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6일 목요일
2026년 올해 한반도를 덮친 폭염은 대한민국 기상관측 122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역대 최악의 무더위입니다. 지난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이어진 폭염으로 경남 양산의 낮 기온이 42.5도까지 치솟으며, 1904년 근대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국내 최고 기온 기록을 사흘 연속 새로 썼습니다. 이렇게 지열이 쌓이면, 당분간은 무더울것입니다.
2026년 올해 한반도를 덮친 폭염은 대한민국 기상관측 122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역대 최악의 무더위입니다. 지난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이어진 폭염으로 경남 양산의 낮 기온이 42.5도까지 치솟으며, 1904년 근대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국내 최고 기온 기록을 사흘 연속 새로 썼습니다. 이렇게 지열이 쌓이면, 당분간은 무더울것입니다.2026년 8월 7일(음력 6월 25일)부터 15일간은 입추(立秋)절기입니다. 그 동안의 과정으로는, 지열(地熱)때문에 낮에는 폭염날씨도 보이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입추 전후에는 가끔 비가 내리고, 점차적으로, 밤이되면 서늘한 바람이 불게 됩니다. 가끔 비가오고 대기 상공에서 찬 기운이 형성되면 밤에는 서늘한 바람도 불어, 가을로 접어드는 절기입니다.
입추무렵의 풍속으로는 기청제[祈晴祭: 고려ㆍ조선 시대에, 입추(立秋)가 지나도록 장마가 계속될 때에 나라에서 날이 개기를 빌던 제사. 출처는 표준 국어대사전임]가 있습니다.
[1]. 입추(立秋)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
1].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나타나는 입추(立秋).
예기(禮記)의 월령(月令)은 입추에 천자가 하는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立秋之日(입추지일) 天子親帥三公九卿諸侯大夫(천자친솔삼공구경제후대부) 以迎秋於西郊(이영추어서교)
입추인날에 천자가 친히 삼공.구경.제후.대부들을 거느리고 서교에서 가을을 맞이한다(가을의 帝인 少皥와 가을의 보좌신인 蓐收를 제사지낸다).
. 필자 주 1). 이 때 위 문장에서 天子親帥의 帥은 천자가 친히 3공.9경.제후.대부를 거느리고로 해석하려면 솔로 발음해야 맞겠다고 판단합니다.
. 필자 주 2). 유교 경전에서의 천자라 하면 수천년동안 중국 천자가 가장 일반적이며 세계적입니다. 한국같은 경우 자주적인 표현으로 중국 천자가 쓰던 천자라는 일반적 칭호보다 海東天子로 지역을 좁혀 표시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 입추(立秋) 절기때는 유교에서 최고신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 다음의 하위신으로, 오제([五帝, 다신교 전통의 유교에서 조상신 계열로 승천하여 최고신 하느님(天, 창조신이시며 만물을 주재하시며, 인간을 창조하신]하느님 다음의 하위신이 되심]중의 한분이신, 가을의 신[추(秋)의 제(帝)], 소호(少皥)께서 다스리는 절기입니다.
2]. 입추무렵의 기청제(祈晴祭).
입추무렵의 풍속으로는 기청제[祈晴祭: 고려ㆍ조선 시대에, 입추(立秋)가 지나도록 장마가 계속될 때에 나라에서 날이 개기를 빌던 제사. 출처는 표준 국어대사전임]가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입추(立秋)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십사절기의 하나.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들며, 이때부터 가을이 시작된다고 한다. 양력으로는 8월 8일이나 9일경이다.
3]. 입추(立秋)때는 지열(地熱)때문에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 그런데, 밤이되면 이슬이 내리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시기가 입추임.
지열(地熱)때문에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입추전후에 가끔 비가 오고 밤이되면 서늘한 바람이 부는 시기입니다. 말복까지는 사계절 중 가장 높이 뜬 태양의 태양열을 받아 지열이 쌓이고 쌓여 낮의 폭염이 만만치 않지만(양력 8월말까지는 낮동안에는 상당히 더운 날씨), 밤과 다음날 아침까지의 시간에는 아! 이게 밤에 이슬이 내린다는 입추(入秋)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날씨의 전환기입니다. 두산백과에 의하면 " 동양의 역(曆)에서는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로 친다"고 합니다.
양력(陽歷. 사전적정의로 太陽歷으로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1년으로 정한 역법)으로는 아직 여름이기 때문에 낮에는 뜨거운 햇볕이 곡식과 과일에 내리쬐어 결실을 맺게 해주면서, 야간에는 이슬이 내리는 계절의 전환기이기도 합니다.
立秋는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있으며 이 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음력(陰歷. 사전적 정의로 太陰歷으로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을 쇠는 유교문화권에서는 가을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태양을 기준으로하는 제천의식의 하나인 단오등이 있어서 태음태양력을 병행하고 있는 문화입니다.
