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2025년 10월 29일(음력 9월9일)은 유교 전통명절 중양절입니다.유교경전 예기에는 국유황화(鞠有黃華:국화는 노란 꽃이 되고)로 언급.중양절 전후로는 오래동안 전국에서 국화를 즐기는 시기입니다. 유교의 최고신이신 하느님(天)을 중심으로 계절을 주관하시는 신들이신 오제(五帝)께서 베푸시는 아름다운 명절(중양절)과 절기(상강)의 시기가 왔습니다.

2025년 10월 29일(음력 9월9일)은 유교 전통명절 중양절입니다.유교경전 예기에는 국유황화(鞠有黃華:국화는 노란 꽃이 되고)로 언급.중양절 전후로는 오래동안 전국에서 국화를 즐기는 시기입니다. 유교의 최고신이신 하느님(天)을 중심으로 계절을 주관하시는 신들이신 오제(五帝)께서 베푸시는 아름다운 명절(중양절)과 절기(상강)의 시기가 왔습니다. 중양절(重陽節)의 국화철, 상강(霜降)절기의 단풍철이 오랫동안 한국의 가을을 아름답게 수놓게 됩니다. 신라이후 국가의 중요 명절로 이어진 중양절. 조선시대에는 절제(節製)라 하여 유교명절 중양절에 과거시험을 보았습니다.중양절은 오제(五帝)중의 한분 신이시며, 가을의 하느님이신 소호(少皥) 께서 다스리시는 가을의 큰 명절 중 하나입니다. 중양절이후 오랫동안 국화주, 국화전, 밤단자(밤떡)등을 즐겨 먹는다고 합니다.그리고 유자(柚子)를 잘게 썰어 석류알, 잣과 함께 꿀물에 타서 마시는 화채(花菜)도 절식(節食)으로 먹었습니다. 한로.상강 절기에는 추어탕도 많이 먹어온 한국 풍속입니다. [1]. 대중언론 보도기사 2024,9,24, 뉴스1 김 일창 기자 보도기사 창경궁 과거시험 응시해 볼까?…'궁궐 일상모습 재현 및 체험' 행사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전통 명절 '중양절' 기념 행사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국가유산진흥원과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창경궁에서 전통 명절 '중양절'(重陽節)을 주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2024년 궁궐 일상모습 재현 및 체험'을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중양절'은 음력 9월 9일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는 가을에 국화주나 국화차를 마시며 장수를 기원하는 우리 전통 명절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실 가족들에게 국화를 진상하거나 나이 많은 신하들에게 연회를 열어주기도 했고, 민가에서도 국화전을 부쳐 먹는 등 왕실과 민가 모두가 향유하던 명절이었다. 이번 행사에서는 중양절 국화와 관련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경춘전에서는 국화차를 시음하고 다례를 배워보는 '국화차 전통 다례 체험'이 운영되며, 영춘헌에서는 국화와 들꽃을 활용한 '누름꽃 휴대전화 받침대(그립톡) 만들기 체험'과 영춘헌 앞 야외 공간에서 '국화 천연 포푸리 만들기 체험' 등이 진행된다. 함인정에서는 10월 12일과 13일 중양절에 시행되었던 특별 과거시험인 '구일제'(九日製)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복합 체험 프로그램이 열린다. 국왕이 직접 참관하는 구일제 재현극을 관람하며 참가자들이 조선시대 유생 복식을 입고 중양절과 국가유산 등에 관한 문제를 직접 풀어본다. 구일제 체험은 초등학교 고학년(4~6학년)과 중고등학생, 성인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모든 참가자에게 기념품이 증정되며, 회차별 1등을 한 장원 급제자에게는 전통문화상품 특별 기념품이 제공된다. 이밖에 가을 국화와 조형물을 활용한 포토존과 '중양절 삼행시 짓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행사 중 '국화차 전통 다례 체험'(무료)과 '구일제'(1인당 참가비 5000원)는 사전 예약을 통해 참여할 수 있으며, 당일 잔여석에 한해서만 현장 참여할 수 있다. 사전예매는 오는 25일 오후 2시부터 티켓링크를 통해 선착순으로 진행된다. '국화 천연 포푸리 만들기 체험'과 '누름꽃 그립톡 만들기 체험'은 창경궁 방문객 누구나 현장에서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2]. 중양절(重陽節)에 대한 개요(槪要). 1]. 중국에서는 한나라 이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당송(唐宋) 대에는 추석보다 더 큰 명절로 지켜졌다고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절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성균관과 지방의 유생을 대상으로, 명절인 인일절(人日節)ㆍ상사절(上巳節)ㆍ칠석절(七夕節)ㆍ중양절(重陽節)에 실시한 과거. 한국 세시 풍속사전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중양절이 되면 나라에서 태학(太學)의 학생들에게 겨울옷을 하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중양절 무렵이 겨울을 준비하는 적절한 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양절에는 국화주, 밤단자(밤떡)등을 즐겨 먹는다고 합니다.그리고 유자(柚子)를 잘게 썰어 석류알, 잣과 함께 꿀물에 타서 마시는 화채(花菜)’도 절식(節食)으로 먹었습니다. 필자 주 1). 인일(人日): 음력 정월 초 이렛날. 표준국어대사전이 출처.초이렛날. 필자 주 2). 상사(上巳): 음력 삼월 초 사흗날. 표준국어대사전이 출처.사흗날.초사흗날. 필자 주 3). 칠석(七夕): 음력으로 칠월 초이렛날의 밤. 표준국어대사전이 출처. 필자 주 4). 중양(重陽): 세시 명절의 하나로 음력 9월 9일을 이르는 말. 이날 남자들은 시를 짓고 각 가정에서는 국화전을 만들어 먹고 놀았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출처. 유교의 최고신이신 하느님(天)을 중심으로 계절을 주관하시는 신들이신 오제(五帝)께서 베푸시는 아름다운 명절(중양절)과 절기(상강)의 시기가 왔습니다. 중양절(重陽節)의 국화철, 상강(霜降)절기의 단풍철이 오랫동안 한국의 가을을 아름답게 수놓게 됩니다. 유교 명절이나 유교문화 24절기는 유교의 관습과 전통이므로, 24절기나 명절때, 절에가면 않됩니다. 종교적으로 볼 때, 불교는 하느님.창조주를 인정치 않고, 창조주 브라만을 내리깔고 덤비는 부처Monkey를 중시하며 절에서 예불하는게 불교의 본래 위치며, 조상제사도 거부해 온 무군무부(無君無父)의 금수입니다. [3]. 유교 경전(儒敎經典) 예기(禮記)에 나타나는 음력(陰曆) 9월(月)의 국화(菊花). 季秋之月.... 鞠有黃華... 국유황화(鞠有黃華) 국화는 노란 꽃이 되고... 국은 菊과 통함. 오색 중 황은 중색(中色)으로서 귀하게 여기므로 특히 황화라고 했다. . 출처:신역(新譯) 예기(禮記),역해자(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2003.10.30 1]. 중국에서 중양절의 유래. 한국은 신라이후 큰 명절. 중양절은 중국에서는 한나라 이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당송(唐宋) 대에는 추석보다 더 큰 명절로 지켜졌다. 등고회(登高會)는 중양절의 중요한 행사인데 이날 우산(牛山)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제나라 경공(景公)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중국에서는 이미 전국시대부터 행해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내려오는 전설에 동한(東漢) 때 앞날을 잘 맞추는 비장방(費長房)이라는 도인(道人)이 어느 날 학생인 항경[恒景, 桓景]에게 “자네 집은 9월 9일에 큰 난리를 만나게 될 터이니 집으로 돌아가 집사람들과 함께 수유(茱萸)를 담은 배낭을 메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면 재난을 면할 수 있네.”라고 하였다. 항경이 이날 그가 시킨 대로 가족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집에 돌아오자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고 한다. 중양절에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는 등고 풍속은 이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유 주머니를 차는 것은 나쁜 기운을 제거하기 위해서이고, 국화주를 마시는 것은 노화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기능적인 해석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이래로 군신들의 연례 모임이 이날 행해졌으며, 특히 고려 때는 국가적인 향연이 벌어지기도 했다.조선 세종 때에는 중삼 곧 3월 3일과 중구를 명절로 공인하고 중구를 무척 중요하게 여겨 늙은 대신들을 위한 잔치인 기로연(耆老宴)을 추석에서 중구로 옮겼으며, 또 중양절에 특별히 과거시험을 실시하여 이날을 기리기도 하였다. . 출처: 중양절[重陽節] (한국세시풍속사전) .필자 주 1). 음력(陰曆) 역법(曆法)으로 가을은 맹추지월(孟秋之月), 중추지월(仲秋之月), 계추지월(季秋之月)의 석달이 있는데, 季秋之月은 마지막 가을의 달로, 음력 9월을 말함. . 필자 주 2). 之月의 용법과 관련하여, 예기에서는 음력 8월인 중추에 대해서는 仲秋之月로 쓰고 있는데, 예기 아닌 일반적 용법에서, 중추절이라 할때는 다음과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a).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 중추절 仲秋節 b). 오픈마인드 한자사전 중추절 仲秋節 c). 한국 민족문화대백과 가배·가위·한가위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한다. d). 두산백과 중추절 [zhong qiu jie, 中秋节] e). 다락원 중추절[中秋節] .출처:중추절[中秋節] (중국, 중국인 그리고 중국문화, 2011. 3. 3., 다락원) f). 중국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중한사전 秋节 1. [명사]중추절. 추석. ..... . 출처:중국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중한사전 f). 교학사 중한사전 八月节 1.[명사] 음력 8월 15일. 한가위. 추석. 중추절. . 출처:교학사 중한사전 (박영종 저) 2]. 필자의견 1. 학설이나 이론들이 일치하지 않을때는, 일반적으로 국가에서 발행하는 여러가지 교과서나, 기타의 검인정 교과서가 우선이 되겠습니다.(국사 편찬위의 국사, 다른 형태의 세계사, 국가의 公敎育인 삼강오륜 교육등 교과서 공교육이 우선). 그리고 용어에 관련하여서는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이 우선되고, 한자사전 및 중국어사전등도 병행하여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유교관련용어로는 유교 경전인 오경(五經)과 사서(四書)가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용어나 학설에 관한 견해로는 국가에서 관여하는 국사교과서나 대통령령에 의해 발행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학설(삼국사기는 正史, 삼국유사는 전통적으로 野史의 관례도 반영하여야 할것)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시야를 넓혀볼때는 세계사 교과서나 다른 교과서도 중요하게 반영하여야 할것입니다. 수천년 인류문화를 담는 학설이나 이론에 관하여는 중국이나 로마제국.교황청, 그리고 漢字나 라틴어가 언제든지 중요하며, 국가주권을 반영할때는 해당국가의 국내법을 우선적으로 하면서도 국제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2. 중양절(重陽節)이나 한로(寒露)나, 상강(霜降)이나 어디까지나 유교문화의 오랜 전통이니까, 유교를 모방하는 불교의 각종 유교명절(설날.추석, 입춘, 단오절,한식,칠월칠석, 중양절, 한로.상강,동지등의 유교전통 행사) 모방행사때, 유교의 여러 신(神)제사.조상제사등에 무의미하게 부근의 절에 찾아가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교는 어디까지나 인도지역 브라만교의 창조주에 대항해 일어난 현재의 네팔지역 출신 부처에서 비롯된 Monkey사상이니까, 절 안에서 부처에 불공이나 드리는게 제대로 된 의식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천생증민(天生蒸民)] 조물주이신 유교의 하느님(天)! 유교의 최고신은 하늘천(天, 태극과 연계되신 하늘 天), 하위신은 계절의 신, 해의 신, 달의 신, 별의 신, 우주 공간의 여러신, 산천의 신, 조상신등 많습니다. 악한 기운을 쫒아내는 유교명절 단오절의 창포(菖蒲)나 중양절의 수유(須臾)로 볼 때, 악령(惡靈)도 있습니다. 유교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원지중 하나인 황하문명의 시원유교(始原儒敎)부터 시작하여 중국 한(漢)나라란 강대국.문명국의 세계종교 유교(세계사적 견지에서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인 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서 세계종교로 성립되어 한자와 함께 유교 제사, 유교 명절, 24절기, 유교 교육기관, 여러가지 유교 교육, 한문성씨의 사용등 여러 요소들이 어울려 동아시아의 정신적 구심적 역할을 해옴)로 이어져 다른 종교들과 달리 시원유교(始原儒敎)의 신관(神觀)에서 큰 변화없이 하늘천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도 같이 모시는 다신교(多神敎)측면의 신앙을 유지해온 종교입니다. 4대문명에서 시원적(始原的) 출발을 한 종교들은 다음과 같이 다신교(多神敎)적 측면이 있었습니다. - 다 음 - 가. 메소포타미아 문명. [ Mesopotamia civilization , -文明 ]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서 발생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발생지이다. 개방된 지리적 조건으로 수많은 민족의 이주와 정복, 이에 따른 지배자의 교체가 있었다. 지구라트라는 신전이 있었다. 왕 · 관료 · 전사가 지배 계층을 이루었으며, 평민과 노예가 존재하였다. 문화적으로는 함무라비 법전, 쐐기 문자, 태음력, 60진법, 현세적 성격의 종교 등의 문화적 특징을 지닌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가장 큰 정치 세력은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비교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비교 구분메소포타미아이집트공통점지형정치종교문화 전제적 신권 정치, 실용적 과학 기술 발달 개방적-이민족의 침입으로 왕조 흥망 거듭 폐쇄적-통일 국가 유지, 정치 안정 지속 수메르 인→아카드 인→아무르 인 →혼란 계속 고왕국→중왕국→힉소스 족의 지배→신왕국 현세적 다신교-점성술(천문학) 내세적 다신교-미라, 피라미드, 사자의 서 쐐기(설형)문자, 태음력, 60진법, 아치, 지구라트 상형 문자, 파피루스, 태양력, 10진법, 측량술, 외과 의학, 로제타 스톤 . 출처: 메소포타미아문명 [Mesopotamia civilization, -文明]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2002. 9. 25., 강상원). 나. 이집트문명. [ Egypt 文明 ] 나일강 유역에서 형성된 문명으로,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 왕조의 수립 뒤 알렉산더 대왕까지 이어진다. 폐쇄적 지형으로 오랫동안 통일을 유지하였고, 전제 군주인 파라오가 통치하였다. 사회는 파라오-신관 · 관료-서기 · 상인 · 공인-부자유 농민 · 노예의 피라미드 형태의 신분 구조를 보인다. 내세적 다신교를 섬겼으며, 상형 문자, 파피루스, 태양력, 측량술, 역학적 지식, 의학의 발달 등의 문화적 전통을 지녔다. . 출처: 이집트 문명 [Egypt 文明]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2002. 9. 25., 강상원) 다. 인더스 문명. 대규모의 신전이나 묘는 없고, 곡물 창고나 대 목욕탕이 있다. 다신교 신앙과 신정 정치가 발달하였다. . 출처: 인더스 문명[Indus civilization, -文明]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2002.9.25, (주)신원문화사) a. 고대 인도의 브라만교. 브라만교 [ 婆羅門敎 ] 고대 인도에서 브라만 계급을 주축으로 성립된 인도의 민족 종교이다. 《베다》라는 성전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체계가 뚜렷한 종교는 아니다. 인도 아리아 인이 B.C. 1500년경에 인도에 침입한 뒤 신봉한 민속 종교로, 넓게는 힌두교(인도교)에 속한다. 이 종교의 본질은 다신교이며, 《리그 베다》에서 발단하는 우주의 유일한 근본 원리의 탐구는 《우파니샤드》에서 그 정점에 이르렀다. 우주 유일의 근본 원리로서 브라만(범(梵))과 개인 존재의 본체인 아트만(아(我))이 상정되며, 결국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이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을 형성하였다. 브라만교는 카스트 제도라는 엄격한 신분 제도에 바탕을 두었으며, 지나친 형식주의 때문에 비판받았다. 이러한 브라만교는 굽타 왕조 시대에 민간 신앙을 받아들여 당시 인도 전역에 교세를 떨쳤다. . 출처: 브라만교 [婆羅門敎]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2002. 9. 25., 강상원) b. 고대 인도 불교의 탄생 [ 佛敎 ] 기원전 6세기경 인도 북부 부다가야에서 싯다르타에 의하여 창시된 종교로서, 전통적인 카스트 계급 사회에서 브라만 계급의 횡포를 반대하고 만민의 평등과 자비의 실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출처: 불교 [佛敎] (Basic 고교생을 위한 지리 용어사전, 2002. 2. 5., 이우평) c. 부처의 탄생지는 현재의 네팔 영토. 네팔불교 분류 문학 > 불교설화 힌두교와 라마교가 혼재되어 있는 네팔은 불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지 룸비니를 국경 안에 두고 있다.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는 19세기 이전까지 매몰된 채 덩굴과 잡초만 무성했었다. 1896년 고고학자 퓨라 박사가 아쇼카왕이 세운 석주를 찾아내고 이곳이 룸비니임을 확인했다. 룸비니는 1967년까지만 해도 황폐한 모습의 유적지였다. 당시 이곳을 방문했던 우탄트(전 유엔사무총장)는 룸비니의 재건을 호소, 세계인의 호응을 얻어 이곳을 개발했다. 탄생의 성지 룸비니가 있는 나라 네팔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확실치 않다. 네팔불교의 상징인 스와얌브나트 스투파(塔)가 건립된 것이 1세기경이므로 이때에 이미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 탑의 양식은 밀교의 영향을 받고 있어 네팔의 불교 전래시기는 훨씬 하대로 추정된다. 네팔은 인도와 인접해 있지만 티베트와도 접경을 이루고 있다. 한때 네팔은 티베트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때 라마교가 자연스럽게 네팔에 뿌리내리게 됐다. 물론 네팔은 불교를 티베트로부터 전수받은 것만은 아니다. 오늘의 네팔불교는 곧 라마교를 지칭한다. 사원은 모두 티베트승려에 의해 운영되는 라마사원들이다.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추앙되는 달라이라마는 티베트가 중국에 의해 공산화되자 라마승들을 데리고 네팔로 옮겨 왔다. 근년에 와서 티베트난민과 승려 수가 늘어나자 사원도 새로 지었다. 네팔의 불교문화는 대체로 말라왕조(1200-1750) 후기에 완성된 것이다. 네팔벨리에는 엄격한 구분이 없는 힌두사원과 불교사원이 2천5백여개에 달한다. 네팔불교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는 순례자들은 힌두의 신상을 관음보살상이라고 참배하기도 한다. 네팔의 불교는 티베트에서 온 라마승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스와얌브나트 사원은 소년불교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학생은 2백여 명 정도다. 이들은 사원에서 합숙하면서 종교예절. 교리 외에 일반 중학과정을 배우고 있다. . 출처: 네팔불교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 용어사전), 2012.) 3]. 여러 사전에 나타나는 중양절. 1.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나타나는 중양절(重陽節) 명사 민속 세시 명절의 하나로 음력 9월 9일을 이르는 말. 이날 남자들은 시를 짓고 각 가정에서는 국화전을 만들어 먹고 놀았다. 조선 시대에, 성균관과 지방의 유생을 대상으로, 명절인 인일절(人日節)ㆍ상사절(上巳節)ㆍ칠석절(七夕節)ㆍ중양절(重陽節)에 실시한 과거. 의정부, 육조 등의 당상관이 성균관에서 제술로써 인재를 뽑았다. 2.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에 나타나는 중양절(重陽節). 정의 음력 9월 9일로 제비가 따뜻한 강남으로 돌아간다고 전해지는 세시풍속. 중구 내용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중양은 양이 겹쳤다는 뜻이니 양수인 홀수가 겹친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도 다 중양이 될 수 있겠으나, 중양이라고 하면 중구를 가리킨다. 중구는 음양 철학적인 중일명절(重日名節)의 한 대표적인 명절이었다. 중국에서는 한대(漢代) 이래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상국(賞菊)·등고(登高)·시주(詩酒)로 즐겨 온 날이었다. 당송 대(唐宋代)에도 관리들의 휴가일로서 추석보다도 훨씬 성대한 명절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신라시대부터 안압지의 임해전(臨海殿)이나 월상루(月上樓)에서 군신이 중구에 연례적으로 모여서 시가를 즐긴 듯하다. 고려시대에는 중구의 향연이 국가적으로 정해져 있는 규례이다. 내외신하들과 송나라·탐라(耽羅)·흑수(黑水)의 외객들까지 그 축하연에 참석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다시 세종 때에 중삼·중구를 명절로 공인하고, 성종 때에는 추석에 지내던 기로연(耆老宴 : 노인 잔치)도 중구로 바꾸어서 지내었다. 또한, 성균관유생들에게 시험을 보이던 절일제(節日製)도 인일(人日 : 1월 7일)·중삼·칠석·중구에 보였다. 여기에서 특히 추석에 지내던 기로연을 중구로 바꾸었다는 사례는 상징적이다. 그만큼 관(官)과 상층에서는 음양 철학적인 경향을 많이 띠었고, 그것은 보름명절[望日名節]보다 중일명절을 크게 쳤다는 것에서 선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일반농어민사회에서는 어디까지나 추석·백중(百中 : 7월 15일)·대보름(1월 15일) 등 보름명절이 훨씬 성대하였다. 더구나 중구 때는 벼수확과, 목화따기 및 콩·팥·조·수수·깨·고구마·감자에 무·배추 등 김장채소 거두기까지도 겹치는 농번기였으므로 명절로 즐길 겨를이 없는 때였다... . 출처: 중양[重陽]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중양절(重陽節). 중양절 [ 重陽節 ] 요약 음력 9월 9일을 이르는 말.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9는 원래 양수(陽數)이기 때문에 양수가 겹쳤다는 뜻으로 중양이라 한다. 중양절은 제비가 강남(江南)으로 간다고 전하며, 이 때쯤 되면 제비를 볼 수 없다. 이 날은 유자(柚子)를 잘게 썰어 석류알, 잣과 함께 꿀물에 타서 마시는데 이것을 '화채‘(花菜)’라 하며 시식(時食)으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또 이 날 서울의 선비들은 교외로 나가서 풍국(楓菊) 놀이를 하는데, 시인 ·묵객들은 주식을 마련하여 황국(黃菊)을 술잔에 띄워 마시며 시를 읊거나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즐겼다. 각 가정에서는 ‘국화전(菊花煎)’을 부쳐 먹는데 3월 3일에 진달래로 화전을 만드는 것과 같다. . 출처: 중양절[重陽節] (두산백과) 4. 한국 세시퐁속사전에 나타나는 중양절(重陽節). 중양절 [ 重陽節 ] 중구차례-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국립민속박물관 분야계절날짜시절음식다른이름관련속담관련풍속 정일 가을(음력 9월) 음력 9월 9일 국화주(菊花酒), 국화전(菊花煎), 밤떡(栗糕) 중구(重九), 국화절(菊花節), 귈, 산신의탄신일(山神-誕辰日), 상국일(賞菊日) 구월 군두 조금에 사돈네 빚 갚는다 성묘(省墓), 차례(茶禮), 등고(등산), 과거시험실시, 형(刑)을금함 정의 음력 9월 9일을 가리키는 날로 날짜와 달의 숫자가 같은 중일(重日) 명절(名節)의 하나. 중일 명절은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 같이 홀수 곧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에만 해당하므로 이날들이 모두 중양(重陽)이지만 특히 9월 9일을 가리켜 중양이라고 하며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또 ‘귈’이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다. 음력 삼월 삼짇날 강남에서 온 제비가 이때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가을 하늘 높이 떠나가는 철새를 보며 한해의 수확을 마무리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유래 중양절은 중국에서 유래한 명절로, 그곳에서도 매년 음력 9월 9일에 행하는 한족의 전통 절일이다. 중양절은 중국에서는 한나라 이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당송(唐宋) 대에는 추석보다 더 큰 명절로 지켜졌다. 