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6일 수요일
2025년 8월 7(음력 6월 14일)일부터 16일간은 입추(立秋)절기입니다. 지열(地熱)때문에 낮에는 폭염날씨도 보이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입추 전후에는 가끔 비가 내리고, 점차적으로, 밤이되면 서늘한 바람이 불게 됩니다. 가끔 비가오고 대기 상공에서 찬 기운이 형성되면 밤에는 서늘한 바람도 불어, 가을로 접어드는 절기입니다.
2025년 8월 7(음력 6월 14일)일부터 16일간은 입추(立秋)절기입니다. 지열(地熱)때문에 낮에는 폭염날씨도 보이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입추 전후에는 가끔 비가 내리고, 점차적으로, 밤이되면 서늘한 바람이 불게 됩니다. 가끔 비가오고 대기 상공에서 찬 기운이 형성되면 밤에는 서늘한 바람도 불어, 가을로 접어드는 절기입니다.
입추무렵의 풍속으로는 기청제[祈晴祭: 고려ㆍ조선 시대에, 입추(立秋)가 지나도록 장마가 계속될 때에 나라에서 날이 개기를 빌던 제사. 출처는 표준 국어대사전임]가 있습니다.
[1]. 입추(立秋)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
1].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나타나는 입추(立秋).
예기(禮記)의 월령(月令)은 입추에 천자가 하는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立秋之日(입추지일) 天子親帥三公九卿諸侯大夫(천자친솔삼공구경제후대부) 以迎秋於西郊(이영추어서교)
입추인날에 천자가 친히 삼공.구경.제후.대부들을 거느리고 서교에서 가을을 맞이한다(가을의 帝인 少皥와 가을의 보좌신인 蓐收를 제사지낸다).
. 필자 주 1). 이 때 위 문장에서 天子親帥의 帥은 천자가 친히 3공.9경.제후.대부를 거느리고로 해석하려면 솔로 발음해야 맞겠다고 판단합니다.
. 필자 주 2). 유교 경전에서의 천자라 하면 수천년동안 중국 천자가 가장 일반적이며 세계적입니다. 한국같은 경우 자주적인 표현으로 중국 천자가 쓰던 천자라는 일반적 칭호보다 海東天子로 지역을 좁혀 표시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 입추(立秋) 절기때는 유교에서 최고신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 다음의 하위신으로, 오제([五帝, 다신교 전통의 유교에서 조상신 계열로 승천하여 최고신 하느님(天, 창조신이시며 만물을 주재하시며, 인간을 창조하신]하느님 다음의 하위신이 되심]중의 한분이신, 가을의 신[추(秋)의 제(帝)], 소호(少皥)께서 다스리는 절기입니다.
2]. 입추무렵의 기청제(祈晴祭).
입추무렵의 풍속으로는 기청제[祈晴祭: 고려ㆍ조선 시대에, 입추(立秋)가 지나도록 장마가 계속될 때에 나라에서 날이 개기를 빌던 제사. 출처는 표준 국어대사전임]가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입추(立秋)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십사절기의 하나.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들며, 이때부터 가을이 시작된다고 한다. 양력으로는 8월 8일이나 9일경이다.
3]. 입추(立秋)때는 지열(地熱)때문에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 그런데, 밤이되면 이슬이 내리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시기가 입추임.
지열(地熱)때문에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입추전후에 가끔 비가 오고 밤이되면 서늘한 바람이 부는 시기입니다. 말복까지는 사계절 중 가장 높이 뜬 태양의 태양열을 받아 지열이 쌓이고 쌓여 낮의 폭염이 만만치 않지만(양력 8월말까지는 낮동안에는 상당히 더운 날씨), 밤과 다음날 아침까지의 시간에는 아! 이게 밤에 이슬이 내린다는 입추(入秋)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날씨의 전환기입니다. 두산백과에 의하면 " 동양의 역(曆)에서는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로 친다"고 합니다.
양력(陽歷. 사전적정의로 太陽歷으로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1년으로 정한 역법)으로는 아직 여름이기 때문에 낮에는 뜨거운 햇볕이 곡식과 과일에 내리쬐어 결실을 맺게 해주면서, 야간에는 이슬이 내리는 계절의 전환기이기도 합니다.
立秋는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있으며 이 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음력(陰歷. 사전적 정의로 太陰歷으로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을 쇠는 유교문화권에서는 가을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태양을 기준으로하는 제천의식의 하나인 단오등이 있어서 태음태양력을 병행하고 있는 문화입니다.
유교의 오경(五經) 사서(四書) 중 하나인 五經 예기(禮記)의 월령(月令)편에서는 입추가 낀 달을 孟秋之月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맹추지월은 가을의 첫달이라는 의미로 초가을인 7월을 의미합니다. 가을을 다스리는 帝는 소호(少皥)입니다. 예기 월령은 其帝少皥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를 보좌하는 신은 욕수라고 합니다. 예기 월령은 其神蓐收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필자 주 3). 가을을 다스리는 帝는 소호(少皥)인데, 여기서의 帝의 의미는 황제나 임금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유교 경전에서 쓰이는 帝로 五帝의 帝나,하늘의 아들인 天子로 인간을 다스리다가 승천하여 하늘天의 일부가 되어 하늘天(太極과 연계되신 하늘天)의 다스림 중 일부를 이양받은 天의 일부가 된 天子로 볼수 있습니다. 태고적에 天子로 살다가 초월적 하늘天과 天人合一된 上帝.하느님(太極과 연계된 하늘天에 天人合一된 하느님)의 의미로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2]. 백과사전류에서 설명하는 입추(立秋).
1].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에 나타나는 입추(立秋).
정의
24절기의 하나.
내용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들어 있으며, 음력 7월, 양력 8월 8일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이 135°에 있을 때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뜻으로, 화성(火星)은 서쪽으로 흘러 있고 미성(尾星)은 중천에 떠 있다. 어쩌다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칠월칠석을 전후하므로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때부터 가을채비를 시작하여야 한다.
특히, 이때에 김장용 무·배추를 심고 9, 10월 서리가 내리고 얼기 전에 거두어서 겨울김장에 대비한다. 김매기도 끝나가고 농촌도 한가해지기 시작하니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거의 전국적으로 전해진다.
이 말은 5월이 모내기와 보리수확으로 매우 바쁜 달임을 표현하는 “발등에 오줌싼다.”는 말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 출처: 입추[立秋] (한국 민족문화대백과)
2].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입추(立秋)
요약 24절기 중, 13번째 절기로서 음력 7월 초순, 양력 8월 8~9일 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135˚에 위치하며, 가을에 들어선다는 뜻대로, 이날부터 입동 전까지를 가을로 친다.
