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8일 수요일

해방 직후 한국어와 한국사 교육을 재개하게 된 구체적인 근거는 1945년 9월 미군정청 학무국(현 교육부)에서 발표한 「일반명령 제4호」와 이에 따른 「교과목 편제와 시간 배당표」입니다.

1]. 해방 직후 한국어와 한국사 교육을 재개하게 된 구체적인 근거는 1945년 9월 미군정청 학무국(현 교육부)에서 발표한 「일반명령 제4호」와 이에 따른 「교과목 편제와 시간 배당표」입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반명령 제4호 (1945년 9월 17일 발표): '신조선인의 조선인 교육'을 표방하며 일제 식민지 교육 체제를 타파하고, 모든 학교에서 교수 용어를 한국어로 전환하도록 명시했습니다. 교육과정 재개: 이 명령에 근거하여 1945년 9월 24일부터 국민학교(초등학교)가, 1945년 10월 1일부터는 중등학교(중·고등학교)가 재개교하며 국어(한국어)와 국사(한국사) 교육이 공식적으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2]. 주권.학벌없는 패전국.전범국 불교 Monkey일본이 만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으로 형성된 노비들이 대학교 짓 하고 싶다고,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 약탈은 악착같이 하는 보도기사들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주권없는 패전국 일본잔재이자 UN적국.전범국 잔재로 주권없이 남은 테러집단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부하노비들의 약탈행동은 인정않됨. 국가원수들의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 일본이 항복 서명)에 따라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폐지시켜야 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각종 초급대출신 대학교들인데, 하위법령으로 왕립대학(대한제국 皇대학, 해방후, 국사 성균관자격 Royal사립대)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에 협박.저주.테러는 통하지 않음. 더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일선전포고(헌법전문 임시정부 정통성 승계 반영. 한일병합등 불평등조약 무효)하였는데, 한국에 항복도 않고 있고, 일제강점기 대중언론들과 그에서 비롯된 사설 입시지, 후발 대중언론, 각종 공사단체에 진출해,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와 유교만 테러한다고,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자격이 생기는건 절대 아님. 패전국.전범국.UN적국의 저주기술로 협박만 일삼는 일본. 일본잔재로 한국내 주권없고 폐지해야 할 각종 학교.단체로, 대중언론(신문.잡지.간행물, 방), 지하철등 교통수단 전파 테러, 마이크 소란, 시중의 외침, 테러지단의 주문등으로 저주하는 불교 Monkey 일본과 한국의 테러집단들. 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 僧(히로히토, 아키히토, 나루히토등,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패전국奴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僧이 세운 마당쇠 불교 Monkey). 그 뒤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 주권없는 패전국 일본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부하노비들의 약탈행동. 새로 하위 법령이나, 기준, 대중언론, 입시지 보도로 덤벼도 상위법.상위규범인 국제법,헌법,한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 세계사, 국가주권 못이깁니다. 국가원수들의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은, 하위법인 미군정법령에 우선함(상위법 우선의 원칙). 미군정때, 상위법으로는 주권.학벌없고 축출(폐지)해야 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였음. 그런데, 일본 유학 동경대 출신과 총독부 잔재공무원들을 재등용하니까, 교육정책에서, 주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중심 하위법 제정과, 국립 서울대 추진법안 제정, 이에 토대한 일제 잔재 대중언론 약탈을 보고, 새로운 부하노비들도 덩달아서, 정부부처 공무원,각종단체 담당자, 대중언론.군소신문 기자, 입시지, 학교 입시담당자라도 되면, 여기저기 뛰어들어, 일본가미가제 자살특공대식으로,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와 제사기구 성균관만 약탈하면 되는줄 알고, 이런 약탈. 일본이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 받아들여 항복한후, 일본의 모든 주권은 한국.대만.쿠릴열도등에 없고, 일본 잔재 학교와 강제 포교종교들은 축출(폐지)대상인데, 일본 강점기이후 한국이 무주공산이라도 되는줄 알고, 죽자살자 약탈하면 될것같지? 미군정이후, 제헌의회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한일병합등 불평등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 효력도 반영되고, 1988년 개정된 현행헌법 前文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통성 승계도 헌법 차원으로 반영되었음. 미군정때 가르친 국사 성균관(성균관장이 미군정에 성균관대로 대학 등록,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교육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4143797320

2026년 1월 19일 월요일

유교문화권의 24절기인 대한(大寒). 2026년 1월 20(음력 2025년 12월 2일)일부터 15일간은 대한절기입니다. 대한(大寒)은 다가오는 새해와 설날을 맞이하는 날로도 인식되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교문화권의 24절기인 대한(大寒). 2026년 1월 20(음력 2025년 12월 2일)일부터 15일간은 대한절기입니다. 대한(大寒)은 다가오는 새해와 설날을 맞이하는 날로도 인식되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26년 1월 20일은 음력으로 아직 을사년(乙巳年)임.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국가들. 중국,한국,베트남,몽고. 병오년(丙午年)은 2026년 2월 17일 설날(공통용어는 元日, 또는 元旦. 중국 춘절, 한국은 설, 베트남 뗏, 몽고 차강사르). 2차대전 이후의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중화권인 싱가포르 및 세계 각지의 화교등은 춘절(또는 元日,元旦)이후부터 병오년(丙午年)이며, 붉은 말의 해입니다. 중국 기준지역의 경우 대한(大寒)이 소한(小寒)보다 더 추워 대한때가 가장 춥다고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소한때가 대한때보더 더 춥다고 합니다. 대한(大寒)절기때는 유교에서 최고신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 다음의 하위신이신 오제[五帝. 다신교 전통의 유교에서 조상신 계열로 승천하여 최고신 하느님(天)다음의 하위신이 되심]중의 한분이신 겨울의 신 전욱(顓頊)께서 다스리는 절기입니다. 대한(大寒)은 다가오는 새해와 설날을 맞이하는 날로도 인식되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1].한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수용하는 정책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UN기준으로 중국의 대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일합니다. UN에서 중화민국이 탈퇴한것은,중화민국이 선택한 그 당시의 정책입니다. UN가입국이 아니던, 중화인민공화국의 외교적 압력은, 1971년 그 당시에 UN에서 성립될 수 없던 시기인데, UN탈퇴에 대한 책임은, 중화인민공화국에 책임이 있는게 아닙니다. 그 당시의 중화민국이 그렇게 탈퇴를 해서, UN과 여러 국제기구들도, UN 탈퇴이후의 대만을, 차이니스 타이페이로 호칭하고 있는것입니다. 그 당시 장개석 총통의 중화민극이 UN을 탈퇴한것은, 상당히 복잡할것인데, 필자가 보기에는, 스스로 탈퇴하여, 거대인구와 영토를 가진 중화인민공화국에, 강대국으로서의 漢族의 부흥을 양도한것으로도 이해합니다. 스스로 탈퇴의 길을 선택하지 읺았다면, 미국이나 미국의 영향권하에 있던 한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해오고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탈퇴한 UN이기 때문에, UN과 여러 국제기구의 방침을 따르는게, 한국이 선택해야 할 역사적 정당성의 길이라 판단합니다. 이 문제때문에, UN회원국들이, 중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을 반대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중화민국이 스스로 탈퇴를 해서, 중화인민공화국은 기존에 장개석 총통의 중화민국이 가지던, UN에서의 법적 자격과 정통성을 모두 승계한것에 해당됩니다. UN회원국이 아닌 국가들의 경우, 그 나라들의 선택은, 한국이 관여할 수 있는 재량권은 전혀 없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대만은 대표권문제를 계기로 1971년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되는 비극을 경험하였으나, 이후 기회가 되는대로 유엔회원국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2007년 천수이볜 총통 당시에는 국호를 타이완으로 표기하면서까지 유엔가입을 적극 추구하는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러한 대만의 노력은 유엔가입이 곧 독립국임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중국은 물론, 미국이나 주요 우방국들의 반대를 받았으며, 유엔 사무총장이던 반기문은 이를 반려하였다. 결국 대만은 2009년 9월 마잉주 총통이 17년간 추구해 왔던 유엔가입을 공식포기 한다고 선언함으로써 대만의 유엔가입문제는 일단락되었다 2]. 차이니스 타이페이가 공식 명칭인 국제기구들. 세계 여러나라들은, 올림픽이나 스포츠 행사에서 차이니스 타이페이로 호칭. *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FIFA. * 국제 경제 및 정치 기구 경제적 실체(Economy)로서의 지위를 강조하며 가입된 사례입니다. 가),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亞細亞太平洋經濟協力體):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APEC) 나), WTO (세계무역기구, 차이니스 타이페이는 국가가 아닌 '독립된 관세 영역' 자격),다).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라). WHO (세계보건기구)등. 3]. 한국 시사상식사전에의하면 대만의 인적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만 전체 인구의 약 98%는 한족(漢族)이며, 대륙에서 이주해온 한족(漢族)은 조기 이주자인 본성인(本省人)과 1949년 전후에 건너온 외성인(外省人)으로 나뉜다. 본성인(本省人)은 대만 본토 출신을 말하며 '대만인' 혹은 '번성런'이라고도 한다. 대만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며 국민당 정부가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건너오기 전부터 대만에서 거주하던 주민들이다. 외성인(外省人)은 중국 대륙 출신의 사람들을 말하며 '대륙인' 혹은 '와이성런'이라고도 한다. 외성인은 1949년 전후에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과 함께 본토(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다.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하자 대만은 1895년 이후부터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인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중국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했다. 그러나 중일전쟁 이후 국민당정부가 대만을 중화민국에 편입시키고 중국공산당과의 권력다툼에서 밀려 대만에 정착하면서 갈등과 대립이 시작되었다. 특히 국민당정부가 중국 본토에 거점을 두고 대만을 인수하려 노력 중이던 1947년 발생한 ‘2ㆍ28 사건’으로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국공 내전에서 패하고 대만으로 쫒겨온 국민당 정부가 1949년 중화민국를 세운 이후에도 본성인과 외성인의 갈등은 이어졌다. 게다가 외성인들이 교육ㆍ소득 수준이 높아 기득권층을 이루었고 외성인들은 상공업 도시가 많은 북부 쪽에, 내성인들은 농촌 지역인 남부 쪽에 많이 살고 있어 내성인과 외성인 간의 갈등은 계층ㆍ지역 갈등으로 악화되고 있다. 한편, 2000년 선거에서 민진당 후보로 나온 천수이볜(대만 남부 출신의 본성인)이 대만 총통에 당선되면서 지난 반세기동안 집권한 국민당을 밀어내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 출처: 대만 본성인/외성인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4]. UN에서 중화민국이 탈퇴한 과정. 국제연합(UN) 중국대표권 문제는 유엔에서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중 누구를 중국 대표 정부로 할 것인지를 놓고 발생한 문제이다. 1949년 국공내전으로 인해 중국이 두 정부로 분단되면서 유엔에서 중국대표권 문제가 야기되었다. 장제스의 중화민국과 중국본토를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 중 누가 중국의 대표권을 가질 것인가의 문제였다. 1971년까지 공산주의를 반대한 서방국가들에 의해 중화민국이 대표권을 가졌다. 그러나 1971년 10월 유엔 결의에 따라, 중화민국은 유엔에서 대표권을 잃고 탈퇴하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대표권을 얻게 되었다. 유엔에서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중 누구를 중국 대표 정부로 할 것인지를 놓고 발생한 문제. . 유엔 성립 후 중국은 줄곧 장제스의 국민당이 영도하는 중화민국 정부에 의해 대표되어 왔으나, 1949년 그 동안의 내전으로 중국이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되면서 사실상 중국대륙을 통치하는 중국공산당이 유엔에서 중국을 대표해야 한다는 문제가 야기되었다. 역사적 배경 1945년 유엔이 성립되면서 2차대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소련 등 5개국은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상임이사국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다가 1949년 국공내전으로 인해 중국이 두 정부로 분단되면서 유엔에서 중국대표권 문제가 야기되었다. 즉, 유엔 성립 후 줄곧 중국을 대표해 온 장제스의 국민당이 중국의 대표권을 가질 것인지, 아니면 중국본토를 차지한 신생 공산정권이 중국대표권을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경과 서방진영이 중심을 이루던 당시 유엔의 분위기는 비록 중화민국 정부가 본토의 난징에서 타이완의 타이베이로 옮겼어도, 중국대표권은 여전히 중화민국 정부에 있다고 해석하여 장제스의 중화민국 정부에게 중국대표권을 부여하였다. 이로 인해 마오쩌둥의 중국공산당이 이끌던 중화인민공화국은 미국 등 주요 유엔회원국의 결정에 따라 세계최대의 거대 인구를 가지고도 유엔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 문제 때문에 소련은 1950년 1월부터 유엔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며 한동안 유엔일정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대표권 문제가 최초로 유엔에서 공식 제기된 것은 1950년 제5차 유엔총회에서이다. 이때 인도는 중화인민공화국 공산당 정권에게 유엔의 대표자격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결의안을 제출했는데, 이 안은 미국 등의 반대에 부딪혀 33 대 16, 기권 10의 투표 결과로 폐기되었다. 이후 1951년(6차 총회)년부터 1960년(15차 총회) 사이에 중국대표권 문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한국전에 개입한 이유를 들어 미국이 이의 상정을 저지하는 바람에 유엔총회에서 공식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 그러나 총회 의제상정 제안, 자격심사위원회 회부(1952년), 회기 벽두에 예고없이 의사진행에 포함(1953∼1955년)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제기되었다. 이후 제16회 유엔총회가 개최되었던 1961년에 들어와 유엔에서 중국대표권은 소수의 중국인을 대표하는 대만이 아니라, 다수의 중국인이 살고 있는 중국본토여야 한다는 문제가 다시금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이 때 중국대표권 문제는 유엔에서 표결처리까지 갔으나, 이러한 중대한 문제는 ‘중요사항지정방식(重要事項指定方式)’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미국 등 서방국가들에 의한 대공산권 방지안에 의해 무산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중요사항지정방식이란 ‘중국대표권의 교체’에 관한 결의는 구성국의 3분의 2의 다수를 요구하는 중요사항(헌장 18조)이라는 결의안을 먼저 과반수로 가결시킨 다음, 중화인민공화국의 대표권을 3분의 2의 다수 찬성을 획득하지 못하면 부결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해 중국대표권 문제는 계속해서 유엔에서 제기되고 표결되었으나,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대표권에 대한 지지는 꾸준히 증가하여, 1970년에는 결의안이 3분의 2에 미달되어 비록 부결되기는 하였으나, 찬성표가 반대표를 상회하기에 이르렀다. 결과 이러한 지난한 과정 끝에 1971년 제26회 총회에서는 다시 알바니아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대표권 승인과 중화민국 정부의 추방을 골자로 하는 안이 제기되었다. 공산권 국가들의 중국대표권 획득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던 이 시기는 베트남전으로 고생하던 미국이 현실적 필요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과 관계정상화를 시도하던 때이기도 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스탈린 사후 계속 악화되어온 중소분쟁에 따른 불안정한 대외관계를 보완하고, 국제적 지위향상을 위해 미국과 핑퐁외교를 추진하는 등 미중 양국 관계는 상당히 호의적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국제적 환경의 조성은 미국을 비롯한 반공산권 국가들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대표권을 더 이상 거부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다만, 미국은 기존의 입장도 있고, 또 현실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인정하고 대만을 유엔에서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대표권을 인정함과 동시에 대만 정부의 의석도 보존하기 위하여 ‘대만 정부의 유엔으로부터의 추방은 중요사항이다’라는 이른바 역(逆)중요사항지정방식에 의한 결의안을 별도로 제출하였다. 그 결과 미국안과 알바니아안이 대결을 벌였는데, 유엔의 최종적 선택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어서 중화민국은 결국 유엔에서 대표권을 잃고 탈퇴하기에 이르렀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대표권을 얻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1971년 10월 25일에 채택된 유엔 결의 제2758호에 따르면, “중화인민공화국의 합법적 권리를 회복시키는 것이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유엔 조직을 헌장에 어긋나지 않게 활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불가결하다는 것,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대표가 유엔에서 중국의 유일 합법적 대표이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의 하나임을 인정한다는 것, 중화인민공화국의 모든 권리를 회복하고 그 정부 대표가 유엔에서 중국의 유일 합법적 대표임을 인정한다는 것, 장제스 대표를 그가 유엔과 모든 관련 조직에서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장소에서 즉각 추방하기로 결정한다는 것”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여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중화민국 정부가 유엔에서 가지고 있었던 중국대표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유엔 가입과 동시에 이양되었다. 나아가 중화민국 정부는 미국에 의해 시도된 유엔의석 보존안이 채택되지 않음에 따라 유엔회원국의 자격까지 잃게 되었다. 이로써 유엔창설 26년 만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유엔에서 중국을 대표하게 되었으며, 상임이사국의 지위까지 자동으로 승계하게 되었다. 그 결과 공산권의 세력확장에 대한 서방진영의 우려와 견제의식에 따라 세계최대 인구를 가진 중국이 겨우 작은 섬으로 구성된 대만에 의해 대표되는 비현실적이고 불안정한 상황은 종료되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서방진영이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 현실인식을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공산권 내부, 특히 중소간의 갈등과 이에 상응하는 미중 우호관계 형성이란 새로운 상황변화의 귀결점으로서 세계질서는 보다 합리적 모습을 찾게 된 것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대만은 대표권문제를 계기로 1971년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되는 비극을 경험하였으나, 이후 기회가 되는대로 유엔회원국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2007년 천수이볜 총통 당시에는 국호를 타이완으로 표기하면서까지 유엔가입을 적극 추구하는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러한 대만의 노력은 유엔가입이 곧 독립국임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중국은 물론, 미국이나 주요 우방국들의 반대를 받았으며, 유엔 사무총장이던 반기문은 이를 반려하였다. 결국 대만은 2009년 9월 마잉주 총통이 17년간 추구해 왔던 유엔가입을 공식포기 한다고 선언함으로써 대만의 유엔가입문제는 일단락되었다. . 출처: 유엔에서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중 누구를 중국 대표 정부로 할 것인지를 놓고 발생한 문제(한국민족문화대백과) [2]. 유교경전 예기(禮記)에 따르면 歲且更始 (새해가 바로 시작되려고 하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또한 두산백과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겨울을 매듭짓는 절후로 보아, 대한의 마지막 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계절적으로 연말일(年末日)로 여겼다. 풍속에서는 이 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다. 대한(大寒)절기때는 유교에서 최고신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 다음의 하위신이신 오제[五帝. 다신교 전통의 유교에서 조상신 계열로 승천하여 최고신 하느님(天)다음의 하위신이 되심]중의 한분이신 겨울의 신 전욱(顓頊)께서 다스리는 절기입니다. 참고로 예기(禮記) 월령(月令)의 오제(五帝)는 다음분들입니다. 춘(春)의 제(帝)는 태호(太皥), 하(夏)의 제(帝)는 염제(炎帝), 추(秋)의 제(帝)는 소호(少皥), 동(冬)의 제(帝)는 전욱(顓頊). 그리고 계하(季夏)의 달인 음력 6월에는 중앙에 황제(黃帝)를 넣고 있습니다. [3]. 유교경전 예기에 나타나는 대한 무렵의 계동지월(季冬之月, 음력 12월)의 특징 중 하나. 鴈北鄕 鵲始巢 雉雊 雞乳 命有司大難 旁磔 出土牛以送寒氣 기러기가 북방을 바라보고 까치가 비로소 집을 짓고 꿩이 울며 닭이 알을 낳는다. 유사에게 명하여 크게 역귀를 쫓도록 하고 또 사방의 문에 희생을 달아매어 음기를 쫓는다. 그리고 토우(土牛)를 만들어서 문밖에 내놓고 추위를 전송한다... 是月也 日窮于次 月窮于紀 星回于天 數將幾終 歲且更始 專而農民 毋有所使 이 달에 해는 마지막 차(次)에 이르고 달은 해와 최종의 회처(會處)에서 만나며 28수는 하늘을 돌아 그 원위치로 돌아가 1년의 일수(日數)가 장차 끝나려고 한다. 또한 새해가 바로 시작되려고 하니, 농민을 잘 보살펴서 농사에 전념하도록 하며, 부역을 일으켜서 부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역해자(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4]. 한국의 사전류에 나타나는 대한(大寒).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나타나는 대한(大寒). 정의 24절기의 하나. 내용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절후(節候)이다. 양력 1월 20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300°되는 날이다. 대한은 음력 섣달로 매듭을 짓는 절후이다. 원래 겨울철 추위는 입동(立冬)에서 시작하여 소한(小寒)으로 갈수록 추워지며 대한에 이르러서 최고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는 중국의 경험에 입각한 것이고 우리 나라에서는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1월 15일께이므로 다소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죽었다.”,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즉, 소한 무렵이 대한 때보다 훨씬 춥다는 뜻이다. 제주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 따위를 비롯한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간(新舊間)에 하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다. 이때의 신구간은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간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 1주일이 된다고 한다. . 출처: 대한 [大寒]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대한(大寒). 대한 [ 大寒 ] 요약 24절기 가운데 하나로, 소한 뒤부터 입춘 전까지의 절기이다. 음력 12월 중기(中氣)이며 양력으로는 1월 20일경에 시작한다. 가장 추운 때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아니며, 대한의 마지막날을 겨울을 매듭짓는 날로 보고 계절적 연말일(年末日)로 여겼다. 24절기 소한(小寒) 15일 후부터 입춘(立春) 전까지의 절기로, 양력으로는 1월 20일경부터 시작된다. 음력으로는 12월 중기(中氣)이다. 태양의 황경은 약 300°가 된다. 대한은 그 말뜻으로 보면, 가장 추운 때를 의미하지만, 한국에서는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1월 15일경이므로 사정이 다소 다르다. 따라서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갔다 얼어죽었다”거나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는 이야기가 생겼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겨울을 매듭짓는 절후로 보아, 대한의 마지막 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계절적으로 연말일(年末日)로 여겼다. 풍속에서는 이 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다. 절분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의 시작일로, 이 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연초가 된다. . 출처: 대한 [大寒] (두산백과) 3. 한국 세시풍속사전에 나타나는 대한 (大寒). 대한 [ 大寒 ] 분야계절날짜관련속담 절기 겨울(음력 12월) 양력 1월 20일경 대한 끝에 양춘이 있다,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 정의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스물네 번째 절기로 ‘큰 추위’라는 뜻의 절기. 대한(大寒)은 음력 12월 섣달에 들어 있으며 매듭을 짓는 절후이다. 양력 1월 20일 무렵이며 음력으로는 12월에 해당된다. 태양이 황경(黃經) 300도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내용 원래 겨울철 추위는 입동(立冬)에서 소설(小雪), 대설(大雪), 동지(冬至), 소한(小寒)으로 갈수록 추워진다. 소한 지나 대한이 일년 가운데 가장 춥다고 하지만 이는 중국의 기준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사정이 달라 소한 무렵이 최고로 춥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라는 속담처럼 대한이 소한보다 오히려 덜 춥다. 제주도에서는 대한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까지 약 일주간을 신구간(新舊間)이라 하여, 이사나 집수리를 비롯하여 집안 손질과 행사를 해도 큰 탈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 출처: 대한 [大寒] (한국세시풍속사전) [5].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 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6].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 지켜야 될 자격과 전통이 있다면, 국가주권, 헌법, 국제법, 한국사, 세계사등에 의거하여, 최고의 가치로 알고 지켜가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서강대는, 세계사의 교황제도 반영, 국제관습법상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연합국 국가원수들의 포츠담선언(포츠담선언은 미군정의 상위법, 일본관련, 포츠담선언은 카이로선언도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불교 Monkey 일본.*서유럽과는 다르게 한국,대만,아시아,쿠릴열도에 적용되는 포츠담선언의 일본관련 조항들.*일본이 교육기능 폐지시킨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 미군정때 성균관을 복구하는 법률(공자묘 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이 제정되었음. 이때 성균관과 관련없고 일본 동경대를 졸업한 교육관련 담당자와 주변인들이,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폐지)시켜야 할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하면서, 서울대를 성균관 앞에 놓는 방법으로 성균관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하였음. 미군정에서 교육정책 입안자로 등용되니까, 하위법인 미군정령을 이용해,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의 취지(일본의 주권은 한국에 없고, 경성제국대는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할 일제잔재임)에 어긋나는 교육정책을 만들었던것. 그러나 상위법 우선의 원칙을 따라야 함. 카이로선언은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축출)될것"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또한, 미군정은, 교육분야 아닌 타분야에서 연합국의 적국인 일본의 재산을 적산재산으로 하여, 일본이 카이로선언의 연합국 적국이라는 시각을 따르고 있었음. 미군정기에는 유교국가인 조선.대한제국의 한문성명.본관을 등록하는 조선성명 복구령도 시행되었음. 교육분야에서, 미군정기의 과도기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될 경성제대 활용(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의 정제되지 않은 정책에, 위기를 느낀, 전국 유림들이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유림이면서 임시정부 요인출신 김창숙 선생)를 개최하여, 성균관대를 설립(성균관의 교육기능 승계형태임)하기로 하였음. 새로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성균관장이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하고, 성균관대 학장.성균관장을 겸임하였음.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성균관대가 대학기능을 승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것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며, 고구려 태학이후 한국 최고대학 계보 성균관이었음. 태학(고구려),국자감(고려),고려말 성균관,조선.대한제국 성균관. 일본 강점기때 교육기능 중단 및 왜곡*일본이 항복하여, 미군정부터는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가, 대학교육 역할을 담당하여, 한국 최고 대학 계보임.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미군정때, 국사 성균관 교육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에도, 계속 국사 성균관교육을 실시. 국사교육을 중요시하여, 정부의 각종 고시, 공무원시험등에 국사 채택. *국사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라는건 성균관대, 성균관, 여러 백과사전 공통된 견해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4090602113 [7].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 僧(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가 세운 마당쇠 僧대학). 그 뒤 서울대에 대중언론에서 눌려온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의 비신분제 대학들.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그러나 세계사로 보면, 가톨릭이라는 세계종교는 너무 세계인에 일반화되어서, 국사적개념과 병립하여, 세계사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에서, 국제관습법상 세계종교 가톨릭의 자격으로 예우하는게 적절함. 일본식 개념으로, 일본 국지신앙인 일본 신도(일본의 국교), 불교, 기독교의 위상을, 한국에 적용할수는 없음. 그리고 한국과 바티칸시티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기 때문에, 한국헌법 임시정부가 선전포고하고,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일본의 종교기준을 적용하는게 맞지않음. 불교는 인도에서도 배척당해왔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 불교국 일본의 종교기준대로 하면,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아닌 사회규범이 되어, 일본 신도(불교에서 파생됨), 불교, 기독교만 포교종교고, 유교는 일제강점기의 신생종교인 원불교보다 신자수가 적은 50만(성균관.향교의 제사인구만 유교도라고 1980년대 초반에 통계청 표본조사를 실시하여, 다시 유교에 도전하고 있음)이 되어, 해방한국의 종교주권을 침해당하게 됨.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 가지고 있음. @문화대혁명으로 모택동 주석도 비판받고,중국은 개혁.개방정책으로, 유교 전통명절인 춘절, 중추절, 청명절, 단오절의 4대명절 공휴일을 아주 길게 하였음.@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한국영토에 주권없는 패전국 잔재이자, 하느님.창조신을 부정하는 Chimpanzee계열 불교 일본 서울대Monkey와 추종세력들이 학교교육 세계사의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윤리의 종교교육 유교, 국사등과 달리, 일본강점기때 일본이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했으니까, 유교가 종교아니라고 최근 다시 왜곡하는데,이는 일제잔재 대중언론에 포진하여 루머수준으로 유교에 도전하는것임.@인도에서 불교도는,불가촉賤民.조계종승려賤民한국과비슷.강점기 하느님에 덤비며(창조신내리까는 부처처럼)유교부정,불교Monkey일본.하느님보다높다는 성씨없는 일본점쇠賤民.후발천황(점쇠가 돌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옹립.한국은 세계종교유교국.수천년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숭배.해방후 조선성명복구령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복귀.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국중 하나인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강점기를 겪으며 대중언론등에서 유교가 많이 왜곡되고 있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3424093319 [8]. 필자의 당부사항.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에서만 머물러야 합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275696355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190490049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s://blog.naver.com/macmaca/110185393995 .

