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일 수요일
2025년 4월 4일(음력 3월 7일)부터 15일간은 유교문화권의 24절기인 청명(淸明)입니다.. 한식(寒食)은 2025년 4월 5일(음력 3월 8일). 중국은 청명절에, 한국은 한식에 조상의 묘를 참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강합니다.
2025년 4월 4일(음력 3월 7일)부터 15일간은 유교문화권의 24절기인 청명(淸明)절기입니다.. 한식(寒食)은 2025년 4월 5일(음력 3월 8일). 중국은 청명절에, 한국은 한식에 조상의 묘를 참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강합니다. 한국은 한식때 조상의 묘를 돌보고, 불을 쓰지 않고 차가운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한국에 강하게 남아읶는, 한식절을 기념하여, 취사를 금지하고, 찬 음식을 먹겠다면, 그 전날, 밥을 해두고, 나물이나 약밥, 김치, 국등도 준비하는게 좋습니다. 또는 신세대들은, 식빵에 딸기잼, 우유등을 번갈아서 먹는 방법도 있을것입니다. 동아시아인들은, 불을 기반으로 하여, 각종 요리를 해 온 중국식 오랜 전통때문에, 한식때는, 하루동안, 참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1]. 24절기중 하나이며 주요 명절인 중국의 청명절(한국의 24절기 청명이기도 함), 그리고 중국 당나라때 신라에 들어온 한식. 24절기인 청명과, 한국의 한식
중국에서는 명(明)나라이후 한식이 폐지되고 다시 청명절을 쇠는데, 한국은 신라(新羅)시대 이후 중국에서 한식을 받아들인 이후, 그대로 한식날에 조상에 성묘등을 하는 풍습이 강합니다.일반적으로 한식날에는 불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찬 음식을 먹습니다. 한식(寒食)은 숙식(熟食)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불을 사용하지 않는 한식날에는 미리 익혀둔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한국 세시풍속사전은 냉절(冷節)편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볼 때, 한식날 찬 음식을 먹는 전통을 지키겠다면, 미리 익혀서 차게 해둔 찰밥이나 약밥, 떡, 식혜, 전(煎), 국, 김치, 나물, 김, 발효시켜둔 음식, 익혀서 차게 해둔 채소, 육류 및 냉면, 콩국수등을 드시면 좋겠습니다.중국 한족전통의 청명절의 역사는 대략 주나라때부터로, 지금부터 약 2천5백여년전의 역사를 가졌다고 합니다. <역서(历书)>에 "춘분후 15일을 청명이라 하니,이 시기 만물이 맑고 청명해진다." 하여 청명이라 불리게 되었다 합니다.
특히 중국은 답청(踏靑)이라 하여 청명절에 교외(郊外)를 거닐며 자연을 즐기는 풍습이 있습니다.
* 24절기중 하나이며 주요 명절인 중국의 청명절, 그리고 중국 당나라때 신라에 들어온 한식에 대한. 개괄설명.
청명(淸明)은 24절기(節氣)중의 하나입니다. 24절기는 한(漢)나라 이후 세계종교로 성립된 유교의 본산인 중국에서 동아시아 한국등 오래된 유교국들에 전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청명과 한식은 음력 2월에 있을 수도 있고, 음력 3월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청명(春分)절기때는 유교에서 최고신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 다음의 하위신이신 오제[五帝. 다신교 전통의 유교에서 조상신 계열로 승천하여 최고신 하느님(天)다음의 하위신이 되심]중의 한분이신 봄의 신[춘(春)의 제(帝)] 태호(太皥)께서 다스리는 절기입니다.
참고로 예기(禮記) 월령(月令)의 오제(五帝)는 다음분들입니다.
춘(春)의 제(帝)는 태호(太皥), 하(夏)의 제(帝)는 염제(炎帝), 추(秋)의 제(帝)는 소호(少皥), 동(冬)의 제(帝)는 전욱(顓頊). 그리고 계하(季夏)의 달인 음력 6월에는 중앙에 황제(黃帝)를 넣고 있습니다.
중국은 청명절(淸明節)에, 한국은 한식에 조상의 묘(墓)를 참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강합니다. 특히 중국은 답청(踏靑)이라 하여 청명절에 교외(郊外)를 거닐며 자연을 즐기는 풍습이 있습니다. 밤과 낮의 길이가 거의 같은 춘분(春分)을 지나서 청명은 낮이 확실하게 더 길어지는 때로서,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성묘(省墓)도 하고 들놀이등의 답청(踏靑)도 하는 날입니다. 이 날부터 날이 풀리기 시작해 화창해지기 때문에 청명이라고 한다고 두산백과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식의 유래에 대해 한국 민족문화대백과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 다 음 -
...고대의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그에 앞서 어느 기간 동안 묵은 불〔舊火〕을 일절 금단하던 예속(禮俗)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중국의 옛 풍속으로 이날은 풍우가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한다.
또한, 개자추전설(介子推傳說)이 있는데...
한편, 한식에 대해 두산백과는 이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한식날 나라에서는 종묘(宗廟)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하고, 민간에서는 여러 가지 주과(酒果)를 마련하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만일 무덤이 헐었으면 잔디를 다시 입히는데 이것을 개사초(改莎草)라고 한다. 또 묘 둘레에 나무도 심는다. 그러나 한식이 3월에 들면 개사초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이날 성묘하는 습속은 당대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며, 우리 나라에 전해진 것은 신라 때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의 하나로 중요시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형(禁刑)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 내병조(內兵曹)에서는 버드나무를 뚫어 불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리면 임금은 그 불씨를 궁전 안에 있는 모든 관청과 대신들 집에 나누어주었다...
한국 세시풍속사전에 의하면 청명과 한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중국에서 한식은 산서(山西)지방에서 시작되어 남북조시대 말부터 전국적인 행사로 확대되었다. 시행 초기에는 날짜도 일정하지 않았지만, 후한(後漢)시대부터 동지 후 105일 전후 3일로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24절기의 하나로 한식과 날짜가 겹치는 청명(淸明)은 동지 후 107일로 밀려났으며 한식의 일부로 포함되었다. 그리고 한식은 농사의 시작과 겹치므로 풍년을 기원하여 제기차기, 그네타기, 갈고리 던지기 같은 여러 가지 놀이를 하였으며 당나라 무렵부터는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상묘(上墓)가 중요한 풍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남송 때부터 한식의 금화(禁火) 풍속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명나라 때에는 한식 자체가 폐지되었다. 대신 청명이 다시 부각되었으며, 청명의 날짜도 다시 동지 후 105일로 환원되었다...
조선 전기 영남 사림파의 영수이자 문장가, 관료였던 김종직(金宗直 )은 청명과 한식에 대해 이렇게 한시(漢詩)를 지었습니다.
淸明寒食一年春 節物斑斑入眼新(청명한식일년춘 절물반반입안신 ; 청명 한식은 1년의 봄이라, 시절 물건들이 골고루 눈에 들어 새롭네.)<김종직金宗直 한식寒食>
. 출처: 청명[淸明] (한시어사전, 2007. 7. 9., 전관수)
한국 고전 용어사전은 청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 다 음 -
청명1
[ 淸明 ]
24절기(二十四節氣) 중 제5 절기로서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 곧 양력 4월 5일 혹은 6일에 해당됨. 청명일(淸明日).
용례
예조에서 여제의를 상정하여 계문하기를, “경중과 외방의 각 고을에서 매년 봄 청명일과 가을 7월 15일, 겨울 10월 초1일에 제사가 없는 귀신을 제사하되, 그 단은 성북의 교간에 설치하고, 그 제물은 경중에서는 희생으로 양 3마리, 돼지 3마리를 쓰고 반미는 45두로 하소서.…” 하였다. ; 禮曹詳定勵祭儀以聞 京中及外方各官 每歲春淸明日 秋七月十五日 冬十月初一日 祭無祀鬼神 其壇設於城北郊間 祭物京中牲用羊三豕三 飯米四十五斗… [태종실록 권제7, 24장 앞쪽, 태종 4년 6월 9일(무인)]
. 출처: 청명1 [淸明]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 청명(淸明)에 대한 여러가지 사전류.자료들의 설명
1]. 청명(淸明)에 대한 표준 국어대사전의 설명.
청명(淸明)
이십사절기의 하나. 춘분(春分)과 곡우(穀雨)의 사이에 들며, 4월 5일 무렵이다.
. 필자 주 1). 답청(踏靑)에 대한 표준 국어대사전의 설명
중국에서, 청명절에 교외를 거닐며 자연을 즐기던 일.
2]. 청명절(淸明節)에 대한 중국 시사문화사전의 설명.
청명절
[ 清明节 , Qīngmíng Festival , Qīngmíngjié ]
동지가 지난 후 104일이 되는 날로 24절기의 5번째이며, 태양 황경이 15도가 되는 때. 음력으로 3월 경이며, 양력 4월 5일 전후로 조상의 묘를 돌보는 풍습이 있다.
. 출처: 청명절[清明节, Qīngmíng Festival, Qīngmíngjié] (중국시사문화사전, 2008. 2. 20., 이현국)
3]. 중국 신화망의 청명절에 대한 소개.
http://kr.xinhuanet.com/2018-04/02/c_137082686.htm
청명절의 전통풍습, 당신은 아시나요?
.출처: 신화망/2018-04-02/편집:박금화
<신화망 베이징 4월 2일>
지금까지 2,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청명절은 중국의 중요한 전통적인 명절 중 하나로서 답청절(踏靑節, 들놀이 하는 명절)이라고도 부른다. 양력 4월 5일 전후가 청명절이고 24절기 중 하나다. 청명절에 관해 어떤 전통적인 풍속이 있는지 함께 알아보기로 하자.
* 성묘
조상에게 제사지내고 성묘하는 것은 청명절의 가장 중요한 습속이다. 청명절에 성묘하는 것은 조상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 들놀이
고대에는 탐춘(探春), 쉰춘(尋春, 봄을 찾다)등이라고 불렀다. 봄이 대지를 찾은 4월 청명절은 봄날 들놀이 하기에 아주 적합한 시즌이다.
* 연날리기
청명절 전후는 1년에서 연날리기에 가장 적합한 계절로 간주되고 있다.
* 그네타기
이것은 고대 청명절의 습속이다. 사람들은 그네를 타면 모든 병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네가 높이 올라갈수록 더욱 풍족한 생활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 버드나무 가지 꽂기
청명절 때, 민간에는 버드나무 가지 꺾기, 버드나무 가지 달기, 버드나무 가지 꽂기등 습속이 있다. 고대 사람들은 버드나무 가지가 액막이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 식수
청명절 전후 쯤이면 봄날 햇볕에 따스하고 봄비가 많이 내려 심은 묘목의 활착률이 높고 성장이 빠르다.
. 원문출처: 신화망
4]. 청명절[淸明節,清明节 qīngmíngjié]에 대한 베이징관광국의 설명
칭밍제(清明节 qīngmíngjié 청명절 )
청명절은 음력 24절기 중의 하나로, 이 시기 만물이 맑고 청명해진다하여 청명이라 불리게 되었다 , 전통적으로 밭갈이 파종을 하는 시기이며, 성묘를 하는 날이기도 하다.
청명절은 음력 24절기 중의 하나로, 음력 2월 중춘(仲春)과 음력 3월 늦봄(暮春)사이이며 동지(冬至)로부터 108일후다.
중국 한족전통의 청명절의 역사는 대략 주나라때부터로, 지금부터 약 2천5백여년전의 역사를 가졌다. <역서(历书)>에 "춘분후 15일을 청명이라 하니,이 시기 만물이 맑고 청명해진다." 하여 청명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청명시기는 기온이 오르고 밭갈이와 파종에 적합한 시기다. 그런탓에 청명전후로 파종을 하였다.
또 청명절은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성묘를 가는 날이다.
2006년 5월 20일, 청명절은 국무원의 비준에 의해 중국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출처: 베이징관광국 한글공식사이트
* 필자 주 2). 여기서 언급하는 历书(역서)는 역사서(歷史書)가 아니고, 책력(冊曆)이나 역법(曆法)에 관한 서적인 역서(曆書)를 의미합니다. "춘분후 15일을 청명이라 하니, 이 시기 만물이 맑고 청명해진다"라는 曆學的 의미가 청명절의 본래 의미에 가장 가까운 것 같습니다. 해와 달의 운행, 기상변동의 과정을 관찰한 결과 봄날씨가 화창하여 청명하니, 기온이 오르고 밭갈이와 파종에 적합한 것으로 오랜 관찰을 하여 선택한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조에 대한 제사가 꼭 날씨 좋은 날에만 하는건 아니지만, 본격적인 봄날씨로, 밖에서 선조에게 제사지내기 좋은 날임은 분명합니다.
5]. 청명절에 대해 인민넷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처 인민넷 | http://korea.cpc.people.com.cn/74090/15402083.html
4월 5일은 중국의 전통명절인 청명절입니다. 2천5백여년의 력사를 자랑하고있는 청명절은 지금도 해외 화교들을 포함한 모든 중화민족의 중요한 전통명절의 하나입니다. 현재 청명절은 단순히 조상에게 제를 올리거나 선인들을 기리는 의미를 넘어, 봄철 야외 소풍을 나가는 등 자연과 가까와지는 봄철 행사로도 인식되고있습니다.
중국에서는 25개 민족이 청명절 풍습을 가지고있습니다. 비록 풍습에서 각자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있기는 하지만 성묘나 조상제, 야외 소풍 등 기본적인 내용은 서로 비슷합니다....
