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5일 월요일
2026년 6월 19일은 음력으로 5월 5일이며, 이 날은 유교권 전통 명절인 단오절입니다. 단오날은,단양절(端陽節) 또는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합니다.
2026년 6월 19일은 음력으로 5월 5일이며, 이 날은 유교권 전통 명절인 단오절입니다. 단오날은,단양절(端陽節) 또는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합니다.
단오절은 고대 중국의 하(夏)·은(殷)·주(周) 왕조를 거치며 정착된 천체(태양·달·별) 숭배와 농경 수시(授時) 의례에서 깊은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단오절은 "병마를 제거하고 악귀와 재난을 쫓는 명절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합니다.한국의 경우, 고대 마한의 습속을 적은 《위지(魏志)》 <한전(韓傳)>에 의하면,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서로 신(神)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단오를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삿날인 5월제의 유풍으로 보기도 한다. 필자가 볼때, 결국 단오절은 상고시대 시원(始原)유교의 제천의식에서 파생되어, 삼한의 5월제로 이어지고, 지금까지 한국에 이어져 온 전통 유교풍속입니다. 단오날에는 쑥떡.망개떡.수리취떡.밀가루지짐등을 먹습니다. 남자들은 씨름등을 하고,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데, 그네뛰기 ·탈춤 ·사자춤 ·가면극 등도 곁들이는 유교 제천의식날이자 명절입니다.
[1]. 개괄 설명
1]. 표준 국어대사전에서는 단오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명절의 하나. 음력 5월 5일로, 단오떡을 해 먹고 여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며 남자는 씨름을 한다
2]. 단오절은 고대 중국의 하(夏)·은(殷)·주(周) 왕조를 거치며 정착된 천체(태양·달·별) 숭배와 농경 수시(授時) 의례에서 깊은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흔히 단오라고 하면 초나라의 충신 '굴원'의 전설을 떠올리지만, 이는 후대에 덧붙여진 인물 중심의 유래일 뿐입니다. 단오의 본질적인 기원은 고대인들이 1년 중 태양의 기운(양기)이 가장 왕성한 날을 기념하던 태양 축제에 있습니다.
질문하신 고대 왕조들과 단오의 연관성을 역사적·천문학적 근거와 함께 명확히 정리해 드립니다.
1. 하(夏)나라의 천체 숭배와 최초의 기록
중국 고대 문헌인 《대대예기(大戴禮記)》 중 하나라의 천문력과 농사 절기를 기록한 〈하소정(夏小正)〉을 보면, 음력 5월에 '약초(난초)를 채취하여 목욕을 하고 독을 배출한다'는 기록이 이미 등장합니다.
가). 중국 인민망 단오절(端午節)의 유래
May 30, 2014
[인민망 한국어판 6월 04일]
위란제(욕난절, 浴蘭節)의 기원
중국 선인들은 5월이 되면 난초를 채취해 난초물로 목욕을 하여 독을 배출해 내는 풍속을 행했다. <대대예기•하소정(大戴禮記•夏小正)>과 남북조 시대 양(梁)나라 사람 종름 (宗懔)의 <형초세시기(荆楚歲時記)>에 나온 관련 기록을 보면 이 풍속은 당송(唐宋) 시대에 까지 전해지게 되어 단오 또는 위란(浴蘭)의 달로 불리게 되었다.
* 어르(악일,惡日)說
한(漢)대 사람들은 5월 5일은 악월(惡月)•악일(惡日), 즉 5월 5일 태어난 아기는 남자 아이든 여자아이든 성인까지 부양하면 안 된다고 여겼다. 부양하게 되면 남자는 아버지를 해하고 여자아이는 어머니를 해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풍속은 전국(戰國) 시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한(漢)대까지 성행했다. 이에 관한 내용은 한나라 사람 왕충(王充)의 <논형(論衡)>, 응소(應劭)<풍속통(風俗通)> 및 <후한서(後漢書)>에 많은 기록이 있다.
* 용의 명절說
이 속설은 원이둬(문일다, 聞一多)의 <단오고(端午考)>와 <단오의 역사교육(端午的歷史教育 )>에서 유래한다. 그는 5월 5일은 고대 오월(吴越)지역 ‘용(龍)’의 부락에서 거행된 토템 의식의 날이라고 말하고 있다.
* 하지(夏至)說
1963년 황스(황석, 黄石)의 <단오예속사(端午禮俗史)>에서 처음으로 ‘하지’설이 거론됐다. 1983년, 류더첸(류덕겸, 劉德謙) 선생은 <단오시원우일설(端午始源又一說)>에서 단오가 하(夏), 상(商), 주(周)나라 시기의 하지라고 말하고 있다.
* 역사적 인물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는 說
‘단오절’하면 중국인들의 뇌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쭝쯔(粽子)와 마음 속에 기릴 만한 역사적 인물들이 있다. 오늘날 저장(浙江) 지역에는 5월 5일 오자서(伍子胥)를 맞이하는 풍습이 있으며 진지(晉地)는 개자추(介子推)를 기념한다는 말이 있다. 한(漢)대에는 천난창우(岑南蒼悟) (오늘날 광시(廣西)) 에서 백성들이 5월 5일 동성문(東城門)에서 어린이들에게 깨끗한 옷을 입혀 춤을 추게 해 믿음• 효도로 군을 다스린 태수 진림(陳臨)을 기념했다고 한다.
동진(東晋)의 문인 우예(虞預)는 <회계전록(會稽典錄)>에서 저장(浙江) 사람들이 5월 5일 효녀 조아(曹娥)를 기념하던 풍속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단오절은 ‘여아절(女兒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남북조 시대에 이르러 남조 양나라 사람 종름(宗懔)의 <형초세시기(荆楚歲時記)>에서 비로소 단오절이 ‘굴원(屈原)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기록했다. 양나라 사람(양조(梁朝)사람) 오균(吳均)의 <속제해기(續齊諧記)>에도 비슷한 기록이 남아있다. 단오절의 기원설은 매우 많지만 그 중 굴원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는 것이 가장 통념적인 설이다.(번역 감수: 김민선)
나). 태양·달·별의 관측: 하나라 시기는 본격적인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태양의 움직임(절기)과 별자리를 관측하는 '수시(시간을 백성에게 알려줌)'가 왕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5월의 의미: 음력 5월은 낮이 가장 긴 '하지(夏至)'가 포함된 달로,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서 강력한 빛을 뿜어내는 시기입니다. 고대인들은 이 시기를 태양의 기운이 극에 달한 때로 보아 신성시했습니다.
@ 태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날. 단오. *출처: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단오의 의미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계절에 따라 좋은 날을 택해 여러 가지 행사를 가져왔는데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명절로 정해졌다. 명절은 대부분 농경사회에 맞게 정해졌으며 계절적인 요소와 민속적인 요소가 포함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축일이다. 예전 명절은 거의 다달이 있었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정월의 설과 대보름, 단오, 팔월의 추석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명절이 그 의미를 잃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을 이르는 말이다. 단오를 부르는 다른 말은 수릿날, 천중절(天中節), 오월절(五月節), 중오절(重五節), 술의(戌衣) 등이지만 가장 흔한 이름은 단오이다.
단오의 단(端)은 첫 번째를 의미하고 오(午)는 다섯을 의미하는 오(五)의 뜻으로 통하므로 매달 초하루부터 헤아려 다섯째 되는 날을 말한다. 예로부터 음양사상에서는 홀수를 양(陽)의 수라 하고, 짝수를 음(陰)의 수라 했는데 양의 수를 상서로운 수로 여겼다. 그래서 양수가 겹치는 날인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은 모두 홀수의 월일이 겹치는 날로 길일로 여겼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날이면 어떤 일을 해도 탈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그 중에서 단오는 일 년 중 인간이 태양신을 가까이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큰 명절로 여겨왔다.단오의 유래단오의 유래는 중국 초나라 회왕 때 충신 굴원이라는 사람에서 시작된다. 굴원은 문장도 잘 쓰고 충직 고결한 신하였다. 이에 회왕이 특별히 사랑하였는바 간신들은 늘 굴원을 시기하고 질투하였다. 회왕이 죽고 양왕이 새 임금이 되자 간신의 무리는 임금께 굴원을 모함하여 끝내 귀양을 보내버렸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안고 살던 굴원은 초나라가 멸망하자 심한 충격을 받고 ‘어부사(漁父詞)’ 등 여러 편의 글을 지은 후 큰 돌덩이를 안은 채 멱라수(覓羅水)에 빠져 죽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해마다 그날이면 대나무통에 쌀을 넣고 소태나무 잎으로 감아 물속에 던져 굴원의 영혼을 위로하였으며 그의 영혼을 건진다 하여 경쟁적으로 배 건너기를 하기도 했다. 그날이 바로 음력 5월 5일이고 이러한 풍습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단오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대 마한 시절부터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신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단오는 절기상 봄농사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지며 신에게 제사도 지내고 흥겹게 지내며 풍요를 기원했던 것으로 보인다.단오의 풍속단오에 여자들은 특별히 치장을 하였는데 이를 단오장(端午粧)이라 한다. 단오장은 창포를 넣어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 것에서 시작한다. 창포의 특이한 향기가 나쁜 귀신을 쫓으며 창포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에 윤기가 나고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단오 때 행해지는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그네뛰기와 씨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순수 전통 놀이인 씨름은 단오뿐만 아니라 여러 명절에 행해진다. 그 중 단오씨름이 으뜸인 이유는 일 년 중에서 가장 양기(陽氣)가 왕성한 날에 행해지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씨름을 했다면 여자들은 그네뛰기를 했다.
단오 무렵에는 계절적으로 여름이 시작되어 날씨가 한창 더워지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더위를 물리치기 위해 부채를 많이 사용했다. 우리 풍속에 ‘단오의 부채는 관원이 아전에게 나누어주고 동짓날의 달력은 아전이 관원에게 바친다’는 말이 있는데, 단오 부채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주는 선물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단오에는 몸을 보양하고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는 의미로 수리취떡, 앵두화채, 제호탕 등을 먹었다. 그 중 수리취떡은 대표적인 단오 음식이다. 수리취는 우리나라 전역의 높은 산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산나물의 왕으로 불릴 만큼 영양이 풍부했다. 단오의 대표적인 후식은 앵두화채와 제호탕이다. 둘 다 여름의 더위를 잊게 하고 떨어진 입맛을 돋우는 데에 효과적이다. 단오 때 익는 앵두는 제철과일이라 하여 새로 수확한 앵두를 조상에게 바치고 제사를 지내는 단오절사(端午節祀)를 하기도 한다. 궁중에서는 임금을 가까이 모시던 신하에게 앵두를 나눠주는 풍습도 있었다. 앵두가 익을 때면 서울의 남녀는 송동과 성북동에 가서 놀기도 했는데 이를 앵두회라 했다. 제호탕은 여러 한약재를 곱게 갈아 꿀을 넣고 끓인 청량음료의 일종으로, 여름철 기력을 보강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하여 단옷날이 되면 임금님께 바치기도 했다.강릉 단오제전통사회에서의 단오제 풍속은 더운 여름철의 건강을 유지하는 선조들의 지혜와 신체단련을 위한 놀이, 풍농을 소망하는 의례 등이 있다. 마을마다 수호신에게 공동체 제의를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지역민들의 일체감을 고취시키는 의례로 마을의 풍년과 화복을 빌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군현 단위마다 큰 단오제가 행해졌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강릉단오제이다.
강릉 단오제 강릉 단오제 강릉 단오제 강릉 단오제 강릉 단오제
[대한뉴스 제1287호] 강릉 단오제(1980)
강릉단오제는 전통 민속축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단오축제이다.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강릉단오제가 맥을 이어온 것은 노인과 무녀들이 소규모라도 빼놓지 않고 단오제를 치렀기 때문이라 한다. 강릉단오제는 단옷날을 전후하여 펼쳐지는데 산신령과 남녀 수호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대관령국사성황모시기를 포함한 강릉 단오굿, 전통 음악과 민요 오독떼기, 관노가면극(官奴假面劇), 시 낭송 및 다양한 민속놀이가 개최된다. 음력 3월 20일 제사에 쓰일 신주(神酒)를 빚는 데서 시작하여 단오 다음날인 5월 6일의 소제(燒祭)까지 약 50여 일이 걸리는 대대적인 행사이다. 강릉단오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5년 11월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되었다.
(집필자 : 황은주)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포탈
설명
‘단오’는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지속하여 왔으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가치를 대표해 온 전통생활관습이자 전통지식이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양기(陽氣)가 가장 성한 날로 예로부터 중오(重午), 천중절(天中節), 수릿날이라 불렀으며, 여름의 대표 명절이다. 단오가 우리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삼국유사』이며, 단오에도 국가의례로 왕실제사를 지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기록을 통해 단오의 핵심 요소인 단오제, 그네뛰기, 단오 부채 관련 풍속도 확인이 가능하다.
다른 명절에 비해 단오는 단일 주제로 가장 많이 연구되었으며, 설과 대보름 관련 연구를 제외하고 명절로써 연구의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 단오 관련 연구는 2000년대 강릉단오제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그 이외 중국의 단오 문화를 비교연구한 주제가 다음으로 많다.
단오는 조선시대 4대 명절이었던 설, 한식, 추석에 비해 향유 집단의 폭이 넓은 명절이었다. 우리나라 명절이 대체로 조선시대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성리학적 가례를 중시하여 조상숭배 관련 의례가 강하게 남아 있는 반면, 단오는 양반과 남성뿐만 아니라 농민과 여성이 함께 명절의 향유 주체가 되어 다양한 놀이와 풍속이 전승되고 있는 명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쑥과 창포 등으로 대표되는 약초 문화 및 단오제로 대표되는 공동체문화는 한·중·일 내에서도 독자성을 견지하고 있다. 단오에는 부채, 동지에는 책력을 의미하는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오는 부채로 대표되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명절이다.
특히 현재 대규모 축제 및 의례·제의의 형태로 단오제의 자생성이 살아있는 강릉단오제·경산자인단오제·법성포단오제가 전승되고 있다. 강릉단오제는 특히 신주(新酒)를 빚는 과정부터 지역공동체의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 하고 있다.
‘단오’는 한반도 전역에서 온 국민이 전승·향유하고 있는 문화라는 점에서 이미 지정된 ‘김치 담그기’, ‘장 담그기’ 등과 같이 특정 보유자와 보유단체는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종목으로 지정하였다.
@ 지역 N문화->한국문화원연합회.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특수법인
* 농업과 인간의 삶 > 마을 공동체 활동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단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홀수가 두 번 겹치므로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다. 이 때는 양기가 강할 때 그 기운을 거두는 여러 가지 풍습이 있는데 익모초와 쑥 꺾기, 창포물에 머리감기, 부적쓰기 등이 있고 절식으로는 수리취떡을 먹는다. 궁중에서는 전주나 남원에서 진상된 부채를 임금이 신하들에게 나누어 선물하기도 하였다.
단오는 한자로 端午라고 쓴다. 단오의 단자는 처음이라는 뜻이고 오자는 다섯이라는 뜻이므로 초닷새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홀수를 양으로 치고 짝수를 음으로 쳤는데 양수가 겹치는 날을 생기가 왕성한 날이라 하여 중요한 날로 여겼다. 이중에서도 여름이 시작되는 5월 5일 단오를 가장 양기가 충만한 날로 생각하여 명절로 여겼다. 그래서 예로부터 설날, 추석, 단오를 삼대 명절로 삼기도 하였다.
단오는 다른 말로 중오절, 천중절, 단양(端陽)이라는 한자로 불리기도 하고 수릿날이라는 고유어의 이름도 가지고 있다. 중국 초나라 굴원이 이 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물에 빠져 죽었고 이를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는 고사가 전해진다. 수릿날은 수리라는 단어의 뜻이 높다와 신이라는 뜻이 있어서 수릿날은 신을 모시는 날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 날에는 다양한 먹을거리와 놀이와 풍습이 있는데 모두 단오날의 양기와 관계가 깊다.