유교의 오경(五經) 사서(四書) 중 하나인 五經 예기(禮記)의 월령(月令)편에서는 입추가 낀 달을 孟秋之月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맹추지월은 가을의 첫달이라는 의미로 초가을인 7월을 의미합니다. 가을을 다스리는 帝는 소호(少皥)입니다. 예기 월령은 其帝少皥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를 보좌하는 신은 욕수라고 합니다. 예기 월령은 其神蓐收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필자 주 3). 가을을 다스리는 帝는 소호(少皥)인데, 여기서의 帝의 의미는 황제나 임금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유교 경전에서 쓰이는 帝로 五帝의 帝나,하늘의 아들인 天子로 인간을 다스리다가 승천하여 하늘天의 일부가 되어 하늘天(太極과 연계되신 하늘天)의 다스림 중 일부를 이양받은 天의 일부가 된 天子로 볼수 있습니다. 태고적에 天子로 살다가 초월적 하늘天과 天人合一된 上帝.하느님(太極과 연계된 하늘天에 天人合一된 하느님)의 의미로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2]. 성균관.향교의 50만 제사인구는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 주권없는 일본 잔재 불교 Monkey 서울대등이 최근에 다시 어거지쓰고 약탈하려는 주장은 주권.자격이 없음. 저 Monkey들 어거지는 교과서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 아니라는 것임. 일본 강점기 주장을 이어받아, 다시 일본잔재 서울대 출신이 1983년에 통계기법으로 주권없이 조사한 종교인구 표본조사같은걸로, 주권없이 다시 유교 약탈.테러중. 1983년 한국갤럽의 종교인구 조사는 이듬해인 1984년에 공식 발표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 의식 보고서의 기초가 된 조사입니다. 한국갤럽의 설립자이자 당시 조사를 이끌었던 박무익 회장은 서울대학교 출신입니다. 이런 식으로, 5,000만 한국인의 국교인 유교도들의 명절,제사,24절기,유교교육등을 무종교도로 만들고 주권없는 일제 강점기 포교종교 신도수만 내세우고, 10년 단위로 현혹하고 있음. 성균관.향교 제사인구 50만명만 유교인구라고 어거지쓰는것은 패전국에 전범국,UN적국 일본 불교 Monkey들이 사기치는 원숭이 노예합창.통계청 표본조사로 종교인구 조사하는것은, 더 이상 써먹지말고, 이런 조작 중지해야 할것. 애초부터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에 따라 일본 강점기 종교정책은 주권도 없고 인정받을수 없었음. 제헌의회 임시정부 반영에도 어긋나고, 1988년의 현행헌법 前文 임시정부 정통성 승계(한일병합등 모든 불평등 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위배됨. 유교를 국교로 승계받은 줄 알고, 당연히 유교도로 사는 한국인들을 다시 기만하기 시작한것.@세계사 고대 3대종교는 유교,기독교,불교(삭제않되고 유지)@유교는 문화대혁명때 침체,중국이 여러 유교명절 공휴일 지정,24절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음력 새해 명절을 UN 유동적휴일로 건의,채택.기독교(중세이후 크게 번창),불교(브라만교가 강하게 탄압,힌두교 인도).@수천년 한국 유교문화 5대 명절에 현대적 개념 도입한 국가유산청의 5대 명절 지정. 2023년 12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5대 명절을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설(중국은 춘절)과 대보름(중국은 원소절),한식(중국은 청명절),단오,추석,동지@유교는 성당,힌두교 사원,불교(브라만에 항거한죄로,인도에서 천 몇백년 탄압중) 사찰과 달리 무형유산 유교 명절에 전국민 참여. 유교는 왕실(대한제국은 황실)의 종묘대제,성균관.향교의 석전대제, 수천년 전통명절들, 문중별.가족별 제사.차례,기도. 24절기,유교 교육등.
@ 한편,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서강대는, 세계사의 교황제도 반영, 국제관습법상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연합국 국가원수들의 포츠담선언(포츠담선언은 미군정의 상위법, 일본관련, 포츠담선언은 카이로선언도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불교 Monkey 일본.*서유럽과는 다르게 한국,대만,아시아,쿠릴열도에 적용되는 포츠담선언의 일본관련 조항들.*일본이 교육기능 폐지시킨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 미군정때 성균관을 복구하는 법률(공자묘 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이 제정되었음. 이때 성균관과 관련없고 일본 동경대를 졸업한 교육관련 담당자와 주변인들이,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폐지)시켜야 할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하면서, 서울대를 성균관 앞에 놓는 방법으로 성균관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하였음. 미군정에서 교육정책 입안자로 등용되니까, 하위법인 미군정령을 이용해,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의 취지(일본의 주권은 한국에 없고, 경성제국대는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할 일제잔재임)에 어긋나는 교육정책을 만들었던것. 그러나 상위법 우선의 원칙을 따라야 함. 카이로선언은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축출)될것"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또한, 미군정은, 교육분야 아닌 타분야에서 연합국의 적국인 일본의 재산을 적산재산으로 하여, 일본이 카이로선언의 연합국 적국이라는 시각을 따르고 있었음. 미군정기에는 유교국가인 조선.대한제국의 한문성명.본관을 등록하는 조선성명 복구령도 시행되었음. 교육분야에서, 미군정기의 과도기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될 경성제대 활용(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의 정제되지 않은 정책에, 위기를 느낀, 전국 유림들이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유림이면서 임시정부 요인출신 김창숙 선생)를 개최하여, 성균관대를 설립(성균관의 교육기능 승계형태임)하기로 하였음. 새로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성균관장이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하고, 성균관대 학장.성균관장을 겸임하였음.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성균관대가 대학기능을 승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것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며, 고구려 태학이후 한국 최고대학 계보 성균관이었음. 태학(고구려),국자감(고려),고려말 성균관,조선.대한제국 성균관. 일본 강점기때 교육기능 중단 및 왜곡*일본이 항복하여, 미군정부터는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가, 대학교육 역할을 담당하여, 한국 최고 대학 계보임.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미군정때, 국사 성균관 교육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에도, 계속 국사 성균관교육을 실시. 국사교육을 중요시하여, 정부의 각종 고시, 공무원시험등에 국사 채택. *국사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라는건 성균관대, 성균관, 여러 백과사전 공통된 견해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4090602113
[3]. 인류는 만물의 근원.창조주 하느님(乾,天)의 섭리하에,만물의 영장으로 창조된,인간의 도리를 가르치신,근본적 하느님 아들 유교 공자님(先聖,聖天子)과,기독교세계 하느님의 독생자 주 예수를 떠나살수 없음.짐승같은 불교 부처Monkey는 창조신에 도전하는 나약한 원숭이!
인류조상 베이징원인.夏의 해.달.별 숭배,殷(商)의 上帝숭배,이전 신앙 흡수하여 유교 경전에 정형화된 周나라의 天(하느님,만물의 근원 乾,天.시경 天生蒸民으로 인격天 제도화)숭배와 天子제도.漢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天子제도 승계,공자숭배.
夏의 해.달.별 숭배, 문자를 발명한 殷(商나라)의 上帝숭배, 이전 신앙을 흡수.통합하여 유교 경전에 정형화된 周나라의 天(하느님, 하늘. 시경 天生蒸民으로 인격天의 개념이 제도화)숭배와 天子제도는, 하늘로 승천하여 계절을 다스리시는 오제(五帝. 태호,염제,황제,소호,전욱으로 창조주.최고신 天다음의 계절의 神이시며, 인격神의 시조)를 숭배하며, 요.순.우.탕.문.무의 先聖 가르침을 경전에 기록함. 주나라의 혼란기인 춘추전국시대에는 殷왕족의 후손이시며, 周나라 대부의 아들로 태어나신 공자님께서 제자백가의 여러 사상중 하나로 유가의 시조가 되심. 선성과 어진 섭정 주공의 행적을 존경하신 공자님. 공자님의 가르침은 하느님(天, 하늘)의 섭리하에, 조상신.지신.산천신 숭배를 이어가면서, 인간의 도리를 하기 위해, 학습을 하면서, 仁이나 禮, 恕등으로, 세상을 교화하시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공자님은 殷나라 왕족의 후손이신데, 당시에는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나, 선생 칭호의 子를 붙여 공자(공선생님)로 불리시다가, 후세에, 선성(先聖, 先聖王으로 聖天子를 의미)으로 추존되어, 역대 중국 천자들과 사람들이 제사하는 聖人이 되셨습니다. @ 漢나라때 漢의 국교며, 동아시아 세계종교(중국,한국,베트남, 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 현대의 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에 걸쳐 십수억명 유교도)로 성립되어, 수천년 이어진 세계종교 유교.