2026년 1월 11일 일요일

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일선전포고를 하여서, 카이로선언이후 프랑스.구 소련.폴란드의 승인을 받은 정부입니다.

1]. 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일선전포고를 하여서, 카이로선언이후 프랑스.구 소련.폴란드의 승인을 받은 정부입니다.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 僧(히로히토, 아키히토, 나루히토등,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패전국 奴隸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僧이 세운 마당쇠 불교 Monkey). 그 뒤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의 비신분제 대학들.포츠담선언을 받아들인 일본의 주권지역.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일본이기 때문에, 포츠담선언의 하위법인 미군정령과의 불일치가 있으면, 상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야 합니다. 포츠담선언 제8항에서는 「카이로 선언」의 조항은 이행되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일본의 주권은 혼슈(本州), 홋카이도(北海道), 큐슈(九州) 및 시코구(四國)와 함께 연합국이 결정하는 여러 작은 섬들에 한정된다고 규정했습니다. 2]. 조선.대한제국 국교가 유교라, 일본의 항복과 함께, 5,000만이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 복귀한것임. 각종 명절,제사, 24절기. 국민학교때 유교 하느님 애국가, 조선.대한제국 역대왕 암기. 중학교때 삼강오륜 유교교육. 고등학교때 세계사, 국사, 국민윤리 유교교육.@일본이 들여온 일본 불교계열 후발 신도(일본의 국교. 불교 Monkey 후발 신앙), 불교, 극소수 기독교의 종교주권도 없어진것. 다른 신흥 종교들도 일본 강점기에 피어난 주권없는 신앙들임. 세계종교 유교와 가톨릭(그 중에서도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귀족계파 가톨릭 예수회의 마테오리치 선교사. 명나라때 중국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명.청시대, 그 이후까지 이어진 예수회)은 지금도 예수회의 마테오리치 선교사 이후의 교류때문에, 교황청은, 세계사 견지에서, 중국을 아주 중요하게 대우하고 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민중을 위한다는 외방전교회가 유교권에 아무 선교 경험도 없이 들어왔는데, 불교 Monkey 일본 정책으로, 기독교도 탄압받았음. 불교는 느닷없이 대우받았음. 가톨릭 예수회 아닌 외방전교회는 조상제사 거부등 때문에, 마찰이 많았고, 유교에 대한 이해도가 없어와서 인정하기 어려움. 3]. 조선성명복구령[시행 1946. 10. 23.] [군정법률 제122호, 1946. 10. 23., 제정].* @1954.10.1,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승만) 연설문. 우리나라의 종교인 유교를 강조, 유교의 교훈을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 아세아 동방 모든 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를 입었다고 하시며, 유교의 교훈을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 유교의 전통 가르침인 삼강오륜을 중시하는 연설. @이승만 대통령, 삼강오륜 교육 언급.부모의 은공에 감사하자.연설일자,1956.05.07@이승만 대통령 내외 공자제사 참석.영상역사관, 1954 대한뉴스 제46호,이승만대통령 내외분,문교부장관등 참석, 공자님탄생 기념식.한편 을사조약은 무효라는 고종황제의 주장은, 그 당시에도 강대국인 프랑스 국제법학자 프란시스 레이교수의 견해에 그대로 반영되어, 그 당시부터 을사조약은 무효라는 국제법상의 판례같은 역할(강대국의 저명한 국제법학자의 견해는 국제관습법으로도 적용될 수 있음)로 유효하였습니다. 을사조약은 무효(따라서 강제적인 상황에서 체결된 한일병합도 무효가 되는 논리)라는 고종황제의 주장은, 결국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반영되어,임시정부는 을사조약.한일병합등 불평등 조약은 무효라 하였고, 대일선전포고까지 하였는데, 카이로선언이후 프랑스.구 소련. 폴란드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하여서, 미군정이 한국 현지에서 국제법판례로 삼을만한 자격이 성립되었으며, 미군정의 의지와는 별도로, 국제법적 자격을 형식적으로 가지고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이기도 하였습니다. 고종의 을사조약무효 주장은 나중에 UN국제법위원회에도 그대로 채택되었습니다. 국가원수들이 합의한 포츠담선언에 따라 일본과 경성제대 및 기타 일제강점기 학교들의, 주권이 없는 상태에서, 미군정당시, 하위법인 미군정 법률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대학이던 성균관(성균관대로 성균관장이 미군정에 등록)에 하위법(경성제대를 서울대로 하고, 성균관 앞에 쓰고, 다시 서울대를 국립대로 하겠다는 발표)으로 상위법에 대항하면 이길수 있겠다는, 발상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며, 그 당시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에도 위배되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을사조약.한일병합등 무효, 대일선전포고)의 대일선전포고문과도 어긋나서, 아무런 법적 자격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헌헌법과, 1988년 2월 25일 시행된 현행헌법 前文에도 임시정부가 반영되어,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를 이길수 없는 상태로 이어져왔습니다.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이보다 자격없는 추종세력들)가, 주권이 없는데, 어떻게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를 대중언론과 나중에 새로 생긴 사설 입시지.사설 입시학원 자료로 이기려고 해왔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임시정부가 대일선전포고까지 하지 않았습니까?@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 4}. 필자는 성균관대 1983학번 윤 진한입니다. 서강대가 칭화대와 교류하는 것 때문에, 베이징대, 베이징사범대로 역사적 중국 대학을 마무리할까 하다가, 베이징대, 칭화대, 베이징사범대 순으로, 중국의 세계적 대학을 적극 반영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대중언론의 과학기술 분야 칭화대의 업적이 단기간에, 반영된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칭화대는 가톨릭 예수회의 중국 교류 역사를 눈여겨보고, 가톨릭 예수회 산하의 교육경험 많은 세계적 영향력의 서강대와 꾸준한 교류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성균관대의 오랜 전통과 역사는 고구려 태학, 고려 국자감, 고려말 성균관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유교교육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세계 최초의 대학, 한(漢)나라 태학[太學(유교대학)]. 이후 위(魏)나라 태학(太學), 수(隋)나라 국자감(國子監), 당.송(唐.宋) 국자감(國子監), 원.명.청(元.明.淸)의 국자감(國子監)으로 이어지다가 청(淸)나라말기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으로 명칭이 바뀌고 나중에 다시 북경대학(北京大學, 베이징대학, Peking University)으로 명칭바뀜.@수천년동안 하느님을 숭배해온 하느님족(고대에 세계종교로 성립된 동아시아 유교, 서유럽의 가톨릭)은 하느님의 섭리에, 순종해오며, 세계사 자격으로, 공자님과 예수님을 떠나살 수 없습니다. 필자는 노벨상이나, 과학논문보다 교과서자격(세계사, 한국사), 국제법,헌법, 한국사등에 대학의 주안점을 둠.헌법,국제법,한국사, 세계사의 대학자격은 과거와 현재에 변하지 않아와서, 앞으로도 변할 사유가 없음.*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교황윤허,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 * 국사 성균관(성균관대), 한나라 태학.이후의 국자감(베이징대로 승계), 볼로냐.파리대학의 교과서 자격은 변하지 않더군요. 세계종교 유교와 로마 가톨릭도 그렇습니다.교황성하의 신성성도 변하지 않더군요. 과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교과서 교육은 거의 변할 사유가 없을것입니다. 한국에서는 Royal성균관대(한국 최고대), Royal 서강대(세계사의 교황 윤허반영,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학부 나오면 취업률과 유지취업률이 가장 좋은 자료도 있습니다.대학원에 가서 신학(유교의 하느님을 공부하는 유학이나 서양 가톨릭의 신학등).법학.의학, 문사철 및 경제.경영,기초과학.공학등을 전문 연구하는 Royal성균관대.Royal서강대 출신들이 일정인원이상 배출되는게 바람직합니다. 베이징대, 볼로냐.파리대같은 세계사 교과서 자격을 승계하였거나, 동일대학名가진 대학들 말고, 영국 옥스포드, 독일 하이델베르크(교황윤허),스페인 살라망카,포르투갈 코임브라,오스트리아 빈대학처럼 역사와 전통이 있는 대학들과, 2차대전후의 강대국중 하나인 미국 하버드의 역사는 앞으로도 유지될것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4090602113

2026년 1월 4일 일요일

유교문화권의 24절기인 소한(小寒). 양력 2026년 1월 5일(前年기준 음력 11월 17일)부터 15일간은 소한절기입니다. 중국의 기준 지역과 달리, 우리 나라에서는 소한 때가 가장 춥다고 합니다. “소한의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겨울절기인 소한.대한(大寒)은 여러 겨울절기 중에서도 가장 추운때입니다.