단오날 행하는 민간의 풍습으로는 익모초나 쑥베기, 창포물에 머리감기,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부적쓰기 등이 있고, 궁중에서는 전주나 남원에서 진상된 부채를 임금이 신하들에게 나누어 선물하기도 하였다. 익모초즙은 매우 쓴 맛이 나기 때문에 단오에 내어 둔 것을 여름에 약으로 썼으며 쑥 역시 베어서 여름내내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였다. 익모초와 쑥을 단오날에 베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므로 약성도 가장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만들거나 베는 시간도 양기가 가장 강한 오시(午時)에 베어서 사용하였다. 부적쓰기 역시 이와 같은 원리로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에 부적을 쓰면 제액을 소멸하고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 일도 액을 물리치고 복을 얻는다는 제액초복을 기원하는 행위이다.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는 단오 즈음에 대추가 많이 달리는데 나무 가지에 돌을 끼워 넣어 더 많은 수확을 바라는 기풍 행위이다.
단오날에 먹는 대표적 음식으로는 수리취떡이 있다. 이 수리취는 취나물과 비슷한데 쑥떡을 하듯이 이 수리취를 생으로 빻아서 쌀가루에 넣고 떡을 해 먹는다. 또 앵두로 떡을 만들어 먹거나 화채를 만들어 먹었다. 단오날은 그네뛰기로도 유명하다. 며칠 전부터 그네줄을 준비하여 단오날에 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에 그네를 걸고 그네를 뛴다. 이 때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뛰며 누가 더 멀리 뛰나 내기를 하기도 한다. 또 씨름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요새는 단오를 많이 쇠지 않는다. 예로부터 북쪽은 단오, 남쪽은 추석을 더 크게 쳤기 때문이며 추석이 공휴일로 지정된 데 비해 단오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아 있는 단오 중에서는 유네스코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제와 요새 새롭게 복원된 자인단오제 등이 성행하고 있어 예로부터 내려온 단오의 명맥을 잇고 있다.
@[동북아신문=김성우 시인]
[김성우의 민속풀이] 단오날의 유래와 풍속
기자명 동북아신문 승인 2024.06.10
단오는 음력 5월 5일을 이르는 말이다. 단오절은 춘절(春節), 청명절(清明節), 중추절(中秋節)과 함께 ‘중국 4대 전통명절’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설날, 대보름날, 한식날, 추석날, 중구날, 동지날 등 민속명절과 함께 ‘수리날’로도 불리는 조선민족의 명절이기도 하다. 중국과 조선의 문화영향을 많이 입은 일본에서도 단오문화를 받아들여 단고노셋꾸(端午の節句)라 이름하여 무사인형(五月人形)과 고이노보리(鯉のぼり) 등 여러가지 민속 행사를 나름대로 쇠고 있다. 이렇듯 단오는 동아시아 각국의 한자권 민속문화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명절이다. 한다. 우리 나라 단오절은 2006년에 국가급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되였고 2008년에는 국가 법정 명절로 정해졌으며 2009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였다. 이보다 앞서 한국의 지방축제인 ‘강릉단오제’가 2005년에 유네스코 세계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였었다.
단오절은 이날 자연신과 조상신께 제사를 지내여 복을 빌고 화를 물리치려 하는 재래의 풍속에다가 여러가지 즐거운 오락행사를 치르고 함께 명절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보내는 일종 통합적인 민속명절이다. 단오절은 중국 전통명절에서 명칭이 가장 많고 그 유래설도 가장 많은 명절이다. 명칭으로 보면 단오절은 단양절(端陽節), 룡주절(龍舟節), 중오절(重五節), 쭝즈절(粽子節), 욕란절(浴蘭節), 창포절(菖蒲節), 녀아절(女兒節) , 천의절(天醫節), 초약절(草藥節) 등 20여 가지로 불린다. 학자들은 이러한 명칭들을 대개 세 부류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는데 첫번째는 시간에 맞추어 지어진 명칭으로서 단오, 중오, 천중(天中), 오월절, 지랍절(地蠟節), 오황절(五黃節), 하절(夏節) 등이 그러하다. 이중 ‘천중’은 하지 전후로 태양이 직사점이 북회귀선에 있어서 일년중 가장 중간에 놓여있으므로 적확한 시간관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둘째로는 기후, 월령의 풍속 개념으로 붙여진 명칭으로서 단양절(端陽節), 타오절(躲午節), 정양절(正陽節), 당오신(當五汛) 등이 그러하다. 단오가 하지와 가까우므로 이때는 해볕이 따가워 남방지역에서는 습열이 성하고 산림이 많은 지대에는 장기나 온역이 생기며 각종 벌레들이 생기고 짐승들이 출몰하는 때이다. 또한 이때는 남방지역이 증수기여서 산사태 같은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라는 때이다.셋째로는 민간전설과 풍습에서 기원한 명칭인데 이를테면 룡주절(龍舟節), 쭝즈절(粽子節), 욕란절(浴蘭節), 녀아절(女兒節), 창포절(菖蒲節), 애엽절(艾葉節), 천의절(天醫節), 초약절(草藥節) 따위가 그러하다. 이외 특히 ‘룡의 날’이라고 하여 룡절(龍節)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端)’은 ‘처음’ 또는 ‘초기’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서의 ‘초(初)’의 뜻도 갖고 있어서 오월(午月)의 첫 번째 오일(午日)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첫 번째 오일(午日)이 5일이기에 단오는 초닷새를 말한다. “당대(唐代)까지만 해도 ‘단오(端午)’라는 단어가 오월에만 한한 것이 아니고 어느 달이나 그달의 초닷새를 다 ‘단오’라고 일러왔다. 그러던 것이 송대(宋代)에 와서 ‘오월 오일’만이 ‘단오’로 부르게 되였다.”(《한족풍속사(漢族風俗史)3》 또한 단오의 ‘단(端)’은 정(正)을 의미하고 오(午)는 중(中)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이날 오시가 바로 정중지정(正中之正)이다. 천상으로 보면 한여름(중하)의 오월(午月) 오일(午日)은 《역경·건괘(易經·乾卦)》의 비룡재천(飛龍在天)과 맞먹는데 이때 이십팔수의 동쪽 창룡칠수(蒼龍七宿)가 바로 정남쪽의 중천에 있으므로 천구운행에서의 가장 중정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역경·건괘》의 구오(九五)의 효사가 “비룡재천(飛龍在天, 利見大人)”이라고 함은 해석이 “마치 룡이 머리를 쳐들고 꿈틀거리며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것과 같다. 대공을 이루어서 앞이 휘황찬란하다. 이때는 도덕이 있고 능력이 있는 웃자리에 있는 큰인물이 출현하는 것이 리롭다”라는 뜻으로 ‘대길 대리’의 상으로 본다. 이처럼 단오는 ‘비룡재천’의 길상일이고 룡과 룡주놀이 문화에는 룡 토템을 시원으로 한 원시적 무술 사유와 룡 숭배 문화의식이 깃들어있다. 이리하여 중국 ‘단오절’의 영어번역도 ‘룡주절’을 의식하여 보통 ‘Dragon Boat Festival’로 쓰고 있다.
조선조시기인 1819년에 김매순이 펴낸 《렬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수뢰(水瀨, 강여울)에 밥을 던져 굴원을 제사지내는 풍속이 있으므로 후에 ‘수리날’이라고 부르게 되였다고 씌여있다. 이는 전국시기의 굴원에 관한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전설은 대체로 이러하다. 굴원은 이름은 평(平), 호는 령균(靈抣)인데 초나라의 정치가이며 애국시인이다. 초나라 회왕(懷王)의 특별한 신임을 받아 벼슬이 삼려대부(三閭大夫)에까지 이르렀으나 간신의 무리가 그를 시기하여 왕께 참소하니 왕이 간신의 말만 듣고 그를 소원하게 되였다. 이에 굴원은 유명한 시 《리소(離騷)》를 지었다. 회왕(懷王)이 죽고 양왕(襄王)이 새로 즉위하자 간신의 무리가 더 기승을 부려 굴원은 끝내 추방되고 말았다. 비분에 넘친 굴원은 마감으로 《회사(懷沙)》 시를 지어 우국충정의 마음을 토로한 후 5월 5일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하여 죽고 말았다. 후세에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해마다 그날이면 대나무통에 쌀밥을 넣어서 물속에 던져 제사를 지내고 또 그의 혼을 건진다 하여 배의 속도겨루기를 했는데 이것이 중국 남방 풍속의 하나인 ‘경도희(競渡戲)’ 즉 ‘룡주놀이’가 되였다고 한다. 이 ‘룡주놀이’의 다른 한 유래는 더 구체적인데 한(漢)나라 건무(建武) 년간에 어떤 사람이 대낮에 장사(壯士) 구회(歐回)에게 와서 말하기를 “나는 옛적 삼려대부(굴원 자신을 가리킴)인데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제지내주는 건 고마운 일이나 그 제물을 문룡(蚊龍)이 항상 빼앗아먹어 난 먹을 수 없으니 제지낼 때 오동잎으로 제물을 싸고 오색실로 동여매여 주면 좋겠다. 이 두 물건은 모두 문룡이 꺼리는 것이다.” 라고 하고는 가뭇없이 사라졌으므로 구회가 이상히 여겨 그대로 했다. 이것이 풍속이 되여 단오날이면 쭝즈(粽子)를 만들게 되였다고 한다. 이 풍속으로 하여 지금도 단오가 되면 중국 방방곡곡에서 쭝즈(粽子)라고 하여 찰밥을 지어 대추 따위를 속에 넣고 대잎에 싸서 만든 음식을 먹는다. 이제는 쭝즈가 거의 일상의 상품화가 되여 우리나라 조선족들도 이런 한족의 단오절 식문화를 받아들여 단오 때가 되면 쭝즈를 별식으로 맛보기도 한다.
우에서 언급했지만 단오절(端午節)의 ‘端午(단오)’라는 어휘가 문자기재로 가장 일찍 보이는 것이 진대(晉代)에 나온 《풍토기(風土記)》에서이다. 하지만 5월 5일을 쇠는 풍속은 훨씬 썩 전에 있었다. 근래에 와서 중국의 많은 학자들이 상기 ‘굴원기념설’에 대해 이는 후세에 와서 부회한 것이라고 하면서 부인하고 있다. 한위(漢魏) 4백 여 년의 그 어떤 문헌기재에도 5월 5일과 관련하여 굴원이 언급되는 것이 없고 그리고 또 전래 민간전설에는 굴원이야기 하나 뿐만 아니라 충신 오자서(伍子胥), 효녀 조아(曹娥), 충신 개자추(介子推), 청백리 진림(陳臨), 월왕 구천(勾踐) 등의 이름도 단오절 기원과 관련되여 여러 가지 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굴원기원설’은 굴원이 사망한 지 몇 백 년도 더 지나서 민간에서 전설로 굳어진 굴원 이야기를 문인들이 가져다 단오절의 기원으로 부풀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사마천의 《사기·굴원렬전(史記·屈原列傳)》에도 굴원이 죽은 날자가 5월 5일이라고 밝힌 것이 없다. 굴원의 사망날자를 5월 5일이라고 밝힌 것은 굴원이 ‘사망’ 후 700여년이 지나서 남조(南朝) 때의 신화지괴소설인《속제해기(續齊諧記)》에서이다.《사기》가 본래 신빙성에서 문제가 있는 건 그렇다 치고 《사기》 이전의 사서에도 굴원을 취급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 《사기》이후 수나라 때의 학자 두태경(杜台卿)은《옥촉보전(玉燭寶典)》이라는 글에서 룡주놀이(競渡)를 하지일의 놀이행사에다 귀속시켰다. 그리고 륙조시기에 편찬된《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도 단오에 쭝즈 먹는다는 말이 없다. 중국 현대시인이며 학자인 문일다(聞一多)선생은 《단오고(端午考)》라는 글에서 ‘단오’를 ‘룡의 명절’로 단정하고 이에 대해 ‘단오절’이 옛날 백월(百越)민족의 룡 토템숭배에서 기원한 것으로 론증하고 굴원기원설을 부정하였는데 이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때문에 단오절 연원은 굴원과는 무관하고 룡주놀이는 룡의 자손으로 일컫는 예전 오월(吳越)지역의 소수민족(문일다는 ‘백월’로 지칭했음)이 5월 5일을 나름대로 룡사(龍蛇) 토템의 제사와 함께 명절로 쇠는 것으로 그 연원이 아주 오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남방의 단오풍습은 주로 ‘룡’토템숭배에 그 연원이 있지만 북방은 지역에 따라 단오날이 다른 양상을 띤다. 단오에 관한 또 한가지 기원설은 두태경의 하지설을 더 심화시켜 론증하면서 단오절이 하지절(夏至節)에서 왔다고 보는 주장인데 그 대표자가 민속학자 황석(黄石)선생이다. 그는 《단오례속사(端午禮俗史)》(1963)란 책에서 선민들의 지혜의 산물인 하력(夏曆)을 근거로 단오절이 하지절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룡주놀이 같은 것도 깊은 의미에서는 역시 악신려귀(恶神厉鬼)를 쫓아내고 역병재앙을 없애버리려는 고대민속에서 온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양수(홀수)를 생기로 여겼던 음양학의 영향을 받아 기수가 겹쳐지면 생기가 갑절 더해진다고 여겨 이런 날들인 3월 3일이나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을 예전에는 중요하게 여겨 민속명절로 굳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단오는 일 년 중 양기(陽氣)가 가장 성하여 ‘천중가절’이라 하여 큰 명절로 지내왔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단오를 고찰한 것이다.
또 다른 기원설은 단오를 ‘룡의 날’이나 ‘천중가절’로 여기고 길상일로 보는 것과는 정반대로 ‘단오날’을 아주 ‘나쁜 달의 나쁜 날’로 보고 단오를 쇠는 것이 그 해로움을 대처하기 위하여 행해진 풍습이라고 하는 주장이다. 예전 선진시기에 북방에서는 ‘오월 오일’을 불길하여 꺼리는 날 즉 ‘기일(忌日)’로 여겼다. 전국시기 제나라 재상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은 오월 오일에 태여났다 하여 하마트면 버려져서 죽을 번 하였다. 왕충(王充)의《론형(論衡)》에도 “정월과 오월에 출생하는 자식은 부모를 죽인다고 여겨 양육하려 하지 않는다(讳举正月、五月子。以正月、五月子杀父与母,不得举也。已举之,父母祸死).”라는 금기를 비판한 대목이 있다.