24절기 가운데 대서(大暑)와 처서(處署) 사이에 드는 절기로, 순서로는 열셋째에 해당한다. 양력으로는 8월 8∼9일경, 음력으로는 7월 초순이며, 태양의 황경이 135°에 달하는 날이 바로 입기일(入氣日)이다. 동양의 역(曆)에서는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로 친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었다는 뜻으로,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는 하지만, 밤이 되면 비교적 선선한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여름의 흙일도 끝나고 이제 서서히 가을채비를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옛날 중국에서도 입추의 15일간을 5일씩 3후(三候)로 나누어 ① 서늘한 바람이 불어 오고 ② 이슬이 진하게 내리며 ③ 쓰르라미가 운다고 하였다.
농촌에서는 참깨·옥수수를 수확하고, 일찍 거두어들인 밭에는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기 시작한다. 태풍과 장마가 자주 발생해 논에서는 병충해 방제가 한창이고, 태풍으로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느라 분주하다. 이 무렵부터 논의 물을 빼기 시작하는데, 1년 벼농사의 마지막 성패가 이 때의 날씨에 달려 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시기이다.
아직 남아 있는 늦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받아 벼가 누렇게 익어야 하는 시기이다. 이 때부터 처서 무렵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아야 풍작을 기대할 수 있다. 또 바다에서는 달과 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여 밀물과 썰물의 차가 가장 크게 벌어지는 사리 현상이 발생해 서남해안 지역의 저지대가 침수, 농작물이 해를 입기도 한다.
입추 무렵의 풍속으로는 '기청제(祈晴祭)'가 있다. 예부터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여무는 시기이기 때문에 비가 내리는 것을 가장 큰 재앙으로 여겼다. 해서 각 고을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고 맑은 날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하늘에 기청제를 지냈는데, 성문제(城門祭)·천상제(川上祭)라고도 한다. 즉 비가 닷새 또는 보름 동안 계속해서 내리면 조정이나 고을에서 비가 멈추게 해 달라고 제를 올렸던 것이다. 봄·여름에 가뭄이 계속되면서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을 때 비를 내려 달라고 지내는 기우제(祈雨祭)와는 반대 성격의 제사이다.
. 출처: 입추 [立秋] (두산백과)
3]. 한국 세시 풍속사전에 나타나는 입추.
정의
태양의 황도(黃道)상의 위치로 정한 24절기 중 열세 번째 절기. 양력으로는 8월 8일 무렵이고, 음력으로는 7월인데, 태양의 황경(黃經)이 135도에 있을 때이다. 대서(大暑)와 처서(處暑)의 사이에 들어 있으며,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이다.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
유래
『고려사(高麗史)』 권50 지(志)4 역(曆) 선명력(宣明曆) 상(上)에 “입추는 7월의 절기이다. 괘(卦)는 리(離) 구사(九四)이다. 초후(初候)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차후(次候)에 흰 이슬이 내린다. 말후(末候)에 쓰르라미[寒蟬]가 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입추가 지난 후의 계절의 변화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고려사』 권6 「세가(世家)」 6 정종(正宗) 병자(丙子) 2년(1036)에는 “입하(立夏)부터 입추까지 백성들이 조정에 얼음을 진상하면 이를 대궐에서 쓰고, 조정 대신들에게도 나눠주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입추까지는 날씨가 무척 더웠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고려사』 권84「지(志)」38에 “입추에는 관리에게 하루 휴가를 준다.”라고 하였다.
내용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익어가는 때여서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야 한다. 조선 시대에는 입추가 지나서 비가 닷새 이상 계속되면 조정이나 각 고을에서는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다 한다.
입추는 곡식이 여무는 시기이므로 이날 날씨를 보고 점친다. 입추에 하늘이 청명하면 만곡(萬穀)이 풍년이라고 여기고, 이날 비가 조금만 내리면 길하고 많이 내리면 벼가 상한다고 여긴다. 또한 천둥이 치면 벼의 수확량이 적고 지진이 있으면 다음해 봄에 소와 염소가 죽는다고 점친다.
입추가 지난 뒤에는 어쩌다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때부터 가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특히 이때에 김장용 무와 배추를 심어 김장에 대비한다. 이 무렵에는 김매기도 끝나가고 농촌도 한가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거의 전국적으로 전해진다. 이 말은 5월이 모내기와 보리 수확으로 매우 바쁜 달임을 표현하는 “발등에 오줌 싼다.”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 출처: 입추 [立秋] (한국세시풍속사전)
.
[3]. 세계역사 변하지 않음.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 삼한 거치며 수천년 유교나라 한국. 하느님.공자님 숭배하며, 유교문화 24절기, 각종 명절, 문중제사, 가족제사, 삼강오륜의 유교질서를 지켜가시기 바랍니다.
일본 불교 Monkey의 교육.종교 등 모든 주권은 일본 항복과 함께 한국에서 존재할 수 없음.역사,법, 종교, 문화, 대학은 정치와 별개임.근대세계 지배세력 서유럽.세계사의 수천년 문명,인정받아온 혜택자 중국. 수천년 역사를 기록한 세계사 기득권들은 무엇을 유지했고,무엇을 잃었는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2차대전 승전국이자 UN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이 된 미국과 소련(러시아)도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자기진단을 해보아야 합니다. 서유럽,중국,미국,소련(러시아) 본인들이 이런 내용들을 잘 알고 있어야 갈등이 적어집니다.*먼저 한국 관련 내용입니다.필자가 일본 잔재학교 서울대등 질타 이유는,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받아들여,한국.대만.동남아,쿠릴열도등에 일본 주권없고 축출해야한다는 국가원수들 합의문때문.그리고 한국 임시정부는 한일병합무효,대일선전포고.*한국에 주권없이 남겨진 패전국 일본잔재 경성제대후신 서울대와 초급대출신 국립대,중.고교등은 축출(폐지)대상@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서강대는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심산 김창숙 선생은, 해방후 미군정당시, 미군정이 복구한 성균관의, 성균관장이 되시고, 전국 유림대회 결의에 따라, 성균관장의 자격으로,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현재에 이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대학 국사 성균관자격은 성균관대가 계승)@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포함)을 받아들여,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고, 한국영토에서 축출해야 될 일제 잔재 종교정책과,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각종 왜구학교.@김창숙 선생 개인이, 인품이 훌륭하거나, 임시정부 요인이라서가 아니라, 미군정에서 법으로 성균관을 복구시켜서, 성균관장에 선출되었고, 성균관장 자격으로,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하여서, 성균관대가 국사 성균관의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자격을 승계해 온것임.국사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라는건 성균관대, 성균관, 여러 백과사전 공통된 견해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3894018066
1]. 세계 최초의 대학 중국 태학.국자감(베이징대로 계승),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 한국사 성균관(성균관대).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하느님,공자숭배),서유럽 세계종교 로마가톨릭(하느님, 예수숭배. 서유럽에서 중남미.필리핀에 걸쳐 더 광범위한 세계종교로 확장). 세계4대 발명품 중국의 종이,화약,나침판,인쇄술. 근대세계의 지배세력 서유럽.
