진 현대의 한국에서 시행중. 또한 황사손(이원)의 종묘대제, 사직대제. 그리고 성균관.향교의 석전대제.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6]. 성균관.향교의 50만 제사인구는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 주권없는 일본 잔재 불교 Monkey 서울대등이 최근에 다시 어거지쓰고 약탈하려는 주장은 주권.자격이 없음. 저 Monkey들 어거지는 교과서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 아니라는 것임. 일본 강점기 주장을 이어받아, 다시 일본잔재 서울대 출신이 1983년에 통계기법으로 주권없이 조사한 종교인구 표본조사같은걸로, 주권없이 다시 유교 약탈.테러중. 1983년 한국갤럽의 종교인구 조사는 이듬해인 1984년에 공식 발표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 의식 보고서의 기초가 된 조사입니다. 한국갤럽의 설립자이자 당시 조사를 이끌었던 박무익 회장은 서울대학교 출신입니다. 이런 식으로, 5,000만 한국인의 국교인 유교도들의 명절,제사,24절기,유교교육등을 무종교도로 만들고 주권없는 일제 강점기 포교종교 신도수만 내세우고, 10년 단위로 현혹하고 있음. 성균관.향교 제사인구 50만명만 유교인구라고 어거지쓰는것은 패전국에 전범국,UN적국 일본 불교 Monkey들이 사기치는 원숭이 노예합창.통계청 표본조사로 종교인구 조사하는것은, 더 이상 써먹지말고, 이런 조작 중지해야 할것. 애초부터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에 따라 일본 강점기 종교정책은 주권도 없고 인정받을수 없었음. 제헌의회 임시정부 반영에도 어긋나고, 1988년의 현행헌법 前文 임시정부 정통성 승계(한일병합등 모든 불평등 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위배됨. 유교를 국교로 승계받은 줄 알고, 당연히 유교도로 사는 한국인들을 다시 기만하기 시작한것.@세계사 고대 3대종교는 유교,기독교,불교(삭제않되고 유지)@유교는 문화대혁명때 침체,중국이 여러 유교명절 공휴일 지정,24절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음력 새해 명절을 UN 유동적휴일로 건의,채택.기독교(중세이후 크게 번창),불교(브라만교가 강하게 탄압,힌두교 인도).@수천년 한국 유교문화 5대 명절에 현대적 개념 도입한 국가유산청의 5대 명절 지정. 2023년 12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5대 명절을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설(중국은 춘절)과 대보름(중국은 원소절),한식(중국은 청명절),단오,추석,동지@유교는 성당,힌두교 사원,불교(브라만에 항거한죄로,인도에서 천 몇백년 탄압중) 사찰과 달리 무형유산 유교 명절에 전국민 참여. 유교는 왕실(대한제국은 황실)의 종묘대제,성균관.향교의 석전대제, 수천년 전통명절들, 문중별.가족별 제사.차례,기도. 24절기,유교 교육등. @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한국 독립이 정식으로 승인되자,1944년 프랑스,소련,폴란드정부는 주중대사관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을 통고(인용:두산백과).임시정부가 정규군인 한국광복군을 이끄는 합법적 주권정부이자 국제사회의 독립 주체임을 인정받은것.@포츠담선언 수락,무조건 항복한 일본.한국,만주,대만,쿠릴열도등에 주권없고,침략했던 동남아 국가에도 주권없음@패전국,전범국,UN적국이란 역사적 단죄에 순응하고 살아가길!@한국내 일본잔재 이용,주권없이 영화.드라마.대중언론.SNS통해 유교,성균관(성균관대)왜곡은 여전.2차대전으로 항복한 일본이 한국등 아시아 지역 및 러시아와 문제되는 쿠릴열도 등 해당지역에 주권이 없는데,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서 큰 문제임. 일본이나 일본 잔재가 주권없이 한국 주권이나 유교, 성균관(미군정때 성균관대로 승계) 및, 한국 중.고교등을 약탈하고, 일본의 전방위적 억압기구가 성격이 변해, 남아 있어서 문제임.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조선.대한제국.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 포함)에 의거.그 국교는 유교 @일본 주권은 한국등에 없음. 일본 신토,불교,일본내 극소수 기독교나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은 축출(폐지)대상. 다만, 미군정령 크리스마스 공휴일은 참작. 미군정령으로,한국은 5,000만 모두 국제법.행정법상 조선.대한제국 국교 유교승계,한문성명.본관등록,유교도(명절,제사등).최고제사장 황사손. 기독교중,유교를 제대로 이해하는 계파는 세계사의 마테오리치 신부의 예수회.중국 明.淸시대 선교사@고대 세계종교로 성립된 유교와 기독교.하느님을 숭배하는 대표적 세계종교임.불교는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한,부처 Monkey불교가 고대 세계종교.천몇백년동안 인도가 탄압.@한국은 초등학교때 애국가 부르며 하느님(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을 수시로 체화.중고등학교 및,국가나 스포츠행사등의 애국가 제창.중학교때는 한문으로 삼강오륜 유교교육.고등학교때는 세계종교 유교의 성립,기자.위만조선,한사군,삼한. 한국은 기자조선이후, 위만조선을 거쳐, 한사군 설치로, 세계종교 유교국가로 수천년 이어져 온 나라입니다. 유교를 중심으로, 도교나 브라만에 항거하여 일어난 인도발 외래신앙인 불교도 부분적 수용. 동양은 제자백가가 경합하다가 유교가 세계종교, 서양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기독교)이 공존하다가, 로마가톨릭이 세계종교됨. 인도는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부처의 불교가 주변국에 단순포교를 해, 한때 고대세계 세계종교였지만, 발원지 인도에서 천 몇백년동안 선발신앙인 브라만의 힌두교에 억눌려 탄압받으며 현재에 이름.@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포함)을 받아들여,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고, 한국영토에서 축출해야 될 일제 잔재 종교정책과,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각종 왜구학교.@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 세워진 귀족계파 가톨릭 예수회의 서강대는. 명.청시대의 선교사 파견 및,조상제사를 잘 이해하며, 명나라가 세계 최고 문명국이라는 평가를 보여온, 합리적인 자세로,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나라 한국에서 宮성균관대에 꼭 필요한 대학임. 근대세계 지배세력 서유럽과 기독교의 자격 및 교황청 실세인 예수회.필요한 대학임.@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로 설립된 예수회의 서강대는,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이 뒤로 주권.학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으로 형성된 대학들. @ 주권.학벌없는 패전국 일본 잔재 노예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 부하 노비들의 수많은 약탈유형이 있지만, 대학자격 인정해 줄 수 없어온, 해방후의 한국. 대중언론.사설입시지, 여러 공사단체에서 새롭게 하위 기준을 만들어도, 상위법인 국제법[국가원수들의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 그 국제법 하위법령인 미군정법률의 국사 성균관 교육(성균관장이 성균관대로 미군정에 등록.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 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의 임시정부 반영(제헌의회), 현행헌법 前文의 임시정부 반영(대일선전포고, 한일병합등 불평등조약 무효), 국가주권, 한국사, 세계사가 우선임.@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서강대는, 세계사의 교황제도 반영, 국제관습법상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으로 형성된 전국 각지역 대학들.@미군정이 복구시킨 성균관. 해방후 임시정부 요인출신이던 김창숙 성균관장이 전국 유림대회 결의에 따라, 성균관대를 미군정에 대학으로 등록.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현재에 이름.왕세자때 성균관에서 공부한, 역대 왕들도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동문이었음.@태종은 땅과 노비를 지급하고 친히 문묘에서 제사를 지냈고 왕세자의 입학을 명령하였다. 이후 이것은 상례가 되었으며...*출처:성균관[成均館] (종교학대사전).@조선 태조7년(1398) 7월 校舍창건,이 해를 근대 학제개편 이후의 성균관대학교 창립연도로->성균관의 입장임.성균관대 입장도 동일.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시사상식사전,종교학대사전,교육학사전 공통견해.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 받아들여, 일본이 무조건 항복. 일본의 주권은 포츠담 선언 제8항에 의해,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의 4개 본섬과 연합국이 결정하는 여러 작은 섬들로 제한되었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4090602113 [7]. 인류는 만물의 근원.창조주 하느님(乾,天)의 섭리하에,만물의 영장으로 창조된,인간의 도리를 가르치신,근본적 하느님 아들 유교 공자님(先聖,聖天子)과,기독교세계 하느님의 독생자 주 예수를 떠나살수 없음.짐승같은 불교 부처Monkey는 창조신에 도전하는 나약한 원숭이! 인류조상 베이징원인.夏의 해.달.별 숭배,殷(商)의 上帝숭배,이전 신앙 흡수하여 유교 경전에 정형화된 周나라의 天(하느님,만물의 근원 乾,天.시경 天生蒸民으로 인격天 제도화)숭배와 天子제도.漢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天子제도 승계,공자숭배. 夏의 해.달.별 숭배, 문자를 발명한 殷(商나라)의 上帝숭배, 이전 신앙을 흡수.통합하여 유교 경전에 정형화된 周나라의 天(하느님, 하늘. 시경 天生蒸民으로 인격天의 개념이 제도화)숭배와 天子제도는, 하늘로 승천하여 계절을 다스리시는 오제(五帝. 태호,염제,황제,소호,전욱으로 창조주.최고신 天다음의 계절의 神이시며, 인격神의 시조)를 숭배하며, 요.순.우.탕.문.무의 先聖 가르침을 경전에 기록함. 주나라의 혼란기인 춘추전국시대에는 殷왕족의 후손이시며, 周나라 대부의 아들로 태어나신 공자님께서 제자백가의 여러 사상중 하나로 유가의 시조가 되심. 선성과 어진 섭정 주공의 행적을 존경하신 공자님. 공자님의 가르침은 하느님(天, 하늘)의 섭리하에, 조상신.지신.산천신 숭배를 이어가면서, 인간의 도리를 하기 위해, 학습을 하면서, 仁이나 禮, 恕등으로, 세상을 교화하시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공자님은 殷나라 왕족의 후손이신데, 당시에는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나, 선생 칭호의 子를 붙여 공자(공선생님)로 불리시다가, 후세에, 선성(先聖, 先聖王으로 聖天子를 의미)으로 추존되어, 역대 중국 천자들과 사람들이 제사하는 聖人이 되셨습니다. @ 漢나라때 漢의 국교며, 동아시아 세계종교(중국,한국,베트남, 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 현대의 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에 걸쳐 십수억명 유교도)로 성립되어, 수천년 이어진 세계종교 유교. 학생때 세계사영역,중국의 제자백가. 유가,법가,도가(한국은 신선사상,풍류도),묵가. 漢나라때 유교(儒家)가 국교가 되어 수천년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의 세계종교@인도발 외래신앙 불가(불교)는 일본 불교Monkey와 주권없는 경성제대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일본잔재 대만대가 대중언론.방송.SNS,뇌과학으로 어지럽혀도 제자백가 밑!@국가 최고 의례는 왕실의 조상제사인 종묘대제,토지와 곡식의 신에 제사하는 사직대제,先聖이신 공자님에 제사하는 석전대제.유교문화에서 인정되지 않는 인도발 오랑캐 도적의 짐승신앙 불교나, 힌두교 및 다른 종교 인정하기 어려움.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다시 인도가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천민으로 핍박하는 불교.@패전국.UN적국 일본 불교Monkey들이 근대에 한국.대만지역 합쳐 내세운 불교.건축물.유물로,유럽공략 걱정됨@원숭이.코끼리.사슴에서 환생한 부처 Monkey의 윤회론도 끔찍.유교문화권에서 제자백가뒤 오랑캐 도적,짐승으로 견제받던 인도발 외래불교일뿐. 중국.로마는 주변국가들을 야만족이라고 불러옴.역사적 사실@야만족에 군사력으로 정복당해도,종교와 대학.문화로 지배 분담@유교문화권은 인도발 불교를 오랑캐 도적,사람아닌 짐승(無君無父의 禽獸)으로 분류.하느님도 모르고,윤회론의 원숭이-> 불교 부처 Monkey는 不變 인도의 불가촉 천민,조선의 천민 승려 불교.불교는 부처Monkey가 인도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 천민으로, 다시 탄압받고 있음. 원숭이.코끼리.사슴에서 환생한 부처 Monkey의 윤회사상도 가미한 짐승신앙임.건축물 중시 유산은 종교의 본질과 큰 관계없음.경전,교리,역사적 전통,제도,그 제사장,신도수,해당국들에서의 국교로서의 전통등이 중요. 동아시아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한국은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삼한을 통하여,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로 확실히 정착, 하느님.조상신을 숭배하며,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신 공자님울 聖天子(先聖)으로 제사하는 나라. 그러다보면 유교 근본주의로 해석해서, 사후 비판 할 수도 있을법도 함. 삼국시대, 신라멸망후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패전국 일본 불교 Monkey항복후의, 유교복구와 일본 잔재등 아주 복잡함. 유교경전은 후세 정치적용어 皇帝없음.만물의 근원.창조신(乾,天) 하느님 다음,유교 경전 예기의 五帝(계절신,조상신,인격신)의 으뜸신 黃帝(殷왕족 후손 공자님의 조상神)는 均天의 인격神.공자님은 후세 天子들이 제사하는 聖天子(先聖).주권있어도 한국은 종교 天子국 아님 기독교세계는 하느님의 독생자 주 예수.주 예수의 종 교황,스페인왕.영국왕등 기독교 국왕들로 이해.유교문화권 중국,한국이 후세의 정치용어 皇帝에 의거,敎皇(교화 황제)으로 번역한 Pope.유교국 정치지도자들이 皇帝라는 용어사용 시도했어도 天子는 단 한분 종교지도자. 서로마.동로마는 중국殷,周,제자백가,漢처럼 중요@헬레니즘.헤브라이즘@이집트,그리스,서아시아,인도북부 통치한 알렉산더.그리스 신화의 Chaos@수천년 세계종교 유교.기독교는 만물의 근원.창조주 하느님 중심.하느님 아들 공자님(先聖,聖天子),기독교 하느님 아들 주 예수. 殷왕족 후손 箕子의 기자조선.한국 북부->夏의 해.달.별 숭배와 殷(黃帝,殷왕족 후손은 箕子,공자님)의 上帝숭배를 후발 周 天子에게 허용받은 한국 始原유교시대.箕子후손 기준왕이 건설한 남부 三韓은 한국 始原유교지역.세계사로는 북부지역 漢사군의 유교(孔子사상)정착. 한국 마을제사->후발 周(天子제도)가 허락,선발 殷왕족제사 지속 유형.殷왕족 箕子조선.三韓제사장 주관,제천의식,地神.산천神제사.삼국시대 번창,고려까지 제지않음.조선이 확실한 天子의 제후국되어,허락받지않은 제천의식.산천제사 금지->무속이라 탄압.天子국 아닌 한국. 정교회의 러시아.강대국@성씨없는 머슴型에,수천년 야만족에,부처 Monkey에서 파생된,근대 군사강대국 일본 점쇠(히로히토등,일본 짐승국가의 상징)가,하느님.예수님보다 높고,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 아니라는 주장으로,AI뇌과학 짐승 마법사 도둑질 하는것도 경계要. 세계사 殷왕족 箕子의 기자조선(기준왕때 위만조선에 멸망),위만조선, 위만조선을 정벌한 漢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됨.한국은 기자조선의 始原유교와 세계사의 정설인 漢나라때 동아시아 세계종교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 북부의 漢사군과 별도로,한반도 남부는 殷왕족 기자조선의 후손 기준왕과 후손들이 삼한 설립(마한.진한.변한). 진한과 변한에서 신라,가야가 후발로 건국됨.漢사군의 선진 유교문화 낙랑에서 부여가 건국되고,부여에서 이동한 주몽(고주몽)이 고구려 설립. 고구려 주몽의 후손 온조가 백제건국. 진한.변한의 신라,가야는 기자조선.삼한의 始原유교에서, 선진 유교문화 고구려.백제,중국 본토와 교류하며,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국가로 본격 재정립됨.제자백가,외래신알 불교 유입. @ 불교 Monkey의 채식주의나, 사찰음식 모방하여 살아가는것은 위험함. 유교나 기독교 국가들은 수시로 육지고기 먹어야 합니다. 황하문명의 중국 음식(이탈리아,프랑스등과 각종 요리가 발달)의 특징은 불을 이용하여 튀기고,끓여먹고,구워먹는 맛있는 음식들.유교.기독교 국가들은,하느님의 섭리에 따라서,육식을 자주해야!@불교 Monkey채식주의는,유교.기독교와 맞지 않음.일본은 불교 Monkey(스시로 육지고기 먹지 않는다고 위안삼는것으로 보여짐). 다신교인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최고 하느님이시며, 만물의 근원이시고, 인간을 창조하신(시경:天生蒸民) 하느님(天). 그 하위의 조상신(유교 경전 예기에서 계절을 다스리시는 五帝),地神.산천神 숭배 이어받으신 공자님의 가르침(하느님의 섭리하에 피조물 중 만물의 영장 인간이 추구해야 할 여러 덕목인 仁과 禮, 恕등),그리고 유교의 실천강령중 하나인 삼강오륜. 창조신에 항거한 불교 부처 Monkey는,과거에 코끼리,사슴, 원숭이라고 본생경(Jataka,本生經)이 설명@유교는 다음생,저번생같은 윤회가 없고,사람이 짐승으로 환생하는것 불인정.유교는 하느님(天)이 창조하신 인간이 가장 중요함.죽으면 魂이 하늘로 올라감.악귀는 못올라감.유교나 가톨릭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영장 인간이 가장 중요할뿐, 사람이 동물로 윤회하거나 하는것을 인정치 않습니다. 전생이나 내세도 없습니다. 다만 유교는 사람이 죽으면 혼이 하늘로 승천하고, 현세에서 죄를 지었으면 그에 맞게 악귀로 처우되어, 떠돌게됩니다. 한번뿐인 고귀한 인생, 부처 Monkey의 불교처럼 동물로 인간을 비하하지 말고 열심히 사는게 유교입니다. @ 현재의 중국 국가주석은 종교적으로 유교국가들(중국,한국,베트남,몽고,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의 天子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것. 춘절,청명절,단오절,중추절의 법정 공휴일, 24절기 유네스코 등록@정치적으로는周 文王의 환과고독(鰥寡孤獨)구휼 위한 大同사회목표. 인구밀도가 낮은 시대에 유교,기독교,이슬람교는 매장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인더스문명의 인도는 인구밀도가 높은편이라, 고대부터 브라만교(힌두교로 이어짐),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불교는 화장문화였음. 최근에는 너무 인구밀도가 높아, 종교와 상관없이 유교,기독교,이슬람교도 납골당, 수목장등이 대세임. 유교는 화장하더라도, 집에 영정을 모시는 쪽으로 이어지면됩니다. @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삼한시대에 시작된 제천의식 단오. 유교는 제천의식, 地神제사, 山川제사, 조상제사, 공자님제사가 대표적인데, 고대 한국은 삼한의 상달제, 시월제,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등 제천의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천의식들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조선초에 제천의식 폐지하였다가 대한제국때 부활)를 거치며, 현재도 설날,대보름,단오,추석류의 제천의식(전국적인 조상제사도 포함된 명절이 설날과 추석임)들과, 조상제사인 한식등 대표적인 명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상제사로는 왕가의 종묘제사부터, 일반인들의 문중제사.가족별 조상제사가 있고, 조상제사와 달리, 동지같은 명절 및 24절기의 주요 명절등이 있습니다. 유교의 부분집합 중 하나인 공자님제사(석전.문묘제사)는 성균관을 필두로 전국의 향교에서 거행하는데, 참석인원은 성균관.향교에 등록된 유림들만 참가하여 50만 정도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한국은 한국에 주권이 없는 일본잔재의 주장과 달리, 무교도가 없으며, 5,000만 국민 모두가 유교의 각종 명절과 제사에 여러가지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포교된 일본 신도(일본 불교에서 파생된 후발 국지적 일본의 신앙), 불교, 기독교(일본의 극소수 신앙)가 있는데, 한국영토에 주권없이 유교를 같이 믿고 있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였고, 일본이 항복하면서, 일본의 주권은 한국영토에 없어졌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을사조약.한일병합등이 무효(대일선전포고 포함라고 하였고, 해방이후 미군정시대에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전 국민이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 등록하는 유교국가 조선의 유교도로 복구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도 해방이후 모든 한국인은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도로, 유교의 각종 명절과 제사, 24절기, 유교교육을 주로 받는 유교도임은 변치 않습니다. @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제강점기 포교종교들이 종교협의회나 어떤 모임 가진다고, 종교주권이 생기지는 않습니다.