청명절은 주로 조상을 추모하는 명절인데 행해지는 주요 전통 의식으로는 성묘나 제례 등이 있습니다. 이런 행사들은 조상에 대한 례의, 가족간 화목, 효의 구체적인 표현으로도 해석됩니다. 한족과 일부 소수민족들은 모두 청명절에 성묘하는 풍습을 가지고있습니다.
옛 풍속에 따르면 성묘때 사람들은 술과 식품, 지전 등을 준비하는데 소지한 식품을 조상묘에 공봉하고 나서 지전을 태웁니다. 다음 분봉에 새흙을 올리고 거기에 파란싹이 움튼 나무가지 몇개를 꺾어다 꼽아놓고 절을 올리며 제를 지냅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술과 차린 음식을 그 자리에서 전부 음복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청명절의 또 다른 풍습으로 사람들은 이날 취사를 금하고 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합니다. 이는 "청명절"과 "한식절"의 화합으로 유래한것입니다. 성묘는 원래 한식절의 주요 행사 내용이였습니다. 한식절은 2600여년전 진문공(晉文公)이 충신 개자추(介子推)를 애도하기 위해 만들어낸것입니다. 그후, 한식과 청명이 린접한 관계로 취사 금지의 성묘 풍습이 점차 청명 행사에 합쳐져서 치러지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한식이 청명의 별칭으로 정착하게 되였고 청명절의 주요 풍습으로도 변모하게 되였습니다.
성묘와 취사 금지를 제외하고 청명절의 기타 풍습으로는 또 소풍, 연날리기, 그네타기와 오락게임 등이 있습니다. 중국의 남부 지방에서는 "누에 아가씨"가 수많은 양잠민들에게 에워싸여 연도에 누에 고치를 뿌리는 "누에 고치 축제"와 누에신 제례행사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청명절에는 성묘에서 보여지는 슬픔과 쓰라림의 눈물도 시야에 들어오고, 소풍과 오락게임에서 전해지는 즐거운 웃음소리도 들려옵니다. 추모와 애도를 바탕으로 봄철 건강단련 까지 이중 색채를 가지는것입니다.
청명때면 중국의 대부분 지역은 날씨가 따뜻해 지면서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는데 봄갈이와 봄철 파종의 호시절입니다. 옛날부터 "청명을 전후해서 파종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농작지마다 농민들의 일손이 분주하기만 합니다.
청명절은 가지고있는 문화적 의의도 남다릅니다. 선인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면서 혈육의 정을 더한층 돈독히 합니다. 오늘의 청명절은 선인들에 대한 후손들의 추모는 물론 이들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전통문화의 미덕 고양을 다시 한번 깊이 반성해 보는 좋은 계기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 필자 주 3). 지전에 대해 두산백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전[ 紙錢 ]
요약: 동전을 본떠서 만든 돈 모양의 종이.
명전(冥錢)·조전(造錢)·제천정(祭天錠) 이라고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은(殷)나라(?∼ 1100) 때 비롯한 중국 민속이라고 하나, 문헌에 의하면 위진(魏晉) 남북조시대( 3∼6세기) 무렵으로 추정된다. 당시는 종이를 돈 모양으로 만들어 죽은 사람의 시체와 함께 묻는 명기(明器)로서 사용하였다. 이미 한(漢)나라 때 실제 돈을 묻는 풍습이 있었고, 이것이 점차 종이로 만든 돈으로 바뀌었다. 당나라 때부터 북송(北宋)시대(7∼12세기)에는 더욱 성황을 이루었는데 이 무렵에는 명기로서만이 아니라 상제(喪祭) 때도 지전을 태워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고, 병이 나면 귀신에게 제사지내면서 태워 재해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출처: 지전[紙錢] (두산백과)
6]. 청명(淸明)에 대해 한국 민족 대백과는 다음과 같이 설명.
내용
춘분과 곡우 사이에 들며, 음력 3월, 양력 4월 5일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이 15°에 있을 때이다. 이날은 한식의 하루 전날이거나 때로는 한식과 같은 날이 된다. 동시에 오늘날의 식목일과도 대개 겹치게 된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청명을 기하여서 봄일을 시작하므로 이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농사력으로는 청명 무렵에 논밭둑의 손질을 하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특히 논농사의 준비작업이 된다. 다음 절기인 곡우 무렵에는 못자리판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농사를 많이 짓는 경우에는 일꾼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청명·곡우 무렵이면 서둘러 일꾼을 구하기도 하였다.
『동국세시기』 청명조에 “대궐에서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 불을 일으켜 각 관청에 나누어주는데, 이것은 중국의 주나라 이래 당나라·송나라에서도 행하여지던 예로부터의 제도이다.”라고 하였다. 『열양세시기』에서는 이와 같이 불을 나누어주는 일을 한식조에 기록하고 있고, 청명에 대하여서는 언급이 없다.
불은 한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니, 한식조에 기록하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최남선(崔南善)은 한식의 풍속을 고대의 종교적 의미로 해석하여, 해마다 봄에 신화(新火)를 만들어 구화(舊火)를 금지하던 예속(禮俗)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다.
청명과 한식은 흔히 같은 날이 되기 때문에 뒤섞이는 경우가 많으나, 청명은 농사력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하나이므로 농사관계사항을 기록하는 것이 옳다.
.출처:청명 [淸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7]. 청명(淸明)에 대한 두산백과의 설명
청명
[ 淸明 ]
요약 24절기 중 하나로 춘분과 곡우 사이에 든다. 이 날 부터 날이 풀리기 시작해 화창해지기 때문에 청명이라고 한다. 농가에서는 이 무렵 바쁜 농사철에 들어간다.
24절기 가운데 다섯째에 해당하며,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에 든다. 음력으로는 3월이지만, 양력으로는 4월 5·6일 무렵이므로 태양의 황경(黃經)이 15˚에 있을 때이다. 보통 한식(寒食)의 하루 전날이거나 한식과 같은 날이 많고, 오늘날의 식목일(植木日)과도 겹치는 경우가 흔하다.
청명일(淸明日)의 준말로, 이때부터 날이 풀리기 시작해 화창해지기 때문에 청명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청명에서 곡우 이전까지의 15일 동안을 다시 3후(三候)로 나누어 1후에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2후에는 들쥐 대신 종다리가 나타나며, 3후에 비로소 무지개가 보인다고 하였다.
농가에서는 이 무렵부터 바쁜 농사철에 들어가 논밭의 가래질, 논밭둑 다지기, 보리밭 매기, 채소 파종 등을 시작하느라 일손 구하기가 힘들다. 또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에 따르면, ‘이 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로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친 뒤 다시 각지의 관청에 나누어 준다’고 하였다. 이 불을 다음날인 한식에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 바로 한식이다.
이 무렵을 전후해 찹쌀로 빚은 술을 청명주(淸明酒)라 하여 담근 지 7일 뒤 위에 뜬 것을 걷어내고 맑은 것을 마신다. 또 이때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여 한 해 동안 먹을 장을 담그기도 하고, 서해에서는 곡우 무렵까지 작지만 연하고 맛이 있는 조기잡이로 성시(盛市)를 이루기도 하였다. 청명과 관련된 속담에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가 있는데, 청명과 한식이 겹치거나 하루 차이밖에 나지 않아 별 차이가 없음을 나타낼 때 흔히 쓴다.
. 출처: 청명[淸明] (두산백과)
8]. 청명(淸明)에 대한 한국 세시풍속사전의 설명
정의
음력 3월에 드는 24절기의 다섯 번째 절기. 청명(淸明)이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내용
청명은 음력으로는 3월에, 양력으로는 4월 5~6일 무렵에 든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15도에 있을 때이다. 이날은 한식(寒食)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 있으며,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에 있다.
중국에서는 청명 15일 동안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에는 들쥐 대신 종달새가 나타나며, 말후(末候)에는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의 기록에 따르면, 이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한다. 수령들은 한식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고 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는 불을 나누어주는 일을 한식조(寒食條)에 기록하고, 청명에 대하여서는 언급이 없다. 청명과 한식은 흔히 같은 날이 되기 때문에 뒤섞이는 경우가 많아 오늘날 민간에서도 뚜렷한 구분 없이 전해지고 있다.
농사력으로는 청명 무렵에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특히 논농사의 준비 작업이 된다. 청명이 되면 비로소 봄밭갈이를 한다. 청명은 농사력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하나로 날씨와 관련된 속신이 많다. 청명이나 한식에 날씨가 좋으면 그 해 농사가 잘 되고 좋지 않으면 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점친다. 바닷가에서는 청명과 한식에 날씨가 좋으면 어종이 많아져서 어획량이 증가한다고 하여 날씨가 좋기를 기대한다. 반면에 이날 바람이 불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파도가 세게 치면 물고기가 흔하고, 날씨가 맑아도 물밑에서 파도가 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경남 사천에서는 청명날의 날씨가 좀 어두워야 그 해 농작물(農作物)에 풍년(豊年)이 들고, 너무 맑으면 농사(農事)에 시원치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청명에 나무를 심는데, 특히 ‘내 나무’라 하여 아이가 혼인할 때 농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었다. 이날 성묘(省墓)를 가기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청명이나 한식은 지상에 있는 신들이 하늘로 올라간 날이어서 특별히 택일(擇日)을 하지 않고도 산소를 돌보거나 이장(移葬)을 해도 좋다고 믿는다. 또 이날은 손이 없기 때문에 묘자리 고치기, 비석 세우기, 집 고치기를 비롯해 아무 일이나 해도 좋다고 한다.
의의
청명이란 말 그대로 날씨가 좋은 날이고, 날씨가 좋아야 봄에 막 시작하는 농사일이나 고기잡이 같은 생업 활동을 하기에도 수월하다. 곳에 따라서는 손 없는 날이라고 하여 특별히 택일을 하지 않고도 이날 산소를 돌보거나, 묘자리 고치기, 집수리 같은 일을 한다. 이러한 일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겨우내 미루어두었던 것들이다.
. 출처: 청명[淸明] (한국세시풍속사전)
[3]. 한식(寒食)에 대한 여러가지 사전류.자료들의 설명
1]. 한식(寒食)에 대한 표준 국어대사전의 설명.
우리나라 명절의 하나. 동지에서 105일째 되는 날로서 4월 5일이나 6일쯤이 되며, 민간에서는 조상의 산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사초(莎草)하는 등 묘를 돌아본다
2]. 한식절(寒食節)에 대한 중국 시사문화사전의 설명.
한식절
[ 寒食节 , Cold Food Festival , Hánshíjié ]
동지(冬至)가 지난 후 105일이 되는 날로 청명절(清明节) 전후 3일 중의 한 날과 겹치며, 양력으로 4월 4일 또는 5일에 해당한다. 이 날에는 조상의 묘를 돌보고, 불을 쓰지 않고 차가운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다.
. 출처: 한식절 [寒食节, Cold Food Festival, Hánshíjié] (중국시사문화사전, 2008. 2. 20., 이현국)
3]. 한식(寒食)에 대해 한국 민족 대백과는 다음과 같이 설명.
정의
명절의 하나.
내용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다.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로, 음력 2월 또는 3월에 든다. 2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철이 이르고, 3월에 드는 해는 철이 늦다. 그래서 ‘2월 한식에는 꽃이 피지 않아 3월 한식에는 꽃이 핀다.’는 말이 전한다.
한식은 어느 해나 청명절(淸明節) 바로 다음날이거나 같은 날에 든다. 이때는 양력 4월 5, 6일쯤으로 나무심기에 알맞은 시기이다. 우리 나라에서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여 나무를 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4절후 속에 들어 있지는 않으나 습속으로 전해 내려오며,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고대의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그에 앞서 어느 기간 동안 묵은 불〔舊火〕을 일절 금단하던 예속(禮俗)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중국의 옛 풍속으로 이날은 풍우가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한다.
또한, 개자추전설(介子推傳說)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진(晉)나라의 문공(文公)이 국란을 당하여 개자추 등 여러 신하를 데리고 국외로 탈출하여 방랑할 때, 배가 고파서 거의 죽게 된 문공을 개자추가 자기 넓적다리살을 베어 구워먹여 살린 일이 있었다.
뒤에 왕위에 오른 문공이 개자추의 은덕을 생각하여 높은 벼슬을 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개자추는 벼슬을 마다하고 면산(緜山)에 숨어(혹은 19년을 섬겼는데 俸祿을 주지 않으므로 숨었다고도 전한다.)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으므로 개자추를 나오게 할 목적으로 면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죽고 말았다. 그 뒤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또 타죽은 사람에게 더운밥을 주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 하여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이날 문에 버드나무를 꽂기도 하고 들에서 잡신제(雜神祭)인 야제(野祭)를 지내 그 영혼을 위로하기도 한다. 특히,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비가 내리는 한식을 ‘물한식’이라고 하며, 한식날 비가 오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제사)하고, 민간에서는 술·과일·포·식혜·떡·국수·탕·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지낸다. 이를 명절제사, 곧 절사(節祀)라 한다. 또한 여러 가지 주과(酒果)를 마련하여 성묘하고, 조상의 묘가 헐었으면 봉분을 개수하고 주위에 식수도 하고 사초(莎草)도 한다.