유교문화권의 24절기인 소한(小寒). 양력 2026년 1월 5일(前年기준 음력 11월 17일)부터 15일간은 소한절기입니다. 중국의 기준 지역과 달리, 우리 나라에서는 소한 때가 가장 춥다고 합니다. “소한의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겨울절기인 소한.대한(大寒)은 여러 겨울절기 중에서도 가장 추운때입니다. 소한이후 15일 동안의 절기에는, 최고 하느님이신 천(天, 인간을 낳으신 하느님이심.시경:天生蒸民, 태극과 연계되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최고 하느님 天)다음의 하위신으로, 하늘로 승천하시어 계절을 다스리시는 오제[五帝, 天(최고 하느님) 다음의 하위 하느님들]중의 한분 신이시며, 겨울의 하느님이신, 전욱(顓頊)께서 다스리시는 절기입니다. [1]. 춥다고 해서 집안에 웅크리고만 있지 말고, 얼음낚시도 가보고, 빙상놀이등을 하며 추위와 역경을 이겨내는 훈련도 좋겠습니다. 그러나, 국가와 해당부처의 방역지침을 잘 따르는게 우선입니다. 겨울철 얼음낚시는 반드시 국가기관이나 도청, 군청, 경찰서, 소방서 및 그 산하기관의 관리감독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만 하셔야 안전합니다. 구조요원이 있어야 하고, 안전관리 요원, 얼음두께를 유지하는 관청의 관리.감독이 따라주어야 합니다. 보통 도청이나 군청단위 축제란 명칭의 행사가 붙어야 안정성이 담보됩니다. 유교는 최고신이신 하느님(天)을 중심으로 계절의 신, 산천의 신, 조상신등이 함께 하는 동아시아지역(중국,한국, 베트남,몽고)의 세계사적 수천년 세계종교(한나라 때 동아시아 지역에서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임)입니다. 세계각국의 종교를 판별하는데는 세계사가 우선이고 그 다음 수천년 종교관습이 우선되어야 제대로 판별가능합니다. 교과서와 달리 최근에 새로 생긴 여러가지 종교구별법은 교과서나 종교관습과는 다른 생경하고 특이한 신종 종교판별방식에 불과합니다. 세계사나 유교명절.한문성씨 사용등의 관습을 반영하지 않은 한국의 일부 시각과 달리 전통적인 유교도들인 중국인들이 2차대전이후 새로 만든 신생 싱가포르와 차이니스 타이페이도 춘절[春節, 전통적으로 원일(元日), 원단(元旦), 한국은 설날]과 중추절[仲秋節, 한국은 추석]을 쇠는 유교국들입니다. 중국 왕조시대의 영토였다 일본에 할양된후 2차대전후, 다시 중국에 반환된 대만은 공자님 제사(공자님제사는 왕조국가였던 나라들의 특징)를 치르고 있습니다. 대만은 한자(漢字)를 사용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이슬람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독립된 중국 화교들의 인적 구성이 많은 나라인데, 중국어나 말레이어등을 공용어로 쓰고 있습니다. [2]. 유교경전 예기에 나타나는 소한,대한 무렵의 계동지월(季冬之月, 음력 12월)의 특징 중 하나. 是月也 命漁師始漁 天子親往 乃嘗魚 先薦寢廟 이 달에는 어부에게 명하여, 처음으로 고기잡이를 하게 하고, 천자가 몸소 가서 물고기를 잡는다. 돌아와서 물고기를 시식하기 전에 먼저 침묘에 바친다. 冰方盛 水澤腹堅 命取冰 冰以入 얼음은 한창 두텁고 수택(水澤)은 그 중복에 이르기까지 단단히 얼어붙으므로, 얼음을 채취하도록 명하여 남김없이 빙고에 넣는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역해자(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이 처럼 겨울의 얼음낚시는 계동지월(음력 12월)에 행하는게 유교적 관습이고 중국.한국등의 적절한 시기인데, 계동지월에는 가장 추운 소한과 대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년 열두달 중 계동지월(음력 12월)의 얼음이 한창 두텁고 단단히 얼어붙으므로, 이 시기(소한.대한 무렵)에 얼음을 저장하고, 한국에서는 여러가지 얼음낚시 행사와, 빙상놀이가 많이 행해지는 때입니다. * 특별히 당부드릴점: 겨울철 얼음낚시는 반드시 국가기관이나 도청, 군청, 경찰서, 소방서 및 그 산하기관의 관리감독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만 하셔야 안전합니다. 구조요원이 있어야 하고, 안전관리 요원, 얼음두께를 유지하는 관청의 관리.감독이 따라주어야 합니다. 보통 도청이나 군청단위 축제란 명칭의 행사가 붙어야 안정성이 담보됩니다. [3]. 한국의 사전류에서 설명하는 소한(小寒).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설명하는 소한(小寒). 정의 24절기의 하나. 내용 동지와 대한 사이에 있으며 음력 12월, 양력 1월 5일경이다. 태양이 황경 285°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절후의 이름으로 보아 대한 때가 가장 추운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은 우리 나라에서는 소한 때가 가장 춥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는 속담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온 것이다. 옛날의 중국사람들은 소한으로부터 대한까지의 15일간의 기간을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북으로 돌아가고, 중후(中候)에는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꿩이 운다고 하였다. . 출처: 소한 [小寒]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에서 설명하는 소한(小寒). 소한 [ 小寒 ] 요약 24절기의 하나로 동지와 대한 사이의 절기이다. 이름상으로 보았을 때 대한의 시기일 때 가장 추울 것 같지만 소한의 시기 일 때가 한국에서는 1년 중 가장 춥다. 24절기 동지 후, 대한(大寒) 전의 절기이다. 양력으로는 1월 5일경에서 20일경이며, 음력으로는 12월절(十二月節)이다. 태양은 1월 5일경 황경 약 285°에 위치한다. 절후의 이름으로 보아 대한 때가 가장 추운 것 같으나 실은 소한 때가 한국에서는 1년 중 가장 춥다. 옛사람들은 소한 15일간을 5일씩 3후(三候)로 세분하여, ① 기러기가 북(北)으로 돌아가고, ②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고, ③ 꿩이 운다라고 하였다. . 출처: 소한 [小寒] (두산백과) 3]. 한국세시풍속사전에서 설명하는 소한(小寒). 소한 [ 小寒 ] 분야계절날짜관련속담 절기 겨울(음력 12월) 양력 1월 5일경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 정의 24절기 가운데 스물세 번째 절기로 작은 추위라는 뜻의 절기. 소한(小寒)은 양력 1월 5일 무렵이며 음력으로는 12월에 해당된다. 태양이 황경(黃經) 285도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내용 옛날 중국 사람들은 소한부터 대한까지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북으로 날아가고 중후(中候)에는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고 말후(末候)에는 꿩이 운다고 기술하였다. 이는 중국 황하 유역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우리나라와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절기의 이름으로 보면 소한 다음 절기인 대한(大寒) 때가 가장 추워야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소한 무렵이 가장 춥다. 우리나라에서 일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양력 1월 15일 무렵이다. ‘소한땜’이 아니라도 이때는 전국이 최저 기온을 나타낸다. 그래서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소한추위는 맵다. 그러나 추위를 이겨냄으로써 어떤 역경도 감내하고자 했던 까닭으로 “소한의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라고도 했다. 의의 소한은 해가 양력으로 바뀌고 처음 나타나는 절기이다. 소한 무렵은 정초한파(正初寒波)라 불리는 강추위가 몰려오는 시기이다. 농가에서는 소한부터 날이 풀리는 입춘 전까지 약 한 달 간 혹한(酷寒)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둔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에서는 문밖 출입이 어려우므로 땔감과 먹을거리를 집안에 충분히 비치해 두었다. . 출처: 소한 [小寒] (한국세시풍속사전) [4].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 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5].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 지켜야 될 자격과 전통이 있다면, 국가주권, 헌법, 국제법, 한국사, 세계사등에 의거하여, 최고의 가치로 알고 지켜가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서강대는, 세계사의 교황제도 반영, 국제관습법상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연합국 국가원수들의 포츠담선언(포츠담선언은 미군정의 상위법, 일본관련, 포츠담선언은 카이로선언도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불교 Monkey 일본.*서유럽과는 다르게 한국,대만,아시아,쿠릴열도에 적용되는 포츠담선언의 일본관련 조항들.*일본이 교육기능 폐지시킨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 미군정때 성균관을 복구하는 법률(공자묘 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이 제정되었음. 이때 성균관과 관련없고 일본 동경대를 졸업한 교육관련 담당자와 주변인들이,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폐지)시켜야 할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하면서, 서울대를 성균관 앞에 놓는 방법으로 성균관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하였음. 미군정에서 교육정책 입안자로 등용되니까, 하위법인 미군정령을 이용해,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의 취지(일본의 주권은 한국에 없고, 경성제국대는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할 일제잔재임)에 어긋나는 교육정책을 만들었던것. 그러나 상위법 우선의 원칙을 따라야 함. 카이로선언은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축출)될것"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또한, 미군정은, 교육분야 아닌 타분야에서 연합국의 적국인 일본의 재산을 적산재산으로 하여, 일본이 카이로선언의 연합국 적국이라는 시각을 따르고 있었음. 미군정기에는 유교국가인 조선.대한제국의 한문성명.본관을 등록하는 조선성명 복구령도 시행되었음. 교육분야에서, 미군정기의 과도기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될 경성제대 활용(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의 정제되지 않은 정책에, 위기를 느낀, 전국 유림들이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유림이면서 임시정부 요인출신 김창숙 선생)를 개최하여, 성균관대를 설립(성균관의 교육기능 승계형태임)하기로 하였음. 새로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성균관장이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하고, 성균관대 학장.성균관장을 겸임하였음.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성균관대가 대학기능을 승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것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며, 고구려 태학이후 한국 최고대학 계보 성균관이었음. 태학(고구려),국자감(고려),고려말 성균관,조선.대한제국 성균관. 일본 강점기때 교육기능 중단 및 왜곡*일본이 항복하여, 미군정부터는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가, 대학교육 역할을 담당하여, 한국 최고 대학 계보임.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미군정때, 국사 성균관 교육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에도, 계속 국사 성균관교육을 실시. 국사교육을 중요시하여, 정부의 각종 고시, 공무원시험등에 국사 채택. *국사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라는건 성균관대, 성균관, 여러 백과사전 공통된 견해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4090602113 [6].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 僧(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가 세운 마당쇠 僧대학). 그 뒤 서울대에 대중언론에서 눌려온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의 비신분제 대학들.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그러나 세계사로 보면, 가톨릭이라는 세계종교는 너무 세계인에 일반화되어서, 국사적개념과 병립하여, 세계사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에서, 국제관습법상 세계종교 가톨릭의 자격으로 예우하는게 적절함. 일본식 개념으로, 일본 국지신앙인 일본 신도(일본의 국교), 불교, 기독교의 위상을, 한국에 적용할수는 없음. 그리고 한국과 바티칸시티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기 때문에, 한국헌법 임시정부가 선전포고하고,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일본의 종교기준을 적용하는게 맞지않음. 불교는 인도에서도 배척당해왔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 불교국 일본의 종교기준대로 하면,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아닌 사회규범이 되어, 일본 신도(불교에서 파생됨), 불교, 기독교만 포교종교고, 유교는 일제강점기의 신생종교인 원불교보다 신자수가 적은 50만(성균관.향교의 제사인구만 유교도라고 1980년대 초반에 통계청 표본조사를 실시하여, 다시 유교에 도전하고 있음)이 되어, 해방한국의 종교주권을 침해당하게 됨.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 가지고 있음. @문화대혁명으로 모택동 주석도 비판받고,중국은 개혁.개방정책으로, 유교 전통명절인 춘절, 중추절, 청명절, 단오절의 4대명절 공휴일을 아주 길게 하였음.@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한국영토에 주권없는 패전국 잔재이자, 하느님.창조신을 부정하는 Chimpanzee계열 불교 일본 서울대Monkey와 추종세력들이 학교교육 세계사의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윤리의 종교교육 유교, 국사등과 달리, 일본강점기때 일본이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했으니까, 유교가 종교아니라고 최근 다시 왜곡하는데,이는 일제잔재 대중언론에 포진하여 루머수준으로 유교에 도전하는것임.@인도에서 불교도는,불가촉賤民.조계종승려賤民한국과비슷.강점기 하느님에 덤비며(창조신내리까는 부처처럼)유교부정,불교Monkey일본.하느님보다높다는 성씨없는 일본점쇠賤民.후발천황(점쇠가 돌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옹립.한국은 세계종교유교국.수천년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숭배.해방후 조선성명복구령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복귀.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국중 하나인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강점기를 겪으며 대중언론등에서 유교가 많이 왜곡되고 있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3424093319 [7]. 필자의 당부사항.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에서만 머물러야 합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275696355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190490049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s://blog.naver.com/macmaca/110185393995 .

2025년 12월 21일 일요일

유교문화권의 24절기인 동지(冬至) .2025년 12월 22일(음력 11월 3일)부터 14일간은 동지절기입니다.유교경전 예기(禮記)의 교특생(郊特牲)은 동지(冬至)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郊之用辛也,周之始郊日以至. 교사(郊祀)에 신일(辛日)을 택하는것은 주나라 왕실에서 처음으로 교제(郊祭)를 행한것이 우연히 동짓날(日以至)이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유교문화권의 24절기인 동지(冬至) .2025년 12월 22일(음력 11월 3일)부터 14일간은 동지절기입니다.유교경전 예기(禮記)의 교특생(郊特牲)은 동지(冬至)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郊之用辛也,周之始郊日以至. 교사(郊祀)에 신일(辛日)을 택하는것은 주나라 왕실에서 처음으로 교제(郊祭)를 행한것이 우연히 동짓날(日以至)이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한편, 동지때는 팥죽을 먹어야 작은설로 나이한살을 더먹는 날로도 여겨집니다. 이 때쯤이면 다음해의 달력을 주고 받는 전통이 있습니다. 또한 선과 악의 여러귀신중 악귀인 역귀(疫鬼)를 쫓기 위해 그가 생전에 싫어하던 붉은 팥으로 죽을 만들어 먹어왔습니다. [1]. 동지(冬至) 절기(12월 22일 이후 15일동안)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 동지이후 15일 동안의 절기에는, 최고 하느님이신 천(天, 인간을 낳으신 하느님이심.시경:天生蒸民, 태극과 연계되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최고 하느님 天)다음의 하위신으로, 하늘로 승천하시어 계절을 다스리시는 오제[五帝, 天(최고 하느님) 다음의 하위 하느님들]중의 한분 신이시며, 겨울의 하느님이신, 전욱(顓頊)께서 다스리시는 절기입니다. 팥죽을 만들경우 다 만들면 사당(祀堂)등에 올리고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습니다. 전통적인 사대부가(士大夫家)를 비롯한 일반 민가에서 한옥에는 사당이 별도로 있었는데, 현대는 아파트.빌라도 사당마련이 가능합니다. 동지는 양력 12월 22일로, 음력으로는 11월 19일입니다. 이 날은 우리 한국인들이 동지 팥죽을 먹는 날로 유명하지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의하면 "고대인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렸다"고 합니다. .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인 (주)낱말은 동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지(冬至) 명사 이십사절기의 하나. 대설(大雪)과 소한(小寒) 사이에 들며 태양이 동지점을 통과하는 때인 12월 22일이나 23일경이다. 북반구에서는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 동지에는 음기가 극성한 가운데 양기가 새로 생겨나는 때이므로 일 년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이날 각 가정에서는 팥죽을 쑤어먹으며 관상감에서는 달력을 만들어 벼슬아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2]. 유교 경전 예기(禮記)에 나오는 동지(冬至) 관련 내용. 1]. 유교 경전인 예기(禮記) 월령(月令)은 음력 11월인 중동지월(仲冬之月)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仲冬之月이란 겨울의 가운데 달로, 음력 11월입니다. 仲冬之月 日在斗 昏東壁中 且軫中 其日壬癸 其帝顓頊 其神玄冥 其蟲介 其音羽 律中黃鍾 其數六 其味鹹 其臭朽 其祀行 祭先腎 중동의 달은 진이 두성에 있는데, 저녁에는 동벽성이 남방의 중앙에 있고 아침에는 진성이 남방의 중앙에 있다. 그 날은 임계, 그 제는 전욱, 그 신은 현명, 그 동물은 개속이고, 그 음은 우조, 그 율은 황종에 해당되며 그 수는 6, 그 맛은 짠맛, 그 냄새는 썩은 냄새, 그 제사는 행신으로, 제사할때는 희생의 신을 먼저 바친다. 冰益壯 地始坼 鶡旦不鳴 虎始交 命有司曰 土事毋作 愼毋發蓋 毋發室屋 及起大衆以固而閉 地氣沮泄 是謂發天地之房諸蟄則死 民必疾疫 又隨以喪 命之曰暢月 얼음이 더욱 두터워지고 땅이 비로소 갈라지며, 갈단은 울지 않는데, 호랑이는 비로소 교미한다. 천자는 유사에게 명하기를, "토목공사를 일으키는 일이 없게 하고, 삼가 창고를 여는 일이 없도록 하며, 실옥을 개방시키거나 일을 일으켜 대중을 징발하는 일이 없도록 하며 그 모든 폐장을 견고히 하라고 한다. 만일 천지의 방을 열어줌으로써 천지의 기운이 흩어지고 새나가게 할 때는 온갖 겨우살이 벌레는 죽게되고 백성이 질병에 괴로워하니, 사망의 재난이 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이 달을 이름지어 '창월'이라고 한다. 이하 생략...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2].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은 동지(冬至)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郊之用辛也,周之始郊日以至 교사(郊祀)에 신일(辛日)을 택하는것은 주나라 왕실에서 처음으로 교제(郊祭)를 행한것이 우연히 동짓날(日以至)이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3]. 필자가 가지고 있는 예기 설명서와 달리, 다른 예기책에는 더 많은 설명이 있습니다. 중국 Baidu(百度) 백과는 예기 월령과 관련하여 동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礼记·月令》:{仲冬之月} 日短至,则伐木取竹箭 설명하면 {仲冬之月. 음력 11월} 日短至(동지가 되면),则伐木取竹箭(나무를 벌채하고 죽전을 채취한다). . 필자 주 1). 则은 번체로 則입니다. [3]. 사전류 및 서적류에 설명된 동지(冬至). 1]. 동지에 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설명 동지[ [冬至] ... 24절기의 하나. 내용 대설과 소한 사이에 있으며 음력 11월 중, 양력 12월 22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270°위치에 있을 때이다.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하지로부터 차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여 동짓날에 이르러 극에 도달하고, 다음날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고대인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렸다. 중국 주(周)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도 이 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역경의 복괘(復卦)를 11월, 즉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부터 시작한 것도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동짓날에 천지신과 조상의 영을 제사하고 신하의 조하(朝賀)를 받고 군신의 연예(宴禮)를 받기도 하였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했고, 민간에서는 흔히 ‘작은 설’이라 하였다고 한다.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 가는 작은 설의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 유풍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을 하고 있다. 동짓날에는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冬至豆粥)·동지시식(冬至時食)이라는 오랜 관습이 있는데,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한 크기로 하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른다.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祀堂)에 올리고 각 방과 장독·헛간 등 집안의 여러 곳에 담아 놓았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는다. 동짓날의 팥죽은 시절식(時節食)의 하나이면서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즉, 팥죽에는 축귀(逐鬼)하는 기능이 있다고 보았으니, 집안의 여러 곳에 놓는 것은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내기 위한 것이고,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薦新)의 뜻이 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으며 민속적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축귀 주술행위의 일종이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팥떡·팥밥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짓날에도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동짓달에 동지가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동지팥죽은 이웃에 돌려가며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한다.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疫神)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다. 동짓날 궁 안에 있는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소의 다리를 고아, 여기에 백강(白薑)·정향(丁香)·계심(桂心)·청밀(淸蜜) 등을 넣어서 약을 만들어 올렸다. 이 약은 악귀를 물리치고 추위에 몸을 보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동짓날에는 관상감(觀象監)에서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치면 나라에서는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御璽 : 옥새)를 찍어 백관에게 나누어 주었다. 각사(各司)의 관리들은 서로 달력을 선물하였으며, 이조(吏曹)에서는 지방 수령들에게 표지가 파란 달력을 선사하였다. 동짓날이 부흥을 뜻하고 이 날부터 태양이 점점 오래 머물게 되어 날이 길어지므로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새 달력을 만들어 가졌던 것이다. 매년 동지 무렵이 되면 제주목사는 특산물로서 귤을 상감에게 진상하였다. 궁에서는 진상 받은 귤을 대묘(大廟)에 올린 다음에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주었고, 멀리에서 바다를 건너 귤을 가지고 상경한 섬사람에게는 그 공로를 위로하는 사찬(賜餐 : 임금이 음식을 내려줌)이 있었으며, 또 포백(布帛 : 베와 비단) 등을 하사하였다. 멀리에서 왕은에 감화되어 진기한 과일을 가져온 것을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를 실시해서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황감제(黃柑製)라 하였다. 그 밖에 민간에서는 동짓날 부적으로 악귀를 쫓고, 뱀 ‘蛇(사)’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여 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풍습이 있다. 또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한다. . 출처:동지[冬至]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필자 주 2).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에 소개된 팥죽 팥죽붉은 팥을 삶아 거른 팥물에 쌀을 넣고 쑨 죽으로 동짓날 절식의 하나이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 동지절기 관련, 팥죽에 대한 설명. 귀신을 물리치는 팥죽. 쌀의 문화(김영사 간행)라는 책에 소개된 팥죽. 동지는 입춘에서 시작하는 24절기 중 스물두 번째 절기로 일년 중 밤이 가장 길다. 옛날 사람들은 이날 태양이 죽었다가 되살아난다고 생각해 생명과 광명의 태양신을 위한 축제를 열었다. 동짓날 팥죽을 끓여먹는 풍속은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공공(共工) 씨의 자식이 동짓날에 죽어 역귀(疫鬼)가 되는데 역귀를 쫓기 위해 그가 생전에 싫어하던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팥죽 안에 넣는 새알심은 나이 수대로 먹어야 운이 좋다고 여겼으며 일꾼들은 팥죽 아홉 그릇에 나무 아홉 짐을 져야 좋다고 했다. 서민들은 주로 동짓날에만 팥죽을 만들어 먹었지만 궁중에서는 동지뿐 아니라 더운 삼복에도 쑤었다고 한다. 이는 한여름에 질병을 일으키는 역신을 물리치기 위한 의미였다. . 출처: 귀신을 물리치는 팥죽-쌀의 문화 (쌀, 2004. 9. 17., 김영사) 3]. 종교학대사전의 동지에 대한 서술입니다. 동지[冬至] 태양의 동지점을 통과하는 시각으로, 태양의 시황경(視黃經)이 270˚에 이르는 때를 말한다. 적위는 -23˚ 27' 이고 한국ㆍ중국의 태음태양력에서 역을 계산하는 기산점(起算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나, 오늘날의 천문력(天文曆) 계산은 춘분점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한국ㆍ중국의 역(曆)으로는 24절기의 하나로 11월 중에 있고, 태양력으로는 12월 22일경에 있다. 1년 중 일출이 제일 늦고 일몰이 제일 빠른 날이 시태양시에서는 동지이지만, 우리들이 일상 사용하는 평균태양시에서는 평균태양시가 시태양시로부터 균시차(均時差)를 뺀 까닭에 동짓날보다 일출이 더 늦거나 일몰이 더 빠른 날은 동지 부근이 된다. 태양은 이 때 가장 남쪽에 기울어져서 정오 태양의 고도는 1년 중 가장 낮다. 따라서 태양의 출몰 방향도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지며, 북쪽으로 갈수록 그 도는 심하여 북극지방에서는 수일 또는 수개월 동안 태양이 전혀 지평선 위에 나타나지 않는 곳이 있다. 그리고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이 1년 중 가장 짧고 열량도 가장 작으며, 밤이 길고 낮이 짧다. 그러나 이때가 1년 중에 가장 추운 때는 아닌데 지면이 하루 중에 방산(放散)하는 열량이 태양에서 받는 열량보다 많고, 지면이 점차 냉각되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추운 때는 지면이 완전히 냉각한 때이다. 옛날에는 동지를 설날로 삼은 때도 있었는데, 이는 동지를 기하여 태양이 다시 원기를 회복한다는 태양신을 숭배했던 당시에 행해졌다. .출처:동지[冬至]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한국사전연구사) 4]. 한국 세시풍속사전의 동짓달에 대한 설명입니다. "동짓날은 음력으로는 11월이지만 양력으로는 12월 22일 무렵인데, 한자로는 아세(亞歲)라고 하여 작은설이라고도 한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아세(亞歲, 동국시세기)의 작은설 의미가 유지되어 "동지를 맞이하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라고 하여, 설날에 떡국을 먹어 나이 한 살 더 먹는 경우와 같은 의미를 지녔다고 합니다. 종교적으로 설날과 비슷한 아세의 전통이 있는 날입니다. 정의 음력 11월을 달리 부르는 말. 동짓달을 어학적으로 보면 ‘동지(冬至)+ㅅ+달[月]’로서 ‘동지의 달’이며 ‘ㅅ’은 사잇소리[間音]이다. 곧 11월의 절기인 동지가 들어 있는 동짓달[冬至月]이며 줄임말로는 동지(冬至)가 된다. 중세 한국어에서도 11월을 ‘동지ㅅ ’이라고 하였다. 지월(至月) 또는 창월(暢月)이라고도 한다. 내용 11월은 중동(仲冬), 대설(大雪), 동지(冬至)의 절기이다. 고려가요 ‘동동(動動)’에는 “11월ㅅ 봉당 자리예 아으 한삼(汗杉) 두퍼 누워 슬라온뎌 고우닐 스싀움 녈셔 아으 동동(動動)다리”라고 11월을 노래하였으며,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도 11월을 “십일월은 중동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루하다. …… 등잔불 긴긴 밤에 길쌈을 힘써 하노. …… 늙은이 일 없으니 기작이나 매어보세.”라고 하여 동짓달은 ‘대설동지’이며 ‘바람 불며 서리치고’의 계절이면서 ‘해 짤라 밤 길기 지리하다’를 느낄 수 있고, ‘기작이나 매어보세’에서처럼 돗자리를 짜는 계절이라고 하였다. 동짓날은 음력으로는 11월이지만 양력으로는 12월 22일 무렵인데, 한자로는 아세(亞歲)라고 하여 작은설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사민월령(四民月令)』에 보면, 중국에서는 조상의 제사며 군사(郡師) 기로(耆老)를 모시기를 정월(正月)과 같다고 하였다. 『송서(宋書)』에도 동지의 조하(朝賀)는 모두 원일(元日)의 의식과 같다고 하고 팥죽을 먹는다고 하였다. 한국에서도 동지를 맞이하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라고 하여, 설날에 떡국을 먹어 나이 한 살 더 먹는 경우와 같은 의미를 지녔다. 이것은 동지와 설날을 동격(同格)으로 본 것으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도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하였다. . 출처: 동짓달((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4].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 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5].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 지켜야 될 자격과 전통이 있다면, 국가주권, 헌법, 국제법, 한국사, 세계사등에 의거하여, 최고의 가치로 알고 지켜가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서강대는, 세계사의 교황제도 반영, 국제관습법상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연합국 국가원수들의 포츠담선언(포츠담선언은 미군정의 상위법, 일본관련, 포츠담선언은 카이로선언도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불교 Monkey 일본.*서유럽과는 다르게 한국,대만,아시아,쿠릴열도에 적용되는 포츠담선언의 일본관련 조항들.*일본이 교육기능 폐지시킨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 미군정때 성균관을 복구하는 법률(공자묘 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이 제정되었음. 이때 성균관과 관련없고 일본 동경대를 졸업한 교육관련 담당자와 주변인들이,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폐지)시켜야 할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하면서, 서울대를 성균관 앞에 놓는 방법으로 성균관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하였음. 미군정에서 교육정책 입안자로 등용되니까, 하위법인 미군정령을 이용해,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의 취지(일본의 주권은 한국에 없고, 경성제국대는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할 일제잔재임)에 어긋나는 교육정책을 만들었던것. 그러나 상위법 우선의 원칙을 따라야 함. 카이로선언은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축출)될것"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또한, 미군정은, 교육분야 아닌 타분야에서 연합국의 적국인 일본의 재산을 적산재산으로 하여, 일본이 카이로선언의 연합국 적국이라는 시각을 따르고 있었음. 미군정기에는 유교국가인 조선.대한제국의 한문성명.본관을 등록하는 조선성명 복구령도 시행되었음. 교육분야에서, 미군정기의 과도기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될 경성제대 활용(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의 정제되지 않은 정책에, 위기를 느낀, 전국 유림들이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유림이면서 임시정부 요인출신 김창숙 선생)를 개최하여, 성균관대를 설립(성균관의 교육기능 승계형태임)하기로 하였음. 새로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성균관장이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하고, 성균관대 학장.성균관장을 겸임하였음.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성균관대가 대학기능을 승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것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며, 고구려 태학이후 한국 최고대학 계보 성균관이었음. 태학(고구려),국자감(고려),고려말 성균관,조선.대한제국 성균관. 일본 강점기때 교육기능 중단 및 왜곡*일본이 항복하여, 미군정부터는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가, 대학교육 역할을 담당하여, 한국 최고 대학 계보임.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미군정때, 국사 성균관 교육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에도, 계속 국사 성균관교육을 실시. 국사교육을 중요시하여, 정부의 각종 고시, 공무원시험등에 국사 채택. *국사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라는건 성균관대, 성균관, 여러 백과사전 공통된 견해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4090602113 [6].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 僧(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가 세운 마당쇠 僧대학). 그 뒤 서울대에 대중언론에서 눌려온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의 비신분제 대학들.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그러나 세계사로 보면, 가톨릭이라는 세계종교는 너무 세계인에 일반화되어서, 국사적개념과 병립하여, 세계사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에서, 국제관습법상 세계종교 가톨릭의 자격으로 예우하는게 적절함. 일본식 개념으로, 일본 국지신앙인 일본 신도(일본의 국교), 불교, 기독교의 위상을, 한국에 적용할수는 없음. 그리고 한국과 바티칸시티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기 때문에, 한국헌법 임시정부가 선전포고하고,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일본의 종교기준을 적용하는게 맞지않음. 불교는 인도에서도 배척당해왔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 불교국 일본의 종교기준대로 하면,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아닌 사회규범이 되어, 일본 신도(불교에서 파생됨), 불교, 기독교만 포교종교고, 유교는 일제강점기의 신생종교인 원불교보다 신자수가 적은 50만(성균관.향교의 제사인구만 유교도라고 1980년대 초반에 통계청 표본조사를 실시하여, 다시 유교에 도전하고 있음)이 되어, 해방한국의 종교주권을 침해당하게 됨.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 가지고 있음. @문화대혁명으로 모택동 주석도 비판받고,중국은 개혁.개방정책으로, 유교 전통명절인 춘절, 중추절, 청명절, 단오절의 4대명절 공휴일을 아주 길게 하였음.@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한국영토에 주권없는 패전국 잔재이자, 하느님.창조신을 부정하는 Chimpanzee계열 불교 일본 서울대Monkey와 추종세력들이 학교교육 세계사의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윤리의 종교교육 유교, 국사등과 달리, 일본강점기때 일본이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했으니까, 유교가 종교아니라고 최근 다시 왜곡하는데,이는 일제잔재 대중언론에 포진하여 루머수준으로 유교에 도전하는것임.@인도에서 불교도는,불가촉賤民.조계종승려賤民한국과비슷.강점기 하느님에 덤비며(창조신내리까는 부처처럼)유교부정,불교Monkey일본.하느님보다높다는 성씨없는 일본점쇠賤民.후발천황(점쇠가 돌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옹립.한국은 세계종교유교국.수천년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숭배.해방후 조선성명복구령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복귀.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국중 하나인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강점기를 겪으며 대중언론등에서 유교가 많이 왜곡되고 있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3424093319 [7]. 필자의 당부사항.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에서만 머물러야 합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275696355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190490049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s://blog.naver.com/macmaca/110185393995 .