2]. 필자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자 아시아인입니다. 교과서나 국제법 기준으로 보면 이런 개념이 성립됩니다.
국사 성균관(성균관대). 국사.헌법은 한국표준, 세계사,국제법은 세계표준.
하느님(天)을 숭배하면서 天子가 제사하고, 설날.추석에 인구 대이동을 하고, 단오날(수릿날,天中節)은 높은 신이 오시는 날로 기풍제등의 소원을 빌고, 대보름.추석에 모든 국민들이 달님에 소원을 빌고, 유교문화 24절기를 가지며, 천자문을 배우고, 공자님.맹자님의 인의예지신과 삼강오륜을 수천년간 체화시켜온 동아시아 십수억명 유교신자들(중국,한국,베트남,몽고. 2차대전후의 싱가포르.대만 및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 화교등).
사람은 주어진 소명에 따라, 열심히 해야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인간 스스로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슷하게 적용하면 盡人事待天命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모든일상이 天[하느님, 하늘(하느님)]과 결부된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수천년 관습입니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도전해 보는것 또한, 하늘(天)의 뜻에 맡겨보아야 합니다. 至誠能感天의 심정으로...
하느님을 숭배하는 유교문화권인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2차대전후의 신생 유교문화권인 싱가포르.대만), 가톨릭문화권인 서유럽(중세이후 중남미도 가톨릭 국가가 됨)의 수천년 전통은 중요합니다. 가톨릭 국가들의 정신적 구심점인 교황성하를 중심으로 한 구대륙인 유럽과 아시아는 구대륙의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인류문화를 이끌어왔습니다.국사 성균관(성균관대)자격뒤에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극복은 서강대 학구파가유일.2차대전이전 세계지배세력 서유럽.교황윤허資格작용되면 가능한현실.국사자격 Royal성균관대, 서강대(세계사 교황 윤허 반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세계사의 태학.국자감(北京大),볼로냐.파리대資格상기.
3]. 교과서자격 안변함. 국사 성균관(성균관대), 세계사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베이징대로 승계), 볼로냐.파리대 자격은 변하지 않아왔음.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균관대.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인정받고 있는 성균관대. Royal대임.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헌법,국제법, 학교교육 교과서의 교육내용은 가장 표준적이며, 가장 보편적인 학술근거입니다. 대학 학벌문제는, 수많은 갈등과 반복을 통하여 오랫동안 定說.正論으로 유지되어온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中高生 학습서 포함), 학술서적상의 유서 깊은 대학들이나 기득권을 가진 측에서 설립한 대학을 기준으로 하는게 가장 정통성을 인정받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필자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계사.한국사 교과서(참고서), 사전, 학술서가 바뀌지 않는한 유구한 역사의 기득권들도 바뀌지 않음.시중에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교과서(참고서), 사전, 학술서에 바탕한 대학들을 비교해도 유구한 역사의 대학들이 바뀌지 않는한 이에 연관된 대학들의 기득권도 그대로 유지됩니다.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세계사에 나오는 대학들을 먼저 알아야 현대의 세계적인 대학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천년동안 하느님을 숭배해온 하느님족(고대에 세계종교로 성립된 동아시아 유교, 서유럽의 가톨릭)은 하느님의 섭리에, 순종해오며, 세계사 자격으로, 공자님과 예수님을 떠나살 수 없습니다. 필자는 대학의 학벌자격에 주안점을 둠.헌법,국제법,한국사, 세계사의 대학자격은 과거와 현재에 변하지 않아와서, 앞으로도 변할 사유가 없음.패전국에 UN적국 일본. 전쟁범죄국가 일본. 2차대전때, 카이로선언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승인(프랑스,구 소련, 폴란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인 일본의 항복, 해방후, 미군정, 국사 성균관 교육,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 등록이 있어서, 불교 국가 일본과 전방위적 압박기구를 남겨둔, 일본잔재 뜻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 대일 선전포고를 하였습니다. @ 한국은 이런 대학구조를 가졌습니다. 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 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양반 성대다음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한국은, 미군정때부터 국사 성균관교육(성균관대 자격)을 실시해와서, 성균관대가 유일한 주권대학임. 세계사의 세계종교 유교가 위험해져서, 세계사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교황청산하, 서강대와 연합해야, 위기극복이 가능해서, 국제관습법인 세계사 자격을, 한국사 성균관과 연계한것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 僧(히로히토, 아키히토, 나루히토등,일본에서는 천황).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패전국 奴隸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僧이 세운 마당쇠 불교 Monkey),그 뒤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의 비신분제 대학들. @한국 국사 성균관교육(성균관대자격)은, 승전국 미국의 미군정때부터 다시 재개된 성균관(성균관대자격)중심, 正史.定論 교육입니다. @성대 6백주년 행사때는 대통령.국무총리.교육부 장관 참석하였습니다.*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교황윤허,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 https://blog.naver.com/macmaca/223528462438
@이와 달리, 미군정당시, 문교부(학무국)의 문교부장으로 근무하던 일본 동경대출신 유억겸과 부하직원들의, 주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중심 하위법률(국가원수들의 합의문인 포츠담선언이 상위법률. 상위법 우선의 원칙)제정은, 국사 성균관 자격 성균관대에 대항해 도전한 주권.자격없는 하위법에 불과합니다. 국가원수들의 합의문인 상위법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으로, 일본의 주권은 한국영토에 없었으므로,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를 성균관 앞에 쓰는 하위법인 미군정의 법률제정과, 서울대 국립대강행은, 주권.자격.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중심 일탈에 불과합니다. 서울대 국립대추진을 강행하여, 얻어진, 일제잔재 대중언론들의 서울대중심 대중언론 기사는, 正史.定論인 국사 성균관의 성균관대 자격에 대항하여, 주권.자격.학벌없이 쓰여진 약탈성격 野談이며, 주권없는 서울대와 추종세력들의 약탈행위에 해당됩니다. 미군정당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새로 대학이 된 대학들을, 모아, 대중언론에서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 앞에 쓰고,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임시정부 법률에 반대되는 다른 주권없는 교육정책을 만들어, 대중언론과 새로 생긴 입시지.사설 입시학원으로 파급되어 성균관대를 공격해오고 있는것입니다. 성균관대를 공격해보기 위한 주권.학벌없는 약탈행위의 과정이라, 인정받지 못해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 제헌의회의 임시정부 반영, 1988년 현행 헌법前文의 임시정부 반영도 있었습니다. 한국과 세계의 주요 대학들은, 국제법,헌법,국가주권의 기준으로, 세계사와 한국사의 正史.定論을 대조하고 검증해서 인정받는 방법이 가장 합법적이며.학술적입니다. 그리고 영.미권 국가들처럼 불문법의 판례법을 가진 나라들은, 역사나 관례를 적용하면 될것입니다.