만일 조상의 묘가 멀 때에는 묘지기가 대리로 제향(제사)를 올려준다. 이날 성묘하는 습속은 당대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며, 우리 나라에 전해진 것은 신라 때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의 하나로 중요시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형(禁刑)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 내병조(內兵曹)에서는 버드나무를 뚫어 불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리면 임금은 그 불씨를 궁전 안에 있는 모든 관청과 대신들 집에 나누어주었다. 한식날부터 농가에서는 채소 씨를 뿌리는 등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든다. 흔히, 이날 천둥이 치면 흉년이 들 뿐만 아니라 국가에 불상사가 일어난다고 믿어 매우 꺼린다.
. 출처: 한식 [寒食]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4]. 한식(寒食)에 대한 두산백과의 설명
한식
[ 寒食 ]
요약 동지(冬至)에서 105일째 되는 날.
청명절(淸明節) 당일이나 다음날이 되는데 음력으로는 대개 2월이 되고 간혹 3월에 드는 수도 있다. 양력으로는 4월 5·6일경이며, 예로부터 설.단오.추석과 함께 함께 4대 명절로 일컫는다.
한식이라는 명칭은 이날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옛 습관에서 나온 것인데, 그 기원은 중국 진(晉)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개자추는 문공(文公)과 19년간 망명생활을 함께하며 충심으로 보좌하였으나, 문공은 군주의 자리에 오른 뒤 그를 잊어버리고 등용하지 않았다. 실망한 개자추는 면산(緜山)에 은거한 뒤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문공이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다. 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나오게 하기 위하여 불을 질렀는데, 그는 끝내 나오지 않고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이에 사람들이 그를 애도하여 찬밥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원과 함께, 고대에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이에 앞서 일정 기간 구화(舊火)를 일체 금한 예속(禮俗)에서 유래된 것이라고도 전해진다.
한식날 나라에서는 종묘(宗廟)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하고, 민간에서는 여러 가지 주과(酒果)를 마련하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만일 무덤이 헐었으면 잔디를 다시 입히는데 이것을 개사초(改莎草)라고 한다. 또 묘 둘레에 나무도 심는다. 그러나 한식이 3월에 들면 개사초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날 성묘하는 풍습은 당(唐)나라 때 중국에서 시작하여 전해진 것으로 신라 때부터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로 숭상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형(禁刑)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민속적 권위가 더욱 중시되어 조정에서는 향연을 베풀기도 하였으나 근세에는 성묘 이외의 행사는 폐지되었다. 농가에서는 이날 농작물의 씨를 뿌린다.
. 출처: 한식 [寒食] (두산백과)
5]. 한식(寒食)에 대한 한국 세시풍속사전의 설명
한식
[ 寒食 ]
. 분야 정일
. 계절 봄(음력 3월)
. 날짜 양력 4월 5일경
. 다른이름 고초일(苦草日), 금연일(禁煙日), 숙식(熟食), 냉절(冷節)
. 관련속담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 관련풍속 성묘(省墓), 산신제(서울지역), 개사초(改莎草), 제기차기, 그네타기, 갈고리던지기
. 관련속담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정의
동지(冬至) 후 105일째 되는 날. 양력으로는 4월 5일 무렵이다.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이다. 일정 기간 불의 사용을 금하며 찬 음식을 먹는 고대 중국의 풍습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금연일(禁烟日), 숙식(熟食), 냉절(冷節)이라고도 한다. 한식은 음력을 기준으로 한 명절이 아니다. 따라서 한식은 음력 2월에 있을 수도 있고, 음력 3월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2월 한식과 3월 한식을 구분하는 관념이 있다. 그래서 2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세월이 좋고 따뜻하다고 여기며, 3월에 한식이 있으면 지역에 따라서 개사초를 하지 않는다.
유래
한식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춘추시대의 인물인 개자추[介子推, 介之推] 설화이다. 개자추는 망명해 있던 진(晉)나라의 공자 중이(重耳)를 위해 헌신했고, 중이는 마침내 진 문공(晉文公: 재위 .C. 636~628)으로 즉위했지만, 개자추에게는 아무런 벼슬을 내리지 않았다. 분개한 개자추는 면산(聃山)으로 은둔했고, 뒤늦게 이를 깨달은 진 문공이 개자추를 등용하려 했지만, 그는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했다. 진 문공은 개자추를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고 타죽고 말았다. 그래서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만을 먹는 한식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대의 개화(改火) 의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원시 사회에서는 모든 사물이 생명을 가지며, 생명이란 오래되면 소멸하기 때문에 주기적 갱생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불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오래된 불은 생명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오래 사용한 불을 끄고 새로 불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개화 의례를 주기적으로 거행했는데, 한식이란 구화(舊火)의 소멸과 신화(新火) 점화까지의 과도기란 설명이다. 그리고 한식이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인 것도 28수(宿)의 하나이며 불을 관장하는 심성(心星)이 출현하는 것이 이때이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개자추의 죽음은 구화를 끄면서 제물을 태우는 관습을 반영한 설화라고 한다. 이 중 개화의례와 관련짓는 후자의 설이 더 유력하다.
내용
한국에서 한식을 언제부터 명절로 여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문종 24년(1070) 한식과 연등 날짜가 겹치므로 연등을 다른 날로 바꾸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늦어도 고려 전기에는 한식이 중요한 명절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식에는 금화(禁火)와 성묘의 풍습, 투란(鬪卵: 계란 위에 누가 그림을 더 잘 그리는지를 겨루는 유희) 놀이가 있었으며, 소나기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로 여겨졌다. 고려시대에 한식의 시기가 변하였는데, 고려 후기에는 동지 후 105일이었지만, 전기에는 그보다 7일 정도 빠른 양력 3월 30일 무렵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시대에도 한식은 중요한 명절로 지켜졌다. 한식을 주제로 한 많은 시가 전해지는 사실도 이를 반영한다. 한식에는 금화와 개화가 행해졌다. 세종 13년(1431)에 한식 사흘 동안 불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명령이 내려진 적이 있었으며, 매년 임금은 내병조(內兵曹)에서 바친 버드나무를 마찰하여 일으킨 불을 궁중에 있는 관청과 대신 집에 나누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상 숭배였다. 왕실에서는 종묘 제향을 지냈고, 종묘에서 제외되었거나 후손이 없는 왕과 비빈 등에 대해서는 성묘를 했다. 허물어진 능묘를 보수하기도 하였다.
또 민간에서는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절사(節祀)라 하여 산소로 올라가 성묘를 했는데, 그 중에서도 한식과 추석이 가장 성하여 교외로 향하는 길에 인적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농가에서는 이날을 기하여 밭에 파종을 했다.
이렇듯 한식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중요한 명절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특별한 행사 없이 지내는 경우도 많다. 특히 불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조상 숭배와 관련한 많은 행사들을 하고 있다. 집안에 따라서는 사당에서 조상 제사를 지내기도 하지만, 많은 가정에서는 성묘를 하고 간단한 제사를 지낸다. 이때 서울 지역에서는 제사에 앞서 먼저 산신제를 지내기도 한다. 성묘의 대상은 기제사를 받는 조상도 있지만, 기제사를 지내지 않는 먼 조상이나 후손이 없는 사람인 경우도 많다.
또 손 없는 날 또는 귀신이 꼼짝 않는 날로 여겨 산소에 손을 대도 탈이 없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산소에 개사초(改莎草: 잔디를 새로 입힘)를 하거나 비석 또는 상석을 세우거나 이장을 한다.
한편, 한식은 농사를 준비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소를 부려보기도 한다. 또 한식 무렵이면 볍씨를 담근다. 그러나 씨를 뿌리면 말라죽거나 새가 파먹는 고초일(苦草日)이라 하여 씨를 뿌리지는 않는다. 또 강원도 지역에서는 과일나무의 벌어진 가지 사이로 돌을 끼워넣는 과일나무 장가보내기를 하는데, 열매를 잘 열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 한식의 날씨를 살펴서 그 해 시절의 좋고 나쁨이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곧 한식에 날씨가 좋고 바람이 잔잔하면 시절이 좋거나 풍년이 든다고 하며, 어촌에서는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그러나 폭풍이 불고 큰비가 내리면 그 반대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식날 새벽에 천둥이 치면 서리가 일찍 오고 저녁에 천둥치면 늦게 온다는 믿음도 있다.
인접국가사례
중국에서 한식은 산서(山西)지방에서 시작되어 남북조시대 말부터 전국적인 행사로 확대되었다. 시행 초기에는 날짜도 일정하지 않았지만, 후한(後漢)시대부터 동지 후 105일 전후 3일로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24절기의 하나로 한식과 날짜가 겹치는 청명(淸明)은 동지 후 107일로 밀려났으며 한식의 일부로 포함되었다. 그리고 한식은 농사의 시작과 겹치므로 풍년을 기원하여 제기차기, 그네타기, 갈고리 던지기 같은 여러 가지 놀이를 하였으며 당나라 무렵부터는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상묘(上墓)가 중요한 풍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남송 때부터 한식의 금화(禁火) 풍속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명나라 때에는 한식 자체가 폐지되었다. 대신 청명이 다시 부각되었으며, 청명의 날짜도 다시 동지 후 105일로 환원되었다.
. 출처: 한식 [寒食] (한국세시풍속사전)
6]. 한식(寒食)에 대한 시사 상식사전의 설명
한식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
한식은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을 말한다. 한식은 24절기의 하나인 동지를 기준으로 하여 정한 명절이기 때문에 음력 2월 또는 3월에 들고 양력으로는 매년 4월 5일이나 6일 무렵에 들게 된다.
한식(寒食)에는 글자 그대로 찬 음식을 먹는다. 이는 이 날은 비바람이 심해서 불을 금하고 찬 밥을 먹었다는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중국 진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에 관한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개자추가 간신에게 몰려 면산(山)에 숨어 있었는데 문공(文公)이 그의 충성심을 알고 찾았으나 산에서 나오지 않자, 나오게 하기 위하여 면산에 불을 놓았다. 그러나 개자추는 나오지 않고 불에 타죽고 말았으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애도하여 불을 피우지 않고 찬밥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고대에 종교적 의미로는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이에 앞서 일정 기간 구화(舊火)를 일체 금한 예속(禮俗)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식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의 여러 세시기(歲時記)에 나타난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삼월조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산소에 올라가서 제사를 올리는 풍속은 설날 아침, 한식, 단오, 추석 네 명절에 행한다. 술, 과일, 식혜, 떡, 국수, 탕, 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를 드리는데 이것을 명절 하례 혹은 절사(節祀)라 한다. 선대부터 내려오는 풍속을 쫓는 가풍에 따라서 다소간 다르지만 한식과 추석이 성행한다.
까닭에 사방 교외에는 사대부 여인들까지 줄을 지어 끊이지 않았다. 상고하면 당나라 정정칙(鄭正則)의 사향의(祠享儀)의 글에 이르기를 옛날에는 산소에서 지내는 제사에 관한 기록된 문헌이 없었다. 그런데 공자가 묘를 바라보며 때에 따라서 제사 지내는 것을 채택했으므로 이른바 묘제는 이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 한식은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것이 신라시대에 우리나라로 전래되어 우리의 풍속에 맞게 사대명절에 속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조선의 역대 왕 및 비)와 각 능원에 제향하고, 민간에서는 여러 가지 술과 과일을 마련하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만일 무덤이 헐었으면 잔디를 다시 입히는데 이것을 개사초라고 한다. 또 묘 둘레에 식목을 하는 것도 이 날이다. 그러나 한식이 3월에 들면 개사초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농가에서는 이 날 농작물의 씨를 뿌린다.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의 하나로 숭상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형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더욱 그 민속적 권위가 중시되어 조정에서는 향연을 베풀기도 하였으나 근세에 들어와서는 성묘 이외의 행사는 폐지되었다.
. 출처: 한식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4]. 일제강점기를 거쳐, 혼란했던 대학, 중.고등학교 문제는, 법적 기준과 주권.자격 기준으로, 중.고교의 경우, 어느정도 대학진학률등이 높아왔던 학교들이, 倭잔재학교보다 우선순위를 가져야 합니다. 자체의 군사력으로, 독립하지 못해서, 왜구 잔재학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시중의 대중언론.사설입시지의 왜곡을 겪으면서,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권력이 아주 강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어떻게 할 수가 앖어, 중학교 무시험전형, 대도시 고교 평준화로 부분적 봉합을 시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소정의 성과 기대합니다. 서강대는 명나라때부터 중국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유교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높고, 서양에 유교와 공자님을 학술적으로 잘 소개해준 귀족계파 예수회산하 대학입니다. 불교 Monkey 일본 강점기를 거치고, 교육.종교.학교.대중언론.공무원 분야등에서, 실무권력을 갖지못한, 성균관과 유림들이었는데, 일본 항복후, 미군정때, 총독부 인원들이 재등용되어, 다시 복구한 국사 성균관(성균관대)자격을 약탈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성균관대에 도전해온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 각종 왜구학교들의 주권없는 약탈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법과, 역사, 사실은 아주 중요합니다. 필자는 성대출신입니다. 국가주권처럼 성균관(성균관대)의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도 아주 중요합니다. 성균관의 승계 대학 성균관대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복잡한 국제법상의 갈등이 얽혀있습니다. 해방당시 다른 대학들은 이 법적 갈등의 당사자대학들이 아닙니다. 유교의 하느님숭배,조상숭배와 舊신분제 전통을 잘 이해하던 예수회의 귀족계파 서강대는,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 국사 성균관교육이 지속되면서, 양반 성대를 이해하던 대학임.이뒤로 조선성명 복구된 5,000만 한국인 뒤 주권.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불교 Monkey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대학들.@대중언론,사설 입시지, 후발 법령은, 국제법, 한국사(국사 성균관교육. 성균관대 자격), 세계사, 국가주권의 상위법.상위 국제관습법 못이깁니다.