한국은 미군정때,조선성명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국교 유교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임은 변치않으며 5,000만이 유교도임.그리고 주권없이, 일본 강점기 강제 포교종교도 같이 믿는 현상이 생겨남.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나, 서유럽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 초월자이십니다. @ 공자님의 시호. 하늘이 보내신 성자이신 성인 임금 공자님은 황제 칭호인 문선제(文宣帝).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의 오랜 전통으로 호칭되어 오고 있습니다. 나중에 생긴 황제칭호를 붙이지 않아도, 유교 경전상 성인임금 요.순.우.탕.문.무는 요임금,순임금등 고대의 임금칭호가진 성인(聖人,聖天子)들로 일반 황제보다 더 성스럽고 존귀한 성인(聖人,聖天子)들 이십니다. 한나라 이후의 역대 중국 황제들은, 聖天子이신 요.순.우.탕.문.무 및 공자님(춘추전국시대에는 聖天子인 聖人의 후손이며, 선생칭호인 子를 붙여 孔子로 불리시다가, 당나라이후 문선왕 칭호를 추증 받으시고, 그이후 황제국가들에서 대성지성문선왕으로 추증되심)을 모셔왔습니다. 공자님은 당나라때 文宣王추증이후, 그이후 황제국가들에서 至聖文宣王,大成至聖文宣王으로 추증되셨습니다. 문선왕 추증전에는 先師(유교경전의 호칭)의 칭호로 공경받으셨습니다. 유교경전에서 황제칭호는 없습니다. 공자님은 요.순.우.탕과 같은 聖人(聖天子)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신 공자님. 참고로 하면, 공자님 아버지 시호는 계성왕(啓聖王)이시고 공자님 어머니 시호는 계성왕 부인(啓聖王夫人)이십니다.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그러나 세계사로 보면, 가톨릭이라는 세계종교는 너무 세계인에 일반화되어서, 국사적개념과 병립하여, 세계사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에서, 국제관습법상 세계종교 가톨릭의 자격으로 예우하는게 적절함. 일본식 개념으로, 일본 국지신앙인 일본 신도(일본의 국교), 불교, 기독교의 위상을, 한국에 적용할수는 없음. 그리고 한국과 바티칸시티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기 때문에, 한국헌법 임시정부가 선전포고하고,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일본의 종교기준을 적용하는게 맞지않음. 불교는 인도에서도 배척당해왔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 불교국 일본의 종교기준대로 하면,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아닌 사회규범이 되어, 일본 신도(불교에서 파생됨), 불교, 기독교만 포교종교고, 유교는 일제강점기의 신생종교인 원불교보다 신자수가 적은 50만(성균관.향교의 제사인구만 유교도라고 1980년대 초반에 통계청 표본조사를 실시하여, 다시 유교에 도전하고 있음)이 되어, 해방한국의 종교주권을 침해당하게 됨.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 @문화대혁명으로 모택동 주석도 비판받고,중국은 개혁.개방정책으로, 유교 전통명절인 춘절, 중추절, 청명절, 단오절의 4대명절 공휴일을 아주 길게 하였음. [8]. 문중과 가족 회의를 거쳐, 알맞게 차리시고, 차례지내시고, 성묘하십시오. 그리고 추석 달맞이는, 대보름처럼, 일반인들이 달님을 향해 소원을 비는 몇 번 없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되신 天)께서는 해.달.별 및 우주만물, 그리고 하늘(하느님)의 기품을 닮은 인간(하느님의 기품과 땅의 형상에서 이루어짐)을 창조(시경:天生蒸民)하셨습니다. 그 이후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사냥.수렵.농사를 짓게되는데, 절대적인 초월자이신 하느님의 존재를 다시 상기하고, 질병.죽음.자연재해.배고픔.맹수의 공격등에 시달리며, 절대적인 초월자이신 하느님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면서, 이를 체계적으로 이론화하여 제사.기도의 과정을 거치며, 문자를 발명한 이후에는 유교 경전인 오경과 사서를 만들어 내고, 수천년동안 동아시아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현재도 십수억명 동아시아 유교도들은 하느님(天).神明.조상신을 숭배하며, 오제(五帝), 요.순.우.탕.문.무.주공 같은 성인의 가르침과 공자님의 가르침을 계승하며,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성인임금 공자님께서는, 하느님(天,하늘), 神明, 조상신을 숭배하는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의 도리를, 정제되지 않은 초기 상태에서, 天命.天德을 받으시고, 혼동과 갈등상태에서, 하느님을 떠나 살 수 없는 피조물 인간의 자기진단을 거쳐, 품위있는 인간의 상태로 계승하시고 발전시키신 것입니다. 유교의 하느님(天)이 창조하신 피조물 인간(시경:天生蒸民)은, 유교의 수많은 제사, 명절,교육, 하느님의 품성을 교육받은 많은 인간들의, 의지와 품성으로, 여러 제도와 의식속에, 하느님(天)께서 창조하신 우주와 지구의 영역에서, 피조물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부처는 창조신을 부정하고, 창조신보다 높다고 한 Monkey류에 불과합니다.그래서 브라만을 숭배하던 인도에서 다시 배척받게 된것입니다.@수천년 세계종교인 유교는 중국,한국, 베트남, 몽고,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 전세계 화교등을 합하며 십수억명의 유교신자가 존재합니다. 중국은 춘절(설날), 청명절(한식), 단오절, 중추절(추석)의 유교문화 4대 전통명절을 공휴일을 아주 길게 하여, 전통을 유지하는 정책을 취하였습니다. 수천년 세계종교 가톨릭은 서유럽, 중남미,필리핀과 전세계에 걸쳐 십수억명의 신자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불교는 일본과 동남아에 걸쳐 몇억명. @불교는 Chimpanzee 과 부처가 기존의 브라만교에 대항해, 부처가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주장하다, 인도에서 다시 불교배격(불가촉천민으로 배척) 천 몇백년 이어짐. 패전국 일본 불교Monkey나라는 성씨없는 점쇠賤民(신생 천황)이 하느님.예수보다 높다고 강점기에 신부겁주고 목사 고문.구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성씨없는 천민 점쇠가 세운 마당쇠賤民에 불교 Monkey족.@불교는 발상지인 인도에서, 천 몇백년동안 브라만교의 힌두교신앙에 의해 소멸되다시피 배척받아옴.페르시아 불교도 소멸되고, 아프카니스탄등의 불교도 소멸상태로 배척받고 있음. 동아시아에서는 변변한 교육기관도 없이 무군무부의 금수라 하여 산속에서나 머물러야 하는 외래종교로 살아왔습니다.불교는 강대국이 아니며, 패전국인 일본,태국및 동남아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 신앙.@중요한건 하느님.창조자를 숭배하느냐 하지 않느냐입니다.하느님을 숭배하는 종교는 수천년간 유교와 로마가톨릭(후세에 항거자로 불리는 Protestant의 개신교도, 현재는 기독교의 광의의 개념에서 이해됨)입니다. 황하문명에서 이어진 유교는 그 始原性에 의해, 하느님.神明.조상신을 숭배하는 다신교적 특성이 있어왔는데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의 세계종교가 되었습니다.@유교는 중국, 한국, 베트남,몽고, 2차대전후의 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전세계 화교등에 걸쳐 십수억명의 유교신자가 존재합니다. 고대부터의 수천년 세계종교인 로마가톨릭도 서유럽,중남미.필리핀 및 타국가에 걸쳐 십수억명의 신자가 있습니다. 불교는 하느님과 창조신을 부정하는 침팬치과의 고대 세계종교인데, 인도 아소카왕때 적극적인 포교로 여러나라에 선교하였지만, 대부분 배척받으며 변두리 하부신앙으로 이어지거나, 소멸되어버렸습니다.인도에서는, 천 몇백년동안 브라만교의 힌두교신앙에 의해 소멸되다시피 배척받아옴.페르시아 불교도 소멸되고, 아프카니스탄등의 불교도 소멸상태로 배척받고 있음. 동아시아에서는 변변한 교육기관도 없이 무군무부의 금수라 하여 산속에서나 머물러야 하는 외래종교로 살아왔습니다. @불법 일제 강점기에, 불교국가 일본의 만행으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 한국 유교는, 일본에 의해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오도되어, 수난을 겪다가, 해방이후 유교국가로 복구되었는데, 1980년대 중반부터, 불교 Monkey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그 추종세력, 각종 왜구학교 잔재들이, 다시 회복된 유교를 향해 시중의 루머.야담등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때 조선성명 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으로 복구되었습니다. 5,000만이 유교 명절, 제사, 유교식 이름, 학교의 유교중심교육, 24절기를 쇠며, 살아가는 유교국가일뿐, 무교는 없습니다. 무교란게 도대체 무슨 개념인지 모르겠습니다. 주권없이 일제 강점기 사고방식을 최근 다시 재현하는것으로 보입니다.시중 루머나, 포탈에서 유명인 소수를 대상으로, 무교로 편집하는 작업을 내세우며, 무교라는 용어를 보급시키려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 이 글은 비영리적이며, 유교권(중국.한국.베트남.대만.싱가포르등 전세계 십수억명 유교신도)의 공통명절인 중추절(추석)에 대해, 다른나라와 비교하며 다시 한번 되짚어보자는 종교이해적 차원의 공익적인 글로 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2026년 9월 18일 금요일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인 성균관.향교의 추기(秋期) 석전(釋奠). 공자 탄신 2577주년 맞아 ‘2026 유교문화 축전’…성균관서 25~27일 개최.성균관은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성균관 명륜당과 비천당 일원에서 ‘2026 유교문화 축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중추절(추석) 명절 기간과 겹쳐있어, 추분 절기 안내는 추석이후 글을 올리겠습니다.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인 성균관.향교의 추기(秋期) 석전(釋奠). 공자 탄신 2577주년 맞아 ‘2026 유교문화 축전’…성균관서 25~27일 개최.성균관은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성균관 명륜당과 비천당 일원에서 ‘2026 유교문화 축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1]. 공자 탄신 2577주년 맞아 ‘2026 유교문화 축전’…성균관서 25~27일 개최. 2026,09,09 매일경제 이대현 기자 보도기사. 공자 탄신 2577주년 맞아 ‘2026 유교문화 축전’…성균관서 25~27일 개최 공자 탄신 2577주년과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창립 80주년을 기념하는 ‘2026 유교문화 축전’이 서울 성균관에서 열린다. 성균관은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성균관 명륜당과 비천당 일원에서 ‘2026 유교문화 축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축전은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리 전통문화와 유교의 가치를 보다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특히 올해는 공자 탄신 2577주년이자 성균관유도회 창립 80주년을 맞는 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행사에서는 유교의 기본 정신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비롯해 선비문화와 전통 의례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대표 프로그램은 선비가 갖춰야 할 여섯 가지 기본 교양인 ‘육예(六藝)’ 체험이다. 육예는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로 구성된다. 참가자들은 유교 의례복을 체험하는 ‘예’, 전통 악기와 석전 음악을 알아보는 ‘악’, 활쏘기를 경험하는 ‘사’를 비롯해 지게 체험인 ‘어’, 가훈 및 유교 경전 쓰기로 구성된 ‘서’, 전통 산가지와 계산 놀이를 활용한 ‘수’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전통 의례를 직접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다문화가정 등을 대상으로 한 전통 혼례가 진행되며, 외국인 학생 등이 참여하는 전통 성년례인 관례·계례도 선보인다. 젊은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들이 선비문화를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K-선비문화 체험’도 진행된다.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의미를 바탕으로 전통 친화놀이 등을 접목해 유교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와 함께 윷놀이와 제기차기, 투호, 널뛰기, 굴렁쇠, 팽이치기 등 다양한 전통 민속놀이도 즐길 수 있다. 장원급제를 주제로 한 ‘등 만들기’를 비롯해 전통 다례, 한방 사상체질 체험, 전통 물레 체험 등 가족 단위 방문객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축전은 25일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며, 26일과 27일에는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축전 다음 날인 28일에는 공자를 기리는 추기 석전(釋奠) 대제와 성균관유도회 창립 80주년 기념식이 잇따라 열린다. 석전은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의 학덕을 기리는 전통 제례 의식으로, 성균관이 오랜 기간 계승해온 대표적인 유교 의례다. 성균관은 600여 년 동안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가르침을 계승하며 교육과 의례를 통해 유교 전통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전국 234개 향교와 유도회 조직, 서원 등도 유교문화의 계승과 확산에 뜻을 함께하고 있다. 성균관 관계자는 “공자 탄신 2577주년과 유도회 창립 8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를 맞아 마련한 행사”라며 “성균관을 찾는 시민과 외국인들이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와 유교의 인의예지 정신을 쉽고 즐겁게 체험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행사는 성균관이 주최하고 성균관과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전국전교협의회, 전국향교재단이사장협의회,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 석전대제보존회가 공동 주관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 종로구청, 성균관대학교가 후원한다. https://www.mk.co.kr/news/society/12148390 [2].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인 성균관.향교의 추기(秋期) 석전(釋奠). 1]. 한국 유교는 조선.대한제국 국교인 유교의 전통을 이어받아 역사적.관습적.행정법 상으로는 전국민이 유교국가인 조선식 한문성씨와 본관을 호적.주민등록에 법으로 강제로 등록해 온 나라임. 전국적으로 성씨별 문중별 종친회가 있음. 그리고 학교에서는 유교의 삼강오륜 교육과, 인의예지신 교육, 충효교육을 실시해 온 나라임. 또한 설날.추석 등 유교 전통명절과 24절기의 주요 기념일, 문중별 제사, 성균관.향교의 춘기.추기 석전, 최고대학인 성균관대등에서의 별도의 유교교육이 있음. 유교는 크게 보면 주민등록에 강제로 조선식 성명과 본관을 등록하는 행정법, 설날.추석등 전통 유교명절의 성묘나 제사, 성씨별.문중별 전국적인 조상제사, 성균관.향교의 석전,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환구대제.사직대제.종묘대제, 24절기 및 주요 명절의 기념 행사, 성균관대등에서의 유교교육, 초.중.고에서의 유교 교육등이 유교의 전체집합을 이루는 요소들입니다. 2]. 유교 경전의 오경(五經) 사서(四書) 중 하나인 오경의 예기(禮記)에는 다음과 같이 석전(釋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편에 의거합니다. - 다 음 - 凡學春官釋奠于其先師 秋冬亦如之 凡始立學者 必釋奠于先聖先師 及行事必以幣 凡釋奠者 必有合也 有國故則否 凡大合樂 必遂養老 무릇 봄과 여름에는 교관이 선사(先師)에게 석전(釋奠)을 드리고(생도로 하여금 도덕을 함양하고 고매한 인격을 도야하게 한다), 가을.겨울에도 이와 같이 한다. 처음으로 학교를 세운자는 반드시 선성.선사에게 석전을 드리는데 그 제례를 행할때는 반드시 폐백을 드린다. 석전제에는 반드시 합악(合樂)을 하되,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는 이것을 그만 둔다. 대합악(大合樂)이 있을 때는 반드시 양로의 예를 행하는 것이다. . 필자 주 1). 번역자가 부가설명 해놓은 자구 풀이 ㄱ). 춘(春): 凡學春官의 春임. 춘하(春夏)의 약(略)이다. ㄴ). 관(官): 凡學春官의 官임. 교관(敎官) ㄷ). 석전(釋奠): 선성.선사를 제사 지내는 것 ㄹ). 선사(先師): 지난날에 학식과 덕망이 높았던 대중의 사표(師表)가 될 인물 ㅁ). 선성(先聖): 주공(周公).공자와 같은 성자(聖者)를 가리킨다. ㅂ) 유합(有合): 합은 합악, 즉 합주악(合奏樂)을 말한다. ... 凡語于郊者 必取賢斂才焉 교학에서 논설을 듣는것은 반드시 현명한 인물을 뽑고 재능이 있는 자를 뽑으려는 것이다... 於成均以及取爵於上尊也 다만, 천자가 성균(成均)에서 주연을 베풀었을 때 당(堂)위에 올라 술을 마시는 영광을 입을 뿐이다. . 필자 주 2). 번역자가 부가설명 해놓은 자구 풀이 ㄱ). 성균(성균): 오제(五帝)때의 대학 이름, 주나라 때까지는 이것이 남아 있었다. ㄴ). 취직어상준(取爵於上尊): 상준은 당(堂)위에 있는 술통. 즉 술잔을 잡아 당 위에 있는 술통의 술을 마시는 것. . 출처: 新譯 禮記/권오돈 譯解/홍신문화사/2003.10.30 발행의 문왕세자(文王世子)편. 3].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석전에 대한 규정 석전(釋奠) 석전제[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문묘(文廟)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설명하는 석전(釋奠). 1. 필자가 필요에 의해 발췌한 부분적 요약 설명 ...본래 석전은 산천에 베풀기도 하고 혹은 묘사에 베풀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학교에서 올리기도 했으나, 시대를 내려오면서 학교의 의식만을 뜻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 필자 주 3). 한국에서는 해방이후 미군정시대, 교육기능은 성균관대로 분리하여 미군정에 등록하고, 문선왕(文宣王)이시자 선성(先聖)이신 공자님에 대한 석전은 현재의 성균관으로 분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석전(春期, 秋期 釋奠)은 성균관과 전국의 향교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향교는 이전에는 고등학교[향교.서원.사부학당은 조선시대에 주로 양반계층을 대상으로 하던 고등학교 성격. 이 이외에도 명망높은 학자밑에서 사숙(私塾)하다가 과거에 응시하는 방법도 있었음. 이 이전의 소학교 기능은 서당등]에 해당되며, 성균관은 유일무이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대학이었음. 현재 한국의 향교는 공식적인 교육기능은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주로 석전제사등의 제사업무를 거행함. 2.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서 설명하는 석전(釋奠). 석전대제 / 제관 배례문묘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유형성격행사시기행사장소 의식행사 제사, 추모의식 봄 2월(음력)과 가을 8월(음력)의 상정일(上丁日) 성균관, 지방 향교 정의 전통 사회에서 산천(山川)·묘사(廟社)에 올리던 제사, 또는 학교에서 선성선사(先聖先師)를 추모하기 위하여 올리던 의식. 연원 및 변천 석전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는 『주례』·『예기』 등 유교 경전에 기록이 있다. 이들 기록에 의하면, 본래 석전은 산천에 베풀기도 하고 혹은 묘사에 베풀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학교에서 올리기도 했으나, 시대를 내려오면서 학교의 의식만을 뜻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산천·묘사에는 이밖에도 여러 제향(祭享)이 있는 반면에 학교에서는 오직 석전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석(釋)은 ‘놓다(舍也)’·‘두다(置也)’의 뜻이고, 전(奠)은 ‘그치다(停也)’의 뜻으로서, ‘제물을 올릴(薦饌)’ 따름이고 ‘시동을 맞이하는(迎尸)’ 등의 제사 절차는 갖추어 베풀지 않았다. 