등고회(登高會)는 중양절의 중요한 행사인데 이날 우산(牛山)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제나라 경공(景公)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중국에서는 이미 전국시대부터 행해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내려오는 전설에 동한(東漢) 때 앞날을 잘 맞추는 비장방(費長房)이라는 도인(道人)이 어느 날 학생인 항경[恒景, 桓景]에게 “자네 집은 9월 9일에 큰 난리를 만나게 될 터이니 집으로 돌아가 집사람들과 함께 수유(茱萸)를 담은 배낭을 메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면 재난을 면할 수 있네.”라고 하였다. 항경이 이날 그가 시킨 대로 가족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집에 돌아오자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고 한다. 중양절에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는 등고 풍속은 이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유 주머니를 차는 것은 나쁜 기운을 제거하기 위해서이고, 국화주를 마시는 것은 노화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기능적인 해석도 있다. 내용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이래로 군신들의 연례 모임이 이날 행해졌으며, 특히 고려 때는 국가적인 향연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선 세종 때에는 중삼 곧 3월 3일과 중구를 명절로 공인하고 중구를 무척 중요하게 여겨 늙은 대신들을 위한 잔치인 기로연(耆老宴)을 추석에서 중구로 옮겼으며, 또 중양절에 특별히 과거시험을 실시하여 이날을 기리기도 하였다. 중양절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지는데, 국가에서는 고려 이래로 정조(正朝), 단오(端午), 추석(秋夕)과 함께 임금이 참석하는 제사를 올렸고, 사가(私家)에서도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省墓)를 하였다. 또 양(陽)이 가득한 날이라고 하여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 모자를 떨어뜨리는 등고의 풍속이 있었고 국화를 감상하는 상국(賞菊), 장수(長壽)에 좋다는 국화주를 마시거나 혹은 술잔에 국화를 띄우는 범국(泛菊) 또는 황화범주(黃花泛酒), 시를 짓고 술을 나누는 시주(詩酒)의 행사를 가졌다. 서울 사람들은 이날 남산과 북악에 올라가 음식을 먹으면서 재미있게 놀았다고 하는데, 이것도 등고하는 풍습을 따른 것이다. 중양절에는 이와 같이 제사, 성묘, 등고 또는 각종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관리들에게 하루의 휴가를 허락하였다. 그래서 관리들이 자리에 없기도 하였지만 또한 명절이었으므로 이날은 형(刑) 집행을 금하는 금형(禁刑)의 날이기도 하였다. 한편 중양절은 농촌이 한창 바빠지는 때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그해 논농사를 결산하는 추수를 하고, 여자들은 마늘을 심거나 고구마를 수확한다. 퇴비만들기, 논물 빼기, 논 피사리 등은 남녀 공동작업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목화도 따야 하고, 또 콩, 팥, 조, 수수, 무, 배추 같은 밭작물의 파종과 수확이 겹친다. 그러므로 농촌에서는 중양절이라고 하여 특별한 행사를 벌이기보다는 평상 때와 똑같이 보내는 곳이 더 많다. 그러나 양수가 겹친 길일(吉日)이므로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는 이날을 즐겼다. 등고 풍속이 그러하고 국화잎을 따서 찹쌀가루와 반죽하여 국화전을 만들어 먹는 것도 그 예가 된다. 추석 때 햇곡식으로 제사를 올리지 못한 집안에서는 뒤늦게 조상에게 천신(薦新)을 한다. 떡을 하고 집안의 으뜸신인 성주신에게 밥을 올려 차례를 지내는 곳도 있다. 전남 고흥의 한 지역에서는 이때 시제(時祭)를 지내는데, 이를 ‘귈제’라고 한다. 과거에는 각 마을마다 또는 두세 개 마을에 한 명씩 동네 단골무당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연말에 이장에게 이세(里稅)를 내듯이 중양절이 되면 이들에게 시주를 하는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다음에 탈이 있을 때 단골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중양절이 되면 나라에서 태학(太學)의 학생들에게 겨울옷을 하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중양절 무렵이 겨울을 준비하는 적절한 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구절의 국화술은 중국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과도 관련이 있다. 그가 이날 국화밭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데 흰옷을 정갈하게 입은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도연명의 친구가 보낸 술을 가지고 온 것이다. 연명은 국화꽃과 함께 온종일 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려 말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도 중양절에 술을 마시며 도연명의 운치를 깨달았는지 “우연히 울 밑의 국화를 대하니 낯이 붉어지네. 진짜 국화가 가짜 연명을 쏘아보는구나.”라는 글귀를 남겼다. 두목(杜牧)이 남긴 취미(翠微)의 시구에도 이날 좋은 안주와 술을 마련해놓고 친구들을 불러서 실솔시(蟋蟀詩)를 노래하고 무황계(無荒戒)를 익혔다고 한다. 의례 『고려사(高麗史)』에는 이날 중구연(重九宴) 또는 중양연(重陽宴)을 열었다는 기사가 있다. 국가가 규례를 정하여 내외의 신하들과 송나라, 탐라(耽羅), 흑수(黑水)의 외객들까지 축하연에 초대하였다. 조선에 들어와서도 임금이 사신(使臣)들에게 특별히 주연을 베풀었다. 또 탁주(濁酒)와 풍악을 기로(耆老)와 재추(宰樞)에게 내리고 보제원(普濟院)에 모여서 연회하게 하였다. 선조(宣祖) 때 예조에서 제향 절차에 대해 아뢰면서 중양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속절(俗節)로 열거되어 있지 않지만, 이날 시식(時食)으로써 천신하는 것이 고례(古禮)이므로 속절에 해당하는 제사가 행해져야 한다고 하였다. 이언적(李彦迪)은 『봉선잡의(奉先雜儀)』에서 정조, 한식, 단오, 중추와 함께 중양을 속절로 여겨 아침 일찍 사당에 들러 천식(薦食)하고 이어 묘 앞에서 전배(奠拜)한다고 하였다. 이문건(李文楗)의 『묵재일기(黙齋日記)』를 보면 조선 중기까지 사가(私家)에서는 중양절은 등고 외에 간혹 간단한 천주과지례(薦酒果之禮) 곧 천신례가 있을 뿐 묘제를 행하는 한식에 비하면 속절로서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와 삼짇날과 중양일이 함께 또는 둘 중의 하나가 원래 중월(仲月)에 복일(卜日)하여 행하던 사시제(四時祭)의 한 축으로 설정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조선 전기까지는 시제(時祭)보다 기제(忌祭)를 중요하게 여기다가 중엽에 이르러 사대부들이 시제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는데, 일년 4회의 시제가 부담되었으므로 이를 춘추(春秋) 2회로 줄여 봄에는 삼짇날에, 가을에는 중양절에 지내는 자가 많아졌다고 하였다. 중양절의 시제는 조선 후기 이후 특히 영남지방에서 부조묘(不祧廟)를 모신 집안들을 중심으로 행해져 왔다. 유교 제례에서는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하여 4대가 지나면 사당에 모시던 신주를 묘에 묻게 되어 있으며, 나라에서 부조(不祧), 즉 묘를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 있어야 사당에 신주를 두고 계속 기제사로 모실 수 있다. 이 부조가 인정된 조상에 대한 시제는 각별히 중일을 택하여 삼월 삼짇날이나 구월 중양절에 제사를 지내는데, 특히 중양 때가 되어야 햇곡을 마련할 수 있었으므로 첫 수확물을 조상에게 드린다는 의미도 지닌다. 영남지방에는 중양절에 불천위제사를 지내거나 성묘를 하는 집안들이 간혹 있지만 날이 갈수록 더 귀해지고 있다. 절식 중양절은 국화가 만발할 때이므로 국화주, 국화전을 만들어 먹는다. 국화주는 꽃을 따서 술 한 말에 꽃 두 되 꼴로 베주머니에 넣어 술독에 담아 뚜껑을 덮어둔다. 약주에 국화꽃을 띄워 국화주를 즐길 수도 있다. 화전, 화채, 술에 모두 쓰이는 국화는 재래종인 감국(甘鞠)이어야 향기도 좋고 오랫동안 싱싱하다. 국화전은 노란 국화꽃잎을 따서 국화 찹쌀떡을 만드는데, 그 방법은 삼월 삼짇날의 진달래떡을 만드는 방법과 같으며, 이름도 화전(花煎)이라고 한다. 봄의 진달래 화전은 율무를 많이 쓰는 반면 가을의 국화전은 찹쌀가루를 많이 쓴다. 중국 양나라 사람 오균(吳均)이 지은 『서경잡기(西京雜記)』에 “한나라 무제(武帝) 때 궁녀 가패란(賈佩蘭)이 9일에 이(餌) 떡을 먹었다.”라고 했는데, 이(餌)란 경단[餻]을 말하는 것이다. 송나라 사람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도시 사람들이 중구(重九)에 가루로 떡을 쪄서 서로 선물한다.”라고 했다. 잘게 썬 배와 유자(柚子)와 석류(石榴)와 잣 등을 꿀물에 탄 것을 화채(花菜)라고 하는데, 이것들도 모두 중양절 음식으로 제사에 쓴다. 의의 추석이 햇곡으로 제사 지내기 이른 계절이 되어감에 따라 추수가 마무리되는 중양절에 중구차례를 지내는 등 논농사의 발전에 따라 조상을 위하는 날의 의미를 더해갔다. 조선시대에 이날 기로연을 베풀었다는 사실은 장수에 좋다는 국화주를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에서는 물론 민간에서도 이날을 경로(敬老)의 날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출처:중양절[重陽節] (한국세시풍속사전) 4]. 중국의 중양절(重陽節). 1. 중국의 창에 나타나는 중양절. 2016-10-03 보도기사 ....또 국경절 연휴 후 곧 맞이하게 될 노인절인 중양절의 영향을 받아 60세 이상의 노인 관광객도 대폭 늘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가정은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고 있습니다. 상해 디즈니, 광주 장륭(長隆) 풍경구, 주해 장륭 해양세계 등 코스의 인기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도우관광사이트' 대외연락부 왕밀(王蜜) 여사의 소개에 따르면 서북과 서남의 가을철 관광도 국내 관광의 큰 특점으로 되고 있습니다... http://korean.cri.cn/1620/2016/10/03/1s240715.htm [4].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 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5].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 지켜야 될 자격과 전통이 있다면, 국가주권, 헌법, 국제법, 한국사, 세계사등에 의거하여, 최고의 가치로 알고 지켜가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일본 불교 Monkey의 교육.종교 등 모든 주권은 일본 항복과 함께 한국에서 존재할 수 없음.역사,법, 종교, 문화, 대학은 정치와 별개임.근대세계 지배세력 서유럽.세계사의 수천년 문명,인정받아온 혜택자 중국. 수천년 역사를 기록한 세계사 기득권들은 무엇을 유지했고,무엇을 잃었는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2차대전 승전국이자 UN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이 된 미국과 소련(러시아)도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자기진단을 해보아야 합니다. 서유럽,중국,미국,소련(러시아) 본인들이 이런 내용들을 잘 알고 있어야 갈등이 적어집니다.*먼저 한국 관련 내용입니다.필자가 일본 잔재학교 서울대등 질타 이유는,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받아들여,한국.대만.동남아,쿠릴열도등에 일본 주권없고 축출해야한다는 국가원수들 합의문때문.그리고 한국 임시정부는 한일병합무효,대일선전포고.*한국에 주권없이 남겨진 패전국 일본잔재 경성제대후신 서울대와 초급대출신 국립대,중.고교등은 축출(폐지)대상@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서강대는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심산 김창숙 선생은, 해방후 미군정당시, 미군정이 복구한 성균관의, 성균관장이 되시고, 전국 유림대회 결의에 따라, 성균관장의 자격으로,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현재에 이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대학 국사 성균관자격은 성균관대가 계승)@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포함)을 받아들여,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고, 한국영토에서 축출해야 될 일제 잔재 종교정책과,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각종 왜구학교.@김창숙 선생 개인이, 인품이 훌륭하거나, 임시정부 요인이라서가 아니라, 미군정에서 법으로 성균관을 복구시켜서, 성균관장에 선출되었고, 성균관장 자격으로,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하여서, 성균관대가 국사 성균관의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자격을 승계해 온것임.국사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라는건 성균관대, 성균관, 여러 백과사전 공통된 견해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3894018066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 성균관대는, 해방후, 미군정이 공자묘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성균관 복구에 해당)하는 법률을 발효, 전국 유림대회 결의(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 김창숙)에 따라,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선생이, 미군정에, 대학기구로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의 환원(복구)을 실행하는 성균관대를 등록(성균관은 제사기구로 이원화)하여,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의 승계대학으로, 미군정때부터의 국사 성균관 교육으로, 해마다, 학교에서 성균관을 교육시키고 있습니다.@광복 당시 국내에 있던 일본의 모든 공유 및 사유재산은 미군정에 의해 ‘적산(敵産)’으로 규정되어 미군정청의 ‘귀속재산’으로 접수되었다...*출처:귀속재산불하[ 歸屬財産拂下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필자의견:해방후 미군정당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를 국립대로 하였는데, 이는 미군정의 敵인 일본잔재 경성제대를 적산재산 국유화 하는 패전국 잔재처리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울대뒤에 붙여넣은 더 자격없는 신생 대학들이, 국립대 서울대를 가장 앞에 두고, 주권.자격.학벌없이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에 대항해 온것은, 인정해 줄 수 없습니다. 또한 일제 잔재 공립 중.고교들이, 구한말에 세워진 한국의 민족학교들보다 좋다고 주장하는것도 적국 잔재 일본 왜구학교로서는, 아무 법적 타당성이 없고,명분도 없습니다. 그리고 일제가 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오도하고, 일본 불교에서 파생된 신도(불교 후발 일본 국지적 신앙으로, 일본 국교), 불교, 기독교만 종교로 하여, 강제 포교한 것도, 미군정당시부터 무효가 된 것입니다. 한가지 주의할것은, 서유럽에서 왕족.귀족의 역사적 지배권을 인정하는 기반에서 형성된 서강대가 속한, 가톨릭 예수회는, 해방후 미군정을 거친 한참후에 들어와 한국에 그 교당이나 신자수가 적다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민중을 위한다는, 가톨릭 외방전교회가 들어와 활동했는데, 수천년 왕조국가 전통의 한국에서는 지배층의 성균관대와 성균관.양반들이 인정할 수 없던 계파였습니다. @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 승계 성균관대는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행정법.국제관습법으로 인정받고 있음.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 宮(泮宮,學宮, 太學)의 별칭가진 성균관의 교육기능을 가진 성균관대임. Royal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양반 성대 다음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패전국 일본 잔재이자, 불교 Monkey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어왔음. 이 뒤로 서울대를 극복하지 못해온 전국 각지역 대학들. 해방당시 미군정부터, 상위법은 승전국 국가원수들이 모여 발표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이 국제법으로 상위법 역할을 하고, 미군정령은 하위법이라, 상위법 우선의 원칙으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조선.대한제국에는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으로 성균관 하나밖에 없던 나라였음. @ 헌법, 국제법, 학교교육의 교과서 교육인 국사, 세계사 자격이 기준이며 가장 합법적이고, 보편적이며 학술적임.세계사에서 중국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베이징대로 승계하여 현재에 이름),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을 해마다 학교교육에서 교육시키는 학교교육 교과서 교육은, 대중언론.입시지,대학평가기관의 새로운 도전과 달리, 관습법적으로 국제법적 자격을 가진 최고의 권위를 가졌습니다. 한국은, 해방후 미군정시대에, 일제잔재 대중언론에서 시작된 경성제대후신 서울대가, 주권.자격.학벌없이,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에, 도전해오고 있지만, 헌법.국제법,국사,세계사 자격의 정통성은, 일제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의 도발을 인정해오지 않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입니다. 세계사의 교황성하 반영,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예수회 산하의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궁 성균관대(宮, 泮宮, 學宮, 太學의 별칭가진 성균관)다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자격 성균관대와 같은 Royal대학으로 예우한다는 지론을 펼쳐옴.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일본이 항복한후,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각종 왜구 잔재 초급대나, 공립 중.고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기 때문에, 미군정때부터 대중언론에서 도전.약탈.침략해온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이 된 대학을, 법이나 교과서, 학술적으로 불인정해옴. @ 학구적이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예수회(귀족출신 이나시오 사제가 창립)산하 서강대는 정말 학구적인 대학입니다. 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 헌법, 국제법, 한국사, 세계사는 한국 고교교육을 거치고, 대학에 진학하면, 평생동안 가장 합법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기준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고려 국자감.성균관을 계승하여, 1398년에 조선을 건국하신 태조(이성계)께서, 1398년에 숭교방(崇敎坊,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명륜동1 · 2 · 3가 · 혜화동 각 일부에 해당)에 성균관 건물을 준공하셨습니다. 그 이후 태종께서 왕세자의 입학을 명령하신후, 조선의 왕세자들은 성균관에 입학해서 공부한 후, 국왕이 되는 학문의 길을 거쳐야 했습니다. 헌법이나, 국제법, 한국사, 세계사의 자격은 대중언론.입시지의 준동을 아랑곳 하지 않는 특질을 가졌습니다.또한 주권.학벌이 없는 서울대와 추종세력의 약탈을 인정해 줄수도 없습니다. @세계적 법체계는 대륙법 중심의 성문법과, 영.미법 중심의 판례를 따르는 영.미법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대륙법은 국제법의 표준이고, 영.미법은 영.미권 영향력이 강한 나라들에서 민사나 상사쪽으로 중요한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각 국가별 헌법이나 주권이 같이 작용하고 있습니다.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교황윤허,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교과서자격 안변함. 국사 성균관(성균관대), 세계사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베이징대로 승계), 볼로냐.파리대 자격은 변하지 않아왔음.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균관대.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인정받고 있는 성균관대. Royal대임.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 한국측 입장이 담긴 국사(성균관 교육), 국어, 국민윤리나,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각종 교과서(정치.경제, 세계사, 국토지리, 세계지리, 사회문화,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수학, 기술, 상업.공업.농업.수산업, 가정.가사, 음악.미술, 예술,체육) 이론들이 어우러져, 한국 대학들의, 헌법,국제법, 국사, 세계사, 국민윤리, 국어, 사회문화, 정치.경제적 측면이 상호 교차하면서, 일제 강점기에 생긴 각종 대중언론들의 견해(1960년대 후반에는 입시지나 학원들의 견해도 형성됨)까지 어우러져, 불법.강제로,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겼던, 조선.대한제국의 전통규범인 유교,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던 성균관(미군정시대 성균관대로 계승)의 주권.자격들이 도전받으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을사조약은 무효(따라서 불법.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임)라는 대한제국의 입장은 나중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계승되었음.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대일선전포고문에서 을사조약.한일병합등 각종 불평등 조약은 무효라고 명시함. 별도로, 국제법의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및 일본의 항복선언, 미군정법률은 국제법 영역입니다. 왕정복구가 무산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여, 대학측면으로 보면, 헌법.국제법, 학교교육 교과서 내용(국사,세계사, 정치경제,국민윤리등), 대중언론.입시지의 대학觀은 정리가 필요합니다. 대학은 가급적 학벌이 좋은 Royal대인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나,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귀족계파 예수회 산하의 서강대의 Royal 대학으로 가는게 좋습니다. 일류, 명문대학들입니다. 그리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및 그 추종세력들)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온 사유로, 무어라고 주장해도, 한국에 학벌이 없으며 일류.명문 타이틀도 부여받을 수 없습니다. 학과에 상관없이 무슨학과든지 Royal 성균관대(국사 성균관자격), Royal 서강대(세계사의교황반영,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성균관대(양반대학)와 서강대(가톨릭계 예수회의 귀족대학)만 Royal대며, 일류.명문임. 주권.자격.학벌 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일본 점쇠 천황이 세운 마당쇠 대학), 그 뒤 연세대(일본 강점기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 서민출신 이용익의 보성전문 후신 고려대일것. 성대와 서강대 밖의 리그로 본다면 주권.학벌없는 서울대, 연세대(본캠), 고려대(본캠), 이화여대.이화도 주권.학벌은 없지만, 왜구 서울대가 연세.이화 필요하던 미군정때의 대중언론 도전. 성균관대에 오랫동안 도전을 해와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카르텔은 전분야에서 아주 강합니다. 