학생때 세계사영역,중국의 제자백가. 유가,법가,도가(한국은 신선사상,풍류도),묵가. 漢나라때 유교(儒家)가 국교가 되어 수천년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의 세계종교@인도발 외래신앙 불가(불교)는 일본 불교Monkey와 주권없는 경성제대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일본잔재 대만대가 대중언론.방송.SNS,뇌과학으로 어지럽혀도 제자백가 밑!@국가 최고 의례는 왕실의 조상제사인 종묘대제,토지와 곡식의 신에 제사하는 사직대제,先聖이신 공자님에 제사하는 석전대제.유교문화에서 인정되지 않는 인도발 오랑캐 도적의 짐승신앙 불교나, 힌두교 및 다른 종교 인정하기 어려움.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다시 인도가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천민으로 핍박하는 불교.@패전국.UN적국 일본 불교Monkey들이 근대에 한국.대만지역 합쳐 내세운 불교.건축물.유물로,유럽공략 걱정됨@원숭이.코끼리.사슴에서 환생한 부처 Monkey의 윤회론도 끔찍.유교문화권에서 제자백가뒤 오랑캐 도적,짐승으로 견제받던 인도발 외래불교일뿐.
중국.로마는 주변국가들을 야만족이라고 불러옴.역사적 사실@야만족에 군사력으로 정복당해도,종교와 대학.문화로 지배 분담@유교문화권은 인도발 불교를 오랑캐 도적,사람아닌 짐승(無君無父의 禽獸)으로 분류.하느님도 모르고,윤회론의 원숭이-> 불교 부처 Monkey는 不變
인도의 불가촉 천민,조선의 천민 승려 불교.불교는 부처Monkey가 인도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 천민으로, 다시 탄압받고 있음. 원숭이.코끼리.사슴에서 환생한 부처 Monkey의 윤회사상도 가미한 짐승신앙임.건축물 중시 유산은 종교의 본질과 큰 관계없음.경전,교리,역사적 전통,제도,그 제사장,신도수,해당국들에서의 국교로서의 전통등이 중요.
동아시아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한국은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삼한을 통하여,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로 확실히 정착, 하느님.조상신을 숭배하며,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신 공자님울 聖天子(先聖)으로 제사하는 나라. 그러다보면 유교 근본주의로 해석해서, 사후 비판 할 수도 있을법도 함. 삼국시대, 신라멸망후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패전국 일본 불교 Monkey항복후의, 유교복구와 일본 잔재등 아주 복잡함.
유교경전은 후세 정치적용어 皇帝없음.만물의 근원.창조신(乾,天) 하느님 다음,유교 경전 예기의 五帝(계절신,조상신,인격신)의 으뜸신 黃帝(殷왕족 후손 공자님의 조상神)는 均天의 인격神.공자님은 후세 天子들이 제사하는 聖天子(先聖).주권있어도 한국은 종교 天子국 아님
기독교세계는 하느님의 독생자 주 예수.주 예수의 종 교황,스페인왕.영국왕등 기독교 국왕들로 이해.유교문화권 중국,한국이 후세의 정치용어 皇帝에 의거,敎皇(교화 황제)으로 번역한 Pope.유교국 정치지도자들이 皇帝라는 용어사용 시도했어도 天子는 단 한분 종교지도자.
서로마.동로마는 중국殷,周,제자백가,漢처럼 중요@헬레니즘.헤브라이즘@이집트,그리스,서아시아,인도북부 통치한 알렉산더.그리스 신화의 Chaos@수천년 세계종교 유교.기독교는 만물의 근원.창조주 하느님 중심.하느님 아들 공자님(先聖,聖天子),기독교 하느님 아들 주 예수.
殷왕족 후손 箕子의 기자조선.한국 북부->夏의 해.달.별 숭배와 殷(黃帝,殷왕족 후손은 箕子,공자님)의 上帝숭배를 후발 周 天子에게 허용받은 한국 始原유교시대.箕子후손 기준왕이 건설한 남부 三韓은 한국 始原유교지역.세계사로는 북부지역 漢사군의 유교(孔子사상)정착.
한국 마을제사->후발 周(天子제도)가 허락,선발 殷왕족제사 지속 유형.殷왕족 箕子조선.三韓제사장 주관,제천의식,地神.산천神제사.삼국시대 번창,고려까지 제지않음.조선이 확실한 天子의 제후국되어,허락받지않은 제천의식.산천제사 금지->무속이라 탄압.天子국 아닌 한국.
정교회의 러시아.강대국@성씨없는 머슴型에,수천년 야만족에,부처 Monkey에서 파생된,근대 군사강대국 일본 점쇠(히로히토등,일본 짐승국가의 상징)가,하느님.예수님보다 높고,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 아니라는 주장으로,AI뇌과학 짐승 마법사 도둑질 하는것도 경계要.
세계사 殷왕족 箕子의 기자조선(기준왕때 위만조선에 멸망),위만조선, 위만조선을 정벌한 漢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됨.한국은 기자조선의 始原유교와 세계사의 정설인 漢나라때 동아시아 세계종교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 북부의 漢사군과 별도로,한반도 남부는 殷왕족 기자조선의 후손 기준왕과 후손들이 삼한 설립(마한.진한.변한). 진한과 변한에서 신라,가야가 후발로 건국됨.漢사군의 선진 유교문화 낙랑에서 부여가 건국되고,부여에서 이동한 주몽(고주몽)이 고구려 설립. 고구려 주몽의 후손 온조가 백제건국. 진한.변한의 신라,가야는 기자조선.삼한의 始原유교에서, 선진 유교문화 고구려.백제,중국 본토와 교류하며,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국가로 본격 재정립됨.제자백가,외래신알 불교 유입.
@ 불교 Monkey의 채식주의나, 사찰음식 모방하여 살아가는것은 위험함. 유교나 기독교 국가들은 수시로 육지고기 먹어야 합니다. 황하문명의 중국 음식(이탈리아,프랑스등과 각종 요리가 발달)의 특징은 불을 이용하여 튀기고,끓여먹고,구워먹는 맛있는 음식들.유교.기독교 국가들은,하느님의 섭리에 따라서,육식을 자주해야!@불교 Monkey채식주의는,유교.기독교와 맞지 않음.일본은 불교 Monkey(스시로 육지고기 먹지 않는다고 위안삼는것으로 보여짐).