@@2차대전-->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선전포고(을사조약.한일병합등 불평등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그 이후 카이로선언. 카이로선언이후, 프랑스.구소련.폴란드가 승인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연합국 국가원수들의 합의문이며, 미군정법률보다 상위법인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의 상위법으로 자격있는 국사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로 교육기능 승계이전)-->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한국에 주권이 없다고 항복한 일본. 성씨없는 일본 점쇠(일본에서는 천황)가 세운 경성제대 및 여타 초급대, 중.고등학교들 @그런데, 상위법인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 의해,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한국영토에서 축출해야 될 패전국 일제잔재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개칭하고, 공자묘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하는 하위법률이 제정됨 (성균관은 일제 강점기에 교육기능 폐지되어, 미군정기에 복구함). 미군정당시의 문교부 공무원 및 자문그룹들이, 하위법인 미군정법률을 제정하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로 상위법자격 성균관(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서 자격있는 성균관)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꾀한것임.*미군정 군정법령 제 15호.1945년 10월 16일 @이 약탈을 피하기 위하여,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 김구, 위원장:김창숙)를 개최하여, 성균관대를 설립하기로 결의함. "1945년 12월 10일 자유신문 보도기사(成均館大學 재단을 촉성, 1,000여 대표 참가로 全國儒林大會)가 국사편찬위 자료에 있음.@.미군정기의 국사 성균관교육. *학제. 성균관 태학.이상은 유학에 관한 학교이나 또 중앙과 지방에 외국어학과 의학, 율학, 천문지리학 등을 가르치는 각 기관이 있음.* 필자주::성균관(태학)만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구이고, 개화기의 기타 교육기구는 중등교육기구들입니다. @법령 제102호.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1946년 8월 22일@그리고 김창숙 성균관장이 전국 유림대회 결의대로 성균관대를 미군정에 등록하고 대학으로 인가받음.성균관 후신 경학원에서 강의하던 김창숙 선생이 성균관장이 되고, 1946년 9월 25일성균관대학의 설립을 인가받고 초대학장에 취임하였습니다.이 때부터, 성균관대는 대학기구로, 성균관은 공자님 제사기구인 성균관으로 공식 2원화된것임. 성균관대가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내용은 성균관대와 성균관의 입장이 동일합니다.@조선성명복구령.[시행 1946. 10. 23.] [군정법률 제122호, 1946. 10. 23., 제정] @미군정령 제 194호 6조(1948년)는,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과 성균관대학의 유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제6조 향교 재단의 재산으로부터 생하는 수입은 좌의 목적 이외에는 사용함을 부득함.1. 성균관 급 성균관 대학의 유지. *향교재산관리에관한건[군정법령 제194호, 1948.5.17., 제정]
https://blog.naver.com/macmaca/223528462438
[5].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
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6]. 잘 읽어보시고 상위법(국제법,헌법)>하위법, 상위규범(한국사,세계사, 주권등)>하위규범(대중언론, 사설 입시지, 사설 입시학원 분석)간의 상하관계를 구분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 서강대는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끝. 기타大는 불인정. 주권과 자격!.문맹이나 초등학교 출신 조선 유교 한문성명 가진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겠음. 이 뒤로 주권.자격.학벌이 없어 대학으로 인정할 수 없는 패전국 일본 점쇠(성씨없는 일본 불교 Monkey계열로, 근대에 막부타도하고 천황으로 옹립되어, 하급군인들의 상징이 되었음)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불교 Monkey 경성제대후신 서울대 및 그 미만 부하로 살아야하는 대학들. 필자는 성대출신 윤진한(1983학번)임. 한국대학들 자격을 결정하는 합법적.역사적 정통성을 가졌다고 판단하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대출신 사상가.문필가임. 국가주권이나 대학, 교육.종교분야에서, 합법적.합리적 검토과정과 이의제기, 교정과정이 없으면, 한국은, 국제법.헌법의 상위법자격도 모르고, 상위규범도 모르며, 무지몽매한 상태가 되어, 주권.자격없는 불법.일제강점기 잔재와 추종세력들의 횡포에, 평생 눈뜨고 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임시정부가 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에, 대일선전포고까지 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해방당시에는, 임시정부의 힘이 미약하여,자체의 군사력으로,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지 못했지만, 미군정의 종료이후, 제헌의회부터는 임시정부를 반영하여, 1988년 시행된 현행헌법 前文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헌법이 성립되었습니다. 주권.자격없이 대중언론.사설입시지를 통하여 평생 약탈해도, 인정받지 못함.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칠 수 없는 대학들의 약탈이 대중언론.사설 입시지를 통하여, 강력하게 형성되었지만, 正史.定論과 너무 상반됨.대중언론에서 주권없는 대학욕심보다, 조선성명 가진 한국인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대학관련, 상위법과 상위규범을 무시하거나 인지하지 못한채, 일제강점기에서 이어진 대중언론과 조선일보등의 입시기사를 반영한 그 이후의 사설입시지, 그 뒤에 대대적으로 만들어진 입시학원과, 이를 그대로 보도하는 전국의 대중언론, 그 하위기준대로 진학지도하는 교사들, 그리고 그대로 따르는 학부모들이 대다수가 되었습니다. 본인들이 원치 않아도 대중언론은 그렇게 글을 씁니다. 이러한 주권없는 일제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추종세력들의 약탈현상을, 그대로 따르게 된 시중의 흐름을, 눈 뜨고 좌시할 수 없어서, 지난 20년동안 블로그로 글을 써왔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대중언론의 기사에, 댓글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합법적 인터넷미디어인 댓글과 블로그밖에 가진게 없습니다. 정치문제와 별개입니다. 필자는 승전국 미국 선교사가 세운 전주 신흥고 출신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다녔던 배재학당의 배재고는 고종이 교명을 하사한 휘문고나 구한말 양정고와 비슷한 역사적 정통성과,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구한말의 인천고, 부산 동래고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고등학교들입니다. 보성고.중동고.중앙고도 민족학교들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서울의 동성고, 대구 계성고나, 순천 매산고, 목포 문태고등에도 관심있습니다. 그리고 대전 충남고, 충북 세광고, 강원 강릉고, 제주 오현고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균관대나 서강대 및 필자의 게시물 독자들은, 불교나라 일본에 대일선전포고한 대한민국 임시정부(프랑스, 구 소련, 폴란드가 임시정부 승인)의 자격을 염두에 두고, 대한제국 황실복구에 관심가져보시기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3675328446
[7]. 필자의 당부사항.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세계사의 교황 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귀족사제 이나시오 사제가 설립한 귀족대학)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으로 보호받습니다. 그리고 성균관대의 자격은, 세계사에서 인정되는 중국의 황하문명, 한자(漢字), 한나라시대의 세계종교 유교, 중국의 태학(이후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 세계4대 발명품(중국의 발명품인데,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으로 가르침. 종이,화약, 나침판, 인쇄술)등과 결부되어, 세계사로 이해해야, 세계인들에 더욱 확실히 접근하기 쉬운 측면이 많기 때문에, 교과서로 가르치는 한국사만큼, 학교교육의 세계사도 중요합니다.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 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275696355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190490049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s://blog.naver.com/macmaca/110185393995
2025년 3월 22일 토요일
2025년 봄. 宮(泮宮.學宮).太學.成均館자격 성균관대 유생이 평가하는 세계적인 대학들.세계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 백과사전, 참고서, 학술서등에 기반함.
2025년 봄. 宮(泮宮.學宮).太學.成均館자격 성균관대 유생이 평가하는 세계적인 대학들.세계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 백과사전, 참고서, 학술서등에 기반함.
세계적인 대학들. 세계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 백과사전, 참고서, 학술서등에 기반함. World class Universities. It based on World History Text books, Korean History Textbooks, Encyclopedia, Reference Books,Scholarly Books, etc.
필자의 견해는 정사(正史)인 세계사와 한국사 및 백과사전, 학술서등과 한국법.국제법을 종합해서 제시한것입니다.
{I}. 서유럽학자들 이름이 많이 나오는 세계사인데, 세계사가 변경되기전에는 2차대전때문에 형성된 강대국 기준으로, 세계사의 다음과 같은 기득권 대학들에 대한 현상개변을 원치 않습니다.
- 다 음 -
한(漢)나라 태학(太學).그 이후의 국자감(國子監. 국자감은 京師大學堂으로 대체되고 北京大學으로 계승됨), 볼로냐 대학(Università di Bologna), 파리대학(Université de Paris).
그리고 황하문명 및 세계종교로서의 유교 자격, 2차대전 이전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정신적 지주인 오래된 제도와 자격을 가지신 교황성하 제도.
필자[성균관대 출신 윤진한(宮 儒). 성균관대 경상대학 무역학과 주간, 1983학번. 경제학사]는, 세계사의 대학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승전국등 국가별로 국가주권을 행사하는게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합니다. 과거 역사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변치말아야할 인류역사중 한 부분으로 세계사는 중요하며 이를 대체할만한 문헌은 없습니다. 한국사도 그렇습니다.
중국은 중화민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UN대표국의 지위가 변경된 나라인데, 2차대전 이후에 형성된 UN안보리 상임이사국 명단에서 중국과 프랑스의 순서가 먼저 나오는 것은 세계사의 오랜 전통을 반영하여서 그렇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으로 유교의 세계종교[중국은 수천년간 유교의 천자(天子)국이었음. 황제제도가 없어졌어도 중국천자 제도의 상징성은 어떤 나라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위치가 크게 흔들렸는데, 세계사의 내용이 그대로 유지되어, 이를 토대로 세계종교로서의 유교지위를 유지시키고자 필자는 세계사를 이용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차대전이후에 형성된 새로운 강대국 기준이나 다른 나라들 기준으로, 중국의 태학.국자감(베이징대로 승계),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프랑스 파리대학, 이탈리아.독일에 소재한 교황윤허 대학등에 대한 격하를 시도하면 않됩니다.
2차대전 결과와 상관없이,세계사와 한국사를 바꾸지 못하면,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 학술서적상의 기득권 대학 학벌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참 복잡한 특성인데, 2차대전 결과와 세계사(World History) 및 국사(National History)와 연관지어 이 대학 학벌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나라나 출판사, 학술단체,개인들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대학 학벌문제는, 수많은 갈등과 반복을 통하여 오랫동안 定說.正論으로 유지되어온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中高生 학습서 포함), 학술서적상의 유서 깊은 대학들이나 기득권을 가진 측에서 설립한 대학을 기준으로 하는게 가장 정통성을 인정받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필자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세계사.한국사 교과서(참고서), 사전, 학술서가 바뀌지 않는한 유구한 역사의 기득권들도 바뀌지 않음.
시중에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교과서(참고서), 사전, 학술서에 바탕한 대학들을 비교해도 유구한 역사의 대학들이 바뀌지 않는한 이에 연관된 대학들의 기득권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한편, 2차대전 승전국이 되어 UN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이 된 나라들의 주요 대학들도 변하지 않습니다.
{II}. 세계의 대학들. 세계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 백과사전, 참고서, 학술서등에 근거함. World class Universities. It based on World History Text books, Korean History Textbooks, Encyclopedia, Reference Books,Scholarly Books, etc.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세계사에 나오는 대학들을 먼저 알아야 현대의 세계적인 대학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계 4大文明은 존중하지만, 세계의 대학들은 기존 인식대로 아래의 대학들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필자는 世界史 4대 文明, 유교, 중국 한(漢. 太學)과 이에서 이어진 국자감(國子監. 베이징대로 승계됨), 서유럽의 볼로냐, 파리대학, 韓國史 成均館(성균관대로 계승됨) 중심입니다.
* 중국 漢나라 太學.그 이후의 국자감(國子監)이나, 서양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등은 세계사 교과서에 등재되었기 때문에, 누군가 합의하여 漢나라 태학(太學).그 이후의 국자감과 볼로냐 대학을 세계사 교과서에서 삭제하기 까지는 그 세계 최초의 대학(볼로냐는 동일 이름 가진 세계 최초의 대학) 정통성을 잃지 않음.
* 중국은 세계 최초의 대학인 漢나라 太學이후 魏나라 太學, 隋나라 國子監, 唐.宋 國子監, 元.明.淸 國子監, 淸나라 말기 京師大學堂, 중화민국 시대 北京大로 이어짐. 天子國의 수도에 세워져 天子의 子弟들이 공부하던 대학계보라 할 수 있음.
* 이태리 볼로냐대학은 수도원의 대강당에서 시작된 동일 이름 가진 세계 최초의 대학인데, 볼로냐가 敎皇領이었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중세시대 서양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교육되어 온것 같음. 교황령이던 볼로냐는 이태리에 합병되었으나, 지금도 世界史 敎科書에서는 중세시대 서양에 세워진 최초(漢나라 太學이 세계사 교과서에서 세계 최초 대학으로 가르쳐지기 때문에, 볼로냐가 세계 최초대학이라면 동일 이름가진 세계 최초 대학을 의미할것)대학으로 교육되고 있음.
* 한국은 高句麗 太學부터 유교 최고대학이 있는데,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이던 成均館은 해방이후 成均館大學校로 600년 전통이 이어지고 있음.
[1]. 세계사(世界史,World History)의 대학들.