일설에는 소[牛]·양(羊) 등 고기를 제물로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의식을 석전이라 하고, 오직 나물[菜: 빈조류(蘋藻類)]만 드릴 뿐 일체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의식을 석채(釋菜)라 한다. 석채는 또 석채(釋采)라고도 쓰는데 이는 선사에게 채백(采帛)을 올려 폐백으로 삼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따라서 석전은 석채·석전(舍奠)·정제(丁祭)·상정제(上丁祭) 등의 일컬음이 있다. 정제니 상정제니 하는 것은 석전을 봄 2월(음력), 가을 8월(음력)의 상정일(上丁日: 첫 丁日)에 모시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상대(上代)에 이미 산천·묘사에서 석전을 올렸으며[『주례(周禮)』, 「춘관(春宮)」], 때로는 출정하여 죄 있는 자를 잡아오면 학교에서 석전을 베풀어 선사에게 아뢰기도 하였다[『예기(禮記)』, 「왕제(王制)」]. 전자를 정기적(常時)인 석전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부정기적(非時)인 석전이다. 학교에서는 봄에 시(詩)·서(書)·예(禮)·악(樂)을 가르치는 교관(敎官)이 선사에게 석전을 올렸고 가을과 겨울에도 마찬가지라고 『예기』 「문왕세자」편에 기록되어 있다. 선사란 앞서 간 전대(前代)의 훌륭했던 스승들을 일컫는 말이고, 여름을 말하지 않은 것은 봄에 준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주대(周代)에는 순(舜)·우(禹)·탕(湯)·문왕(文王)을 선성(先聖)으로 모시는 것이 고대 중국의 관례였다. 한(漢)나라 이후 유교를 국교로 받들게 되자 공자를 점차 선성·선사의 자리로 올려 문묘의 주향(主享)으로 모시는 동시에 석전으로 우러러 모시는 관례가 정착되었다. 후한(後漢)의 명제(明帝) 같은 제왕은 주공(周公)을 선성, 공자를 선사로 삼아 공자의 고택을 찾아 가서 석전을 올리기도 하였다. 위(魏)·수(隋)·당(唐)나라 이후로는 대체로 공자를 선성, 안회(顔回)를 선사로 받들어 석전을 올렸다. 명(明)나라에 와서 태학(太學)의 문묘를 대성전(大成殿)이라 일컬어 석전을 올리는 사당으로 확립이 되었다. . 출처: 석전[釋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5]. 두산백과에서 설명하는 석전. 석전[ 釋奠 ] 요약 문묘(文廟)에서 공자(孔子:文宣王)를 비롯한 4성(四聖) 10철(十哲) 72현(七十二賢)을 제사지내는 의식. 석전제·석채(釋菜)·상정제(上丁祭)·정제(丁祭)라고도 한다.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첫째 丁日)에 거행한다. 석전이라는 이름은 '채(菜)를 놓고(釋), 폐(幣)를 올린다(奠)'에서 유래한다. 처음에는 간략하게 채소만 놓고 지냈으나 뒤에는 고기·과일 등 풍성한 제물을 마련하여 지냈다. 중국의 상대(上代)에는 선성(先聖)·선사(先師)의 제사로 발전하여 주공(周公)을 제사하다가 한(漢)나라 이후 유교가 중요시되자 공자를 제사하게 되었다. 후한(後漢)의 명제(明帝:재위 57∼75)는 공자의 옛 집까지 가서 공자와 72제자를 제사한 기록이 있으며, 당(唐)나라에서는 628년 공자를 선성(先聖), 안회(顔回)를 선사(先師)라 해서 제사를 지냈다. 739년에는 공자에게 문선왕(文宣王)의 시호가 추증되었고, 명(明)나라 초기에는 대학에 묘(廟)를 설치하고 대성전(大成殿)이라 하였다. 한국에서는 유교가 전래된 후, 신라에서 공자와 10철 72제파의 화상을 당나라에서 가져와 국학(國學:大學)에 안치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에서도 국자감(國子監:成均館)에 문선왕묘(문묘)를 세워 석전제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개국 초부터 성균관에 문묘를 설치하고 여기에 한국의 18현을 합한 112위(位)를 봉안하여 석전제를 지냈는데, 이를 위하여 성균관에 학전(學田)과 학노비(學奴婢)를 지급하였으며 지방에서는 향교에서 석전제를 주관하였다. 지금도 성균관에서는 옛 의식대로 해마다 봄과 가을, 2차례씩 석전을 거행한다. . 출처: 석전[釋奠] (두산백과) . 필자 주 4). 황하문명을 가진 중국 유교(儒敎)는 제자백가(諸子百家)중 공자(孔子)님의 유가(儒家)가 한(漢)나라시대 국교(國交)인 유교(儒敎)로 정해지기 이전에는 나중에 유교나 유가라고 이름붙이기 이전의 시원(始原)유교(儒敎)시대를 거쳤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계사적으로 살펴보면 예수님이전의 기독교를 구약시대로, 예수님이후의 시대를 신약시대로 구분하는것과 비슷합니다. [3]. 포츠담선언 수락,무조건 항복한 일본.한국,만주,대만,쿠릴열도등에 주권없고,침략했던 동남아 국가에도 주권없음@패전국,전범국,UN적국이란 역사적 단죄에 순응하고 살아가길!@한국내 일본잔재 이용,주권없이 영화.드라마.대중언론.SNS통해 유교,성균관(성균관대)왜곡은 여전.2차대전으로 항복한 일본이 한국등 아시아 지역 및 러시아와 문제되는 쿠릴열도 등 해당지역에 주권이 없는데,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서 큰 문제임. 일본이나 일본 잔재가 주권없이 한국 주권이나 유교, 성균관(미군정때 성균관대로 승계) 및, 한국 중.고교등을 약탈하고, 일본의 전방위적 억압기구가 성격이 변해, 남아 있어서 문제임.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조선.대한제국.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 포함)에 의거.그 국교는 유교@일본 주권은 한국등에 없음. 일본 신토,불교,일본내 극소수 기독교나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은 축출(폐지)대상. 다만, 미군정령 크리스마스 공휴일은 참작. 미군정령으로,한국은 5,000만 모두 국제법.행정법상 조선.대한제국 국교 유교승계,한문성명.본관등록,유교도(명절,제사등).최고제사장 황사손. 기독교중,유교를 제대로 이해하는 계파는 세계사의 마테오리치 신부의 예수회.중국 明.淸시대 선교사@고대 세계종교로 성립된 유교와 기독교.하느님을 숭배하는 대표적 세계종교임.불교는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한,부처 Monkey불교가 고대 세계종교.천몇백년동안 인도가 탄압.@한국은 초등학교때 애국가 부르며 하느님(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을 수시로 체화.중고등학교 및,국가나 스포츠행사등의 애국가 제창.중학교때는 한문으로 삼강오륜 유교교육.고등학교때는 세계종교 유교의 성립,기자.위만조선,한사군,삼한. 한국은 기자조선이후, 위만조선을 거쳐, 한사군 설치로, 세계종교 유교국가로 수천년 이어져 온 나라입니다. 유교를 중심으로, 도교나 브라만에 항거하여 일어난 인도발 외래신앙인 불교도 부분적 수용. 동양은 제자백가가 경합하다가 유교가 세계종교, 서양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기독교)이 공존하다가, 로마가톨릭이 세계종교됨. 인도는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부처의 불교가 주변국에 단순포교를 해, 한때 고대세계 세계종교였지만, 발원지 인도에서 천 몇백년동안 선발신앙인 브라만의 힌두교에 억눌려 탄압받으며 현재에 이름.@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포함)을 받아들여,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고, 한국영토에서 축출해야 될 일제 잔재 종교정책과,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각종 왜구학교.@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 세워진 귀족계파 가톨릭 예수회의 서강대는. 명.청시대의 선교사 파견 및,조상제사를 잘 이해하며, 명나라가 세계 최고 문명국이라는 평가를 보여온, 합리적인 자세로,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나라 한국에서 宮성균관대에 꼭 필요한 대학임. 근대세계 지배세력 서유럽과 기독교의 자격 및 교황청 실세인 예수회.필요한 대학임.@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로 설립된 예수회의 서강대는,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이 뒤로 주권.학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으로 형성된 대학들. @주권.학벌없는 패전국 일본 잔재 노예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 부하 노비들의 수많은 약탈유형이 있지만, 대학자격 인정해 줄 수 없어온, 해방후의 한국. https://blog.naver.com/macmaca/224090602113 [4]. 유교의 조상제사. 殷나라시절 上帝가 너무 높아, 魂이 하늘로 승천하신, 조상에게 대신 예를 행하며, 소원을 비는데서 비롯되었음. 殷왕족 후손 箕子의 기자조선.한국 북부->夏의 해.달.별 숭배와 殷(黃帝,殷왕족 후손은 箕子,공자님)의 上帝숭배를 후발 周 天子에게 허용받은 한국 始原유교시대.箕子후손 기준왕이 건설한 남부 三韓은 한국 始原유교지역.세계사로는 북부지역 漢사군의 유교(孔子사상)정착.인류조상 베이징원인,네안데르탈인,크로마뇽인.夏의 해.달.별 숭배,殷(商)의 上帝숭배,이전 신앙 흡수하여 유교 경전에 정형화된 周나라의 天(하느님,만물의 근원 乾,天.시경 天生蒸民으로 인격天 제도화)숭배와 天子제도.漢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天子제도 승계,공자숭배 한국은 기자조선이후, 위만조선을 거쳐, 한사군 설치로, 세계종교 유교국가로 수천년 이어져 온 나라입니다. 유교를 중심으로, 도교나 브라만에 항거하여 일어난 인도발 외래신앙인 불교도 부분적 수용. 동양은 제자백가가 경합하다가 유교가 세계종교, 서양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기독교)이 공존하다가, 로마가톨릭이 세계종교됨. 인도는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부처의 불교가 주변국에 단순포교를 해, 한때 고대세계 세계종교였지만, 발원지 인도에서 천 몇백년동안 선발신앙인 브라만의 힌두교에 억눌려 탄압받으며 현재에 이름.@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포함)을 받아들여,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고, 한국영토에서 축출해야 될 일제 잔재 종교정책과,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각종 왜구학교.@한국 유교 최고제사장은 고종 후손 황사손(이원)임. 불교 Monkey일본 항복으로, 유교가 국교인 조선성명 복구령. 5.000만 국민이 행정법상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며, 유교 명절,제사,차례,기도 및, 초등학교때의 하느님(애국가)제창,조선 역대왕조 왕명 암기,중학교때는 유교 삼강오륜 배우게 됨. 고교때는 세계사의 고대 세계종교 유교(현재도 이어짐).@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 세워진 귀족계파 가톨릭 예수회의 서강대는. 명.청시대의 선교사 파견 및,조상제사를 잘 이해하며, 명나라가 세계 최고 문명국이라는 평가를 보여온, 합리적인 자세로,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나라 한국에서 宮성균관대에 필요한 대학임.@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로 설립된 예수회의 서강대는,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이 뒤로 주권.학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으로 형성된 대학들.@한국은 초등학교때 애국가 부르며 하느님(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을 수시로 체화.중고등학교 및,국가나 스포츠행사등의 애국가 제창.중학교때는 한문으로 삼강오륜 유교교육.고등학교때는 세계종교 유교의 성립,기자.위만조선,한사군,삼한창조신에 항거한 불교 부처 Monkey는,과거에 코끼리,사슴, 원숭이라고 본생경(Jataka,本生經)이 설명@유교는 다음생,저번생같은 윤회가 없고,사람이 짐승으로 환생하는것 불인정.유교는 하느님(天)이 창조하신 인간이 가장 중요.죽으면 魂이 하늘로 올라감.악귀는 못올라감.@학생때 세계사영역,중국의 제자백가. 유가,법가,도가(한국은 신선사상,풍류도),묵가. 漢나라때 유교(儒家)가 국교가 되어 수천년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의 세계종교@인도발 외래신앙 불가(불교)는 일본 불교Monkey와 주권없는 경성제대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일본잔재 대만대가 대중언론.방송.SNS,뇌과학으로 어지럽혀도 제자백가 밑!@국가 최고 의례는 왕실의 조상제사인 종묘대제,토지와 곡식의 신에 제사하는 사직대제,先聖이신 공자님에 제사하는 석전대제.@인류는 만물의 근원.창조주 하느님(乾,天)의 섭리하에,만물의 영장으로 창조된,인간의 도리를 가르치신,근본적 하느님 아들 유교 공자님(先聖,聖天子)과,기독교세계 하느님의 독생자 주 예수를 떠나살수 없음.짐승같은 불교 부처Monkey는 창조신에 도전하는 나약한 원숭이! @@ 한국에서 불교 부처 Monkey 탄생일은 주권없는 원숭이들의 소란행위에 불과. 일본이 포츠담선언수락,불교계열 일본 신토,불교.기타신앙은 주권없었음.미군정시대 크리스마스를 공휴일지정.한일 수교후,불교신자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탄원,공휴일로 했는데,주권이 없는 상태에서 비롯된 일이라 영원히 불교주권 없음->다시 천민승려로 숨어살길! @베트남은 漢나라때 성립된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로 수천년 이어진 나라임. 국자감도 있던 전형적 유교나라.@불교Monkey 일본이,뇌과학 이용,침투시키는것들@파친코,고리대금업,벚꽃,회,포르노(근친상간 성인야설등).창조신 브라만보다 연약한 불교 부처 Monkey가 더 높다,윤회(다음生,저번生 들먹이며,짐승이 사람으로.사람이 짐승으로 윤회).나루히토>도쿄대>倭서울대.대만대 경계要@天.인간존엄 유교에서 인정되지않는 인도발 오랑캐 도적의 짐승신앙 불교. [5].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시고,하느님(天)께서 선택하신 성인이신 공자님께 천명(天命),천덕(天德)을 부여.하늘에 죄지으면 빌곳이 없다고 경고하시게 하신 동아시아 세계종교입니다. 한국은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당시 조선성명 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 유교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 해야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도입니다. 학교교육도 한문,윤리등을 통해 유교교육이 주류입니다. 세계사로는 한나라때 공자님을 추가로 제사하며 동아시아 세계종교로 성립된 유교! 한국사로는 유교의 始原유교 제천의식인 삼한 상달제.시월제,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 교육. 조상제사의 고인돌이 있습니다. 유교 교육기관 교육으로 보면 고구려 태학.백제 오경박사, 신라 국학, 고려 국자감,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의 유교 최고대학 교육이 있습니다. 은(상).주시대 성립한 始原유교의 하느님,오제[上帝, 조상신계열로 승천, 하느님(天) 하위신으로 계절주관], 지신,산천신,부엌신(火관련 神)등을 숭배해 온 유교입니다. 은나라 왕족후손인 기자의 한국 기자조선(고려,조선시대 인정, 일제강점기 영향탓 기자조선이 부정되나 한국사의 고조선중 正史영역 기자조선임)의 마지막왕인 기준왕(분명한 正史인물 위만에 멸망)은 중국 始原유교 특징인 한문성씨(서씨,한씨) 성립의 시조로 삼한(三韓)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삼한은 始原유교 특징인 제천의식(단오절,상달제,시월제) 거행. 삼한의 마한유교는 백제영토로, 변한 유교는 가야로, 진한 유교는 신라로 이어졌습니다. 한나라때 공자님의 유가사상이 국교로 채택되며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로 성립되고 공자님도 제사하였습니다. 한(漢)사군의 낙랑은 부여.고구려(고주몽).백제(주몽임금 후손 온조왕, 백제는 마한영토의 始原유교도 승계)에 영향.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이 없습니다. 현재는 5,000만이 유교성명 복구하여 문중별.가족별 조상제사 행하며,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의 주요 명절과 중양절(국화철)을 가지고, 유교문화 24절기의 입춘, 소서.대서의 삼계탕.피서, 상강(단풍철), 입동.소설의 김장철, 동지의 팥죽등 세시풍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대학인 성균관대입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있지만, 유교의 세계종교 자격이 있는 세계사를 반영해야 하기때문에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예수회(귀족출신 이나시오 사제가 설립한 예수회는 교황청의 실세로 세계적으로 교황윤허대학은 별로 없음)의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국사 성균관 자격가진 성균관대[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다음의 Royal대로 성균관대 출신인 필자(윤진한, 문필가.유학자.사상가)의 사상이며, 유교와 세계종교 가톨릭의 역사적 자격을 바탕으로 공존하고자 합니다. 세계사의 오랜전통의 대학들인 중국 태학(세계 최초의 대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승계됨), 그리고 서양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파리대학의 세계사 자격은 베이징대와 성균관대에 아주 중요합니다. 세계사의 중국 황하문명, 세계종교 유교, 세계 4대 발명품으로 교육되는 중국의 종이.화약.나침판,인쇄술도 중요합니다. 학교교육 전분야에 걸쳐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신학.법학.의학및 역사.철학과 고교때의 수학, 세계사, 사회문화, 국토지리.세계지리,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음악.미술등)은 유교경전이나 가톨릭 경전과 함께 세계인의 만국공통어입니다. 성균관대는 일본이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후, 미군정당시 성균관을 복구시키기로 법을 발효하여, 임시정부 요인들(고문:이승만.김구선생, 위원장:김창숙 선생)과 남북유림들이 모여 성균관에 대자를 더 붙여 성균관대를 설립(복구설립형식임)키로 결의하여, 성균관장이 성균관대신 성균관대를 미군정에 등록하여 국사로 가르치는성균관의 유일무이 최고대학자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균관대로 정통을 승계하기로 하자, 미군정이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대 재정에 기여토록 하는 법을 추가로 만들어 주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대통령령으로 시작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발행으로 행정법상 조선 성균관 승계를 추가로 법제화한것. @ 종교라는 용어는, 영어 Relgiin을 번역한 용어인데, 해방이후 한국의 학교교육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학술용어.표준용어로, 서양식 교과서 교육을 받으면서, 정립된 사후개념의 용어입니다. 학술용어.표준용어를 쓰는게, 학술활동이나, 학교교육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규격화된 용어이기 때문에, 다른 용어를 쓰게되면, 학술활동이나, 학교교육의 교과서 용어와 배치되어, 혼란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해방이후의 사후도입용어인, 종교(Religion)라는 용어를 쓰는게, 가장 적절합니다. 가톨릭의 학술용어인 Religio christiana는 그리스도교를 의미합니다. 한국의 학교교육에서, 세계사, 국민윤리는 세계종교로 유교와 기독교등을 언급하고 았습니다. 그리고 종교라는 용어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사도 국교나 종교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원래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권 국가들(중국,한국,베트남,몽고)등에서는 종교라는 사후 번역어 이전에, 유가(儒家, 해방이후 학교교육에서 유교), 도가(도교), 묵가, 음양가, 법가, 인도발 외래 신앙인 불가(불교)등 家라는 용어로 명칭을 붙여왔습니다. 그러나, 해방이후 한국의 학교교육에서는 유가나, 기독가, 도가, 불가, 또는 신앙이나 믿음이라는 용어로 교육을 시키지 않는게 일반적입니다.그런데, 한국에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 잔재둘이, 1980년대 중.후반부터, 유가였으니까, 유교가 종교용어가 아니다라는 이상한 루머.야사식 주장을 하여, 유교가 종교가 아니다, 또는 유교가 종교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는 시비를 거는현상을 낳고 았습니다. 일본잔재식 발상에 불과합니다. 이런 이상한 언어유희에 말려들지 말아야 합니다. @일제강점기는, 세계종교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오도하던 불법 점거시대라, 그당시에 쓰여진 인쇄물들은, 전부 왜곡되거나 약간 비틀어진 내용들입니다. 그 때는, 강제포교종교인 일본신도(일본의 국교,불교의 파생신앙),불교,기독교(일본의 극소수 신앙)만 포교할수 있던 시대라, 교육.종교.문화측면에서, 이러한 내용들을 정사로 착각하면 않됩니다. 