[4]. 오제(五帝)와 그 보좌신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나타나는 帝는 다음분들입니다.
1]. 春의 帝는 태호(太皞), 夏의 帝는 炎帝, 秋의 帝는 소호(少皞), 冬의 帝는 전욱(顓頊)
이렇게 4계절의 帝만 나타내는 禮記 책도 있지만 季夏와 孟秋의 달에 中央의 帝를 집어넣어 그 帝를 黃帝로 하는 禮記 月令도 있습니다. 필자가 볼때는 이 예기 월령의 五帝를 근거로 오제설이 설립된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기 월령편이나 다른 경전에서 이 5제의 모습을 인간이나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전설적.신화적 형상으로 표현하는 구절은 필자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他 문명과 교류하면서 神話的인 모습의 동물들을 숭배하는 원시신앙에 영향받아 유교 경전 아닌 중국의 俗書에는 신화적인 동물모습의 3皇5帝 현상도 나타나고는 있습니다. 황하문명에서 파생된 유교도 그렇고 기독교도 그렇고 다른 신앙도 그렇고 인지능력이 발달하기 전에는 인간들이 잘 모르는 능력을 가졌다고 동물도 혼합하여 같이 숭배할 수 있었겠습니다. 이런 모습은 신화나 상상.또는 先史時代에 실재로 존재하던 강력한 존재였다고 추정되는데, 인간들이 점차 옷도 만들어 입고 말도 하고 집도 지을줄알고, 근친혼을 배제하고, 글을 쓰면서 더욱 문명화된 인간의 모습을 중시하여 신화적인 동물 모습은 유교 경전이나 기독교 경전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화나 전설로 밀려난 채로, 그런 신화적.전설적 형상의 神들은 그대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능력도 무한하시지만 하느님의 형상은 우리 인간이 쉽게 그려낼 수 없을것 같은데, 유교나 기독교가 인간중심으로 전승되면서 신화적.동물혼합적 지배자들의 모습을 인간의 형상중심으로 변화시키면서 經典에 반영했을 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인지능력이 발달하기전에 숭배하던 강력한 존재가 동물의 모습을 가졌다면 이 전통을 인정해주는것도 옳을것 같습니다.오래된 문명에서 뱀이나 소의 모습을 한 강력한 존재를 지속적으로 경배대상으로 하여 이를 융합하였을 수도 있었고, 지금도 타 문명권에서는 지속적으로 그 동물모습의 강력한 존재를 숭배대상으로 삼는다면 인정해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유교권에서는 근친혼이 강하게 배제된 것 같고 8촌이내의 결혼도 기피하게 되었고, 근친혼을 인정할 수 있던 서양도 비극적인 연극을 통해 原罪意識을 가지게되고, 생물학적 개념으로 근친혼은 열성인자를 가진 후손을 낳는다고 교육시키면서 서양도 근친혼은 기피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가진 로마제국이 새롭게 기독교를 國敎化시킨 원인도 근친혼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던 아득한 先史時代의 전설에 원죄의식을 가지게 되면서(카오스 상태에서 태어난 神의 근친혼적 성격, 오이디푸스 이야기등), 점차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 가을의 帝 소호의 보좌신 욕수에 대한 설명입니다.
예기 월령에서 가을(秋)의 帝인 소호(少皞)의 보좌신으로서 욕수(蓐收)가 나타납니다. 帝를 보좌하는 보좌신을 神이라고 표현한것은 上帝(天人合一說에 의해 하늘天의 일부 지배권을 이양받으신 하느님 五帝)를 보좌하는 신으로서, 여기서의 神은 보좌신의 의미로 神靈이나 鬼神정도의 하위신에 해당된다고 파악됩니다. 유교는 수천년의 전통에서 多神敎 전통이 변질되지 않은 종교중 하나입니다.
소호는 소호금천(少皥金天氏)으로도 표현되는데 욕수(蓐收)는 소호금천의 아들입니다. 소호의 아들 욕수는 天人合一說에 의해 가을의 帝(가을의 上帝. 가을의 하느님)가 되신 소호를 돕고 있는 보좌신이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욕수(蓐收)는 소호(少皥)의 아들 해입니다.
3]. 참고로 예기 월령에서 봄.여름.중앙.가을.겨울의 帝와 보좌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봄(春)
其帝太皥(기제태호) 其神句芒(기신구망)
그 上帝는 태호(太皥), 그 보좌신은 구망(句芒)이라는 의미입니다.
구망(句芒)은 소호(少皥)의 아들 중입니다.
2. 여름(夏)
其帝炎帝(기제염제) 其神祝融(기신축융)
그 上帝는 염제(炎帝), 그 보좌신은 축융(祝融)이라는 의미입니다.
축융(祝融)은 전욱의 아들 여입니다.
3. 중앙(中央). 禮記 月令에서는 夏와 秋 사이에 나타남.
其帝黃帝(기제황제) 其神后土(기신후토)
그 上帝는 황제(黃帝), 그 보좌신은 후토(后土)라는 의미입니다.
후토(后土)는 공공씨의 아들 구룡입니다.
4. 가을(秋)
其帝少皥(기제소호) 其神蓐收(기신욕수)
그 上帝는 소호(少皥), 그 보좌신은 욕수(蓐收)라는 의미입니다.
욕수(蓐收)는 소호(少皥)의 아들 해입니다.
5. 겨울(冬)
其帝顓頊(기제전욱)) 其神玄冥(기신현명)
그 上帝는 顓頊(전욱), 그 보좌신은 현명(玄冥)이라는 의미입니다.
현명(玄冥)은 소호의 아들 수와 희입니다.
. 필자 주 4). 보좌신들에 대한 출처
오정(五正)
행(五行)을 관장하는 다섯 우두머리. 곧 목(木)은 구망(句芒:소호의 아들인 중), 금(金)은 욕수(蓐收:소호의 아들 해), 화(火)는 축융(祝融:전욱의 아들 여), 수(水)는 현명(玄冥:소호의 아들 수와 희), 토(土)는 후토(后土:공공씨의 아들 구룡)임.
.출처: 오정[五正]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3.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4]. 순서상으로 볼때 尹씨는 중국의 소호(少皥)씨에서 유래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파평윤씨(坡平尹氏)입니다. 윤씨는 통일신라 말기에 태어나신 태사공[太師公,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는 성씨인데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서 개국공신으로 三韓功臣이 되었습니다. 이후 고려의 명문 문벌로 살다가 조선시대에도 전주 이씨 다음으로 과거 급제자를 많이 배출하여 1천년 이상 한국의 명분문벌로 살아온 성씨입니다. 그런데 한국 정착은 늦은편 같습니다. 윤씨는 파평윤씨가 가장 많습니다.