2025년 12월 12일 금요일

2025년 겨울. 宮(泮宮.學宮).太學.成均館자격 성균관대 유생이 평가하는 세계적인 대학들.세계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 백과사전, 참고서, 학술서등에 기반함.

2025년 겨울. 宮(泮宮.學宮).太學.成均館자격 성균관대 유생이 평가하는 세계적인 대학들.세계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 백과사전, 참고서, 학술서등에 기반함. 세계적인 대학들. 세계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 백과사전, 참고서, 학술서등에 기반함. World class Universities. It based on World History Text books, Korean History Textbooks, Encyclopedia, Reference Books,Scholarly Books, etc. 필자의 견해는 정사(正史)인 세계사와 한국사 및 백과사전, 학술서등과 한국법.국제법을 종합해서 제시한것입니다. {I}. 서유럽학자들 이름이 많이 나오는 세계사인데, 세계사가 변경되기전에는 2차대전때문에 형성된 강대국 기준으로, 세계사의 다음과 같은 기득권 대학들에 대한 현상개변을 원치 않습니다. - 다 음 - 한(漢)나라 태학(太學).그 이후의 국자감(國子監. 국자감은 京師大學堂으로 대체되고 北京大學으로 계승됨), 볼로냐 대학(Università di Bologna), 파리대학(Université de Paris). 그리고 황하문명 및 세계종교로서의 유교 자격, 2차대전 이전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정신적 지주인 오래된 제도와 자격을 가지신 교황성하 제도. 필자[성균관대 출신 윤진한(宮 儒). 성균관대 경상대학 무역학과 주간, 1983학번. 경제학사]는, 세계사의 대학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승전국등 국가별로 국가주권을 행사하는게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합니다. 과거 역사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변치말아야할 인류역사중 한 부분으로 세계사는 중요하며 이를 대체할만한 문헌은 없습니다. 한국사도 그렇습니다. 중국은 중화민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UN대표국의 지위가 변경된 나라인데, 2차대전 이후에 형성된 UN안보리 상임이사국 명단에서 중국과 프랑스의 순서가 먼저 나오는 것은 세계사의 오랜 전통을 반영하여서 그렇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으로 유교의 세계종교[중국은 수천년간 유교의 천자(天子)국이었음. 황제제도가 없어졌어도 중국천자 제도의 상징성은 어떤 나라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위치가 크게 흔들렸는데, 세계사의 내용이 그대로 유지되어, 이를 토대로 세계종교로서의 유교지위를 유지시키고자 필자는 세계사를 이용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차대전이후에 형성된 새로운 강대국 기준이나 다른 나라들 기준으로, 중국의 태학.국자감(베이징대로 승계),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프랑스 파리대학, 이탈리아.독일에 소재한 교황윤허 대학등에 대한 격하를 시도하면 않됩니다. 2차대전 결과와 상관없이,세계사와 한국사를 바꾸지 못하면,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 학술서적상의 기득권 대학 학벌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참 복잡한 특성인데, 2차대전 결과와 세계사(World History) 및 국사(National History)와 연관지어 이 대학 학벌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나라나 출판사, 학술단체,개인들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대학 학벌문제는, 수많은 갈등과 반복을 통하여 오랫동안 定說.正論으로 유지되어온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中高生 학습서 포함), 학술서적상의 유서 깊은 대학들이나 기득권을 가진 측에서 설립한 대학을 기준으로 하는게 가장 정통성을 인정받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필자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세계사.한국사 교과서(참고서), 사전, 학술서가 바뀌지 않는한 유구한 역사의 기득권들도 바뀌지 않음. 시중에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교과서(참고서), 사전, 학술서에 바탕한 대학들을 비교해도 유구한 역사의 대학들이 바뀌지 않는한 이에 연관된 대학들의 기득권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한편, 2차대전 승전국이 되어 UN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이 된 나라들의 주요 대학들도 변하지 않습니다. {II}. 세계의 대학들. 세계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 백과사전, 참고서, 학술서등에 근거함. World class Universities. It based on World History Text books, Korean History Textbooks, Encyclopedia, Reference Books,Scholarly Books, etc.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세계사에 나오는 대학들을 먼저 알아야 현대의 세계적인 대학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계 4大文明은 존중하지만, 세계의 대학들은 기존 인식대로 아래의 대학들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필자는 世界史 4대 文明, 유교, 중국 한(漢. 太學)과 이에서 이어진 국자감(國子監. 베이징대로 승계됨), 서유럽의 볼로냐, 파리대학, 韓國史 成均館(성균관대로 계승됨) 중심입니다. * 중국 漢나라 太學.그 이후의 국자감(國子監)이나, 서양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등은 세계사 교과서에 등재되었기 때문에, 누군가 합의하여 漢나라 태학(太學).그 이후의 국자감과 볼로냐 대학을 세계사 교과서에서 삭제하기 까지는 그 세계 최초의 대학(볼로냐는 동일 이름 가진 세계 최초의 대학) 정통성을 잃지 않음. * 중국은 세계 최초의 대학인 漢나라 太學이후 魏나라 太學, 隋나라 國子監, 唐.宋 國子監, 元.明.淸 國子監, 淸나라 말기 京師大學堂, 중화민국 시대 北京大로 이어짐. 天子國의 수도에 세워져 天子의 子弟들이 공부하던 대학계보라 할 수 있음. * 이태리 볼로냐대학은 수도원의 대강당에서 시작된 동일 이름 가진 세계 최초의 대학인데, 볼로냐가 敎皇領이었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중세시대 서양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교육되어 온것 같음. 교황령이던 볼로냐는 이태리에 합병되었으나, 지금도 世界史 敎科書에서는 중세시대 서양에 세워진 최초(漢나라 太學이 세계사 교과서에서 세계 최초 대학으로 가르쳐지기 때문에, 볼로냐가 세계 최초대학이라면 동일 이름가진 세계 최초 대학을 의미할것)대학으로 교육되고 있음. * 한국은 高句麗 太學부터 유교 최고대학이 있는데,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이던 成均館은 해방이후 成均館大學校로 600년 전통이 이어지고 있음. [1]. 세계사(世界史,World History)의 대학들. 1]. 중국(中國, China): 베이징대학교. 1898년, 원·명·청 시대에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국자감(國子監)을 대체하여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으로 창설. 세계 최초의 대학, 한(漢)나라 태학[太學(유교대학)]. 이후 위(魏)나라 태학(太學), 수(隋)나라 국자감(國子監), 당.송(唐.宋) 국자감(國子監), 원.명.청(元.明.淸)의 국자감(國子監)으로 이어지다가 청(淸)나라말기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으로 명칭이 바뀌고 나중에 다시 북경대학(北京大學, 베이징대학, Peking University)으로 명칭바뀜. 중국(中國) 한(漢)나라 태학(太學)이 세계사에 나타나는 세계(世界) 최초(最初)의 대학임은 정설(定說)입니다. 한국의 두산백과에 나타난 바로는, 청(淸)나라말기 원.명.청(元.明.淸)의 국자감(國子監)을 이어 설립된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은 태학과 국자감에서 이어진 대학 계보고,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에서 이어진 중국대학이 북경대학(北京大學, 베이징대학, Peking University)입니다. 1. 두산백과에 나오는 베이징 대학교 설명. 베이징대학교 [ Peking University , 北京大學(북경대학) ] 요약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있는 중국 최초의 국립 종합대학교. 국립 1898년 중국 베이징 2.73㎢ 4,206명 대학 1만 5128명, 대학원 1만 5039명 www.pku.edu.cn 1898년, 원·명·청 시대에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국자감(國子監)을 대체하여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으로 창설하였다. 1902년 경사대학당의 교육학원이 오늘날의 베이징사범대학교로 떨어져 나갔고 1912년 중화민국 성립에 수반하여 국립 베이징대학으로 개칭되었다. 1917년 학장으로 취임한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개혁으로 신문화운동의 중심이 되어 근대 학술연구와 토론의 자유 학풍을 확립하였고, 특히 1919년의 5·4운동이 재학생들에 의해서 추진된 이후 학생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20년 난징대학교에 이어 중국에서 2번째로 여학생 입학을 받아들였다. 중일전쟁중인 1937년에 국민정부가 칭화대학, 난카이[南開]대학과 함께 후난성 창사[長沙]의 오지(奧地)로 모아서 합병하여 창샤임시대학교로 만들었다가 1938년 다시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으로 옮겨 시난[西南]연합대학을 조직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6년 연합대학은 해산되어 각각의 학교로 분리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1952년의 대학 재편성에 의하여 옌징[燕京]대학을 합병하고 칭화[淸華]대학과의 조정이 단행되어 문·이과계의 기초이론을 중심으로 한 종합대학으로 개편되었다. 1952년 베이징 도심에서 옛 옌징대학 캠퍼스 자리로 옮겼으며 1966~1976년의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는 1970년까지 3년 동안 휴교조치가 내려졌다. 1977년부터 국가통일 입시제에 의하여 입학자를 선발하고 있으며 2000년 베이징의과대학교를 합병하여 베이징대학교 보건 캠퍼스를 조성하였다. 2010년 수학, 물리학, 의학, 생명과학, 전기·컴퓨터공학, 환경공학, 역사, 중국학·문학, 심리학, 고고학·박물관학, 철학, 외국어, 예술, 국제학, 경제학, 경영학, 법학, 정보경영학, 사회학, 마르크스학, 언론통신학 등 38개 학원(学院;단과대학)·계(系;독립학과)·부에서 학부과정과 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베이징의 주 캠퍼스와 보건 캠퍼스, 광둥성[廣東省] 선전[深圳] 캠퍼스가 있다. 베이징 서쪽 교외지역에 위치한 주 캠퍼스는 이화원과 원명원 등 역사 유적이 가깝고, 이공계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칭화대학과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도 인접해 있다. 웨이밍호[未名湖]로 둘러싸였으며 청 왕조의 정원이 자리 잡았던 곳이어서 옛 건물, 정원, 정자 등 중국 전통적 경관이 남아 있다. 선전 캠퍼스에는 선전대학원이 있다... . 출처: 베이징대학교 [Peking University, 北京大學(북경대학)] (두산백과) 2. 중국어판 북경대학 소개자료. a). 중국의 바이두백과에 나타나는 베이징대(北京大学). http://wenku.baidu.com/view/3c077fda6bec0975f465e290.html 위에 나타난 baidu. 필자가 첨언하면 Baidu는 중국의 百度文库(백도문고)입니다. 북경대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北京大学 北京大学, 中国最高学府, 创办于 1898 年, 初名京师大学堂, 是中国第一所国立大学, 也是中国近代最早以 “ 大学 ” 身份和名称建立的学校,其成立标志着中国近代高等教育的开 端。 北大是中国近代唯一以最高学府身份创立的学校, 最初也是国家最高教育行政机关, 行 使教育部职能, 统管全国教育; 并开创了中国高校中最早的文科、 理科、 政科、 商科、 农科、 医科等学科的大学教育, 是近代以来中国高等教育的奠基者。 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 最高学府 —— 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又开创了 中国近代高等教育先河,可谓 “ 上承太学正统,下立大学祖庭 ” 。在中国近现代史上,北大始 终与国家民族的命运紧密相连,深刻的影响了中国百年来的历史进程。 * 필자가 주안점을 두는 문구는 다음 문구임. 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 最高学府 —— 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 북경대는 중국 수천년의 국가 최고학부를 전승해오고 있다. 태학(국자학, 국자감)적 학통- 중국고대 최고학부정통을 이전에 계승했었다. b). 125교육망 중국연구생 (학생모집) 정보네트워크에 나타난 베이징대(北京大学). http://www.125edu.com/puyan/zhinan/201508/647c98380.html 125edu.com은 중국어판 125教育网【中国研究生招生信息网입니다. 125교육망 중국연구생 (학생모집) 정보네트워크입니다. 一、北京大学   北京大学,中国最高学府,创办于1898年,初名京师大学堂,是中国第一所国立大学,也是中国近代最早以“大学”身份和名称建立的学校,其成立标志着中国近代高等教育的开端。北大是中国近代唯一以最高学府身份创立的学校,最初也是国家最高教育行政机关,行使教育部职能,统管全国教育;并开创了中国高校中最早的文科、理科、政科、商科、农科、医科等学科的大学教育,是近代以来中国高等教育的奠基者。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最高学府——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又开创了中国近代高等教育先河,可谓“上承太学正统,下立大学祖庭”。在中国近现代史上,北大始终与国家民族的命运紧密相连,深刻的影响了中国百年来的历史进程。 * 필자가 주안점을 두는 문구는 다음 문구임. 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最高学府——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 2]. 서유럽.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 프랑스 파리대학교. 1.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Università di Bologna). 1088년 페포네(Pepone)와 로마 법학자 이르네리오(Irnerio)가 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교회법(Canon)과 민법을 가르침으로써 볼로냐 법학의 기초를 세움. 1158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플드맇 1세(재위 1152~1190)는 이 지역의 학생집단을 자치단체로 공인하고 칙령내림.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볼로냐 대학교. 볼로냐대학교 [ University of Bologna ] 요약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州)의 주도(州都) 볼로냐에 있는 주립 종합대학교. 원어명구분개교일소재지교훈홈페이지 Università di Bologna 주립 1088년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 볼로냐 Alma mater studiorum(모든 학문이 퍼져 나간 곳) www.unibo.it 1088년 페포네(Pepone)와 로마 법학자 이르네리오(Irnerio)가 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교회법(Canon)과 민법을 가르침으로써 볼로냐 법학의 기초를 세우게 되었다. 1158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재위 1152~1190)는 이 지역의 학생집단을 자치단체로 공인하고 칙령을 내렸다.당시 학생들은 도시로부터 독립한 독자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것이 볼로냐대학의 핵심이 되었다. 13세기 후반에 이르러 교사(校舍)를 짓고, 법학뿐 아니라 신학·철학·의학도 강의하게 되었는데, 특히 의학부는 세계 최초로 해부학을 교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1802년 국립대학으로 개편되었다. 이전까지는 프리드리히 1세가 칙령을 내린 1158년을 대학 설립일로 삼았지만, 19세기의 역사학자인 조수에 카르두치(Giosuè Carducci)가 1088년에 처음으로 교육기관이 세워졌다는 사실을 밝혔고, 2000년 세계 최초의 대학임을 강조하기 위래 ‘모든 학문이 퍼져 나간 곳(Alma Mater Studiorum)’이라는 새로운 교훈을 지었다. 주정부가 재정을 지원한다. 2010년 기준 농학부, 건축학부, 인문학부, 경제학부, 교육학부, 공학부, 운동·체육학부, 언어·문학부, 산업화학부, 법학부, 수학·물리학·자연과학부, 의학부, 약학부, 정치학부, 문화유산보존학부, 심리학부, 통계학부, 수의학부 등의 23개 학부에서 다양한 학부·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입학 후 3년 과정 라우레아(Laurea) 학위를 딴 후에 이어서 비슷한 수의 학생들이 2년 과정의 전문학위인 라우레아 스페찰리스티카(Laurea specialistica) 학위를 따게 된다. 그러나 일부 과정은 5년 기간의 한 가지 학위과정으로만 이루어지기도 하며, 의학 부문은 6년이 걸린다. 볼로냐 캠퍼스 외에 체세나(Cesena) 캠퍼스, 2001년 문을 연 포를리(Forlì) 캠퍼스, 라벤나(Ravenna) 캠퍼스, 리미니(Rimini) 캠퍼스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도 캠퍼스가 있다. 부속시설로는 도서관, 팔라초 포지박물관, 정보공학·통신을 위한 전자체계연구센터, 암학부연구센터, 이슬람학학제연구센터 같은 연구기관 등이 있다... 출처: 볼로냐대학교 [University of Bologna] (두산백과) 2. 프랑스. 파리대학교. 1215년 파리공교회(公敎會)의 부속학교 등을 모체로 하여 설립. 13세기에 자치권 획득을 위하여 몇 차례 투쟁을 벌인 결과 로마 교황과 프랑스 국왕으로부터 자치권 획득.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파리 대학교. 파리대학교 요약 1215년 파리에 설립되어 1968년에 해체될 때까지 프랑스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 된 대학. 파리대학교 원어명 Université de Paris 1215년 파리공교회(公敎會)의 부속학교 등을 모체로 하여 설립되었다. 설립 당초에는 모두 같은 성직자 신분을 가졌던 교수와 학생의 연구·교육을 목적으로 한 길드(동업조합)였으나, 13세기에 자치권 획득을 위하여 몇 차례 투쟁을 벌인 결과 로마 교황과 프랑스 국왕으로부터 자치권을 얻었다. 중세 전체를 통하여 학사과정(자유학부)에서는 3학(문법학, 수사학, 논리학과 4과(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를 가르쳤다. 학사학위 취득자는 다시 석사학위·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하여 전문과정(신학부·법학부·의학부)에 진학할 수 있는 제도로 되어 있었다. 유럽 전역에서 많은 영재들이 이들 학문을 배우기 위해 파리대학교로 몰려왔으며, 특히 신학부가 유명하였다. 신학부의 중심은 13세기에 가난한 신학생들을 위하여 로베르 드 소르본(Robert de Sorbon) 신부가 세운 기숙사 겸 연구소였던 소르본 학사(學舍)였으며, 소르본이라는 이름은 그 후 파리대학교 전체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다. 르네상스이후 파리대학교는 근대과학의 발전에 따라가는 능력을 잃고 점차 정체되었다. 프랑스 혁명후인 1790년대에는 혁명의회로부터 국권이 미치지 않는 학자와 학생들의 경직된 길드라는 비난을 받고 학부(faculté )라는 명칭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1세의 '제국학제(帝國學制)'가 확립되면서 다시 학부라는 명칭이 부활되었다. 또한, 국가를 대신하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권한이 인정되고, 1806년에는 교회와의 관계도 완전히 단절되었다. 1893년과 1896년에 제정된 2개의 법률에 의하여 1개의 대학구(大學區)에 있는 몇 개의 대학의 집합체에 '유니베르시테(université )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게 되면서 법인격과 재정면에서 자치권을 가진 학부의 통합체로서 파리대학교가 성립되었다. 이와 동시에 지방에도 1개 대학구에 1개 대학교(유니베르시테)라는 시스템이 확립되어 20세기 들어 크게 발전하였다. 1966년 11월에 열린 '제2회 칸회의'(고등교육과 학술 연구 개혁을 위한 최고 전문가회의)에서는 당시 전국 대학생의 30%에 해당하는 20만 명의 재학생을 갖고 있던 파리대학교의 개혁을 중심으로 전국 23개 대학의 학생수를 적정규모(최대 2만 명)로 억제하기 위한 과제가 토의되었다. 여기에서 파리 지역에는 15개 전후의 대학을 설치하는 안이 제출되었다. 그후 '포르 개혁'이라고 불리는 교육제도 개편의 결과 1970년대 초까지 파리대학교를 비롯한 전국 23개 대학의 해체·재편작업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70여 개의 신제 대학이 구제의 학부를 대신하는 새로운 교육·연구단위기관으로 발족하였다. 파리대학교가 해체되면서 파리 시내의 '파리대학구'에 파리 제1대학에서부터 파리 제9대학까지가, 시외의 '베르사유대학구'에 파리 제10대학과 파리 제11대학이, 역시 같은 시외의 '크레테유대학구'에 파리 제12대학과 파리 제13대학이 설치되어 모든 국민에게 개방된 신제 국립종합대학교로 재출발하였다. . 출처: 파리대학교(두산백과) {III}. 한국사(韓國史,Korean History)의 대학. 성균관대(국사의 성균관 자격 승계). 성균관대학교의 연원은 1398년(태조 7)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성균관에서 시작.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으로서 국가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전통적인 유학 교육을 실시. 한국 국사 교과서(참고서 포함)에서 가르치는,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을 승계한대학은 현재의 성균관대학교(成均館大學校,SungKyunKwan University)로 600년 역사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국정부의 대통령령으로 발행한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를 적용시, Royal대는 국사 성균관 자격을 가진 600년 넘는 역사의 성균관대[한국 최고(最古,最高)대]입니다. .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 나타나는 성균관대학교. 성균관대학교 [ 成均館大學校 ] 이칭별칭 이칭 성균관대, 이칭 성대 유형:단체 시대:현대 목차:정의개설연원 및 변천기능과 역할현황 정의: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개설 성균관대학교의 성균관이라는 명칭은 1398년(태조 7)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조선왕조 성균관에 연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성균관의 전통을 계승하여 교시(校是)인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의 유도정신(儒道精神)을 바탕으로 바른 인성을 갖고 글로벌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교육목표를 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1895년 갑오개혁과 함께 신학제가 실시되면서 성균관에 3년제 경학과(經學科)가 별도로 설치되었는데, 성균관은 제향 기능을 담당하고 경학과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여 유학 경전을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역사학 · 지리학 · 수학 등 근대적인 교과목도 부과되었다. 