다신교인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최고 하느님이시며, 만물의 근원이시고, 인간을 창조하신(시경:天生蒸民) 하느님(天). 그 하위의 조상신(유교 경전 예기에서 계절을 다스리시는 五帝),地神.산천神 숭배 이어받으신 공자님의 가르침(하느님의 섭리하에 피조물 중 만물의 영장 인간이 추구해야 할 여러 덕목인 仁과 禮, 恕등),그리고 유교의 실천강령중 하나인 삼강오륜.
창조신에 항거한 불교 부처 Monkey는,과거에 코끼리,사슴, 원숭이라고 본생경(Jataka,本生經)이 설명@유교는 다음생,저번생같은 윤회가 없고,사람이 짐승으로 환생하는것 불인정.유교는 하느님(天)이 창조하신 인간이 가장 중요함.죽으면 魂이 하늘로 올라감.악귀는 못올라감.유교나 가톨릭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영장 인간이 가장 중요할뿐, 사람이 동물로 윤회하거나 하는것을 인정치 않습니다. 전생이나 내세도 없습니다. 다만 유교는 사람이 죽으면 혼이 하늘로 승천하고, 현세에서 죄를 지었으면 그에 맞게 악귀로 처우되어, 떠돌게됩니다. 한번뿐인 고귀한 인생, 부처 Monkey의 불교처럼 동물로 인간을 비하하지 말고 열심히 사는게 유교입니다.
@ 현재의 중국 국가주석은 종교적으로 유교국가들(중국,한국,베트남,몽고,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의 天子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것. 춘절,청명절,단오절,중추절의 법정 공휴일, 24절기 유네스코 등록@정치적으로는周 文王의 환과고독(鰥寡孤獨)구휼 위한 大同사회목표.
인구밀도가 낮은 시대에 유교,기독교,이슬람교는 매장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인더스문명의 인도는 인구밀도가 높은편이라, 고대부터 브라만교(힌두교로 이어짐),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불교는 화장문화였음. 최근에는 너무 인구밀도가 높아, 종교와 상관없이 유교,기독교,이슬람교도 납골당, 수목장등이 대세임. 유교는 화장하더라도, 집에 영정을 모시는 쪽으로 이어지면됩니다.
@ 한국 유교 최고제사장은 고종 후손 황사손(이원)임. 불교 Monkey일본 항복으로, 유교가 국교인 조선성명 복구령. 5.000만 국민이 행정법상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며, 유교 명절,제사,차례,기도 및, 초등학교때의 하느님(애국가)제창,조선 역대왕조 왕명 암기,중학교때는 유교 삼강오륜 배우게 됨. 고교때는 세계사의 고대 세계종교 유교(현재도 이어짐)@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로 설립된 예수회의 서강대는,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이 뒤로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으로 형성된 대학들.
[4]. 백과사전류에서 설명하는 입추(立秋).
1].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에 나타나는 입추(立秋).
정의
24절기의 하나.
내용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들어 있으며, 음력 7월, 양력 8월 8일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이 135°에 있을 때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뜻으로, 화성(火星)은 서쪽으로 흘러 있고 미성(尾星)은 중천에 떠 있다. 어쩌다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칠월칠석을 전후하므로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때부터 가을채비를 시작하여야 한다.
특히, 이때에 김장용 무·배추를 심고 9, 10월 서리가 내리고 얼기 전에 거두어서 겨울김장에 대비한다. 김매기도 끝나가고 농촌도 한가해지기 시작하니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거의 전국적으로 전해진다.
이 말은 5월이 모내기와 보리수확으로 매우 바쁜 달임을 표현하는 “발등에 오줌싼다.”는 말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 출처: 입추[立秋] (한국 민족문화대백과)
2].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입추(立秋)
요약 24절기 중, 13번째 절기로서 음력 7월 초순, 양력 8월 8~9일 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135˚에 위치하며, 가을에 들어선다는 뜻대로, 이날부터 입동 전까지를 가을로 친다.
24절기 가운데 대서(大暑)와 처서(處署) 사이에 드는 절기로, 순서로는 열셋째에 해당한다. 양력으로는 8월 8∼9일경, 음력으로는 7월 초순이며, 태양의 황경이 135°에 달하는 날이 바로 입기일(入氣日)이다. 동양의 역(曆)에서는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로 친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었다는 뜻으로,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는 하지만, 밤이 되면 비교적 선선한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여름의 흙일도 끝나고 이제 서서히 가을채비를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옛날 중국에서도 입추의 15일간을 5일씩 3후(三候)로 나누어 ① 서늘한 바람이 불어 오고 ② 이슬이 진하게 내리며 ③ 쓰르라미가 운다고 하였다.
농촌에서는 참깨·옥수수를 수확하고, 일찍 거두어들인 밭에는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기 시작한다. 태풍과 장마가 자주 발생해 논에서는 병충해 방제가 한창이고, 태풍으로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느라 분주하다. 이 무렵부터 논의 물을 빼기 시작하는데, 1년 벼농사의 마지막 성패가 이 때의 날씨에 달려 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시기이다.
아직 남아 있는 늦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받아 벼가 누렇게 익어야 하는 시기이다. 이 때부터 처서 무렵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아야 풍작을 기대할 수 있다. 또 바다에서는 달과 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여 밀물과 썰물의 차가 가장 크게 벌어지는 사리 현상이 발생해 서남해안 지역의 저지대가 침수, 농작물이 해를 입기도 한다.
입추 무렵의 풍속으로는 '기청제(祈晴祭)'가 있다. 예부터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여무는 시기이기 때문에 비가 내리는 것을 가장 큰 재앙으로 여겼다. 해서 각 고을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고 맑은 날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하늘에 기청제를 지냈는데, 성문제(城門祭)·천상제(川上祭)라고도 한다. 즉 비가 닷새 또는 보름 동안 계속해서 내리면 조정이나 고을에서 비가 멈추게 해 달라고 제를 올렸던 것이다. 봄·여름에 가뭄이 계속되면서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을 때 비를 내려 달라고 지내는 기우제(祈雨祭)와는 반대 성격의 제사이다.
. 출처: 입추 [立秋] (두산백과)
3]. 한국 세시 풍속사전에 나타나는 입추.