조선.대한제국의 기준과 법, 역사만이 정사영역입니다. 을사조약.한일병합은 무효입니다. 해방이후 세계종교 유교는, 한국 공교육에서, 세계사, 한국사, 국민윤리 분야애서 확실한 종교교육을 시켜왔습니다. @하느님족(세계종교인 유교나 가톨릭)과, 창조신보다 높다는 부처 Monkey의 침팬지족은, 완전히 다릅니다. 브라만에 대항해 후발 신앙을 만든 불교의 부처가 창조주 범천보다 높고 창조주를 가르친다는 Monkey발상 상기시킴. 일제 강점기 불교 Monkey일본이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 유교를 인정않았음. 그리고 창조주에 대드는 성씨없는 점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님보다 높다고 목사 고문구타한 사실.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한 사실. 한편, 패전국에 UN적국,전범국이며, 한국 임시정부가 대일선전포고한 영원한 적국 일본 불교 Monkey들이, 주권없이 불러대는 원숭이 노예합창이 무서운 시대입니다. [6]. 국제법,헌법,한국사, 세계사, 국가주권의 상위 기준으로 대학 학벌을 확실히 정립하는게 正道입니다.포츠담선언 제8항에서는 「카이로 선언」의 조항은 이행되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일본의 주권은 혼슈(本州), 홋카이도(北海道), 큐슈(九州) 및 시코구(四國)와 함께 연합국이 결정하는 여러 작은 섬들에 한정된다고 규정했습니다.@宮성균관대. 왕립대였다가, 대한제국때 皇대학이 된 Royal대. 일제강점기이후, 주권없는 패전국 노예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나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 노예, 새로생긴 더 자격없는 원숭이 국립대 아님. 하느님과, 공자님 모시는 하느님족 유교대학. 서강대는 가톨릭 예수회의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 僧(히로히토, 아키히토, 나루히토등,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패전국奴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僧이 세운 마당쇠 불교 Monkey). 그 뒤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의 비신분제 대학들.해방당시 미군정부터, 상위법은 승전국 국가원수들이 모여 발표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이 국제법으로 상위법 역할을 하고, 미군정령은 하위법이라, 상위법 우선의 원칙으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조선.대한제국에는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으로 성균관 하나밖에 없던 나라였음.@미군정령보다 상위법인 카이로선언 내용입니다. "또한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될 것이다". 폭력과 탐욕으로 조선.대한제국을 약탈하여, 불법.강제로 경성제대를 설립하였기 때문에, 하위법인 미군정령으로,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바꾸었어도, 한국 영토에 주권이 없으며, 또한 카이로선언에 따라, 한국영토에서 축출(제명,폐지)해야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일 뿐입니다. 그리고 상위법인 카이로선언에서, 일본에 대해 잔인한 적(brutal enemies)이란 표현을 사용해서, 적국 잔재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어떠한 하위법으로 포장해도,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없는, 적국 일본 잔재일뿐입니다. 미군정에 등용된, 한국내 일제 추종, 한국인 교육 정책 실무자들의,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각색작업에도 불구하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 영토에서 축출시켜야 될(expelled), 적국 일본 잔재일 뿐입니다. 추가적으로 설명합니다. 미군정령보다 상위법인 카이로선언 내용입니다. "또한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될 것이다". 이 문구는, 한국에서, 불법.강제의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라는 국제법적 합법성도, 연합국 국가원수들이 수용한것에 해당됩니다. 필자는 성균관대 1983학번 윤진한(宮 儒)입니다.고종후손 황사손(이원)을, 대한제국 복구의 정점으로 하여, 궁 성균관대 임금(成皇.윤진한. 1962년생. 1983학번. 승전국 미국 선교사가 세운 기독교 고등학교 전주 신흥고 출신)과 어서강대 임금(西王. 서강대 사학과 출신 서진교 교수. 필자의 고교 동창생. 이전에 서강대 기록보존소에서 근무)의 대학 학벌을 장기적인 법률제정의 목표로 삼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하느님 공자님 숭배는 변하지 않습니다. 수천년간 천자,제후,대부,士,庶인의 제도. 다만, 현대에 들어, 동양 일부 국가들과, 서양 일부 국가들은, 정치제도에서는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공화국 형태룰 가지지만, 전통 종교나 역사적 관습은 구분되는 특징도 있습니다. 한국은 祭政이 분리된 민주공화국 정치제도로 변한것은 맞습니다.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거쳐, 기준왕의 후손이 세운 삼한, 한나라때, 한사군 설치. 한나라이후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로 수천년.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 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종교의 자유는 있습니다@유교는 하느님(天)과 日月星晨의 하위神, 山川의 神을 숭배하는 명절들이, 실내보다 야외에서 행해져 온 전통이 강합니다. 조상숭배는 실내의 廟와, 실외의 墓에서 복합적으로 거행해옴. 공자님제사는 성균관과 향교의 실내 사당에서 거행.샤머니즘이라고 부르는 개념도 유교는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선사시대의 해,달,별 숭배가 있었습니다. 문자를 발명한 황하문명 은나라때, 하늘로 승천하여 계절을 다스리시는 上帝숭배가 있었고, 주나라때, 天개념이 성립되었습니다. 은나라왕족의 후손이신 공자님께서 하느님(天)숭배와, 조상신이 되신 五帝숭배, 하위의 神明숭배 전통을 계승하시고, 인간의 도리를 설파하셔서, 유교라고 부르는 세계종교가, 한나라때 동아시아에 보급된것입니다.@성균관의 승계 대학 성균관대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복잡한 국제법상의 갈등이 얽혀있습니다. 해방당시 다른 대학들은 이 법적 갈등의 당사자대학들이 아닙니다. 유교의 하느님숭배,조상숭배와 舊신분제 전통을 잘 이해하던 예수회의 귀족계파 서강대는,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 국사 성균관교육이 지속되면서, 양반 성대를 이해하던 대학임.이뒤로 조선성명 복구된 5,000만 한국인 뒤 주권.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불교 Monkey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대학들. https://blog.naver.com/macmaca/223528462438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지만, 미군정때 성균관 약탈하기 위한, 하위법과 대중언론.사설입시지때문에, 다른 대학들이 서울대 이기기 어려울것.약탈당하면서도,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을 유지하며,미군정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차대전이전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과 교황청은, 동아시아가 어찌할 수 없는 미국인들의 이민자 조상들이라는게 강점입니다.가톨릭과 개신교! @해방당시 미군정부터, 상위법은 승전국 국가원수들이 모여 발표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이 국제법으로 상위법 역할을 하고, 미군정령은 하위법이라, 상위법 우선의 원칙으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조선.대한제국에는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으로 성균관 하나밖에 없던 나라였음.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 성균관대는, 해방후, 미군정이 공자묘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성균관 복구에 해당)하는 법률을 발효, 전국 유림대회 결의(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 김창숙)에 따라,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선생이, 미군정에, 대학기구로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의 환원(복구)을 실행하는 성균관대를 등록(성균관은 제사기구로 이원화)하여,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의 승계대학으로, 미군정때부터의 국사 성균관 교육으로, 해마다, 학교에서 성균관을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7].세계사에서 대학은 중국의 한나라 태학(이후 위나라 태학, 그리고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승계),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을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대학의 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의 세계종교로는, 유교, 기독교, 불교를 고대의 3대 세계종교로 보고, 중세시대의 이슬람은 후발 세계종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계사의 4대 발명품은 중국의 종이, 화약, 나침판, 인쇄술. 이처럼 중국문화는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인 서유럽의 종교문화, 사상, 철학, 대학, 과학의 발전만큼 중요한 세계적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자님 제사 지내는 석전때, 先聖은 요.순.우.탕.문.무왕과 같은 先聖王으로, 聖天子라는 의미임. 그리고 先師로 제후 반열인 公의 안자, 증자, 자사, 맹자가 있음. *기독교세계에서는 교황이나 서양의 왕들이 주예수의 종이라고 자처하는데, 여러 가르침에서, 후세인들이 혼선을 겪을때 필요한 위계질서임. 先聖(先聖王. 聖天子)이신 공자님의 가르침이 가장 우선이고, 그 신하반열인 제후의 公반열인 안자, 증자, 자사, 맹자의 가르침은 신하들의 주장이며, 상하관계를 염두에 두어 소화해야 합니다. 후대의 평범한 天子들이 숭배하는 聖天子 요.순.우.탕.문.무와, 후세에 유일한 선성으로 제사되시는 공자님의 가르침은, 절대적 기준이지만, 평범한 天子들의 입장과 배치되는 제후들인 先師이며 公반열 안자, 증자, 자사, 맹자의 가르침중 맹자의 가르침 일부는, 중국의 天子가 필요로 하는 삼강오륜, 忠등과 어긋나게 될 경우, 배척받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라를 무너뜨린 은나라, 은나라를 무너뜨린 주나라인데, 주나라의 춘추전국시대 제후국들의 제후를 가르치면서, 천자를 교체하는것은 쉽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하늘의 피조물인 많은 백성들이 새로운 천자를 옹립하는것은 하늘의 뜻과 배치되지 않고, 천자 교체가 가능하다는 가르침. 그래서 천자도 아닌 제후의 경우에는, 백성들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족(세계종교인 유교나 가톨릭)과, 창조신보다 높다는 부처 Monkey의 침팬지족은, 완전히 다릅니다. 브라만에 대항해 후발 신앙을 만든 불교의 부처가 창조주 범천보다 높고 창조주를 가르친다는 Monkey발상 상기시킴. 일제 강점기 불교 Monkey일본이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 유교를 인정않았음. 그리고 창조주에 대드는 성씨없는 점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님보다 높다고 목사 고문구타한 사실.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한 사실.@주권없는 일본 강점기 잔재들은, 여러 기구에 잠입하여, 주권없는 패전국 일본 야만족 기준으로, 세계종교 유교국 일원인 한국 유교를 종교 아니고 사회규범이라고 오도하며, 다시 유언비어를 퍼뜨리기 시작함.@사람이 짐승으로, 짐승이 사람으로 윤회하는 불교. 부처 Monkey의 전생은 원숭이 왕이었다고 합니다. 본생경이라는 책.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는 부처 Monkey. 일본의 경우, 하느님.예수님보다 높다는 일본 불교 Monkey 성씨없는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 아키히토, 나루히토) 천민 Monkey들이, 근대에 새로운 도전. @중국은 유교 과거제와, 국자감때문에, 아무리 주변부 도교.불교가 시중에서 융성했다고 주장해도, 수천년동안 유교가 국교인 나라. 천자의 각종 유교제사, 유교 명절, 24절기등. 세계 최초의 대학, 한(漢)나라 태학[太學(유교대학)]. 이후 위(魏)나라 태학(太學), 수(隋)나라 국자감(國子監), 당.송(唐.宋) 국자감(國子監), 원.명.청(元.明.淸)의 국자감(國子監)으로 이어지다가 청(淸)나라말기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으로 명칭이 바뀌고 나중에 다시 북경대학(北京大學, 베이징대학, Peking University)으로 명칭바뀜. 불교는, 승려가 출가하면, 세속의 가문과, 성씨, 이름 다 버리고, 불당에서, 부처와 그 주변 Monkey에 예불하는 것 외에는, 유교처럼, 천자를 중심으로, 하느님숭배, 지신숭배, 종묘제사, 산천숭배, 조상제사 전통이 없어왔습니다. 그래서 무군무부라고 한것입니다. 그리고 고려는, 일제강점기 불교중심 일본의 기준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훈요십조를 토대로, 훈요십조 前文의 유교부분은 일부러 외면하고, 하부조항에서 궁예의 태봉불교를 이어받은 부분만 집중 강조하여, 고려가 마치 불교국가인것처럼, 오도한것입니다. 교과서로는고려시대 유교가 치국의 도, 수신의 도 불교라고 합니다.불교가 제사를 편법으로 수용한것은,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 삼국시대에 이미 정착된 유교제사를 불교식으로 거부하다가는, 그렇지 않아도, 아도의 죽음, 신라 이차돈의 죽음등 거센 반발에 부딪히며, 산속에 머물며, 변두리 신앙으로 살던 불교가 여러 압박을 견뎌낼 수가 없어서 그런것에 불과함. 불교는 하느님을 중심으로, 천자,제후, 대부, 사, 서인의 조상제사조차도 모르고, 부처를 중심으로 공양하던 외래신앙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Monkey 부처가 브라만에 항거하여, 불교를 일으켰는데, 브라만 하위계급으로, 같은 계급인 아소카왕때 어찌나 열렬히 주변국가에 포교를 하였는지,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석불파괴)등에도 포교하였습니다. 사촌과 결혼한 부처 Monkey의 그 토양하에서, 조상숭배 전통이 교리화되어있을리 만무하지요.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척하여, 불가촉천민으로 취급함. @유교는 성당.절등의 유형유산보다, 제사, 명절의 무형유산이 강한 특색이 있습니다. 중국 공휴일 단오절.*황하문명 殷후손 왕족,기자의 기자조선 기준王의 후손이 건국한 한국의 三韓. 삼한에서는 해마다 5월과 10월에 계절제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한국은 기자조선이후, 위만조선을 거쳐, 한사군 설치로 세계종교 유교국가로 수천년 이어져 온 나라. 기자조선 후손 기준왕이 세운 삼한(三韓).삼한시대 경주는 진한(辰韓)지역,사로국.신라의 중심지로 성장한 경주.삼한시대에는 유교 제천의식인 오월제(수릿날.단오절), 상달제등의 始原유교 제천의식. 한편, 삼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 이전에는 은나라 왕족 기자가 세운, 기자조선이 있었습니다. 기자의 후손 기준왕이 위만조선에 나라를 빼앗기고, 남하하여, 삼한을 건설하였습니다. 마한(백제이전의 나라.백제가 마한땅에 정착), 진한(경주에 박혁거세의 신라가 성립되기 이전의 나라인 진한), 변한(지금의 부산.경상남도 지역의 나라로 변한)의 세 나라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에 의하면이렇습니다. 삼한에서는 해마다 씨를 뿌리고 난 뒤인 5월의 수릿날과 가을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10월에 계절제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이러한 제천 행사 때에는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연일 음식과 술을 마련하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겼다. 삼한 사회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농경 사회였다.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경이 발달하였고, 벼농사가 널리 행하여졌다. 특히, 농경을 위한 저수지가 많이 만들어졌다.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 제천 의림지 등은 삼한 시대 이래의 저수지들이다. @우리역사넷 자료. 고려시대 국가에서 왕명을 받고 편찬하여, 유교 학자들이 편찬한 正史인 삼국사기에는, 유교신화의 하느님, 하느님아들 시각에서 박혁거세 임금의 탄생신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 따르면 혁거세가 탄생하기 전부터 조선(朝鮮)의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살면서 6촌(후에 6부로 발전)을 이루었는데, 그 중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의 촌장이었던 소벌공(蘇伐公)이 양산(楊山)의 나정(蘿井) 옆에서 말이 울고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가보니 말은 사라지고 큰 알이 하나 있었다. 알에서는 갓난아이가 나왔는데, 그가 바로 혁거세이라는 내용이다. @필자설명. 신라는 유교 명절, 추석,설날 및 많은 유교 명절를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중국 혼란기에 불교가 전래되었는데, 이차돈이 죽고 나서야 겨우 불교가 포교될정도로, 반발이 심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고구려 태학(한국 최초의 유교 대학으로, 왕의 자제를 공부시킴), 백제의 오경박사와 달리, 신라는 골품제를 기반으로, 신라 국학을 설립하여, 관리를 양성하는 유교 교육기관을 늦게 설립하였습니다. @한국은 기자조선이후, 위만조선을 거쳐, 한사군 설치로, 세계종교 유교국가로 수천년 이어져 온 나라입니다. 유교를 중심으로, 도교나 브라만에 항거하여 일어난 인도발 외래신앙인 불교도 부분적 수용. 동양은 제자백가가 경합하다가 유교가 세계종교, 서양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기독교)이 공존하다가, 로마가톨릭이 세계종교됨. 인도는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부처의 불교가 주변국에 단순포교를 해, 한때 고대세계 세계종교였지만, 발원지 인도에서 천 몇백년동안 선발신앙인 브라만의 힌두교에 억눌려 탄압받으며 현재에 이름.@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포함)을 받아들여,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고, 한국영토에서 축출해야 될 일제 잔재 종교정책과,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각종 왜구학교.@한국은 미군정때,조선성명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국교 유교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임은 변치않으며 5,000만이 유교도임.그리고 주권없이, 일본 강점기 강제 포교종교도 같이 믿는 현상이 생겨남.@일제가 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오도하고, 일본 불교에서 파생된 신도(불교 후발 일본 국지적 신앙으로, 일본 국교), 불교, 기독교만 종교로 하여, 강제 포교한 것도, 미군정당시부터 무효가 된 것입니다.@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가 세운 마당쇠). 그 뒤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의 비신분제 대학들.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우리시대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교육.연구자료로 여러가지 자료들을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2026년 9월 10일 목요일

동해 표기 문제와 한국입장,역사적 정당성. 동북아 역사넷이 출처임. 필자견해로, 독도는 한국경찰이 주둔 국제법상 실효지배하고 있음. 동해 명칭의 일본해 사용건관련,UN안보리 결의없는 UN총회 권고는, 새로운 기법의 지도제작사 의견을 권고한것에 불과하며, 강행법적 구속력은 없음. 이제 UN에 늦게 가입한 한국이 동해/일본해 병기 외교노력을 적극 시행해야!