교과서자격 안변함. 국사 성균관(성균관대), 세계사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베이징대로 승계), 볼로냐.파리대 자격은 변하지 않아왔음.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균관대.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인정받고 있는 성균관대. Royal대임.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헌법,국제법, 학교교육 교과서의 교육내용은 가장 표준적이며, 가장 보편적인 학술근거입니다. 국사(성균관, 해방후 성균관대로 정통승계), 세계사(한나라 태학, 위 태학, 그 이후 나라들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승계), 교황성하의 신성성 지속,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파리대학등의 전통과 자격을 반영하여, 주권과 대학학벌을 수호하고자 합니다. 대중언론.사설 입시지를 통하여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에, 주권.자격.학벌없이 대항해온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그 추종세력들의 도전을 막기 위함입니다. [6].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 僧(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가 세운 마당쇠 僧대학). 그 뒤 서울대에 대중언론에서 눌려온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의 비신분제 대학들.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그러나 세계사로 보면, 가톨릭이라는 세계종교는 너무 세계인에 일반화되어서, 국사적개념과 병립하여, 세계사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에서, 국제관습법상 세계종교 가톨릭의 자격으로 예우하는게 적절함. 일본식 개념으로, 일본 국지신앙인 일본 신도(일본의 국교), 불교, 기독교의 위상을, 한국에 적용할수는 없음. 그리고 한국과 바티칸시티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기 때문에, 한국헌법 임시정부가 선전포고하고,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일본의 종교기준을 적용하는게 맞지않음. 불교는 인도에서도 배척당해왔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 불교국 일본의 종교기준대로 하면,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아닌 사회규범이 되어, 일본 신도(불교에서 파생됨), 불교, 기독교만 포교종교고, 유교는 일제강점기의 신생종교인 원불교보다 신자수가 적은 50만(성균관.향교의 제사인구만 유교도라고 1980년대 초반에 통계청 표본조사를 실시하여, 다시 유교에 도전하고 있음)이 되어, 해방한국의 종교주권을 침해당하게 됨.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 가지고 있음. @문화대혁명으로 모택동 주석도 비판받고,중국은 개혁.개방정책으로, 유교 전통명절인 춘절, 중추절, 청명절, 단오절의 4대명절 공휴일을 아주 길게 하였음.@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한국영토에 주권없는 패전국 잔재이자, 하느님.창조신을 부정하는 Chimpanzee계열 불교 일본 서울대Monkey와 추종세력들이 학교교육 세계사의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윤리의 종교교육 유교, 국사등과 달리, 일본강점기때 일본이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했으니까, 유교가 종교아니라고 최근 다시 왜곡하는데,이는 일제잔재 대중언론에 포진하여 루머수준으로 유교에 도전하는것임.@인도에서 불교도는,불가촉賤民.조계종승려賤民한국과비슷.강점기 하느님에 덤비며(창조신내리까는 부처처럼)유교부정,불교Monkey일본.하느님보다높다는 성씨없는 일본점쇠賤民.후발천황(점쇠가 돌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옹립.한국은 세계종교유교국.수천년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숭배.해방후 조선성명복구령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복귀.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국중 하나인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강점기를 겪으며 대중언론등에서 유교가 많이 왜곡되고 있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3424093319 [7]. 필자의 당부사항.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에서만 머물러야 합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275696355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190490049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s://blog.naver.com/macmaca/110185393995

2025년 10월 21일 화요일

유교문화권의 24절기중 하나인 상강(霜降). 서리가 내리며 전국적으로 단풍놀이가 오랫동안 행해지며,낙엽의 시기입니다. 2025년 10월 23일(음력 9월 3일)부터 15일간은 상강(霜降)절기입니다. 이즈음 절기식으로는 추어탕, 국화전, 국화주등이 있습니다.중양절즈음의 국화철도 오래 갑니다.

유교문화권의 24절기중 하나인 상강(霜降). 서리가 내리며 전국적으로 단풍놀이가 오랫동안 행해지며,낙엽의 시기입니다. 2025년 10월 23일(음력 9월 3일)부터 15일간은 상강(霜降)절기입니다. 이즈음 절기식으로는 추어탕, 국화전, 국화주등이 있습니다.중양절즈음의 국화철도 오래 갑니다.상강절기 15일동안은 최고 하느님이신 천(天, 인간을 낳으신 하느님이심.시경:天生蒸民, 태극과 연계되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최고 하느님)다음의 하위신으로, 하늘로 승천하시어 계절을 다시리시는 오제[五帝, 天(최고 하느님) 다음의 하위 하느님들]중의 한분 신이시며, 가을의 하느님이신 소호(少皥) 께서 다스리시는 절기입니다. [1]. 전체적 설명. 1]. 유교 경전인 예기에서는 是月也 霜始降(이 달에 비로소 서리가 내리고)라 하여, 상강(霜降)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유교의 최고신이신 하느님(天)을 중심으로 계절을 주관하시는 신들이신 오제(五帝)께서 베푸시는 아름다운 절기(상강)와 명절(중양절). 상강(霜降)절기의 단풍철, 중양절(重陽節)의 국화철이 오랫동안 한국의 가을을 아름답게 수놓게 됩니다. 유교 명절이나 유교문화 24절기는 유교의 관습과 전통이므로, 24절기나 명절때, 절에가면 않됩니다. 종교적으로 볼 때, 불교는 하느님.창조주를 인정치 않고, 창조주 브라만을 내리깔고 덤비는 부처Monkey를 중시하며 절에서 예불하는게 불교의 본래 위치며, 조상제사도 거부해 온 무군무부(無君無父)의 금수입니다. 2]. 유교경전 예기에서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是月也 霜始降 則百工休 乃命有司曰 寒氣總至 民力不堪 其皆入室 是月也 草木黃落 乃伐薪爲炭 蟄蟲咸俯在內 皆墐其戶 乃趣獄刑毋留有罪 收祿秩之不當 供養之不宜者 이 달에 서리가 비로소 내리면 백공(百工)이 휴식한다(한기로 아교나 옻 따위가 잘 굳지 않기 때문이다). 또 유사에게 명하기를 "한기가 모여서 이르니 백성의 힘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므로 모두 헛가리를 떠나서 집안에 들어가도록 하라"고 한다. 그리고 이 달에 초목의 잎사귀가 누렇게 되어 떨어지므로 나무를 베고 숯을 만들게 한다(겨울 추위의 방비를 하는 것이다). 칩충(蟄蟲)이 고개를 수그리고 구멍속으로 들어가 추위의 침입을 막는 때이므로, 형옥(刑獄)의 관을 독촉하여 유죄자를 남기지 않으며(겨울철로 돌리는 일이 없도록 한다), 녹질이 부당한 자, 공양이 마땅하지 않은 자를 찾아서 각기 그 지위에 알맞도록 한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1. 예기 본문에 대한 필자의 설명. 1). 霜始降: 서리가 비로소 내림. 상강(霜降)의 용어사용은 위 본문에 나타난대로, 예기 월령편의 霜始降에서도 그 유래를 쉽게 유추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시(始)는, 한자사전에서는 비로소 시라고 대표적으로 사용되는데, 처음.시초의 또 다른 뜻이 있으므로, 비로소 서리가 내린다는 해석이외에, (그 해들어) 처음 서리가 내린다로 해석할수도 있겠습니다. 2). 是月也 草木黃落 :이 달에 초목의 잎사귀가 누렇게 되어 떨어지므로... . 초목의 잎사귀가 누렇게 되는 것. 이 부분에 대한 이해. 두산백과는 단풍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절에 따른 날씨의 변화로 녹색이었던 식물의 잎이 빨간색, 노란색, 갈색 등으로 변하는 현상.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에서는 단풍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 다 음 - 기후 변화로 식물의 잎이 붉은빛이나 누런빛으로 변하는 현상. 또는 그렇게 변한 잎. . 필자 주 1). 두산백과는 한국 교육.출판업계에서 오랫동안 존재해 온 동아출판사의 후신인데, 일반적으로는 사회과학.자연과학등까지 망라하면 가장 많이 이용하게 되는 한국의 대표적인 백과사전입니다. 필자는 앞으로도 이론들이 다를 경우에만, 국어사전이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설명을 중심으로 할것이며, 그 외의 경우는 변함없이 두산백과를 이전처럼 같이 애용할 것입니다. 동아출판사는 초.중.고 학습참고서로 국민들에게 널리 애독되어온 서적들을 출판해왔는데, 두산에 인수된후의 두산동아는 초·중·고 학습참고서 위주의 우리나라 최대의 출판·인쇄업체입니다. 한국어로 발행되는 백과사전은 두산백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가장 일반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 낙엽에 대한 설명. . 두산백과의 설명 낙엽[落葉 ] 고등식물에서 잎이 떨어지는 현상이다. 새 잎이 전개되는 시기에 일어나기 쉽다. ...낙엽은 낙엽수는 물론, 상록수에서도 볼 수 있다. 낙엽수는 겨울이나 건기가 되면 일제히 낙엽이 된다. 상록수의 낙엽은 굴거리나무 ·팔손이나무 등과 같이 새 잎이 전개되는 시기에 일어나기 쉽다. 많은 낙엽수는 일장(日長)에 의하여 낙엽기가 지배된다. 즉, 일반적으로 낙엽기는 장일(長日)에 의하여 늦어지고 단일(短日)에 촉진된다. 가로수로 심어진 은행나무 등도 가로등에 조명되는 면이 그늘진 면에 비해 잎이 오래 달려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 예에 속한다. 또한 온도도 낙엽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떡갈나무의 일종은 가을이 되어 단일이 되면 자연온도하에서는 낙엽이 되지만 온실에서 기르면 낙엽되지 않는다.... 낙엽에는 황엽(黃葉)과 홍엽(紅葉)이 수반되는 수가 있는데, 특히 가로수의 경우에 많다. . 출처: 낙엽[leaf abscission, 落葉] (두산백과). 2]. 한국 세시풍속사전에서는 상강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며 국화도 활짝 피는 늦가을의 계절이다. 중구일과 같이 국화주를 마시며 가을 나들이를 하는 이유도 이런 계절적 사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 이 무렵의 제철음식으로는 국화전, 국화주, 화채등이 있습니다. 지금은 서민음식이라 하기도 어려운 추어탕이 전국민의 절기식으로 선호되어, 전문 추어탕집들이 보입니다. 감이나 배.사과같은 제 철 과일과 함께, 소고기.추어탕같은 보양식을 먹어, 코로나 시대를 잘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시대는 잘 먹어서 면역력을 기르고, 마스크를 꼭 쓰고, 손 잘씻고, 잘 자고, 거리두기가 필수입니다. 중국에서는 중양절부터 시작된 국화전,국화차, 국화주 먹기도 이어지고, 국화꽃을 감상하며, 제 철 과일 감과, 무를 먹는다고 합니다. 또한 오리 보양식과 소고기.양고기를 먹는다고 합니다. [2]. 한국의 사전류에 서술된 상강(霜降). 1].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 설명. 이십사절기의 하나.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에 들며, 아침과 저녁의 기온이 내려가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다. 10월 23일경이다. 2].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의 설명. 상강[霜降] 내용 한로와 입동 사이에 들며, 음력 9월, 양력 10월 23·24일께가 된다. 태양의 황경이 210°되는 때이다. 이 때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며 밤에는 기온이 매우 낮아지므로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의 계절이다. 옛날의 중국사람들은 상강으로부터 입동 사이의 기간을 5일씩 삼후(三候)로 세분하여 초후(初候)에는 승냥이가 산 짐승을 잡고, 중후(中候)에는 초목이 누렇게 떨어지며, 말후(末候)에는 겨울잠을 자는 벌레가 모두 땅에 숨는다고 하였다. 말후에 가서 벌레가 이미 겨울잠에 들어간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계절적으로 추울 때이다. 이는 농경시필기(農耕始畢期)와도 관련된다. 봄에 씨뿌리고 여름에 가꾸어서 가을에 거두어 겨울을 나는 것이 농본국(農本國)인 우리 나라 사람들의 생활인 것처럼, 9월 들어 시작된 추수는 상강 무렵이면 마무리가 된다. 「농가월령가」도 9월령에서는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마침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로 율동감있게 바쁜 농촌생활을 읊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농사기술의 개량으로 이러한 행사들이 모두 한 절기 정도 빨라지고 있다. .출처: 상강[霜降]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두산백과의 설명. 상강 24절기 중 18번째로서,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이다. 음력으로는 9월, 양력으로는 10월 23일 또는 24일이며, 황경(黃經)은 약 210˚다. 된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이 무렵에는 농촌의 가을걷이가 한창으로, 수확의 계절이다.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에 드는 절기로, 24절기 가운데 열여덟째에 해당한다. 양력으로는 10월 23일 또는 24일이고, 음력으로는 9월이며, 태양의 황경(黃經)은 약 210°가 된다. 된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시기로, 아침이면 온 땅이 서리로 뒤덮여 아침 햇살을 받아 온통 하얗게 반짝거린다. 이 시기에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며, 밤에는 기온이 매우 낮아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는 것이다. 옛 중국에서는 상강을 5일씩 3후(三候)로 나누어 ① 승냥이가 산짐승을 잡고 ② 초목이 누렇게 변하며 ③ 동면(冬眠)하는 벌레가 모두 땅에 숨는다고 하였다. 이 무렵이 되면 농촌의 들에서는 가을걷이로 분주해진다. 벼를 베고 타작을 하며, 벼를 베어낸 논에는 다시 이모작용 가을보리를 파종한다. 누렇게 익은 종자용 호박을 따고, 밤·감과 같은 과실을 거두어들이며, 조.수수 등을 수확한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마지막 고추와 깻잎을 따고, 다시 고구마와 땅콩을 캔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정성들여 가꾼 것을 이 때에 비로소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그야말로 수확의 계절이요,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는 때가 바로 상강 무렵이다. 이 무렵의 제철음식으로는 국화전을 꼽을 수 있는데, 기름을 두른 번철에 여러 색의 국화꽃을 얹은 쌀이나 밀가루 등 각종 반죽을 놓고 지져 먹는다. 그 밖에 국화주를 빚어 마시기도 하고, 화채를 비롯한 각종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 출처: 상강[霜降] (두산백과). 4]. 한국 세시풍속사전의 설명. 상강[霜降] 정의 음력 9월에 드는 24절기의 하나로서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는 시기를 뜻하는 절기. 내용 상강은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에 들며, 태양의 황경이 210도에 이를 때로 양력으로 10월 23일 무렵이 된다. 이 시기는 가을의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는 대신에 밤의 기온이 매우 낮아지는 때이다. 따라서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며, 온도가 더 낮아지면 첫 얼음이 얼기도 한다. 이때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며 국화도 활짝 피는 늦가을의 계절이다. 중구일과 같이 국화주를 마시며 가을 나들이를 하는 이유도 이런 계절적 사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상강에 국가의례인 둑제[纛祭]를 행하기도 했다. 특히 농사력으로는 이 시기에 추수가 마무리되는 때이기에 겨울맞이를 시작해야 한다. 권문해(權文海)의 『초간선생문집(草澗先生文集)』을 보면 상강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다.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두루 내리니, 숙연히 천지가 한번 깨끗해지네. 바라보는 가운데 점점 산 모양이 파리해 보이고, 구름 끝에 처음 놀란 기러기가 나란히 가로질러 가네. 시냇가의 쇠잔한 버들은 잎에 병이 들어 시드는데, 울타리 아래에 이슬이 내려 찬 꽃부리가 빛나네. 도리어 근심이 되는 것은 노포(老圃)가 가을이 다 가면, 때로 서풍을 향해 깨진 술잔을 씻는 것이라네(半夜嚴霜遍八紘 肅然天地一番淸 望中漸覺山容瘦 雲外初驚雁陳橫 殘柳溪邊凋病葉 露叢籬下燦寒英 却愁老圃秋歸盡 時向西風洗破觥).” 중국에서는 상강부터 입동 사이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자연의 현상을 설명하였다. 이를테면 초후(初候)는 승냥이가 산짐승을 잡는 때, 중후(中候)는 초목이 누렇게 떨어지는 때이며, 말후(末候)는 겨울잠을 자는 벌레들이 모두 땅속에 숨는 때라고 한다. 김형수(金逈洙)의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에도 한로와 상강에 해당하는 절기의 모습을 “초목은 잎이 지고 국화 향기 퍼지며 승냥이는 제사하고 동면할 벌레는 굽히니”라고 표현한 것을 보아 중국의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출처: 상강[霜降]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3]. 중국의 상강. 1]. 베이징관광국에 서술된 자료임. 24절기 상강(霜降)의 뜻과 풍습 상강은 24절기 중 하나로, 가을의 마지막 절기다. 상강은 서리 상(霜)에 내릴 강(降) 자를 사용해 서리가 내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의 절기... 중국에서는 상강부터 입동 사이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자연의 현상을 설명하기도 했다. 초후(初候)는 승냥이가 산짐승을 잡는 때, 중후(中候)는 초목이 누렇게 떨어지는 때이며, 말후(末候)는 겨울잠을 자는 벌레들이 모두 땅속에 숨는 때라고 한다. 이 시기는 가을의 쾌청함이 계속되는 대신, 밤의 기온이 매우 낮아져 일교차가 커지므로 감기에 유의해야 한다. 상강에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국화도 활짝 핀다. 이에 상강에는 국화로 만든 음식을 먹어왔는데 국화전, 국화차, 국화주 등을 먹는다. 국화는 눈을 밝게 하고 뼈와 근육에 기운을 북돋아주며 기침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이 시기에 추수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겨울 맞이를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제철 과일 감 가을을 하면 생각나는 과일이 바로 감이다.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상강 시기에 감을 먹는 풍습이 있다. 가을에서 겨울 사이가 제철인 감은 비타민C가 풍부해서 화절기 감기에 효과적인 과일이다. 감의 효능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중국 일부 지방 사람들이 상강 시기에 꼭 홍시를 먹어야 한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상강 날에 감을 먹으면 입술이 촉촉해지며 피부 수분을 잘 유지해준다. 등고 ‘등고’는 상강 전후에 높은 곳에 올라서 하루를 즐기던 세시풍속인데 아침 저녁에는 기온이 낮아 등산가기에 몸에 좋지 않다. 가을철 등산 시에는 낮 기온이 따뜻하더라도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는 등 일교차에 대비해 옷을 단단히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급변하는 온도와 갑작스러운 신체 활동에 척추나 관절이 놀라 통증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국화꽃 감상 국화는 중국에서 ‘장수화’라고 불리우며 유명하다. 가을에 대표적인 꽃이며 옛날 중국에서는 서리가 내리는 시기에 국화가 핀다는 말이 있다. 중국에서 상강 시기에 산에 올라 국화를 감상하는 풍습이 전해졌으며 사람들이 국화는 장수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중국 많은 지역에서 국화감상대회, 국화전시전을 열리며 공원에 가서 국화를 감상하며 나들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무를 뽑다 중국 산동성에는 ‘처서에 수수, 백로에 벼,상강에는 무’라는 속담이 있어 현지 사람들이 상강 시기에 무를 즐겨먹는다. 무는 가을에서 겨울에 걸쳐 맛이 가장 좋다. 무는 음식의 소화흡수를 촉진한다. 식물성 섬유도 풍부해 장내노폐물을 청소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비타민C가 많이 들어 있는데 무 껍질에는 무 속의 2배가량 많다. 오리 보양식 중국 민남과 대만 지역에서는 상강 무렵에 오리를 먹는 풍습이 전해졌다. 이 때가 되면 민남에서는 오리를 장사하는 사람이 많이 판다. 오리가 몸에 좋다하고 더불어 레몬, 연잎,호두 등과 같이 먹으면 맛도 좋고 건강에 유리하다. 중국에서는 베이징 카오야, 난징 옌쑤이야(盐水鸭), 오리선지탕(鸭血粉丝汤)을 비롯한 오리 보양 음식이 다양하고 맛이 좋다. 소고기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상강 시절에 소고기를 먹는 풍습이 있다. 예를 들면, 광시위린 사람들이 이 날 아침에 소고기 흐어펀(河粉),점심이나 저녁엔 소고기무 볶음요리를 먹는다. 소고기 외에 양고기를 먹는 습관도 있어 중국에서 이를 ‘가을 살을 찌워 놓다’고 한다. 2]. 중국의 단풍 명소. 중국은 단풍 명소들이 넓은 지역에 걸쳐 있어서 지역에 따라 9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 신나는 어린이 중국어. <중국문화 속으로> 중국의 단풍명소/다락원/2018.9.11. ...중국은 대륙성 기후이기 때문에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인 연교차와 아침 저녁의 기온차인 일교차가 매우 심하답니다. 덕분에 중국 역시 아름다운 단풍 풍경을 자랑하지요. 또한 단풍 명소들이 넓은 지역에 걸쳐져 있어서 지역에 따라 9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답니다. 중국말로 단풍을 ‘红叶 hóngyè‘라고 해요. ‘红’은 붉은색을, ‘叶’는 나뭇잎을 뜻해요. 따라서 ‘红叶’는 붉은 잎을 뜻하는 것이지요. . 필자 주 ). 红叶 은 홍엽이며, 단풍,홍엽을 의미합니다. 叶의 번체는 葉입니다. 중국에서 ‘红叶’로 유명한 지역은 어디인지 알아 볼까요?...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678894&memberNo=4753342 [4].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 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5].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 지켜야 될 자격과 전통이 있다면, 국가주권, 헌법, 국제법, 한국사, 세계사등에 의거하여, 최고의 가치로 알고 지켜가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일본 불교 Monkey의 교육.종교 등 모든 주권은 일본 항복과 함께 한국에서 존재할 수 없음.역사,법, 종교, 문화, 대학은 정치와 별개임.근대세계 지배세력 서유럽.세계사의 수천년 문명,인정받아온 혜택자 중국. 수천년 역사를 기록한 세계사 기득권들은 무엇을 유지했고,무엇을 잃었는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2차대전 승전국이자 UN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이 된 미국과 소련(러시아)도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자기진단을 해보아야 합니다. 