정의
태양의 황도(黃道)상의 위치로 정한 24절기 중 열세 번째 절기. 양력으로는 8월 8일 무렵이고, 음력으로는 7월인데, 태양의 황경(黃經)이 135도에 있을 때이다. 대서(大暑)와 처서(處暑)의 사이에 들어 있으며,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이다.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
유래
『고려사(高麗史)』 권50 지(志)4 역(曆) 선명력(宣明曆) 상(上)에 “입추는 7월의 절기이다. 괘(卦)는 리(離) 구사(九四)이다. 초후(初候)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차후(次候)에 흰 이슬이 내린다. 말후(末候)에 쓰르라미[寒蟬]가 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입추가 지난 후의 계절의 변화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고려사』 권6 「세가(世家)」 6 정종(正宗) 병자(丙子) 2년(1036)에는 “입하(立夏)부터 입추까지 백성들이 조정에 얼음을 진상하면 이를 대궐에서 쓰고, 조정 대신들에게도 나눠주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입추까지는 날씨가 무척 더웠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고려사』 권84「지(志)」38에 “입추에는 관리에게 하루 휴가를 준다.”라고 하였다.
내용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익어가는 때여서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야 한다. 조선 시대에는 입추가 지나서 비가 닷새 이상 계속되면 조정이나 각 고을에서는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다 한다.
입추는 곡식이 여무는 시기이므로 이날 날씨를 보고 점친다. 입추에 하늘이 청명하면 만곡(萬穀)이 풍년이라고 여기고, 이날 비가 조금만 내리면 길하고 많이 내리면 벼가 상한다고 여긴다. 또한 천둥이 치면 벼의 수확량이 적고 지진이 있으면 다음해 봄에 소와 염소가 죽는다고 점친다.
입추가 지난 뒤에는 어쩌다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때부터 가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특히 이때에 김장용 무와 배추를 심어 김장에 대비한다. 이 무렵에는 김매기도 끝나가고 농촌도 한가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거의 전국적으로 전해진다. 이 말은 5월이 모내기와 보리 수확으로 매우 바쁜 달임을 표현하는 “발등에 오줌 싼다.”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 출처: 입추 [立秋] (한국세시풍속사전)
[5]. 오제(五帝)와 그 보좌신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나타나는 帝는 다음분들입니다.
1]. 春의 帝는 태호(太皞), 夏의 帝는 炎帝, 秋의 帝는 소호(少皞), 冬의 帝는 전욱(顓頊)
이렇게 4계절의 帝만 나타내는 禮記 책도 있지만 季夏와 孟秋의 달에 中央의 帝를 집어넣어 그 帝를 黃帝로 하는 禮記 月令도 있습니다. 필자가 볼때는 이 예기 월령의 五帝를 근거로 오제설이 설립된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기 월령편이나 다른 경전에서 이 5제의 모습을 인간이나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전설적.신화적 형상으로 표현하는 구절은 필자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他 문명과 교류하면서 神話的인 모습의 동물들을 숭배하는 원시신앙에 영향받아 유교 경전 아닌 중국의 俗書에는 신화적인 동물모습의 3皇5帝 현상도 나타나고는 있습니다. 황하문명에서 파생된 유교도 그렇고 기독교도 그렇고 다른 신앙도 그렇고 인지능력이 발달하기 전에는 인간들이 잘 모르는 능력을 가졌다고 동물도 혼합하여 같이 숭배할 수 있었겠습니다. 이런 모습은 신화나 상상.또는 先史時代에 실재로 존재하던 강력한 존재였다고 추정되는데, 인간들이 점차 옷도 만들어 입고 말도 하고 집도 지을줄알고, 근친혼을 배제하고, 글을 쓰면서 더욱 문명화된 인간의 모습을 중시하여 신화적인 동물 모습은 유교 경전이나 기독교 경전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화나 전설로 밀려난 채로, 그런 신화적.전설적 형상의 神들은 그대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능력도 무한하시지만 하느님의 형상은 우리 인간이 쉽게 그려낼 수 없을것 같은데, 유교나 기독교가 인간중심으로 전승되면서 신화적.동물혼합적 지배자들의 모습을 인간의 형상중심으로 변화시키면서 經典에 반영했을 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인지능력이 발달하기전에 숭배하던 강력한 존재가 동물의 모습을 가졌다면 이 전통을 인정해주는것도 옳을것 같습니다.오래된 문명에서 뱀이나 소의 모습을 한 강력한 존재를 지속적으로 경배대상으로 하여 이를 융합하였을 수도 있었고, 지금도 타 문명권에서는 지속적으로 그 동물모습의 강력한 존재를 숭배대상으로 삼는다면 인정해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유교권에서는 근친혼이 강하게 배제된 것 같고 8촌이내의 결혼도 기피하게 되었고, 근친혼을 인정할 수 있던 서양도 비극적인 연극을 통해 原罪意識을 가지게되고, 생물학적 개념으로 근친혼은 열성인자를 가진 후손을 낳는다고 교육시키면서 서양도 근친혼은 기피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가진 로마제국이 새롭게 기독교를 國敎化시킨 원인도 근친혼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던 아득한 先史時代의 전설에 원죄의식을 가지게 되면서(카오스 상태에서 태어난 神의 근친혼적 성격, 오이디푸스 이야기등), 점차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 가을의 帝 소호의 보좌신 욕수에 대한 설명입니다.
예기 월령에서 가을(秋)의 帝인 소호(少皞)의 보좌신으로서 욕수(蓐收)가 나타납니다. 帝를 보좌하는 보좌신을 神이라고 표현한것은 上帝(天人合一說에 의해 하늘天의 일부 지배권을 이양받으신 하느님 五帝)를 보좌하는 신으로서, 여기서의 神은 보좌신의 의미로 神靈이나 鬼神정도의 하위신에 해당된다고 파악됩니다. 유교는 수천년의 전통에서 多神敎 전통이 변질되지 않은 종교중 하나입니다.
소호는 소호금천(少皥金天氏)으로도 표현되는데 욕수(蓐收)는 소호금천의 아들입니다. 소호의 아들 욕수는 天人合一說에 의해 가을의 帝(가을의 上帝. 가을의 하느님)가 되신 소호를 돕고 있는 보좌신이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욕수(蓐收)는 소호(少皥)의 아들 해입니다.
3]. 참고로 예기 월령에서 봄.여름.중앙.가을.겨울의 帝와 보좌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봄(春)
其帝太皥(기제태호) 其神句芒(기신구망)
그 上帝는 태호(太皥), 그 보좌신은 구망(句芒)이라는 의미입니다.
구망(句芒)은 소호(少皥)의 아들 중입니다.
2. 여름(夏)
其帝炎帝(기제염제) 其神祝融(기신축융)
그 上帝는 염제(炎帝), 그 보좌신은 축융(祝融)이라는 의미입니다.
축융(祝融)은 전욱의 아들 여입니다.
3. 중앙(中央). 禮記 月令에서는 夏와 秋 사이에 나타남.
其帝黃帝(기제황제) 其神后土(기신후토)
그 上帝는 황제(黃帝), 그 보좌신은 후토(后土)라는 의미입니다.