이밖에 교육의 목적, 교육과정의 운영, 입·퇴학 절차, 각종 시험 및 학생의 특전, 학기제 채택 등 전통적 교육기관에서 근대학교로의 제도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중세사회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성균관이 이로부터 근대적인 고등교육기관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권상실 뒤 일제에 의하여 경학원(經學院)으로 개편되면서,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은 사라지고 문묘(文廟)의 제향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의 기능만 수행하게 되었다. 1946년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할 대학 설립을 위한 성균관대학기성회가 유림대회(儒林大會)를 통하여 조직되고 김창숙(金昌淑)의 주도로 종전의 명륜전문학교의 재단을 병합한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발족하면서 같은 해 9월 정규 단과대학인 성균관대학이 인가되었다. 설립에 필요한 대지는 독지가 이석구(李錫九)가 재단법인 학린사(學隣舍)의 토지를 희사하였다. 문학부와 정경학부를 설치하고, 초대 학장에 김창숙이 취임하였다. 1953년 2월 종합대학인 성균관대학교로 승격되어 문리과대학 · 법정대학 · 약학대학의 3개 단과대학과 1개 대학원의 편제를 갖추었고, 같은 해 6월 각 도의 향교재단(鄕校財團)에서 재산을 기부함에 따라 재단법인을 성균관으로 확대해 개편하였다. .출처: 성균관대학교 [SUNGKYUNKWAN University, 成均館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서강대는, 세계사의 교황제도 반영, 국제관습법상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연합국 국가원수들의 포츠담선언(포츠담선언은 미군정의 상위법, 일본관련, 포츠담선언은 카이로선언도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불교 Monkey 일본.*서유럽과는 다르게 한국,대만,아시아,쿠릴열도에 적용되는 포츠담선언의 일본관련 조항들.*일본이 교육기능 폐지시킨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 미군정때 성균관을 복구하는 법률(공자묘 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이 제정되었음. 이때 성균관과 관련없고 일본 동경대를 졸업한 교육관련 담당자와 주변인들이,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폐지)시켜야 할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하면서, 서울대를 성균관 앞에 놓는 방법으로 성균관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하였음. 미군정에서 교육정책 입안자로 등용되니까, 하위법인 미군정령을 이용해,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의 취지(일본의 주권은 한국에 없고, 경성제국대는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할 일제잔재임)에 어긋나는 교육정책을 만들었던것. 그러나 상위법 우선의 원칙을 따라야 함. 카이로선언은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축출)될것"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또한, 미군정은, 교육분야 아닌 타분야에서 연합국의 적국인 일본의 재산을 적산재산으로 하여, 일본이 카이로선언의 연합국 적국이라는 시각을 따르고 있었음. 미군정기에는 유교국가인 조선.대한제국의 한문성명.본관을 등록하는 조선성명 복구령도 시행되었음. 교육분야에서, 미군정기의 과도기에, 주권.학벌없고 축출해야 될 경성제대 활용(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변경)의 정제되지 않은 정책에, 위기를 느낀, 전국 유림들이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김구, 위원장:유림이면서 임시정부 요인출신 김창숙 선생)를 개최하여, 성균관대를 설립(성균관의 교육기능 승계형태임)하기로 하였음. 새로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성균관장이 미군정에 성균관대를 대학으로 등록하고, 성균관대 학장.성균관장을 겸임하였음.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하여, 성균관대가 대학기능을 승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것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이며, 고구려 태학이후 한국 최고대학 계보 성균관이었음. 태학(고구려),국자감(고려),고려말 성균관,조선.대한제국 성균관. 일본 강점기때 교육기능 중단 및 왜곡*일본이 항복하여, 미군정부터는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가, 대학교육 역할을 담당하여, 한국 최고 대학 계보임. 성균관은 제사기구로 2원화.*미군정때, 국사 성균관 교육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에도, 계속 국사 성균관교육을 실시. 국사교육을 중요시하여, 정부의 각종 고시, 공무원시험등에 국사 채택. *국사 성균관의 승계대학이 성균관대라는건 성균관대, 성균관, 여러 백과사전 공통된 견해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4090602113 {IV}. 필자가 백과사전, 참고서,주요 학술서적에서 보고 익힌 세계의 대학들. [1]. 동아시아 유교권. 1]. 중국(中華人民共和國). 베이징대(北京大學, Peking University,북경대학교)외에도 칭화대학(淸華大學, Tsinghua University), 베이징 사범대학[北京師範大學, 1902년에 경사대학당사범관(京师大学堂师范馆])으로 개교]이 있음. 중국 태학이나 국자감,경사대학당은 유교권 천자가 세운 전통으로, 황제들이 황태자때 공부하고 천자(황제)가 됨. 2]. 태학에서 공부하던 천자의 아들들. 연암집 제 10권 별집. 原士편 천자의 원자(元子)와 적자(適子)가 태학에 입학하여... .출처:한국 고전번역원/신호열 김명호 공역/2004 3]. 태학생의 선발과 출로. 태학생의 선발과 출로[편집] 太學生-選拔-出路 한대 박사의 임명 및 태학생의 선발은 태상경(太常卿)의 권한에 속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태상경이 18인 이상을 선발하여 '박사제자'로 충당하는 규정을 세웠으나, 그 뒤에는 지방의 관리들이 추천한 학생도 태학에서 면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경(公卿) 자제들은 정식추천을 거치지 않고 입학할 수 있어 다소의 문란을 초래하였다. 그래서 태학 학생들의 출신성분은 다양했다. 공경 자제, 지방정부에서 추천한 공사비(公私費) 평민학생, 부호출신, 빈한한 가정 출신도 있었고, 외국인 흉노 유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이 졸업한 뒤의 진출상도 다양하여 하급관리로부터 공경·제왕(帝王)도 있었다. . 출처: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4]. 중국에서 황태자등을 가르치던 국자감 설명. 국자(國子)와 연관되어 설명하고 있음. 國子監과 國子 두가지 설명. a). 국자감(國子監): 중국에서 황태자(皇太子)와 태자 및 귀족 자제(子弟)와 민간 수재(秀才) 들을 가르치던 대학(大學). 여기의 교수(敎授)를 국자박사(國子博士)라 했는데 당(唐)의 한유(韓愈, 자 퇴지退之)가 국자박사를 지냈음.<사물기원事物紀原><한유韓愈 진학해進學解>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성종(成宗) 때부터 유학(儒學)을 가르치던 관아로 후에 성균관(成均館)으로 명칭이 바뀌었음. b). 국자[ 國子 ]: 공경대부(公卿大夫)의 자제.<주례周禮> .출처: 한시어 사전, 전관수, 2007.7.9, 국학자료원 c). 주나라 천자가 건립한 벽옹. 벽옹(辟雍): 중국 주(周)나라때 천자(天子)가 도성(都城)에 건립한 대학(大學) .출처: 벽옹(辟雍) (한국 고전용어 사전,2001.3.30,세종대왕 기념사업회) d). 한 무제가 세운 한나라 태학. 무제는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가 사상을 국가 통치의 원리로 삼았다. 이에 따라 수도 장안(오늘날 시안)에 국립 대학인 태학을 설치하고 오경 박사를 두어 유교 경전을 가르치게 하였다. .출처: 중국문화의 기틀을 다진 한나라(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2011.9.5, 휴머니스트) e). 국립국어원의 국자학 설명. 국자학 國子學. . 고려 시대에, 국자감에서 삼품관 이상 고관의 자제만 입학하던 전문 학과. . 중국 진(晉)나라 때에, 무제가 귀족 자제나 영재를 가르치기 위하여 만든 교육 기관. 한(漢)나라 때에는, 태학이었으며, 수나라 이후 국자감으로 이름을 고쳤다. f). 동아시아 유교권의 현대 대학들. 가). 중국. 칭화대학교. 중일전쟁 중인 1937년에 국민정부가 베이징대학, 난카이[南開]대학과 함께 후난성 창사[長沙]의 오지(奧地)로 모아서 합병하여 창샤임시대학교로 만들었다가 1938년 다시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으로 옮겨 시난[西南]연합대학을 조직.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칭화대학교. 칭화대학교 [ Tsinghua University , 淸華大學(청화대학) ] 요약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국립 1911년 중국 베이징 자강불식 후덕재물(自强不息 厚德載物:스스로 끊임없이 강하게 만들고, 덕을 쌓은 위에 물질적인 발달을 꾀한다) 3.95㎢ 4,868명(2009) 대학 1만 3915명, 대학원 1만 2831명(2009) www.tsinghua.edu 1911년 4월 26일, 의화단(義和團) 운동의 결과로 인해 중국 정부가 서구 열강에 대한 배상금 명목으로 미국에 조차하던 지역에 미국 유학생 양성기관인 '칭화학당[淸華學堂]'으로 설립하였다. 이후에 ‘칭화학교’로 개칭하였고 종합대학으로 바뀌었으며, 1928년 국립대학으로 개편하면서 국립칭화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중일전쟁 중인 1937년에 국민정부가 베이징대학, 난카이[南開]대학과 함께 후난성 창사[長沙]의 오지(奧地)로 모아서 합병하여 창샤임시대학교로 만들었다가 1938년 다시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으로 옮겨 시난[西南]연합대학을 조직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6년 연합대학은 해산되어 각각의 학교로 분리되었다. 1952년 중국 정부가 결정한 ‘전국 공학원(工學院) 조정방안’에 따라 공학부에 베이징대학과 옌징[燕京]대학의 공학계통을 통합 흡수하고, 문학·이학·법학은 베이징대학교로 옮겼다. 1978년부터 1980년대 초에 걸쳐 이과, 경제경영, 인문사회과학, 건축학, 법학, 의학 부문 등을 만들었고 다시 종합대학교가 되었다. 2010년 기준 건축, 토목수리, 기계공정, 우주항공, 마르크스주의, 정보과학기술, 이과, 경제관리, 공공관리, 인문사회과학, 법학, 신문방송, 미술, 의학의 14개 학원(단과대학)에서 학부과정과 석사·박사과정을 제공하며 1985년 설립된 칭화대학계속교육학원[淸華大學繼續敎育學院]이 있다. 특히 공학 계열은 중국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며, 대학 부설 연구소로 46개 연구소와 167개의 다양한 실험실을 보유한다. . 출처:칭화대학교 [Tsinghua University, 淸華大學(청화대학)] (두산백과) 나). 중국. 베이징 사범대학교. 1902년에 경사대학당사범관[京师大学堂师范馆]으로 개교.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베이징사범대학교. 베이징사범대학교 [ 北京師範大學校(북경사범대학교) ] 요약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있는 국가교육부 직속 사범대학교로, 중국에서 설립된 최초의 사범대학이다. 국립 사범대학 1902년 중국 베이징 사람의 모범이 되기 위해 배우고, 세상의 모범이 되도록 행동하라[学为人师,行为世范] 794,355㎡ http://www.bnu.edu.cn/ 중국 국무원이 지정한 10대 중점 사범대학으로, 1902년에 경사대학당사범관[京师大学堂师范馆]으로 개교하였다. 1923년 베이징사범대학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31년에 베이핑여자사범대학[北平女子师范大学], 1952년 푸런대학[辅仁大学]과 합병하였다. 1959년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의해 최초의 전국 중점대학으로 지정되었다. 대학교 내 학부와 학과, 대학으로는 교육학부, 지리과학학부, 심리학부, 물리학과, 천문학과, 법대학, 철학대학, 경영대학, 마르크스주의 대학, 중국 사회 관리 아카데미/사회학 대학, 체육 스포츠 대학, 중국어문학대학, 중국어문화대학, 외국어문학대학, 저널리즘 및 커뮤니케이션대학, 역사대학, 수리과학대학, 화학대학, 시스템과학대학, 통계대학, 환경대학, 생명과학대학, 인공지능대학, 원자력과학기술대학, 정부대학, 사회개발 및 공공정책대학, 예술 및 커뮤니케이션대학, 평생교육 및 교사훈련대학, 일대일로(Belt and Road)대학, 미래교육대학이 있다. 이중 수학, 환경/생태, 지구과학, 농업과학, 신경과학 및 행동과학, 화학, 정신의학/심리학, 공학, 물리학, 재료과학, 사회과학총론, 식물학, 축산학, 생물학 및 생물화학, 임상의학과 같은 전공 분야는 세계 대학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연구소로는 경제자원관리연구소, 형사법률과학연구소, 물과학연구소, 재난경감방재연구소, 세계변화 및 지구시스템과학연구소, 기본교육품질평가협업혁신센터, 베이징 문화혁신 및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중국 정보처리 연구소, 베이징문화개발연구소, 신소재 연구소, 교재 연구소가 있다. 교훈은 “사람의 모범이 되기 위해 배우고, 세상의 모범이 되도록 행동하라[学为人师,行为世范]”이다. 본교는 베이징시 중심부에 있으며, 캠퍼스 부지 면적은 794,355㎡에 달한다. 베이징사범대학교는 약 500여 개의 대학과 국제기구, 3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매년 900명 이상의 국제적인 교수와 학자를 수업 및 연구에 초청하고 있다. 또한 2000여 명의 장기 유학생이 있으며, 이같은 규모는 중국 대학 내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 출처: 베이징사범대학교 [北京師範大學校(북경사범대학교)] (두산백과) 다). 한국. 서강대학교. 1960년 2월 재단법인 한국예수회에서 서강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같은 해 4월 개교. 1948년 한국 가톨릭교회의 발의와 교황 비오(Pio) 12세의 윤허로 대학 설립이 기획됨. 한국은 Royal대인 宮 성균관대(한국 최고대), 서강대(성대 다음 Royal 예우)가 Royal대학임. 세계사를 반영하여, 교황성하 윤허로 설립된 귀족계파 예수회에서 설립한 서강대는 宮성균관대 다음의 Royal대로 예우함. Royal대인 서강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대학으로, 귀족계파인 예수회 산하의 대학입니다. 불법.강제의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에서,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한나라이후 동아시아의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를 겪고 있고, 서유럽은 이탈리아.독일이 패전국이 되어서 과거의 빛나는 명성만큼 못한 상태입니다. 세계사의 자격은 그대로 유효한 상태라 다행이기는 합니다. 한국은 대중언론에서 발호하는 일제 강점기 잔재대학들의 도전에, 宮성균관대에게 꼭 필요한 대학이 서강대학교로, 공생관계를 이어가며 유교.가톨릭의 세계사적 세계종교의 기득권을 계승해야 합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중국 태학.국자감(베이징대로 승계),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 한국 성균관(성균관대로 승계)의 과거 위상이 이전같지 않은 상태에서 유교.가톨릭 그리고 오랜 대학역사를 계승하기 위해 공생관계로 이어져야 할 동아시아의 중요한 대학이 서강대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불교 Monkey일본 항복후, 미군정 때,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의무적으로 주민등록(이전에는 호적 포함)에 조선 유교 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해야 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으로 복귀하였습니다. 5,000만이 유교도입니다. 그러므로 서강대는 한국 유교의 틀 내에서, 학내에서만 자치성격의 가톨릭 예수회 학교로 존재하며 일제 강점기 잔재를 극복해야 하겠습니다. .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 나타나는 서강대학교. 서강대학교 [ Sogang University , 西江大學校 ]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에 있는 사립종합대학교. 1960년 4월에 개교하였다. 서강대 단체 현대 대학교, 사립종합대학교 1960년 4월 게페르트(Theodor Geppert) 정의 서울특별시 마포구 백범로(신수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연원 및 변천 1960년 2월 재단법인 한국예수회에서 서강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같은 해 4월 개교하였다. 1948년 한국 가톨릭교회의 발의와 교황 비오(Pio) 12세의 윤허로 대학 설립이 기획되었고, 예수회 게페르트(Theodor Geppert) 신부의 주도로 1956년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발족되면서 대학의 설립에 이르게 되었다. 초대 학장에 킬로렌(K. E. Killoren) 신부가 취임하였으며, 영어영문학과·사학과·철학과·수학과·물리학과·경제학과를 두었다. 1963년 독어독문학과·생물학과·경영학과를 신설하였다. 1964년 국어국문학과·화학과를 설치하고 제1회 졸업생 62명을 배출하였으며, 같은 해 4월 「사립학교법」에 따라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학교법인 서강대학으로 개편되었다. 1966년 무역학과, 1967년 대학원, 1968년 신문방송학과, 1969년 전자공학과를 신설하였고, 1970년 3월 종합대학인 서강대학교로 개편하여 초대 총장에 데일리(J. P. Daly) 신부가 취임하였다. 1973년 대학원에 박사과정을 설치하고 1980년 경영대학원, 1988년 공공정책대학원, 1997년 국제대학원·정보통신첨단기술대학원을 개원하였다. 1999년 학생설계 전공제도를 시행하였고, 벤처산업 육성을 위한 서강창업보육센터를 설립하였다. 2001년 8월 경영관 마태오관을 건립하고, 2002년 예비대학을 신설하였다... 2017년 현재 12개 대학원, 8개 학부에 학부생은 8,119명, 전임교원은 424명이다. 표어는 ‘그대 서강의 자랑이듯, 서강 그대의 자랑이어라’이다. 가톨릭 예수회 세계관에 입각하여 학문을 탐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인간의 생명가치를 존중하는 인재 양성을 교육목적으로 하고 있다. 6년 이상 근무한 전임교원에게 1년간 강의나 기타 학교업무를 일체 맡기지 않고 휴식기간을 제공하는 교수안식년제를 국내 최초로 채택하여 현재까지 실시해오고 있다. 또한 개교 당시부터 결석 초과로 인한 과목낙제제도로 대표되는 출결석 관리를 철저하게 시행하였고, 지금도 강의실 좌석을 지정해서 앉게끔 하는 등 철저한 학사관리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 출처: 서강대학교 [Sogang University, 西江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기독교권(基督敎圈,Christian Culture). 1]. 서유럽(Western Europe). 1. 이탈리아. 로마대학. 이탈리아는 세계사의 볼로냐대학이 대표적이지만, 교황이 설립한 로마대학도 있습니다. 로마대학은 1303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스투디움 오르비스(studium urbis:도시대학)라는 이름의 문과와 법학과를 가진 일반 대학으로 세움.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로마대학교. 로마대학교 [ University of Rome ] 요약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Università Degli Studi di Roma 국립 1303년 보니파키우스 8세 이탈리아 로마 볼로냐대학교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1303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스투디움 오르비스(studium urbis:도시대학)라는 이름의 문과와 법학과를 가진 일반 대학으로 세웠으나, 얼마 못 가서 교황의 아비뇽 유수(幽囚)와 교회분열로 말미암아 쇠퇴하였다. 1431년 교황 에우제니오 4세가 재건에 착수한 이래, 교황 레오 10세와 식스토 4세·알렉산데르 7세의 손을 거쳐 학부(學府:palazzo della sapienza)가 완성되었으며, 1871년 이탈리아 왕국이 수립된 후부터 국가의 중심적인 대학으로 발전하였다. 1935년 국립대학이 되었으며, 새로이 건설된 대학도시(cita universitaria)로 이전하였다. 법학·정치학.경제학.문학.교육학.의학.약학.공학.건축학.사서학등의 학부가 있다. 부속시설로 개발도상국 연구 센터, 인간자동화 센터(CISADU), 생물의학 시스템 모델·정보분석 종합연구 센터(CISB), 역사적 건축 보존 기술과학 종합연구 센터(CISTEC), 자연·인공 시스템 인식 프로세싱 연구 센터(ECONA), 국제 상대론적 천체물리학 센터(ICRA), '산 마르코 프로젝트' 연구 센터 등이 있다. . 출처: 로마대학교 [University of Rome] (두산백과) 2. 바티칸시티. 이탈리아의 로마 북서부에 있는 가톨릭 교황국. 교황이 원수(元首)로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는 국가. 그레고리오 대학이 대표적[전 세계 추기경(195명)의 3분의 1, 주교(약 4700명)의 4분의 1, 성인 21명, 교황 16명을 배출한 대학]. . 가톨릭 평화신문에 나타나는 그레고리오 대학교. 가톨릭 평화신문 <가톨릭대학교-평화신문 공동기획> 로마 그레고리오대학 수많은 인재 배출한 예수회 교육사업 '심장부' 2003.12.07발행 [751호] 전 세계 추기경(195명)의 3분의 1, 주교(약 4700명)의 4분의 1, 성인 21명, 교황 16명을 배출한 대학….  올해로 설립 452돌을 맞는 로마 그레고리오대학(Pontifica Universita Gregorina, 총장 프랑코 이모다 신부)의 외형적 업적이다.  신학대학에서까지 서열을 따지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그레고리오대학이 가톨릭 최고 신학대학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227개 고등교육기관을 설립, 운영하고 있는 예수회가 교육사업의 '마지막 보루', 또는 '심장부'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대학이 그레고리오대학이다.  하지만 명성에 비하면 대학 건물과 규모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왜소하다. 로마 시내 필로타 광장 부근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석조건물에는 세월의 흔적 같은 더께가 두껍게 덥혀 있다. 장서 500만권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은 책을 얼마나 층층이 빽빽하게 쌓아놓았는지 출구가 헷갈릴 정도다. 이런 곳에서 신학계 거장들이 신학흐름을 주도해오고, 세계 각국에서 젊은 인재들이 모여들어 신학탐구에 몰두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레고리오대학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신학연구의 중심축이 독일권에서 로마권으로 완전히 기울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학 학풍과 흐름은 칼 라너·라칭거·발터 카스퍼·한스 큉·이브 콩가르 등 쟁쟁한 신학자들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주도했다. 