동해 표기 문제와 한국입장,역사적 정당성. 동북아 역사재단의 동북아 역사넷이 출처임. 필자견해로, 독도는 한국경찰이 주둔 국제법상 실효지배하고 있음. 동해 명칭의 일본해 사용건관련,UN안보리 결의없는 UN총회 권고는, 새로운 기법의 지도제작사 의견을 권고한것에 불과하며, 강행법적 구속력은 없음. 이제 UN에 늦게 가입한 한국이 동해/일본해 병기 외교노력을 적극 시행해야! @동북아 역사넷 출처. https://contents.nahf.or.kr/eddokViewer/contens.do?viewType=High&levelId=eddok.d_0004_0100_0010 동해 표기 문제와 역사적 정당성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위치한 바다의 국제적 통용 명칭을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한국은 동해와 ‘일본해’ 두 명칭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일본은 ‘일본해’ 이외 어떠한 명칭도 수용할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고 있는 바다의 이름에 대해 양국이 합의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하고, 동해 명칭의 역사적 정당성, 동해 수역의 지형적 특성, 지명 표기에 관한 국제사회의 규범 등에 비추어 볼 때 ‘East Sea(동해)/Sea of Japan(일본해)’로 표기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일본해’ 표기는 어떤 과정으로 이뤄졌을까? 19세기 말까지 일본은 지도에 동해 수역을 조선해, 일본해 등으로 표기했고, 서양에서는중국해, 만주해, 동양해, 동해, 한국해, 일본해, 타타르해 등 다양하게 표기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 걸친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인해 국제 사회에서는 ‘일본해(Sea of Japan)’가 점차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 각주가 발간한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에 ‘일본해(Japan Sea)’로 표기된 것이 확산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도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의 제2판(1937)과 제3판(1953)이 각각 발간되었는데, 동해 수역은 계속 ‘일본해’로 표기 되었다. 이 시기에 한국은 일제에 의해 강점되거나 6·25 전쟁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해 명칭은 2,000년 이상 사용해 온 지명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삼국사기(三國史記)》고구려본기 동명왕조(기원전 37년),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 팔도총도(八道總圖), 아국총도(我國總圖)를 비롯하여 수많은 문헌, 고지도 등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동해는 ‘일본해’ 명칭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국호의 등장보다도 700년이나 앞서 사용된 명칭이다. @@ 출처: https://contents.nahf.or.kr/eddokViewer/contens.do?viewType=High&levelId=eddok.d_0004_0100_0020 동해표기의 정당성과 우리의 노력 동해 수역은 한국, 북한, 일본, 러시아 등 4개국의 영해와 배타적 경제 수역(EEZ)으로 구성되어 지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여러 나라의 주권과 주권적 권리가 미치는 수역을 특정 국가의 국가명이 들어가 있는 명칭만으로 단독 표기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만약 지형의 명칭에 대해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 각각의 국가에서 사용하는 지명을 병기하는 것이 일반원칙이다. 국제사회의 규범으로서 국제수로기구(IHO)와 유엔지명표준화회의(UNCSGN)각주의 결의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 국제수로기구 기술결의 A.4.2.6 (1974년) 요지 2개국 이상이 지형물을 공유하는 경우(다른 명칭으로), 단일 지명에 합의를 위해 노력하되, 공통 지명 미합의시, 기술적인 이유로 불가할 경우를 제외하고 각각의 지명 사용(병기)을 권고 · 유엔지명표준화회의 결의 III/20 (1977년) 요지 2개국 이상의 주권하에 있거나 2개국 이상 사이에 분할되어 있는 지형물에 대하여 당사국간 단일 지명에 관하여 합의하지 못할 경우 서로 다른 지명을 모두 수용하는 것을 국제지도 제작의 일반 원칙으로 할 것을 권고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 지도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 지도 (출처: H.J.de Blij et al., Geography of the World, 4th ed.)(2010)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국제연합(UN)에 가입한 후 1992년 유엔지명표준화회의(UNCSGN)에서 국제 사회가 동해 해역의 지명을 ‘일본해’로 단독 표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동해 지명이 국제 사회에서 널리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그 결과 세계 각국의 지도 제작사가 발행하는 지도에는 ‘East Sea/Sea of Japan’으로 지명의 병기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또한 민간단체들과의 협력을 토대로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서 ‘East Sea(동해)/Sea of Japan(일본해)’가 병기된 『해양과 바다의 경

2026년 9월 7일 월요일

우리 역사넷이 밝히는 일본의 난징대학살

우리 역사넷이 밝히는 일본의 난징대학살 @@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tg/view.do?levelId=tg_004_2490 난징 대학살 제목 난징 대학살 한자명 南京大虐殺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일본, 중국 유의어 남경 대학살(南京大虐殺) 별칭•이칭 [정의] 1937년 12월부터 1938년 2월까지 중국 난징(南京)에서 일본군이 중국인 포로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전개한 대학살 사건. [내용] 1937년 7월 7일 루거우차오(蘆溝橋)에서 발포 사건이 일어나면서 중일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초기 일본군은 베이징과 톈진 등을 점령하면서 화베이 지역에서 기세를 올렸으나, 상하이에서는 중국 국민당군의 강한 저항을 받아 3개월에 걸친 장기전이 펼쳐졌다. 양측은 막대한 피해를 입은 채 11월에야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했다. 상하이가 함락되자 중국군은 붕괴되었고, 당시 수도였던 난징에 대한 방어도 곤란하게 되었다. 이에 11월 20일 국민정부는 장기 항전을 위해 수도를 난징에서 충칭(重慶)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또 한편으로 중국은 난징을 사수하려는 태도를 보이면서 국제적인 지원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머뭇거리는 사이 난징을 사수하던 탕성즈(唐生智)가 지휘한 중국군의 수도 방위전이 실패했다. 12월 13일 난징은 일본군에 함락되었는데, 함락 직전 사령관 탕성즈는 자신의 휘하 부대를 남긴 채 도망가고 말았다. 이로써 난징성이 허무하게 함락되자, 피난하지 못한 채 남아 있던 50~60만의 난징 시민들과 철수하지 못한 10만여 군인들 가운데 수많은 이들이 일본군에 의해 희생되었다. 일본군은 상하이 전투에서 상당한 피해를 받으면서 중국에 대한 적개심이 커진 상태였다. 또한 전투에 참여한 일본군에는 정예병보다 예비역 병사가 다수 포함되어 훈련 수준이 떨어졌고, 군율이 엄격하지 못해 전쟁 범죄가 자주 발생하고 있었다. 급속한 진격에 따른 보급 부족은 이들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만들고 군율이 이완되게 했다. 또 일본군 내에서는 투항한 병사에게 식량을 지급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들을 포로로 삼지 않고 살해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동시에 이들 내부에는 중국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대단히 잘못된 인종주의 차별 심성도 존재했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가 맞물려 대학살이 벌어졌다. 일본군은 항복한 중국군 포로뿐만 아니라 젊은 남자들까지 끌고 가 기관총 세례를 퍼부으며 잔인하게 학살을 저질렀다. 중국인 남자들은 일본군의 총검술 훈련 대상이 되어 희생되거나 일본군 사이에 참수 경쟁 대상이 되기도 하였고 심지어 생매장을 당하기도 했다. 또 일본군은 수많은 여성을 강간한 뒤 참혹하게 살해했다. 그 대상은 어린이부터 60,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었다. 이렇게 학살된 희생자는 현재 적게는 5만에서 많게는 30여 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1939년 4월에 의학 연구 기관을 설치해 중국인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시도했다. 실험 대상이 된 사람들은 목숨을 잃고 소각 처리되었다. 이 대학살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의 대표적인 비인도적 행위로서 현재까지 끊임없는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이 패전한 뒤 1946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난징에서 전범 재판이 열렸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1천 명이 넘는 중국인들의 증언이 나왔고 감춰졌던 증거들이 공개되었다. 이에 6사단장으로 난징 학살을 지시한 육군 중장 다니 히사오(谷寿夫) 등의 범죄가 인정되어 사형이 집행되었다. 1946년 5월 도쿄에서 시작된 극동 국제 군사 재판에서는 학살 당시 총책임자였던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대장이 사형 판결을 받아 교수형을 당했다. 그러나 당시 지휘관 중 하나였던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朝香宮鳩彦)는 일본 왕족이란 이유로 처벌을 면했고, 학살과 관련된 주요 범죄자들이 법정에 서지 않는 등 많은 한계를 지녔다. 이후 중국에서는 1985년 7만 평 규모의 난징 대학살 기념관을 설립해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였다. 반면 일본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학살을 ‘난징 사건’으로 축소시키고, 대규모 학살이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 관련자료 ㆍ난징 대학살(南京大虐殺) 한국의 역사: 라. 전쟁으로 일어난 일본, 전쟁으로 패하다(D. Japan, risen by war, is defeated by war)

동북아 역사넷이 밝히는 일본의 죄악.

@@동북아 역사넷 자료. https://contents.nahf.or.kr/id/NAHF.edeah.d_0006_0050_0020_0010 @@ 1. 역사문제 : 군대 위안부 20세기 초 일본은 영토 확장을 위해 많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1931년9·18사변(만주사변)으로 만주를 점령하고 괴뢰 만주국을 세웠으며, 1937년에는 7·7사변(노구교사변)으로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침략을 하였다. 1941년12월에는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하고 동남아를 침략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1932년 만주국을 수립한 후 일본제국주의는 만주에 일본군을 위한 위안소 경영을 허용하였고, 1932년 상하이에서는 일본 해군이 위안소를 설치하여 관리하였다. 1937년 중국의 일반 시민들과 군인들을 학살하고 강간했던 난징대학살의 경우는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에 대한 국제적 비난일 일자 일본은 일본군의 강간과 성병확산을 막고 군의 사기진작을 위해 군위안소제도를 확대하였다. 이러한 목적으로 설립된 일본군 위안소에는 중국과 조선 등의 많은 여성들이 끌려가 강간을 당했다. 10만 여명의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 등의 여성들이 일본군대를 위한 ‘위안부’로 끌려갔고, 많은 사람들이 군수산업 노동자로 징용되었다. 일본은 중국 하얼빈의 731부대에서 전쟁 포로와 일반인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일본의 이러한 잔혹한 행위는 책임소재가 불명확하게 처리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1946년 5월부터 2년 반 동안 계속된 ‘극동국제군사재판(The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 : 도쿄전범재판)은 일본의 전쟁범죄자 28명을 기소하여 도조 히데키[東条英機] 등7명을 사형,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 등 16명을 종신 금고형 등을 판결하였다. 그러나 도쿄전범재판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인 미국의 대일점령정책 틀 안에서 패전국 일본의 정치군사 지도자 일부를 재판하는 형식을 통해 심판하고 처벌한 것이었다. 이 재판을 통해서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는 과정과 관여한 정책담당자들을 밝혀내고 일본군이 자행한 고문, 강간, 대학살, 포로학대 등의 사실을 규명해 냈으며 일본 국민들에게 침략전쟁의 잔학성과 책임을 알린 것도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인 자신이 아닌 전승국이 주도한 재판이었고 천황의 전쟁 책임을 묻지 않았으며, 일부 정치 군사 지도자만을 재판하여 침략전쟁에 참여한 광범한 인물들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식민지 피해에 대해서도 철저한 추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전승국의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불문에 부쳤고 미국에 협조한 전쟁범죄자들이 제대로 기소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도쿄전범재판은 일본인들에게 승자의 패자에 대한 일방적인재판이란 인식을 가지게 했고 일본인들이 전쟁에 관해 죄의식을 갖지 않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왜냐하면 일본이 타국을 침략했다는 이유로 기소했던 서구 열강도 식민국가들의 독립을 억압하는데 가담한 국가들이었고, 그들 손으로 이루어진 전범재판은 일본인들에게 ‘승리자의 정의’만이 작용한 재판이었기 때문이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을 통해 주권을 회복한 직후 일본은모든 전범을 사면하였다. 일본이 1958년 감옥에 있던 전범을 마지막으로 모두 다 사면하던 그 해 서독은 나치가 저지른 범죄를 수사할 정부기관을 설립했다. 이후 서독은 10만 여명을 기소했고 이 가운데 6,500여 명이 유죄를 선고 받았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1950년대 단 한명도 전범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또한 초기 전범으로 기소 당했던 많은 사람들이 전후 일본 경제계와 정치계에 진출하여 요직을 차지했다. 일본군과 정부가 관여한 군대 위안부 문제는 동아시아의 중요한 역사 문제 중의 하나이다. 일본 정부는 침략전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군인들을 위한 성노예로 식민지 여성을 동원하였다. 일본은 1931년 9·18사변을 일으켜 만주침략을 시작하였다.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정부와 군의 통제·감독·협력 아래 징집·이송되어, 군(軍) 상층부가 개설·운영·통제 감독하고 있던 군위안소에 억류되어 성노예가 될 것을 강요당했던 모든 여성을 지칭한다. 일본군은 중국을 비롯하여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파푸아뉴기니 등에 ‘위안소’를 설치하고, 조선인, 대만인, 중국인, 인도네시아인, 동티모르인, 필리핀인 등 일본의 식민지 및 점령지 여성과 네덜란드 여성, 그리고 일본 여성에게 일본군인을 상대로 한 ‘성행위’를 강요했다.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의 총 규모는 적어도 5만 명 전후이며 일정 기간 감금되고 강간당한 이들을 포함하면 8만에서 20만 명 가까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침략·식민지배 관련 한·일간 과거 청산의 핵심적 과제의 하나인 동시에 여성 인권의 보호와 전시 여성 폭력 반대라는 견지에서 세계사적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보편적 문제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위안부와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계속하였다.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알려진 것은 1970년대였지만 주목을 끌지 못하다가 1980년대 중반 한국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한 여성들의 성추행과 성폭력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1990년5월 노태우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한국의 여성단체들은 일본정부에 대해 정신대 문제 진상 규명과 사죄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일본, 북한, 필리핀,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모집이 민간업자가 한 일로 정부가 군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증언과, 일본군이 위안소를 통제했다는 자료가 발굴되어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국제 연대집회와 심포지엄이 계속되었다. 유엔 인권 위원회 등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쟁 범죄이며, 일본 정부가 국가적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고백한 사건은 ‘위안부’ 문제 해결의 일대 전기가 되었다.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관련 자료의 발굴 및 안팎의 여론에 밀려 일본정부는 진상 조사에 착수해, 1992년 7월‘위안부’문제에 대한 정부의 관여를 인정하였으나 강제연행을 입증하는 자료는 없다는 1차 조사결과를 공표하였다. 이후 일본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일본 외 지역에 대한 자료 조사를 실시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청취한 후 1993년 8월 4일 2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서 일본군과 관헌의 관여와 징집·사역에서의 강제를 인정하고 문제의 본질이 중대한 인권 침해였음을 승인하며 사죄하였다. 물론 모든 일본인들이 자국의 전쟁범죄를 망각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시민사회와 사회당 등의 좌파계열의 정치인들은 일본의 전쟁책임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1993년 무라야마 토미이치[村山富市] 총리 시절 관방장관이었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는 전시 ‘위안부’에 대한 정부 조사를 통해 일본 군부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위안부를 설립하고 위안부 여성들을 관리했다는 결론을 내려서 강제성을 인정했고,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을 표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국제기구의 결의를 무시하고 희생자 보상처리를 위해 “아시아여성을 위한 기금”을 설립했다. 많은 위안부 출신 여성들은 사적 기금에 의한 위로금 지급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위로금이 일본정부의 전쟁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죄 표명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은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였다. 다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도의적 책임을 지기 위해,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1995년 7월 발족시켜 피해자에 대한 위로금 지급과 의료 복지사업을 추진하였다. 동 기금은 한국·대만·필리핀의 위안부 피해자 280여 명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고 2007년 3월 31일 해체되었는데, 대다수 피해자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민간단체들은 민간 차원의 위로금이 아닌 일본정부의 법적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1992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위안부’ 문제를 상정한 이래 이 문제는 여성 인권 유린의 문제로 확대 발전되어 국제적인 관심과 조명을 받게 되었으며, 해외의 여성·인권 단체와 연대한 관련 단체 및 정부의 노력으로 UN과 ILO(국제노동기구) 등 국제기구에서 문제 해결을 권고, 촉구하는 목소리가 1990년대 중반 이래 계속 나오고 있다. 1995년에는 국제기구로서는 최초로 ILO전문가위원회가 일본군 ‘위안부’를 ILO 협약 29조(강제노동금지) 위반으로 판단하여 일본정부에 대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촉구하였다. 다음해 UN인권위원회는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배상 등 6개 항목으로 된 일본정부에 대한 권고안을 포함하는 어린이와 무력분쟁에 관한 특별대표 라디카 쿠마라스와미(Radhika Coomaraswamy)의 보고서를 공인하였다. 이듬해 열린 UN 인권소위원회는 일본정부의 배상 책임은 물론 책임 있는 개인의 형사책임(처벌)까지 요구하는 맥두갈(Gay J. McDougall) 보고서를 채택하였다. 일본 정부의 조치에 맞서 아시아 여성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일본 정부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일본, 필리핀, 미국 등에 냈다. 2000년 12월 7일부터 12일까지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침략 당했던 국가들의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일본 도쿄에서 개최한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은 피해자와 활동가, 연구자, 법률가들이 조직한 민간법정으로, 일본정부의 배상 책임을 묻는 민사재판과 책임 있는 개인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형사재판으로 구성되었다. 이 재판은 히로히토 천황과 도조 히데키(東条英機)를 비롯한 9명의 고위 관료와 장성에게 유죄 판결하고 전범자들이 여성의 성노예화에 개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며, 일본정부에 대해서는 피해자 배상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일본 언론들은 이 재판을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2007년에는 일본 측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혼다(Michael MakotoHonda)의원 등이 6번째로 미 하원에 제출한 ‘위안부’ 결의안이 7월 30일 만장일치로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193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젊은 여성들에게 성노예를 강요한 사실을 인정, 사과하고 책임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 이 결의안은, 애초 혼다 의원이 제출한 안에서 일본총리의 공개 성명을 통한 공식 사과를 ‘촉구’한 것을 ‘권고’하는 형태로 수정하고, 미일동맹의의미를 강조하는 조항을 첨가하여 수정 통과되었으나, 이후 다른 나라 의회에서의 관련 결의안 통과의 계기가 되었다. 같은 해 11월 네덜란드 하원이 유럽 최초로 생존‘위안부’들에 대한 도덕적·재정적 보상과 학교 교재를 통한 실체의 정확한 전달을 촉구한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곧이어 캐나다의회와 유럽의회에서도 결의안을 채택했다. 2008년에는 UN인권이사회가 일본정부에 대해 ‘위안부’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프랑스, 네덜란드, 남북한 및 중국, 필리핀의 목소리를 담은 보고서를 채택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일본 우파들은 강하게 반발하였다. 일본 우파는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세워진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실수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기념비를 훼손하다가 체포되기도 하였다.. https://contents.nahf.or.kr/id/NAHF.edeah.d_0006_0050_0020_0010