사실 오월은 기후변화가 심하고 자연재해가 잦으며 벌레나 짐승들의 활동이 극성해지는 시기이므로 사람도 그런 자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재액을 피하고 온역을 물리치며 자연에 적응하여야 하였다. 특히 많은 지역에서는 오월 단오날 오시(午時)에 오독(지네, 독사, 전갈, 벽호, 두꺼비 따위의 독)의 피해가 가장 크다고 여기고 이를 피면하려는 풍습이 생겨났던 것이다. 신께 제사를 지내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고 재앙을 물리치고 무병하기를 바라는 행위이다. 이를테면 단오날 신께 제사를 지내기전 무(巫)들이 행하던 ‘향탕 목욕’도 그중의 일례이다. 굴원(屈原)의《구가·운중군(九歌·雲中君)》에는 강신을 위해 “란초 향탕에 목욕하니 향기 넘치는 (浴兰汤兮沐芳)” 무녀가 나오는 대목이 있는데 몸을 정결히 함에 있어서 오랜 옛날부터 란초가 사용되였음을 알 수 있다. 《대대례기·하소정(大戴禮記·夏小正)》에는 “오월에는 란초를 채집하여 목욕할 때 쓴다(五月,蓄兰为沐浴也).”라는 구절이 있으며 남조(南朝)시기에 와서는 량(梁)나라 사람 종름(宗懔)이 쓴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는 “오월오일을 욕란절이라고 이른다(五月五日谓之浴兰节).”라고 하였다. 단오날 이 풍속이 대개 당송시기에 와서 욕란절이 된 것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단오제는 천제뿐 아니라 지방에 따라 구체적인 인물들이 신의 형상으로 등장하는데 굴원, 조아(曹娥), 장천사(張天師), 종규(鍾馗)… 등을 제사지내며 안녕, 무병, 벽사를 빌었고
특히 민간에서는 단오날에 흙으로 장천사 형상을 빚고 쑥을 꽂아 머리털을 형상하고 마늘을 달아 손을 형상하여 그것을 문우에다 올려놓아 벽사, 피재를 하였다. 장천사 형상을 그려붙이는 곳도 있었고 그런 그림을 팔기도 하였다. 명대에 와서는 민간에 단오를 ‘녀아절’이라고 하여 시집간 딸을 친정에 귀녕하게 하는 습속이 있었으며 돌이 채 안되는 어린애를 외할머니다 맡겨두어 이른바 ‘벽사 피재’를 하기도 하였다. 이른바 타오(躱午) 습속인데 악일인 단오날을 피하려는 의도에서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바 단오절의 유래와 내용에 대하여서 딱히 꼭 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주 오래전(굴원 이전)에 ‘오월 오일’이 중시되여 왔고 제사행위가 있었다는 것과 지방에 따라 기후에 따라 풍습 내용이 다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함의가 달라져 왔다는 것이다. 특히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때에 빈번한 전쟁과 인구의 대량 이동으로 말미암아 중원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광대한 지역에서 민족 융합이 이루어짐에 따라 각지 명절문화와 월령문화가 서로 교류, 융합도 함께 이루어지게 되였다. ‘단오절’이라는 이름이 문헌에 처음 기재된 것이 진대(晉代) 주처(周處)의《풍토기(風土記)》에서부터이다. 이렇게 ‘단오절’은 기나긴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형성된 하나의 정합과정으로서 단오명절의 개념과 내용에 있어서도 각지에서는 나름대로 취사선택을 할 수이 있는 그런 차원에서 정립된 단어라고 볼 수 있다. 굴원전설도 바로 이 시기에 단오와 결연을 맺게 된다.(《한족풍속사(漢族風俗史)2》학림출판사)
하다면 조선민족은 오월오일을 언제부터 ‘단오’라는 의미로 쇠였는가? 우에서 소개한 내용으로 추리해봐도 ‘단오’라는 이름으로 쇤 것은 가장 오래야 진대(晉代)의《풍토기(風土記)》가 나온 그 이후일 것이니 말이다. 그전에 이 단어가 쓰였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한자어휘로 수입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민족은 ‘음력 오월 오일’을《풍토기》나오기 전에 즉 ‘단오’라는 한자어를 부르기 전에 어떻게 호칭했을가? 다른 한자어나 고유어에서 찾아야 하는데 고유어로는 ‘단오날’을‘수리날’이라고 일렀다. 수리날은 무슨 뜻인가? ‘수리날’의 그 유래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ㄱ, 수리란 ‘신(神)’이라는 뜻과 ‘높다’는 뜻으로 ‘높은 신이 오시는 날’이란 뜻이라고 주장하는 설이 있다. 근거로 제주도 무당굿에서 신이 내리도록 세운 대를 ‘수리대’라고 부르는데 이에 비추어 ‘수리날’도 자연히 ‘신이 내리는 날’이라는 것이다.
ㄴ, 수리라는 말은 ‘수두’나 ‘수릿두레’에서 온 것으로 ‘수두’란 명산승지에 자리 잡은 단군의 제단이나 신단을 말하는 것이고 그 둘레에 사는 두레군들이 5월 농사 한철과 10월 추수 뒤에 천지에 기원과 감사를 드리는 그 제전을 ‘수리’ 또는 ‘시루를 올린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ㄷ,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단오날을 속어로 ‘수릿날’이라고 한다. 수리는 우리말로 수레이다. 이날에는 쑥으로 떡을 만들 때 마치 수레바퀴모양의 떡을 만든다. 까닭에 수리날이라고 한다.” 즉 단오날 산에서 자라는 수리취(戌衣翠)라는 나물을 뜯어 떡을 해먹기도 하고 쑥으로 떡을 해서 먹는데 떡의 그 모양이 마치 수레바퀴처럼 둥글기 때문에 수리날이라는 명절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경도잡기(京都雜記)》에서도 수리날(戌衣日)로 쓰면서 수리는 우리말로 수레(車)라고 하였다.
ㄹ, 《렬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는 수리날을 ‘水瀨’라고 하고 물여울로 해석하여 “이 밤(단오날밤)에 물여울에 밥을 던져 굴원을 흠향케 한다.”라고 하였다. ‘수리날’의 어원은 이상 렬거한 네 가지 외에 이날은 ‘해가 머리 정수리에 오는 날’이라는 뜻을 나타낸 말이라고 주장하는 설이 있다. 단오는 단양(端陽) 또는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 자체가 이날 정오에 정수리 바로 우에서 내리비추고 있는 태양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태양을 중히 여기고 기리는 마음에서 여름의 해살이 정수리에 바로 내리 쬐이는 이 날을 명절로 삼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수리날 정오에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다든지 쑥을 머리 위에 꽂는다든지 하는 풍속이 다 이런 까닭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필자의 생각에는 ‘수리날’의 ‘수리’ 어원을 ‘수리→ 술이→술→숟’으로 재구하여 볼 수 있으며 고대문자 ‘首’의 발음과 뜻에도 혹시 련계가 되지 않을가 한다. ‘首’는 상형문자로 머리털이 나있는 ‘머리’를 뜻하며 또한 ‘첫째, 으뜸, 최고, 우두머리’ 의 뜻으로 수리날이 일 년 중 ‘으뜸가는 날’ 또는 ‘최고의 날’의 뜻하는 것이라고 본다. ‘양기가 가장 성하고 해빛이 가장 많은 날, 가장 높고 환한 날’이란 뜻에서 ‘술의날→ 수리날’이 된 것이고 따라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보름날’이 이른바 ‘달의 날(명절)’인데 반하여 이 ‘수리날’은 옛날의 이른바 ‘해의 날(명절)’이라고 하는 주장에 근거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생각을 해본다. 이 설이 성립된다면 한마디로 ‘수리날’은 본디 ‘해를 제지내는 날’인 것이다. 그리고《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삼척의 풍속에 그 고을 사람들이 오금(烏金)으로 만든 비녀를 작은 상자에 넣어서 동헌 동쪽 모퉁이에 있는 나무밑에 숨겨두었다가 매해 단오날이 되면 아전이 그것을 꺼내여 제사를 지내고 다음날 다시 감추어 둔다. 전설에 따르면 그 오금비녀는 고려 태조 때의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뜻이 무슨 리유인지 알 수 없고 또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 행사가 계속된다. 이 행사를 관에서도 금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기재한 것이 있는데 달리 해석할 길이 없는 걸 보아 단오제사에 상징의미로 비녀는 머리(首)와 련계되고 동쪽은 ‘해’와 련결되여 천신제사에 그 뿌리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더 고증이 필요할 것 같다. 예전의 북방 여러 민족들도 흔히 이 날을 더욱 숭상하여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로 삼았다.
예전에 금(金)나라에서는 이 날에 하늘에 제사지내고 활쏘기를 하고 격구(擊毬)놀이를 하는 등 아주 성대한 놀이를 벌리여 온 나라 사람들이 즐겼다고 한다. 북방은 여름계절이 늦게 시작되고 또 빨리 지나가기에 사계절 개념이 아니고 예전의 겨울과 여름 2계절 개념으로 볼 때 음력 5월 5일이 뜻깊은 날이였던 것이다. 이런 수리날의 개념을 깔아두고 후에 중원문화의 단오문화를 수용하게 되였기에 조선민족은 룡주문화를 수용함에 있어서는 주로 굴원과 문화결연이 된 단오문화만을 받아들이였다. 즉 조선민족단오문화에서 굴원이 절대적인 문화원형으로 자리잡게 되였고 그외의 비슷한 전설들 이를테면 오자서이야기라든가 개자추이야기 같은 것은 조선민족 단오문화에는 발을 붙이지 못하였다. 이는 오랜 세월을 두고 내려오면서 량반문인사대부들의 유가정통사상에 기초하여 중국 단오문화를 수용할 때 특히《초사(楚辭)》를 중시하고 사랑한 것이 그 바탕이 되여 굴원을 수용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굴원문화는 조선문화발전에 아주 큰 영향을 주었다. 고려 때에는 소체(騷體)문학이 한때 성행하였는데 허다한 문인들이 초사를 모방하여 부를 지었다. 포은 정몽주(鄭夢周)의《사미인사(思美人辭)》가 바로 대표적인 소체시가이다. 조선조 시기에도 초사를 열독하고 연구하는 것이 류행되였는데 당시 저명한 학자 김시습(金時習)은《리소(離騷)》를 모방하여《의리소(擬離騷)》,《조상루(弔湘累)》,《멱라연(汨羅淵)》 같은 작품을 지어 당시 조정의 간녕배들을 조롱하였다. 조선문학사에서 ‘단오절’과 ‘굴원’은 한데 얽히여 표현되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시조는 두말할 것도 없고 근대 소설에서도 “오월이라 단오 명절은 굴삼려(굴원)의 넋이로다. 멱라수 맑은 물에 조리 드는 아이들아 다투어 일지 마라 천고원사 굴삼려의 넋을 건져 무엇하리.”(백화성문학전집) 등 ‘단오’와 ‘굴원’을 한데 묶어 표현하고 있다. 이만치 조선민족의 단오문화 수용은 룡주문화라기보다는 굴원에 맞춰져 있었다. 이는 조선민족의 단오문화라는 민속문화에 굴원을 수용함으로써 고결하고 풍아한 운치를 더해줌과 동시에 굴원의 애국정신을 심어주고 발양하는 것으로도 된다.
아래에 조선민족의 재래의 단오맞이 풍속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단오날에 새옷을 입는데 이를 단오빔(비음)이라고도 한다. 빔은 ‘명절이나 잔치 때에 새 옷을 차려입는 것 또는 그 옷’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보통 설빔, 단오빔, 추석빔이 있다. 《세시풍요》의 단오에 관한 시 중에 “단오에 입는 옷을 술의(戌衣)라고 한다(端午衣曰戌衣).”는 말이 있다. 단오명절을 맞이하여 특별히 지어 입는 옷이다. 단오빔은 설빔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옷감의 재료에서 차이가 있다. 이날 젊은 부녀자들은 록색 저고리에 빨강치마 즉 록의홍상(綠衣紅裳) 차림이고 지체있는 부인들은 계절에 맞게 흰 모시저고리에 파란 모시치마를 입기도 한다.
《동국세시기》에는 “단오에 부채를 서로 선사하고 소녀들이 청홍의 새 옷을 입고 창포 삶은 물에 목욕도 하고 머리도 감는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남녀의 새 옷, 청홍의 새 옷, 새로 지은 초록색 저고리와 붉은 치마와 같은 표현은 단오에 새 옷을 입었음을 말한다. 팔월 추석과 정월 설, 5월 단오 같은 큰 명절에는 아이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 옷을 선물 받는 특별한 날이다. 색동은 주로 돌부터 6, 7세 어린아이의 저고리, 마고자, 두루마기에 사용되었다. 특히 까치설에 즐겨 입는다고 하여 까치저고리, 까치두루마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색동을 제외하고도 단오가 되면 추석이나 설 때와 같이 새 옷을 만들어 입거나 준비해두었던 좋은 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창포 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어 기기다 ‘수복(壽福)’이란 두 글자를 새기고 그 끝에 연지를 발라서 머리에 꽂는다. 이러면 사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역시 단오라는 이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명절에 조신하였음을 말해준다.
단오제사: 단오를 맞이하여 지내는 조상제사를 말한다. 절사(節祀)란 계절이나 명절에 맞추어 지내는 제사를 가리킨다. 단오날 아침 집집마다 수리취떡과 전을 마련하여 조상님께 제를 올리며 집안의 평안과 오곡의 풍년 그리고 자손의 번창을 비손한다. 일반 제사와는 다르게 집안의 가장이 술을 한 잔 붓고 절을 두 번 하는 것으로 끝마친다.《례기(禮記)》에서는 천자가 중하(中夏) 즉 오월에 “앵두를 제수로 삼아 먼저 사당에 올린다(羞以含桃.先荐寝庙).”고 하였는데 여기서 ‘함도’란 곧 앵두를 가리킨다. 단오 때 앵두가 익으므로 제철 과일이라 하여 사당에 천신하는 것이다. 앵두가 익을 때면 남녀들이 앵두가 있는 야외로 가서 노는데 이를 앵두모임이라 한다. 단오에는 마을마다 수호신에게 공동체 제사의례를 지내는 경우가 많다. 가정의 명절제사는 일반 제사와는 다르게 집안의 가장이 술을 한 잔 붓고 절을 두 번 하는 것으로 끝마친다. 예전에는 이렇게 집에서는 명절절사를 지냈지만 후에 점점 이런 행사가 사라지고 지금은 단오절사를 지내는 것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일부 산간 지역에서 산멕이기라는 제를 한 것이 있었는데 원래는 예전에 4월 초순에 산간지역 화전민들이 하는 굿이였지만 동북 산악지대의 기후상 특성으로 단오날에 굿이 아닌 제를 지냈다. 대개 단오날 동이 틀 무렵 산에 올라가 먼저 나무에 산멕이기줄을 걸어놓고 상차림하고 잔을 올리고 절을 하며 소원을 빈다. 제가 끝나면 제물을 조금씩 덜어 내여 산에 두는데 산신령께 바치는 것이라 한다. 이른 새벽에 산에 가서 제를 지내고 해가 뜰 때쯤 내려온다. 역시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다.
단오 음식: 단오에 먹는 민속음식으로는 수리취떡, 쑥떡을 비롯한 여러 가지 떡과 오이소박이, 앵두화채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수리취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서 어린잎은 식용하는데 동북아의 산이나 들에 분포되여 있다. 옛날에는 쑥을 구설초(狗舌草)또는 술의초(戌衣草)라 하여 수리치와 구별하지 않고 같은 이름으로 사용했다. 수리취떡은 수리취를 채취하여 생것은 두드려 삶아서 차좁쌀가루 또는 쌀가루에 버무려 멥쌀가루와 섞어 떡을 만든 음식이다. 쑥떡도 같은 방법으로 한다. 쑥절편은 쑥을 골라 데쳐서 꼭 짜가지고 떡을 할 때 넣고 함께 쳐서 둥글게도 만들고 갸름하게도 만들어서 참기름을 발랐다. 쑥송편은 쑥을 깨끗이 씻어서 삶아 쌀가루를 넣고 고루 섞이도록 잘 주물러서 파란색이 나도록 하여 쪄서 만든 음식이다. 향긋한 쑥내음 때문에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별미이다. 단오에는 또 명절음식으로 웃기떡을 해서 먹는데 각서(角黍)라고 한다. 찹쌀가루에 대추를 이겨 섞고 꿀에 반죽하여 깨소나 팥소를 넣어 송편처럼 만든 다음 기름에 지진 음식으로 떡음식의 하나이다. 앵두화채를 만드는 방법은 먼저 잘 익은 빨간 앵두를 깨끗이 씻어서 살짝 씨만 뺀다. 다음 물에 꿀이나 엿을 넣고 끓인 후 식힌다. 그리고 앵두의 절반 량을 갈라서 채에 밭아 즙을 내여 꿀물과 섞으며 나머지 앵두는 화채그릇에 담고 거기에 앵두꿀물을 부은 다음 잣을 띄운다. 또 다른 방법은 앵두를 따서 깨끗이 씻고 씨를 빼서 설탕이나 꿀에 재워 두었다가 먹을 때 오미자 국물에 넣고 실백을 띄워 낸다. 그러면 시원하고 달콤한 화채가 된다.
창포주(菖蒲酒)·각서(角黍)·어알탕: 단오에는 창포로 빚은 창포주(菖蒲酒)를 마시는데 창포주 빚는 법은 다음과 같다. 창포를 끓인 물을 멥쌀가루에 붓고 죽을 쑤듯 버무려서 범벅을 만든 후 차게 식혔다가 누룩을 넣어 골고루 저은 다음 밑술을 잡아주고 술독에 담아 단단히 봉한 후 스무날 발효시킨 후 불순물을 걸러낸다. 찹쌀을 불궈 고두밥을 지어 차갑게 식힌 후 그것을 밑술에 넣고 고루 버무려 덧술로 술독에 담는다. 창포는 늪이나 도랑의 가장자리에서 자라는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향기가 있다. 뿌리줄기는 통통하고 마디가 많으며 잎은 뿌리줄기에서 뭉쳐나고 가는 선 모양이다. 양력 6, 7월 경에 연록색 꽃이 꽃줄기 끝에 수상화서로 피고 열매는 긴 타원형의 붉은 장과를 맺는다. 뿌리는 약용한다. 단오에 창포물을 만들어 머리를 감는데 쓰거나 술을 빚는데 쓴다. 단오에는 또 웃기떡을 해서 먹는데 각서(角黍)라고 한다. 찹쌀가루에 대추를 이겨 섞고 꿀에 반죽하여 깨소나 팥소를 넣어 송편처럼 만든 다음 기름에 지진 음식으로 떡음식의 하나이다. 어알탕은 소고기 대신 민어 같은 흰 살 생선의 살을 다져 양념하여 완자를 빚어 넣고 끓인 탕이다.