1]. 중국(中國, China): 베이징대학교. 1898년, 원·명·청 시대에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국자감(國子監)을 대체하여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으로 창설.
세계 최초의 대학, 한(漢)나라 태학[太學(유교대학)]. 이후 위(魏)나라 태학(太學), 수(隋)나라 국자감(國子監), 당.송(唐.宋) 국자감(國子監), 원.명.청(元.明.淸)의 국자감(國子監)으로 이어지다가 청(淸)나라말기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으로 명칭이 바뀌고 나중에 다시 북경대학(北京大學, 베이징대학, Peking University)으로 명칭바뀜.
중국(中國) 한(漢)나라 태학(太學)이 세계사에 나타나는 세계(世界) 최초(最初)의 대학임은 정설(定說)입니다. 한국의 두산백과에 나타난 바로는, 청(淸)나라말기 원.명.청(元.明.淸)의 국자감(國子監)을 이어 설립된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은 태학과 국자감에서 이어진 대학 계보고,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에서 이어진 중국대학이 북경대학(北京大學, 베이징대학, Peking University)입니다.
1. 두산백과에 나오는 베이징 대학교 설명.
베이징대학교
[ Peking University , 北京大學(북경대학) ]
요약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있는 중국 최초의 국립 종합대학교.
국립
1898년
중국 베이징
2.73㎢
4,206명
대학 1만 5128명, 대학원 1만 5039명
www.pku.edu.cn
1898년, 원·명·청 시대에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국자감(國子監)을 대체하여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으로 창설하였다. 1902년 경사대학당의 교육학원이 오늘날의 베이징사범대학교로 떨어져 나갔고 1912년 중화민국 성립에 수반하여 국립 베이징대학으로 개칭되었다. 1917년 학장으로 취임한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개혁으로 신문화운동의 중심이 되어 근대 학술연구와 토론의 자유 학풍을 확립하였고, 특히 1919년의 5·4운동이 재학생들에 의해서 추진된 이후 학생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20년 난징대학교에 이어 중국에서 2번째로 여학생 입학을 받아들였다. 중일전쟁중인 1937년에 국민정부가 칭화대학, 난카이[南開]대학과 함께 후난성 창사[長沙]의 오지(奧地)로 모아서 합병하여 창샤임시대학교로 만들었다가 1938년 다시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으로 옮겨 시난[西南]연합대학을 조직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6년 연합대학은 해산되어 각각의 학교로 분리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1952년의 대학 재편성에 의하여 옌징[燕京]대학을 합병하고 칭화[淸華]대학과의 조정이 단행되어 문·이과계의 기초이론을 중심으로 한 종합대학으로 개편되었다. 1952년 베이징 도심에서 옛 옌징대학 캠퍼스 자리로 옮겼으며 1966~1976년의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는 1970년까지 3년 동안 휴교조치가 내려졌다. 1977년부터 국가통일 입시제에 의하여 입학자를 선발하고 있으며 2000년 베이징의과대학교를 합병하여 베이징대학교 보건 캠퍼스를 조성하였다.
2010년 수학, 물리학, 의학, 생명과학, 전기·컴퓨터공학, 환경공학, 역사, 중국학·문학, 심리학, 고고학·박물관학, 철학, 외국어, 예술, 국제학, 경제학, 경영학, 법학, 정보경영학, 사회학, 마르크스학, 언론통신학 등 38개 학원(学院;단과대학)·계(系;독립학과)·부에서 학부과정과 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베이징의 주 캠퍼스와 보건 캠퍼스, 광둥성[廣東省] 선전[深圳] 캠퍼스가 있다. 베이징 서쪽 교외지역에 위치한 주 캠퍼스는 이화원과 원명원 등 역사 유적이 가깝고, 이공계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칭화대학과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도 인접해 있다. 웨이밍호[未名湖]로 둘러싸였으며 청 왕조의 정원이 자리 잡았던 곳이어서 옛 건물, 정원, 정자 등 중국 전통적 경관이 남아 있다. 선전 캠퍼스에는 선전대학원이 있다...
. 출처: 베이징대학교 [Peking University, 北京大學(북경대학)] (두산백과)
2. 중국어판 북경대학 소개자료.
a). 중국의 바이두백과에 나타나는 베이징대(北京大学).
http://wenku.baidu.com/view/3c077fda6bec0975f465e290.html
위에 나타난 baidu. 필자가 첨언하면 Baidu는 중국의 百度文库(백도문고)입니다.
북경대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北京大学
北京大学,
中国最高学府,
创办于
1898
年,
初名京师大学堂,
是中国第一所国立大学,
也是中国近代最早以
“
大学
”
身份和名称建立的学校,其成立标志着中国近代高等教育的开
端。
北大是中国近代唯一以最高学府身份创立的学校,
最初也是国家最高教育行政机关,
行
使教育部职能,
统管全国教育;
并开创了中国高校中最早的文科、
理科、
政科、
商科、
农科、
医科等学科的大学教育,
是近代以来中国高等教育的奠基者。
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
最高学府
——
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又开创了
中国近代高等教育先河,可谓
“
上承太学正统,下立大学祖庭
”
。在中国近现代史上,北大始
终与国家民族的命运紧密相连,深刻的影响了中国百年来的历史进程。
* 필자가 주안점을 두는 문구는 다음 문구임.
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
最高学府
——
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
북경대는 중국 수천년의 국가 최고학부를 전승해오고 있다. 태학(국자학, 국자감)적 학통-
중국고대 최고학부정통을 이전에 계승했었다.
b). 125교육망 중국연구생 (학생모집) 정보네트워크에 나타난 베이징대(北京大学).
http://www.125edu.com/puyan/zhinan/201508/647c98380.html
125edu.com은 중국어판 125教育网【中国研究生招生信息网입니다. 125교육망 중국연구생 (학생모집) 정보네트워크입니다.
一、北京大学
北京大学,中国最高学府,创办于1898年,初名京师大学堂,是中国第一所国立大学,也是中国近代最早以“大学”身份和名称建立的学校,其成立标志着中国近代高等教育的开端。北大是中国近代唯一以最高学府身份创立的学校,最初也是国家最高教育行政机关,行使教育部职能,统管全国教育;并开创了中国高校中最早的文科、理科、政科、商科、农科、医科等学科的大学教育,是近代以来中国高等教育的奠基者。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最高学府——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又开创了中国近代高等教育先河,可谓“上承太学正统,下立大学祖庭”。在中国近现代史上,北大始终与国家民族的命运紧密相连,深刻的影响了中国百年来的历史进程。
* 필자가 주안점을 두는 문구는 다음 문구임.
北大传承着中国数千年来国家最高学府——太学(国子学、国子监)的学统,既继承了中国古代最高学府正统
2]. 서유럽.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 프랑스 파리대학교.
1.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Università di Bologna). 1088년 페포네(Pepone)와 로마 법학자 이르네리오(Irnerio)가 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교회법(Canon)과 민법을 가르침으로써 볼로냐 법학의 기초를 세움. 1158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플드맇 1세(재위 1152~1190)는 이 지역의 학생집단을 자치단체로 공인하고 칙령내림.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볼로냐 대학교.
볼로냐대학교
[ University of Bologna ]
요약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州)의 주도(州都) 볼로냐에 있는 주립 종합대학교.
원어명구분개교일소재지교훈홈페이지
Università di Bologna
주립
1088년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 볼로냐
Alma mater studiorum(모든 학문이 퍼져 나간 곳)
www.unibo.it
1088년 페포네(Pepone)와 로마 법학자 이르네리오(Irnerio)가 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교회법(Canon)과 민법을 가르침으로써 볼로냐 법학의 기초를 세우게 되었다. 1158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재위 1152~1190)는 이 지역의 학생집단을 자치단체로 공인하고 칙령을 내렸다.당시 학생들은 도시로부터 독립한 독자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것이 볼로냐대학의 핵심이 되었다. 13세기 후반에 이르러 교사(校舍)를 짓고, 법학뿐 아니라 신학·철학·의학도 강의하게 되었는데, 특히 의학부는 세계 최초로 해부학을 교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1802년 국립대학으로 개편되었다.
이전까지는 프리드리히 1세가 칙령을 내린 1158년을 대학 설립일로 삼았지만, 19세기의 역사학자인 조수에 카르두치(Giosuè Carducci)가 1088년에 처음으로 교육기관이 세워졌다는 사실을 밝혔고, 2000년 세계 최초의 대학임을 강조하기 위래 ‘모든 학문이 퍼져 나간 곳(Alma Mater Studiorum)’이라는 새로운 교훈을 지었다. 주정부가 재정을 지원한다.
2010년 기준 농학부, 건축학부, 인문학부, 경제학부, 교육학부, 공학부, 운동·체육학부, 언어·문학부, 산업화학부, 법학부, 수학·물리학·자연과학부, 의학부, 약학부, 정치학부, 문화유산보존학부, 심리학부, 통계학부, 수의학부 등의 23개 학부에서 다양한 학부·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입학 후 3년 과정 라우레아(Laurea) 학위를 딴 후에 이어서 비슷한 수의 학생들이 2년 과정의 전문학위인 라우레아 스페찰리스티카(Laurea specialistica) 학위를 따게 된다. 그러나 일부 과정은 5년 기간의 한 가지 학위과정으로만 이루어지기도 하며, 의학 부문은 6년이 걸린다.
볼로냐 캠퍼스 외에 체세나(Cesena) 캠퍼스, 2001년 문을 연 포를리(Forlì) 캠퍼스, 라벤나(Ravenna) 캠퍼스, 리미니(Rimini) 캠퍼스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도 캠퍼스가 있다. 부속시설로는 도서관, 팔라초 포지박물관, 정보공학·통신을 위한 전자체계연구센터, 암학부연구센터, 이슬람학학제연구센터 같은 연구기관 등이 있다...
출처: 볼로냐대학교 [University of Bologna] (두산백과)
2. 프랑스. 파리대학교. 1215년 파리공교회(公敎會)의 부속학교 등을 모체로 하여 설립. 13세기에 자치권 획득을 위하여 몇 차례 투쟁을 벌인 결과 로마 교황과 프랑스 국왕으로부터 자치권 획득.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파리 대학교.
파리대학교
요약 1215년 파리에 설립되어 1968년에 해체될 때까지 프랑스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 된 대학.
파리대학교
원어명
Université de Paris
1215년 파리공교회(公敎會)의 부속학교 등을 모체로 하여 설립되었다. 설립 당초에는 모두 같은 성직자 신분을 가졌던 교수와 학생의 연구·교육을 목적으로 한 길드(동업조합)였으나, 13세기에 자치권 획득을 위하여 몇 차례 투쟁을 벌인 결과 로마 교황과 프랑스 국왕으로부터 자치권을 얻었다.
중세 전체를 통하여 학사과정(자유학부)에서는 3학(문법학, 수사학, 논리학과 4과(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를 가르쳤다. 학사학위 취득자는 다시 석사학위·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하여 전문과정(신학부·법학부·의학부)에 진학할 수 있는 제도로 되어 있었다. 유럽 전역에서 많은 영재들이 이들 학문을 배우기 위해 파리대학교로 몰려왔으며, 특히 신학부가 유명하였다. 신학부의 중심은 13세기에 가난한 신학생들을 위하여 로베르 드 소르본(Robert de Sorbon) 신부가 세운 기숙사 겸 연구소였던 소르본 학사(學舍)였으며, 소르본이라는 이름은 그 후 파리대학교 전체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다. 르네상스이후 파리대학교는 근대과학의 발전에 따라가는 능력을 잃고 점차 정체되었다. 프랑스 혁명후인 1790년대에는 혁명의회로부터 국권이 미치지 않는 학자와 학생들의 경직된 길드라는 비난을 받고 학부(faculté )라는 명칭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1세의 '제국학제(帝國學制)'가 확립되면서 다시 학부라는 명칭이 부활되었다.
또한, 국가를 대신하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권한이 인정되고, 1806년에는 교회와의 관계도 완전히 단절되었다. 1893년과 1896년에 제정된 2개의 법률에 의하여 1개의 대학구(大學區)에 있는 몇 개의 대학의 집합체에 '유니베르시테(université )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게 되면서 법인격과 재정면에서 자치권을 가진 학부의 통합체로서 파리대학교가 성립되었다. 이와 동시에 지방에도 1개 대학구에 1개 대학교(유니베르시테)라는 시스템이 확립되어 20세기 들어 크게 발전하였다.
1966년 11월에 열린 '제2회 칸회의'(고등교육과 학술 연구 개혁을 위한 최고 전문가회의)에서는 당시 전국 대학생의 30%에 해당하는 20만 명의 재학생을 갖고 있던 파리대학교의 개혁을 중심으로 전국 23개 대학의 학생수를 적정규모(최대 2만 명)로 억제하기 위한 과제가 토의되었다. 여기에서 파리 지역에는 15개 전후의 대학을 설치하는 안이 제출되었다. 그후 '포르 개혁'이라고 불리는 교육제도 개편의 결과 1970년대 초까지 파리대학교를 비롯한 전국 23개 대학의 해체·재편작업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70여 개의 신제 대학이 구제의 학부를 대신하는 새로운 교육·연구단위기관으로 발족하였다.
파리대학교가 해체되면서 파리 시내의 '파리대학구'에 파리 제1대학에서부터 파리 제9대학까지가, 시외의 '베르사유대학구'에 파리 제10대학과 파리 제11대학이, 역시 같은 시외의 '크레테유대학구'에 파리 제12대학과 파리 제13대학이 설치되어 모든 국민에게 개방된 신제 국립종합대학교로 재출발하였다.