후토(后土)는 공공씨의 아들 구룡입니다.
4. 가을(秋)
其帝少皥(기제소호) 其神蓐收(기신욕수)
그 上帝는 소호(少皥), 그 보좌신은 욕수(蓐收)라는 의미입니다.
욕수(蓐收)는 소호(少皥)의 아들 해입니다.
5. 겨울(冬)
其帝顓頊(기제전욱)) 其神玄冥(기신현명)
그 上帝는 顓頊(전욱), 그 보좌신은 현명(玄冥)이라는 의미입니다.
현명(玄冥)은 소호의 아들 수와 희입니다.
. 필자 주 4). 보좌신들에 대한 출처
오정(五正)
행(五行)을 관장하는 다섯 우두머리. 곧 목(木)은 구망(句芒:소호의 아들인 중), 금(金)은 욕수(蓐收:소호의 아들 해), 화(火)는 축융(祝融:전욱의 아들 여), 수(水)는 현명(玄冥:소호의 아들 수와 희), 토(土)는 후토(后土:공공씨의 아들 구룡)임.
.출처: 오정[五正]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3.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4]. 순서상으로 볼때 尹씨는 중국의 소호(少皥)씨에서 유래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파평윤씨(坡平尹氏)입니다. 윤씨는 통일신라 말기에 태어나신 태사공[太師公,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는 성씨인데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서 개국공신으로 三韓功臣이 되었습니다. 이후 고려의 명문 문벌로 살다가 조선시대에도 전주 이씨 다음으로 과거 급제자를 많이 배출하여 1천년 이상 한국의 명분문벌로 살아온 성씨입니다. 그런데 한국 정착은 늦은편 같습니다. 윤씨는 파평윤씨가 가장 많습니다.
5].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다음의 서적을 소개 하겠습니다.
1. 조상성씨의 세계 내가만난
저자:김 문순/답게/2009.03.25
위 책은 무송 윤씨와 칠원윤씨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 무송윤씨
원 성씨는 원래 소호(少皥)씨였으나, 소호 금천씨의 아들 선(船)이 옹주의 윤성에 봉해져 윤씨가 되었다. 후손인 경(鏡)이 병란을 피하여 무송(전북 고창)에 세거하여 이어져 오고 있다...
2). 칠원윤씨
태종 무열왕때 태자 태사 역임.
. 필자 주 5). 향토문화대전에 나타난 무송 윤씨의 시조와 칠원윤씨의 시조에 대한 설명입니다.
3). 한국에서의 무송윤씨(茂松尹氏) 시조 윤양비(尹良庇)에 대한 설명.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설명편에 나옴.
[연원]
무송윤씨(茂松尹氏)의 시조 윤양비(尹良庇)는 고려 예종 때 현리(縣吏)로서 과거에 급제하여 보승낭장(保勝郎將)·호장동정(戸長同正)을 지냈다. 윤양비의 선계(先系)는 윤경(尹鏡)으로 후당(後唐)에서 오계(五季)의 난을 피하여 한반도로 건너와 무송(茂松)[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지방에 정착하면서 무송을 본관으로 삼았다. 이후 계대가 실전되어 윤양비를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와 장령공파(掌令公派)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4). 한국에서의 칠원윤씨(漆原尹氏) 시조 윤시영(尹始榮)에 대한 설명.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상삼리 에 있는 칠원윤씨 上良齋
설명편에 나옴.
[개설]
칠원윤씨 대언공파(代言公派) 양산 소문중(小門中)이 임진왜란 전에 남하하여 양산 상삼 및 양동에 세거의 터를 잡았는데 26세조 윤승원(尹承元)을 모시는 재사이다. 「상량재기」는 1997년 5월 18일 38세손 윤정삼(尹政三)이 근찬한 것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신라 태종무열왕 때 태사로서 고명원로(顧命元老)에 이른 윤시영(尹始榮)을 시조로 삼았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27세조 윤옥(尹沃)은 무과중추부사(武科中樞府事)였으며, 윤발(尹潑)은 무과에 급제한 만호(萬戶)였다. 두 사람은 임진왜란시에 형제가 창의(倡義)한 공으로『양산읍지』, 『양산향안』에 실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5). 한국에서의 파평윤씨((坡平尹氏) 시조 윤신달(尹莘達)에 대한 설명.
성씨의 역사
파평윤씨의 시조는 윤신달(尹莘達)이다. 윤신달은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한 공으로 개국통합삼한벽상익찬공신(開國統合三韓壁上翊贊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관직은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이르렀으며 소양(昭襄)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조선씨족통보》와 《용연보감(龍淵寶鑑)》 등에 의하면 윤신달은 파주 파평산(坡平山) 서쪽 기슭에 있는 용연(龍淵)에서 옥함(玉函)이 물위에 떠오르면서 그 안에서 나왔다고 한다. 윤신달 이전의 자세한 세계(世系)는 알 수 없다.
.출처:파평윤씨[坡平尹氏] (성씨와 본관, 2011.1.14, 한국학중앙연구원)
. 필자 주 6). 이로볼때 무송윤씨 시조 윤양비의 선계(先系)는 윤경(尹鏡)으로 후당(後唐)에서 오계(五季)의 난을 피하여 한반도로 건너와 무송(茂松)[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지방에 정착한것으로 판단됨. 칠원윤씨의 시조 윤시영(尹始榮)도 신라 태종무열왕 때 태사로서 고명원로(顧命元老)에 이른점을 보면, 태종무열왕재위시 중국을 통치하던 당나라 때 칠원윤씨가 한국에 정착한것으로 파악됨.
결국 소호씨에서 유래된 중국 尹씨는 唐나라때와 後唐시대(역사적으로 923~936 존립) 한국에 정착한 성씨라 할 수 있음. 정착순서로 보면 칠원윤씨가 태종 무열왕때, 파평윤씨가 고려 건국(918년)에 참여한 전후시기에, 무송윤씨가 후당(923∼936)시대에 한국에 정착한 것이라 판단됨.
. 필자 주 7). 태종무열왕, 당나라, 후당(後唐)의 시대 설명.
6).신라시대 태종무열왕의 출생.사망 및 재위기간
가). 출생~사망: 603(진평왕 25)∼661(문무왕 1).
나). 재위기간: 재위 654∼661. 성은 김씨. 이름은 춘추(春秋). 신라 제29대왕.
. 출처: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다). 당(唐)나라 존속기간
618년 이연(李淵)이 건국하여 907년 애제(哀帝) 때 후량(後梁) 주전충(朱全忠)에게 멸망하기까지 290년간 20대의 황제에 의하여 통치되었다
.출처: 당[唐] (두산백과)
라). 당(唐)과 다른 후당(後唐)에 대한 설명
중국 고대의 오대(五代) 중의 한 왕조(923∼936).