단오명절의 속신과 금기: 우리 민족도 단오날을 세상 만물이 살아 움직이는 기운이 가장 왕성한 날로 여겨 다른 명절보다 여러 가지로 금기(禁忌)가 많았다. 그래서 놀이나 심지어 음식에도 병이나 액을 물리치기 위한 주술적인 내용이 많았었다. 그중 적지 않은 것들 이를테면 ‘단오날 친정나들이’ 같은 것이 한족의 ‘녀아절’에서 온 것처럼 한족 단오문화를 수용한 것이다. 단오날에는 산이나 들에 나가 약쑥도 뜯는데 원래는 오시(午時)에 뜯는 쑥이 약효가 좋다고 하지만 지금은 북방 한족 풍습의 영향을 받아 꼭두새벽에 나가 쑥을 뜯어온다. 단오장(端午粧)은 음력 5월 5일 단오에 나쁜 귀신을 없앤다는 뜻에서 행하던 녀성들의 치장인데 벽사의 의미를 담아 옷을 해 입기도 하고 창포탕(菖蒲湯)에 머리를 감기도 하며, 여러 가지 치장을 하는 것을 말한다. 《동국세시기》에서는 창포탕에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고 목욕을 하고 홍색과 록색의 새옷을 입으며, 머리에는 창포 비녀를 꽂는 것을 단오장이라 했다. 그리고 《세시잡기》에서는 단오날 아이들을 위하여 창포를 베여 만든 작은 인형이나 호리병박 모양의 장신구를 차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다. 단오날 창포 끓인 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에 윤기가 나고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다고 하여 녀자들은 창포잎과 뿌리를 삶아 창포탕을 만들어 머리를 감았다. 창포탕에 머리를 감고 창포비녀를 꽂는다. 창포비녀는 창포 뿌리를 깎아서 만든 것으로서 부녀자들이 역병을 물리치려는 액막이로 꽂았다. 붉은 연지를 바른 창포비녀를 머리에 꽂으면 액을 물리치고 두통이 생기지 않고 무병하다고 믿었다. 그 때문에 농가에서는 습지나 도랑에 창포를 일부러 심어두기도 하였다.
또 단오날은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날이기에 이날 부적을 쓰면 잡귀를 물리칠 뿐만 아니라, 집안의 재액도 모두 없앨 수 있다고 한다. 단오날이 되면 그해 불길한 것을 제거하기 위해 주부가 절에 가서 부적을 받아와 집안의 방문 우에나 부엌 같은데 벽에 붙였다. 이런 부적을 단오부(端午符), 천중부적(天中符籍), 치우부적(蚩尤符籍)이라고도 한다. 또 장명루(長命縷)라는 것이 있는데 빨강, 노랑, 파랑, 감장, 하양의 오색실로 짜서 만든 팔찌인데 귀신과 병화를 물리치고 오래 살고 건강하라는 뜻으로 단오날에 팔목에 낀다. 속명루(續命縷)라고도 부른다. 단오날 풍습으로 지금도 어김없이 전승되여 지켜지고 있는 것이 약쑥을 베여 한 묶음 대문에 놓아두거나 달아매두면 재액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 풍속이다. 말린 약쑥은 아플 때 뜸을 뜨거나 먹기도 했다. 예전에는 수리취를 말려서 부싯깃으로 이용했다. 농사의 기풍을 위해 나무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놓아 많은 열매가 열리기를 비는데, 특히 단오 무렵에는 대추가 막 열리기 시작하므로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고도 한다. 그리고 단오에 도장을 만들어 두면 신수가 좋다고 하여 모과나무나 대추나무로 도장을 만들어 둔다. 그리고 주술용, 약용으로 쓰는 마늘도 단오날에 캐낸 것이여야만 효력이 크다고 한다. 애호(艾虎)는 쑥, 대쪽, 헝겊 따위로 만든 호랑이 형상인데 녀자들이 단오에 이것을 만들어 머리에 이면 재액을 물리친다고 한다. 단오에 내리는 비를 단오물이라고 부른다. 단오물은 실상 단오날 비가 오느냐 안 오느냐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기후점(氣候占)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오물에 대한 해석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어떤 곳에서는 단오에 비가 오면 논농사에 좋다고 한다. 대부분 지방에서는 단오에 비가 오는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지만 극히 일부 지방에서는 달리 좋지 않게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각 지역의 자연지리특성에 따라 기후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오부채: 단오부채란 단오날에 선물로 주고받는 부채를 말하는데 단오선(端午扇), 절선(節扇)이라고도 한다. 단오선은 모양과 재료에 따라 접선(摺扇), 합죽선(合竹扇), 단선(團扇) 등으로 분류된다. 예전에 조정에서 단오를 맞아 신하들이 단오첩을 올리면 대궐의 각 전(殿)의 기둥에 붙인다. 지방에서는 단오 때 부채를 만들어 진상하고 친한 사람에게 차등 있게 보낸다. 그래서 예전에 시골에서 생색을 내는 것은 여름에는 부채요 겨울에는 책력이라고 하였다. 흰 살로 이루어진 부채를 백첩(白貼)이라 하고 살에 옻칠한 것을 칠첩(漆貼)이라 하는데 살대가 40~50개나 되는 큰 부채이다. 부채의 종류는 승두선(僧頭扇), 어두선(魚頭扇), 합죽선(合竹扇), 반죽선(斑竹扇), 외각선(外角扇), 내각선(內角扇), 살 넓은 것, 좁은 것, 고리 있는 것, 고리 없는 것이 있었을 뿐이 아니라 색채도 다양했다. 예전에는 단오절이 되면 지방에서 부채를 진상하면 임금이 그것을 신하들에게 하사한다. 그러면 부채를 받은 이들이 그것을 또 일가친척과 친지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풍습이였다. 이런 단오명절 때의 진선과 사선의 풍습에 대해서는 《동국세시기》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공조에서는 단오선을 만들어 바친다. 그러면 임금은 그것을 각 궁에 속한 하인과 재상, 시종에게 나누어준다. 그 부채 가운에 가장 큰 것은 흰 화살 같은 대나무살이 40개부터 50개에 이른다. 이것을 백첩이라 하고 칠한 것을 칠첩이라 한다. 부채를 얻은 사람은 대개가 부채에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그리거나 기생,무당들이 가지는 부채에는 버들가지, 복사꽃, 련꽃 나비, 붕어, 해오라기 등 그림을 그리기 좋아한다. … 전라도와 경상도의 감사와 통제사는 절선(節扇)을 올린다. 그리고 또 예에 따라 조정의 신사(神祀)와 친지 등에 선사한다. 그리고 부채를 만든 수령도 진상하고 선사한다.”라고 하였고 《렬양세시기》에서도 “공조와 전라도, 경상도 두 감영과 통제영에서는 단오가 되면 부채를 만들어 진상한다. 그러면 조정에서는 이를 시종관 이상 삼영에까지 모두 례에 따라 차이가 있게 나누어준다. 그러면 부채를 얻은 사람은 다시 그것을 자기의 친척, 친구, 묘지기, 소작인에게 나누어준다. 그러므로 속담에 시골에서 생색내는 것은 여름에는 부채요, 겨울에는 달력이라 했다.”라고 하였으며《경도잡지(京都雜志)》에도 “전라도와 경상도의 감사와 병사는 부채를 조정과 친구들에게 보내준다.”는 등 기록이 있다. 신하들이 단오첩을 올리면 대궐 각 전(殿)의 기둥에 붙인다. 지방에서는 단오 때 부채를 지어 나라에 진상하고 친한 사람에게 차등 있게 보낸다.
대추나무시집보내기: 음력 5월 5일 단오에 대추나무 열매가 많이 열리도록 대추나무를 시집보내는 풍속을 말하다. 《동국세시기》에는 “단오날 대추나무를 시집보내는 것은 정오가 좋다. 또 단오날 정오에 도끼로 여러 과일나무의 가지를 쳐내야 과일이 많이 달린다. 지금의 풍속은 이를 본뜬 것이다.”라고 했다. 대개 과일나무시집보내기는 정월 초하루나 정월 보름날에 행하는 풍속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추나무 시집보내는 풍속도 단오날과 정월초하루에 행한다는 두 기록이 있어 시기가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지만 대추나무는 주로 단오날에 행하는 풍속으로 전해져 온다. 고대중국의 기록인 《농상의식촬요(農桑衣食撮要)》에는 “오월(五月) 오일(午日)에 대추나무 시집보낸다고 하여 도끼로 나무 위를 두루 잘 두드리면 열매가 크게 맺히고 맛도 좋아진다.”라고 했다. 반면 《농상집요(農桑輯要)》에는 “정월 초하루 해가 뜰 때 도끼를 뒤집어 얼룩얼룩한 방망이로 두드리는 것을 이르러 대추나무시집보내기(嫁棗)라고 하는데 두드리지 않으면 꽃은 피지만 열매가 없고 자르면 대추가 시들거나 떨어진다.”라고 하여 정월 초하룻날 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두 기록의 시기가 다르지만, 도끼를 사용하여 두드리는 방법은 동일하다. 대추나무를 시집보내는 풍습은 사람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것과 마찬가지로 식물도 혼인을 하여야 열매를 맺는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오날 민속놀이
중국조선족은 단오명절의 대부분 풍속을 전승하여 왔다. 뿐만 아니라 단오날이 되면 민속놀이 큰 행사로 운동회까지 열군 하였다. 운동회 주요종목은 바줄당기기(줄다리기), 씨름, 그네뛰기, 널뛰기, 배구, 축구 등이고 어떤 곳에서는 장기시합도 종목에 넣었다. 마을별로, 현(縣) 별로, 도시별로 하는 경우도 있고 더 범위를 넓혀 운동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문헌기재에는 1913년에 연길 국자가에서 이틀간 운동대회를 하였는데 룡정 명동중학교 학생들이 참가한 력사기록이 있다. 1949년 새 중국 탄생 후 단오명절을 경축하는 이런 조선족 운동대회는 줄곧 지속되여 발전되다가 ‘문화대혁명’ 때 잠깐 중단되였고 개혁개방이 되면서 다시금 활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전해내려 오던 씨름, 그네뛰기, 널뛰기는 민간에서 대중적인 오락놀이로 계속 성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우수한 국가 민족체육 경기종목으로 발전되였다. 그리고 조선족씨름은 2011년 5월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에서 비준한 국가급 무형문화유산확장종목 명부에 오르기도 하였다.( 《사진과 함께하는 중국조선족 무형문화유산 산책》참조) 아래에 대중들이 익히 아는 단오날 민속놀이 몇가지를 다시 한번 반추해보기로 한다.
그네뛰기: 그네의 유래에 대하여《동국세시기》에서는 “《고금예술도(古今藝術圖)》에 말하기를 북적(北狄)들이 한식날에 그네뛰기를 하며 경쾌하게 뛰여오르는 훈련이다. 그것을 후일에 중국녀인들이 배운 것이다. ”라고 하였다. ‘북적’이란 예전에 북쪽 지방에 사는 민족을 중원에서 낮잡아 이르던 말이다. 그네뛰기는 북방 소수민족의 놀이였던 것이 당나라 때 중원에 수용되여 한식날 당나라 궁중에서 반선희(半仙戲)라는 이름으로 성행되였고 그 놀이가 단오날로 옮겨왔다고 한다. 일명 추천이라고도 하는 이 그네뛰기는 우리 민족에게는 민족적 정서가 매우 짙은 전통적인 민속놀이이다. 그네뛰기는 무릇 녀성이면 로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참여할수 있는 놀이로서 젊은 녀인들은 너나없이 그네터에 가기를 즐겼고 중년부인들도 뒤떨어질세라 한몫 끼였으며 나이가 많은 녀성들도 앉음그네나마 뛰여보는 것이 풍속으로 되였다. 또한 그네뛰기는 주로 지역적으로 성행되는 강강술래나 놋다리밟기 같은 놀이와는 달리 전 민족적인 공통적인 놀이로서 단오날이거나 추석날이면 방방곡곡 우리 민족이 모여사는 곳이면 그네뛰기가 벌어졌고 그네터에는 부녀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네뛰기를 하려면 놀이기구인 그네가 있어야 한다. 그네는 큰 나무의 가로 뻗은 큰가지나 땅 우에 세운 두 나무기둥 우에 횡목을 걸쳐놓고 거기에 긴 바줄을 매여 늘이고 줄 끝에 발판을 달아 만든다. 그리고 줄에는 무명으로 된 안전줄을 매단다. 그네줄의 길이는 보통 10메터 좌우로 한다. 그네뛰기에는 한 사람이 뛰는 외그네와 두 사람이 마주 서서 함께 뛰는 쌍그네가 있다. 그네뛰기는 승부를 겨루는 경기놀이로서 그 경기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로 그네앞에 있는 높은 나무에서 일정한 나뭇가지나 꽃 가지를 목표물로 정하고 그것을 발끝으로 차거나 입으로 무는것 으로 내기를 하였다. 이것이 가장 일찍부터 있었던 경기방법이다 둘째로 그네 앞쪽에 방울줄을 높이 달아놓고 그것을 차도록 하는 것이다. 경기의 진척에 따라 줄을 조종하여 방울줄을 점점 높여감으로써 그네가 오르는 높이를 측정하였다. 셋째로, 그네줄 발판밑에 자눈금이 표시되여있는 줄을 매여 놓고 그네줄이 정지한 지점으로부터 공중에 올라간 높이를 측정하여 승부를 결정하는 방법이다. 이 세 가지 방법가운데서 방울을 차는 방법이 가장 편리하고 경기상황에도 알맞기에 오래 동안 이어지고 있다. 그네뛰기는 오랜 전통을 지닌 조선녀성들의 민족적인 감정 정서에 맞는 민간놀이이고 특히 녀성들의 복부 힘을 키워주고 대담성과 용감성을 키워주는 좋은 전신운동일 뿐만 아니라 경쾌하고 신바람 나는 놀이여서 단오명절의 명절분위기를 한껏 올려주는 민속적 의의가 있는 놀이이다. 그네뛰기는 1986년 2월에 국가체육위원회에서 《그네뛰기경기 규칙(초안)》을 제정하였고 같은 해에 전국 소수민족체육운동회 정식 경기종목으로 확정되였을 뿐만 아니라 2006년에는 ‘널뛰기’와 함께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에서 비준한 제1차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적 종목명부에 오르기도 하였다. ( 리임원 등 저《사진과 함께하는 중국조선족 무형문화유산 산책》참조)
씨름: 씨름은 두 사람이 맞서서 힘을 겨루고 재주를 부려 상대를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하는 경기놀이이다. 조선씨름은 조선민족이 예로부터 즐겨온 오랜 력사를 가진 전통적인 민속경기의 하나이며 남성들의 대표적인 놀이이다. 씨름은 일찍 4세기경으로 추측되는 옛무덤벽화에도 나오는데 두 사람이 서로 허리를 잡고 씨름하고 그 옆에 구경 혹은 심판을 하는 사람이 서있는 광경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씨름이 아주 오래전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그 씨름그림을 18세기의 씨름그림과 대비해보면 옷차림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씨름하는 기본 방법은 거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씨름은 단오날의 남자들의 놀이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다. 각지에서는 단오날이면 반드시 씨름대회를 열었다. 씨름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두 사람이 마주 꿇어앉아서 각기 오른손으로는 상대자의 허리 샅바를 잡고 왼손으로는 상대자의 다리샅바를 잡는다. 피차 준비가 다 되면 심판원의 호령에 따라 일시에 일어나서 서로 들고 걸고 다리를 안으로 감고 밖으로 감으며, 잡아 두루고 일어나는 등 여러 가지 기교로 싸워 먼저 넘어지는 이가 지는 것인데 누구든지 어느 한쪽이 먼저 몸이나 손이 땅에 대면 지는 것으로 된다. 흔히 아기씨름, 중씨름, 상씨름으로 나뉘는데 아기씨름은 보통 샅바를 쓰지 않는다. 씨름형식에는 바른 씨름(오른씨름), ‘왼씨름’과 ‘띠씨름(허리띠씨름)’이 있다. ‘오른 씨름’이란 왼쪽 다리에 샅바를 끼고 고개와 어깨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하는 것이고 ‘왼씨름’이란 샅바를 오른쪽 다리에 끼고 왼쪽 어깨를 대고 하는 것이며 ‘띠씨름’이란 허리에다가 띠를 매어 그것을 잡고 하는 것이다. 그외 샅바없이 하는 민둥씨름, 그냥 선채로 하는 선씨름도 있다.