. 출처: 파리대학교(두산백과)
{III}. 한국사(韓國史,Korean History)의 대학. 성균관대(국사의 성균관 자격 승계). 성균관대학교의 연원은 1398년(태조 7)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성균관에서 시작.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으로서 국가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전통적인 유학 교육을 실시.
한국 국사 교과서(참고서 포함)에서 가르치는,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을 승계한대학은 현재의 성균관대학교(成均館大學校,SungKyunKwan University)로 600년 역사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국정부의 대통령령으로 발행한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를 적용시, Royal대는 국사 성균관 자격을 가진 600년 넘는 역사의 성균관대[한국 최고(最古,最高)대]입니다.
.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 나타나는 성균관대학교.
성균관대학교
[ 成均館大學校 ]
이칭별칭
이칭 성균관대, 이칭 성대
유형:단체
시대:현대
목차:정의개설연원 및 변천기능과 역할현황
정의: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개설
성균관대학교의 성균관이라는 명칭은 1398년(태조 7)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조선왕조 성균관에 연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성균관의 전통을 계승하여 교시(校是)인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의 유도정신(儒道精神)을 바탕으로 바른 인성을 갖고 글로벌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교육목표를 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1895년 갑오개혁과 함께 신학제가 실시되면서 성균관에 3년제 경학과(經學科)가 별도로 설치되었는데, 성균관은 제향 기능을 담당하고 경학과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여 유학 경전을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역사학 · 지리학 · 수학 등 근대적인 교과목도 부과되었다. 이밖에 교육의 목적, 교육과정의 운영, 입·퇴학 절차, 각종 시험 및 학생의 특전, 학기제 채택 등 전통적 교육기관에서 근대학교로의 제도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중세사회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성균관이 이로부터 근대적인 고등교육기관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권상실 뒤 일제에 의하여 경학원(經學院)으로 개편되면서,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은 사라지고 문묘(文廟)의 제향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의 기능만 수행하게 되었다.
1946년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할 대학 설립을 위한 성균관대학기성회가 유림대회(儒林大會)를 통하여 조직되고 김창숙(金昌淑)의 주도로 종전의 명륜전문학교의 재단을 병합한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발족하면서 같은 해 9월 정규 단과대학인 성균관대학이 인가되었다. 설립에 필요한 대지는 독지가 이석구(李錫九)가 재단법인 학린사(學隣舍)의 토지를 희사하였다. 문학부와 정경학부를 설치하고, 초대 학장에 김창숙이 취임하였다.
1953년 2월 종합대학인 성균관대학교로 승격되어 문리과대학 · 법정대학 · 약학대학의 3개 단과대학과 1개 대학원의 편제를 갖추었고, 같은 해 6월 각 도의 향교재단(鄕校財團)에서 재산을 기부함에 따라 재단법인을 성균관으로 확대해 개편하였다.
.출처: 성균관대학교 [SUNGKYUNKWAN University, 成均館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객관적인 법과, 역사, 사실은 아주 중요합니다. 필자는 성대출신입니다. 국가주권처럼 성균관(성균관대)의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도 아주 중요합니다. 성균관의 승계 대학 성균관대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복잡한 국제법상의 갈등이 얽혀있습니다. 해방당시 다른 대학들은 이 법적 갈등의 당사자대학들이 아닙니다. 유교의 하느님숭배,조상숭배와 舊신분제 전통을 잘 이해하던 예수회의 귀족계파 서강대는,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 국사 성균관교육이 지속되면서, 양반 성대를 이해하던 대학임.이뒤로 조선성명 복구된 5,000만 한국인 뒤 주권.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불교 Monkey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대학들.@대중언론,사설 입시지, 후발 법령은, 국제법, 한국사(국사 성균관교육. 성균관대 자격), 세계사, 국가주권의 상위법.상위 국제관습법 못이깁니다.
@@2차대전-->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선전포고(을사조약.한일병합등 불평등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그 이후 카이로선언. 카이로선언이후, 프랑스.구소련.폴란드가 승인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연합국 국가원수들의 합의문이며, 미군정법률보다 상위법인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의 상위법으로 자격있는 국사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로 교육기능 승계이전)-->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한국에 주권이 없다고 항복한 일본. 성씨없는 일본 점쇠(일본에서는 천황)가 세운 경성제대 및 여타 초급대, 중.고등학교들 @그런데, 상위법인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 의해,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한국영토에서 축출해야 될 패전국 일제잔재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개칭하고, 공자묘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하는 하위법률이 제정됨 (성균관은 일제 강점기에 교육기능 폐지되어, 미군정기에 복구함). 미군정당시의 문교부 공무원 및 자문그룹들이, 하위법인 미군정법률을 제정하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로 상위법자격 성균관(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서 자격있는 성균관)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꾀한것임.*미군정 군정법령 제 15호.1945년 10월 16일 @이 약탈을 피하기 위하여,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 김구, 위원장:김창숙)를 개최하여, 성균관대를 설립하기로 결의함. "1945년 12월 10일 자유신문 보도기사(成均館大學 재단을 촉성, 1,000여 대표 참가로 全國儒林大會)가 국사편찬위 자료에 있음.@.미군정기의 국사 성균관교육. *학제. 성균관 태학.이상은 유학에 관한 학교이나 또 중앙과 지방에 외국어학과 의학, 율학, 천문지리학 등을 가르치는 각 기관이 있음.* 필자주::성균관(태학)만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구이고, 개화기의 기타 교육기구는 중등교육기구들입니다. @법령 제102호.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1946년 8월 22일@그리고 김창숙 성균관장이 전국 유림대회 결의대로 성균관대를 미군정에 등록하고 대학으로 인가받음.성균관 후신 경학원에서 강의하던 김창숙 선생이 성균관장이 되고, 1946년 9월 25일성균관대학의 설립을 인가받고 초대학장에 취임하였습니다.이 때부터, 성균관대는 대학기구로, 성균관은 공자님 제사기구인 성균관으로 공식 2원화된것임. 성균관대가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내용은 성균관대와 성균관의 입장이 동일합니다.@조선성명복구령.[시행 1946. 10. 23.] [군정법률 제122호, 1946. 10. 23., 제정] @미군정령 제 194호 6조(1948년)는,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과 성균관대학의 유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제6조 향교 재단의 재산으로부터 생하는 수입은 좌의 목적 이외에는 사용함을 부득함.1. 성균관 급 성균관 대학의 유지. *향교재산관리에관한건[군정법령 제194호, 1948.5.17., 제정]
https://blog.naver.com/macmaca/223528462438
{IV}. 필자가 백과사전, 참고서,주요 학술서적에서 보고 익힌 세계의 대학들.
[1]. 동아시아 유교권.
1]. 중국(中華人民共和國). 베이징대(北京大學, Peking University,북경대학교)외에도 칭화대학(淸華大學, Tsinghua University), 베이징 사범대학[北京師範大學, 1902년에 경사대학당사범관(京师大学堂师范馆])으로 개교]이 있음. 중국 태학이나 국자감,경사대학당은 유교권 천자가 세운 전통으로, 황제들이 황태자때 공부하고 천자(황제)가 됨.
2]. 태학에서 공부하던 천자의 아들들. 연암집 제 10권 별집. 原士편
천자의 원자(元子)와 적자(適子)가 태학에 입학하여...
.출처:한국 고전번역원/신호열 김명호 공역/2004
3]. 태학생의 선발과 출로.
태학생의 선발과 출로[편집] 太學生-選拔-出路 한대 박사의 임명 및 태학생의 선발은 태상경(太常卿)의 권한에 속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태상경이 18인 이상을 선발하여 '박사제자'로 충당하는 규정을 세웠으나, 그 뒤에는 지방의 관리들이 추천한 학생도 태학에서 면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경(公卿) 자제들은 정식추천을 거치지 않고 입학할 수 있어 다소의 문란을 초래하였다. 그래서 태학 학생들의 출신성분은 다양했다. 공경 자제, 지방정부에서 추천한 공사비(公私費) 평민학생, 부호출신, 빈한한 가정 출신도 있었고, 외국인 흉노 유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이 졸업한 뒤의 진출상도 다양하여 하급관리로부터 공경·제왕(帝王)도 있었다.
. 출처: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4]. 중국에서 황태자등을 가르치던 국자감 설명. 국자(國子)와 연관되어 설명하고 있음. 國子監과 國子 두가지 설명.
a). 국자감(國子監): 중국에서 황태자(皇太子)와 태자 및 귀족 자제(子弟)와 민간 수재(秀才) 들을 가르치던 대학(大學). 여기의 교수(敎授)를 국자박사(國子博士)라 했는데 당(唐)의 한유(韓愈, 자 퇴지退之)가 국자박사를 지냈음.<사물기원事物紀原><한유韓愈 진학해進學解>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성종(成宗) 때부터 유학(儒學)을 가르치던 관아로 후에 성균관(成均館)으로 명칭이 바뀌었음.
b). 국자[ 國子 ]: 공경대부(公卿大夫)의 자제.<주례周禮>
.출처: 한시어 사전, 전관수, 2007.7.9, 국학자료원
c). 주나라 천자가 건립한 벽옹.
벽옹(辟雍): 중국 주(周)나라때 천자(天子)가 도성(都城)에 건립한 대학(大學)
.출처: 벽옹(辟雍) (한국 고전용어 사전,2001.3.30,세종대왕 기념사업회)
d). 한 무제가 세운 한나라 태학.
무제는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가 사상을 국가 통치의 원리로 삼았다. 이에 따라 수도 장안(오늘날 시안)에 국립 대학인 태학을 설치하고 오경 박사를 두어 유교 경전을 가르치게 하였다.
.출처: 중국문화의 기틀을 다진 한나라(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2011.9.5, 휴머니스트)
e). 국립국어원의 국자학 설명.
국자학 國子學.
. 고려 시대에, 국자감에서 삼품관 이상 고관의 자제만 입학하던 전문 학과.
. 중국 진(晉)나라 때에, 무제가 귀족 자제나 영재를 가르치기 위하여 만든 교육 기관. 한(漢)나라 때에는, 태학이었으며, 수나라 이후 국자감으로 이름을 고쳤다.
f). 동아시아 유교권의 현대 대학들.
가). 중국. 칭화대학교. 중일전쟁 중인 1937년에 국민정부가 베이징대학, 난카이[南開]대학과 함께 후난성 창사[長沙]의 오지(奧地)로 모아서 합병하여 창샤임시대학교로 만들었다가 1938년 다시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으로 옮겨 시난[西南]연합대학을 조직.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칭화대학교.
칭화대학교
[ Tsinghua University , 淸華大學(청화대학) ]
요약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국립
1911년
중국 베이징
자강불식 후덕재물(自强不息 厚德載物:스스로 끊임없이 강하게 만들고, 덕을 쌓은 위에 물질적인 발달을 꾀한다)
3.95㎢
4,868명(2009)
대학 1만 3915명, 대학원 1만 2831명(2009)
www.tsinghua.edu
1911년 4월 26일, 의화단(義和團) 운동의 결과로 인해 중국 정부가 서구 열강에 대한 배상금 명목으로 미국에 조차하던 지역에 미국 유학생 양성기관인 '칭화학당[淸華學堂]'으로 설립하였다. 이후에 ‘칭화학교’로 개칭하였고 종합대학으로 바뀌었으며, 1928년 국립대학으로 개편하면서 국립칭화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중일전쟁 중인 1937년에 국민정부가 베이징대학, 난카이[南開]대학과 함께 후난성 창사[長沙]의 오지(奧地)로 모아서 합병하여 창샤임시대학교로 만들었다가 1938년 다시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으로 옮겨 시난[西南]연합대학을 조직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6년 연합대학은 해산되어 각각의 학교로 분리되었다.
1952년 중국 정부가 결정한 ‘전국 공학원(工學院) 조정방안’에 따라 공학부에 베이징대학과 옌징[燕京]대학의 공학계통을 통합 흡수하고, 문학·이학·법학은 베이징대학교로 옮겼다. 1978년부터 1980년대 초에 걸쳐 이과, 경제경영, 인문사회과학, 건축학, 법학, 의학 부문 등을 만들었고 다시 종합대학교가 되었다.
2010년 기준 건축, 토목수리, 기계공정, 우주항공, 마르크스주의, 정보과학기술, 이과, 경제관리, 공공관리, 인문사회과학, 법학, 신문방송, 미술, 의학의 14개 학원(단과대학)에서 학부과정과 석사·박사과정을 제공하며 1985년 설립된 칭화대학계속교육학원[淸華大學繼續敎育學院]이 있다. 특히 공학 계열은 중국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며, 대학 부설 연구소로 46개 연구소와 167개의 다양한 실험실을 보유한다.
. 출처:칭화대학교 [Tsinghua University, 淸華大學(청화대학)] (두산백과)
나). 중국. 베이징 사범대학교. 1902년에 경사대학당사범관[京师大学堂师范馆]으로 개교.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베이징사범대학교.
베이징사범대학교
[ 北京師範大學校(북경사범대학교) ]
요약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있는 국가교육부 직속 사범대학교로, 중국에서 설립된 최초의 사범대학이다.