2026년 9월 6일 일요일

유교문화 24절기 백로. 2026년 9월 7일(음력 7월 26일)부터 16일간은 백로(白露)절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밤 동안 기온이 크게 떨어지며,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겨서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고 합니다. 유교경전인 예기 월령에서는 백로(白露)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백로(白露)가 내리고 쓰르라미가 울며 매가 새를 제사지낸다(涼風至 白露降 寒蟬鳴 鷹乃祭鳥)

유교문화 24절기 백로. 2026년 9월 7일(음력 7월 26일)부터 16일간은 백로(白露)절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밤 동안 기온이 크게 떨어지며,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겨서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고 합니다. 유교경전인 예기 월령에서는 백로(白露)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백로(白露)가 내리고 쓰르라미가 울며 매가 새를 제사지낸다(涼風至 白露降 寒蟬鳴 鷹乃祭鳥). 유교는 음식을 바치고 제사하는 방법과, 음식없이 기도하는 방법 두 가지가 일반적입니다. 자기의 일상생활을 뒤돌아보며, 자기 행동에 죄가 있었다면,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 시경 天生蒸民)을 두려워하며, 일상적으로 하늘을 향해, 하느님께 죄를 빌고 자기의 소망을 비는 기도를 생활화 하는 방법이 좋습니다.그러나 모든 제사는 해당 제사장의 자격이 있으므로, 음식을 바치는 제사는 주어진 직분에 따라서만, 동참하고, 월권 제사는 않됩니다. [1].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백로(白露)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십사절기의 하나.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에 들며, 9월 8일경이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대기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전히 나타난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가을에 접어드는 시기로 일조량이 많아서 곡식이 여무는데 좋다"는 시기입니다.제철식품으로 포도가 있어서 포도순절(葡萄旬節)이라고도 합니다. 유교에서 가을을 주관하시는 신(神)은 최고신이신 하느님[천(天)]을 중심으로 하면서, 가을의 하느님이신 소호(少皥) 께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 필자 주 1). 하느님(天)에 대한 필자의 견해: 태극(太極)과 연계된 최고신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天生蒸民), 자연천(自然天).인격천(人格天)을 아우르시는 초월적인 최고신. 한편, 예기 월령에 따라 규정하면 가을의 하느님은 소호이시고, 그 보좌신은 욕수입니다(其帝少皥 其神蓐收). 유교 경전인 예기 월령에서는 맹추의 달인 음력 7월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교재원본은 신역(新譯) 예기(禮記)[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입니다. 오자등이 있어도 원래 저자나 번역자의 학식.능력과 사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자의 경우 다만 교정대상일 뿐입니다. 孟秋之月 日在翼 昏建星中 旦畢中 其日庚辛 其帝少皥 其神蓐收 其蟲毛 其音商 律中夷則 其數九 其味辛 其臭腥 其祀門 祭先肝 涼風至 白露降 寒蟬鳴 鷹乃祭鳥 用始行戮 맹추(孟秋)의 달은 진(辰)이 익성(翼星)에 있는데, 저녁에는 건성(建星)이 남방의 중앙에 있고, 아침에는 필성(畢星)이 남방의 중앙에 있다. 그 날은 경신(庚辛)에 해당되며 그 제는 소호, 그 신은 욕수, 그 동물은 짐승, 그 음은 상조(商調), 그 율은 이칙(夷則)에 해당되며 그 수는 9, 그 맛은 매운 맛, 그 냄새는 닭기름 냄새이고 그 제사는 문의 신에게 올리되 제사할 때는 희생의 간을 먼저 바친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백로가 내리고 쓰르라미가 울며 매가 새를 제사지낸다. 쌀쌀한 가을 기운이 넘치므로 비로소 형륙(刑戮)을 시행한다. [2]. 한국의 백과사전 및 기타 사전종류에서 서술하는 백로(白露). 1].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 나타난 백로(白露). 백로[ 白露 ] 정의 24절기의 하나. 내용 처서와 추분 사이에 들며, 음력 8월, 양력 9월 9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165°에 올 때이다.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대기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전히 나타난다. 옛 중국 사람들은 백로입기일(白露入氣日)로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그 특징을 말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候)에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다. 이 때 우리 나라에는 장마도 걷히고 중후와 말후에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된다.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곡식을 넘어뜨리고 해일(海溢)의 피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백로가 음력 7월 중에 드는 수도 있는데 제주도와 전라남도지방에서는 그러한 해에는 오이가 잘 된다고 한다. 또한 제주도 지방에서는 백로에 날씨가 잔잔하지 않으면 오이가 다 썩는다고 믿는다. 경상남도의 섬지방에서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十里) 천석(千石)을 늘인다.’고 하면서 백로에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생각한다. 또 백로 무렵이면 고된 여름 농사를 다 짓고 추수까지 잠시 일손을 쉬는 때이므로 근친(覲親)을 간다. . 출처: 백로 [白露]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백로(白露 ). 백로[ 白露 ] 요약 24절기의 하나로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의 절기이다. 양력 9월 8일경부터 추분 전까지, 음력으로는 8월절이다. 가을에 접어드는 시기로 일조량이 많아서 곡식이 여무는데 좋다. 제철식품으로 포도가 있어서 포도순절(葡萄旬節)이라고도 한다.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에 드는 절기로, 24절기 가운데 열다섯째에 해당한다. 양력으로는 태양의 황경(黃經)이 165°에 이르는 9월 8일경부터 추분(9월 23일경) 전까지이며, 음력으로는 8월절이다. 이 시기에는 밤 동안 기온이 크게 떨어지며,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겨서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어 선선하고 차가운 기운이 돌며, 특히 추석 무렵으로 만곡이 무르익는 시기이다. 장마도 걷히고 맑고 깨끗한 날씨가 계속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따금 태풍으로 인해 벼포기가 쓰러지거나 해안 지방에서는 해일로 인해 농작물이 해를 입기도 한다. 옛 중국에서도 이 시기를 5일씩 3후(候)로 나누어 ① 기러기가 날아오고 ② 제비가 돌아가며 ③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다. 간혹 음력 7월 중에 들기도 하며, 제주도에서는 백로에 날씨가 고르지 않으면 오이가 썩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경상남도 인근의 섬 지역에서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천석(十里千石)을 늘린다'고 하여 이 날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여겼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무렵을 전후해서는 기온도 적당하고 맑은 날이 이어지기 때문에 일조량이 많아 곡식이 여무는 데 더없이 좋다. 따라서 이 때 비가 내리면 적당한 햇살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벼농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비가 오는 것은 좋지 않다. '백로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는 말은 이에서 연유한 말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제철식품으로는 포도가 있다. 이른바 '포도순절(葡萄旬節)'이라 하여 백로에서 추석까지의 기간을 일컫는데, 편지 첫머리에 '포도순절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따위의 구절은 바로 이 무렵에 포도가 성한 것을 비유해 멋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 출처: 백로[白露] (두산백과) 3]. 한국 세시풍속사전에 나타나는 백로(白露). 백로[ 白露 ] 정의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 백로(白露)는 양력 9월 9일 무렵으로 대개 음력 8월에 들며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이다.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이 황경 165도를 통과할 때이다. 내용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한다. 가을의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시기로 옛 중국 사람들은 백로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특징을 말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侯)에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한다. 백로 무렵에는 장마가 걷힌 후여서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하지만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과 해일로 곡식의 피해를 겪기도 한다. 백로 다음에 오는 중추는 서리가 내리는 시기이다. 전남에서는 백로 전에 서리가 내리면 시절이 좋지 않다고 한다. 볏논의 나락은 늦어도 백로가 되기 전에 여물어야 한다. 벼는 늦어도 백로 전에 패어야 하는데 서리가 내리면 찬바람이 불어 벼의 수확량이 줄어든다. 백로가 지나서 여문 나락은 결실하기 어렵다. 제주도 속담에 “백로전미발(白露前未發)”이라고 해서 이때까지 패지 못한 벼는 더 이상 크지 못한다고 전한다. 또한 백로 전에 서리가 오면 농작물이 시들고 말라버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충남에서는 늦게 벼를 심었다면 백로 이전에 이삭이 패어야 그 벼를 먹을 수 있고, 백로가 지나도록 이삭이 패지 않으면 그 나락은 먹을 수 없다고 믿는다. 경남에서는 백로 전에 패는 벼는 잘 익고 그 후에 패는 것은 쭉정이가 된다고 알고 있으며, 백로에 벼 이삭을 유심히 살펴서 그해 농사의 풍흉을 가늠하기도 한다. 농가에서는 백로 전후에 부는 바람을 유심히 관찰하여 풍흉을 점친다. 이때 바람이 불면 벼농사에 해가 많다고 여기며, 비록 나락이 여물지라도 색깔이 검게 된다고 한다. 백로는 대개 음력 8월 초순에 들지만 간혹 7월 말에 들기도 한다. 7월에 든 백로는 계절이 빨라 참외나 오이가 잘 된다고 한다. 한편 8월 백로에 비가 오면 대풍이라고 생각한다. 경남 섬지방에서는 “8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늘린다.”라는 말이 전하면서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생각한다. 또 백로 무렵이면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를 시작하고, 고된 여름농사를 다 짓고 추수할 때까지 잠시 일손을 쉬는 때이므로 부녀자들은 근친을 가기도 한다. . 출처: 백로[白露] (한국세시풍속사전) 4].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에 나타나는 백로(白露). 백로 [ 白露 ] 하얀 이슬이 맺힌다는 뜻이다. 기온이 뚝 떨어져 이슬마저 차가워져 흰 빛을 띠기에 하얀 이슬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고되고 힘든 여름 농사를 갈무리하고 일손을 놓는 시기이다. 맑은 날이 계속되고 기온도 알맞아 온갖 열매가 여무는 데 더없이 좋다. 제비는 돌아가고 기러기가 찾아온다. 양력으로는 9월 8일경이다. . 출처: 백로[白露]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2011. 5. 23., 정민, 박수밀, 박동욱, 강민경) [3]. 성균관.향교의 50만 제사인구는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 주권없는 일본 잔재 불교 Monkey 서울대등이 최근에 다시 어거지쓰고 약탈하려는 주장은 주권.자격이 없음. 저 Monkey들 어거지는 교과서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 아니라는 것임. 일본 강점기 주장을 이어받아, 다시 일본잔재 서울대 출신이 1983년에 통계기법으로 주권없이 조사한 종교인구 표본조사같은걸로, 주권없이 다시 유교 약탈.테러중. 1983년 한국갤럽의 종교인구 조사는 이듬해인 1984년에 공식 발표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 의식 보고서의 기초가 된 조사입니다. 한국갤럽의 설립자이자 당시 조사를 이끌었던 박무익 회장은 서울대학교 출신입니다. 이런 식으로, 5,000만 한국인의 국교인 유교도들의 명절,제사,24절기,유교교육등을 무종교도로 만들고 주권없는 일제 강점기 포교종교 신도수만 내세우고, 10년 단위로 현혹하고 있음. 성균관.향교 제사인구 50만명만 유교인구라고 어거지쓰는것은 패전국에 전범국,UN적국 일본 불교 Monkey들이 사기치는 원숭이 노예합창.통계청 표본조사로 종교인구 조사하는것은, 더 이상 써먹지말고, 이런 조작 중지해야 할것. 애초부터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에 따라 일본 강점기 종교정책은 주권도 없고 인정받을수 없었음. 제헌의회 임시정부 반영에도 어긋나고, 1988년의 현행헌법 前文 임시정부 정통성 승계(한일병합등 모든 불평등 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위배됨. 유교를 국교로 승계받은 줄 알고, 당연히 유교도로 사는 한국인들을 다시 기만하기 시작한것.@세계사 고대 3대종교는 유교,기독교,불교(삭제않되고 유지)@유교는 문화대혁명때 침체,중국이 여러 유교명절 공휴일 지정,24절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음력 새해 명절을 UN 유동적휴일로 건의,채택.기독교(중세이후 크게 번창),불교(브라만교가 강하게 탄압,힌두교 인도).@수천년 한국 유교문화 5대 명절에 현대적 개념 도입한 국가유산청의 5대 명절 지정. 2023년 12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5대 명절을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설(중국은 춘절)과 대보름(중국은 원소절),한식(중국은 청명절),단오,추석,동지@유교는 성당,힌두교 사원,불교(브라만에 항거한죄로,인도에서 천 몇백년 탄압중) 사찰과 달리 무형유산 유교 명절에 전국민 참여. 유교는 왕실(대한제국은 황실)의 종묘대제,성균관.향교의 석전대제, 수천년 전통명절들, 문중별.가족별 제사.차례,기도. 24절기,유교 교육등. @ 한편,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서강대는, 세계사의 교황제도 반영, 국제관습법상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연합국 국가원수들의 포츠담선언(포츠담선언은 미군정의 상위법, 일본관련, 포츠담선언은 카이로선언도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불교 Monkey 일본.*서유럽과는 다르게 한국,대만,아시아,쿠릴열도에 적용되는 포츠담선언의 일본관련 조항들.*일본이 교육기능 폐지시킨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 미군정때 성균관을 복구하는 법률(공자묘 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이 제정되었음. 이때 성균관과 관련없고 일본 동경대를 졸업한 교육관련 담당자와 주변인들이,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폐지)시켜야 할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하면서, 서울대를 성균관 앞에 놓는 방법으로 성균관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하였음. 미군정에서 교육정책 입안자로 등용되니까, 하위법인 미군정령을 이용해,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의 취지(일본의 주권은 한국에 없고, 경성제국대는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할 일제잔재임)에 어긋나는 교육정책을 만들었던것. 그러나 상위법 우선의 원칙을 따라야 함. 카이로선언은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축출)될것"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또한, 미군정은, 교육분야 아닌 타분야에서 연합국의 적국인 일본의 재산을 적산재산으로 하여, 일본이 카이로선언의 연합국 적국이라는 시각을 따르고 있었음. 미군정기에는 유교국가인 조선.대한제국의 한문성명.본관을 등록하는 조선성명 복구령도 시행되었음. 교육분야에서, 미군정기의 과도기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될 경성제대 활용(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의 정제되지 않은 정책에, 위기를 느낀, 전국 유림들이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유림이면서 임시정부 요인출신 김창숙 선생)를 개최하여, 성균관대를 설립(성균관의 교육기능 승계형태임)하기로 하였음. 새로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성균관장이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하고, 성균관대 학장.성균관장을 겸임하였음.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성균관대가 대학기능을 승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것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며, 고구려 태학이후 한국 최고대학 계보 성균관이었음. 태학(고구려),국자감(고려),고려말 성균관,조선.대한제국 성균관. 일본 강점기때 교육기능 중단 및 왜곡*일본이 항복하여, 미군정부터는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가, 대학교육 역할을 담당하여, 한국 최고 대학 계보임.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미군정때, 국사 성균관 교육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에도, 계속 국사 성균관교육을 실시. 국사교육을 중요시하여, 정부의 각종 고시, 공무원시험등에 국사 채택. *국사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라는건 성균관대, 성균관, 여러 백과사전 공통된 견해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4090602113 [4]. 인류는 만물의 근원.창조주 하느님(乾,天)의 섭리하에,만물의 영장으로 창조된,인간의 도리를 가르치신,근본적 하느님 아들 유교 공자님(先聖,聖天子)과,기독교세계 하느님의 독생자 주 예수를 떠나살수 없음.짐승같은 불교 부처Monkey는 창조신에 도전하는 나약한 원숭이! 인류조상 베이징원인.夏의 해.달.별 숭배,殷(商)의 上帝숭배,이전 신앙 흡수하여 유교 경전에 정형화된 周나라의 天(하느님,만물의 근원 乾,天.시경 天生蒸民으로 인격天 제도화)숭배와 天子제도.漢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天子제도 승계,공자숭배. 夏의 해.달.별 숭배, 문자를 발명한 殷(商나라)의 上帝숭배, 이전 신앙을 흡수.통합하여 유교 경전에 정형화된 周나라의 天(하느님, 하늘. 시경 天生蒸民으로 인격天의 개념이 제도화)숭배와 天子제도는, 하늘로 승천하여 계절을 다스리시는 오제(五帝. 태호,염제,황제,소호,전욱으로 창조주.최고신 天다음의 계절의 神이시며, 인격神의 시조)를 숭배하며, 요.순.우.탕.문.무의 先聖 가르침을 경전에 기록함. 주나라의 혼란기인 춘추전국시대에는 殷왕족의 후손이시며, 周나라 대부의 아들로 태어나신 공자님께서 제자백가의 여러 사상중 하나로 유가의 시조가 되심. 선성과 어진 섭정 주공의 행적을 존경하신 공자님. 공자님의 가르침은 하느님(天, 하늘)의 섭리하에, 조상신.지신.산천신 숭배를 이어가면서, 인간의 도리를 하기 위해, 학습을 하면서, 仁이나 禮, 恕등으로, 세상을 교화하시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공자님은 殷나라 왕족의 후손이신데, 당시에는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나, 선생 칭호의 子를 붙여 공자(공선생님)로 불리시다가, 후세에, 선성(先聖, 先聖王으로 聖天子를 의미)으로 추존되어, 역대 중국 천자들과 사람들이 제사하는 聖人이 되셨습니다. @ 漢나라때 漢의 국교며, 동아시아 세계종교(중국,한국,베트남, 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 현대의 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에 걸쳐 십수억명 유교도)로 성립되어, 수천년 이어진 세계종교 유교. 학생때 세계사영역,중국의 제자백가. 유가,법가,도가(한국은 신선사상,풍류도),묵가. 漢나라때 유교(儒家)가 국교가 되어 수천년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의 세계종교@인도발 외래신앙 불가(불교)는 일본 불교Monkey와 주권없는 경성제대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일본잔재 대만대가 대중언론.방송.SNS,뇌과학으로 어지럽혀도 제자백가 밑!@국가 최고 의례는 왕실의 조상제사인 종묘대제,토지와 곡식의 신에 제사하는 사직대제,先聖이신 공자님에 제사하는 석전대제.유교문화에서 인정되지 않는 인도발 오랑캐 도적의 짐승신앙 불교나, 힌두교 및 다른 종교 인정하기 어려움.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다시 인도가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천민으로 핍박하는 불교.