강릉단오문화제
씨름을 하는 데는 배지기, 등지기, 딴죽걸이, 무릎잡이, 꼭두잡이, 안치기, 접치기 등의 여러 가지 씨름수가 있는데 례하면 샅바를 쥔 채 상대편을 앞으로 당겨서 배 위로 들어 올린 후 옆으로 돌려 넘어뜨리는 배지기 씨름수만 하여도 ‘왼배지기’, ‘오른배지기’, ‘엉덩배지기’, ‘맞배지기’ 따위가 있다. 주로 팔을 리용하는 씨름수를 ‘팔재간’이라고 하는데 ‘안무릎치기’, ‘뒷 무릎치기’, ‘등치기’, ‘덜미잡이’ 등이 있고 주로 다리재간을 리용하는 씨름으로는 낚시걸이, 다리후리기, 안걸어 젖히기, 발등걸이 모두걸이, 맞걸이, 샅걸이 등이 있다. 씨름군 중에서 힘이 세고 손이 빠르고 하여 련전련승하는 이를 ‘판막음’ 또는 ‘판막이’라고 한다. 라윤출의《조선의 씨름》(1958)에 따르면 예전에는지역에 따라 8도 씨름이 대동소이하게 약간씩 다른 지방특점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반도 중부 서울, 경기지역은 매년 봄과 가을에 씨름경기가 펼쳐지는데 바른씨름과 왼씨름 두가지를 따로따로 진행하였다. 일부 지방에서는 허리띠시름만 하는데도 있었다. 평안도씨름은 된샅바걸이와 망걸이 식으로 경기가 진행되였고 황해도씨름은 왼샅바걸이와 개량씨름방식을 적용하는데 사월초파일, 오월단오날에 그네뛰기와 함께 큰 씨름놀이가 벌어지며 가을 중양절에도 진행한다. 농악이 울리고 우승자에게는 기묘하게 그린 탈을 얼굴에 씌워주고 군중들은 탈춤을 위시하여 한바탕 춤판을 벌린다. 황해도씨름에서의 개량씨름이란 다리 샅바 길이를 80센치메터로 하고 왼손을 적수의 다리 샅바에 끼우지 않고 다만 두가닥을 모아 잡으며 오른손으로 적수의 허리샅바를 잡되 적수의 허리 중추이상을 넘어가지 않게 하려는 형식이다. 경상도 씨름대회는 주로 대보름날과 2월에 하는데 제물을 성황당 고목 밑에 차려놓고 제를 지내고 농악을 울리며 마을을 단위로 한다. 단체전이 있고 개인전도 있는데 특히 개인전이 치렬하다. 단오 같은 여름철에는 풀베기좋은 구역과 좋지 않은 구역을 씨름의 승패로 쟁탈하는 경기가 진행된다. 논물대기를 먼저하는 내기도 씨름으로 결정하는 것도 있고 이외 풍년을 축원하는 씨름놀이도 있다. 함경도씨름은 역시 오월단오에 그네뛰기와 함께 크게 벌어진다. 이외 팔월추석에 하는 씨름도 있고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하는 씨름놀이도 있다. 함경도 씨름은 주로 느슨샅바를 걸고 경기를 진행한다. 느슨샅바 씨름이란 약 1메터 길이의 샅바를 적수의 오른편 다리에 감고 나의 오른편 팔을 거기다 끼우되 샅바를 꼬지 않고 느스하게 끼우고 진행하는 씨름형태이다. 느슨샅바를 끼고 하기 때문에 기술을 비교적 다양하게 발휘할 수 있다. 충청도 씨름은 칠월칠석이 그해 씨름이 시작하여 대체로 팔월까지 지역을 바꿔가며 계속된다. 씨름판이 벌어지기 전에 한바탕 오락판이 벌어지는 풍습이 있다. 대체로 개량씨름을 적용하고 대전씨름판은 띠씨름이다. 전라도씨름도 칠석부터 시작하여 9월에 이르러야 끝나는데 민족기악이 타지역보다 우세여서 전반 씨름대회에 음악연주가 아주 다채롭다. 왼씨름, 바른씨름 두 방식으로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를 제비를 뽑아 결정한다. 중국조선족은 전에는 민간에서 ‘경상도마을’, ‘평안도마을’ 로 불리는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팔도씨름의 거의 모든 방식을 나름대로 다 전승하여 왔으나 그중에도 함경도 씨름방식이 가장 널리 보급되였고 후에는 발전, 개진되면서 오늘의 중국조선족씨름으로 고착되였고 규범되였다. 예전에는 단오뿐 아니라 농한기에도 농민들의 놀이로서 성행하였는데 예전부터 향촌에서는 흔히 1등상으로 황소 한 마리를 주고 그 외에 또 광목 등 농가의 생활필수품을 주었다. 조선민족은 씨름을 몹시 즐겨 명절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씨름을 많이 하였다. 샅바를 끼지 않고 하는 ‘민둥씨름’과 선채로 하는 ‘선씨름’ 등 장난 씨름은 주로 청소년들이 많이 하였다. 씨름은 체력과 기술과 투지를 조화롭게 활용하는 운동이다. 씨름은 전신의 근육활동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기에 신체를 조화롭게 발달시킬 수 있다. 또한 상대를 넘어뜨리는 기술에 따른 여러 가지 몸동작을 필요로 하기에 기초적인 신체운동능력을 길러준다. 그리고 기민하고 지구적인 근육운동으로 순발력과 강건한 투지도 길러준다. 조선족씨름은 특히 지난세기 개혁개방후인 1989년 8월 15일 전국조선민족체육초청경기가 길림성 조선족자치주 수부 연길에서 열린 씨름대회를 계기로 획기적인 발전을 하여 왔다. 현재 씨름은 조선족이 집거해 사는 곳이면 어디나 씨름이 보급되여 있어서 조선족인민대중이 즐겨하는 민속놀이로 되고 있다. 조선족씨름은 2011년 5월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에서 비준한 국가급 무형문화유산확장종목 명부에 오르기도 하였다.( 리임원 등 저《사진과 함께하는 중국조선족 무형문화유산 산책》참조)
바줄당기기: 바줄당기기는 ‘줄다리기’라고도 하는데 여러 사람이 편을 갈라서 굵은 바줄을 마주 잡고 당겨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서 대보름날, 단오날 등 민속명절에서 이채를 띠는 군중성적인 운동이다. 본래는 정초부터 시작하여 대보름날에 성황을 이루는 이 바줄당기기 행사인데 단오에도 치러지군 하였다. 처음은 열두서너살쯤되는 소년들이 두편으로 갈라져 가지고 바줄당기기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이것을 애기줄당기기라고 하였다. 바줄은 일반적으로 직경 이 10센치메터 정도 굵은 바줄을 쓰는 것이 보통이였다. 후에 지난 세기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족 일부 마을에서는 바줄당기기를 할 때 여러 갈래의 새끼를 한데 꼬고 엮어서 직경이 1메터나 되게 만든 줄을 썼고 수백명이 편을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는 장관을 연출되기도 하였다. 바줄은 굵고 수백 메터나 되는 긴 것이였다. 바줄당기기는 두 마을 또는 두 고을사이의 대항으로 진행되였는데 고을과 고을사이의 경기를 할 때는 두 편의 인원이 수백 명이나 되였다. 신호에 따라서 바줄당기기가 시작되면 각 편은 원줄에 늘여놓은 손아귀에 쥘 수 있는 2~3m쯤 되는 길이의 수많은 동줄에 달라붙어 서로 있는 힘을 다하여 당긴다. 드디여 승부가 결정되면 이긴 편에서는 진 편의 바줄까지 함께 둘러메고 의기양양해서 농악대를 앞세우고 자기 마을로 돌아갔다. 바줄당기기는 줄 하나를 통하여 전체 참가자들의 힘과 마음을 한데 묶어세우며 단결된 힘을 보여주는 집단적인 놀이로서 지금은 이미 전 사회적으로 보급된 군중성적인 체육항목으로 발전하였다.
널뛰기(跳板戱): 널뛰기는 설날, 정초에 녀성들이 즐겨하는 대표적인 놀이인데 단오날 행사에도 등장하군 하였다. 녀성들이 둘로 나뉘어 긴 널빤지의 중간에 둥근 짚단을 받치고 양쪽에서 서로 균형을 잡아가며 발로 굴러서 서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는 놀이인데 답판(踏板), 도판(跳板), 초판희(超板戱), 판무(板舞)라고도 한다. 승부는 어느 한쪽이 균형을 잃어 널에서 떨어질 때에 정해진다. 주로 설날, 정초에 놀지만 경우에 따라 정월대보름, 첫 룡날(상진일), 정월 16일 귀신날과 같이 특정한 날로 국한되기도 하며 5월 단오, 8월 추석 등 민족적인 큰 명절에도 성행된 놀이이며 지금은 민족체육운동의 한 종목으로까지 되여 환영을 받고 있다. 널뛰기 유래에 관련된 몇 가지 설로 하나는 옛날 죄를 지은 두 남자가 옥 속에 갇혀 있었다. 이들 부인 중 한 사람이 옥에 갇혀 있는 자기 남편의 얼굴을 보고 싶어 다른 죄인의 아내와 공모하여 널을 뛰면서 담장 너머 옥에 갇혀 있는 남편들의 얼굴을 엿본 데서 유래되였다고 하며 다른 한 가지 설은 옛날에 담장 안에 묶여 있던 부녀자들이 세상 밖을 보고 싶어서 널뛰기를 하여 몸이 공중으로 높이 솟을 때 담장 밖의 세상 풍경과 남자의 모습을 훔쳐 본 데서 유래되였다고 하며 세 번째는 처녀시절에 널을 뛰면 시집가서 아기를 잘 낳고 반대로 처녀시절에 널을 뛰지 않으면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속신에서 왔다고 하며 네 번째는 정초에 널뛰기를 하면 일 년 중 발에 가시나 못이 찔리지 않고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설, 다섯 번째는 귀신을 쫓기 위해서 널을 뛴 데서 시작되였다고 하는 속설이다. 그리고 일설에는 널뛰기가 발방아의 원리에 따라 창안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추측과 전설들은 널뛰기가 오랜 옛날부터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류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널뛰기하는) 여염집 부녀자들이 몇 자 높이로 올라가며 패물 울리는 소리가 쟁쟁하고 지쳐 떨어져 나가기도 하는데, 이를 ‘초판희(超板戱)’라 한다.”라고 씌여져 있다. 주황(周煌)의 《류구국기략(琉球國記略)》에는 류뀨의 부녀자들이 널빤지 위에서 춤추는 것을 판무라 하는데 이는 조선조 초에 류뀨인들이 조선에서 배워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널뛰기는 주로 설날과 정초, 정월대보름에 우리 녀성들이 즐겨 논 민속놀이였다. 이날이 오면 녀인들은 갖가지 고운 옷을 차려입고 한데 모여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널뛰기를 하면서 즐겨 놀았다. 립춘과 우수가 이 명절날들과 겹칠 때도 있었으므로 이 민속놀이는 이 절기에 맞는 녀성들의 놀이이기도 하였다. “정월에 널뛰기를 하면 그해에는 발바닥에 가시가 들지 않는다”, “처녀시절에 널뛰기를 많이 해야 시집가서 아들을 낳는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것은 녀성들이 널뛰기를 하면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적으로 널뛰기는 다리힘을 키워주고 페활량을 크게 해주며 몸매도 곱게 해주는 신체단련에 좋은 전신운동이다. 널뛰기에는 높이뛰여오르기, 재주부리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재주부리기에는 높이 뛰여올라 한 바퀴 돌아내리기(데사리)와 허리를 뒤로 젖혔다 내리기(중둥꺾기), 손을 자유롭게 놀리면서 발을 앞뒤나 량옆으로 벌리기 등이 있었다. 또한 상대자를 널에서 떨어뜨리기를 겨루기도 하였다. 경기를 할 때에 신발에 눈금을 박은 긴 줄을 매달고 솟구쳐오른 높이를 재는 방법도 있었다. (허휘훈 저《조선민속학》참조)
이런 단오날의 전통놀이들은 이미 나라의 무형문화유산종목으로 되여 줄곧 정부의 중시를 받아왔다. 이제 특히 신시대에 들어선 오늘날 이런 전통놀이들은 우수한 전통문화를 꽃피우고 민족의 문화자신심을 다지는데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출처 : 동북아신문(http://www.dbanews.com)
[2]. 한국은 단오떡, 단오부채, 씨름(남자), 창포물에 머리감기(여자), 그네뛰기등 전통 민속을 행하는 날입니다.두산백과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한국의 경우, 고대 마한의 습속을 적은 《위지(魏志)》 <한전(韓傳)>에 의하면,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서로 신(神)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단오를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삿날인 5월제의 유풍으로 보기도 한다. 결국 단오절은 상고시대 시원(始原)유교의 제천의식에서 파생되어, 삼한의 5월제로 이어지고, 지금까지 한국에 이어져 온 전통 유교풍속입니다. 단오절은 최근 중국의 4대 명절이자 공휴일[춘절(한국의 설날),중추절(한국의 추석), 청명절(한국의 한식), 단오절(한국의 단오)]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설날과 추석이 연휴가 긴 명절이자 공휴일입니다. 단오날에는 쑥떡.망개떡.수리취떡.밀가루지짐등을 먹습니다. 남자들은 씨름등을 하고,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데, 그네뛰기 ·탈춤 ·사자춤 ·가면극 등도 곁들이는 유교 제천의식날이자 명절입니다. 창조주를 부정하는 부처 Monkey의 불교가 각종 유교 명절이나, 24절기를 따라서 하는데, 불교는 절에서 부처에게 불공드리는 걸로 제 위치를 찾아야 하고, 일반인들은 유교명절이나 24절기, 유교 조상제사날에 절에 가면 않됩니다(이는 패전국 일본 불교 Monkey와 같은 잘못된 행동일뿐입니다).
역사적인 기자조선과 관련된 한국이고, 위만조선 시대에 유교가 유입되고, 세계사적으로는 한사군(漢四郡)시대에 한(漢)나라의 국교(國敎)인 유교(儒敎)가 세계종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로 성립된 고대 한국입니다.
한국의 경우, 두산백과로 파악하면 단오절은 이렇습니다.
"고대 마한의 습속을 적은 《위지(魏志)》 <한전(韓傳)>에 의하면,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서로 신(神)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단오를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삿날인 5월제의 유풍으로 보기도 한다".
음력 5월은 仲夏, 仲夏之月이라 합니다.
홀수(陽數)인 5가 두번 겹친날인 단오날(음력 5월 5일)은, 양수가 겹친 날 중 가장 햇볕이 강한 날(단양절(端陽節)입니다. 음력 5월에는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긴 날인 하지가 있습니다. 단양절인 단오부터 시작하여 하지를 정점으로, 음력 5월은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하지 이후에는 몹시 더워지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날에는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지만, 그 전에 지표면이 태양으로부터 많은 열을 받아놓은게 없어서, 덥지는 않은데, 하지 이후에는 지표면이 태양으로부터 받은 열이 쌓여서, 기온이 올라가고 몹시 더워진다고 합니다.