국립
사범대학
1902년
중국 베이징
사람의 모범이 되기 위해 배우고, 세상의 모범이 되도록 행동하라[学为人师,行为世范]
794,355㎡
http://www.bnu.edu.cn/
중국 국무원이 지정한 10대 중점 사범대학으로, 1902년에 경사대학당사범관[京师大学堂师范馆]으로 개교하였다. 1923년 베이징사범대학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31년에 베이핑여자사범대학[北平女子师范大学], 1952년 푸런대학[辅仁大学]과 합병하였다. 1959년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의해 최초의 전국 중점대학으로 지정되었다.
대학교 내 학부와 학과, 대학으로는 교육학부, 지리과학학부, 심리학부, 물리학과, 천문학과, 법대학, 철학대학, 경영대학, 마르크스주의 대학, 중국 사회 관리 아카데미/사회학 대학, 체육 스포츠 대학, 중국어문학대학, 중국어문화대학, 외국어문학대학, 저널리즘 및 커뮤니케이션대학, 역사대학, 수리과학대학, 화학대학, 시스템과학대학, 통계대학, 환경대학, 생명과학대학, 인공지능대학, 원자력과학기술대학, 정부대학, 사회개발 및 공공정책대학, 예술 및 커뮤니케이션대학, 평생교육 및 교사훈련대학, 일대일로(Belt and Road)대학, 미래교육대학이 있다. 이중 수학, 환경/생태, 지구과학, 농업과학, 신경과학 및 행동과학, 화학, 정신의학/심리학, 공학, 물리학, 재료과학, 사회과학총론, 식물학, 축산학, 생물학 및 생물화학, 임상의학과 같은 전공 분야는 세계 대학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연구소로는 경제자원관리연구소, 형사법률과학연구소, 물과학연구소, 재난경감방재연구소, 세계변화 및 지구시스템과학연구소, 기본교육품질평가협업혁신센터, 베이징 문화혁신 및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중국 정보처리 연구소, 베이징문화개발연구소, 신소재 연구소, 교재 연구소가 있다.
교훈은 “사람의 모범이 되기 위해 배우고, 세상의 모범이 되도록 행동하라[学为人师,行为世范]”이다. 본교는 베이징시 중심부에 있으며, 캠퍼스 부지 면적은 794,355㎡에 달한다. 베이징사범대학교는 약 500여 개의 대학과 국제기구, 3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매년 900명 이상의 국제적인 교수와 학자를 수업 및 연구에 초청하고 있다. 또한 2000여 명의 장기 유학생이 있으며, 이같은 규모는 중국 대학 내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 출처: 베이징사범대학교 [北京師範大學校(북경사범대학교)] (두산백과)
다). 한국. 서강대학교. 1960년 2월 재단법인 한국예수회에서 서강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같은 해 4월 개교. 1948년 한국 가톨릭교회의 발의와 교황 비오(Pio) 12세의 윤허로 대학 설립이 기획됨.
한국은 Royal대인 宮 성균관대(한국 최고대), 서강대(성대 다음 Royal 예우)가 Royal대학임. 세계사를 반영하여, 교황성하 윤허로 설립된 귀족계파 예수회에서 설립한 서강대는 宮성균관대 다음의 Royal대로 예우함. Royal대인 서강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대학으로, 귀족계파인 예수회 산하의 대학입니다. 불법.강제의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에서,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한나라이후 동아시아의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를 겪고 있고, 서유럽은 이탈리아.독일이 패전국이 되어서 과거의 빛나는 명성만큼 못한 상태입니다. 세계사의 자격은 그대로 유효한 상태라 다행이기는 합니다. 한국은 대중언론에서 발호하는 일제 강점기 잔재대학들의 도전에, 宮성균관대에게 꼭 필요한 대학이 서강대학교로, 공생관계를 이어가며 유교.가톨릭의 세계사적 세계종교의 기득권을 계승해야 합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중국 태학.국자감(베이징대로 승계),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 한국 성균관(성균관대로 승계)의 과거 위상이 이전같지 않은 상태에서 유교.가톨릭 그리고 오랜 대학역사를 계승하기 위해 공생관계로 이어져야 할 동아시아의 중요한 대학이 서강대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불교 Monkey일본 항복후, 미군정 때,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의무적으로 주민등록(이전에는 호적 포함)에 조선 유교 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해야 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으로 복귀하였습니다. 5,000만이 유교도입니다. 그러므로 서강대는 한국 유교의 틀 내에서, 학내에서만 자치성격의 가톨릭 예수회 학교로 존재하며 일제 강점기 잔재를 극복해야 하겠습니다.
.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 나타나는 서강대학교.
서강대학교
[ Sogang University , 西江大學校 ]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에 있는 사립종합대학교. 1960년 4월에 개교하였다.
서강대
단체
현대
대학교, 사립종합대학교
1960년 4월
게페르트(Theodor Geppert)
정의
서울특별시 마포구 백범로(신수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연원 및 변천
1960년 2월 재단법인 한국예수회에서 서강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같은 해 4월 개교하였다. 1948년 한국 가톨릭교회의 발의와 교황 비오(Pio) 12세의 윤허로 대학 설립이 기획되었고, 예수회 게페르트(Theodor Geppert) 신부의 주도로 1956년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발족되면서 대학의 설립에 이르게 되었다.
초대 학장에 킬로렌(K. E. Killoren) 신부가 취임하였으며, 영어영문학과·사학과·철학과·수학과·물리학과·경제학과를 두었다. 1963년 독어독문학과·생물학과·경영학과를 신설하였다. 1964년 국어국문학과·화학과를 설치하고 제1회 졸업생 62명을 배출하였으며, 같은 해 4월 「사립학교법」에 따라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학교법인 서강대학으로 개편되었다.
1966년 무역학과, 1967년 대학원, 1968년 신문방송학과, 1969년 전자공학과를 신설하였고, 1970년 3월 종합대학인 서강대학교로 개편하여 초대 총장에 데일리(J. P. Daly) 신부가 취임하였다.
1973년 대학원에 박사과정을 설치하고 1980년 경영대학원, 1988년 공공정책대학원, 1997년 국제대학원·정보통신첨단기술대학원을 개원하였다. 1999년 학생설계 전공제도를 시행하였고, 벤처산업 육성을 위한 서강창업보육센터를 설립하였다. 2001년 8월 경영관 마태오관을 건립하고, 2002년 예비대학을 신설하였다...
2017년 현재 12개 대학원, 8개 학부에 학부생은 8,119명, 전임교원은 424명이다.
표어는 ‘그대 서강의 자랑이듯, 서강 그대의 자랑이어라’이다. 가톨릭 예수회 세계관에 입각하여 학문을 탐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인간의 생명가치를 존중하는 인재 양성을 교육목적으로 하고 있다.
6년 이상 근무한 전임교원에게 1년간 강의나 기타 학교업무를 일체 맡기지 않고 휴식기간을 제공하는 교수안식년제를 국내 최초로 채택하여 현재까지 실시해오고 있다.
또한 개교 당시부터 결석 초과로 인한 과목낙제제도로 대표되는 출결석 관리를 철저하게 시행하였고, 지금도 강의실 좌석을 지정해서 앉게끔 하는 등 철저한 학사관리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 출처: 서강대학교 [Sogang University, 西江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기독교권(基督敎圈,Christian Culture).
1]. 서유럽(Western Europe).
1. 이탈리아. 로마대학. 이탈리아는 세계사의 볼로냐대학이 대표적이지만, 교황이 설립한 로마대학도 있습니다. 로마대학은 1303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스투디움 오르비스(studium urbis:도시대학)라는 이름의 문과와 법학과를 가진 일반 대학으로 세움.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로마대학교.
로마대학교
[ University of Rome ]
요약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Università Degli Studi di Roma
국립
1303년
보니파키우스 8세
이탈리아 로마
볼로냐대학교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1303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스투디움 오르비스(studium urbis:도시대학)라는 이름의 문과와 법학과를 가진 일반 대학으로 세웠으나, 얼마 못 가서 교황의 아비뇽 유수(幽囚)와 교회분열로 말미암아 쇠퇴하였다.
1431년 교황 에우제니오 4세가 재건에 착수한 이래, 교황 레오 10세와 식스토 4세·알렉산데르 7세의 손을 거쳐 학부(學府:palazzo della sapienza)가 완성되었으며, 1871년 이탈리아 왕국이 수립된 후부터 국가의 중심적인 대학으로 발전하였다. 1935년 국립대학이 되었으며, 새로이 건설된 대학도시(cita universitaria)로 이전하였다. 법학·정치학.경제학.문학.교육학.의학.약학.공학.건축학.사서학등의 학부가 있다.
부속시설로 개발도상국 연구 센터, 인간자동화 센터(CISADU), 생물의학 시스템 모델·정보분석 종합연구 센터(CISB), 역사적 건축 보존 기술과학 종합연구 센터(CISTEC), 자연·인공 시스템 인식 프로세싱 연구 센터(ECONA), 국제 상대론적 천체물리학 센터(ICRA), '산 마르코 프로젝트' 연구 센터 등이 있다.
. 출처: 로마대학교 [University of Rome] (두산백과)
2. 바티칸시티. 이탈리아의 로마 북서부에 있는 가톨릭 교황국. 교황이 원수(元首)로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는 국가. 그레고리오 대학이 대표적[전 세계 추기경(195명)의 3분의 1, 주교(약 4700명)의 4분의 1, 성인 21명, 교황 16명을 배출한 대학].
. 가톨릭 평화신문에 나타나는 그레고리오 대학교.
가톨릭 평화신문
<가톨릭대학교-평화신문 공동기획>
로마 그레고리오대학
수많은 인재 배출한 예수회 교육사업 '심장부'
2003.12.07발행 [751호]
전 세계 추기경(195명)의 3분의 1, 주교(약 4700명)의 4분의 1, 성인 21명, 교황 16명을 배출한 대학….
올해로 설립 452돌을 맞는 로마 그레고리오대학(Pontifica Universita Gregorina, 총장 프랑코 이모다 신부)의 외형적 업적이다.
신학대학에서까지 서열을 따지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그레고리오대학이 가톨릭 최고 신학대학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227개 고등교육기관을 설립, 운영하고 있는 예수회가 교육사업의 '마지막 보루', 또는 '심장부'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대학이 그레고리오대학이다.
하지만 명성에 비하면 대학 건물과 규모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왜소하다. 로마 시내 필로타 광장 부근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석조건물에는 세월의 흔적 같은 더께가 두껍게 덥혀 있다. 장서 500만권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은 책을 얼마나 층층이 빽빽하게 쌓아놓았는지 출구가 헷갈릴 정도다. 이런 곳에서 신학계 거장들이 신학흐름을 주도해오고, 세계 각국에서 젊은 인재들이 모여들어 신학탐구에 몰두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레고리오대학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신학연구의 중심축이 독일권에서 로마권으로 완전히 기울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학 학풍과 흐름은 칼 라너·라칭거·발터 카스퍼·한스 큉·이브 콩가르 등 쟁쟁한 신학자들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주도했다. 한스 큉 박사가 교황 무류권 논쟁을 촉발시켰듯이 이들 신학자들의 진보적 학설과 주장은 때로 로마 교황청과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과 오스트리아 신학대학들이 성소와 재정 부족으로 침체되자 교황청은 유명 신학자들을 로마로 집결시키고 있다. 한때 독일에서 튀빙겐학파를 이끌었던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교황청 일치평의회 의장, 독일 교의신학의 거장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신앙교리성장관을 맡고 있는 것이 이같은 분위기를 포착할 수 있는 사례다. 교황청은 그레고리오대학과 라테라노대학(로마교구 설립)을 신학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모다 프란치스코 총장 신부는 "사회변화가 심하고, 사상 문화의 흐름이 워낙 빠르기 때문에 몇년 전 강의한 내용으로는 오늘날의 학생들을 가르칠 수가 없다"며 "예를 들어 한 교수는 동성애 윤리를 연구, 강의하다 그걸 접고 최근 AIDS 윤리로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대학을 명문(名門)으로 만드는 주인공이 교수인가, 아니면 학생인가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라는 질문과 같다. 그러나 고레고리오대학만큼은 교수가 전통과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학측이 유명 신학자, 특히 기초·교의 신학 거장들을 강단에 세우기 위해 쏟는 열정은 대단하다. 예수회 회원 가운데 그 분야 최고 전문가가 없다면 타수도회와 타대학에서 전문가를 데려오는 데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독일 강단의 신학자들이 초빙교수 자격으로 와서 한 학기 강의를 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그러면 그 교수 밑에서 공부하는 독일 학생들도 로마로 따라 내려온다. '그리스도 은총론'의 기스펠트 그레사케, 신약성서 주석학의 대가 마틴 헹엘 같은 독일 신학자들이 현재 이 대학에서 열강하고 있다.
신학자 입장에서도 대학측 강의 제의는 그 분야의 손꼽히는 교수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미국 대학은 '돈'으로 교수를 끌어오지만 그레고리오는 '명성'으로 끌어온다"는 말이 회자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두뇌'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지금도 교황청에 다양한 신학적 조언을 하는 집단이 바로 이 대학 교수진이다.
그레고리오대학의 명성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요소는 전통과 실험정신의 조화다. 전통은 교황 최측근에서 16~17세기 종교개혁자들의 거센 도전을 신학적으로 반박한 역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레고리오대학이 문을 연 1551년은 종교개혁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이에 따른 교회분열을 수습할 목적으로 소집된 트리엔트공의회가 한창 열리고 있던 때이다. 유럽 중심의 정통신학(제1세계 신학)에 집중하는 전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로 인해 강의시간에 호기심많은 학생들이 남미나 아프리카 신학과 관련된 얄궂은 질문을 던지면 교수들은 "우리는 1세계 신학만 다루기 때문에 답변할 수 없다"는 농담으로 받아넘긴다고 한다.