@패전국.UN적국 일본 불교Monkey들이 근대에 한국.대만지역 합쳐 내세운 불교.건축물.유물로,유럽공략 걱정됨@원숭이.코끼리.사슴에서 환생한 부처 Monkey의 윤회론도 끔찍.유교문화권에서 제자백가뒤 오랑캐 도적,짐승으로 견제받던 인도발 외래불교일뿐. 중국.로마는 주변국가들을 야만족이라고 불러옴.역사적 사실@야만족에 군사력으로 정복당해도,종교와 대학.문화로 지배 분담@유교문화권은 인도발 불교를 오랑캐 도적,사람아닌 짐승(無君無父의 禽獸)으로 분류.하느님도 모르고,윤회론의 원숭이-> 불교 부처 Monkey는 不變 인도의 불가촉 천민,조선의 천민 승려 불교.불교는 부처Monkey가 인도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 천민으로, 다시 탄압받고 있음. 원숭이.코끼리.사슴에서 환생한 부처 Monkey의 윤회사상도 가미한 짐승신앙임.건축물 중시 유산은 종교의 본질과 큰 관계없음.경전,교리,역사적 전통,제도,그 제사장,신도수,해당국들에서의 국교로서의 전통등이 중요. 동아시아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한국은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삼한을 통하여,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로 확실히 정착, 하느님.조상신을 숭배하며,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신 공자님울 聖天子(先聖)으로 제사하는 나라. 그러다보면 유교 근본주의로 해석해서, 사후 비판 할 수도 있을법도 함. 삼국시대, 신라멸망후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패전국 일본 불교 Monkey항복후의, 유교복구와 일본 잔재등 아주 복잡함. 유교경전은 후세 정치적용어 皇帝없음.만물의 근원.창조신(乾,天) 하느님 다음,유교 경전 예기의 五帝(계절신,조상신,인격신)의 으뜸신 黃帝(殷왕족 후손 공자님의 조상神)는 均天의 인격神.공자님은 후세 天子들이 제사하는 聖天子(先聖).주권있어도 한국은 종교 天子국 아님 기독교세계는 하느님의 독생자 주 예수.주 예수의 종 교황,스페인왕.영국왕등 기독교 국왕들로 이해.유교문화권 중국,한국이 후세의 정치용어 皇帝에 의거,敎皇(교화 황제)으로 번역한 Pope.유교국 정치지도자들이 皇帝라는 용어사용 시도했어도 天子는 단 한분 종교지도자. 서로마.동로마는 중국殷,周,제자백가,漢처럼 중요@헬레니즘.헤브라이즘@이집트,그리스,서아시아,인도북부 통치한 알렉산더.그리스 신화의 Chaos@수천년 세계종교 유교.기독교는 만물의 근원.창조주 하느님 중심.하느님 아들 공자님(先聖,聖天子),기독교 하느님 아들 주 예수. 殷왕족 후손 箕子의 기자조선.한국 북부->夏의 해.달.별 숭배와 殷(黃帝,殷왕족 후손은 箕子,공자님)의 上帝숭배를 후발 周 天子에게 허용받은 한국 始原유교시대.箕子후손 기준왕이 건설한 남부 三韓은 한국 始原유교지역.세계사로는 북부지역 漢사군의 유교(孔子사상)정착. 한국 마을제사->후발 周(天子제도)가 허락,선발 殷왕족제사 지속 유형.殷왕족 箕子조선.三韓제사장 주관,제천의식,地神.산천神제사.삼국시대 번창,고려까지 제지않음.조선이 확실한 天子의 제후국되어,허락받지않은 제천의식.산천제사 금지->무속이라 탄압.天子국 아닌 한국. 정교회의 러시아.강대국@성씨없는 머슴型에,수천년 야만족에,부처 Monkey에서 파생된,근대 군사강대국 일본 점쇠(히로히토등,일본 짐승국가의 상징)가,하느님.예수님보다 높고,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 아니라는 주장으로,AI뇌과학 짐승 마법사 도둑질 하는것도 경계要. 세계사 殷왕족 箕子의 기자조선(기준왕때 위만조선에 멸망),위만조선, 위만조선을 정벌한 漢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됨.한국은 기자조선의 始原유교와 세계사의 정설인 漢나라때 동아시아 세계종교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 북부의 漢사군과 별도로,한반도 남부는 殷왕족 기자조선의 후손 기준왕과 후손들이 삼한 설립(마한.진한.변한). 진한과 변한에서 신라,가야가 후발로 건국됨.漢사군의 선진 유교문화 낙랑에서 부여가 건국되고,부여에서 이동한 주몽(고주몽)이 고구려 설립. 고구려 주몽의 후손 온조가 백제건국. 진한.변한의 신라,가야는 기자조선.삼한의 始原유교에서, 선진 유교문화 고구려.백제,중국 본토와 교류하며,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국가로 본격 재정립됨.제자백가,외래신알 불교 유입. @ 불교 Monkey의 채식주의나, 사찰음식 모방하여 살아가는것은 위험함. 유교나 기독교 국가들은 수시로 육지고기 먹어야 합니다. 황하문명의 중국 음식(이탈리아,프랑스등과 각종 요리가 발달)의 특징은 불을 이용하여 튀기고,끓여먹고,구워먹는 맛있는 음식들.유교.기독교 국가들은,하느님의 섭리에 따라서,육식을 자주해야!@불교 Monkey채식주의는,유교.기독교와 맞지 않음.일본은 불교 Monkey(스시로 육지고기 먹지 않는다고 위안삼는것으로 보여짐). 다신교인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최고 하느님이시며, 만물의 근원이시고, 인간을 창조하신(시경:天生蒸民) 하느님(天). 그 하위의 조상신(유교 경전 예기에서 계절을 다스리시는 五帝),地神.산천神 숭배 이어받으신 공자님의 가르침(하느님의 섭리하에 피조물 중 만물의 영장 인간이 추구해야 할 여러 덕목인 仁과 禮, 恕등),그리고 유교의 실천강령중 하나인 삼강오륜. 창조신에 항거한 불교 부처 Monkey는,과거에 코끼리,사슴, 원숭이라고 본생경(Jataka,本生經)이 설명@유교는 다음생,저번생같은 윤회가 없고,사람이 짐승으로 환생하는것 불인정.유교는 하느님(天)이 창조하신 인간이 가장 중요함.죽으면 魂이 하늘로 올라감.악귀는 못올라감.유교나 가톨릭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영장 인간이 가장 중요할뿐, 사람이 동물로 윤회하거나 하는것을 인정치 않습니다. 전생이나 내세도 없습니다. 다만 유교는 사람이 죽으면 혼이 하늘로 승천하고, 현세에서 죄를 지었으면 그에 맞게 악귀로 처우되어, 떠돌게됩니다. 한번뿐인 고귀한 인생, 부처 Monkey의 불교처럼 동물로 인간을 비하하지 말고 열심히 사는게 유교입니다. @ 현재의 중국 국가주석은 종교적으로 유교국가들(중국,한국,베트남,몽고,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의 天子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것. 춘절,청명절,단오절,중추절의 법정 공휴일, 24절기 유네스코 등록@정치적으로는周 文王의 환과고독(鰥寡孤獨)구휼 위한 大同사회목표. 인구밀도가 낮은 시대에 유교,기독교,이슬람교는 매장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인더스문명의 인도는 인구밀도가 높은편이라, 고대부터 브라만교(힌두교로 이어짐),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불교는 화장문화였음. 최근에는 너무 인구밀도가 높아, 종교와 상관없이 유교,기독교,이슬람교도 납골당, 수목장등이 대세임. 유교는 화장하더라도, 집에 영정을 모시는 쪽으로 이어지면됩니다. @ 한국 유교 최고제사장은 고종 후손 황사손(이원)임. 불교 Monkey일본 항복으로, 유교가 국교인 조선성명 복구령. 5.000만 국민이 행정법상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며, 유교 명절,제사,차례,기도 및, 초등학교때의 하느님(애국가)제창,조선 역대왕조 왕명 암기,중학교때는 유교 삼강오륜 배우게 됨. 고교때는 세계사의 고대 세계종교 유교(현재도 이어짐)@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로 설립된 예수회의 서강대는,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이 뒤로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으로 형성된 대학들. [5].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 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6]. 필자의 당부사항. 서강대는 명나라때부터 중국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유교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높고, 서양에 유교와 공자님을 학술적으로 잘 소개해준 귀족계파 예수회산하 대학입니다. 불교 Monkey 일본 강점기를 거치고, 교육.종교.학교.대중언론.공무원 분야등에서, 실무권력을 갖지못한, 성균관과 유림들이었는데, 일본 항복후, 미군정때, 총독부 인원들이 재등용되어, 다시 복구한 국사 성균관(성균관대)자격을 약탈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성균관대에 도전해온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 각종 왜구학교들의 주권없는 약탈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혼란했던 대학, 중.고등학교 문제는, 법적 기준과 주권.자격 기준으로, 중.고교의 경우, 어느정도 대학진학률등이 높아왔던 학교들이, 倭잔재학교보다 우선순위를 가져야 합니다. 자체의 군사력으로, 독립하지 못해서, 왜구 잔재학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시중의 대중언론.사설입시지의 왜곡을 겪으면서,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권력이 아주 강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어떻게 할 수가 앖어, 중학교 무시험전형, 대도시 고교 평준화로 부분적 봉합을 시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법과, 역사, 사실은 아주 중요합니다. 국가주권처럼 성균관(성균관대)의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도 아주 중요합니다. 성균관의 승계 대학 성균관대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복잡한 국제법상의 갈등이 얽혀있습니다. 해방당시 다른 대학들은 이 법적 갈등의 당사자대학들이 아닙니다. 유교의 하느님숭배,조상숭배와 舊신분제 전통을 잘 이해하던 예수회의 귀족계파 서강대는,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 국사 성균관교육이 지속되면서, 양반 성대를 이해하던 대학임.이뒤로 조선성명 복구된 5,000만 한국인 뒤 주권.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불교 Monkey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대학들.@대중언론,사설 입시지, 후발 법령은, 국제법, 한국사(국사 성균관교육. 성균관대 자격), 세계사, 국가주권의 상위법.상위 국제관습법 못이깁니다.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세계사의 교황 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귀족사제 이나시오 사제가 설립한 귀족대학)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으로 보호받습니다. 그리고 성균관대의 자격은, 세계사에서 인정되는 중국의 황하문명, 한자(漢字), 한나라시대의 세계종교 유교, 중국의 태학(이후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 세계4대 발명품(중국의 발명품인데,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으로 가르침. 종이,화약, 나침판, 인쇄술)등과 결부되어, 세계사로 이해해야, 세계인들에 더욱 확실히 접근하기 쉬운 측면이 많기 때문에, 교과서로 가르치는 한국사만큼, 학교교육의 세계사도 중요합니다.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 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275696355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190490049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s://blog.naver.com/macmaca/110185393995

2026년 8월 22일 토요일

유교문화 24절기 처서. 2026년 8월 23일(음력 7월 11일)부터 15일간은 처서(處暑)입니다. 입추무렵까지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한풀 꺾이면서 아침 저녁으로 제법 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는 절기입니다.

유교문화 24절기 처서. 2026년 8월 23일(음력 7월 11일)부터 15일간은 처서(處暑)입니다. 입추무렵까지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한풀 꺾이면서 아침 저녁으로 제법 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는 절기입니다. 처서때는 아직도 지열이 쌓여 한낮의 체감온도는 높고, 밤이 되어야 상공에 형성된 서늘한 공기 탓으로 어느정도 바람도 불게 되는 시기입니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하고,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도 이무렵에 한다고 합니다. [1]. 개략적 서술.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파리·모기의 성화도 사라져가는 무렵입니다. 모기의 성화가 줄어들긴 하지만, 요즘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처서때는 아직도 지열이 쌓여 한낮의 체감온도는 높고, 밤이 되어야 상공에 형성된 서늘한 공기 탓으로 어느정도 바람도 불게 되는 시기입니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하고,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도 이무렵에 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경우 처서 즈음에는 가을나들이,방하등(연꽃등을 강이나 바다에 띄워 보내기),조상제사,풍어제등을 행하는데,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을 쐬며 산책하고, 하느님(天)과 계절의 신이 베푸시는 자연의 질서에 자신을 조절해나가면 되겠습니다. 처서같은 환절기에는 얇은 겉옷도 준비하며 감기 조심해야 합니다. 표준 국어대사전에서는 처서(處暑)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십사절기의 하나. 입추와 백로 사이에 들며, 태양이 황경 150도에 달한 시각으로 양력 8월 23일경이다. [2]. 백과사전류에서 서술하는 처서(處暑).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서술하는 처서(處暑). 처서[ 處暑 ] 정의 24절기의 하나. 내용 입추와 백로 사이에 들며, 음력 7월, 양력 8월 23일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이 150°에 있을 때이다.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라 불렀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한다.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도 이무렵에 하며,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파리·모기의 성화도 사라져가는 무렵이 된다. 또한 백중의 호미씻이[洗鋤宴]도 끝나는 무렵이라 그야말로 ‘어정칠월 건들팔월’로 농촌은 한가한 한때를 맞이하게 된다. 한편,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고 하여 곡식이 흉작을 면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영남·호남·제주 등 여러 지역에서 전하여지고 있다. . 출처: 처서 [處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에서 서술하는 처서(處暑) 처서 [ 處暑 ] 요약 24절기의 하나로 입추와 백로 사이에 드는 절기이다. 이 무렵이 되면 입추 무렵까지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한풀 꺾이면서 아침 저녁으로 제법 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한다. '처서'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드는 절기로, 양력으로는 8월 23일경, 음력으로는 7월 중순에 해당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150˚에 달할 때부터 15°사이에 있을 때이며, 이 무렵이 되면 입추 무렵까지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한풀 꺾이면서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한다. '처서'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 때가 되면 논둑이나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하는데, 처서가 지나면 풀도 더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모기의 극성도 사라지고, 농부들은 여름내 매만지던 쟁기와 호미를 깨끗이 씻어 갈무리한다. 또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는 속담은, 이 때 비가 내리면 흉년이 든다는 뜻에서 생긴 것이다. 즉 여름내 정성들여 가꾼 오곡이 마지막 결실의 때를 맞아 맑은 바람과 따뜻한 햇볕의 기운을 받아 누렇게 익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비가 내리게 되면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않아 1년 농사의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밖에 '어정칠월 건들팔월'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칠월과 팔월이 어정어정 또는 건들건들하는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는 뜻으로, 호미씻이도 끝나고 이제 추수할 일만 남았으므로 이 무렵이 되면 농촌이 한가해진다는 것을 빗대어 이른 말이다. 마땅히 할 일은 안 하고 몹시 엉뚱하고 덤벙대기만 함을 비유한 속담 '어정뜨기는 칠팔월 개구리' 역시 이 때의 한가함에서 비롯된 말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처서 15일간을 5일씩 3후(三候)로 세분하여 ① 매가 새를 잡아 늘어 놓고 ② 천지에 푸나무를 말려 죽이는 쌀쌀한 가을 기운이 돌며 ③ 논에서는 곡식이 익는다고 하였다. . 출처: 처서 [處暑] (두산백과) 3]. 한국 세시풍속사전에서 서술하는 처서(處暑) 처서 [ 處暑 ] 분야계절날짜관련속담관련풍속 절기 가을(음력 7월) 양력 8월 23일경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 처서비(處暑雨) 정의 태양의 황도(黃道)상의 위치로 정한 24절기 중 열네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 처서(處暑)는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들며, 태양이 황경 150도에 달한 시점으로 양력 8월 23일 무렵, 음력 7월 15일 무렵 이후에 든다. 여름이 지나면 더위도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음력 7월을 가리키는 중기(中期)이기도 하다. 내용 흔히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엄연한 순행을 드러내는 때이다. 이러한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고려사(高麗史)』 권50「지(志)」4 역(曆) 선명력(宣明歷) 상(上)에는 “처서의 15일 간을 5일씩 3분하는데, 첫 5일 간인 초후(初侯)에는 매가 새를 잡아 제를 지내고, 둘째 5일 간인 차후(次侯)에는 천지에 가을 기운이 돌며, 셋째 5일간인 말후에는 곡식이 익어간다.”라고 하였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한다. 예전의 부인들과 선비들은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음지(陰地)에 말리는 음건(陰乾)이나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를 이 무렵에 했다.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기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고 한다. 이 속담처럼 처서의 서늘함 때문에 파리, 모기의 극성도 사라져가고, 귀뚜라미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또 이 무렵은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의 호미씻이[洗鋤宴]도 끝나는 시기여서 농사철 중에 비교적 한가한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란 말도 한다.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낸다는 말인데, 다른 때보다 그만큼 한가한 농사철이라는 것을 재미있게 표현한 말이다.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비록 가을의 기운이 왔다고는 하지만 햇살은 여전히 왕성해야 하고 날씨는 쾌청해야 한다. 처서 무렵이면 벼의 이삭이 패는 때이고, 이때 강한 햇살을 받아야만 벼가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한꺼번에 성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 패듯”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처서 무렵의 벼가 얼마나 성장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속담이다. 농사의 풍흉에 대한 농부의 관심은 크기 때문에 처서의 날씨에 대한 관심도 컸고, 이에 따른 농점(農占)도 다양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고 한다.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處暑雨]’라고 하는데, 처서비에 ‘십리에 천석 감한다.’라고 하거나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라고 한다. 처서에 비가 오면 그동안 잘 자라던 곡식도 흉작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맑은 바람과 왕성한 햇살을 받아야만 나락이 입을 벌려 꽃을 올리고 나불거려야 하는데, 비가 내리면 나락에 빗물이 들어가고 결국 제대로 자라지 못해 썩기 때문이다. 이는 처서 무렵의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체득적(體得的)인 삶의 지혜가 반영된 말들이다. 이와 같은 관념은 전국적으로 확인된다. 경남 통영에서는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감하고,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백석을 감한다.’라고 한다. 전북 부안과 청산에서는 ‘처서날 비가 오면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라고 한다. 예부터 부안과 청산은 대추농사로 유명한데, 대추가 맺히기 시작하는 처서를 전후하여 비가 내리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고, 그만큼 혼사를 앞둔 큰 애기들의 혼수장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처서비는 농사에 유익한 것이 못된다. 그러므로 처서비를 몹시 꺼리고 이날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 출처: 처서 [處暑] (한국세시풍속사전) [3]. 성균관.향교의 50만 제사인구는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 주권없는 일본 잔재 불교 Monkey 서울대등이 최근에 다시 어거지쓰고 약탈하려는 주장은 주권.자격이 없음. 저 Monkey들 어거지는 교과서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 아니라는 것임. 일본 강점기 주장을 이어받아, 다시 일본잔재 서울대 출신이 1983년에 통계기법으로 주권없이 조사한 종교인구 표본조사같은걸로, 주권없이 다시 유교 약탈.테러중. 1983년 한국갤럽의 종교인구 조사는 이듬해인 1984년에 공식 발표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 의식 보고서의 기초가 된 조사입니다. 한국갤럽의 설립자이자 당시 조사를 이끌었던 박무익 회장은 서울대학교 출신입니다. 이런 식으로, 5,000만 한국인의 국교인 유교도들의 명절,제사,24절기,유교교육등을 무종교도로 만들고 주권없는 일제 강점기 포교종교 신도수만 내세우고, 10년 단위로 현혹하고 있음. 성균관.