서유럽,중국,미국,소련(러시아) 본인들이 이런 내용들을 잘 알고 있어야 갈등이 적어집니다.*먼저 한국 관련 내용입니다.필자가 일본 잔재학교 서울대등 질타 이유는,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받아들여,한국.대만.동남아,쿠릴열도등에 일본 주권없고 축출해야한다는 국가원수들 합의문때문.그리고 한국 임시정부는 한일병합무효,대일선전포고.*한국에 주권없이 남겨진 패전국 일본잔재 경성제대후신 서울대와 초급대출신 국립대,중.고교등은 축출(폐지)대상@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서강대는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심산 김창숙 선생은, 해방후 미군정당시, 미군정이 복구한 성균관의, 성균관장이 되시고, 전국 유림대회 결의에 따라, 성균관장의 자격으로,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현재에 이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대학 국사 성균관자격은 성균관대가 계승)@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포함)을 받아들여,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고, 한국영토에서 축출해야 될 일제 잔재 종교정책과,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각종 왜구학교.@김창숙 선생 개인이, 인품이 훌륭하거나, 임시정부 요인이라서가 아니라, 미군정에서 법으로 성균관을 복구시켜서, 성균관장에 선출되었고, 성균관장 자격으로,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하여서, 성균관대가 국사 성균관의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자격을 승계해 온것임.국사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라는건 성균관대, 성균관, 여러 백과사전 공통된 견해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3894018066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 성균관대는, 해방후, 미군정이 공자묘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성균관 복구에 해당)하는 법률을 발효, 전국 유림대회 결의(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 김창숙)에 따라,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선생이, 미군정에, 대학기구로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의 환원(복구)을 실행하는 성균관대를 등록(성균관은 제사기구로 이원화)하여,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의 승계대학으로, 미군정때부터의 국사 성균관 교육으로, 해마다, 학교에서 성균관을 교육시키고 있습니다.@광복 당시 국내에 있던 일본의 모든 공유 및 사유재산은 미군정에 의해 ‘적산(敵産)’으로 규정되어 미군정청의 ‘귀속재산’으로 접수되었다...*출처:귀속재산불하[ 歸屬財産拂下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필자의견:해방후 미군정당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를 국립대로 하였는데, 이는 미군정의 敵인 일본잔재 경성제대를 적산재산 국유화 하는 패전국 잔재처리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울대뒤에 붙여넣은 더 자격없는 신생 대학들이, 국립대 서울대를 가장 앞에 두고, 주권.자격.학벌없이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에 대항해 온것은, 인정해 줄 수 없습니다. 또한 일제 잔재 공립 중.고교들이, 구한말에 세워진 한국의 민족학교들보다 좋다고 주장하는것도 적국 잔재 일본 왜구학교로서는, 아무 법적 타당성이 없고,명분도 없습니다. 그리고 일제가 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오도하고, 일본 불교에서 파생된 신도(불교 후발 일본 국지적 신앙으로, 일본 국교), 불교, 기독교만 종교로 하여, 강제 포교한 것도, 미군정당시부터 무효가 된 것입니다. 한가지 주의할것은, 서유럽에서 왕족.귀족의 역사적 지배권을 인정하는 기반에서 형성된 서강대가 속한, 가톨릭 예수회는, 해방후 미군정을 거친 한참후에 들어와 한국에 그 교당이나 신자수가 적다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민중을 위한다는, 가톨릭 외방전교회가 들어와 활동했는데, 수천년 왕조국가 전통의 한국에서는 지배층의 성균관대와 성균관.양반들이 인정할 수 없던 계파였습니다. @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 승계 성균관대는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행정법.국제관습법으로 인정받고 있음.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 宮(泮宮,學宮, 太學)의 별칭가진 성균관의 교육기능을 가진 성균관대임. Royal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양반 성대 다음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패전국 일본 잔재이자, 불교 Monkey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어왔음. 이 뒤로 서울대를 극복하지 못해온 전국 각지역 대학들. 해방당시 미군정부터, 상위법은 승전국 국가원수들이 모여 발표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이 국제법으로 상위법 역할을 하고, 미군정령은 하위법이라, 상위법 우선의 원칙으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조선.대한제국에는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으로 성균관 하나밖에 없던 나라였음. @ 헌법, 국제법, 학교교육의 교과서 교육인 국사, 세계사 자격이 기준이며 가장 합법적이고, 보편적이며 학술적임.세계사에서 중국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베이징대로 승계하여 현재에 이름),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을 해마다 학교교육에서 교육시키는 학교교육 교과서 교육은, 대중언론.입시지,대학평가기관의 새로운 도전과 달리, 관습법적으로 국제법적 자격을 가진 최고의 권위를 가졌습니다. 한국은, 해방후 미군정시대에, 일제잔재 대중언론에서 시작된 경성제대후신 서울대가, 주권.자격.학벌없이,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에, 도전해오고 있지만, 헌법.국제법,국사,세계사 자격의 정통성은, 일제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의 도발을 인정해오지 않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입니다. 세계사의 교황성하 반영,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예수회 산하의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궁 성균관대(宮, 泮宮, 學宮, 太學의 별칭가진 성균관)다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자격 성균관대와 같은 Royal대학으로 예우한다는 지론을 펼쳐옴.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일본이 항복한후,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각종 왜구 잔재 초급대나, 공립 중.고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기 때문에, 미군정때부터 대중언론에서 도전.약탈.침략해온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이 된 대학을, 법이나 교과서, 학술적으로 불인정해옴. @ 학구적이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예수회(귀족출신 이나시오 사제가 창립)산하 서강대는 정말 학구적인 대학입니다. 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 헌법, 국제법, 한국사, 세계사는 한국 고교교육을 거치고, 대학에 진학하면, 평생동안 가장 합법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기준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고려 국자감.성균관을 계승하여, 1398년에 조선을 건국하신 태조(이성계)께서, 1398년에 숭교방(崇敎坊,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명륜동1 · 2 · 3가 · 혜화동 각 일부에 해당)에 성균관 건물을 준공하셨습니다. 그 이후 태종께서 왕세자의 입학을 명령하신후, 조선의 왕세자들은 성균관에 입학해서 공부한 후, 국왕이 되는 학문의 길을 거쳐야 했습니다. 헌법이나, 국제법, 한국사, 세계사의 자격은 대중언론.입시지의 준동을 아랑곳 하지 않는 특질을 가졌습니다.또한 주권.학벌이 없는 서울대와 추종세력의 약탈을 인정해 줄수도 없습니다. @세계적 법체계는 대륙법 중심의 성문법과, 영.미법 중심의 판례를 따르는 영.미법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대륙법은 국제법의 표준이고, 영.미법은 영.미권 영향력이 강한 나라들에서 민사나 상사쪽으로 중요한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각 국가별 헌법이나 주권이 같이 작용하고 있습니다.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교황윤허,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교과서자격 안변함. 국사 성균관(성균관대), 세계사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베이징대로 승계), 볼로냐.파리대 자격은 변하지 않아왔음.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균관대.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인정받고 있는 성균관대. Royal대임.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 한국측 입장이 담긴 국사(성균관 교육), 국어, 국민윤리나,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각종 교과서(정치.경제, 세계사, 국토지리, 세계지리, 사회문화,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수학, 기술, 상업.공업.농업.수산업, 가정.가사, 음악.미술, 예술,체육) 이론들이 어우러져, 한국 대학들의, 헌법,국제법, 국사, 세계사, 국민윤리, 국어, 사회문화, 정치.경제적 측면이 상호 교차하면서, 일제 강점기에 생긴 각종 대중언론들의 견해(1960년대 후반에는 입시지나 학원들의 견해도 형성됨)까지 어우러져, 불법.강제로,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겼던, 조선.대한제국의 전통규범인 유교,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던 성균관(미군정시대 성균관대로 계승)의 주권.자격들이 도전받으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을사조약은 무효(따라서 불법.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임)라는 대한제국의 입장은 나중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계승되었음.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대일선전포고문에서 을사조약.한일병합등 각종 불평등 조약은 무효라고 명시함. 별도로, 국제법의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및 일본의 항복선언, 미군정법률은 국제법 영역입니다. 왕정복구가 무산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여, 대학측면으로 보면, 헌법.국제법, 학교교육 교과서 내용(국사,세계사, 정치경제,국민윤리등), 대중언론.입시지의 대학觀은 정리가 필요합니다. 대학은 가급적 학벌이 좋은 Royal대인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나,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귀족계파 예수회 산하의 서강대의 Royal 대학으로 가는게 좋습니다. 일류, 명문대학들입니다. 그리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및 그 추종세력들)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온 사유로, 무어라고 주장해도, 한국에 학벌이 없으며 일류.명문 타이틀도 부여받을 수 없습니다. 학과에 상관없이 무슨학과든지 Royal 성균관대(국사 성균관자격), Royal 서강대(세계사의교황반영,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성균관대(양반대학)와 서강대(가톨릭계 예수회의 귀족대학)만 Royal대며, 일류.명문임. 주권.자격.학벌 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일본 점쇠 천황이 세운 마당쇠 대학), 그 뒤 연세대(일본 강점기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 서민출신 이용익의 보성전문 후신 고려대일것. 성대와 서강대 밖의 리그로 본다면 주권.학벌없는 서울대, 연세대(본캠), 고려대(본캠), 이화여대.이화도 주권.학벌은 없지만, 왜구 서울대가 연세.이화 필요하던 미군정때의 대중언론 도전. 성균관대에 오랫동안 도전을 해와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카르텔은 전분야에서 아주 강합니다. 교과서자격 안변함. 국사 성균관(성균관대), 세계사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베이징대로 승계), 볼로냐.파리대 자격은 변하지 않아왔음.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균관대.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인정받고 있는 성균관대. Royal대임.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헌법,국제법, 학교교육 교과서의 교육내용은 가장 표준적이며, 가장 보편적인 학술근거입니다. 국사(성균관, 해방후 성균관대로 정통승계), 세계사(한나라 태학, 위 태학, 그 이후 나라들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승계), 교황성하의 신성성 지속,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파리대학등의 전통과 자격을 반영하여, 주권과 대학학벌을 수호하고자 합니다. 대중언론.사설 입시지를 통하여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에, 주권.자격.학벌없이 대항해온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그 추종세력들의 도전을 막기 위함입니다. [6].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 僧(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가 세운 마당쇠 僧대학). 그 뒤 서울대에 대중언론에서 눌려온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의 비신분제 대학들.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그러나 세계사로 보면, 가톨릭이라는 세계종교는 너무 세계인에 일반화되어서, 국사적개념과 병립하여, 세계사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에서, 국제관습법상 세계종교 가톨릭의 자격으로 예우하는게 적절함. 일본식 개념으로, 일본 국지신앙인 일본 신도(일본의 국교), 불교, 기독교의 위상을, 한국에 적용할수는 없음. 그리고 한국과 바티칸시티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기 때문에, 한국헌법 임시정부가 선전포고하고,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일본의 종교기준을 적용하는게 맞지않음. 불교는 인도에서도 배척당해왔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 불교국 일본의 종교기준대로 하면,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아닌 사회규범이 되어, 일본 신도(불교에서 파생됨), 불교, 기독교만 포교종교고, 유교는 일제강점기의 신생종교인 원불교보다 신자수가 적은 50만(성균관.향교의 제사인구만 유교도라고 1980년대 초반에 통계청 표본조사를 실시하여, 다시 유교에 도전하고 있음)이 되어, 해방한국의 종교주권을 침해당하게 됨.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 가지고 있음. @문화대혁명으로 모택동 주석도 비판받고,중국은 개혁.개방정책으로, 유교 전통명절인 춘절, 중추절, 청명절, 단오절의 4대명절 공휴일을 아주 길게 하였음.@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한국영토에 주권없는 패전국 잔재이자, 하느님.창조신을 부정하는 Chimpanzee계열 불교 일본 서울대Monkey와 추종세력들이 학교교육 세계사의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윤리의 종교교육 유교, 국사등과 달리, 일본강점기때 일본이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했으니까, 유교가 종교아니라고 최근 다시 왜곡하는데,이는 일제잔재 대중언론에 포진하여 루머수준으로 유교에 도전하는것임.@인도에서 불교도는,불가촉賤民.조계종승려賤民한국과비슷.강점기 하느님에 덤비며(창조신내리까는 부처처럼)유교부정,불교Monkey일본.하느님보다높다는 성씨없는 일본점쇠賤民.후발천황(점쇠가 돌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옹립.한국은 세계종교유교국.수천년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숭배.해방후 조선성명복구령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복귀.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국중 하나인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강점기를 겪으며 대중언론등에서 유교가 많이 왜곡되고 있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3424093319 [7]. 필자의 당부사항.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에서만 머물러야 합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275696355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190490049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s://blog.naver.com/macmaca/110185393995

2025년 10월 9일 목요일

유교문화 24절기 한로.2025년 10월 8일(음력 8월 17일)부터 15일간은 한로(寒露)절기입니다.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찬이슬이 맺힌다는 절기.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임.두산백과는 "한로 즈음에 단풍이 짙어지고, 한국에서는 이 시기에 국화전(菊花煎)을 지지고 국화술을 담그는 풍습이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유교문화 24절기 한로.2025년 10월 8일(음력 8월 17일)부터 15일간은 한로(寒露)절기입니다.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찬이슬이 맺힌다는 절기.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임.두산백과는 "한로 즈음에 단풍이 짙어지고, 한국에서는 이 시기에 국화전(菊花煎)을 지지고 국화술을 담그는 풍습이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유교에서 가을을 주관하시는 신(神)은 최고신이신 하느님[천(天)]을 중심으로 하면서, 가을의 하느님이신 소호(少皥) 께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한로(寒露)이후 유교의 최고신이신 하느님(天)을 중심으로 계절을 주관하시는 신이신 오제(五帝)께서 베푸시는 아름다운 명절(중양절)과 24절기 중 하나인 상강이 곧 다가옵니다. 중양절(重陽節)의 국화철, 상강(霜降)절기의 단풍철이 한국의 가을을 아름답게 수놓게 됩니다. [1]. 여러가지 사전류에서 설명하는 한로(寒露). 표준 국어대사전에서는 한로(寒露)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십사절기의 하나. 추분과 상강 사이에 들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195도인 때이다. 10월 8일경이다. 한편 한로(寒露)즈음의 절기식으로 화제를 돌려봅니다. 이전에는 농사인구가 많아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논에서 키우던 미꾸라지를 잡아 만든 추어탕을 이 즈음에 많이 먹었습니다 . 이전에는 서민음식이었지만, 지금은 논에서 미꾸라지를 키우는 가정이 줄어들어 서민음식이라 하기도 어렵습니다. 한국이 서비스업이나 제조업이 발달한 나라라 농업인구가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생활수준이 좋아져, 돈 있으면 쉽게 사먹을 수 있는 추어탕. 이전 한국의 서민들은 한로(寒露).상강(霜降) 즈음에 추어탕을 절기식으로 많이 먹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서양인과 달리, 우유나 고기등을 많이 먹지 않고 곡식.채소등을 많이 먹어온 나라라, 각종 절기식에 보양효과가 있는 육류를 즐겨보는것도 좋겠습니다.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나타나는 한로(寒露). 정의 1년을 24개로 구분한 24절기 가운데 열일곱 번째 절기. 24절기 내용 추분과 상강 사이에 들며, 음력으로 9월, 양력으로 10월 8일경이다.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말뜻 그대로 찬이슬이 맺힌다, 세시명절인 중양절(重陽節 : 重九)과 비슷한 때이다. 중양절에는 특별한 민속행사가 있으나 한로에는 이렇다 할 행사는 없고, 다만 24절기로서 지나칠 따름이다. 하지만 한로를 전후하여 국화전(菊花煎)을 지지고 국화술을 담그며, 온갖 모임이나 놀이가 성행한다. 한편, 이무렵 머리에 수유(茱萸)를 꽂거나, 높은 데 올라가 고향을 바라본다든지 하는 내용이 한시에 자주 나타난다. 두보(杜甫)의 “내년 이 모임에 누가 건재할 지 아는가, 얼근히 취한 눈으로 수유를 쥐고 자세히 들여다보네(明年此會知誰健 醉把茱萸仔細看).”라는 시가 유명하다. 이무렵 높은 산에 올라가 수유열매를 머리에 꽂으면 잡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는데, 이는 수유열매가 붉은 자줏빛으로 붉은색이 벽사력(辟邪力)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로 즈음에는 찬 이슬이 맺힐 시기여서 기온이 더욱 내려가기 전에 추수를 끝내야 하므로 농촌은 타작이 한창인 시기이다. . 출처: 한로 [寒露]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한로(寒露). 한로[ 寒露 ] 요약 24절기 중 추분과 상강 사이의 절기로, 이 시기는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시기이다. 또한 단풍이 짙어지고 제비와 같은 여름새와 기러기 같은 겨울새가 교체되는 시기이다. 추분(秋分)과 상강(霜降) 사이의 절기로, 양력 10월 8일경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때 태양은 황경 195°의 위치에 온다. 음력으로는 9월절이다. 옛 중국에서는 한로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三候)로 나눠서, ① 기러기가 초대를 받은 듯 모여들고, ② 참새가 줄고 조개가 나돌며, ③ 국화가 노랗게 핀다고 하였다. 이 시기는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시기로, 이슬이 찬 공기를 만나서 서리로 변하기 직전이다. 또한 단풍이 짙어지고, 제비 등 여름새와 기러기 등 겨울새가 교체되는 시기이다. 한국에서는 이 시기에 국화전(菊花煎)을 지지고 국화술을 담그는 풍습이 있다. . 출처: 한로[寒露] (두산백과) 4]. 한국 세시풍속사전에 나타나는 한로(寒露). 한로 [ 寒露 ] 분야계절날짜시절음식관련속담 절기 가을(음력 9월) 양력 10월 8~9일경 추어탕(鰍魚湯) 한로가 지나면 제비도 강남으로 간다, 가을 곡식은 찬이슬에 영근다 정의 24절기 가운데 17번째 절기로 찬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시기라는 뜻의 절기. 한로(寒露)는 양력 10월 8~9일 무렵이 입기일(入氣日)이며 태양이 황경 195도의 위치에 올 때이다. 음력으로는 9월의 절기로서 공기가 차츰 선선해짐에 따라 이슬(한로)이 찬 공기를 만나 서리로 변하기 직전의 시기이다. 내용 중국 사람들은 한로 15일 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초대를 받은 듯 모여들고, 중후(中候)에는 참새가 줄고 조개가 나오며, 말후(末候)에는 국화가 노랗게 핀다고 하였다. 『고려사(高麗史)』 권50 「지(志)」4 역(曆) 선명력(宣明曆) 상(上)2의 한로 관련 기록을 보면 “한로는 9월의 절기이다. 괘(卦)는 태(兌) 구삼(九三)이다. 초후에 기러기가 와서 머문다. 차후에 참새가 큰물에 들어가 조개가 된다. 