5].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다음의 서적을 소개 하겠습니다.
1. 조상성씨의 세계 내가만난
저자:김 문순/답게/2009.03.25
위 책은 무송 윤씨와 칠원윤씨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 무송윤씨
원 성씨는 원래 소호(少皥)씨였으나, 소호 금천씨의 아들 선(船)이 옹주의 윤성에 봉해져 윤씨가 되었다. 후손인 경(鏡)이 병란을 피하여 무송(전북 고창)에 세거하여 이어져 오고 있다...
2). 칠원윤씨
태종 무열왕때 태자 태사 역임.
. 필자 주 5). 향토문화대전에 나타난 무송 윤씨의 시조와 칠원윤씨의 시조에 대한 설명입니다.
3). 한국에서의 무송윤씨(茂松尹氏) 시조 윤양비(尹良庇)에 대한 설명.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설명편에 나옴.
[연원]
무송윤씨(茂松尹氏)의 시조 윤양비(尹良庇)는 고려 예종 때 현리(縣吏)로서 과거에 급제하여 보승낭장(保勝郎將)·호장동정(戸長同正)을 지냈다. 윤양비의 선계(先系)는 윤경(尹鏡)으로 후당(後唐)에서 오계(五季)의 난을 피하여 한반도로 건너와 무송(茂松)[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지방에 정착하면서 무송을 본관으로 삼았다. 이후 계대가 실전되어 윤양비를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와 장령공파(掌令公派)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4). 한국에서의 칠원윤씨(漆原尹氏) 시조 윤시영(尹始榮)에 대한 설명.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상삼리 에 있는 칠원윤씨 上良齋
설명편에 나옴.
[개설]
칠원윤씨 대언공파(代言公派) 양산 소문중(小門中)이 임진왜란 전에 남하하여 양산 상삼 및 양동에 세거의 터를 잡았는데 26세조 윤승원(尹承元)을 모시는 재사이다. 「상량재기」는 1997년 5월 18일 38세손 윤정삼(尹政三)이 근찬한 것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신라 태종무열왕 때 태사로서 고명원로(顧命元老)에 이른 윤시영(尹始榮)을 시조로 삼았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27세조 윤옥(尹沃)은 무과중추부사(武科中樞府事)였으며, 윤발(尹潑)은 무과에 급제한 만호(萬戶)였다. 두 사람은 임진왜란시에 형제가 창의(倡義)한 공으로『양산읍지』, 『양산향안』에 실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5). 한국에서의 파평윤씨((坡平尹氏) 시조 윤신달(尹莘達)에 대한 설명.
성씨의 역사
파평윤씨의 시조는 윤신달(尹莘達)이다. 윤신달은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한 공으로 개국통합삼한벽상익찬공신(開國統合三韓壁上翊贊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관직은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이르렀으며 소양(昭襄)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조선씨족통보》와 《용연보감(龍淵寶鑑)》 등에 의하면 윤신달은 파주 파평산(坡平山) 서쪽 기슭에 있는 용연(龍淵)에서 옥함(玉函)이 물위에 떠오르면서 그 안에서 나왔다고 한다. 윤신달 이전의 자세한 세계(世系)는 알 수 없다.
.출처:파평윤씨[坡平尹氏] (성씨와 본관, 2011.1.14, 한국학중앙연구원)
. 필자 주 6). 이로볼때 무송윤씨 시조 윤양비의 선계(先系)는 윤경(尹鏡)으로 후당(後唐)에서 오계(五季)의 난을 피하여 한반도로 건너와 무송(茂松)[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지방에 정착한것으로 판단됨. 칠원윤씨의 시조 윤시영(尹始榮)도 신라 태종무열왕 때 태사로서 고명원로(顧命元老)에 이른점을 보면, 태종무열왕재위시 중국을 통치하던 당나라 때 칠원윤씨가 한국에 정착한것으로 파악됨.
결국 소호씨에서 유래된 중국 尹씨는 唐나라때와 後唐시대(역사적으로 923~936 존립) 한국에 정착한 성씨라 할 수 있음. 정착순서로 보면 칠원윤씨가 태종 무열왕때, 파평윤씨가 고려 건국(918년)에 참여한 전후시기에, 무송윤씨가 후당(923∼936)시대에 한국에 정착한 것이라 판단됨.
. 필자 주 7). 태종무열왕, 당나라, 후당(後唐)의 시대 설명.
6).신라시대 태종무열왕의 출생.사망 및 재위기간
가). 출생~사망: 603(진평왕 25)∼661(문무왕 1).
나). 재위기간: 재위 654∼661. 성은 김씨. 이름은 춘추(春秋). 신라 제29대왕.
. 출처: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다). 당(唐)나라 존속기간
618년 이연(李淵)이 건국하여 907년 애제(哀帝) 때 후량(後梁) 주전충(朱全忠)에게 멸망하기까지 290년간 20대의 황제에 의하여 통치되었다
.출처: 당[唐] (두산백과)
라). 당(唐)과 다른 후당(後唐)에 대한 설명
중국 고대의 오대(五代) 중의 한 왕조(923∼936).
통칭 후당(後唐)이라 한다. 돌궐(突厥) 사타부(沙陀部) 출신의 이극용(李克用)이 당(唐:618∼907)에 봉사(奉事)하며 황소(黃巢)의 난(875∼884) 진압에 공을 세워 895년 진왕(晉王)으로 훈봉(勳封)을 받았는데, 아들 이존욱(李存勖:재위 923∼926)은 923년 후량(後梁:907∼923)의 뒤를 이어 국호(國號)를 당(唐)이라 칭하고 뤄양[洛陽]에 도읍하였다...
.출처:당[唐] (두산백과)
. 필자 주 8). 유교사회는 자손번성을 위해 부인을 여러명 두며 살아온게 역사적 현실인데, 이는 그대로 반영하여야 합니다. 왕족이나 양반은 대개 그렇게 여러명의 부인들 두고 一夫多妻制로 가문의 번영을 도모했습니다. 현대는 一夫一妻制지요.
. 필자 주 9). 五帝의 姓.
태호, 염제, 황제, 소호, 전욱은 하나의 칭호에 해당됩니다. 중국은 姓氏제도를 발달시켜 한국도 殷나라의 왕족출신 箕子조선의 출현이후 기자의 후손들이 성을 사용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조선부터 역사적 조선으로 보여지는데, 기자조선을 불명확한 시대로 보는 견해도 있음. 물론 아직까지 단군은 역사가 아닌 전설이나 野史로보고 그렇게 가르치고 배워왔음. 세계사 영역과는 맞지 않는 야사와 전설이 단군조선 이라 할 수있음. 최근에 급작스럽게 단군조선도 교과서에 넣기는 넣었지만 世界史.正史로서가 아니라 신화와 전설 차원으로 넣은것이라 이는 학계에서 많은 검토를 해야 함. 국어사전이나 한자사전에서 유사이래(有史以來)란 말은 있어도 단군이래라는 말이 등재되지 않은걸 보면 正史에 근거한 역사적 자격이 중요하기는 중요한 것 같음. 그런데 기자조선 기준(箕準)王은 분명한 正史시대의 위만이 멸망시켜 출생.사망이 부정확한 인물이면서 역사적 인물에 해당되기도 함.