한스 큉 박사가 교황 무류권 논쟁을 촉발시켰듯이 이들 신학자들의 진보적 학설과 주장은 때로 로마 교황청과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과 오스트리아 신학대학들이 성소와 재정 부족으로 침체되자 교황청은 유명 신학자들을 로마로 집결시키고 있다. 한때 독일에서 튀빙겐학파를 이끌었던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교황청 일치평의회 의장, 독일 교의신학의 거장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신앙교리성장관을 맡고 있는 것이 이같은 분위기를 포착할 수 있는 사례다. 교황청은 그레고리오대학과 라테라노대학(로마교구 설립)을 신학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모다 프란치스코 총장 신부는 "사회변화가 심하고, 사상 문화의 흐름이 워낙 빠르기 때문에 몇년 전 강의한 내용으로는 오늘날의 학생들을 가르칠 수가 없다"며 "예를 들어 한 교수는 동성애 윤리를 연구, 강의하다 그걸 접고 최근 AIDS 윤리로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대학을 명문(名門)으로 만드는 주인공이 교수인가, 아니면 학생인가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라는 질문과 같다. 그러나 고레고리오대학만큼은 교수가 전통과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학측이 유명 신학자, 특히 기초·교의 신학 거장들을 강단에 세우기 위해 쏟는 열정은 대단하다. 예수회 회원 가운데 그 분야 최고 전문가가 없다면 타수도회와 타대학에서 전문가를 데려오는 데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독일 강단의 신학자들이 초빙교수 자격으로 와서 한 학기 강의를 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그러면 그 교수 밑에서 공부하는 독일 학생들도 로마로 따라 내려온다. '그리스도 은총론'의 기스펠트 그레사케, 신약성서 주석학의 대가 마틴 헹엘 같은 독일 신학자들이 현재 이 대학에서 열강하고 있다.  신학자 입장에서도 대학측 강의 제의는 그 분야의 손꼽히는 교수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미국 대학은 '돈'으로 교수를 끌어오지만 그레고리오는 '명성'으로 끌어온다"는 말이 회자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두뇌'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지금도 교황청에 다양한 신학적 조언을 하는 집단이 바로 이 대학 교수진이다.  그레고리오대학의 명성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요소는 전통과 실험정신의 조화다. 전통은 교황 최측근에서 16~17세기 종교개혁자들의 거센 도전을 신학적으로 반박한 역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레고리오대학이 문을 연 1551년은 종교개혁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이에 따른 교회분열을 수습할 목적으로 소집된 트리엔트공의회가 한창 열리고 있던 때이다. 유럽 중심의 정통신학(제1세계 신학)에 집중하는 전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레고리오대학의 명성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요소는 전통과 실험정신의 조화다. 전통은 교황 최측근에서 16~17세기 종교개혁자들의 거센 도전을 신학적으로 반박한 역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레고리오대학이 문을 연 1551년은 종교개혁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이에 따른 교회분열을 수습할 목적으로 소집된 트리엔트공의회가 한창 열리고 있던 때이다. 유럽 중심의 정통신학(제1세계 신학)에 집중하는 전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로 인해 강의시간에 호기심많은 학생들이 남미나 아프리카 신학과 관련된 얄궂은 질문을 던지면 교수들은 "우리는 1세계 신학만 다루기 때문에 답변할 수 없다"는 농담으로 받아넘긴다고 한다.  실험정신은 예수회의 개방적 교육전통과 맞물려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 이 대학에서 강의한 자크 뒤퓌 교수는 인도선교 중 체득한 힌두사상을 기초로 '그리스도교 종교 다원주의 신학을 향하여'(1998년, 국내 미번역)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서구교회에서 큰 화제가 됐던 이 책은 종교 다원주의의 오류가 발견되는 책이라는 평이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주님이신 예수님'(2000년)이라는 선언을 통해 그리스도 및 교회에 관한 진리를 재천명한 것은 그의 저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로마 신학자들의 얘기다.   유럽 대학에서는 드물게 영어·불어·스페인어 등 6개 언어가 대학 공식언어라는 점에서도 실험성과 개방성을 엿볼 수 있다.  그레고리오대학은 1930년 이전까지 볼로메오 궁(현 콜레지오 벨라르미노) 근처에 있었다. '콜레지오 로마눔'이라는 19세기 유명 학파는 당시 예수회 신학자인 벨라르미노 신부가 동료 신학자들과 그곳에서 태동시킨 학파다.  현재 박준양(서울)·조학균(예수회)·노우재(부산)·김종강(청주)·김주영(춘천)·옥현진(광주)·고태훈(수원)·노연호(서울)·이호봉(대구) 신부 등 한국신부 14명이 수학 중이다. 로마=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가톨릭평화방송 (cpbc.co.kr) 3. 영국. 옥스포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이 대표적. 1167년 헨리 2세가 영국 학생들이 파리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을 금지한 것을 계기로 급속히 발전. a). 옥스포드 대학교.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옥스포드 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 University of Oxford ] 요약 영국 잉글랜드 옥스퍼드셔카운티(Oxfordshire county) 옥스퍼드시(市)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 영어권 국가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서 30여 개의 칼리지와 상설사설학당(PPH)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 보들리언 도서관 공립 미상(1096년 강의 기록) 헨리 2세 영국 잉글랜드 옥스퍼드셔카운티 옥스퍼드시 Dominus Illuminatio Mea(The Lord is my Light;주는 나의 빛) 대학 1만 1772명, 대학원 9850명(2013) www.ox.ac.uk 영국은 물론 영어권에서는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설립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1096년에 이미 강의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167년 헨리 2세가 영국 학생들이 파리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을 금지한 것을 계기로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1209년 옥스퍼드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 간에 발생한 분쟁을 계기로 일부 학생들이 케임브리지로 이동하여 케임브리지대학교가 태동하게 되었다. 13세기에 대학을 구성하는 칼리지(유니버시티칼리지·베일리얼칼리지·머턴칼리지)들이 구체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설립 초기에는 학생과 시민 간에 과격한 충돌이 자주 일어났는데, 1354년 충돌이 있은 다음해에 에드워드 3세가 학생 편을 지지하여 그들에게 특허장(特許狀)을 줌으로써 대학의 지위가 견고해졌다. 교육 내용은 자연철학·도덕철학·형이상학 등을 강의하였는데, 모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기본으로 삼았다. 14세기에는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교수가 교회의 악폐를 비판함으로써 영국의 종교개혁 운동에 선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15세기에 와서는 종교적 기초가 동요하면서 침체 경향을 보였으나,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사이에 이탈리아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돌아온 토머스 리너커(Thomas Linacre), 존 콜렛(John Colet), 휴 래티머(Hugh Latimer)를 위시하여 토머스 모어(Thomas More),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Desiderius Erasmus) 등을 포용함으로써 영국 문예부흥의 중심이 되었다. 19세기에는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교수를 중심으로 하여 가톨릭 전통 회복을 통한 영국 국교회 쇄신을 주장하는 옥스퍼드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근대적 학과목도 추가하여 산업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동시에, 여자를 위한 학교도 설립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세틀먼트, 대학확장 운동을 통하여 교외교육(校外敎育)에도 힘을 기울여 민중교육의 진흥에 기여하였다... 재학생의 3분의 1 이상이 유학생이며, 수업은 튜터(Tutor)에게 지도를 받는 면담수업(Tutorial Class)으로 이루어진다. 캠퍼스는 옥스퍼드 시내 중심지와 외곽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이밖에 부속기관으로 1602년에 설립된 보들리언도서관과 보들리언법학도서관·인디언학도서관·래드클리프과학도서관·동양학도서관을 비롯한 100개 이상의 도서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인 애슈몰린박물관(1683년)과 피트리버스박물관(1884년), 자연사박물관, 식물원, 크라이스트처치미술관 등이 있다... . 출처: 옥스포드 대학교[University of Oxford] (두산백과) b). 케임브리지 대학교. 1284년 최초의 칼리지인 피터하우스를 설립하였으며, 그 후 프랑스의 파리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를 모방하여 대학 조직을 개편하다가, 1318년에 교황 요한 22세로부터 일반연구소(studium generale)로 인가.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케임브리지대학교 [ University of Cambridge ] 요약 영국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셔 카운티의 케임브리지 카운티 타운(county town)에 있는 종합대학교. 국립 1284년 영국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셔 카운티의 케임브리지 카운티 타운 Hinc lucem et pocula sacra(From here, light and sacred draughts) 8,614명(2008) 대학 1만 2018명, 대학원 6,378명(2008) www.cam.ac.uk 옥스포드대학교와 함께 영국에서 가장 오랜 전통과 유서를 자랑하는 대학교이다. 이 대학교의 기원은 1209년 옥스퍼드시(市)에서 학자와 시민 간에 일어난 분쟁을 계기로 여러 학자들이 케임브리지로 이주하여 학생들을 교육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다. 1284년 최초의 칼리지인 피터하우스를 설립하였으며, 그 후 프랑스의 파리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를 모방하여 대학 조직을 개편하다가, 1318년에 교황 요한 22세로부터 일반연구소(studium generale)로 인가되었다. . 출처: 케임브리지대학교 [University of Cambridge] (두산백과) 4. 독일. 필자는 교황성하께서 윤허하신 하이델베르크대학등의 역사와 전통은 인정하되, 고통당한 나라와 민족이 많아 일본, 독일등의 UN적국 해제는 힘들다는 지론가짐. a). 하이델베르크 대학교(Ruprecht-Karls-Universität Heidelberg).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1385년 교황의 인가를 얻은 후 1386년 선제후 루프레히트 1세가 세워서 대학 명칭에 그 이름이 포함.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 University of Heidelberg ] 요약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Ruprecht-Karls-Universität Heidelberg 국립 1386년 루프레히트 1세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하이델베르크 Semper apertus(The book of learning is) 4,196명(2008) 26,741명(2008) www.uni-heidelberg.de 정식 명칭은 ‘루프레히트 카를스 하이델베르크대학교(Ruprecht-Karls-Universität Heidelberg)’이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1385년 교황의 인가를 얻은 후 1386년 선제후 루프레히트 1세가 세워서 대학 명칭에 그 이름이 포함되었다. 설립 당시 철학부,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를 갖춘 가톨릭계 대학으로 출발하였으나, 하인리히 선제후의 종교개혁(1556)으로 인문주의적 신교대학으로 전환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신교(프로테스탄트)와 구교(가톨릭) 간에 벌어진 30년전쟁(1618∼1648)의 영향으로 폐쇄와 개교를 반복하다가 1803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칙령으로 자치권이 인정되면서 근대대학으로 개편하고, 교수어도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바꾸었다. 이때 옛 바덴주(州)의 공작인 카를 프리드리히의 이름이 교명에 더해졌다. 1899년에는 남녀공학이 되었다. 2010년 기준 신학대학, 법과대학, 기초의과대학, 이론의과대학, 철학대학, 현대언어대학, 경제·사회학대학, 행동·문화학대학, 수학·컴퓨터학대학, 화학·지구과학대학, 물리·천문학대학, 생명과학대학의 12개 단과대학에서 학부과정과 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또한 중국의 베이징대학교[北京大學校], 일본의 교토대학[京都大學] 등 세계 여러 대학들과 자매결연을 맺었고 미국·일본·남미의 대학과도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캠퍼스는 세 곳이 있는데, 인문·사회과학 관련 대학과 연구소들이 있는 하이델베르크 구 시가지 캠퍼스, 과학·의학 대학, 부속병원이 있는 시 외곽의 노이엔하이머 펠드(Neuenheimer Feld) 캠퍼스, 하이델베르크-베르크하임 캠퍼스가 있다. 하이델베르크-베르크하임 캠퍼스에는 2009년 3월 경제·사회학대학과 경제·정치·사회학 연구소, 도서관이 들어섰다. 부설기관으로 도서관, 동물센터, 대학병원, 식물원, 박물관, 생화학센터, 남아시아연구소, 과학연산협동센터, 신경과학연구소, 하이델베르크분자생물연구소, 미국학연구소, 천문학센터, 사회개발센터 등이 있다... . 출처: 하이델베르크 대학교[University of Heidelberg] (두산백과) b). 쾰른대학교(Universität zu Köln). 1388년 우르바노 6세의 칙서를 얻어 설립. 독일은 학문의 나라이므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이어 이번에 별도로 쾰른대학 추가함.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쾰른 대학교. 쾰른대학교 [ University of Cologne ] 요약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쾰른시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 독일에서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다음으로 오래된 대학이다. Universität zu Köln 공립 1388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쾰른시 www.uni-koeln.de 1388년 우르바노 6세의 칙서를 얻어 설립되었고 1389년 1월부터 수업을 시작하였다. 1794년 프랑스군(軍)이 쾰른을 점령한 후 1798년 대학의 교수들이 프랑스공화국에 대한 충성서약을 거부하고 대학의 독립을 원하였다는 이유로 폐쇄하였다. 1919년 3월 19일 프로이센 정부가 쾰른 시의회의 청원을 받아들여 현대식 종합대학으로 재건하였다. 당시 상학·경제학·사회과학부, 의학부가 있었으며 1920년 법학부와 예술학부를 설치하였다. 1980년에는 라인란트교육학교(Rhineland School of Education)의 2개 학과를 병합하여 교육·특별교육학부로 만들었다. 독일에서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다음으로 오래된 대학으로, 현재 독일에서 몇 안 되는 캠퍼스 중심 대학교이기도 하다. 경영·경제·사회과학부, 법학부, 의학부, 예술·인문학부, 수학·자연과학부, 인문과학부의 6개 학부에서 다양한 학부·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주요 연구대상은 아프리카, 컴퓨터과학, 라틴아메리카, 유럽 및 동유럽 부문이며 생명과학, 환경 및 우주항공 연구에도 힘쓴다. 캠퍼스가 있는 쾰른이 미디어 중심지라는 입지적 여건 탓에 대학에도 연극연구소, 영화·텔레비전연구소, 방송법연구소, 유전학연구소, 1992년에 설립한 방송경제연구소 같은 미디어연구 관련 부설연구소가 많다. 프랑스의 클레몽페르낭트대학, 파리소르본대학교, 미국의 펜실베이니아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학교, 일본의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등 세계 여러 대학과 학술교류 및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 출처: 쾰른대학교 [University of Cologne] (두산백과) 5. 스페인. a). 살라망카 대학교(Universidad de Salamanca). 중세시대인 1218년에 레온 왕국의 국왕 알폰소 9세(Alfonso IX)의 칙령으로 설립했으며 에스파냐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교 중 하나로 손꼽힌다. 1225년 유럽에서 최초로 대학교(Universidad) 자격 취득.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살라망카 대학교. 살라망카대학교 요약 에스파냐 카스티야이레온 자치지역(Comunidad Autónoma de Castilla y León) 남서부 살라망카주(Provincia de Salamanca)의 주도 살라망카에 있는 대학교. 원어명구분개교일소재지전임 교원수(명)학생수 Universidad de Salamanca 공립 1218년 에스파냐 카스티야이레온 자치지역 살라망카주 살라망카 1252명 약 2만 8000명 살라망카주 중앙부에 위치한 주도 살라망카의 파티오데에스쿠엘라스 거리(Calle de Patio de Escuelas)에 있다. 중세시대인 1218년에 레온 왕국의 국왕 알폰소 9세(Alfonso IX)의 칙령으로 설립했으며 에스파냐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교 중 하나로 손꼽힌다. 1225년 유럽에서 최초로 대학교(Universidad) 자격을 취득했다. 오늘날 에스파냐에서 최상위권 대학교로 명성을 떨치고 있어 외국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다. 거의 전 학문 분야에 걸쳐 총 2,453개 학과가 개설되어 있는데 특히 인문학 분야에서 강세를 보인다. 비에스파냐어권 재학생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에스파냐어 강좌가 훌륭한 것으로 유명하며, 매년 평균 2000명 이상의 외국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한다. 교내에 풍부한 장서량을 갖춘 여러 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자료 중에는 매우 귀중한 고문헌과 고문서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교내에 있는 많은 고풍스러운 건물은 대부분 중요한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출처:살라망카대학교(두산백과) b). 마드리드 대학교. 살라망카 대학교와 함께 마드리드 대학교도 소개합니다. 1293년 카스티야 왕국의 산초 4세(Sancho IV)가 설립한 알칼라 일반 학교(Estudio de Escuelas Generales de Alcalá)가 그 시초. 1499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Alexander VI)에 의해 정식 대학교로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 마드리드콤플루텐세대학교 요약 에스파냐의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국립 대학교.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대학교 중 하나이자 에스파냐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학교이다. 원어명구분개교일소재지전임 교원수(명)학생수 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 국립 1293년 에스파냐 마드리드 9731명(2009) 9만 1251명(2009) 마드리드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지역에 광대한 규모로 자리 잡고 있는 에스파냐 최대의 국립 대학교이다.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대학교 중 하나로, 1293년 카스티야 왕국의 산초 4세(Sancho IV)가 설립한 알칼라 일반 학교(Estudio de Escuelas Generales de Alcalá)가 그 시초이다. 1499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Alexander VI)에 의해 정식 대학교로 문을 열었다. 현재 에스파냐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명문 대학교로, 2009년 기준 학부생 6만 1598명과 대학원생 2만 9653명을 합쳐 총 9만 1251명이 재학하고 있다. 그중 외국 유학생 수가 5000여 명이다. 교수를 포함한 교직원 수는 2009년 현재 총 9731명에 달한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설립 이래 각 방면에 걸쳐 수많은 인물을 배출, 에스파냐 국가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학교로 평가받는다. 학문의 거의 전 분야에 걸쳐 학과가 개설되어 있는데, 특히 법학, 문헌학, 지리학, 역사학, 고고학, 의학, 교육학, 경제학, 문학, 정치학 등의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교내에 30개가 넘는 도서관이 있다. . 출처: 마드리드콤플루텐세대학교(두산백과) 6. 포르투갈. 코임브라대학(Universidade de Coimbra). 1290년 문학에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포르투갈의 6대왕 디니스(D. Dinis)가 교황 니콜라스 4세의 허가를 얻어 리스본에 ‘에스투두 제랄(Estudo Geral:Studium Generale)’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포르투갈 최초의 대학교이다.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코임브라 대학교. 코임브라대학교 [ Coimbra University ] 요약 포르투갈 중부 코임브라주(州)의 주도(州都)이자 고대도시인 코임브라에 위치한 포르투갈 최초의 대학교. 세계적으로도 매우 오래된 대학으로 꼽힌다. 공립 1290년 포르투갈 6대왕 디니스 포르투갈 중부 코임브라주 코임브라 1,663명 1만 9921명(2008) www.uc.pt 약칭은 ‘UC’이다. 1290년 문학에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포르투갈의 6대왕 디니스(D. Dinis)가 교황 니콜라스 4세의 허가를 얻어 리스본에 ‘에스투두 제랄(Estudo Geral:Studium Generale)’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포르투갈 최초의 대학교이다. 