황하문명을 가지고, 유교종주국이며, 漢字를 발명한 중국. 그리고 세계 최초의 대학인 한나라 태학.국자감을 가진나라 중국(이후 여러 왕조를 거치며 태학에서 국자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국자감이 경사대학당으로, 경사대학당이 베이징대로 명칭이 바뀌는 과정이 있었음), 세계사에서 세계 4대 발명품을 가지고 있는 중국. 세계사란 과목을 통하여 중국의 여러가지 역사와 문물을 한국과 비교해보면 여러가지 유사점이 있습니다.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수천년의 전통유교가 침체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최근에 전통 유교명절들인 춘절(한국은 설날), 청명절(한국은 한식), 단오절, 중추절(한국은 추석)의 4대 명절이 공휴일로 되었습니다.
한국은 중국처럼 비슷한 명절을 가졌는데 설날, 단오, 추석이 전통적인 3대 명절입니다.
한국의 경우 단오절에 여러가지 풍속이 있는데 수리취떡.쑥떡.망개떡등을 먹고, 씨름등을 하고, 탈춤.가면극등을 즐겼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남자들은 창포뿌리를 허리춤에 차고 다님), 그네뛰기를 하는등 여러가지 풍속이 있습니다. 집단적인 민간행사로는 단오제를 지내거나 단오굿을 지내기도 합니다. 궁중에서는 단오부채를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수 많은 전통행사가 있습니다.
. 필자 주 1). 단오제는 유교적 개념이고 단오굿은 유교에서 변질된 민간 행사로 무속신앙(본질은 유교임)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고대의 기원으로 보면 유교문화의 단오절에서 유래된 점은 같습니다.
[3]. 성균관.향교의 50만 제사인구는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 주권없는 일본 잔재 불교 Monkey 서울대등이 최근에 다시 어거지쓰고 약탈하려는 주장은 주권.자격이 없음. 저 Monkey들 어거지는 교과서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 아니라는 것임. 일본 강점기 주장을 이어받아, 다시 일본잔재 서울대 출신이 1983년에 통계기법으로 주권없이 조사한 종교인구 표본조사같은걸로, 주권없이 다시 유교 약탈.테러중. 1983년 한국갤럽의 종교인구 조사는 이듬해인 1984년에 공식 발표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 의식 보고서의 기초가 된 조사입니다. 한국갤럽의 설립자이자 당시 조사를 이끌었던 박무익 회장은 서울대학교 출신입니다. 이런 식으로, 5,000만 한국인의 국교인 유교도들의 명절,제사,24절기,유교교육등을 무종교도로 만들고 주권없는 일제 강점기 포교종교 신도수만 내세우고, 10년 단위로 현혹하고 있음. 성균관.향교 제사인구 50만명만 유교인구라고 어거지쓰는것은 패전국에 전범국,UN적국 일본 불교 Monkey들이 사기치는 원숭이 노예합창.통계청 표본조사로 종교인구 조사하는것은, 더 이상 써먹지말고, 이런 조작 중지해야 할것. 애초부터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에 따라 일본 강점기 종교정책은 주권도 없고 인정받을수 없었음. 제헌의회 임시정부 반영에도 어긋나고, 1988년의 현행헌법 前文 임시정부 정통성 승계(한일병합등 모든 불평등 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위배됨. 유교를 국교로 승계받은 줄 알고, 당연히 유교도로 사는 한국인들을 다시 기만하기 시작한것.@세계사 고대 3대종교는 유교,기독교,불교(삭제않되고 유지)@유교는 문화대혁명때 침체,중국이 여러 유교명절 공휴일 지정,24절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음력 새해 명절을 UN 유동적휴일로 건의,채택.기독교(중세이후 크게 번창),불교(브라만교가 강하게 탄압,힌두교 인도).@수천년 한국 유교문화 5대 명절에 현대적 개념 도입한 국가유산청의 5대 명절 지정. 2023년 12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5대 명절을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설(중국은 춘절)과 대보름(중국은 원소절),한식(중국은 청명절),단오,추석,동지@유교는 성당,힌두교 사원,불교(브라만에 항거한죄로,인도에서 천 몇백년 탄압중) 사찰과 달리 무형유산 유교 명절에 전국민 참여. 유교는 왕실(대한제국은 황실)의 종묘대제,성균관.향교의 석전대제, 수천년 전통명절들, 문중별.가족별 제사.차례,기도. 24절기,유교 교육등.
@ 한편,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서강대는, 세계사의 교황제도 반영, 국제관습법상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연합국 국가원수들의 포츠담선언(포츠담선언은 미군정의 상위법, 일본관련, 포츠담선언은 카이로선언도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불교 Monkey 일본.*서유럽과는 다르게 한국,대만,아시아,쿠릴열도에 적용되는 포츠담선언의 일본관련 조항들.*일본이 교육기능 폐지시킨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 미군정때 성균관을 복구하는 법률(공자묘 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이 제정되었음. 이때 성균관과 관련없고 일본 동경대를 졸업한 교육관련 담당자와 주변인들이,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폐지)시켜야 할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하면서, 서울대를 성균관 앞에 놓는 방법으로 성균관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하였음. 미군정에서 교육정책 입안자로 등용되니까, 하위법인 미군정령을 이용해,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의 취지(일본의 주권은 한국에 없고, 경성제국대는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할 일제잔재임)에 어긋나는 교육정책을 만들었던것. 그러나 상위법 우선의 원칙을 따라야 함. 카이로선언은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축출)될것"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또한, 미군정은, 교육분야 아닌 타분야에서 연합국의 적국인 일본의 재산을 적산재산으로 하여, 일본이 카이로선언의 연합국 적국이라는 시각을 따르고 있었음. 미군정기에는 유교국가인 조선.대한제국의 한문성명.본관을 등록하는 조선성명 복구령도 시행되었음. 교육분야에서, 미군정기의 과도기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될 경성제대 활용(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의 정제되지 않은 정책에, 위기를 느낀, 전국 유림들이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유림이면서 임시정부 요인출신 김창숙 선생)를 개최하여, 성균관대를 설립(성균관의 교육기능 승계형태임)하기로 하였음. 새로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성균관장이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하고, 성균관대 학장.성균관장을 겸임하였음.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성균관대가 대학기능을 승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것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며, 고구려 태학이후 한국 최고대학 계보 성균관이었음. 태학(고구려),국자감(고려),고려말 성균관,조선.대한제국 성균관. 일본 강점기때 교육기능 중단 및 왜곡*일본이 항복하여, 미군정부터는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가, 대학교육 역할을 담당하여, 한국 최고 대학 계보임.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미군정때, 국사 성균관 교육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에도, 계속 국사 성균관교육을 실시. 국사교육을 중요시하여, 정부의 각종 고시, 공무원시험등에 국사 채택. *국사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라는건 성균관대, 성균관, 여러 백과사전 공통된 견해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4090602113
[4]. 인류는 만물의 근원.창조주 하느님(乾,天)의 섭리하에,만물의 영장으로 창조된,인간의 도리를 가르치신,근본적 하느님 아들 유교 공자님(先聖,聖天子)과,기독교세계 하느님의 독생자 주 예수를 떠나살수 없음.짐승같은 불교 부처Monkey는 창조신에 도전하는 나약한 원숭이!
인류조상 베이징원인.夏의 해.달.별 숭배,殷(商)의 上帝숭배,이전 신앙 흡수하여 유교 경전에 정형화된 周나라의 天(하느님,만물의 근원 乾,天.시경 天生蒸民으로 인격天 제도화)숭배와 天子제도.漢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天子제도 승계,공자숭배.
夏의 해.달.별 숭배, 문자를 발명한 殷(商나라)의 上帝숭배, 이전 신앙을 흡수.통합하여 유교 경전에 정형화된 周나라의 天(하느님, 하늘. 시경 天生蒸民으로 인격天의 개념이 제도화)숭배와 天子제도는, 하늘로 승천하여 계절을 다스리시는 오제(五帝. 태호,염제,황제,소호,전욱으로 창조주.최고신 天다음의 계절의 神이시며, 인격神의 시조)를 숭배하며, 요.순.우.탕.문.무의 先聖 가르침을 경전에 기록함. 주나라의 혼란기인 춘추전국시대에는 殷왕족의 후손이시며, 周나라 대부의 아들로 태어나신 공자님께서 제자백가의 여러 사상중 하나로 유가의 시조가 되심. 선성과 어진 섭정 주공의 행적을 존경하신 공자님. 공자님의 가르침은 하느님(天, 하늘)의 섭리하에, 조상신.지신.산천신 숭배를 이어가면서, 인간의 도리를 하기 위해, 학습을 하면서, 仁이나 禮, 恕등으로, 세상을 교화하시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공자님은 殷나라 왕족의 후손이신데, 당시에는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나, 선생 칭호의 子를 붙여 공자(공선생님)로 불리시다가, 후세에, 선성(先聖, 先聖王으로 聖天子를 의미)으로 추존되어, 역대 중국 천자들과 사람들이 제사하는 聖人이 되셨습니다. @ 漢나라때 漢의 국교며, 동아시아 세계종교(중국,한국,베트남, 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 현대의 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에 걸쳐 십수억명 유교도)로 성립되어, 수천년 이어진 세계종교 유교.
학생때 세계사영역,중국의 제자백가. 유가,법가,도가(한국은 신선사상,풍류도),묵가. 漢나라때 유교(儒家)가 국교가 되어 수천년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의 세계종교@인도발 외래신앙 불가(불교)는 일본 불교Monkey와 주권없는 경성제대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일본잔재 대만대가 대중언론.방송.SNS,뇌과학으로 어지럽혀도 제자백가 밑!@국가 최고 의례는 왕실의 조상제사인 종묘대제,토지와 곡식의 신에 제사하는 사직대제,先聖이신 공자님에 제사하는 석전대제.유교문화에서 인정되지 않는 인도발 오랑캐 도적의 짐승신앙 불교나, 힌두교 및 다른 종교 인정하기 어려움.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다시 인도가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천민으로 핍박하는 불교.@패전국.UN적국 일본 불교Monkey들이 근대에 한국.대만지역 합쳐 내세운 불교.건축물.유물로,유럽공략 걱정됨@원숭이.코끼리.사슴에서 환생한 부처 Monkey의 윤회론도 끔찍.유교문화권에서 제자백가뒤 오랑캐 도적,짐승으로 견제받던 인도발 외래불교일뿐.
중국.로마는 주변국가들을 야만족이라고 불러옴.역사적 사실@야만족에 군사력으로 정복당해도,종교와 대학.문화로 지배 분담@유교문화권은 인도발 불교를 오랑캐 도적,사람아닌 짐승(無君無父의 禽獸)으로 분류.하느님도 모르고,윤회론의 원숭이-> 불교 부처 Monkey는 不變
인도의 불가촉 천민,조선의 천민 승려 불교.불교는 부처Monkey가 인도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 천민으로, 다시 탄압받고 있음. 원숭이.코끼리.사슴에서 환생한 부처 Monkey의 윤회사상도 가미한 짐승신앙임.건축물 중시 유산은 종교의 본질과 큰 관계없음.경전,교리,역사적 전통,제도,그 제사장,신도수,해당국들에서의 국교로서의 전통등이 중요.
동아시아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한국은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삼한을 통하여,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로 확실히 정착, 하느님.조상신을 숭배하며,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신 공자님울 聖天子(先聖)으로 제사하는 나라. 그러다보면 유교 근본주의로 해석해서, 사후 비판 할 수도 있을법도 함. 삼국시대, 신라멸망후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패전국 일본 불교 Monkey항복후의, 유교복구와 일본 잔재등 아주 복잡함.
유교경전은 후세 정치적용어 皇帝없음.만물의 근원.창조신(乾,天) 하느님 다음,유교 경전 예기의 五帝(계절신,조상신,인격신)의 으뜸신 黃帝(殷왕족 후손 공자님의 조상神)는 均天의 인격神.공자님은 후세 天子들이 제사하는 聖天子(先聖).주권있어도 한국은 종교 天子국 아님
기독교세계는 하느님의 독생자 주 예수.주 예수의 종 교황,스페인왕.영국왕등 기독교 국왕들로 이해.유교문화권 중국,한국이 후세의 정치용어 皇帝에 의거,敎皇(교화 황제)으로 번역한 Pope.유교국 정치지도자들이 皇帝라는 용어사용 시도했어도 天子는 단 한분 종교지도자.
서로마.동로마는 중국殷,周,제자백가,漢처럼 중요@헬레니즘.헤브라이즘@이집트,그리스,서아시아,인도북부 통치한 알렉산더.그리스 신화의 Chaos@수천년 세계종교 유교.기독교는 만물의 근원.창조주 하느님 중심.하느님 아들 공자님(先聖,聖天子),기독교 하느님 아들 주 예수.
殷왕족 후손 箕子의 기자조선.한국 북부->夏의 해.달.별 숭배와 殷(黃帝,殷왕족 후손은 箕子,공자님)의 上帝숭배를 후발 周 天子에게 허용받은 한국 始原유교시대.箕子후손 기준왕이 건설한 남부 三韓은 한국 始原유교지역.세계사로는 북부지역 漢사군의 유교(孔子사상)정착.
한국 마을제사->후발 周(天子제도)가 허락,선발 殷왕족제사 지속 유형.殷왕족 箕子조선.三韓제사장 주관,제천의식,地神.산천神제사.삼국시대 번창,고려까지 제지않음.조선이 확실한 天子의 제후국되어,허락받지않은 제천의식.산천제사 금지->무속이라 탄압.天子국 아닌 한국.
정교회의 러시아.강대국@성씨없는 머슴型에,수천년 야만족에,부처 Monkey에서 파생된,근대 군사강대국 일본 점쇠(히로히토등,일본 짐승국가의 상징)가,하느님.예수님보다 높고,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 아니라는 주장으로,AI뇌과학 짐승 마법사 도둑질 하는것도 경계要.
세계사 殷왕족 箕子의 기자조선(기준왕때 위만조선에 멸망),위만조선, 위만조선을 정벌한 漢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됨.한국은 기자조선의 始原유교와 세계사의 정설인 漢나라때 동아시아 세계종교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 북부의 漢사군과 별도로,한반도 남부는 殷왕족 기자조선의 후손 기준왕과 후손들이 삼한 설립(마한.진한.변한). 진한과 변한에서 신라,가야가 후발로 건국됨.漢사군의 선진 유교문화 낙랑에서 부여가 건국되고,부여에서 이동한 주몽(고주몽)이 고구려 설립. 고구려 주몽의 후손 온조가 백제건국. 진한.변한의 신라,가야는 기자조선.삼한의 始原유교에서, 선진 유교문화 고구려.백제,중국 본토와 교류하며,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국가로 본격 재정립됨.제자백가,외래신알 불교 유입.
@ 불교 Monkey의 채식주의나, 사찰음식 모방하여 살아가는것은 위험함. 유교나 기독교 국가들은 수시로 육지고기 먹어야 합니다. 황하문명의 중국 음식(이탈리아,프랑스등과 각종 요리가 발달)의 특징은 불을 이용하여 튀기고,끓여먹고,구워먹는 맛있는 음식들.유교.기독교 국가들은,하느님의 섭리에 따라서,육식을 자주해야!@불교 Monkey채식주의는,유교.기독교와 맞지 않음.일본은 불교 Monkey(스시로 육지고기 먹지 않는다고 위안삼는것으로 보여짐).
다신교인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최고 하느님이시며, 만물의 근원이시고, 인간을 창조하신(시경:天生蒸民) 하느님(天). 그 하위의 조상신(유교 경전 예기에서 계절을 다스리시는 五帝),地神.산천神 숭배 이어받으신 공자님의 가르침(하느님의 섭리하에 피조물 중 만물의 영장 인간이 추구해야 할 여러 덕목인 仁과 禮, 恕등),그리고 유교의 실천강령중 하나인 삼강오륜.