통칭 후당(後唐)이라 한다. 돌궐(突厥) 사타부(沙陀部) 출신의 이극용(李克用)이 당(唐:618∼907)에 봉사(奉事)하며 황소(黃巢)의 난(875∼884) 진압에 공을 세워 895년 진왕(晉王)으로 훈봉(勳封)을 받았는데, 아들 이존욱(李存勖:재위 923∼926)은 923년 후량(後梁:907∼923)의 뒤를 이어 국호(國號)를 당(唐)이라 칭하고 뤄양[洛陽]에 도읍하였다...
.출처:당[唐] (두산백과)
. 필자 주 8). 유교사회는 자손번성을 위해 부인을 여러명 두며 살아온게 역사적 현실인데, 이는 그대로 반영하여야 합니다. 왕족이나 양반은 대개 그렇게 여러명의 부인들 두고 一夫多妻制로 가문의 번영을 도모했습니다. 현대는 一夫一妻制지요.
. 필자 주 9). 五帝의 姓.
태호, 염제, 황제, 소호, 전욱은 하나의 칭호에 해당됩니다. 중국은 姓氏제도를 발달시켜 한국도 殷나라의 왕족출신 箕子조선의 출현이후 기자의 후손들이 성을 사용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조선부터 역사적 조선으로 보여지는데, 기자조선을 불명확한 시대로 보는 견해도 있음. 물론 아직까지 단군은 역사가 아닌 전설이나 野史로보고 그렇게 가르치고 배워왔음. 세계사 영역과는 맞지 않는 야사와 전설이 단군조선 이라 할 수있음. 최근에 급작스럽게 단군조선도 교과서에 넣기는 넣었지만 世界史.正史로서가 아니라 신화와 전설 차원으로 넣은것이라 이는 학계에서 많은 검토를 해야 함. 국어사전이나 한자사전에서 유사이래(有史以來)란 말은 있어도 단군이래라는 말이 등재되지 않은걸 보면 正史에 근거한 역사적 자격이 중요하기는 중요한 것 같음. 그런데 기자조선 기준(箕準)王은 분명한 正史시대의 위만이 멸망시켜 출생.사망이 부정확한 인물이면서 역사적 인물에 해당되기도 함.
. 필자 주 10). 준왕(準王), 즉 기준(箕準)은 출생.사망은 불명인데, 재위기간은 명확하고 정사시대 인물인 위만에 멸망당하는 역사에는 분명히 등장하고 있습니다.
.준왕
재위기간: BC 3세기~BC 2세기.
고조선의 왕. 중국의 진(秦)나라 말기와 한(漢)나라 초기에 걸치는 시대에 재위(在位)하였으며, 지금의 랴오둥[遼東]지방에서 도망해 온 위만(衛滿)을 받아들여 한씨조선의 서북변(西北邊) 지방을 지키게 하였다. BC 194년 위만이 왕검성(王儉城)을 공취(攻取)하자, 준왕은 마한(馬韓) 땅으로 도망하여 그 전에 이미 그 지역에 이주해 있던 유민(流民)을 수습하여 그들을 지배하면서 한왕(韓王)이 되었다.
.출처:준왕[準王] (두산백과)
. 필자 주 11). 기자조선의 실체를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인정하였다고 하는데, 최근에 부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필자는 성씨의 유래나 기준왕의 역사적 등장으로 볼때 기자조선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근대와 현대 일부분 시기는 일본 강점기인데, 학술서나 백과사전.교과서 등 많은 학술서에서 유교 아닌 일본 신도.일본불교적 시각과 일본 기준 역사관이 강점기 한국에 작용한점을 염두에 두어 장기적 재검토가 필요한 분야라 생각합니다.
기자조선(箕子朝鮮)
.요약:중국 은나라 말기에 기자(箕子)가 조선에 와서 단군조선에 이어 건국하였다고 전하는 나라.
기자가 조선에 와서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대표적인 역사책은 복생(伏生)의 《상서대전(尙書大傳)》, 사마천의 《사기(史記)》, 반고의 《한서(漢書)》 등인데, 사서마다 내용이 약간씩 다르다. 그 밖의 기자에 관한 기록들은 모두 이들 세 사서에 그 유래와 근거를 두고 있다.
《상서대전》에는 주(周)의 무왕(武王)이 은(殷)을 멸망시키고 감옥에 갇힌 기자를 석방하자, 그는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겨 조선으로 달아났다. 무왕이 이 소식을 듣고 조선왕으로 봉하였다. 주의 책봉(冊封)을 받은 기자는 부득이 신하의 예를 차려야 하였으므로 BC 1100년경(무왕 13)에 주나라에 가서 무왕을 만났는데, 무왕은 그에게 홍범9주(洪範九疇)에 대해서 물었다고 한다.
또 《사기》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는 무왕이 은을 정복한 뒤 기자를 방문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도를 묻자 홍범9주를 지어 바쳤다. 이에 무왕이 그를 조선왕으로 봉해주었으나, 기자는 신하의 예를 갖추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서》 지리지 연조(燕條)에는 은나라가 쇠하여지자 기자가 조선에 가서 그 백성에게 예의와 농사 ·양잠 ·베짜기 기술을 가르쳤더니, 낙랑조선(樂浪朝鮮) 사회에서는 범금팔조(犯禁八條)가 행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들을 근거로 《삼국지》에 인용된 《위략(魏略)》에서는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긴 준왕(準王)을 기자의 후예로 기술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기자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였지만, 최근에는 이를 부정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출처:기자조선[箕子朝鮮] (두산백과)
6]. 여하튼 한국 성씨를 보면 기자조선의 후손들이 徐氏나 韓氏등으로 姓을 자연스럽게 적용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태고적에 성이란건 꼭 父의 성을 따르지 않고도 그 후손이 地名등을 활용해 姓을 사용하여 전승되어온 부분도 많습니다. 한국의 경우 기자조선 후손들은 姓을 사용해왔다고 할 수 있는데, 기자조선 후손이 아니면 자생적인 부족연맹체의 수장들이 姓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 나중에 추증형식으로라도 姓을 사용하며 확대시켜 온 나라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막부시대를 타도하며 하급무사들이 추대한 日王이 아직도 姓이 없는게 좀 특이합니다. 한국에서 漢字나 유교 및 도교.중국불교 여러 문물을 수입해간 나라가 일본이며 한국을 어버이 나라로 알던 나라가 일본인데 느닷없이 중국.한국이 모르고 인정치 않던 천황칭호를 강요하니까 해방후 한국은 日王이라고 호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필자 주 12). 유교 경전에서 보면 윤씨가 나오는점으로 보아 중국에서 발생한 姓인점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소호씨가 尹성을 사용한게 아니고 次妃(둘째 왕비)에게서 난 후손이 尹성을 사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른성씨는 몰라도 필자가 尹氏라 그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위에서 예로든 책 [조상성씨의 세계 내가만난/김문순 저]에서 무송윤씨의 원래 성씨가 소호씨라고 한것은 칭호를 성씨로 혼동하여 그렇게 서술한 것 같기도 합니다. 상고시대의 일로, 좀 복잡해서 그런것 같습니다.