설립 당시 예술학부, 교회법학부, 시민법학부, 의학부가 있었고 이후 수준 높은 교육과 연구를 통해 사회 지배세력을 양성하고 정치·사회적으로 포르투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010년 기준 인문학부, 법학부, 의학부, 과학·기술학부, 약학부, 경제학부, 심리학·교육학부, 스포츠학·체육학부의 8개 학부에서 다양한 학부·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캠퍼스는 교회로부터의 자유 문제로 1307년 코임브라로 이전했다가 1338년 가 아폰수 5세가 다시 리스본으로 옮겼고 이후에도 도 도시 간으로 이전을 반복했다. 1537년 주앙 3세(Joao III) 때 리스본에서 코임브라로 완전히 이전하였다. 주 캠퍼스는 몬데고강(Rio Mondego)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오래된 교회와 좁은 도로들 사이에 있다. 부속기관·시설로는 중앙도서관, 과학박물관, 아카데믹박물관, 과학입문센터, 식물원, 학술원, 운동장, 종합경기장, 천문대, 출판사, 1500년대 초에 건축된 상미겔교회(Sao Miguel Chapel) 등이 있다. 1985년 설립된 유럽의 선도적 대학연합회 '코임브라그룹(Coimbra Group)' 소속이다... . 출처: 코임브라대학교 [Coimbra University] (두산백과) 7.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1384년 신학부가 부설되면서 파리에서 초청한 신학자 앙리 드 강이 파리대학을 모델로 대학을 재조직. 1623년에 예수회에서 인수.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빈 대학교. 빈 대학교 [ University of Vienna ] 요약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Universität Wien 국립 1365년 루돌프 4세 오스트리아 빈 6,408명(2009) 약 8만 5000명(2009) www.univie.ac.at 1365년 3월 12일 오스트리아 대공인 합스부르크왕가(王家)의 루돌프 4세가 형제인 알베르트 3세, 레오폴트 3세와 함께 프라하대학에 대항하여 독일 문화권 제2의 대학으로서 빈에 설립하였다. 설립 당시에는 법학·의학·문학의 3학부로 출발하였으나 1384년 신학부가 부설되면서 파리에서 초청한 신학자 앙리 드 강이 파리대학을 모델로 대학을 재조직하였다. 1520년에는 독일어권 대학 중에서 가장 많은 학생을 수용하기에 이르렀으나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급격히 쇠퇴하여 1623년에 예수회에서 인수하였다. 18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교육개혁에 의해 부활되고, 의학·법학·역사학 등의 분야에서 빈학파를 형성하여 그 이름을 떨쳤으며, 1848∼1850년 문교부장관 L.튤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 많은 개혁을 단행하였다. 전세계의 독일어권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대학교이며 중앙 유럽에서 3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또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교육·연구기관이기도 하다. 2010년 기준 가톨릭 신학, 프로테스탄트 신학부, 법학부, 사회과학부, 경제학부, 학부, 철학·문화학부, 철학·교육학부, 수학부, 지구과학·지리학·천문학부 등 15개 학부에서 170개 이상의 다양한 학위과정을 제공한다. 학위과정은 학사학위 52개, 석사학위 108개, 박사학위 10개 외에 7개의 수료과정과 많은 교사 훈련과정이 있다. 캠퍼스는 따로 정해지지 않고 빈 전체적으로 60여 군데에 흩어져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비엔나 역사지구’의 링슈트라세(Ringstraße)에 위치한 메인 건물은 1877~1884년에 지었으며 대학의 주요 행정·실무 사무소들이 자리 잡았다. 부설시설로는 도서관, 식물원, 통역학센터, 스포츠학·대학스포츠센터, 분자생물학센터 등이 있다. . 출처: 빈 대학교 [University of Vienna] (두산백과) 8. 벨기에. 루뱅가톨릭대학교(Catholic University of Louvain ). 1425년 교황 마르티노 5세(Martinus V)와 브라반트(Brabant)의 요한 4세가 처음 설립.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루뱅 가톨릭대학교. 루뱅가톨릭대학교 [ Catholic University of Louvain ] 요약 벨기에 브라반트주(州) 루뱅라너브(Louvain-la-Neuve)에 위치한 벨기에 최고(最古) 대학교. Université Catholique de Louvain 자유대학교 1425년 벨기에 루뱅라너브, 브뤼쉘, 몽스, 샤를루아, 나뮈르 등 30,957명(2018년) https://uclouvain.be/ 1425년 교황 마르티노 5세(Martinus V)와 브라반트(Brabant)의 요한 4세가 처음 설립했다. 이듬해 1426년 강의가 개설되었으며 설립 초기 신학과 민법, 교회법, 의학, 인문학의 5개 학부를 두었다. 1516년 대학교 내 콜레기움 트릴링궤(Collegium Trilingue)가 설립된 후 유럽 전역에서 학생들과 학자들이 모이면서 유럽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가톨릭대학으로 1519년 쾰른대학교(Universität zu Köln)와 더불어 루터(Martin Luther)의 사상을 최초로 비판하는 등 16세기 있었던 종교개혁에 학문적으로 대항하였다. 1755년 응용수학과 응용과학 과목이 신설되었다. 1794년 벨기에가 프랑스에 병합된 후 1797년 폐교되었다가 1816년 다시 개교하였으며, 당시에는 수리자연과학부 1개 학부를 갖추고 있었다. 학교의 공식 언어는 네덜란드와 프랑스어 두 가지였는데, 1960년대 말 두 언어를 사용하는 그룹 간 문화 갈등이 심화되었고 결국 폭동으로 이어졌다. 이에 1966년 가톨릭 교계의 회의를 거쳐 1968년 학교는 네덜란드어 사용 학교와 프랑스어 사용 학교로 분리되었다. 네덜란드어 대학교는 루뱅에 남아 1970년 교명을 ‘Katholieke Universiteit Leuven’라 하였으며, 프랑스어 사용 학생 및 교수들은 루뱅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대학 도시인 루뱅라너브(Louvain-la-Neuve : 신 루뱅)를 조성하고 1971년 2월 교명을 ‘Université catholique de Louvain’이라 하였다. 2020년 기준 학부는 보건과학, 과학기술학, 인문학의 3개로 구분된다. 보건과학부 내에는 의학·치의학부와 약학·바이오의학부, 공공보건학부 등 4개 학부, 과학기술학부에는 과학부와 생물공학부 등 4개 학부, 인문학부에는 법학부와 신학부 등 6개 학부로 총 14개 학부를 갖추고 있다. 학부와 석사, 박사과정이 제공된다. 캠퍼스는 총 7개로 루뱅라너브가 메인캠퍼스며, 다른 캠퍼스는 브뤼쉘(Brussels)을 비롯해 에노주(州)의 몽스(Mons)와 샤를루아(Charleroi), 투르네(Tournai), 나뮈르주(州)의 나뮈르(Namur) 등에 위치한다. 교내에는 2개의 대학병원, 19개의 도서관 등이 있다. 대학도서관은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고딕 및 르네상스 시기 필사본을 포함한 수십만점의 자료가 소실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도서관은 전쟁 후 미국과 다른 유럽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1928년 재건되고 자료들도 채워졌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재가 발생해 많은 자료들이 소실되었다.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었던 기록물은 현재 대학기록관에 보존되고 있으며 벨기에 국립기록보관소의 자료들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 출처: 루뱅가톨릭대학교 [Catholic University of Louvain] (두산백과) 9. 스웨덴. 웁살라대학(Uppsala universitet). 1477년에 웁살라 대주교 야코브 울브손(Jakob Ulvsson)의 주도로 북유럽 최초의 대학으로 설립.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웁살라 대학교. 웁살라대학교 [ Uppsala University ] 요약 스웨덴 중동부 웁살라주(州)의 주도(州都) 웁살라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Uppsala Universitet 공립 1477년 스웨덴 중동부 웁살라주 웁살라 Gratiae veritas naturae(Truth through God's mercy and nature) 6,000명 대학 19,900명, 대학원 2,000명(2008) www.uu.se 1477년에 웁살라 대주교 야코브 울브손(Jakob Ulvsson)의 주도로 북유럽 최초의 대학으로 설립하였다. 50여 명의 학생으로 개교하였으며 설립 당시 덴마크 지배하의 연합왕국이던 스웨덴의 문화적 독립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설립 후 얼마 동안 재정 빈곤과 학교 내외의 분쟁으로 자주 운영이 침체되었으나, 구스타브 2세(1611~1632)가 강국 스웨덴의 기반을 마련하고 국내에도 다양한 개혁을 실시하면서 능력 있는 관리 양성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구스타브 2세가 1624년 대학 설립을 위해 넓은 토지를 기증하였고 1626년 대학헌장을 선포함으로써 대학으로서의 기초가 확립되었고 코펜하겐대학과 함께 북유럽의 학문적 중심이 되었다. 2010년 기준 문리·사회과학, 의학·약학, 과학·기술의 3개 부문에 신학·법학·예술·언어학·사회과학·교육학·의학·약학·과학기술의 9개 학부가 있다. 각 학부에서 학부과정과 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캠퍼스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으며 웁살라 곳곳에 대학 건물이 산재한다. 대학 본관을 비롯한 주요 건물은 퓌리스강(River Fyris) 서쪽 연안의 대성당 주변에 위치한다. 네오클래식 양식의 대학 본관은 1880년에 세워졌고 대성당의 첨탑 건너편에 북유럽 고대 문자인 룬(Rune)이 새겨진 바위들이 있다. 대학 도서관인 카롤리나 레디비바(Carolina Rediviva)에는 4세기 울필라 주교가 성서복음을 고트어로 번역한 것 중 유일한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다. 부설시설로는 역사박물관인 구스타비아눔(Gustavianum), 국제적으로 알려진 지진연구소, 부속병원, 식물원, 린네정원, 관측소, 생물학연구소, 정보기술센터 등이 있다... . 출처: 웁살라대학교 [Uppsala University] (두산백과) 10. 스위스. 바젤대학교. 1459년 11월 12일 바젤 시민이 세워 교황 비오 2세의 허가를 받아 설립.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바젤대학교. 바젤대학교 [ University of Basel ] 요약 스위스 바젤슈타트주(州) 주도(州都) 바젤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다. Universität Basel 공립 1460년 스위스 바젤슈타트주 바젤 1만 1360명 www.unibas.ch 1459년 11월 12일 바젤 시민이 세워 교황 비오 2세의 허가를 받아 설립하였고 1460년 4월 4일 바젤대성당에서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처음부터 신학부·법학부·의학부·예술기능부의 4개 학부로 구성된 종합대학으로 설립되었으며, 스위스에서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독일어권 대학이다. 설립 이후 몇 세기 동안 많은 학자들이 대학교로 오면서 바젤시(市)는 일찍이 도서 인쇄, 휴머니즘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5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몇 차례 존폐 위기를 맞았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곧바로 위기를 극복하고 전통을 이어왔다. 예술기능부에 1818년 역사학부, 1937년 과학부 과정을 두었다. 2010년 기준 신학부·법학부·의학부·인문학부·과학부·경제경영학부·심리학부의 7개 학부로 구성된다. 6개의 학제연구기관, 스위스열대연구소, 프리드리히 미셔 생명의학연구소 같은 연계 연구소가 있다. 1971년 설립한 생명과학센터(Biozentrum)에서는 의학부의 약리학, 신경생물학은 물론, 과학부의 생화학, 생물물리학적 화학, 미생물학, 구조생물학, 세포생물학에 관한 수준 높은 기초연구를 수행한다. 부설시설로 스위스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서관을 비롯해, 매스터전자현미경연구소(REM)를 비롯하여 해부학박물관, 생체기계정형외과연구소, 분자미생물학이론 연구센터, 경제연구센터, 식물원 등이 있다. . 출처: 바젤대학교 [University of Basel] (두산백과) 2]. 동유럽(Eastern Europe). 1. 체코. 프라하대학교( University of Prague). 134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룩셈부르크가의 카를 4세가 세운 중부 유럽 최초의 대학. 설립 당시에는 파리대학교를 모방.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프라하 대학교. 프라하대학교 [ University of Prague ] 요약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Universita Karlova 국립 종합대학 1348년 룩셈부르크가 카를 4세 체코 프라하 카를로바대학교라고도 한다. 체코 교육부가 직접 운영하는 국립대학이다. 134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룩셈부르크가의 카를 4세가 세운 중부 유럽 최초의 대학으로서, 프라하 시내 곳곳에 산재한 대학 건물 중 카롤리눔(Carolinum)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건물로 손꼽힌다. 설립 당시에는 설립 당시에는 파리대학교를 모방하여 신학.법학·의학·철학의 4분과제를 도입하였고, 보헤미아·바이에른·폴란드·작센에서 모인 4개 교사조합을 중심으로 자치적으로 운영되었다. 15세기 이 대학 강단에 섰던 종교개혁가 요하네스 후스의 영향으로 종교와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중세 지성들의 요람 역할을 했으나 1419년부터 시작된 후스전쟁의 여파로 독일인 교사와 학생 일부가 라이프치히로 옮겨감으로써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30년전쟁의 결과 다시 가톨릭 교단의 관장 아래 놓였다. 1882년 체코대학과 독일대학으로 분리되었고, 1920년에는 체코대학이 카를대학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나치스 지배 때 폐쇄되었다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부활하면서 독일대학은 폐지되었다. 수학·물리학, 철학, 법학, 가톨릭신학, 사회·정치과학 등 인문·사회·자연과학을 망라하는 16개 단과대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위과정은 3년 과정의 학사학위[Bakalar], 5년 과정의 석사학위[Magister]와 추가로 3년 이상을 공부하면 얻을 수 있는 박사학위로 구성되어 있다. 의학부에서는 일반의학 박사학위가 6년 과정이다. 부설연구소로 신학연구센터(CTS), 경제연구센터(CERGE), 대학사연구소, 천문연구소가 있으며 그밖에 컴퓨터사이언스센터(CUCC), 유럽정보센터, 언어직업훈련센터, 환경센터, 기초과학연구소, 중앙도서관 등의 시설이 있다. 각 단과대학은 교외지역인 펄체오에 1개, 흐라데츠 크랄로베(Hradec Králové)에 두개의 단과대학이 있고 나머지는 프라하 시내에 있다. . 출처: 프라하대학교 [University of Prague] (두산백과) 2. 폴란드. 야기엘론스키 대학교(Jagiellonian University). 1364년 5월 12일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 3세(Kazimierz III)에 의해 일반 대학(Studium Generale)으로 처음 설립된 것으로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1400년 7월 야기에워 왕(King Vladislaus Jagiełło)에 의해 다시 설립되면서 신학부 신설.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야기엘론스키대학교 [ Jagiellonian University ] 요약 폴란드 마우폴스키에주(州) 크라쿠프(Kraków)에 위치한 폴란드 최고(最古)의 연구 중심 공립대학교. Uniwersytet Jagielloński 공립대학교 1364년 폴란드 마우폴스키에주(州) 크라쿠프(Kraków) 39,552명(2019년) https://www.uj.edu.pl/ 1364년 5월 12일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 3세(Kazimierz III)에 의해 일반 대학(Studium Generale)으로 처음 설립된 것으로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설립 당시 인문학, 의학, 법학 3개 학부를 갖추었다. 카지미에시 3세가 사망하자 1390년대까지 문을 닫았고 1400년 7월 야기에워 왕(King Vladislaus Jagiełło)에 의해 다시 설립되면서 신학부가 신설되었다. 이후 대학은 왕립야기엘론스키대학(Royal Jagiellonian College)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5세기에는 유럽 각지에서 200명 이상의 학생이 매년 입학했고 특히 법학, 수학, 천문학 분야 교육에 명성이 높았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지역이 종교에 따라 나눠지고 16세기 후반 유럽 내 대학 수가 증가하면서 외국인 학생의 입학이 크게 줄어들었으나 학교는 계속 유지되었고, 16세기 말 교명이 크라쿠프대학(Kraków Academy)으로 바뀌었다. 1773년 국립교육위원회가 조직되고 휴고 코원타이(Hugo Kołłątaj)가 개혁을 주도하면서 1777년부터 1786년 사이 대학 조직을 개편하였다. 또한 천문대와 식물원, 대학클리닉 등의 설립이 시작되었다. 1795년 크라쿠프지역이 오스트리아로 병합되면서 1805년에는 리비우대학교(Lviv University)에 통합되기도 하였다. 1817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교명으로 바뀌었다. 1846년 크라쿠프가 다시 오스트리아에 점령된 후 대학 구조는 오스트리아식으로 개편되고 독일어가 주요 언어가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갈리지아(Galicia)에 자치권이 부여되면서 다시 학내에서 폴란드어를 사용했고 건물이 새로 설립되는 등 인문학과 과학분야의 프로그램이 모두 확대됐다. 1923년에는 농학부가 개설되고 1939년에는 도서관이 설립되었다. 제2차 세계기간 동안 나치 점령을 받으면서 폐교되었으나 1942년부터 비밀리에 교육은 다시 재개되었다. 이후 신학과 농업학, 의학부가 폐쇄되는 등 대학구조에 큰 변화를 겪었으며, 일부 학자들의 연구활동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2020년 현재 법·행정학, 의학, 보건학, 물리·천문·응용컴퓨터학, 생물학 등 16개 학부 아래 학부와 석사, 박사과정을 두고 있다. 대학중앙도서관은 많은 소장 자료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등 중세시기 작성된 원고 등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약 4만 명의 학생이 재학중이고 교직원 수도 약 4천 명에 이른다... . 출처: 야기엘론스키대학교 [Jagiellonian University] (두산백과) 3]. 미국. 1. 하버드대학교. 1636년 매사추세츠 식민지 일반의회(General Court)의 결의에 따라 설립되었으며, 1639년 도서와 유산을 기증한 J.하버드 목사의 이름을 따서 하버드대학이라 명명.영국의 옥스포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학료(學寮) 제도를 모방한 조직으로 출발.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하버드 대학교. 하버드대학교 [ Harvard University ] 요약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케임브리지시(市)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한다. 사립 1636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시 Veritas(진리) 2,110명(2008) 대학 6,700명, 대학원 1만 3600명(2008) www.harvard.edu 1636년 매사추세츠 식민지 일반의회(General Court)의 결의에 따라 설립되었으며, 1639년 도서와 유산을 기증한 J.하버드 목사의 이름을 따서 하버드대학이라 명명하였다. 영국의 옥스포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학료(學寮) 제도를 모방한 조직으로 출발하여, 식민지시대에는 목사 양성에 필요한 종교교육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1869년부터 40년간 학장을 지낸 C.W.엘리엇은 독일 유학의 경험을 살려 전문적 학문연구기관으로 개혁하고 선택과목제를 도입하였는데, 이 제도는 뒤의 개인지도제 및 전원학료제 실시와 함께 미국 대학 커리큘럼(교육과정)의 원형이 되었다.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한다. 대학 운영과 관리는 학장과 5인의 평의원·회계주임으로 구성된 하버드 법인(法人)과, 졸업생이 우편으로 선출하는 이사회라는 2개의 의결기관이 맡고 있다. 전자는 재정과 집행 운영을 책임지고, 후자는 조언과 자문 기능을 맡는다. 기본적으로 11개 주요 학문 조직(10개 대학과 1개 연구소)으로 구성된다. 10개 대학은 문리·의과·치의과·신학·법학·경영·디자인·교육·보건·행정이며, 각 대학은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전문대학원과 분과(division)를 관장한다. 1개 연구소는 래드클리프고등연구소(Radcliff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로, 1999년 래드클리프칼리지를 개편한 것이다. 문리대학에 학부대학인 하버드칼리지(Harvard College)과 일반대학원, 공학·응용과학대학원, 평생교육부(Harvard Division of Continuing Education)가 있다. 일반대학원은 이론에 바탕을 둔 학문 중심이며, 전문대학원은 현장실무교육과 연구 중심이다. 대학 1학년생은 전원 올드야드 기숙사에 수용되어 대학생활 오리엔테이션을 받게 되며, 2학년에서 4학년까지는 하우스라고 일컫는 각 학료에 배치되어 교양과목(liberal art)을 중심으로 각 전공분야의 교육을 받는다. 와이드너도서관을 비롯한 부속도서관에 정기간행물을 비롯한 각종 도서가 소장되어 있다. 그밖에 유명 부속시설로 하버드 미술박물관, 하버드대학교 허배리아(Harvard University Herbaria), 하버드 광물학박물관, 루이스 애거시즈 비교동물박물관, 하버드 셈족박물관 같은 박물관과 포그미술관·푸슈라이징거미술관·하버드천문대 등이 있다. 캠퍼스는 보스턴 중심에서 찰스강(江) 건너 연안의 케임브리지 시가지 하버드 야드(Harvard Yard)에 있으며, 하버드 스퀘어(Harvard Square)를 둘러싼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과 하버드 스타디움을 비롯한 여러 체육시설이 찰스강의 또 다른 쪽 연안인 보스턴 인근의 올스턴(Allston)에 있다. 또한 의과대학원, 치과대학원, 보건대학원이 보스턴의 롱우드 메디컬아카데미 지구(Longwood Medical and Academic Area)에 있다... . 출처: 하버드대학교 [Harvard University] (두산백과) 2. 예일대학교. 1701년 10월 9일 제임스 피어폰트(James Pierpont)가 이끄는 독립파(獨立派) 목사들이 킬링워스(Killingworth)에 세운 칼리지어트 스쿨(Collegiate School)에서 비롯. 이후 세이브룩과 웨더스필드를 거쳐 1718년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대학에 많은 기부를 한 E.예일을 기념하여 학교명을 예일대학으로 바꿈.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예일대학교. 예일대학교 [ Yale University ] 요약 미국 코네티컷주(州) 뉴헤이븐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한다. 