창조신에 항거한 불교 부처 Monkey는,과거에 코끼리,사슴, 원숭이라고 본생경(Jataka,本生經)이 설명@유교는 다음생,저번생같은 윤회가 없고,사람이 짐승으로 환생하는것 불인정.유교는 하느님(天)이 창조하신 인간이 가장 중요함.죽으면 魂이 하늘로 올라감.악귀는 못올라감.유교나 가톨릭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영장 인간이 가장 중요할뿐, 사람이 동물로 윤회하거나 하는것을 인정치 않습니다. 전생이나 내세도 없습니다. 다만 유교는 사람이 죽으면 혼이 하늘로 승천하고, 현세에서 죄를 지었으면 그에 맞게 악귀로 처우되어, 떠돌게됩니다. 한번뿐인 고귀한 인생, 부처 Monkey의 불교처럼 동물로 인간을 비하하지 말고 열심히 사는게 유교입니다.
@ 현재의 중국 국가주석은 종교적으로 유교국가들(중국,한국,베트남,몽고,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의 天子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것. 춘절,청명절,단오절,중추절의 법정 공휴일, 24절기 유네스코 등록@정치적으로는周 文王의 환과고독(鰥寡孤獨)구휼 위한 大同사회목표.
인구밀도가 낮은 시대에 유교,기독교,이슬람교는 매장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인더스문명의 인도는 인구밀도가 높은편이라, 고대부터 브라만교(힌두교로 이어짐),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불교는 화장문화였음. 최근에는 너무 인구밀도가 높아, 종교와 상관없이 유교,기독교,이슬람교도 납골당, 수목장등이 대세임. 유교는 화장하더라도, 집에 영정을 모시는 쪽으로 이어지면됩니다.
@ 한국 유교 최고제사장은 고종 후손 황사손(이원)임. 불교 Monkey일본 항복으로, 유교가 국교인 조선성명 복구령. 5.000만 국민이 행정법상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며, 유교 명절,제사,차례,기도 및, 초등학교때의 하느님(애국가)제창,조선 역대왕조 왕명 암기,중학교때는 유교 삼강오륜 배우게 됨. 고교때는 세계사의 고대 세계종교 유교(현재도 이어짐)@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로 설립된 예수회의 서강대는,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이 뒤로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으로 형성된 대학들.
[5].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6]. 한국의 단오
1]. 한국의 단오.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설명
일명 수릿날[戌衣日·水瀨日]·중오절(重午節)·천중절(天中節)·단양(端陽)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端)’자는 처음 곧 첫 번째를 뜻하고, ‘오(午)’자는 오(五), 곧 다섯의 뜻으로 통하므로 단오는 ‘초닷새[初五日]’라는 뜻이 된다. 일년 중에서 가장 양기(陽氣)가 왕성한 날이라 해서 큰 명절로 여겨왔고 여러 가지 행사가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단오는 더운 여름을 맞기 전의 초하(初夏)의 계절이며,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이기도 하다. 단오행사는 북쪽으로 갈수록 번성하고 남으로 갈수록 약해지며, 남쪽에서는 대신 추석행사가 강해진다. 또한, 단오는 중종 13년(1518) 설날·추석과 함께 ‘삼대명절’로 정해진 적도 있었다.
단오의 유래는 중국 초나라 회왕(懷王) 때부터이다. 굴원(屈原)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하여 멱라수(汨羅水)에 투신자살하였는데 그날이 5월 5일이었다. 그 뒤 해마다 굴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에 전해져서 단오가 되었다고 한다.
≪열양세시기 洌陽歲時記≫에는 이날 밥을 수뢰(水瀨 : 물의 여울)에 던져 굴원을 제사지내는 풍속이 있으므로 ‘수릿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날 산에서 자라는 수리치[狗舌草]라는 나물을 뜯어 떡을 한다. 또, 쑥으로도 떡을 해서 먹는데 떡의 둥그런 모양이 마치 수레바퀴와 같아서 수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수리란 우리말의 수레[車]인데 높다[高], 위[上], 또는 신(神)이라는 뜻도 있어서 ‘높은 날’, ‘신을 모시는 날’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단오의 풍속 및 행사로는 창포에 머리감기, 쑥과 익모초 뜯기, 부적 만들어 붙이기,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단오 비녀꽂기 등의 풍속과 함께 그네뛰기·씨름·석전(石戰)·활쏘기 등과 같은 민속놀이도 행해졌다.
또한, 궁중에서는 이날 제호탕(醍醐湯)·옥추단(玉樞丹)·애호(艾虎 : 쑥호랑이)·단오부채 등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다. 집단적인 민간행사로는 단오제·단오굿을 하기도 하였다.
민간에서는 이날 음식을 장만하여 창포가 무성한 못가나 물가에 가서 물맞이 놀이를 하며, 창포이슬을 받아 화장수로도 사용하고, 창포를 삶아 창포탕(菖蒲湯)을 만들어 그 물로 머리를 감기도 한다. 그러면 머리카락이 소담하고 윤기가 있으며,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몸에 이롭다 하여 창포 삶은 물을 먹기도 하였다.
또한, 단오장(端午粧)이라 하여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를 삼아 머리에 꽂기도 하였으며, 양쪽에 붉게 연지를 바르거나 비녀에 壽(수)·福(복)자를 써서 복을 빌기도 하였다. 붉은 색은 양기를 상징해서 악귀를 쫓는 기능이 있다고 믿어 연지 칠을 하는 것이다. 단오 때가 되면 거리에서 창포를 파는데, 이는 창포탕과 비녀를 만드는 데 소용이 되기 때문이다.
일년 중에서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인 단옷날 중에서도 오시(午時)가 가장 양기가 왕성한 시각이므로, 단옷날 오시를 기해서 농가에서는 익모초와 쑥을 뜯는다. 여름철 식욕이 없을 때 익모초 즙은 식욕을 왕성하게 하고 몸을 보호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쑥은 뜯어서 떡을 하기도 하고 또 창포탕에 함께 넣어 삶기도 하는데, 벽사에 효과가 있다고 전한다.
농가에서는 약쑥을 뜯어 말렸다가 홰를 만들어 들에서 일을 할 때 불을 붙여놓고 담뱃불을 당기는 데 사용하였다. 이 때의 약쑥홰는 약쑥 대여섯 개를 한 묶음으로 짚으로 친친 감아 연이어 길이를 2m쯤 되게 만든다. 긴 것은 불을 붙이면 하루 종일 타게 된다. 또, 농가에서는 오시를 기해서 뜯은 약쑥을 한 다발로 묶어서 대문 옆에 세워두는 일이 있는데, 이는 재액을 물리치고 벽사에 효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풍으로는 가수(嫁樹)가 있다. 가수는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아 많은 열매가 열리도록 비는 ‘나무 시집보내기’ 풍습으로 정월 대보름에도 한다. 특히, 단오 무렵이면 대추가 막 열기 시작하는 계절이기에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아 대추풍년을 기원하니 이를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 한다.
민속놀이로는 그네뛰기와 씨름 등이 있다. 외출이 뜻대로 못하였던 부녀자들이 이날만은 밖에서 그네 뛰는 것이 허용되었다. ≪동국세시기≫에는 “항간에서는 남녀들이 그네뛰기를 많이 한다.” 하여 그네가 여성들만의 놀이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동국세시기≫에 김해풍속에 “청년들이 좌우로 편을 갈라 석전(石戰)을 하였다.”고도 하며, 금산 직지사(直指寺)에 모여서 하는 씨름이나 남산(南山)·북악산(北嶽山)의 각력(角力 : 씨름)에 대한 기록도 보인다. 그밖에도 경상북도지방에서는 널뛰기·윷놀이·농악·화초놀이 등의 놀이도 하였다.
궁중에서는 단옷날이 되면 내의원(內醫院)에서 옥추단과 제호탕을 만들어 바쳤다는 기록이 ≪동국세시기≫에 보인다. 제호탕은 사인(砂仁)·오매육(烏梅肉)·초과(草果)·백단향(白檀香) 등 한약재를 가루 내어 꿀에 섞어 달인 약으로 일종의 청량제이다. 더위가 심하여 건강을 해치기 쉬울 때 사용하였다. 내의원에서 진상한 옥추단은 일종의 구급약으로, 여름철 구토와 설사가 났을 때 물에 타서 마신다.
임금은 이 옥추단을 중신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약에다 구멍을 뚫어 오색실로 꿰어 허리띠에 차고 다니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면 급할 때 먹을 수도 있으려니와 악귀를 막고 재액을 물리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임금은 애호를 신하들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는데, 애호는 쑥이나 짚으로 호랑이모양을 만들어서 비단조각으로 꽃을 묶어 갈대이삭처럼 나풀거리게 하고, 쑥잎을 붙여 머리에 꽂도록 한 것이다.
이 또한 벽사에서 기인한 것이다. ≪열양세시기≫에 “단옷날에 애화(艾花 : 쑥호랑이)가 하사되었다.”라는 기록도 있다.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천중부적(天中符籍)’을 만들어 대궐 안의 문설주에 붙였다. 이 부적은 불길한 재액을 막아주는데, 경사대부(卿士大夫)의 집에서도 붙였다. 복록을 얻고 귀신과 병을 소멸하라는 주문을 쓰거나 처용 상이나 도부(桃符 : 복숭아나무로 만든 부적)를 붉은 색의 주사(朱砂)로 그려 넣었다.
또한, 단오 무렵에 공영(工營)에서는 대나무 생산지인 전주·남원 등지에 부채도안 등 제작방법을 일러준 다음 부채를 만들어 진상하도록 하였다. 이 부채를 임금은 단옷날 중신들과 시종들에게 하사하였는데, 이를 ‘단오부채[端午扇]’라 하였다.
집단적인 민속행사로는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사지내는 단오제(端午祭)가 있다. ≪동국세시기≫에 “안변풍속에 상음신사(霜陰神祠)에 선위대왕(宣威大王)과 부인이 있다고 전하는데, 매년 단오에 선위대왕 부부를 모셔다가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과, 경상북도 군위에서는 “서악(西岳)의 김유신(金庾信)사당에서 신을 맞이하여 고을에서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강릉 단오굿’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또한, 삼척의 ‘오금잠제’ 기록도 보이는데, 이는 전설에 고려 태조의 것이라는 오금잠(烏金簪 : 검은 빛의 쇠로 만든 비녀)을 함에 모시고 지내는 제이다. 원래 제사지내는 뜻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행사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최근까지 전승되고 있는 단오굿으로는 대관령국사성황을 강릉시내 여성황당에다 모시는 ‘강릉단오굿’과, 문호장(文戶長)이라는 신령한 인물에게 올리는 경상남도 창녕의 ‘문호장굿’이 있다. 일시 소멸되었다가 복원된 경북 경산시 자인면의 ‘한장군(韓將軍)놀이’도 유명하다. 이 놀이에서는 ‘여원무(女圓舞)’라는 춤을 춘다.
이처럼 단오의 여러 행사는 벽사 및 더위를 막는 신앙적인 관습이 많고 대추나무 시집보내기와 같은 기풍행위가 주가 되며, 더운 여름에 신체를 단련하는 씨름과 그네뛰기 등의 민속놀이가 있다. 또한, ‘강릉 단오굿’과 같은 집단적 단오제로 공동체의식을 이루는 축제를 벌이기도 하였다.
. 출처: 단오[端午]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의 단오. 두산백과의 설명.
단오 [ 端午 ]
요약 한국·중국·일본 등에서 지키는 명절로 음력 5월 5일.
음력 5월 5일을 말하며 수릿날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중오(重午) ·중오(重五) ·단양(端陽) ·오월절이라고도 한다. 단오는 초오(初五)의 뜻으로 5월의 첫째 말[午]의 날을 말한다. 음력으로 5월은 오월(午月)에 해당하며 기수(奇數:홀수)의 달과 날이 같은 수로 겹치는 것을 중요시한 데서 5월 5일을 명절날로 하였다. 일본의 경우 양력 5월 5일로 지내고 있다.
단오는 중국 한대(漢代)의 문헌에 나타난다. 옛날부터 음력 5월은 비가 많이 오는 계절로 접어드는 달로 나쁜 병이 유행하기 쉽고, 액(厄)을 제거해야 하는 하는 달로 보아 예방조치로서 여러 가지 미신적인 풍습이 생겨났다. 중국의 옛 풍속을 전하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따르면 단오에는 약초를 캐고, 재액을 예방하기 위하여 쑥으로 만든 인형이나 호랑이를 문에 걸었으며, 창포주 ·웅황주(雄黃酒)라는 약주를 마셨다. 약초 ·창포 ·쑥 등을 이용한 것은 강한 향기와 약성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또 전국시대 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이 자신을 모함하는 사람들에게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멱라수(汩羅水)에 빠져 죽었는데,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뜻으로 대나무통에 쌀을 넣고 소태나뭇잎으로 감아 물 속에 던지던 풍습이 있었다. 이것이 변하여 대나뭇잎으로 싸서 찐 떡을 먹는 지금의 풍습이 되었다고 한다. 또 멱라수에 빠진 굴원을 작은 배로 구한다는 의미의 놀이로 일종의 보트레이스인 용선경도(龍船競渡)가 행해졌다.
한국의 경우, 고대 마한의 습속을 적은 《위지(魏志)》 <한전(韓傳)>에 의하면,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서로 신(神)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단오를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삿날인 5월제의 유풍으로 보기도 한다. 고려가요《동동(動動)》에는 단오를 ‘수릿날’이라 하였는데 수리란 말은 상(上) ·고(高) ·신(神) 등을 의미하며, 수릿날은 신일(神日) ·상일(上日)이란 뜻을 지닌다. 여자들은 단옷날 ‘단오비음’이라 하여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뜻에서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얼굴도 씻으며, 붉고 푸른 새 옷을 입고 창포뿌리를 깎아 붉은 물을 들여서 비녀를 만들어 꽂았다. 남자들은 창포뿌리를 허리춤에 차고 다녔는데 이는 액을 물리치기 위해서라고 한다. 단옷날 아침 이슬이 맺힌 약쑥은 배앓이에 좋고, 산모의 약이나 상처 치료에 썼다. 또 단옷날 오시(午時)에 목욕을 하면 무병(無病)한다 하여 ‘단오물맞이’를 하고 모래찜을 하였다. 이 밖에 단오 절식으로 수리취를 넣어 둥글게 절편을 만든 수리취떡[車輪餠]과 쑥떡 ·망개떡 ·약초떡 ·밀가루지짐 등을 먹었고, 그네뛰기 ·씨름 ·탈춤 ·사자춤 ·가면극 등을 즐겼다.
. 출처: 단오[端午] (두산백과)
. 필자 주 2). 일본은 고대 한국에서 유교나 한자, 도교, 중국이 전해준 불교를 같이 받아들여 단오절을 쇠는 풍습이 남아 있는것 같은데, 양력으로 단오를 쇠며, 일본 막부시절 기독교에 대항해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이 때부터 불교특성의 나라로 변한것 같음. 그리고 나중에 불교특성의 일본상황에서 불교특성의 일본 고유 신도를 새로 만들었고,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를 2중으로 같이 믿는 나라로 보여짐. 일본은 유교국은 아님.
3]. 한국의 단오. 종교학대사전이 설명하는 자료
한국
음력 5월 5일. 단오는 초오(初五)의 뜻으로 5월 처음의 말(年)의 날을 뜻한다. 음력 5월은 장마로 인한 전염병이 만연되고 여러 가지 액(厄)을 제거해야 할 나쁜 달로 보아 예방조처로서 미신적 풍습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 날 풍습으로는 5월 4일 저녁 큰 그릇에 물을 길어 두었다가 단오날 오시(五時)에 목욕을 하면 아무 탈 없이 한 해를 보낸다고 하며, 부녀자들은 일찍 일어나 상추를 뜯어다가 그 잎사귀에 묻은 이슬로 아이들의 얼굴을 닦아 주는 풍습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으며 얼굴에 버짐이나 땀띠ㆍ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다. 단오날에는 익모초(益母草)와 쑥을 뜯는 풍습도 있는데, 익모초는 산모(産母)의 몸에 좋고 여름에 입맛이 없을 때 즙을 내어 마시면 효과가 있다고 하며 쑥은 냉증에 사용되므로 약초로 준비해 두기도 하고 다발로 묶어 문 옆에 걸어두면 재액(災厄)을 물리친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단오날을 기해서 향토신사(鄕土神祠)에서 제사를 지내는 곳도 많은데 대표적인 곳이 강릉이다. 이 날에는 무당과 주민 등 수백 명이 모여 대관령 서낭신을 모셔다가 제사를 지내고 농악ㆍ관노가면(官奴假面)놀이ㆍ씨름대회 및 그네뛰기 경연이 행하여진다. 그리고 궁중에서는 단오 부채라하여 공조(工曹)에서 만든 부채를 나누어 가지고 대신들은 단오첩(帖)을 지어 궁중에 거는 풍속이 있었다. 한편 『경향잡지(京鄕雜志)』,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에 다같이 5월 5일을 수릿날이라 하였는데, 수리는 술의(戌衣)또는 수레(車)의 뜻으로 이 날 쑥잎에 쌀가루를 넣고 쪄 푸른빛이 들게 하여 수레바퀴 모양으로 떡을 만들어 먹었다 하여 술욋날(戌衣日 ; 수릿날)이라 하였다 하며 이 날은 일년 중에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때여서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불려지고 있다.