[6]. 유교 경전인 오경(五經)의 예기(禮記)에 나타나는, 五帝(태호, 염제, 황제, 소호, 전욱)의 세속의 姓氏등.
1]. 五帝의 姓을 밝혀주는 자료를 근거로 五帝의 姓을 살펴보겠습니다. 아주 오래된 태고시대의 인물들이라 여러가지 설이 많아 후세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혼란한 측면도 있으니까 이런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가장 중요한것은, 세계종교로 성립된 유교(한나라때 동아시아 세계종교로 성립)나 가톨릭(로마제국때 서유럽과 서아시아 일부,북아프리카 일부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의 국교로 성립)이, 그 이전 태고적의 혼돈.未開化상태에 있던 중국의 속설이나, 그리스.로마신화와는 다른 종교라는 점입니다. 인류의 지능과 지식이 본격적으로 진보하여, 그 이전의 혼돈상태에서 믿어지던, 단순한 대자연 숭배나, 토테미즘이 개입된 동물혼합의 神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유교나 가톨릭같은 세계종교는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한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숭배하면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하면서, 발전을 해왔습니다. 유교는 주나라 때 성립된, 天을 최고신으로 하여,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이론과 경합하면서, 공자님의 儒家사상은 단순한 대자연 숭배.조상숭배와 달리,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만 백성을 창조하신 天(하느님)을 최고신으로 숭배해왔습니다. 제자백가와 경합하다가 한나라때 국교로 성립되어 동아시아의 세계종교로까지 발전된 유교입니다. 제자백가와 경합하던 당시, 공자님은 단지 스승.선생정도의 지위였다가, 점차, 위대한 스승, 성인임금, 하늘이 낳으신 성인으로 격상되신것입니다. 로마제국때는 이스라엘 부족신앙과 달리, 이스라엘지역에서 대접받지 못하던 예수(기독교문화 하느님의 독생자)를 매개로 하여, 초창기에는 로마제국에서도 그리스.로마신화의 神들에 눌려 박해받는 과정을 거치다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받으면서, 세계종교로 점차적 발전을 해온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도 인도를 중심으로 세계종교로 형성되었지만, 원래의 브라만교에 다시 눌려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고, 창조신을 부정하는 Monkey류 부처의 특성때문에 인도에서는 천 몇백년동안 탄압받아온 불교입니다.
2]. 五帝나 三皇에 대한 설은 한국의 여러 백과사전이나 학술서적들도 아직, 통일된 의견을 보이지 않고 있어 제 각각 다양한 상황인데, 이는 현대 중국도 큰 차이가 없는것 같음. 그러나 유교종주국이자 발생지인 중국이 모든 내용들을 가장 잘 알것임. 필자의 견해로는 백과사전이나 중국.한국의 俗書보다, 유교 경전인 禮記 月令에서 五帝를 발견하는게 가장 正道라 판단함(아주 오래된 태고적의 신적.신화적 인물들이 이 분들이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밖에 없겠는데, 혼선을 빚기보다는 유교 경전을 통하여 통일된 오제의 모습을 판단해보는게 적절할 것 같음). 한국에서는 정보가 부족하므로 불가피하게 백과사전이나 중국 인물사전등을 통하여 五帝에 대해 알아보는게 옳을것 같습니다.
[7].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8]. 필자의 당부사항.
서강대는 명나라때부터 중국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유교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높고, 서양에 유교와 공자님을 학술적으로 잘 소개해준 귀족계파 예수회산하 대학입니다. 불교 Monkey 일본 강점기를 거치고, 교육.종교.학교.대중언론.공무원 분야등에서, 실무권력을 갖지못한, 성균관과 유림들이었는데, 일본 항복후, 미군정때, 총독부 인원들이 재등용되어, 다시 복구한 국사 성균관(성균관대)자격을 약탈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성균관대에 도전해온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 각종 왜구학교들의 주권없는 약탈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혼란했던 대학, 중.고등학교 문제는, 법적 기준과 주권.자격 기준으로, 중.고교의 경우, 어느정도 대학진학률등이 높아왔던 학교들이, 倭잔재학교보다 우선순위를 가져야 합니다. 자체의 군사력으로, 독립하지 못해서, 왜구 잔재학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시중의 대중언론.사설입시지의 왜곡을 겪으면서,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권력이 아주 강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어떻게 할 수가 앖어, 중학교 무시험전형, 대도시 고교 평준화로 부분적 봉합을 시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법과, 역사, 사실은 아주 중요합니다. 국가주권처럼 성균관(성균관대)의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도 아주 중요합니다. 성균관의 승계 대학 성균관대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복잡한 국제법상의 갈등이 얽혀있습니다. 해방당시 다른 대학들은 이 법적 갈등의 당사자대학들이 아닙니다. 유교의 하느님숭배,조상숭배와 舊신분제 전통을 잘 이해하던 예수회의 귀족계파 서강대는,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 국사 성균관교육이 지속되면서, 양반 성대를 이해하던 대학임.이뒤로 조선성명 복구된 5,000만 한국인 뒤 주권.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불교 Monkey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대학들.@대중언론,사설 입시지, 후발 법령은, 국제법, 한국사(국사 성균관교육. 성균관대 자격), 세계사, 국가주권의 상위법.상위 국제관습법 못이깁니다.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세계사의 교황 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귀족사제 이나시오 사제가 설립한 귀족대학)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으로 보호받습니다. 그리고 성균관대의 자격은, 세계사에서 인정되는 중국의 황하문명, 한자(漢字), 한나라시대의 세계종교 유교, 중국의 태학(이후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 세계4대 발명품(중국의 발명품인데,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으로 가르침. 종이,화약, 나침판, 인쇄술)등과 결부되어, 세계사로 이해해야, 세계인들에 더욱 확실히 접근하기 쉬운 측면이 많기 때문에, 교과서로 가르치는 한국사만큼, 학교교육의 세계사도 중요합니다.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 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275696355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190490049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s://blog.naver.com/macmaca/110185393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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