. 필자 주 10). 준왕(準王), 즉 기준(箕準)은 출생.사망은 불명인데, 재위기간은 명확하고 정사시대 인물인 위만에 멸망당하는 역사에는 분명히 등장하고 있습니다.
.준왕
재위기간: BC 3세기~BC 2세기.
고조선의 왕. 중국의 진(秦)나라 말기와 한(漢)나라 초기에 걸치는 시대에 재위(在位)하였으며, 지금의 랴오둥[遼東]지방에서 도망해 온 위만(衛滿)을 받아들여 한씨조선의 서북변(西北邊) 지방을 지키게 하였다. BC 194년 위만이 왕검성(王儉城)을 공취(攻取)하자, 준왕은 마한(馬韓) 땅으로 도망하여 그 전에 이미 그 지역에 이주해 있던 유민(流民)을 수습하여 그들을 지배하면서 한왕(韓王)이 되었다.
.출처:준왕[準王] (두산백과)
. 필자 주 11). 기자조선의 실체를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인정하였다고 하는데, 최근에 부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필자는 성씨의 유래나 기준왕의 역사적 등장으로 볼때 기자조선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근대와 현대 일부분 시기는 일본 강점기인데, 학술서나 백과사전.교과서 등 많은 학술서에서 유교 아닌 일본 신도.일본불교적 시각과 일본 기준 역사관이 강점기 한국에 작용한점을 염두에 두어 장기적 재검토가 필요한 분야라 생각합니다.
기자조선(箕子朝鮮)
.요약:중국 은나라 말기에 기자(箕子)가 조선에 와서 단군조선에 이어 건국하였다고 전하는 나라.
기자가 조선에 와서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대표적인 역사책은 복생(伏生)의 《상서대전(尙書大傳)》, 사마천의 《사기(史記)》, 반고의 《한서(漢書)》 등인데, 사서마다 내용이 약간씩 다르다. 그 밖의 기자에 관한 기록들은 모두 이들 세 사서에 그 유래와 근거를 두고 있다.
《상서대전》에는 주(周)의 무왕(武王)이 은(殷)을 멸망시키고 감옥에 갇힌 기자를 석방하자, 그는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겨 조선으로 달아났다. 무왕이 이 소식을 듣고 조선왕으로 봉하였다. 주의 책봉(冊封)을 받은 기자는 부득이 신하의 예를 차려야 하였으므로 BC 1100년경(무왕 13)에 주나라에 가서 무왕을 만났는데, 무왕은 그에게 홍범9주(洪範九疇)에 대해서 물었다고 한다.
또 《사기》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는 무왕이 은을 정복한 뒤 기자를 방문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도를 묻자 홍범9주를 지어 바쳤다. 이에 무왕이 그를 조선왕으로 봉해주었으나, 기자는 신하의 예를 갖추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서》 지리지 연조(燕條)에는 은나라가 쇠하여지자 기자가 조선에 가서 그 백성에게 예의와 농사 ·양잠 ·베짜기 기술을 가르쳤더니, 낙랑조선(樂浪朝鮮) 사회에서는 범금팔조(犯禁八條)가 행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들을 근거로 《삼국지》에 인용된 《위략(魏略)》에서는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긴 준왕(準王)을 기자의 후예로 기술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기자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였지만, 최근에는 이를 부정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출처:기자조선[箕子朝鮮] (두산백과)
6]. 여하튼 한국 성씨를 보면 기자조선의 후손들이 徐氏나 韓氏등으로 姓을 자연스럽게 적용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태고적에 성이란건 꼭 父의 성을 따르지 않고도 그 후손이 地名등을 활용해 姓을 사용하여 전승되어온 부분도 많습니다. 한국의 경우 기자조선 후손들은 姓을 사용해왔다고 할 수 있는데, 기자조선 후손이 아니면 자생적인 부족연맹체의 수장들이 姓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 나중에 추증형식으로라도 姓을 사용하며 확대시켜 온 나라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막부시대를 타도하며 하급무사들이 추대한 日王이 아직도 姓이 없는게 좀 특이합니다. 한국에서 漢字나 유교 및 도교.중국불교 여러 문물을 수입해간 나라가 일본이며 한국을 어버이 나라로 알던 나라가 일본인데 느닷없이 중국.한국이 모르고 인정치 않던 천황칭호를 강요하니까 해방후 한국은 日王이라고 호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필자 주 12). 유교 경전에서 보면 윤씨가 나오는점으로 보아 중국에서 발생한 姓인점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소호씨가 尹성을 사용한게 아니고 次妃(둘째 왕비)에게서 난 후손이 尹성을 사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른성씨는 몰라도 필자가 尹氏라 그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위에서 예로든 책 [조상성씨의 세계 내가만난/김문순 저]에서 무송윤씨의 원래 성씨가 소호씨라고 한것은 칭호를 성씨로 혼동하여 그렇게 서술한 것 같기도 합니다. 상고시대의 일로, 좀 복잡해서 그런것 같습니다.
[5]. 유교 경전인 오경(五經)의 예기(禮記)에 나타나는, 五帝(태호, 염제, 황제, 소호, 전욱)의 세속의 姓氏등.
1]. 五帝의 姓을 밝혀주는 자료를 근거로 五帝의 姓을 살펴보겠습니다. 아주 오래된 태고시대의 인물들이라 여러가지 설이 많아 후세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혼란한 측면도 있으니까 이런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가장 중요한것은, 세계종교로 성립된 유교(한나라때 동아시아 세계종교로 성립)나 가톨릭(로마제국때 서유럽과 서아시아 일부,북아프리카 일부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의 국교로 성립)이, 그 이전 태고적의 혼돈.未開化상태에 있던 중국의 속설이나, 그리스.로마신화와는 다른 종교라는 점입니다. 인류의 지능과 지식이 본격적으로 진보하여, 그 이전의 혼돈상태에서 믿어지던, 단순한 대자연 숭배나, 토테미즘이 개입된 동물혼합의 神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유교나 가톨릭같은 세계종교는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한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숭배하면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하면서, 발전을 해왔습니다. 유교는 주나라 때 성립된, 天을 최고신으로 하여,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이론과 경합하면서, 공자님의 儒家사상은 단순한 대자연 숭배.조상숭배와 달리,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만 백성을 창조하신 天(하느님)을 최고신으로 숭배해왔습니다. 제자백가와 경합하다가 한나라때 국교로 성립되어 동아시아의 세계종교로까지 발전된 유교입니다. 제자백가와 경합하던 당시, 공자님은 단지 스승.선생정도의 지위였다가, 점차, 위대한 스승, 성인임금, 하늘이 낳으신 성인으로 격상되신것입니다. 로마제국때는 이스라엘 부족신앙과 달리, 이스라엘지역에서 대접받지 못하던 예수(기독교문화 하느님의 독생자)를 매개로 하여, 초창기에는 로마제국에서도 그리스.로마신화의 神들에 눌려 박해받는 과정을 거치다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받으면서, 세계종교로 점차적 발전을 해온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도 인도를 중심으로 세계종교로 형성되었지만, 원래의 브라만교에 다시 눌려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고, 창조신을 부정하는 Monkey류 부처의 특성때문에 인도에서는 천 몇백년동안 탄압받아온 불교입니다.