중국
<단(端)>은 <초(初)>의 의미로, 원래는 달의 최초의 오(午)의 날을 말했다. 12지의 인(寅)을 정월로 하는 하력에서는 5월은 오(午)의 달에 해당하며, <오(午)>가 <오(五)>에 통하는 것이나 양수(陽數)의 중복을 중시한 점 등에서 3세기, 위ㆍ진 이후 5월 5일을 특히 <중오(重午)>, <중오(重五)>, <단양(端陽)> 등으로 부르며, 이날에 각종 제례를 하게 되었다. 음력 5월은 고온다습한 성하(盛夏)이며, 전염병이나 독충의 피해가 심하여 악월(惡月)이라고 하였는데 이미 전국에서 한에 걸쳐서 5월 5일 태생의 아이가 오래 살면 자해하거나 부모를 살해한다고 믿어서 5월 5일의 탄생을 기피하는 풍습이 있었으며, 이는 당ㆍ송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날, 약초를 따고, 대문에는 쑥으로 만든 인형이나 호랑이, 또는 창포로 만든 검을 걸고, 오독(五毒, 전갈, 지네, 수궁, 두꺼비, 뱀)을 먹고 있는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서 사귀(邪鬼)의 진입을 방지했다. 또한 창포주나 웅황주(雄黃酒, 유황을 섞은 술)를 마셔 무병식재를 기원했는데 쑥, 창포, 웅황 등은 그 향기나 약성으로 사기악령을 불식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어린이들에게는 쑥잎이나 검은 뽕 열매를 주거나, 웅황주로 이마에 <왕>자를 그리거나, 주사(朱砂)를 이마나 복부에 그려서 마귀를 쫓아냈다. 또한 홍사(紅絲)나 오색의 끈을 무릎에 묶는 장명루도 원래는 이날의 피사(避邪)의 주물(呪物)이었다. 또한 이날, 호남, 호북, 강소, 절강, 복건, 광동 등의 남방 수향지대에서는 용주경도(龍舟競渡, 용선경도(龍船競渡), 드라곤 레이스)가 행하여졌는데, 이는 속설에서는 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 굴원이 나라를 걱정하면서 강에 투신한 것이 5월 5일로 그 시체를 건져내는 <노시> 행위가 제례화한 것이라고 한다. 용주는 선수에 용의 조각이나 장식을 단 배로, 경조(競漕)라는 오락으로서의 요소 외에 수사자(水死者)의 영을 위로하는 동시에, 교룡수수(蛟龍水獸)를 진압해서 수해를 방지하고 비를 빌고, 오독의 풍요를 기원한 것이다. 대나무 떡을 먹는 유래도 굴원 전설에 의하는데, 마찬가지로 수신(水神)을 제사지내고 풍요를 기원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단오의 기원ㆍ유래에 대해서 명시하는 문헌은 후한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없으며, 고대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졌다. 중국의 신화학에 독자적인 견해를 제시한 문일다(聞一多)는 단오에 대해 기재된 전설ㆍ풍속의 대부분이 용주경도, 대나무떡 등 용에 관련된 것이 많은 것에 주목하고, 단오절을 <용의 절일>로 하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즉, 단오는 아주 옛날에 용을 토템신앙하는 장강(양자강) 하류역의 오(吳)ㆍ월(越)족의 풍속으로서 시작되었으며, 후한 이후 오ㆍ월 지역이 개발됨에 따라서 중원문화와의 접촉을 통해서 장강 상류역이나 북방 각지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 출처: 단오[端午]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한국사전연구사)
4]. 필자의 설명.
(중국, 중국인 그리고 중국문화, 2011. 3. 3., 다락원)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단오절의 유래는 여름의 더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덥고 습한 날씨로 인해 퍼지기 시작하는 각종 질병을 예방하려는 액막이의 차원에서 단오절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대문에 창포와 쑥을 걸어 놓거나 종규(鍾旭)의 화상을 붙이는 것을 비롯하여, 어른들이 웅황주(雄黄酒)를 마시고, 어린아이들의 몸에 향주머니(香包)를 달아주는 것 모두 액막이라는 소망이 담겨져 있다. 물론 이것들이 벌레를 쫓거나 살균·해독 작용을 한다는 위생적인 측면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종교학 대사전에서 설명하는 중국의 단오는 이렇습니다. 이날, 약초를 따고, 대문에는 쑥으로 만든 인형이나 호랑이, 또는 창포로 만든 검을 걸고, 오독(五毒, 전갈, 지네, 수궁, 두꺼비, 뱀)을 먹고 있는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서 사귀(邪鬼)의 진입을 방지했다. 또한 창포주나 웅황주(雄黃酒, 유황을 섞은 술)를 마셔 무병식재를 기원했는데 쑥, 창포, 웅황 등은 그 향기나 약성으로 사기악령을 불식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어린이들에게는 쑥잎이나 검은 뽕 열매를 주거나, 웅황주로 이마에 <왕>자를 그리거나, 주사(朱砂)를 이마나 복부에 그려서 마귀를 쫓아냈다. 또한 홍사(紅絲)나 오색의 끈을 무릎에 묶는 장명루도 원래는 이날의 피사(避邪)의 주물(呪物)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단오 관련, 종교학 사전에서 설명하는 굴원관련 이야기입니다.
...대나무 떡을 먹는 유래도 굴원 전설에 의하는데, 마찬가지로 수신(水神)을 제사지내고 풍요를 기원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 필자 주 3). 필자가 볼때는 중국의 단오절은 전염병이 많고 더위가 심한 날이 시작되어서 사귀(邪鬼)나 질병을 퍼뜨리는 마귀를 쫒아내기 위한 여러가지 제사나 액막이도 행해진것으로 보여집니다.
. 필자 주 4). 필자가 볼 때, 중국에서 전해진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형태의 단오절은 고대 한국의 단오에서도, 그 풍요를 기원하는 형태를 보입니다.
두산백과의 설명입니다.
...한국의 경우, 고대 마한의 습속을 적은 《위지(魏志)》 <한전(韓傳)>에 의하면,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서로 신(神)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단오를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삿날인 5월제의 유풍으로 보기도 한다.
. 필자 주 5).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는 한국의 단오에 대해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 내용입니다.
- 다 음 -
...일년 중에서 가장 양기(陽氣)가 왕성한 날이라 해서 큰 명절로 여겨왔고 여러 가지 행사가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단오는 더운 여름을 맞기 전의 초하(初夏)의 계절이며,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이기도 하다....
[7]. 중국의 단오절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자료들.
1]. 베이징관광국 한글 공식사이트 운영팀에서는 단오절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문가 소개에 따르면 현재 쭝즈는 정월 보름에 먹는 원소, 추석에 먹는 월병과 함께 중국 3대 명절 음식으로 불리우고 있다. 매년 5월 초 많은 가정에서는 찹쌀을 담그고 대나무잎을 씻어 다양한 맛과 모양의 쭝즈를 만들고 있다.
초기 단오절은 병마를 제거하고 악귀를 쫒는 명절에서 유전되었다.
민속전문가의 소개에 따르면 고대에 5월은 "악월(恶月)", "독월(毒月)"이라 불리웠고 5일은 "악일(恶日)", "독일(毒日)"이라 불리웠다. 5월 초닷새는 악월 악일이라 사람들은 이 날을 매우 꺼려했다. 때문에 단오절은 최초 병마를 제거하고 악귀와 재난을 쫓는 명절에서 전해진 것이다.
단오절기간은 마침 여름철에 가까워지면서 한기와 열기가 서로 바뀌는 시기이다. 우수가 많아지고 독충이 번식하기에 사람들은 쉽게 병에 걸릴 수 있다. 때문에 고대 사람들은 단오절이면 쑥이나 창포, 마늘 등을 집 대문에 걸어놓는 풍속이 있었는데 사실 이는 맹목적인 미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독충을 쫓고 병균과 악취를 제거하는데 일정한 효과가 있다....
2]. 베이징 관광국 보도. 2017년 중국 명절 연휴 및 법정 공휴일 통지
지난 12월 1일 국무원에서는 <2017년 휴무일 안배 통지> 를 발표했습니다.
2017년도 중국 명절 연휴 및 법정 공휴는 아래와 같습니다.
一、원단 元旦:1월 1일(일) 휴무, 1월 2일 대체 휴무。
二、춘절 春节:1월 27일부터 2월 2일까지 연휴, 총 7일, 1월 22일(일), 2월 4일(토) 대체근무。
三、청명절 清明节:4월 2일부터 4일까지 연휴, 총 3일. 4월1일(토) 대체근무。
四、노동절 劳动节:5월 1일(월) 휴무, 주말과 함께 연휴。
五、단오절 端午节:5월 28일부터 30일 연휴, 총 3일. 5월 27일(토) 대체근무。
六、중추절, 국경절 中秋节、国庆节:10월 1일부터 8일 연휴, 총 8일。9월 30일(토) 대체근무。
[출처] 베이징관광국 - http://bbs.visitbeijing.or.kr/bbs/board.php?bo_table=C01&wr_id=178
. 필자 주 6). 元日(현대 중국은 춘절이라 하며, 전통 한자어로는 元日. 한국은 설날이라고도 함), 청명절(한국은 한식), 단오절(한국은 단오), 중추절(한국은 추석)이 유교권 국가인 중국의 전통 4대명절이고, 한국도 이와 비슷합니다.
3]. 한국의 출판물인 다락원의 자료에 나오는 중국의 단오절[端午節].
단오절은 음력 5월 5일이다. 오월오일(五月五日)이 오월오일(午月午曰)에 해당하므로 단오절(端五節 또는 端午節)이란 명칭이 생겨났다. '五'가 겹친 날이어서 중오절(重五節)이라고도 하고, 양수(陽數)가 겹친 날 중 가장 햇볕이 강한 날이라 하여 단양절(端陽節)이라고도 한다.
단오절의 유래는 여름의 더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덥고 습한 날씨로 인해 퍼지기 시작하는 각종 질병을 예방하려는 액막이의 차원에서 단오절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대문에 창포와 쑥을 걸어 놓거나 종규(鍾旭)의 화상을 붙이는 것을 비롯하여, 어른들이 웅황주(雄黄酒)를 마시고, 어린아이들의 몸에 향주머니(香包)를 달아주는 것 모두 액막이라는 소망이 담겨져 있다. 물론 이것들이 벌레를 쫓거나 살균·해독 작용을 한다는 위생적인 측면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한편 단오절이 중국인의 사랑을 받는 중요한 명절이 된 것은 굴원(屈原)의 전설에서 영향 받은 바가 크다. 굴원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시인으로서, 여러 차례 초희왕(楚懷王)에게 부패를 청산하고 국시(國是)를 바로잡기를 요구하다가 먼 곳으로 유배를 당했다. 유배지에서도 늘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며 노심초사하던 어느 날, 초나라의 수도가 진(泰)나라에 의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한 나머지 멱라강(泪羅江)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때가 바로 기원전 278년 음력 5월 5일이며, 그의 우국충정을 기리는 날이 된 것이다.
단오절에 용선경기(龍舟競賽)를 실시하고 종자(棕子)를 먹는 것도 굴원의 전설에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굴원이 멱라강에서 자살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애통해 하며 배를 내어 굴원의 시신을 찾아 나섰고,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을 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음식물을 강물에 던져 넣었다. 이후 사람들은 굴원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제사를 지내면서 강에 배를 띄우고, 대나무통에 찹쌀을 넣어 강에 던졌다. 여기에서 용선경기와 종자가 발전되어 나온 것이다....
.출처:단오절 [端午節] (중국, 중국인 그리고 중국문화, 2011. 3. 3., 다락원)
4]. 한국의 출판물인 중국 시사문화사전에 나타나는 단오절.
단오절[ 端午节 , Duānwǔjié ]
음력 5월 5일. 단양절(端阳节). 초(楚) 시인 굴원(屈原)이 멱라강(汨罗江, Mìluó Jiāng)에 몸을 던져 죽은 날을 기념하여 생긴 기념일로 전해지고 있다.
. 출처: 단오절 [端午节, Duānwǔjié] (중국시사문화사전, 2008. 2. 20., 이현국)
[8]. 단오절과 태음태양력
1]. 오픈마인드 간행 한자사전에 의하면 天中이란 "관측자(觀測者)를 중심(中心)으로 한 하늘의 한가운데"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필자가 해석하여 볼때, 천중절(天中節)이라 하면 다음과 같이 해석됩니다. 관측자를 중심으로 하여 해가 하늘의 한 가운데 있는 절기(단오절인 천중절부터 하지이후 상당기간까지)로 해석하면 적절한 것 같습니다. 주로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여 명절이 정해진(필자가 추측컨대, 고대에 달의 운행을 관찰하여 역법을 만든 문명권의 음력사용은, 뜨거운 기운이 없이 밤에 뜨는 달이 육안으로 관측하기가 쉽고,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얼굴과 눈에 직접 받아 화상이나 실명의 위험이 없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중국 태음태양력입니다.
2]. 두산백과는 태음태양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ar,太陰太陽曆]
요약
...태음태양력은 달의 차고 기울기를 주로 하면서 태양의 운행에 맞춰보려고 노력한 역법이다. 이 역법은 달과 태양의 두 운행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므로 매우 복잡하게 되기는 하지만, 실지로는 고대의 여러 나라와 여러 민족이 이 역법을 채택하였다...
이 일수 6940일을 중국에서는 장(章)이라고 하여, 이미 BC 600년경인 춘추시대의 중엽에 발견한 주기이고, 그리스에서는 BC 432년경에 메톤주기라고 하여 아테네의 메톤에 의하여 발견된 주기이다. 그리하여 19년 동안에 윤달을 7회 넣는 방법이라 하여 19년 7윤법(十九年七閏法)이라고 하였다. 태음태양력에는 바빌로니아력, 유대력, 그리스력, 인도력, 중국력, 한국에서의 음력(陰曆) 등이 있다.
한국은 중국 문화권 내에 속해 있어서 역에서도 중국력을 수입하여, 이것을 그대로, 또는 약간의 손질을 하여 우리의 역으로 써왔다. 그 중 백제에서는 중국에서 들여온 역법을 다시 일본에게 전달해 준 일도 있었다. 이들의 모든 역이 태음태양력이다...
. 출처: 태음태양력 [lunisolar calendar, 太陰太陽曆] (두산백과)
3]. 태양력[solar calendar, 太陽曆]
요약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으로서, 태음력과 상대된다. 이집트에서 BC 18세기경 1년 365일의 태양력을 만든 것이 그 기원이다. 그후 1년이 365.25일이란 것을 알게되면서 율리우스력에 채용하여 4년마다 1일 더하는 윤년이 생겼다. 1582년 그레고리력으로 이어져 현재에 이르렀다.
태음력(太陰曆)과 상대되는 역법이다. 태양력의 기원은 이집트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에서는 일찍부터 나일강(江)이 범람할 때면 동쪽 하늘의 일정한 위치에 시리우스(큰개자리 α별)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냄으로써 태양력을 만들 수 있었다. BC 18세기경 이집트인들은 1년을 365일로 하고, 이것을 30일로 이루어진 12달과 연말에 5일을 더하는 식으로 달력을 만들었다.
. 출처: 태양력[solar calendar, 太陽曆] (두산백과)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275696355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190490049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s://blog.naver.com/macmaca/110185393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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