말후에 국화꽃이 누렇게 핀다(寒露 九月節 兌九三 鴻鴈來賓 雀入大水化爲蛤 菊有黃華).”라고 하여 중국의 기록과 비슷하다. 한로 즈음은 찬이슬이 맺힐 시기여서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추수를 끝내야 하므로 농촌은 오곡백과를 수확하기 위해 타작이 한창인 때이다. 한편 여름철의 꽃보다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 짙어지고, 제비 같은 여름새와 기러기 같은 겨울새가 교체되는 시기이다. 한로는 중양절과 비슷한 시기에 드는 때가 많으므로 중양절 풍속인 머리에 수유(茱萸)를 꽂거나, 높은 데 올라가 고향을 바라본다든지 하는 내용이 한시(漢詩)에 자주 나타난다. 높은 산에 올라가 머리에 수유를 꽂으면 잡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수유열매가 붉은 자줏빛인데 붉은색은 양(陽)색으로 벽사력(辟邪力)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로와 상강(霜降) 무렵에 서민들은 시식(時食)으로 추어탕(鰍魚湯)을 즐겼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미꾸라지가 양기(陽氣)를 돋우는 데 좋다고 하였다. 가을에 누렇게 살찌는 가을 고기라 하여 미꾸라지를 추어(鰍魚)라 한 듯하다. 의의 전통 농경사회에서 자연 현상에 의한 기후의 변화는 매년 농사에 매우 중요했으며 정확해야 했다. 그래서 태양력을 이용한 이른바 24절기가 활용되었다. 음력이 윤달을 두어서 한 달씩 날짜가 밀릴 수 있다는 점에 비해, 24절기는 계절의 추이를 정확히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농민으로서 이것을 아는 것을 “철을 안다”고 했고 “철을 안다”든가 “철이 났다”든가 하는 말은 소년이 성인이 되고, 또한 성숙한 농군이 됐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이렇게 24절기를 많이 사용하였던 우리의 재래 역법은 순수한 음력이 아니라 이른바 태음태양력이다. 한로는 입추(立秋), 처서(處暑), 백로(白露), 추분(秋分), 상강과 함께 가을 절기에 해당되며, 세시명절이라기보다는 다만 기후의 변화를 읽는 절기로 유용했다. . 출처: 한로[寒露] (한국세시풍속사전) 5].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에 나타나는 한로(寒露). 한로 [ 寒露 ] 쌀쌀한 밤 기운에 찬[寒] 이슬[露]이 맺히는 시기이다. 이 때는 가을의 꽃 국화로 국화전과 국화술을 만들어 먹는다. 한로 기간에는 기러기가 모여들고 참새가 줄어들며, 조개가 나돌고 국화꽃이 노랗게 핀다고 한다. 양력으로는 10월 9일경이다. . 출처:한로 [寒露]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2011. 5. 23., 정민, 박수밀, 박동욱, 강민경) 6]. 베이징관광국에 설명된 한로 4절기 중의 하나인 한로(寒露)는 기온이 점점 내려가서 찬이슬이 맺히는 시기이다. 이슬이 맺힌다는 것은 하루의 기온차이가 크게 벌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침저녁으로는 기온이 많이 내려가고 낮에는 햇볕으로 인하여 기온이 높다. 중국 사람들은 한로 15일 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초대를 받은 듯 모여들고, 중후(中候)에는 참새가 줄고 조개가 나오며, 말후(末候)에는 국화가 노랗게 핀다고 하였다(鸿雁来宾、雀入水为蛤、菊有黄华). 한로 시기에 중국 각지에서 어떤 풍습이 있을까요? 단풍감상 한로 전후에 단풍 감상하러 향산으로 찾는 사람이 끊임없다. 이 시기에 베이징 향산 등지에서 단풍이 물들기 시작해 등산객들이 등산을 하며 가을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참깨를 먹는다 한로 시절에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한다. 중국 민간에서는 이 절기에 참깨를 먹는다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특히 베이징에서는 참깨과자, 참깨녹두과자, 참깨전 등 참깨로 만든 음식이 인기 상품으로 되어 사랑을 많이 받는다. 농작물 관리에 유의한다 한로 무렵에 기온이 낮아지며 서리가 내리기 가능하여 농작물 관리에 유의해야 한다. 낚시하기 한로 무렵에 햇빛이 그렇게 강하지 않아서 낚시하기에 딱 좋은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청명한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부르면서 낚시하는 것은 일부 사람들의 취미다. 등고 登高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구에서 처음 ‘등고’라는 단어가 나왔다. 늦가을에 베이징에 있는 산에 올라 단풍을 감상하면서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중국 남부 지역에서도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여 아침저녁의 기온이 낮아 일교차가 크다. 제철 과일 배 한루 무렵에 제철 과일 배는 기침과 가래를 가라앉히고 기관지 건강에 도움이 된다. 중국인들이 옛날부터 시원하고 달콤한 배를 활용해 배요리를 많이 한다. 배꿀찜,배숙,배주스 등 다양한 배요리가 기침 제거에 도움이 되다. 국화주를 마신다 한로와 비슷한 시기는 중양절이다. 이 때는 오곡백과를 추수하며 국화의 제철이기에 국화전, 국화주를 즐긴다. 국화주는 국화, 찹쌀, 술과 같이 담그며 고대 중국에서는 ‘장수주(长寿酒)’라고 불린다. [2].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 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3].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 지켜야 될 자격과 전통이 있다면, 국가주권, 헌법, 국제법, 한국사, 세계사등에 의거하여, 최고의 가치로 알고 지켜가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일본 불교 Monkey의 교육.종교 등 모든 주권은 일본 항복과 함께 한국에서 존재할 수 없음.역사,법, 종교, 문화, 대학은 정치와 별개임.근대세계 지배세력 서유럽.세계사의 수천년 문명,인정받아온 혜택자 중국. 수천년 역사를 기록한 세계사 기득권들은 무엇을 유지했고,무엇을 잃었는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2차대전 승전국이자 UN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이 된 미국과 소련(러시아)도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자기진단을 해보아야 합니다. 서유럽,중국,미국,소련(러시아) 본인들이 이런 내용들을 잘 알고 있어야 갈등이 적어집니다.*먼저 한국 관련 내용입니다.필자가 일본 잔재학교 서울대등 질타 이유는,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받아들여,한국.대만.동남아,쿠릴열도등에 일본 주권없고 축출해야한다는 국가원수들 합의문때문.그리고 한국 임시정부는 한일병합무효,대일선전포고.*한국에 주권없이 남겨진 패전국 일본잔재 경성제대후신 서울대와 초급대출신 국립대,중.고교등은 축출(폐지)대상@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서강대는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심산 김창숙 선생은, 해방후 미군정당시, 미군정이 복구한 성균관의, 성균관장이 되시고, 전국 유림대회 결의에 따라, 성균관장의 자격으로,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현재에 이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대학 국사 성균관자격은 성균관대가 계승)@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포함)을 받아들여,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고, 한국영토에서 축출해야 될 일제 잔재 종교정책과,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각종 왜구학교.@김창숙 선생 개인이, 인품이 훌륭하거나, 임시정부 요인이라서가 아니라, 미군정에서 법으로 성균관을 복구시켜서, 성균관장에 선출되었고, 성균관장 자격으로,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하여서, 성균관대가 국사 성균관의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자격을 승계해 온것임.국사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라는건 성균관대, 성균관, 여러 백과사전 공통된 견해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3894018066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 성균관대는, 해방후, 미군정이 공자묘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성균관 복구에 해당)하는 법률을 발효, 전국 유림대회 결의(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 김창숙)에 따라,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선생이, 미군정에, 대학기구로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의 환원(복구)을 실행하는 성균관대를 등록(성균관은 제사기구로 이원화)하여,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의 승계대학으로, 미군정때부터의 국사 성균관 교육으로, 해마다, 학교에서 성균관을 교육시키고 있습니다.@광복 당시 국내에 있던 일본의 모든 공유 및 사유재산은 미군정에 의해 ‘적산(敵産)’으로 규정되어 미군정청의 ‘귀속재산’으로 접수되었다...*출처:귀속재산불하[ 歸屬財産拂下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필자의견:해방후 미군정당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를 국립대로 하였는데, 이는 미군정의 敵인 일본잔재 경성제대를 적산재산 국유화 하는 패전국 잔재처리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울대뒤에 붙여넣은 더 자격없는 신생 대학들이, 국립대 서울대를 가장 앞에 두고, 주권.자격.학벌없이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에 대항해 온것은, 인정해 줄 수 없습니다. 또한 일제 잔재 공립 중.고교들이, 구한말에 세워진 한국의 민족학교들보다 좋다고 주장하는것도 적국 잔재 일본 왜구학교로서는, 아무 법적 타당성이 없고,명분도 없습니다. 그리고 일제가 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오도하고, 일본 불교에서 파생된 신도(불교 후발 일본 국지적 신앙으로, 일본 국교), 불교, 기독교만 종교로 하여, 강제 포교한 것도, 미군정당시부터 무효가 된 것입니다. 한가지 주의할것은, 서유럽에서 왕족.귀족의 역사적 지배권을 인정하는 기반에서 형성된 서강대가 속한, 가톨릭 예수회는, 해방후 미군정을 거친 한참후에 들어와 한국에 그 교당이나 신자수가 적다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민중을 위한다는, 가톨릭 외방전교회가 들어와 활동했는데, 수천년 왕조국가 전통의 한국에서는 지배층의 성균관대와 성균관.양반들이 인정할 수 없던 계파였습니다. @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 승계 성균관대는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행정법.국제관습법으로 인정받고 있음.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 宮(泮宮,學宮, 太學)의 별칭가진 성균관의 교육기능을 가진 성균관대임. Royal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양반 성대 다음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패전국 일본 잔재이자, 불교 Monkey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어왔음. 이 뒤로 서울대를 극복하지 못해온 전국 각지역 대학들. 해방당시 미군정부터, 상위법은 승전국 국가원수들이 모여 발표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이 국제법으로 상위법 역할을 하고, 미군정령은 하위법이라, 상위법 우선의 원칙으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조선.대한제국에는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으로 성균관 하나밖에 없던 나라였음. @ 헌법, 국제법, 학교교육의 교과서 교육인 국사, 세계사 자격이 기준이며 가장 합법적이고, 보편적이며 학술적임.세계사에서 중국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베이징대로 승계하여 현재에 이름),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을 해마다 학교교육에서 교육시키는 학교교육 교과서 교육은, 대중언론.입시지,대학평가기관의 새로운 도전과 달리, 관습법적으로 국제법적 자격을 가진 최고의 권위를 가졌습니다. 한국은, 해방후 미군정시대에, 일제잔재 대중언론에서 시작된 경성제대후신 서울대가, 주권.자격.학벌없이,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에, 도전해오고 있지만, 헌법.국제법,국사,세계사 자격의 정통성은, 일제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의 도발을 인정해오지 않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입니다. 세계사의 교황성하 반영,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예수회 산하의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궁 성균관대(宮, 泮宮, 學宮, 太學의 별칭가진 성균관)다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자격 성균관대와 같은 Royal대학으로 예우한다는 지론을 펼쳐옴.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일본이 항복한후,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각종 왜구 잔재 초급대나, 공립 중.고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기 때문에, 미군정때부터 대중언론에서 도전.약탈.침략해온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이 된 대학을, 법이나 교과서, 학술적으로 불인정해옴. @ 학구적이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예수회(귀족출신 이나시오 사제가 창립)산하 서강대는 정말 학구적인 대학입니다. 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 헌법, 국제법, 한국사, 세계사는 한국 고교교육을 거치고, 대학에 진학하면, 평생동안 가장 합법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기준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고려 국자감.성균관을 계승하여, 1398년에 조선을 건국하신 태조(이성계)께서, 1398년에 숭교방(崇敎坊,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명륜동1 · 2 · 3가 · 혜화동 각 일부에 해당)에 성균관 건물을 준공하셨습니다. 그 이후 태종께서 왕세자의 입학을 명령하신후, 조선의 왕세자들은 성균관에 입학해서 공부한 후, 국왕이 되는 학문의 길을 거쳐야 했습니다. 헌법이나, 국제법, 한국사, 세계사의 자격은 대중언론.입시지의 준동을 아랑곳 하지 않는 특질을 가졌습니다.또한 주권.학벌이 없는 서울대와 추종세력의 약탈을 인정해 줄수도 없습니다. @세계적 법체계는 대륙법 중심의 성문법과, 영.미법 중심의 판례를 따르는 영.미법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대륙법은 국제법의 표준이고, 영.미법은 영.미권 영향력이 강한 나라들에서 민사나 상사쪽으로 중요한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각 국가별 헌법이나 주권이 같이 작용하고 있습니다.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교황윤허,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교과서자격 안변함. 국사 성균관(성균관대), 세계사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베이징대로 승계), 볼로냐.파리대 자격은 변하지 않아왔음.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균관대.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인정받고 있는 성균관대. Royal대임.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 한국측 입장이 담긴 국사(성균관 교육), 국어, 국민윤리나,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각종 교과서(정치.경제, 세계사, 국토지리, 세계지리, 사회문화,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수학, 기술, 상업.공업.농업.수산업, 가정.가사, 음악.미술, 예술,체육) 이론들이 어우러져, 한국 대학들의, 헌법,국제법, 국사, 세계사, 국민윤리, 국어, 사회문화, 정치.경제적 측면이 상호 교차하면서, 일제 강점기에 생긴 각종 대중언론들의 견해(1960년대 후반에는 입시지나 학원들의 견해도 형성됨)까지 어우러져, 불법.강제로,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겼던, 조선.대한제국의 전통규범인 유교,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던 성균관(미군정시대 성균관대로 계승)의 주권.자격들이 도전받으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을사조약은 무효(따라서 불법.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임)라는 대한제국의 입장은 나중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계승되었음.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대일선전포고문에서 을사조약.한일병합등 각종 불평등 조약은 무효라고 명시함. 별도로, 국제법의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및 일본의 항복선언, 미군정법률은 국제법 영역입니다. 왕정복구가 무산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여, 대학측면으로 보면, 헌법.국제법, 학교교육 교과서 내용(국사,세계사, 정치경제,국민윤리등), 대중언론.입시지의 대학觀은 정리가 필요합니다. 대학은 가급적 학벌이 좋은 Royal대인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나,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귀족계파 예수회 산하의 서강대의 Royal 대학으로 가는게 좋습니다. 일류, 명문대학들입니다. 그리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및 그 추종세력들)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온 사유로, 무어라고 주장해도, 한국에 학벌이 없으며 일류.명문 타이틀도 부여받을 수 없습니다. 학과에 상관없이 무슨학과든지 Royal 성균관대(국사 성균관자격), Royal 서강대(세계사의교황반영,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성균관대(양반대학)와 서강대(가톨릭계 예수회의 귀족대학)만 Royal대며, 일류.명문임. 주권.자격.학벌 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일본 점쇠 천황이 세운 마당쇠 대학), 그 뒤 연세대(일본 강점기 연희전문 후신 연세대), 서민출신 이용익의 보성전문 후신 고려대일것. 성대와 서강대 밖의 리그로 본다면 주권.학벌없는 서울대, 연세대(본캠), 고려대(본캠), 이화여대.이화도 주권.학벌은 없지만, 왜구 서울대가 연세.이화 필요하던 미군정때의 대중언론 도전. 성균관대에 오랫동안 도전을 해와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카르텔은 전분야에서 아주 강합니다. 교과서자격 안변함. 국사 성균관(성균관대), 세계사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베이징대로 승계), 볼로냐.파리대 자격은 변하지 않아왔음.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균관대.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인정받고 있는 성균관대. Royal대임.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헌법,국제법, 학교교육 교과서의 교육내용은 가장 표준적이며, 가장 보편적인 학술근거입니다. 국사(성균관, 해방후 성균관대로 정통승계), 세계사(한나라 태학, 위 태학, 그 이후 나라들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승계), 교황성하의 신성성 지속,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파리대학등의 전통과 자격을 반영하여, 주권과 대학학벌을 수호하고자 합니다. 대중언론.사설 입시지를 통하여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에, 주권.자격.학벌없이 대항해온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그 추종세력들의 도전을 막기 위함입니다. [4].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 僧(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가 세운 마당쇠 僧대학). 그 뒤 서울대에 대중언론에서 눌려온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의 비신분제 대학들.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그러나 세계사로 보면, 가톨릭이라는 세계종교는 너무 세계인에 일반화되어서, 국사적개념과 병립하여, 세계사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에서, 국제관습법상 세계종교 가톨릭의 자격으로 예우하는게 적절함. 일본식 개념으로, 일본 국지신앙인 일본 신도(일본의 국교), 불교, 기독교의 위상을, 한국에 적용할수는 없음. 그리고 한국과 바티칸시티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기 때문에, 한국헌법 임시정부가 선전포고하고,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일본의 종교기준을 적용하는게 맞지않음. 불교는 인도에서도 배척당해왔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 불교국 일본의 종교기준대로 하면,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아닌 사회규범이 되어, 일본 신도(불교에서 파생됨), 불교, 기독교만 포교종교고, 유교는 일제강점기의 신생종교인 원불교보다 신자수가 적은 50만(성균관.향교의 제사인구만 유교도라고 1980년대 초반에 통계청 표본조사를 실시하여, 다시 유교에 도전하고 있음)이 되어, 해방한국의 종교주권을 침해당하게 됨.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 가지고 있음. @문화대혁명으로 모택동 주석도 비판받고,중국은 개혁.개방정책으로, 유교 전통명절인 춘절, 중추절, 청명절, 단오절의 4대명절 공휴일을 아주 길게 하였음.@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한국영토에 주권없는 패전국 잔재이자, 하느님.창조신을 부정하는 Chimpanzee계열 불교 일본 서울대Monkey와 추종세력들이 학교교육 세계사의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윤리의 종교교육 유교, 국사등과 달리, 일본강점기때 일본이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했으니까, 유교가 종교아니라고 최근 다시 왜곡하는데,이는 일제잔재 대중언론에 포진하여 루머수준으로 유교에 도전하는것임.@인도에서 불교도는,불가촉賤民.조계종승려賤民한국과비슷.강점기 하느님에 덤비며(창조신내리까는 부처처럼)유교부정,불교Monkey일본.하느님보다높다는 성씨없는 일본점쇠賤民.후발천황(점쇠가 돌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옹립.한국은 세계종교유교국.수천년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숭배.해방후 조선성명복구령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복귀.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국중 하나인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강점기를 겪으며 대중언론등에서 유교가 많이 왜곡되고 있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3424093319 [5]. 필자의 당부사항.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에서만 머물러야 합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275696355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190490049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s://blog.naver.com/macmaca/110185393995 .