사립 1701년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번 Lux et veritas(빛과 진실) 339ha 3,619명(2009) 대학 5,247명, 대학원 6,169명(2009) www.yale.edu 1701년 10월 9일 제임스 피어폰트(James Pierpont)가 이끄는 독립파(獨立派) 목사들이 킬링워스(Killingworth)에 세운 칼리지어트 스쿨(Collegiate School)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세이브룩과 웨더스필드를 거쳐 1718년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대학에 많은 기부를 한 E.예일을 기념하여 학교명을 예일대학으로 바꾸었다. 1787년 종합대학이 되었고, 1847년에는 미국 최초로 박사과정을 두고 학위를 수여하였다. 1930년대부터 학생들이 캠퍼스 안에서 생활하는 기숙형 칼리지를 설립하였으며 창립 이래 영국식 교육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한다. 미국에서 3번째로 오래된 대학교이다. 대학교 조직은 크게 학부과정인 예일칼리지, 문리과대학원, 전문대학원의 3가지로 구성된다. 예일칼리지는 대학교의 중심을 이루며 2009년 기준으로 2,000개 이상의 학부과정이 있고, 건축학, 예술, 신학, 연극, 공학·응용과학, 삼림·환경학, 법학, 경영학, 의학, 음악, 간호학, 보건학, 종교음악의 13개 전문대학원 과정이 운영된다. 부설시설로는 베이네케 희귀본·필사본 도서관, 스털링기념도서관, 하비커싱 의학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도서관, 미술관, 예일영국미술센터, 피바디자연사박물관, 예일악기컬렉션(Yale University Collection of Musical Instruments), 라디오방송국, 마시식물원, 예일 자연보존지역, 골프코스를 비롯하여 많은 연구센터가 있다. 캠퍼스는 뉴욕에서 동북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뉴헤이븐의 시가지에 있다. 건물 대부분은 1917~1931에 지은 신고딕풍 건물이며 그밖에 고딕풍 학부 건물, 조지아풍으로 지은 코네티컷홀(1750)을 비롯하여 대학의 상징물이 된 건물이 많이 있다. 또한 남녀공용 기숙사, 아파트 등 여러 건물이 들어서 있고, 캠퍼스 부근은 '느릅나무의 거리'라고 불릴 정도로 조용하고 쾌적하다. 많은 학생들이 캠퍼스 안의 12개 기숙형 칼리지에서 생활한다. 학문, 스포츠를 비롯한 대부분의 부분에서 하버드대학교와 경쟁관계에 있다... . 출처: 예일대학교 [Yale University] (두산백과) 3. 조지타운대학교. 예수회에 소속된 대학으로, 1789년 1월 미국 최초의 로마가톨릭 대주교 존 캐럴(1735~1815)에 의해 미국에서 첫 번째로 설립된 로마가톨릭대학.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조지타운 대학교. 조지타운대학교 [ Georgetown University ] 요약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사립 1791년 존 캐럴 미국 워싱턴 D.C. Utraque Unum(Both into One) 0.4㎢(주 캠퍼스) 1,268명(2008) 대학 1만 8696명, 대학원 9,676명(2008) www.georgetown.edu 예수회에 소속된 대학으로, 1789년 1월 미국 최초의 로마가톨릭 대주교 존 캐럴(1735~1815)에 의해 미국에서 첫 번째로 설립된 로마가톨릭대학이다. 1791년 11월 22일 12명의 학생과 몇 명의 교수로 조지타운칼리지(Georgetown College)라는 교명으로 설립하였다. 1851년 의과대학과 1870년 법학대학이 각각 설립되었다. 2010년 기준 4년제 학사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으로 조지타운칼리지(1789), 간호·보건대학(1903), 로버트 에멋 맥도너 경영대학(1957), 평생대학(1956), 에드먼드 A.월시 국제·외교대학(1919)이 있고 대학원은 문리대학원(1820), 의과대학원(1851), 법학대학원(1870)이 있다. 학위과정은 학사·석사·박사 및 전문학위로 편성되며 에드먼드 A.월시 국제·외교대학, 로버트 에멋 맥도너 경영대학, 평생대학에서는 석사학위도 수여한다. 학생들에게 해외에 나가 공부할 기회가 많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고 특히 외교 부문 전공은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교수진으로 유명하다. 워싱턴D.C.에 학부 캠퍼스, 메디컬센터, 법학대학의 세 곳의 캠퍼스가 있다.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2㎞ 떨어진 번화가에 위치한 학부 캠퍼스와 메디컬센터가 주 캠퍼스를 이루며, 대학 상징이자 문화유산 건물로 지정된 힐리 홀(Healy Hall)이 있다. 수도에 자리를 잡은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정부·비정부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한다. 버지니아주 알링턴 카운티와 카타르, 터키, 이탈리아에도 교육기관이 있다. 부설기관으로 도서관, 지진관측소, 우주 천문대, 언어실습실, 우드스톡신학센터(Woodstock Theological Center), 이탈리아의 피렌체 근처에 있는 찰스아우구스투스 스트롱센터(Charles Augustus Strong Center)가 있다... . 출처: 조지타운대학교 [Georgetown University] (두산백과) 4].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교와 샹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러시아는 동아시아 중국.한국이나, 서유럽.동유럽에 비해 대학역사가 길지 않은 나라지만, 2차대전 승전국이며 군사강대국입니다. 1. 모스크바 대학교. 1755년 1월 25일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Elizaveta Petrovna) 여제가 시인·과학자·언어학자·계몽사상가인 미하일 로모노소프의 대학 설립 제안을 받아들여 칙령을 내린데서 출발.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모스크바 대학교. 모스크바대학교 [ M.V. Lomonosov Moscow State University ] 요약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Москов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국립 1755년 M.V.로모노소프 러시아 모스크바 Наука есть ясное познание истины, просвещение разума(Science is clear truth and the education of reason) 약 2.1㎢ 약 4,000명(2009) 대학 약 4만 명, 대학원 7,000명(2009) www.msu.ru 정식 명칭은 'M.V.로모노소프 모스크바국립대학교'이고 약칭은 ‘MSU’이다. 줄여서 ‘로모노소프대학교’라고도 한다. 1755년 1월 25일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Elizaveta Petrovna) 여제가 시인·과학자·언어학자·계몽사상가인 미하일 로모노소프의 대학 설립 제안을 받아들여 칙령을 내렸고 같은 해 4월 26일 개교하였다. 1940년 미하일 로모노소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붙인 현재의 정식 명칭으로 바꾸었다. 1804년의 대학법에 의해 인문, 물리·수학, 의학, 윤리·정치학의 4학부를 설치하였다. 19세기에는 러시아 문화의 중심부를 이루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학자가 활동하였으며, 출신계급을 망라하는 교육·연구의 전통을 세웠다. 1917년 러시아혁혁명 이후 크게 발전하였다. 2010년 기준 기계학·수학학부, 물리학부, 화학부, 생물학부, 토양과학부, 지리학부, 지학부, 재료공학부, 역사학부, 철학부, 언어학부, 법학부, 경제학부, 언론학부, 아시아·아프리카학부 등의 29개 학부, 350개 학과, 야간부·통신교육부 및 대학원에서 57개의 학부과정, 168개의 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캠퍼스는 모호바야 거리에 있으며 면적 100만㎡의 레닌 힐스(Lenin Hills)를 비롯해 유서 깊은 건물들이 많다. 부설시설로는 도서관, 4개 박물관, 식물원, 핵물리연구소·역학연구소·천문연구소를 비롯한 10여 개의 연구소, 미디어센터·국제교육센터·국제레이저센터·사회학연구센터를 비롯한 20여 개의 연구센터, 과학파크, 출판국, 레크리에이션 센터, 영재기숙학교 등이 있다... . 출처: 모스크바대학교 [M.V. Lomonosov Moscow State University] (두산백과) 2.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으로, 1724년 1월 28일에 표트르 1세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앙사범학교를 모체로 1819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으로 설립.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국립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 Sain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 요약 러시아 북서부, 핀란드만(灣) 안쪽에 있는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국립대학교.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이다. Санкт-Петербург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국립 1724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Hic tuta perennat(Here we stay in safety) 약 6,000명(2009) 대학 약 3만 2000명, 대학원 약 4,000명 www.spbu.ru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으로, 1724년 1월 28일에 표트르 1세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앙사범학교를 모체로 1819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으로 설립하였다. 19세기 중엽 혁명적 민주주의자 N.G.체르니솁스키 등의 활약으로 러시아의 자연과학사상의 중심이 되었다. 사회과학 연구를 탄압하던 제정러시아의 사회정세 때문에 주로 자연과학 분야에서 빛나는 전통을 세웠으며, 지금도 그 경향이 남아 있다. 수학(數學)의 페테르부르크 학파로 불리는 P.L.체비쇼프, A.M.랴푸노프를 비롯하여 화학분야의 D.I.멘델레예프, 물리학의 E.K.렌츠, 생물학의 I.I.메치니코프, I.P.파블로프, 토양학(土壤學)의 V.V.도쿠차예프 등은 모두가 이 대학과 관련을 맺은 사람들이다. 1924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레닌그라드로 변경됨에 따라 교명을 레닌그라드대학(정식 명칭은 A.A.즈다노프 기념 국립 레닌그라드대학:Leningradskii gosudarstvennyi universitet imeni A.A.Zhdanov)으로 개칭하였다가 1991년 다시 원래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2010년 기준 생물학·토양학부, 아시아·아프리카학부, 경영학부, 지리학·지구생태학부, 지질학부, 언론학부, 역사학부, 수학·역학부, 의학부, 국제관계학부, 응용수학부, 물리학부, 문헌학부, 철학·정치학부, 화학부, 경제학부, 법학부, 군사학부의 20개 학부와 스포츠·체육학과에서 학부·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역사 지구 내에 있는 바실리에프스키섬(Vasilievsky Island) 캠퍼스와 페테르호프(Peterhof) 캠퍼스의 2개 주(主) 캠퍼스가 있으며 부속시설로는 도서관, 박물관, 출판부 등이 있다... . 출처: 국립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Sain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두산백과) {V}. 한국의 성균관대는 國史에 나오는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에서 이어진 600년 전통의 대학으로 현재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입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백과사전(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출판사 백과사전(두산백과, 종교학 대사전, 교육학사전, 중고생 학습사전) 및 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학술적 의견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성균관대학교가 일본 강점기에 교육기능을 폐지당하고 전문학교등으로 격하되는 과정을 서술하며, 國史영역(교과서 및 참고서 포함)에 나오는 조선 성균관에서 이어진 대학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필자의 World Class Universities 기준은 Historic, Royal임. 왕정전통이 없는 국가는 역사가 오래된 대학들[미국의 Harvard처럼]입니다. 미국은 왕정전통의 영국 식민지였지만, 독립전쟁을 거치고 미국인들이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인정하는 Harvard. 왕정전통을 가진 다른대학이 있어도 필자는 Harvard를 선택하겠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하버드대학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학: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1636 설립) 일류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하나. 성균관대와 학술교류를 맺는 대학은 많지만 큰 나라는 세개 정도, 강대국은 두개 정도, 대부분의 국가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오래되고 Royal전통이 있는 대학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강대국이거나 그런 나라는 아니지만 조선이란 나라가 기록문화를 가진 문화강국이었고, 불법.강제의 일제 강점기를 거친 후, 과도기에 Royal대인 국사 성균관 자격 宮성균관대(한국 최고대)와 교황 윤허 대학인 Royal 서강대(성대 다음)의 공생관계로 필요한 측면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차대전 패전국이자, 전쟁범죄국가, UN적국인 일본의 강제 불법 점령기로 수난을 겪었던 나라기 때문에, 대중언론에서는 대학이나 종교 관련, 일본 강점기 잔재나 그 추종세력들의 거센 저항을 받으며, 갈등을 겪고 있는 나라입니다. 한국에서는 Royal대인 성균관대와 교황윤허 Royal서강대(성대 다음)가 가장 학벌이 높습니다. 사설 입시지나 입시학원 배치표는 교과서나 법률,백과사전과 비교할 바 아닙니다. 주권.학벌없는 패전국 일본잔재 서울대 뒤에서 마음대로 등록하던 해방당시 신문을 이용, 국사 성균관(성균관대)에 덤벼온 왜구 서울대 카르텔은 일본으로 축출하기 전에는 끝까지 성균관대에 덤빌 운명으로 보여집니다. 불교 Monkey라 하느님에게도 덤빔. 유교도 인정않았음(해방후 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성명 유교 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하는유교국으로 복구). 일제강점기 유교를 인정 않으며 강제 포교한 일본 신도(불교),불교, 기독교중 기독교 하느님.예수도 인정않던 일본 신도.불교Monkey나라(자기들이 강제 포교 종교로 들여와 놓고 신부를 겁주고 목사를 고문.구타하며 점쇠천황이 하느님.예수보다 높다고 압박). 일본 신도(불교).일본불교 수장인 성씨없는 점쇠 賤民천황이 마당쇠賤民 서울대(불교Monkey) 전신 경성제대를 설립함. 성균관은 격하.폐지하여 해방후 미군정법령으로 성균관 복구하는 법률을 만들어, 성균관대가 그 성균관 자격으로 지금까지 이어지며, 6백년 넘는 역사 인정받고 있음. 대중언론에서는 왜구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왜구 서울대 카르텔에 공략당해옴. 여하튼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균관대학.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균관대입니다. 일제가 격하.폐지하여,해방후 미군정때,법률로 성균관을 복구시키기로 하여, 그 당시 해방한국에서 가장 신분이 높던 남.북 유림(그때는 미.소군정 시대로 남북왕래 가능) 1천여명이 모여, 독립투사이신 이승만.김구선생을 고문으로, 독립투사 김창숙 선생을 위원장으로 하여, 성균관에 대자를 더붙여 성균관대를 설치(복구형식)키로 결의하여,향교에 관한 법률로 성균관대 재정에 기여토록 법률을 만들었습니다.그렇게 이어져,6백주년 기념행사때는 세계사에 나오는 자격좋은 교과서 대학인 볼로냐.파리대학 총장과, 별도로 영국 옥스포드대.독일 하이델베르크대(교황 윤허대학) 총장등 세계적으로 유서깊은 대학 총장들이 성대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 예수회 창립자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에 대한 설명. 예수회의 창립자. 세례명은 이니고. 스페인 북부 바스크의 기프스코아에 있는 로욜라성에서 태어나고... 그는 야곱스 데 워라기네의 『황금전설』과 루돌프 폰 작센의 『그리스도의 생애』에 감동해서 회심의 빛을 보았다. 그는 죽음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21년 가을에 회복, 이듬해 3월 몬세라트의 분도 수도원을 방문해서 죄의 고백을 하고, 그 근처의 만레사에서 묵상과 고행의 생활(1522~23)을 보냈다. 이는 그의 저작 『영신수련』(1548)의 기본이 되었다. 예루살렘 순례(1523~24) 후, 바르셀로나에서 라틴어(1524~26), 알칼라와 살라망카에서 고등교육(1526~27), 파리에서 철학과 신학(1528~35)을 배우고, 36년 베네치아에서 신학을 수료해서 이듬해 6월 24일 사제로 임명받았다. 이 무렵 그는 그의 이름 이니고 대신에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37년 말부터 로마에 정주해서 『회칙초안』을 쓰고, 40년 9월 교황 바오로 3세에 의해서 예수회 창립이 인가되어 41년 4월 8일 총장으로 선발되고, 죽을 때까지 그 직에 헌신했으며 로마학원의 창립(1551)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중심사상은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과 <교회봉사>의 영성에 있다. .출처: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tius de Loyola]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VI}. 세계사에서는 세계 4대 문명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 중국 황하문명, 인도문명과 별도로, 그리스 에게문명을 문명의 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은 중국의 한나라 태학(이후 위나라 태학, 그리고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승계),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을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대학의 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의 세계종교로는, 유교, 기독교, 불교를 고대의 3대 세계종교로 보고, 중세시대의 이슬람은 후발 세계종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계사의 4대 발명품은 중국의 종이, 화약, 나침판, 인쇄술. 이처럼 중국문화는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인 서유럽의 종교문화, 사상, 철학, 대학, 과학의 발전만큼 중요한 세계적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사로 보면, 세계 4대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 황하문명, 인더스문명)과 그리스지역의 에게문명이, 인류문명의 시초입니다. 그런데 원래 세계 4대문명과, 에게문명은 다신교신앙이었으며, 半人半獸의 형태를 가진 대상을 신격화하는 선사시대의 과정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독교사상은 다신교의 헬레니즘을 계승한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한후, 인격신 중심의 그리스도교(헤브라이즘)가 중심이 되고, 헬레니즘사상도 오랫동안 같이 병존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고대에 세계종교로 성립된 세계종교는 동아시아 유교, 로마제국 기독교, 인도 아소카왕때의 왕성한 포교로 인도지역중심 불교가 3대 세계종교였습니다. 이슬람교는 나중에 중세시대에 서아시아 중심 세계종교가 되었습니다. 인도는 불교 이전 인더스 문명과 정복민의 신앙에서 형성된 브라만교가 선발종교였음., 그 후에,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성직자계급) 다음계급인 크샤트리아(정치.군사담당)출신 부처가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는 무신론적 특성을 보였는데, 최고계급인 브라만에 제사용품을 공급하는게 하나의 불만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부정하여, 누구나 바른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석가모니의 불교 사상이 각광받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같은 크샤트리아 계급인 아소카왕때, 적극적인 포교를 하여, 세계종교로 인정받다가, 나중에 다시 브라만교가 불교를 탄압하면서, 천 몇백년동안 인도에서는 억압받고 있습니다. 불교인구는 일본,태국 및 동남아 약소국들로, 그 수가 몇억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전통적 세계종교 유교나, 가톨릭 및 중세시대의 세계종교 이슬람교는 10억 이상의 세계종교 인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에서 싹튼 다신교 신앙중 황하문명의 유교와, 인더스문명의 브라만교는 지금도 힌두교로 이어지고 있는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지역과, 이집트 문명 지역은 중세시대의 이슬람교의 무자비한 포교로 이슬람국가로 변했습니다. 에게문명의 헬레니즘은 기독교와 경합하다가, 점차 기독교가 강력한 종교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유교는 최고신이신 하느님[(天):만물의 창조신,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최고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숭배하며, 그 밑에 여러 하위신이 있는 다신교신앙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인도의 브라만교.힌두교도 다신교 신앙입니다. 인도에서 만들어진 불교는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는 부처의 무신론적 불교 Monkey신앙. 그리고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은, 헬레니즘의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던, 로마제국에서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신앙으로 변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유태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치 않아서, 기독교사회에서 박해를 받아왔습니다.@불교는 인도정복자들이 만든 브라만교의 상당부분을 이어받았고(다시 브라만교에 억압당해 인도는 천 몇백년동안 불교를 억압하며, 브라만을 섬기는 힌두교로 이어짐) , 기독교는, 이스라엘보다,로마제국에서, 헬레니즘과 융합되어, 원죄의식등을 가지는 세계종교로 계승된 측면이 강합니다. 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으로서,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유교와 가톨릭, 한국사, 세계사, 국제법, 헌법등을 종합 반영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로 세계의 역사와 문화, 대학들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관련자료를 인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