2]. 五帝나 三皇에 대한 설은 한국의 여러 백과사전이나 학술서적들도 아직, 통일된 의견을 보이지 않고 있어 제 각각 다양한 상황인데, 이는 현대 중국도 큰 차이가 없는것 같음. 그러나 유교종주국이자 발생지인 중국이 모든 내용들을 가장 잘 알것임. 필자의 견해로는 백과사전이나 중국.한국의 俗書보다, 유교 경전인 禮記 月令에서 五帝를 발견하는게 가장 正道라 판단함(아주 오래된 태고적의 신적.신화적 인물들이 이 분들이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밖에 없겠는데, 혼선을 빚기보다는 유교 경전을 통하여 통일된 오제의 모습을 판단해보는게 적절할 것 같음). 한국에서는 정보가 부족하므로 불가피하게 백과사전이나 중국 인물사전등을 통하여 五帝에 대해 알아보는게 옳을것 같습니다.
[6].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 지켜야 될 자격과 전통이 있다면, 국가주권, 헌법, 국제법, 한국사, 세계사등에 의거하여, 최고의 가치로 알고 지켜가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 성균관대는, 해방후, 미군정이 공자묘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성균관 복구에 해당)하는 법률을 발효, 전국 유림대회 결의(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 김창숙)에 따라,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선생이, 미군정에, 대학기구로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의 환원(복구)을 실행하는 성균관대를 등록(성균관은 제사기구로 이원화)하여,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의 승계대학으로, 미군정때부터의 국사 성균관 교육으로, 해마다, 학교에서 성균관을 교육시키고 있습니다.@광복 당시 국내에 있던 일본의 모든 공유 및 사유재산은 미군정에 의해 ‘적산(敵産)’으로 규정되어 미군정청의 ‘귀속재산’으로 접수되었다...*출처:귀속재산불하[ 歸屬財産拂下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필자의견:해방후 미군정당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를 국립대로 하였는데, 이는 미군정의 敵인 일본잔재 경성제대를 적산재산 국유화 하는 패전국 잔재처리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울대뒤에 붙여넣은 더 자격없는 신생 대학들이, 국립대 서울대를 가장 앞에 두고, 주권.자격.학벌없이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에 대항해 온것은, 인정해 줄 수 없습니다. 또한 일제 잔재 공립 중.고교들이, 구한말에 세워진 한국의 민족학교들보다 좋다고 주장하는것도 적국 잔재 일본 왜구학교로서는, 아무 법적 타당성이 없고,명분도 없습니다. 그리고 일제가 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오도하고, 일본 불교에서 파생된 신도(불교 후발 일본 국지적 신앙으로, 일본 국교), 불교, 기독교만 종교로 하여, 강제 포교한 것도, 미군정당시부터 무효가 된 것입니다. 한가지 주의할것은, 서유럽에서 왕족.귀족의 역사적 지배권을 인정하는 기반에서 형성된 서강대가 속한, 가톨릭 예수회는, 해방후 미군정을 거친 한참후에 들어와 한국에 그 교당이나 신자수가 적다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민중을 위한다는, 가톨릭 외방전교회가 들어와 활동했는데, 수천년 왕조국가 전통의 한국에서는 지배층의 성균관대와 성균관.양반들이 인정할 수 없던 계파였습니다. @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 승계 성균관대는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행정법.국제관습법으로 인정받고 있음.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 宮(泮宮,學宮, 太學)의 별칭가진 성균관의 교육기능을 가진 성균관대임. Royal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양반 성대 다음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패전국 일본 잔재이자, 불교 Monkey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어왔음. 이 뒤로 서울대를 극복하지 못해온 전국 각지역 대학들. 해방당시 미군정부터, 상위법은 승전국 국가원수들이 모여 발표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이 국제법으로 상위법 역할을 하고, 미군정령은 하위법이라, 상위법 우선의 원칙으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조선.대한제국에는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으로 성균관 하나밖에 없던 나라였음.
@ 헌법, 국제법, 학교교육의 교과서 교육인 국사, 세계사 자격이 기준이며 가장 합법적이고, 보편적이며 학술적임.세계사에서 중국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베이징대로 승계하여 현재에 이름),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을 해마다 학교교육에서 교육시키는 학교교육 교과서 교육은, 대중언론.입시지,대학평가기관의 새로운 도전과 달리, 관습법적으로 국제법적 자격을 가진 최고의 권위를 가졌습니다. 한국은, 해방후 미군정시대에, 일제잔재 대중언론에서 시작된 경성제대후신 서울대가, 주권.자격.학벌없이,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에, 도전해오고 있지만, 헌법.국제법,국사,세계사 자격의 정통성은, 일제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의 도발을 인정해오지 않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입니다. 세계사의 교황성하 반영,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예수회 산하의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궁 성균관대(宮, 泮宮, 學宮, 太學의 별칭가진 성균관)다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자격 성균관대와 같은 Royal대학으로 예우한다는 지론을 펼쳐옴.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일본이 항복한후,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각종 왜구 잔재 초급대나, 공립 중.고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기 때문에, 미군정때부터 대중언론에서 도전.약탈.침략해온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이 된 대학을, 법이나 교과서, 학술적으로 불인정해옴.