향교 제사인구 50만명만 유교인구라고 어거지쓰는것은 패전국에 전범국,UN적국 일본 불교 Monkey들이 사기치는 원숭이 노예합창.통계청 표본조사로 종교인구 조사하는것은, 더 이상 써먹지말고, 이런 조작 중지해야 할것. 애초부터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에 따라 일본 강점기 종교정책은 주권도 없고 인정받을수 없었음. 제헌의회 임시정부 반영에도 어긋나고, 1988년의 현행헌법 前文 임시정부 정통성 승계(한일병합등 모든 불평등 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위배됨. 유교를 국교로 승계받은 줄 알고, 당연히 유교도로 사는 한국인들을 다시 기만하기 시작한것.@세계사 고대 3대종교는 유교,기독교,불교(삭제않되고 유지)@유교는 문화대혁명때 침체,중국이 여러 유교명절 공휴일 지정,24절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음력 새해 명절을 UN 유동적휴일로 건의,채택.기독교(중세이후 크게 번창),불교(브라만교가 강하게 탄압,힌두교 인도).@수천년 한국 유교문화 5대 명절에 현대적 개념 도입한 국가유산청의 5대 명절 지정. 2023년 12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5대 명절을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설(중국은 춘절)과 대보름(중국은 원소절),한식(중국은 청명절),단오,추석,동지@유교는 성당,힌두교 사원,불교(브라만에 항거한죄로,인도에서 천 몇백년 탄압중) 사찰과 달리 무형유산 유교 명절에 전국민 참여. 유교는 왕실(대한제국은 황실)의 종묘대제,성균관.향교의 석전대제, 수천년 전통명절들, 문중별.가족별 제사.차례,기도. 24절기,유교 교육등. @ 한편,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서강대는, 세계사의 교황제도 반영, 국제관습법상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연합국 국가원수들의 포츠담선언(포츠담선언은 미군정의 상위법, 일본관련, 포츠담선언은 카이로선언도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불교 Monkey 일본.*서유럽과는 다르게 한국,대만,아시아,쿠릴열도에 적용되는 포츠담선언의 일본관련 조항들.*일본이 교육기능 폐지시킨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 미군정때 성균관을 복구하는 법률(공자묘 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이 제정되었음. 이때 성균관과 관련없고 일본 동경대를 졸업한 교육관련 담당자와 주변인들이,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폐지)시켜야 할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하면서, 서울대를 성균관 앞에 놓는 방법으로 성균관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하였음. 미군정에서 교육정책 입안자로 등용되니까, 하위법인 미군정령을 이용해,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의 취지(일본의 주권은 한국에 없고, 경성제국대는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할 일제잔재임)에 어긋나는 교육정책을 만들었던것. 그러나 상위법 우선의 원칙을 따라야 함. 카이로선언은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축출)될것"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또한, 미군정은, 교육분야 아닌 타분야에서 연합국의 적국인 일본의 재산을 적산재산으로 하여, 일본이 카이로선언의 연합국 적국이라는 시각을 따르고 있었음. 미군정기에는 유교국가인 조선.대한제국의 한문성명.본관을 등록하는 조선성명 복구령도 시행되었음. 교육분야에서, 미군정기의 과도기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될 경성제대 활용(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의 정제되지 않은 정책에, 위기를 느낀, 전국 유림들이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유림이면서 임시정부 요인출신 김창숙 선생)를 개최하여, 성균관대를 설립(성균관의 교육기능 승계형태임)하기로 하였음. 새로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성균관장이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하고, 성균관대 학장.성균관장을 겸임하였음.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성균관대가 대학기능을 승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것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며, 고구려 태학이후 한국 최고대학 계보 성균관이었음. 태학(고구려),국자감(고려),고려말 성균관,조선.대한제국 성균관. 일본 강점기때 교육기능 중단 및 왜곡*일본이 항복하여, 미군정부터는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가, 대학교육 역할을 담당하여, 한국 최고 대학 계보임.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미군정때, 국사 성균관 교육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에도, 계속 국사 성균관교육을 실시. 국사교육을 중요시하여, 정부의 각종 고시, 공무원시험등에 국사 채택. *국사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라는건 성균관대, 성균관, 여러 백과사전 공통된 견해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4090602113 [4]. 인류는 만물의 근원.창조주 하느님(乾,天)의 섭리하에,만물의 영장으로 창조된,인간의 도리를 가르치신,근본적 하느님 아들 유교 공자님(先聖,聖天子)과,기독교세계 하느님의 독생자 주 예수를 떠나살수 없음.짐승같은 불교 부처Monkey는 창조신에 도전하는 나약한 원숭이! 인류조상 베이징원인.夏의 해.달.별 숭배,殷(商)의 上帝숭배,이전 신앙 흡수하여 유교 경전에 정형화된 周나라의 天(하느님,만물의 근원 乾,天.시경 天生蒸民으로 인격天 제도화)숭배와 天子제도.漢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天子제도 승계,공자숭배. 夏의 해.달.별 숭배, 문자를 발명한 殷(商나라)의 上帝숭배, 이전 신앙을 흡수.통합하여 유교 경전에 정형화된 周나라의 天(하느님, 하늘. 시경 天生蒸民으로 인격天의 개념이 제도화)숭배와 天子제도는, 하늘로 승천하여 계절을 다스리시는 오제(五帝. 태호,염제,황제,소호,전욱으로 창조주.최고신 天다음의 계절의 神이시며, 인격神의 시조)를 숭배하며, 요.순.우.탕.문.무의 先聖 가르침을 경전에 기록함. 주나라의 혼란기인 춘추전국시대에는 殷왕족의 후손이시며, 周나라 대부의 아들로 태어나신 공자님께서 제자백가의 여러 사상중 하나로 유가의 시조가 되심. 선성과 어진 섭정 주공의 행적을 존경하신 공자님. 공자님의 가르침은 하느님(天, 하늘)의 섭리하에, 조상신.지신.산천신 숭배를 이어가면서, 인간의 도리를 하기 위해, 학습을 하면서, 仁이나 禮, 恕등으로, 세상을 교화하시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공자님은 殷나라 왕족의 후손이신데, 당시에는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나, 선생 칭호의 子를 붙여 공자(공선생님)로 불리시다가, 후세에, 선성(先聖, 先聖王으로 聖天子를 의미)으로 추존되어, 역대 중국 천자들과 사람들이 제사하는 聖人이 되셨습니다. @ 漢나라때 漢의 국교며, 동아시아 세계종교(중국,한국,베트남, 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 현대의 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에 걸쳐 십수억명 유교도)로 성립되어, 수천년 이어진 세계종교 유교. 학생때 세계사영역,중국의 제자백가. 유가,법가,도가(한국은 신선사상,풍류도),묵가. 漢나라때 유교(儒家)가 국교가 되어 수천년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의 세계종교@인도발 외래신앙 불가(불교)는 일본 불교Monkey와 주권없는 경성제대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일본잔재 대만대가 대중언론.방송.SNS,뇌과학으로 어지럽혀도 제자백가 밑!@국가 최고 의례는 왕실의 조상제사인 종묘대제,토지와 곡식의 신에 제사하는 사직대제,先聖이신 공자님에 제사하는 석전대제.유교문화에서 인정되지 않는 인도발 오랑캐 도적의 짐승신앙 불교나, 힌두교 및 다른 종교 인정하기 어려움.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다시 인도가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천민으로 핍박하는 불교.@패전국.UN적국 일본 불교Monkey들이 근대에 한국.대만지역 합쳐 내세운 불교.건축물.유물로,유럽공략 걱정됨@원숭이.코끼리.사슴에서 환생한 부처 Monkey의 윤회론도 끔찍.유교문화권에서 제자백가뒤 오랑캐 도적,짐승으로 견제받던 인도발 외래불교일뿐. 중국.로마는 주변국가들을 야만족이라고 불러옴.역사적 사실@야만족에 군사력으로 정복당해도,종교와 대학.문화로 지배 분담@유교문화권은 인도발 불교를 오랑캐 도적,사람아닌 짐승(無君無父의 禽獸)으로 분류.하느님도 모르고,윤회론의 원숭이-> 불교 부처 Monkey는 不變 인도의 불가촉 천민,조선의 천민 승려 불교.불교는 부처Monkey가 인도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 천민으로, 다시 탄압받고 있음. 원숭이.코끼리.사슴에서 환생한 부처 Monkey의 윤회사상도 가미한 짐승신앙임.건축물 중시 유산은 종교의 본질과 큰 관계없음.경전,교리,역사적 전통,제도,그 제사장,신도수,해당국들에서의 국교로서의 전통등이 중요. 동아시아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한국은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삼한을 통하여,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로 확실히 정착, 하느님.조상신을 숭배하며,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신 공자님울 聖天子(先聖)으로 제사하는 나라. 그러다보면 유교 근본주의로 해석해서, 사후 비판 할 수도 있을법도 함. 삼국시대, 신라멸망후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패전국 일본 불교 Monkey항복후의, 유교복구와 일본 잔재등 아주 복잡함. 유교경전은 후세 정치적용어 皇帝없음.만물의 근원.창조신(乾,天) 하느님 다음,유교 경전 예기의 五帝(계절신,조상신,인격신)의 으뜸신 黃帝(殷왕족 후손 공자님의 조상神)는 均天의 인격神.공자님은 후세 天子들이 제사하는 聖天子(先聖).주권있어도 한국은 종교 天子국 아님 기독교세계는 하느님의 독생자 주 예수.주 예수의 종 교황,스페인왕.영국왕등 기독교 국왕들로 이해.유교문화권 중국,한국이 후세의 정치용어 皇帝에 의거,敎皇(교화 황제)으로 번역한 Pope.유교국 정치지도자들이 皇帝라는 용어사용 시도했어도 天子는 단 한분 종교지도자. 서로마.동로마는 중국殷,周,제자백가,漢처럼 중요@헬레니즘.헤브라이즘@이집트,그리스,서아시아,인도북부 통치한 알렉산더.그리스 신화의 Chaos@수천년 세계종교 유교.기독교는 만물의 근원.창조주 하느님 중심.하느님 아들 공자님(先聖,聖天子),기독교 하느님 아들 주 예수. 殷왕족 후손 箕子의 기자조선.한국 북부->夏의 해.달.별 숭배와 殷(黃帝,殷왕족 후손은 箕子,공자님)의 上帝숭배를 후발 周 天子에게 허용받은 한국 始原유교시대.箕子후손 기준왕이 건설한 남부 三韓은 한국 始原유교지역.세계사로는 북부지역 漢사군의 유교(孔子사상)정착. 한국 마을제사->후발 周(天子제도)가 허락,선발 殷왕족제사 지속 유형.殷왕족 箕子조선.三韓제사장 주관,제천의식,地神.산천神제사.삼국시대 번창,고려까지 제지않음.조선이 확실한 天子의 제후국되어,허락받지않은 제천의식.산천제사 금지->무속이라 탄압.天子국 아닌 한국. 정교회의 러시아.강대국@성씨없는 머슴型에,수천년 야만족에,부처 Monkey에서 파생된,근대 군사강대국 일본 점쇠(히로히토등,일본 짐승국가의 상징)가,하느님.예수님보다 높고,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 아니라는 주장으로,AI뇌과학 짐승 마법사 도둑질 하는것도 경계要. 세계사 殷왕족 箕子의 기자조선(기준왕때 위만조선에 멸망),위만조선, 위만조선을 정벌한 漢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됨.한국은 기자조선의 始原유교와 세계사의 정설인 漢나라때 동아시아 세계종교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 북부의 漢사군과 별도로,한반도 남부는 殷왕족 기자조선의 후손 기준왕과 후손들이 삼한 설립(마한.진한.변한). 진한과 변한에서 신라,가야가 후발로 건국됨.漢사군의 선진 유교문화 낙랑에서 부여가 건국되고,부여에서 이동한 주몽(고주몽)이 고구려 설립. 고구려 주몽의 후손 온조가 백제건국. 진한.변한의 신라,가야는 기자조선.삼한의 始原유교에서, 선진 유교문화 고구려.백제,중국 본토와 교류하며,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국가로 본격 재정립됨.제자백가,외래신알 불교 유입. @ 불교 Monkey의 채식주의나, 사찰음식 모방하여 살아가는것은 위험함. 유교나 기독교 국가들은 수시로 육지고기 먹어야 합니다. 황하문명의 중국 음식(이탈리아,프랑스등과 각종 요리가 발달)의 특징은 불을 이용하여 튀기고,끓여먹고,구워먹는 맛있는 음식들.유교.기독교 국가들은,하느님의 섭리에 따라서,육식을 자주해야!@불교 Monkey채식주의는,유교.기독교와 맞지 않음.일본은 불교 Monkey(스시로 육지고기 먹지 않는다고 위안삼는것으로 보여짐). 다신교인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최고 하느님이시며, 만물의 근원이시고, 인간을 창조하신(시경:天生蒸民) 하느님(天). 그 하위의 조상신(유교 경전 예기에서 계절을 다스리시는 五帝),地神.산천神 숭배 이어받으신 공자님의 가르침(하느님의 섭리하에 피조물 중 만물의 영장 인간이 추구해야 할 여러 덕목인 仁과 禮, 恕등),그리고 유교의 실천강령중 하나인 삼강오륜. 창조신에 항거한 불교 부처 Monkey는,과거에 코끼리,사슴, 원숭이라고 본생경(Jataka,本生經)이 설명@유교는 다음생,저번생같은 윤회가 없고,사람이 짐승으로 환생하는것 불인정.유교는 하느님(天)이 창조하신 인간이 가장 중요함.죽으면 魂이 하늘로 올라감.악귀는 못올라감.유교나 가톨릭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영장 인간이 가장 중요할뿐, 사람이 동물로 윤회하거나 하는것을 인정치 않습니다. 전생이나 내세도 없습니다. 다만 유교는 사람이 죽으면 혼이 하늘로 승천하고, 현세에서 죄를 지었으면 그에 맞게 악귀로 처우되어, 떠돌게됩니다. 한번뿐인 고귀한 인생, 부처 Monkey의 불교처럼 동물로 인간을 비하하지 말고 열심히 사는게 유교입니다. @ 현재의 중국 국가주석은 종교적으로 유교국가들(중국,한국,베트남,몽고,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의 天子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것. 춘절,청명절,단오절,중추절의 법정 공휴일, 24절기 유네스코 등록@정치적으로는周 文王의 환과고독(鰥寡孤獨)구휼 위한 大同사회목표. 인구밀도가 낮은 시대에 유교,기독교,이슬람교는 매장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인더스문명의 인도는 인구밀도가 높은편이라, 고대부터 브라만교(힌두교로 이어짐),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불교는 화장문화였음. 최근에는 너무 인구밀도가 높아, 종교와 상관없이 유교,기독교,이슬람교도 납골당, 수목장등이 대세임. 유교는 화장하더라도, 집에 영정을 모시는 쪽으로 이어지면됩니다. @ 한국 유교 최고제사장은 고종 후손 황사손(이원)임. 불교 Monkey일본 항복으로, 유교가 국교인 조선성명 복구령. 5.000만 국민이 행정법상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며, 유교 명절,제사,차례,기도 및, 초등학교때의 하느님(애국가)제창,조선 역대왕조 왕명 암기,중학교때는 유교 삼강오륜 배우게 됨. 고교때는 세계사의 고대 세계종교 유교(현재도 이어짐)@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로 설립된 예수회의 서강대는,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이 뒤로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으로 형성된 대학들. [5]. 베이징관광국 자료에 나타나는 처서(處暑) 가을이 오는 절기 "처서" 2018-08-20 "처서"는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드는 절기로, 양력으로는 8월 23일경, 음력으로는 7월 중순에 해당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150˚에 달할 때부터 15°사이에 있을 때이며, 이 무렵이 되면 입추 무렵까지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한풀 꺾이면서 아침 저녁으로 제법 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한다. '처서'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마지막 복날이 끝남으로써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고개를 내밀었다. "처서(处暑)"는 바로 여름이 끝나는 절기다. "처서"의 "처(处)"는 "숨다" 혹은 "끝난다"는 의미가 있어 말그대로 여름이 끝나는 절기이다. 여름이 마침표를 찍고 가을이 고개를 내미는 지금, 가을옷을 꺼내 옷장정리를 할 때가 왔다. 하지만 가을은 고개만 살짝 내밀었을 뿐 여름이 아직 버티고 있으니 점심시간 이후의 무더위는 좀 더 견디셔야 할 듯 하다.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해 밤낮 기온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니 얇은 겉옷 준비하시길, 환절기에는 감기조심해야 한다. 가을 나들이 처서 후에는 중국의 전통명절인 중원절이 있다. 민간에서는 중원절을 ‘구이제(鬼节)’, ‘치웨반(七月半)’ 등으로도 부른다. 이날은 세상을 먼저 떠난 혼을 위로하기 위해 조상에게 제사를 지니는 풍습이 있다. 또한 ,처서 후에는 가을이 점점 다가오고 무더위도 한풀 꺾이며 밖에서 나가 소풍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중국 민간에서는 ‘칠월팔월에 구름이 있는 하늘 본다’는 말이 있으며 이는 가을에 나들이하는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오리로 몸보신 중국 민간에서는 처서 무렵에 오리를 먹는 풍습이 전해졌다. 오리가 몸에 좋다하고 더불어 레몬, 연잎,호두 등와 같이 먹으면 맛도 좋고 건강에 유리하다. 베이징 사람들이 현재까지도 처서 날에 오리를 사먹는 습관이 갖고 있기에 처서 전후에 오리 전문집에 가서 오리구이나 연잎오리 등을 산다. 오리는 식욕을 촉진하고 비장의 기능을 건강하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음과 위를 자양하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부중을 없앤다는 효능도 있다. 용안과 죽을 같이 먹는다 중국 푸저우 사람들이 처서 무렵에 용안과 죽을 같이 먹는 풍습이 있다. 이는 여름이 더워 체력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용안은 몸보신 음식으로 체력 회복에 좋다. 방하등(放河灯) ‘하등’은 연꽃등이고 중국 음력 7월 귀월에는 증에 불을 붙여 강이나 바다로 띄워 보낸다. 등을 띄우는 이유는 떠도는 혼령을 위로하고, 등불의 인도를 받은 혼령들이 무사히 뭍에 올라 차려진 음식을 배불리 먹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약차(药茶)를 끓여 마신다 약차(药茶)를 끓여 마신다는 풍습이 중국 당나라 시기에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때 처서 무렵에 집집마다 차를 끓여 식힌 후에 마셔 이는 신장의 정기와 기능을 보하고 이뇨작용이 있다고 한다. 또, 1960,1970년대 중국에서 처서 시기에 오매탕을 먹는 풍속이 있다는 기재가 있다.이 시기에 중국 사람들이 보통 은이버섯,백합,꿀,시금치,참깨 등 청열해서 음식을 먹는다. 풍어제(开渔节) 풍어제는 바다를 낀 해안지방에서 마을의 평안과 고기를 많이 잡기를 기원하는 제사이다. 매년 처서 시기에 중국 절강성 해안지방에서 풍어제를 열리고 사고를 막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한다. [6].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7]. 필자의 당부사항. 서강대는 명나라때부터 중국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유교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높고, 서양에 유교와 공자님을 학술적으로 잘 소개해준 귀족계파 예수회산하 대학입니다. 불교 Monkey 일본 강점기를 거치고, 교육.종교.학교.대중언론.공무원 분야등에서, 실무권력을 갖지못한, 성균관과 유림들이었는데, 일본 항복후, 미군정때, 총독부 인원들이 재등용되어, 다시 복구한 국사 성균관(성균관대)자격을 약탈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성균관대에 도전해온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 각종 왜구학교들의 주권없는 약탈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혼란했던 대학, 중.고등학교 문제는, 법적 기준과 주권.자격 기준으로, 중.고교의 경우, 어느정도 대학진학률등이 높아왔던 학교들이, 倭잔재학교보다 우선순위를 가져야 합니다. 자체의 군사력으로, 독립하지 못해서, 왜구 잔재학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시중의 대중언론.사설입시지의 왜곡을 겪으면서,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권력이 아주 강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어떻게 할 수가 앖어, 중학교 무시험전형, 대도시 고교 평준화로 부분적 봉합을 시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법과, 역사, 사실은 아주 중요합니다. 국가주권처럼 성균관(성균관대)의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도 아주 중요합니다. 성균관의 승계 대학 성균관대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복잡한 국제법상의 갈등이 얽혀있습니다. 해방당시 다른 대학들은 이 법적 갈등의 당사자대학들이 아닙니다. 유교의 하느님숭배,조상숭배와 舊신분제 전통을 잘 이해하던 예수회의 귀족계파 서강대는,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 국사 성균관교육이 지속되면서, 양반 성대를 이해하던 대학임.이뒤로 조선성명 복구된 5,000만 한국인 뒤 주권.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불교 Monkey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대학들.@대중언론,사설 입시지, 후발 법령은, 국제법, 한국사(국사 성균관교육. 성균관대 자격), 세계사, 국가주권의 상위법.상위 국제관습법 못이깁니다.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세계사의 교황 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귀족사제 이나시오 사제가 설립한 귀족대학)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으로 보호받습니다. 그리고 성균관대의 자격은, 세계사에서 인정되는 중국의 황하문명, 한자(漢字), 한나라시대의 세계종교 유교, 중국의 태학(이후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 세계4대 발명품(중국의 발명품인데,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으로 가르침. 종이,화약, 나침판, 인쇄술)등과 결부되어, 세계사로 이해해야, 세계인들에 더욱 확실히 접근하기 쉬운 측면이 많기 때문에, 교과서로 가르치는 한국사만큼, 학교교육의 세계사도 중요합니다.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 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275696355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190490049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s://blog.naver.com/macmaca/11018539399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