2025년 10월 4일 토요일

즐겁고 풍요로운 추석[秋夕, 중추절(仲秋節)]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2025년 10월 6일은 음력으로 8월 15일 추석(중추절)입니다. 한국은 10월 5일부터 9일까지 대체휴일을 포함하여,추석(중추절) 공휴일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중추절[仲秋節,中秋節]로 표기하면 쉽게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즐겁고 풍요로운 추석[秋夕, 중추절(仲秋節)]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2025년 10월 6일은 음력으로 8월 15일 추석(중추절)입니다. 한국은 10월 5일부터 9일까지 대체휴일을 포함하여,추석(중추절) 공휴일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중추절[仲秋節,中秋節]로 표기하면 쉽게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조상에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하면서(조상제사), 보름달에 소원도 비는(관습적으로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한국인이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유교명절 추석의 전통적인 제천의식의 하나) 추석 명절. [1]. 한국에서는 추석(秋夕)이라고도 많이 부르는데, 세계적으로는 중추절[仲秋節,中秋節]로 표기하면 쉽게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하고, 중추절(中秋節)이라고도 한자로 표기하는데, 국어사전 식으로는 중추절(仲秋節)이고, 유교 경전에서도 중추(仲秋)를 사용하므로, 중추절(仲秋節)로 쓰면 한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세계적으로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그러나, (中秋節)도 같이 사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기본적으로 역사적 특성상 한국은 역사적인 기자조선 이후, 정사로도 분명한 위만조선.한사군이후 수천년 유교 국가임. 국사에 나오는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궁 성균관대)는 대학의 학벌 측면에서는 교황 윤허의 Royal대인 서강대와 협력.동반자 관계임. 그러나 종교로는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기때문, 유교를 국교로 하던 조선,대한제국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할것임. 물론 현행 헌법상 국교가 없고 종교의 자유는 있지만, 미군정기때 모든 한국인들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유교국가인 조선의 한문성씨와 본관을 호적이나 주민등록에 등재해서 모두 유교도 자격을 가지고 있음.그리고 교과서로는 삼강오륜 유교교육과 유교의 인.의.예.지.신 교육, 충효교육을 많이 받아옴. 또한 유교 전통명절인 설날.대보름.한식(청명절).단오절.추석(중추절)등의 주요 명절 및 24절기의 주요 기념일 및 여러가지 절일(節日), 문중별.가족별 제사를 행하고 있는 유교국가임. 추석의 달맞이, 그리고 명절이나 특정 기일에 행하는 조상제사는, 유교 경전에 나오는 구절등을 본받아서 그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유교국가(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2차 대전후의 중국인들의 신생국가(대만,싱가포르)에서 특별한 사유없이,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고 일부러 거부하는것은, 원칙적으로 無君無父의 금수일(祖上도 몰라보는 금수)뿐입니다. 기자조선(기자조선의 후손이 삼한을 건설. 삼한중 마한지역은 백제, 진한은 신라, 변한은 가야가 됨)은, 은나라왕족 기자가 세운 나라인데, 은나라와 주나라의 신앙과 문물,교육은, 춘추전국시대 공자님의 儒家가 성립되는 토대가 된 始原유교의 시대에 해당됩니다. 한나라때 위만조선을 정벌하여 한사군이 세워졌는데, 한나라때는 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걸쳐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된 시기에 해당됩니다.한사군중 낙랑은 부여보다 선진문화였고, 부여는 고구려보다 선진문화라고 할수 있습니다. 고구려 건국자 주몽의 후손이 남하하여 백제를 건설하였습니다. 통상적으로 고구려 태학이 세워진 고구려, 백제(오경박사), 신라(국학,화랑)순의 국력과 문화수준으로 인식됩니다. 신라는 국학이 설립되기전에는, 추석.설날같은 유교명절과, 기자조선.삼한의 始原유교(제천의식, 명절, 팔조법금)를 이어받고, 중국.고구려.백제의 선진문물과 유교제도를 받아들이는 상태였다고 인식됩니다. 내물왕때 맹자의 환과고독을 구휼하던 정책이 보입니다. 환과고독(鰥寡孤獨). 홀아비·과부, 어리고 부모 없는 사람, 늙고 자식이 없는 사람 등을 일컫는 말로, 맹자(孟子)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下) 5에 나오는 용어입니다. 한국 역사의 경우, 그 환과고독에 대한 수취의 감면이나, 구휼책의 사례도 있습니다. 봄에 사신을 보내어 환과고독을 무문하고 각각 곡식 3곡씩을 주었고, 효제로 남다른 행실이 있는 자에게는 관직 1급씩을 주었다. ; 春 發使 撫問鰥寡孤獨 各賜穀三斛 孝悌有異行者 賜職一級 [삼국사기 권제3, 1장 뒤쪽, 신라본기 1 내물이사금] . 출처: 환과고독 [鰥寡孤獨]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 설날.추석때 장기간 공휴일을 주는것은, 명절때 의무를 다하라고 만든것이며, 명절 의무 이행않고,놀라고 만든 취지는 없습니더. 설날.추석 명절의무 이행하지 않겠다면, 이런 저항자들은, 보너스도 주지 말고, 공휴일에 나와서 근무하도록 하는게 맞습니다. 즐겁고 풍요로운 추석 명절 보내십시오. 코로나 방역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이제 다시 수천년 추석명절의 전통으로 돌아왔습니다. 설날.추석 명절때, 의무를 다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드는 유전자가 있는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추석은 차례나 성묘처럼 중요한, 달맞이(보름달에 소원비는 의식)의 제천의식 성격도 아주 강합니다. 추석(중추절)은 수천년 유교명절로,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십수억명의 최대 명절 중 하나.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국가중 하나인, 한국인들은, 이렇게 유교 명절때, 제사하고, 성묘하고, 소원빌고, 가족.친척을 만나며, 명절을 즐기는 유전자가 수천년동안 체화되어 살아왔습니다. 삼한시대에 시작된 제천의식 단오. 유교는 제천의식, 地神제사, 山川제사, 조상제사, 공자님제사가 대표적인데, 고대 한국은 삼한의 상달제, 시월제,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등 제천의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천의식들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조선초에 제천의식 폐지하였다가 대한제국때 부활)를 거치며, 현재도 설날,대보름,단오,추석류의 제천의식(전국적인 조상제사도 포함된 명절이 설날과 추석임)들과, 조상제사인 한식등 대표적인 명절이 있습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현대는 토지부족으로, 화장 및 납골당등이 세계적 대세. 인구가 적을때는 유교,가톨릭등 기독교(개신교포함),이슬람교등이 토지와 산등에 사자의 시체를 매장했음. 인도는 토지에 비해 인구가 많은 특성상 종교와 별개로 불교이전 인더스문명의 브라만교전통에서 사자의 시체를 태워,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강물에 뿌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여겨짐.@ 중요한것은 유교나, 가톨릭같은 수천년 세계종교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최고의 절대적 창조자로 숭배한다는 점임.인구과밀로 묘지가 부족해지면, 사진.영정,위패를 모시고 수천년 조상제사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설날, 추석 명절의 본질은, 금전문제.정치문제 다툼이 아니고, 하느님을 숭배하며, 조상신을 섬기는것입니다. 이런 민감한 문제들은, 나와 다른 견해가 있음을 인정하고, 웃으면서, 잘 마무리 하면 될뿐입니다. 이런걸로, 명절의무를 피하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날에는 차례지내고, 어른들이나 존경하는 스승등을 찾아 세배하고, 덕담도 주고 받는 미풍양속을 잘이해하고 오랫동안 못 보던 가족과 친인척,지인들을 찾아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흔치않은 기회입니다. @ 백제와 신라의 설날. 그리고 신라의 추석. 국사 편찬위원회, 우리 역사넷. 수확을 의미하는 추석, 신라 3대 유리왕 9년(32)에 왕이 육부(六部)를 정하고 이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이 각각 부내의 여자를 거느려 편을 나눈다.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육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고 을야(乙夜, 밤 10시경)에 파하며,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의 많고 적은 것을 살핀다. 지는 편이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때 가무백희(歌舞百戲)를 행하니 이를 가배라고 한다. 기록에서처럼 추석의 유래는 신라의 가배(嘉排)에서 찾는다. @ 국사편찬위원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풍속. 설날의 풍속 * 백제의 설날 풍속 남당에 앉아 정무를 처리하다 삼국사기 > 백제본기 제2 > 사반왕(沙伴王)·고이왕(古尒王) > 남당에 앉아 정무를 처리하다 남당에 앉아 정무를 처리하다 ( 261년 01월01일(음) ) 28년(261) 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자주색 소매가 큰 두루마기와 푸른색 비단 바지를 입고, 금꽃[金花]으로 장식한 검은 비단 관을 쓰고, 흰 가죽띠를 두르고, 검은 가죽신을 신고 남당(南堂)에 앉아서 일을 처리하였다. * 신라의 설날 풍속:651년 이후부터는 정월. 초하루에 왕이 백관의 신정 하례를 받는 하정례賀正禮 의식을 행하였다. [3]. 한국은 기자조선이후, 위만조선을 거쳐, 한사군 설치로, 세계종교 유교국가로 수천년 이어져 온 나라입니다. 유교를 중심으로, 도교나 불교도 부분적 수용. 동양은 제자백가가 경합하다가 유교가 세계종교, 서양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기독교)이 공존하다가, 로마가톨릭이 세계종교됨. 인도는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부처의 불교가 주변국에 단순포교를 해, 한때 고대세계 세계종교였지만, 발원지 인도에서 천 몇백년동안 선발신앙인 브라만의 힌두교에 억눌려 탄압받으며 현재에 이름. 한국은 세계사의 정설로,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국으로 수천년 이어진 나라임.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때 외래종교 형태로 단순 포교되어, 줄곧 정규교육기관도 없이, 주변부 일부 신앙으로 이어지며 유교 밑에서 도교.불교가 혼합되어 이어짐. 단군신화는 고려 후기 중 일연이 국가에서 편찬한 정사인 삼국사기(유교사관)를 모방하여, 개인적으로 불교설화 형식으로 창작한 야사라는게 정설입니다. 유교,공자.은,주시대始原유교때 하느님.조상신숭배.세계사로보면 한나라때 공자님도제사,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성립.2차대전이후, 싱가포르와 대만(차이니스 타이페이라고도 함, 정치적 문제와 별개로,대만도 유교를 믿음)까지 합쳐 전세계 십수억명 유교도가 존재함. 수천년전승.한국은殷후손 기자조선 기준왕의 서씨,한씨사용,三韓유교祭天의식. 국사에서 고려는 치국의道유교,수신의道불교.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고려 국자감은 고려말에 성균관이 되고, 조선 성균관, 해방후 성균관대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한국은, 기자조선이 있어서, 하느님을 숭배하고, 조상신도 숭배하는 수천년 전통이 있어온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예의범절있는 동방예의지국으로 대우받게 한 기자조선. 인도발 외래신앙인 부처 Monkey의 불교가, 하층주변부 신앙으로 살면서, 하느님.창조신을 거부하고 부처가 창조신보다 높다고 하거나, 조상제사를 거부하는 금수 부처의 불교를 막아내고, 하층주변부나 억압대상으로 살아오게 한것은 잘한일입니다. 기자조선이 있어서, 삼한의 제천의식이 있었고, 세계종교 유교의 성립으로 한사군 낙랑의 선진문화를 흡수한 부여 영고, 부여의 선진문화를 흡수한 고구려 동맹의 제천의식이 있었습니다. 기자조선과 한사군의 유교문화가 강하게 스며든, 삼한의 제천의식,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이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초까지 이어지고, 대한제국때 다시 부활하여, 현재는 고종 후손 황사손(이 원)의 제천의식인 환구대제가, 해동天子國전통을 가진 현대의 한국에서 시행중. 또한 황사손(이원)의 종묘대제, 사직대제. 그리고 성균관.향교의 석전대제.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삼한시대에 시작된 제천의식 단오. 유교는 제천의식, 地神제사, 山川제사, 조상제사, 공자님제사가 대표적인데, 고대 한국은 삼한의 상달제, 시월제,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등 제천의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천의식들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조선초에 제천의식 폐지하였다가 대한제국때 부활)를 거치며, 현재도 설날,대보름,단오,추석류의 제천의식(전국적인 조상제사도 포함된 명절이 설날과 추석임)들과, 조상제사인 한식등 대표적인 명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상제사로는 왕가의 종묘제사부터, 일반인들의 문중제사.가족별 조상제사가 있고, 조상제사와 달리, 동지같은 명절 및 24절기의 주요 명절등이 있습니다. 유교의 부분집합 중 하나인 공자님제사(석전.문묘제사)는 성균관을 필두로 전국의 향교에서 거행하는데, 참석인원은 성균관.향교에 등록된 유림들만 참가하여 50만 정도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한국은 한국에 주권이 없는 일본잔재의 주장과 달리, 무교도가 없으며, 5,000만 국민 모두가 유교의 각종 명절과 제사에 여러가지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포교된 일본 신도(일본 불교에서 파생된 후발 국지적 일본의 신앙), 불교, 기독교(일본의 극소수 신앙)가 있는데, 한국영토에 주권없이 유교를 같이 믿고 있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였고, 일본이 항복하면서, 일본의 주권은 한국영토에 없어졌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을사조약.한일병합등이 무효(대일선전포고 포함라고 하였고, 해방이후 미군정시대에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전 국민이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 등록하는 유교국가 조선의 유교도로 복구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도 해방이후 모든 한국인은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도로, 유교의 각종 명절과 제사, 24절기, 유교교육을 주로 받는 유교도임은 변치 않습니다. ​ @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제강점기 포교종교들이 종교협의회나 어떤 모임 가진다고, 종교주권이 생기지는 않습니다.한국은 미군정때,조선성명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국교 유교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임은 변치않으며 5,000만이 유교도임.그리고 주권없이, 일본 강점기 강제 포교종교도 같이 믿는 현상이 생겨남.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나, 서유럽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 초월자이십니다. @ 공자님의 시호. 하늘이 보내신 성자이신 성인 임금 공자님은 황제 칭호인 문선제(文宣帝).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의 오랜 전통으로 호칭되어 오고 있습니다. 나중에 생긴 황제칭호를 붙이지 않아도, 유교 경전상 성인임금 요.순.우.탕.문.무는 요임금,순임금등 고대의 임금칭호가진 성인(聖人,聖天子)들로 일반 황제보다 더 성스럽고 존귀한 성인(聖人,聖天子)들 이십니다. 한나라 이후의 역대 중국 황제들은, 聖天子이신 요.순.우.탕.문.무 및 공자님(춘추전국시대에는 聖天子인 聖人의 후손이며, 선생칭호인 子를 붙여 孔子로 불리시다가, 당나라이후 문선왕 칭호를 추증 받으시고, 그이후 황제국가들에서 대성지성문선왕으로 추증되심)을 모셔왔습니다. 공자님은 당나라때 文宣王추증이후, 그이후 황제국가들에서 至聖文宣王,大成至聖文宣王으로 추증되셨습니다. 문선왕 추증전에는 先師(유교경전의 호칭)의 칭호로 공경받으셨습니다. 유교경전에서 황제칭호는 없습니다. 공자님은 요.순.우.탕과 같은 聖人(聖天子)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신 공자님. 참고로 하면, 공자님 아버지 시호는 계성왕(啓聖王)이시고 공자님 어머니 시호는 계성왕 부인(啓聖王夫人)이십니다.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그러나 세계사로 보면, 가톨릭이라는 세계종교는 너무 세계인에 일반화되어서, 국사적개념과 병립하여, 세계사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에서, 국제관습법상 세계종교 가톨릭의 자격으로 예우하는게 적절함. 일본식 개념으로, 일본 국지신앙인 일본 신도(일본의 국교), 불교, 기독교의 위상을, 한국에 적용할수는 없음. 그리고 한국과 바티칸시티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기 때문에, 한국헌법 임시정부가 선전포고하고,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일본의 종교기준을 적용하는게 맞지않음. 불교는 인도에서도 배척당해왔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 불교국 일본의 종교기준대로 하면,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아닌 사회규범이 되어, 일본 신도(불교에서 파생됨), 불교, 기독교만 포교종교고, 유교는 일제강점기의 신생종교인 원불교보다 신자수가 적은 50만(성균관.향교의 제사인구만 유교도라고 1980년대 초반에 통계청 표본조사를 실시하여, 다시 유교에 도전하고 있음)이 되어, 해방한국의 종교주권을 침해당하게 됨.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 @문화대혁명으로 모택동 주석도 비판받고,중국은 개혁.개방정책으로, 유교 전통명절인 춘절, 중추절, 청명절, 단오절의 4대명절 공휴일을 아주 길게 하였음. [3]. 이제 추석(중추절)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추석(中秋節.仲秋節,秋夕)에 대한 종교학대사전의 설명. 추석(중추절)에 대해 종교학 대사전은 대략적으로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추석은 『예기(禮記)』의 <춘조월 추석월(春朝月 秋夕月)>이란 기록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이며, 가배란 신라시대 경주지방의 방언이다. 망국(亡國)의 비애를 안고 사라진 고조선ㆍ부여ㆍ옥저ㆍ삼한(三韓)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의 추석에 관해서는 그 기록의 멸실ㆍ미흡으로 상고(祥考)할 길이 없으나 추석이 중국ㆍ신라 등지에 있었음을 미루어 보아 고조선ㆍ부여ㆍ삼한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지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지금은 신라의 가배일이야기만이 『사기(史記)』에 한 마디 전할 뿐이다. 추석에는 추석빔을 입고 햅쌀로 술ㆍ송편을 빚고, 햇과일을 마련하여 가묘(家廟)에 모신 조상 앞에 차례(茶禮)를 지내며, 조상의 산소에 성묘(省墓)한다. 산소에 우거진 잡초는 추석 전날 베는 것이 상례(常例)이나 성묘 때 베는 것도 무방한데 이것을 벌초(伐草)라 한다. 