@ 학구적이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예수회(귀족출신 이나시오 사제가 창립)산하 서강대는 정말 학구적인 대학입니다. 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 헌법, 국제법, 한국사, 세계사는 한국 고교교육을 거치고, 대학에 진학하면, 평생동안 가장 합법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기준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고려 국자감.성균관을 계승하여, 1398년에 조선을 건국하신 태조(이성계)께서, 1398년에 숭교방(崇敎坊,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명륜동1 · 2 · 3가 · 혜화동 각 일부에 해당)에 성균관 건물을 준공하셨습니다. 그 이후 태종께서 왕세자의 입학을 명령하신후, 조선의 왕세자들은 성균관에 입학해서 공부한 후, 국왕이 되는 학문의 길을 거쳐야 했습니다. 헌법이나, 국제법, 한국사, 세계사의 자격은 대중언론.입시지의 준동을 아랑곳 하지 않는 특질을 가졌습니다.또한 주권.학벌이 없는 서울대와 추종세력의 약탈을 인정해 줄수도 없습니다. @세계적 법체계는 대륙법 중심의 성문법과, 영.미법 중심의 판례를 따르는 영.미법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대륙법은 국제법의 표준이고, 영.미법은 영.미권 영향력이 강한 나라들에서 민사나 상사쪽으로 중요한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각 국가별 헌법이나 주권이 같이 작용하고 있습니다.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교황윤허,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교과서자격 안변함. 국사 성균관(성균관대), 세계사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베이징대로 승계), 볼로냐.파리대 자격은 변하지 않아왔음.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균관대.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인정받고 있는 성균관대. Royal대임.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 한국측 입장이 담긴 국사(성균관 교육), 국어, 국민윤리나,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각종 교과서(정치.경제, 세계사, 국토지리, 세계지리, 사회문화,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수학, 기술, 상업.공업.농업.수산업, 가정.가사, 음악.미술, 예술,체육) 이론들이 어우러져, 한국 대학들의, 헌법,국제법, 국사, 세계사, 국민윤리, 국어, 사회문화, 정치.경제적 측면이 상호 교차하면서, 일제 강점기에 생긴 각종 대중언론들의 견해(1960년대 후반에는 입시지나 학원들의 견해도 형성됨)까지 어우러져, 불법.강제로,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겼던, 조선.대한제국의 전통규범인 유교,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던 성균관(미군정시대 성균관대로 계승)의 주권.자격들이 도전받으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을사조약은 무효(따라서 불법.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임)라는 대한제국의 입장은 나중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계승되었음.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대일선전포고문에서 을사조약.한일병합등 각종 불평등 조약은 무효라고 명시함. 별도로, 국제법의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및 일본의 항복선언, 미군정법률은 국제법 영역입니다. 왕정복구가 무산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여, 대학측면으로 보면, 헌법.국제법, 학교교육 교과서 내용(국사,세계사, 정치경제,국민윤리등), 대중언론.입시지의 대학觀은 정리가 필요합니다.
대학은 가급적 학벌이 좋은 Royal대인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나,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귀족계파 예수회 산하의 서강대의 Royal 대학으로 가는게 좋습니다. 일류, 명문대학들입니다. 그리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및 그 추종세력들)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온 사유로, 무어라고 주장해도, 한국에 학벌이 없으며 일류.명문 타이틀도 부여받을 수 없습니다.
학과에 상관없이 무슨학과든지 Royal 성균관대(국사 성균관자격), Royal 서강대(세계사의교황반영,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성균관대(양반대학)와 서강대(가톨릭계 예수회의 귀족대학)만 Royal대며, 일류.명문임. 주권.자격.학벌 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일본 점쇠 천황이 세운 마당쇠 대학), 그 뒤 연세대(일본 강점기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 서민출신 이용익의 보성전문 후신 고려대일것. 성대와 서강대 밖의 리그로 본다면 주권.학벌없는 서울대, 연세대(본캠), 고려대(본캠), 이화여대.이화도 주권.학벌은 없지만, 왜구 서울대가 연세.이화 필요하던 미군정때의 대중언론 도전. 성균관대에 오랫동안 도전을 해와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카르텔은 전분야에서 아주 강합니다.
교과서자격 안변함. 국사 성균관(성균관대), 세계사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베이징대로 승계), 볼로냐.파리대 자격은 변하지 않아왔음.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균관대.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인정받고 있는 성균관대. Royal대임.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헌법,국제법, 학교교육 교과서의 교육내용은 가장 표준적이며, 가장 보편적인 학술근거입니다. 국사(성균관, 해방후 성균관대로 정통승계), 세계사(한나라 태학, 위 태학, 그 이후 나라들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승계), 교황성하의 신성성 지속,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파리대학등의 전통과 자격을 반영하여, 주권과 대학학벌을 수호하고자 합니다. 대중언론.사설 입시지를 통하여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에, 주권.자격.학벌없이 대항해온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그 추종세력들의 도전을 막기 위함입니다.
[7].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 僧(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가 세운 마당쇠 僧대학). 그 뒤 서울대에 대중언론에서 눌려온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의 비신분제 대학들.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그러나 세계사로 보면, 가톨릭이라는 세계종교는 너무 세계인에 일반화되어서, 국사적개념과 병립하여, 세계사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에서, 국제관습법상 세계종교 가톨릭의 자격으로 예우하는게 적절함. 일본식 개념으로, 일본 국지신앙인 일본 신도(일본의 국교), 불교, 기독교의 위상을, 한국에 적용할수는 없음.
그리고 한국과 바티칸시티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기 때문에, 한국헌법 임시정부가 선전포고하고,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일본의 종교기준을 적용하는게 맞지않음. 불교는 인도에서도 배척당해왔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 불교국 일본의 종교기준대로 하면,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아닌 사회규범이 되어, 일본 신도(불교에서 파생됨), 불교, 기독교만 포교종교고, 유교는 일제강점기의 신생종교인 원불교보다 신자수가 적은 50만(성균관.향교의 제사인구만 유교도라고 1980년대 초반에 통계청 표본조사를 실시하여, 다시 유교에 도전하고 있음)이 되어, 해방한국의 종교주권을 침해당하게 됨.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 가지고 있음. @문화대혁명으로 모택동 주석도 비판받고,중국은 개혁.개방정책으로, 유교 전통명절인 춘절, 중추절, 청명절, 단오절의 4대명절 공휴일을 아주 길게 하였음.@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한국영토에 주권없는 패전국 잔재이자, 하느님.창조신을 부정하는 Chimpanzee계열 불교 일본 서울대Monkey와 추종세력들이 학교교육 세계사의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윤리의 종교교육 유교, 국사등과 달리, 일본강점기때 일본이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했으니까, 유교가 종교아니라고 최근 다시 왜곡하는데,이는 일제잔재 대중언론에 포진하여 루머수준으로 유교에 도전하는것임.@인도에서 불교도는,불가촉賤民.조계종승려賤民한국과비슷.강점기 하느님에 덤비며(창조신내리까는 부처처럼)유교부정,불교Monkey일본.하느님보다높다는 성씨없는 일본점쇠賤民.후발천황(점쇠가 돌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옹립.한국은 세계종교유교국.수천년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숭배.해방후 조선성명복구령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복귀.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국중 하나인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강점기를 겪으며 대중언론등에서 유교가 많이 왜곡되고 있음.
[8]. 필자의 당부사항.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에서만 머물러야 합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275696355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190490049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s://blog.naver.com/macmaca/110185393995
.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