또한 이 날은 술ㆍ송편ㆍ과일 등을 나누어 먹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즐겁게 논다. * 출처:추석[秋夕]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 필자 주 1). 위의 서술에 동감합니다. ...추석이 중국ㆍ신라 등지에 있었음을 미루어 보아 고조선ㆍ부여ㆍ삼한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지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지금은 신라의 가배일이야기만이 『사기(史記)』에 한 마디 전할 뿐이다.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황사손(고종황제 후손 이 원으로 환구대제, 사직제례, 종묘제례 및 많은 제사를 주관함.)이시지만, 석전대제를 주관하는 성균관이 명절때 성묘.차례는 않는것보다 하는게 낫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성균관의 명절 예법 간소화의견은, 강행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점차적으로 의견절충해서, 문중.가족별로 조정하면 될것입니다. 또한 법규나 경전에 규정된게 아니면, 모든 예법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관계기관들의 연구하에, 조절해서 수용할수도 있습니다. 2]. 유교 경전인 禮記로 천신(天神), 지신(地神), 일신(日神) 및 추석의 月神 숭배등 제사를 살펴보고 역사적 과정을 알아봄. 1). 유교 경전인 예기에 나오는 달에 제사하는 내용이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 정월대보름과 중추절등에 달맞이등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天神, 地神, 사철의 신, 한서(寒暑)의 신, 해의 신, 달의 신, 별의 신, 가뭄의 신, 사방의 신등에 제사지내는 예기 제법(祭法)의 설명. 다음은 유교경전인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다 음 - 燔柴於泰壇祭天也 瘞埋於泰折祭地也 用騂犢 埋少牢於泰昭祭時也 祖迎於坎壇祭寒暑也 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幽宗祭星也 雩宗祭水旱也 四坎壇祭四方也 山林川谷丘陵能出雲爲風雨見怪物皆曰神 ... 나무를 단위에 쌓고 그 위에 옥(玉)과 생(牲)을 놓고서 함께 태워 그 기(氣)로 하여금 하늘에 이름게 함은, 천신(天神)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또 비단과 생을 단상에 파묻는것은 지신(地神)을 제사지내는 법인데, 이 때 그 생은 다 같이 성독(騂犢)을 쓴다. 소뢰를 태소에 파묻는것은 사철의 신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감단에 송영(送迎)하는 것은 한서(寒暑)의 신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왕궁(王宮)에서는 해의 신을 제사지내고 야명(夜明)에서는 달의 신을 제사지내고 유영에서는 별의 신을 제사지내고 우영에서는 가뭄을 제사지내고 사감단에서는 사방의 신을 제사지내는 것이다. 산림.천곡.구릉으로서 능히 구름을 일으키고 비바람을 이루며 괴이한 현상을 나타내는 것을 모두 신(사방의 신)이라고 한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위에서 유념해 둘 것은 유교의 전통적 다신교(多神敎) 측면입니다. 최고신인 天(太極과 연계된 天)을 중심으로, 그 하위에 지신, 사철의 신, 한서(寒暑)의 신, 해의 신, 달의 신, 별의 신, 가뭄의 신, 사방의 신, 조상신등을 숭배해 온 유교 제의가 수천년 전통입니다.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 행할수 없던 여러가지 괴이한 현상을 나타내는 것을 모두 신(사방의 신)으로 보았던 전통적 다신교적 유교의 신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게 유교입니다. . 필자 주 2). 위에서 日月神에 제사하던 祭法은 殷나라때 생겨서 후대에 天子제도로 확고한 정착이 되기 이전에 생긴 제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써 놓은 한문 문장(禮記 祭法)으로 보면 그 당시는 殷나라 天子가 아닌 殷仁으로, 周人으로 제사하던 祭天儀式, 日月神 숭배전통이 있었습니다. 이 제사가 변형 유지되어 중국 일부지방이나 殷나라 왕족 箕子의 후손으로 언급되는 箕準王의 선조 및 부여(殷正月의 曆法으로 祭天儀式인 영고를 지냄), 삼한(상달제.시월제), 고구려(동맹), 예(무천), 백제의 교천, 신라의 日月神 제사, 고려의 제천의식등으로 이어졌겠지요. 天子제도가 생긴 이후 중국 사람들이 보기에 고대 한국인들이 함부로 사당등을 지어 제사하는걸로 보여졌다면(당서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풍속에는 함부로 만든 사당이 많은바 라고 기록), 天子제도의 확고한 형성으로 天子의 제사와 諸侯의 제사, 士大夫 제사, 庶人의 제사를 구분하기 이전에 형성된 중국일부지방.한국일부지방의 풍속들이 그렇게 전승되니까 그 후에 생긴 天子부터 庶人까지의 제사법 구분으로 판단하여 함부로 사당을 짓는다고 기록했겠지만 그 당시는 중국이 고대 한국을 제지하고 그러던 시대는 아니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원나라를 거치면서 국자감 개칭등 그런 天子國 주장이 강해졌고,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을 天子國으로 확실히 대우해 주면서 조선 초기에 제천의식이 폐지되고 고종때 부활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여하튼 역사적으로 부조리할수도 있는(후세 사람이 보기에) 관습이 허용되어도 중국 天子와 海東天子(한국의 天子)는 급이 다릅니다. 有虞氏禘黃帝而郊嚳 祖顓頊而宗堯 夏后氏亦禘黃帝而郊鯀 祖顓頊而宗禹 殷人禘嚳而郊冥 祖契而宗湯 周人禘嚳而郊稷 祖文王而宗武王. 燔柴於泰壇祭天也 瘞埋於泰折祭地也 ........... 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 필자 주 3). 위의 祭法관련 작자인 전금과 후세 학자의 설에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어느 것이 결정적으로 옳은지에 대해 학자들간에 이론이 많다고 예기 譯解者(권오돈/발행처 홍신문화사/2003.10.30 발행)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 필자 주 4). 전금에 대한 설명. 중국 역대 인명사전(2010.1.20/이회문화사)에 의함. 展禽.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 대부(大夫)를 지냈다. 성은 전(展)씨고, 이름은 획(獲)이며, 자는 금(禽)이다. 유하(柳下)는 식읍(食邑)의 이름이고, 혜(惠)는 시호다. . 필자 주 5). 殷周때 생긴 천자제도로 사람들을 강제하기전 일반 백성이 日月星辰을 우러르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日月星辰 숭배 풍속이 天子제도 확립후 생긴 새로운 숭배풍속이라 하면 그 신분에 따라 의관을 정제하고,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하는게 옳겠습니다. 그러나 天子제도의 강제전에 확립된 관습으로 月神을 바라보며 단지 소원을 비는것에 대해서는 祭法에 어긋난다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의 달맞이 풍속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단지 달맞이라는 소원비는 의례로 달맞이 하는것은 그대로 전승되어야 하겠습니다. 3). 우리 유교국 한국인들은 중단하지 말고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달맞이를 행해도 됩니다. 제천의식은 황사손이 별도로 하고 계시는데, 일반인들은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행사를 하는게 가장 옳고 일반적입니다. 일월성신을 民(백성)이 우러러보는 禮記 제법의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及夫日月星辰 民所瞻仰也 山林川谷丘陵 民所取財用也 非此族也 不在祀典....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3]. 추석(中秋節.仲秋節,秋夕)에 대한 두산백과의 설명. ‘중추’라는 말은 《주례(周禮)》에 가장 처음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 고대 왕들은 음력 8월 15일 달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1년 4계절(3개월)을 1개월씩(孟 혹은 初,仲,季) 나누었는데, 음력 8월 15일은 가을의 중간인 '중추(仲秋)'라 하였다. 이것에 착안해 8월 15일 달에 제사 지내는 날을 중추절(仲秋節 혹은 中秋節)이라고도 불렀다. 이 외에도 ‘팔월에 행하는 행사’라 해서 팔월절(八月節) 혹은 팔월회(八月會)라고 부르기도 했고,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라는 뜻을 따 단원절(團圓節)이라 부르기도 했다. .출처:중추절[zhong qiu jie, 中秋节] (두산백과) . 필자 주 6). 달맞이는 유교에만 있는 고유 의식이므로, 그 성격에 충실하여 뒷동산등이나 보름달이 잘 보이는 장소에 올라 달맞이 하면 될것입니다. 굳이 높은 산에 오를 필요는 없으며 불교가 결합된 일본 양력 추석(오봉)의 영향을 잘못 받은 사람도 있을것인데, 절등에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불교는 창조주보다 부처가 더 높게 대우받는 존재이며, 無君無父의 금수라 배척받아와서 유교의 조상제사나 유교의 달맞이등을 불교시설이나 불교인등과 결부시켜서 행하면 않됩니다. 4]. 유교권 공통名節인 中秋節.仲秋節(秋夕)날은 가까운 뒷동산이나 언덕등에 올라 月神(달님)을 향해 각자의 소원을 빌며 달맞이를 하는 날입니다. 한국에서의 달맞이는 대보름 달맞이와 추석 달맞이가 대표적 의례행위입니다. 달맞이(추석) 정의 추석날 저녁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거나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 내용 추석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보름달을 보면 좋다고 하여 마을 뒷산이나 높은 곳에 오르기도 하고 혹은 마당에서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도 하며 달의 모양을 봐서 풍흉을 점친다. 중국 남송(南宋)시대 맹원로(孟元老)의 저서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중추날 밤에는 대문을 장식하고 술자리를 마련하여 달맞이를 하는데 풍악소리가 밤새도록 끊이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3 「열전(列傳)」 김유신조(金庾信條)에 “8월 보름에 왕이 월성(月城) 산 위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며 시종관들과 함께 주연을 베풀고 즐겼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성종실록(成宗實錄)』 성종 20년(1489) 8월조에 “옛 사람들이 추석에 달구경한 것이 어찌 황음(荒淫)하여 그러하였겠는가? 오늘 저녁에 경연 당상(經筵堂上)과 출직(出直)한 승지(承旨)·주서(注書)와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에게 주악(酒樂)을 내려 청량(淸凉)한 곳을 가려서 태평의 날을 즐기게 하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 후기 조재삼(趙在三)의 저서 『송남잡지(松南雜識)』 「세시류(歲時類)」 시월잉태조(視月孕胎條)에는 “쇄쇄록(瑣碎錄)에 이르기를, 날이 흐리거나 구름이 있어 추석 달이 보이지 않으면 토끼가 새끼를 배지 못하고 개구리가 알을 낳지 못하며 또 메밀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지역사례 추석날 달맞이는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풍속이다. 전남 지역에서는 달을 보고 절을 하면서 소원을 빌기도 하고, 남보다 먼저 달을 보게 되면 아들을 낳게 된다고 하여 아들이 없는 집의 사람이 먼저 달을 보도록 양보하기도 한다. 충남 지역에서는 추석날 달이 잘 보여야 보리농사가 잘 된다고 여기며, 횃불과 짚을 준비하여 달이 떠오르면 짚에 불을 붙여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 해안 지역에서는 달이 밝고 둥글면 가을 어장이 좋다고 여긴다. 부산 지역에서는 추석날 보름달이 희고 밝으면 이듬해 물이 흔해 풍년이 들고, 달이 붉으면 가물어서 이듬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한 달의 서쪽이 이지러져 있으면 서쪽에 있는 마을에 흉년이 들고, 동쪽이 이지러져 있으면 동쪽에 있는 마을에 흉년이 든다고 한다. 서울 지역에서는 추석에 달이 보이지 않으면 개구리가 알을 배지 못하고 토끼도 새끼를 배지 못하며, 메밀도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속신이 있다. 또 이날 높은 산에 올라가 달에 절을 하고 남보다 먼저 달을 보면 첫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도 한다. 의의 추석에 달맞이를 하는 행위는 달을 소생의 상징물 또는 생명력의 상징물로 여기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정월대보름과 더불어 일년 중 가장 밝고 둥근 달이 뜨는 추석에 달맞이를 함으로써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고, 내년 농사의 풍작과 못다 이룬 소망을 기원하는 것이다. . 출처: 달맞이(추석)(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추석 달맞이는 마당.누각에서 해도 月神(달님)은 소원을 빌도록 허용하고 계십니다. 본인좋으라고 하는것이니까 온국민 모두 달맞이를 하면 좋겠습니다. 5]. 추석(中秋節.仲秋節,秋夕)에 대한 베이징관광국의 설명. 중추제(中秋节,zhōng qiū jié,중추절) 소개 추석(中秋节, 중추절)은 음력으로 8월15일로, 한해의 중간쯤에 있어 중추라고도 불리우게 되었다. 추석은 중국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음력설 다음으로 중요한 명절이기도 하다. 해마다 추석이면 중국 사람들은 집에 모여앉아 월병과 과일 등을 차려놓고 먹으면서 달구경을 한다. 월병은 소를 넣은 원형의 다과로서 모임을 상징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월병을 서로 선물하기도 한다. ◇ 중국의 추석, 중추절의 유래 추석의 유래는 일반적으로 상아분월(嫦娥奔月)의 전설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다만 내용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존재한다. 아래는 그중 일반적인 이야기 중 하나이다. 아주 먼 옛날에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나타나서 대지를 아주 뜨겁게 불태우고 바닷물을 고갈시켜 백성들은 살아갈 도리가 없었다. 이 일은 후예(后羿)라는 영웅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는 곤륜산(昆侖山) 정상에 올라가 신궁(神弓)으로 나머지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고 백성들을 재난에서 구제했다. 얼마 후 후예는 상아(嫦娥)라는 미인을 아내로 얻었다. 하루는 후예가 친구를 찾으러 곤륜산에 갔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서왕모(西王母)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때 후예는 서왕모에게서 "불사약(不死藥)"을 얻었다. 이 약은 복용하면 즉시에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약이었다. 후예는 아내를 홀로 남겨둔채 승천할 수 없었기에 그 약을 아내 상아에게 잘 보관해두라고 주었다. 이 일을 뜻밖에도 후예의 식객이었던 봉몽(蓬蒙)이 알게 되었다. 봉몽은 후예가 외출한 틈을 타서 상아에게 그 불사약을 내어놓아라고 협박하였다. 상아는 봉몽의 적수가 되지 못한 것을 알고 그만 그 불사약을 입에 삼켜 버렸다. 상아는 그 약을 삼킨 후에 곧바로 몸이 땅에서 멀어지더니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상아는 하늘로 올라가면서 얼마나 남편을 그리워하였든지 더 이상 날아 올라가지 못하고 인간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달에 떨어져 선녀가 되었다. 후예가 집으로 돌아온 후 시녀들이 모든 사실을 울면서 말해줬다. 슬픔을 억누르지 못한 후예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그날밤은 달이 유난히도 둥글고 밝았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상아와 똑같이 생긴 흔들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후예는 급히 제상을 내어와 상아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과 과일을 그 위에 차려놓고 월궁(月宮)에 있는 상아에게 제사를 지냈다. 백성들도 상아가 신선이 되어 달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달 아래 제상을 차려서 상아에게 행복을 빌었다. 이때부터 민간에서는 중추절에 달에게 절하는 풍습이 전해지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 추석의 전통 풍습 중국의 주요 추석행사로는 달구경, 월병먹기, 조수보기, 등불구경 등이 있다. 음력 8월 15일의 달은 여느 때보다도 맑고 둥글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중추절을 일명 월석, 팔월절이라고 한다. 이날 쟁반같이 둥근달을 보는 것은 추석의 빼놓을 수 풍습이다. 또 멀리 타향에서 고향 부모님과 친척에 대한 그리움을 달구경을 하면서 달래기도 한다. 중국의 고대기재에 따르면 추석때에는 석월(夕月)이라는 제월제도 있었는데 바로 달신에게 제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주나라때에 와서는 추석밤이면 제월제를 지냈는데 제사상에는 월병, 수박, 사과, 붉은 대추, 배, 포도 등이 제물로 올랐다고 한다. 이중에서 특히 월병과 수박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제물이었다고 한다. 수박은 또 꼭 연꽃모양으로 쪼개놓아야 했다는 설도 있다. 달빛아래서 온 가족이 함께 촛불을 밝히고 일일이 달신에게 제를 지낸 후 가족의 주부는 월병을 썰었다고 하는데, 집에 있든지 타향에 있든지를 막론하고 온 가족 성원의 숫자를 세어서 그 숫자대로 꼭 같게 월병을 썰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풍속이 이미 사라지고, 온 가족이 단란히 모여서 월병을 먹는 것으로 즐거운 명절의 한때를 보낸다. 또한 등불구경은 중국의 강남일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풍습이다. 이곳에서는 추석을 십여일 앞두고 참대로 등불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등불에 과일, 새나 짐승, 물고기나 벌레 등을 새기거나 중추절 축하메세지 같은 것을 새겨 넣는다. 등불의 색깔 또한 가지각색인데 추석밤이면 긴 참대에 등불을 걸어 집의 처마나 베란다에 걸어둔다. 때로는 작은 등불 여러개로 글자를 새기거나 각종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정월대보름의 등불놀이에 이어 중추절의 등불놀이 또한 그 규모가 상당하다. .출처: 베이징관광국 한글 공식사이트.2013-09-11 6]. 유교 경전이 아닌 시중의 풍속으로 인식해보는 중추절의 유래에 대한 다른 해석 중추절의 기원과 관련해 전해지는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하나는 다음과 같다. 아주 오랜 옛날 하늘에 태양이 열 개가 떠 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1년내내 뜨거운 태양이 작열해 땅이 갈라지고, 모든 작물이 메말라 죽는 등 인간들이 고통에 허덕였다. 고통 받는 인간들의 모습을 본 하늘의 제왕이 더 이상 이를 방치하면 안되겠다 싶어 활을 잘 쏘기로 정평이 난 호우이[後羿]를 불러 9개의 태양을 활로 쏴 떨어뜨리고 하나만 남겨두라고 하였다. 호우이는 명령대로 9개의 태양을 떨어뜨려 인간세상을 구하고, 영웅이 된다. 그 후 호우이는 창어[嫦娥]라는 예쁜 부인도 얻고 인간세상을 구한 영웅으로 추앙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활을 잘 쏘는 호우이는 사냥을 매우 즐겼는데 하루는 사냥을 하러 쿤룬산[崑崙山]에 갔다가 우연히 서왕모(西王母, 신화 속의 여신으로 곤륜산에 살며 불로장생의 선도(仙桃)를 키웠다고 전해짐)를 만나게 된다. 호우이는 서왕모로부터 먹으면 하늘로 승천해 신선이 될 수 있는 신비의 묘약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인 창어를 두고 혼자 하늘로 올라갈 수 없었던 호우이는 신비의 약을 창어에게 맡겨두었다. 이 때 호우이의 부하 중 한명인 펑멍(蓬蒙)이 이 사실을 알고 약을 훔칠 기회만를 노리고 있었다. 하루는 호우이가 부하들을 모두 이끌고 사냥을 나가는 날이었다. 펑멍은 이 기회를 틈타 약을 훔치기 위해 창어의 방으로 들어갔다. 놀란 창어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하다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펑멍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그 자리에서 신비의 묘약을 꺼내 삼켜버렸다. 그러자 창어의 몸이 하늘로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남편을 홀로 두고 갈 수밖에 없었던 창어는 인간세상에서 가장 가깝다는 달에 남아 남편을 그리며 살게 되었다. 한편 사냥에서 돌아온 호우이는 시녀로부터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가슴 아파하며 통곡하였다. 그 날 이후 호우이는 달에서 창어가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내가 좋아하던 뒷정원에 제사상을 차려 향초를 꽂고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사람들도 8월 15일 불쌍한 창어가 달에서 무사 평안하게 지내길 기도하는 제사를 치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의 중추절 명절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출처: 중추절[zhong qiu jie, 中秋节] (두산백과) . 필자 주 7). 두산백과에 나오는 중추절의 유래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 다 음 -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사람들도 8월 15일 불쌍한 창어가 달에서 무사 평안하게 지내길 기도하는 제사를 치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의 중추절 명절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필자가 정리하면 중국 시중에서 전하는 속설중 하나가 호우이[後羿]의 아내 창어[嫦娥]가, 달에서 무사 평안하게 지내길 기도하는 제사를 치르기 시작해서 중추절의 유래가 되었다는 또다른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시중에서 전하는 속설로만 의미가 있는 것이며, 유교 경전으로 볼 때는 천(天, 하늘), 태양(日), 달(月)을 숭배하여 제사지내던 전통에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고대 중국의 왕들이 음력 8월 16일에 달에게 제사지내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두산백과의 중추절 설명에 잘 나타납니다. - 다 음 - ‘중추’라는 말은 《주례(周禮)》에 가장 처음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 고대 왕들은 음력 8월 15일 달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1년 4계절(3개월)을 1개월씩(孟 혹은 初,仲,季) 나누었는데, 음력 8월 15일은 가을의 중간인 '중추(仲秋)'라 하였다. 이것에 착안해 8월 15일 달에 제사 지내는 날을 중추절(仲秋節 혹은 中秋節)이라고도 불렀다... 7]. 추석(仲秋節,秋夕)에 대한 한국세시풍속사전의 설명. 중추절[ 仲秋節 ] 정의 중추(仲秋)는 가을 석 달 중에 중간 달을 의미하고 절(節)은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인 한가위를 이르는 말로 음력 8월을 달리 부르는 말. 일년 열두 달을 사계절로 나누어 1~3월을 춘(春), 4~6월을 하(夏), 7~9월을 추(秋), 10~12월을 동(冬)이라 하고, 각 계절에 속한 석 달을 나누어 첫 달을 초(初) 혹은 맹(孟), 두 번째 달을 중(仲), 마지막 달을 모(暮) 또는 만(晩), 계(季)라고 한다. 내용 『여씨춘추(呂氏春秋)』 「중추기(仲秋紀)」에 “중추의 달에 해는 각수(角宿)에 있으며, 저녁에는 견우[牽牛, 牛宿]가 남중하고 새벽에는 자휴[觜觿, 觜宿]가 남중한다.…… 거센 바람이 불고 기러기가 오며 제비는 돌아가고 새들은 좋은 먹이를 갈무리한다(仲秋之月 日在角 昏牽牛中 旦觜觿中…… 盲風至 鴻雁來 玄鳥歸 群鳥養羞……).”라고 하였다. .출처:중추절 [仲秋節]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8].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추석에 대하여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추석을 명절로 삼은 것은 이미 삼국시대 초기이었으니,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 한가위 날까지 한 달 동안 두레 삼 삼기를 하였다. 마지막 날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턱을 내고 <회소곡 會蘇曲>을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9]. 삼국사기는 8월 15일(음력)의 추석과 관련하여 회소곡과 결부하여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三國史記 卷 第一 新羅本紀 第一(儒理尼師今) 九年(西紀 三十二) …王旣定六部 中分爲二 使王女二人 各率部內女子 分朋造黨 自秋七月旣望 每日早集大部之庭績麻 乙夜而罷 至八月十五日 考其功之多小 負者置酒食 以謝勝者 於是 歌舞百戱皆作 謂之嘉俳 是時 負家一女子 起舞嘆曰 “會蘇 會蘇” 其音哀雅 後人因其聲而作歌 名會蘇曲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유리 이사금) 9년(서기 32) …왕이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반씩 둘로 나누어 왕의 딸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部) 안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나누어 편을 짜서 가을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큰 부[部]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도록 하여 밤 10시경에 그치는데,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적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진 편은 술과 음식을 차려서 이긴 편에게 사례하였다. 이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모두 행하는데 그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탄식해 말하기를 “회소 회소(會蘇)”라고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아름다워 후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서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이름하였다. 출처 : 정구복 외 4인, 역주 삼국사기, 한국학중앙연구원 10]. 한국에 종교주권 없는 일본 강점기 포교종교들의 임의적인 해석에 의해 조상제사나 차례를 기피하는 시도가 발생하여 왔었는데, 불교,기독교는 원래부터 조상제사와는 관계없어서 그런 현상이 생기는것 같습니다. 세계종교중에서는 황하문명의 유교가 가장 오래된 종교중 하나지만, 서양의 로마 가톨릭은 그 교세가 현대에는 가장 큰 종교인데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측면에서는 상호 통하는 종교임은 분명합니다. 불교는 無神論的 경향으로 부처가 창조부보다 높게 책정되는 점이 창조주 중심.神중심의 유교.기독교.이슬람교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불교는 조상제사와 관계없는 無君無父라는게 유교측 전통 입장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어도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므로, 한국은 유교국입니다. 11]. 한편, 조선성명 복구령등에 의해 한국은 전 국민이 한문성씨와 本貫을 사용하는 유교도의 나라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일본 총독부령 83호에 의해 강제 포교된 강점기 포교종교인 일본 신도, 불교, 기독교(개신교가 대부분, 가톨릭 한두개 성당)는 한국에 종교주권은 없지만, 종교의 자유는 있습니다. [4]. 을사조약은 무효라는 고종황제의 주장은, 그 당시에도 강대국인 프랑스 국제법학자 프란시스 레이교수의 견해에 그대로 반영되어, 그 당시부터 을사조약은 무효라는 국제법상의 판례같은 역할(강대국의 저명한 국제법학자의 견해는 국제관습법으로도 적용될 수 있음)로 유효하였습니다. 을사조약은 무효(따라서 강제적인 상황에서 체결된 한일병합도 무효가 되는 논리)라는 고종황제의 주장은, 결국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반영되어,임시정부는 을사조약.한일병합등 불평등 조약은 무효라 하였고, 대일선전포고까지 하였는데, 카이로선언이후 프랑스.구 소련. 폴란드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하여서, 미군정이 한국 현지에서 국제법판례로 삼을만한 자격이 성립되었으며, 미군정의 의지와는 별도로, 국제법적 자격을 형식적으로 가지고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이기도 하였습니다. 고종의 을사조약무효 주장은 나중에 UN국제법위원회에도 그대로 채택되었습니다. 국가원수들이 합의한 포츠담선언에 따라 일본과 경성제대 및 기타 일제강점기 학교들의, 주권이 없는 상태에서, 미군정당시, 하위법인 미군정 법률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대학이던 성균관(성균관대로 성균관장이 미군정에 등록)에 하위법(경성제대를 서울대로 하고, 성균관 앞에 쓰고, 다시 서울대를 국립대로 하겠다는 발표)으로 상위법에 대항하면 이길수 있겠다는, 발상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며, 그 당시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에도 위배되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을사조약.한일병합등 무효, 대일선전포고)의 대일선전포고문과도 어긋나서, 아무런 법적 자격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헌헌법과, 1988년 2월 25일 시행된 현행헌법 前文에도 임시정부가 반영되어,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를 이길수 없는 상태로 이어져왔습니다.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이보다 자격없는 추종세력들)가, 주권이 없는데, 어떻게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를 대중언론과 나중에 새로 생긴 사설 입시지.사설 입시학원 자료로 이기려고 해왔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임시정부가 대일선전포고까지 하지 않았습니까?@2차대전 이후의 한국내 대학질서는 아주 중요합니다. 국제법,헌법,한국사, 세계사, 국가주권의 상위 기준으로 대학 학벌을 확실히 정립하는게 正道입니다.포츠담선언 제8항에서는 「카이로 선언」의 조항은 이행되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일본의 주권은 혼슈(本州), 홋카이도(北海道), 큐슈(九州) 및 시코구(四國)와 함께 연합국이 결정하는 여러 작은 섬들에 한정된다고 규정했습니다. 해방이후 미군정부터,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 僧(히로히토, 아키히토, 나루히토등,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패전국奴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僧이 세운 마당쇠 불교 Monkey). 그 뒤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의 비신분제 대학들.해방당시 미군정부터, 상위법은 승전국 국가원수들이 모여 발표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이 국제법으로 상위법 역할을 하고, 미군정령은 하위법이라, 상위법 우선의 원칙으로,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조선.대한제국에는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으로 성균관 하나밖에 없던 나라였음.@미군정령보다 상위법인 카이로선언 내용입니다. "또한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될 것이다". 폭력과 탐욕으로 조선.대한제국을 약탈하여, 불법.강제로 경성제대를 설립하였기 때문에, 하위법인 미군정령으로,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바꾸었어도, 한국 영토에 주권이 없으며, 또한 카이로선언에 따라, 한국영토에서 축출(제명,폐지)해야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일 뿐입니다. 그리고 상위법인 카이로선언에서, 일본에 대해 잔인한 적(brutal enemies)이란 표현을 사용해서, 적국 잔재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어떠한 하위법으로 포장해도,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없는, 적국 일본 잔재일뿐입니다. 미군정에 등용된, 한국내 일제 추종, 한국인 교육 정책 실무자들의,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각색작업에도 불구하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 영토에서 축출시켜야 될(expelled), 적국 일본 잔재일 뿐입니다. 추가적으로 설명합니다. 미군정령보다 상위법인 카이로선언 내용입니다. "또한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될 것이다". 이 문구는, 한국에서, 불법.강제의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라는 국제법적 합법성도, 연합국 국가원수들이 수용한것에 해당됩니다. 필자는 성균관대 1983학번 윤진한(宮 儒)입니다.고종후손 황사손(이원)을, 대한제국 복구의 정점으로 하여, 궁 성균관대 임금(成皇.윤진한. 1962년생. 1983학번. 승전국 미국 선교사가 세운 기독교 고등학교 전주 신흥고 출신)과 어서강대 임금(西王. 서강대 사학과 출신 서진교 교수. 필자의 고교 동창생. 이전에 서강대 기록보존소에서 근무)의 대학 학벌을 장기적인 법률제정의 목표로 삼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3528462438 [5]. 문중과 가족 회의를 거쳐, 알맞게 차리시고, 차례지내시고, 성묘하십시오. 그리고 추석 달맞이는, 대보름처럼, 일반인들이 달님을 향해 소원을 비는 몇 번 없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되신 天)께서는 해.달.별 및 우주만물, 그리고 하늘(하느님)의 기품을 닮은 인간(하느님의 기품과 땅의 형상에서 이루어짐)을 창조(시경:天生蒸民)하셨습니다. 그 이후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사냥.수렵.농사를 짓게되는데, 절대적인 초월자이신 하느님의 존재를 다시 상기하고, 질병.죽음.자연재해.배고픔.맹수의 공격등에 시달리며, 절대적인 초월자이신 하느님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면서, 이를 체계적으로 이론화하여 제사.기도의 과정을 거치며, 문자를 발명한 이후에는 유교 경전인 오경과 사서를 만들어 내고, 수천년동안 동아시아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현재도 십수억명 동아시아 유교도들은 하느님(天).神明.조상신을 숭배하며, 오제(五帝), 요.순.우.탕.문.무.주공 같은 성인의 가르침과 공자님의 가르침을 계승하며,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성인임금 공자님께서는, 하느님(天,하늘), 神明, 조상신을 숭배하는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의 도리를, 정제되지 않은 초기 상태에서, 天命.天德을 받으시고, 혼동과 갈등상태에서, 하느님을 떠나 살 수 없는 피조물 인간의 자기진단을 거쳐, 품위있는 인간의 상태로 계승하시고 발전시키신 것입니다. 유교의 하느님(天)이 창조하신 피조물 인간(시경:天生蒸民)은, 유교의 수많은 제사, 명절,교육, 하느님의 품성을 교육받은 많은 인간들의, 의지와 품성으로, 여러 제도와 의식속에, 하느님(天)께서 창조하신 우주와 지구의 영역에서, 피조물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부처는 창조신을 부정하고, 창조신보다 높다고 한 Monkey류에 불과합니다.그래서 브라만을 숭배하던 인도에서 다시 배척받게 된것입니다.@수천년 세계종교인 유교는 중국,한국, 베트남, 몽고,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 전세계 화교등을 합하며 십수억명의 유교신자가 존재합니다. 중국은 춘절(설날), 청명절(한식), 단오절, 중추절(추석)의 유교문화 4대 전통명절을 공휴일을 아주 길게 하여, 전통을 유지하는 정책을 취하였습니다. 수천년 세계종교 가톨릭은 서유럽, 중남미,필리핀과 전세계에 걸쳐 십수억명의 신자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불교는 일본과 동남아에 걸쳐 몇억명. ​ @불교는 Chimpanzee 과 부처가 기존의 브라만교에 대항해, 부처가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주장하다, 인도에서 다시 불교배격(불가촉천민으로 배척) 천 몇백년 이어짐. 패전국 일본 불교Monkey나라는 성씨없는 점쇠賤民(신생 천황)이 하느님.예수보다 높다고 강점기에 신부겁주고 목사 고문.구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성씨없는 천민 점쇠가 세운 마당쇠賤民에 불교 Monkey족.@불교는 발상지인 인도에서, 천 몇백년동안 브라만교의 힌두교신앙에 의해 소멸되다시피 배척받아옴.페르시아 불교도 소멸되고, 아프카니스탄등의 불교도 소멸상태로 배척받고 있음. 동아시아에서는 변변한 교육기관도 없이 무군무부의 금수라 하여 산속에서나 머물러야 하는 외래종교로 살아왔습니다.불교는 강대국이 아니며, 패전국인 일본,태국및 동남아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 신앙.@중요한건 하느님.창조자를 숭배하느냐 하지 않느냐입니다.하느님을 숭배하는 종교는 수천년간 유교와 로마가톨릭(후세에 항거자로 불리는 Protestant의 개신교도, 현재는 기독교의 광의의 개념에서 이해됨)입니다. 황하문명에서 이어진 유교는 그 始原性에 의해, 하느님.神明.조상신을 숭배하는 다신교적 특성이 있어왔는데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의 세계종교가 되었습니다.@유교는 중국, 한국, 베트남,몽고, 2차대전후의 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전세계 화교등에 걸쳐 십수억명의 유교신자가 존재합니다. 고대부터의 수천년 세계종교인 로마가톨릭도 서유럽,중남미.필리핀 및 타국가에 걸쳐 십수억명의 신자가 있습니다. 불교는 하느님과 창조신을 부정하는 침팬치과의 고대 세계종교인데, 인도 아소카왕때 적극적인 포교로 여러나라에 선교하였지만, 대부분 배척받으며 변두리 하부신앙으로 이어지거나, 소멸되어버렸습니다.인도에서는, 천 몇백년동안 브라만교의 힌두교신앙에 의해 소멸되다시피 배척받아옴.페르시아 불교도 소멸되고, 아프카니스탄등의 불교도 소멸상태로 배척받고 있음. 동아시아에서는 변변한 교육기관도 없이 무군무부의 금수라 하여 산속에서나 머물러야 하는 외래종교로 살아왔습니다. @불법 일제 강점기에, 불교국가 일본의 만행으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 한국 유교는, 일본에 의해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오도되어, 수난을 겪다가, 해방이후 유교국가로 복구되었는데, 1980년대 중반부터, 불교 Monkey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및 그 추종세력, 각종 왜구학교 잔재들이, 다시 회복된 유교를 향해 시중의 루머.야담등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때 조선성명 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으로 복구되었습니다. 5,000만이 유교 명절, 제사, 유교식 이름, 학교의 유교중심교육, 24절기를 쇠며, 살아가는 유교국가일뿐, 무교는 없습니다. 무교란게 도대체 무슨 개념인지 모르겠습니다. 주권없이 일제 강점기 사고방식을 최근 다시 재현하는것으로 보입니다.시중 루머나, 포탈에서 유명인 소수를 대상으로, 무교로 편집하는 작업을 내세우며, 무교라는 용어를 보급시키려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 * 이 글은 비영리적이며, 유교권(중국.한국.베트남.대만.싱가포르등 전세계 십수억명 유교신도)의 공통명절인 중추절(추석)에 대해, 다른나라와 비교하며 다시 한번 되짚어보자는 종교이해적 차원의 공익적인 글로 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