실험정신은 예수회의 개방적 교육전통과 맞물려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 이 대학에서 강의한 자크 뒤퓌 교수는 인도선교 중 체득한 힌두사상을 기초로 '그리스도교 종교 다원주의 신학을 향하여'(1998년, 국내 미번역)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서구교회에서 큰 화제가 됐던 이 책은 종교 다원주의의 오류가 발견되는 책이라는 평이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주님이신 예수님'(2000년)이라는 선언을 통해 그리스도 및 교회에 관한 진리를 재천명한 것은 그의 저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로마 신학자들의 얘기다.
유럽 대학에서는 드물게 영어·불어·스페인어 등 6개 언어가 대학 공식언어라는 점에서도 실험성과 개방성을 엿볼 수 있다.
그레고리오대학은 1930년 이전까지 볼로메오 궁(현 콜레지오 벨라르미노) 근처에 있었다. '콜레지오 로마눔'이라는 19세기 유명 학파는 당시 예수회 신학자인 벨라르미노 신부가 동료 신학자들과 그곳에서 태동시킨 학파다.
현재 박준양(서울)·조학균(예수회)·노우재(부산)·김종강(청주)·김주영(춘천)·옥현진(광주)·고태훈(수원)·노연호(서울)·이호봉(대구) 신부 등 한국신부 14명이 수학 중이다. 로마=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가톨릭평화방송 (cpbc.co.kr)
3. 영국. 옥스포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이 대표적. 1167년 헨리 2세가 영국 학생들이 파리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을 금지한 것을 계기로 급속히 발전.
a). 옥스포드 대학교.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옥스포드 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 University of Oxford ]
요약 영국 잉글랜드 옥스퍼드셔카운티(Oxfordshire county) 옥스퍼드시(市)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 영어권 국가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서 30여 개의 칼리지와 상설사설학당(PPH)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 보들리언 도서관
공립
미상(1096년 강의 기록)
헨리 2세
영국 잉글랜드 옥스퍼드셔카운티 옥스퍼드시
Dominus Illuminatio Mea(The Lord is my Light;주는 나의 빛)
대학 1만 1772명, 대학원 9850명(2013)
www.ox.ac.uk
영국은 물론 영어권에서는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설립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1096년에 이미 강의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167년 헨리 2세가 영국 학생들이 파리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을 금지한 것을 계기로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1209년 옥스퍼드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 간에 발생한 분쟁을 계기로 일부 학생들이 케임브리지로 이동하여 케임브리지대학교가 태동하게 되었다. 13세기에 대학을 구성하는 칼리지(유니버시티칼리지·베일리얼칼리지·머턴칼리지)들이 구체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설립 초기에는 학생과 시민 간에 과격한 충돌이 자주 일어났는데, 1354년 충돌이 있은 다음해에 에드워드 3세가 학생 편을 지지하여 그들에게 특허장(特許狀)을 줌으로써 대학의 지위가 견고해졌다.
교육 내용은 자연철학·도덕철학·형이상학 등을 강의하였는데, 모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기본으로 삼았다. 14세기에는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교수가 교회의 악폐를 비판함으로써 영국의 종교개혁 운동에 선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15세기에 와서는 종교적 기초가 동요하면서 침체 경향을 보였으나,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사이에 이탈리아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돌아온 토머스 리너커(Thomas Linacre), 존 콜렛(John Colet), 휴 래티머(Hugh Latimer)를 위시하여 토머스 모어(Thomas More),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Desiderius Erasmus) 등을 포용함으로써 영국 문예부흥의 중심이 되었다.
19세기에는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교수를 중심으로 하여 가톨릭 전통 회복을 통한 영국 국교회 쇄신을 주장하는 옥스퍼드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근대적 학과목도 추가하여 산업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동시에, 여자를 위한 학교도 설립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세틀먼트, 대학확장 운동을 통하여 교외교육(校外敎育)에도 힘을 기울여 민중교육의 진흥에 기여하였다...
재학생의 3분의 1 이상이 유학생이며, 수업은 튜터(Tutor)에게 지도를 받는 면담수업(Tutorial Class)으로 이루어진다. 캠퍼스는 옥스퍼드 시내 중심지와 외곽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이밖에 부속기관으로 1602년에 설립된 보들리언도서관과 보들리언법학도서관·인디언학도서관·래드클리프과학도서관·동양학도서관을 비롯한 100개 이상의 도서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인 애슈몰린박물관(1683년)과 피트리버스박물관(1884년), 자연사박물관, 식물원, 크라이스트처치미술관 등이 있다...
. 출처: 옥스포드 대학교[University of Oxford] (두산백과)
b). 케임브리지 대학교. 1284년 최초의 칼리지인 피터하우스를 설립하였으며, 그 후 프랑스의 파리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를 모방하여 대학 조직을 개편하다가, 1318년에 교황 요한 22세로부터 일반연구소(studium generale)로 인가.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케임브리지대학교
[ University of Cambridge ]
요약 영국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셔 카운티의 케임브리지 카운티 타운(county town)에 있는 종합대학교.
국립
1284년
영국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셔 카운티의 케임브리지 카운티 타운
Hinc lucem et pocula sacra(From here, light and sacred draughts)
8,614명(2008)
대학 1만 2018명, 대학원 6,378명(2008)
www.cam.ac.uk
옥스포드대학교와 함께 영국에서 가장 오랜 전통과 유서를 자랑하는 대학교이다. 이 대학교의 기원은 1209년 옥스퍼드시(市)에서 학자와 시민 간에 일어난 분쟁을 계기로 여러 학자들이 케임브리지로 이주하여 학생들을 교육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다. 1284년 최초의 칼리지인 피터하우스를 설립하였으며, 그 후 프랑스의 파리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를 모방하여 대학 조직을 개편하다가, 1318년에 교황 요한 22세로부터 일반연구소(studium generale)로 인가되었다.
. 출처: 케임브리지대학교 [University of Cambridge] (두산백과)
4. 독일. 필자는 교황성하께서 윤허하신 하이델베르크대학등의 역사와 전통은 인정하되, 고통당한 나라와 민족이 많아 일본, 독일등의 UN적국 해제는 힘들다는 지론가짐.
a). 하이델베르크 대학교(Ruprecht-Karls-Universität Heidelberg).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1385년 교황의 인가를 얻은 후 1386년 선제후 루프레히트 1세가 세워서 대학 명칭에 그 이름이 포함.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 University of Heidelberg ]
요약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Ruprecht-Karls-Universität Heidelberg
국립
1386년
루프레히트 1세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하이델베르크
Semper apertus(The book of learning is)
4,196명(2008)
26,741명(2008)
www.uni-heidelberg.de
정식 명칭은 ‘루프레히트 카를스 하이델베르크대학교(Ruprecht-Karls-Universität Heidelberg)’이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1385년 교황의 인가를 얻은 후 1386년 선제후 루프레히트 1세가 세워서 대학 명칭에 그 이름이 포함되었다. 설립 당시 철학부,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를 갖춘 가톨릭계 대학으로 출발하였으나, 하인리히 선제후의 종교개혁(1556)으로 인문주의적 신교대학으로 전환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신교(프로테스탄트)와 구교(가톨릭) 간에 벌어진 30년전쟁(1618∼1648)의 영향으로 폐쇄와 개교를 반복하다가 1803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칙령으로 자치권이 인정되면서 근대대학으로 개편하고, 교수어도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바꾸었다. 이때 옛 바덴주(州)의 공작인 카를 프리드리히의 이름이 교명에 더해졌다. 1899년에는 남녀공학이 되었다.
2010년 기준 신학대학, 법과대학, 기초의과대학, 이론의과대학, 철학대학, 현대언어대학, 경제·사회학대학, 행동·문화학대학, 수학·컴퓨터학대학, 화학·지구과학대학, 물리·천문학대학, 생명과학대학의 12개 단과대학에서 학부과정과 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또한 중국의 베이징대학교[北京大學校], 일본의 교토대학[京都大學] 등 세계 여러 대학들과 자매결연을 맺었고 미국·일본·남미의 대학과도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캠퍼스는 세 곳이 있는데, 인문·사회과학 관련 대학과 연구소들이 있는 하이델베르크 구 시가지 캠퍼스, 과학·의학 대학, 부속병원이 있는 시 외곽의 노이엔하이머 펠드(Neuenheimer Feld) 캠퍼스, 하이델베르크-베르크하임 캠퍼스가 있다. 하이델베르크-베르크하임 캠퍼스에는 2009년 3월 경제·사회학대학과 경제·정치·사회학 연구소, 도서관이 들어섰다.
부설기관으로 도서관, 동물센터, 대학병원, 식물원, 박물관, 생화학센터, 남아시아연구소, 과학연산협동센터, 신경과학연구소, 하이델베르크분자생물연구소, 미국학연구소, 천문학센터, 사회개발센터 등이 있다...
. 출처: 하이델베르크 대학교[University of Heidelberg] (두산백과)
b). 쾰른대학교(Universität zu Köln). 1388년 우르바노 6세의 칙서를 얻어 설립. 독일은 학문의 나라이므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이어 이번에 별도로 쾰른대학 추가함.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쾰른 대학교.
쾰른대학교
[ University of Cologne ]
요약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쾰른시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 독일에서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다음으로 오래된 대학이다.
Universität zu Köln
공립
1388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쾰른시
www.uni-koeln.de
1388년 우르바노 6세의 칙서를 얻어 설립되었고 1389년 1월부터 수업을 시작하였다. 1794년 프랑스군(軍)이 쾰른을 점령한 후 1798년 대학의 교수들이 프랑스공화국에 대한 충성서약을 거부하고 대학의 독립을 원하였다는 이유로 폐쇄하였다. 1919년 3월 19일 프로이센 정부가 쾰른 시의회의 청원을 받아들여 현대식 종합대학으로 재건하였다. 당시 상학·경제학·사회과학부, 의학부가 있었으며 1920년 법학부와 예술학부를 설치하였다. 1980년에는 라인란트교육학교(Rhineland School of Education)의 2개 학과를 병합하여 교육·특별교육학부로 만들었다. 독일에서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다음으로 오래된 대학으로, 현재 독일에서 몇 안 되는 캠퍼스 중심 대학교이기도 하다.
경영·경제·사회과학부, 법학부, 의학부, 예술·인문학부, 수학·자연과학부, 인문과학부의 6개 학부에서 다양한 학부·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주요 연구대상은 아프리카, 컴퓨터과학, 라틴아메리카, 유럽 및 동유럽 부문이며 생명과학, 환경 및 우주항공 연구에도 힘쓴다.
캠퍼스가 있는 쾰른이 미디어 중심지라는 입지적 여건 탓에 대학에도 연극연구소, 영화·텔레비전연구소, 방송법연구소, 유전학연구소, 1992년에 설립한 방송경제연구소 같은 미디어연구 관련 부설연구소가 많다. 프랑스의 클레몽페르낭트대학, 파리소르본대학교, 미국의 펜실베이니아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학교, 일본의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등 세계 여러 대학과 학술교류 및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 출처: 쾰른대학교 [University of Cologne] (두산백과)
5. 스페인.
a). 살라망카 대학교(Universidad de Salamanca). 중세시대인 1218년에 레온 왕국의 국왕 알폰소 9세(Alfonso IX)의 칙령으로 설립했으며 에스파냐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교 중 하나로 손꼽힌다. 1225년 유럽에서 최초로 대학교(Universidad) 자격 취득.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살라망카 대학교.
살라망카대학교
요약 에스파냐 카스티야이레온 자치지역(Comunidad Autónoma de Castilla y León) 남서부 살라망카주(Provincia de Salamanca)의 주도 살라망카에 있는 대학교.
원어명구분개교일소재지전임 교원수(명)학생수
Universidad de Salamanca
공립
1218년
에스파냐 카스티야이레온 자치지역 살라망카주 살라망카
1252명
약 2만 8000명
살라망카주 중앙부에 위치한 주도 살라망카의 파티오데에스쿠엘라스 거리(Calle de Patio de Escuelas)에 있다. 중세시대인 1218년에 레온 왕국의 국왕 알폰소 9세(Alfonso IX)의 칙령으로 설립했으며 에스파냐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교 중 하나로 손꼽힌다. 1225년 유럽에서 최초로 대학교(Universidad) 자격을 취득했다. 오늘날 에스파냐에서 최상위권 대학교로 명성을 떨치고 있어 외국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다.
거의 전 학문 분야에 걸쳐 총 2,453개 학과가 개설되어 있는데 특히 인문학 분야에서 강세를 보인다. 비에스파냐어권 재학생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에스파냐어 강좌가 훌륭한 것으로 유명하며, 매년 평균 2000명 이상의 외국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한다. 교내에 풍부한 장서량을 갖춘 여러 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자료 중에는 매우 귀중한 고문헌과 고문서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교내에 있는 많은 고풍스러운 건물은 대부분 중요한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출처:살라망카대학교(두산백과)
b). 마드리드 대학교. 살라망카 대학교와 함께 마드리드 대학교도 소개합니다. 1293년 카스티야 왕국의 산초 4세(Sancho IV)가 설립한 알칼라 일반 학교(Estudio de Escuelas Generales de Alcalá)가 그 시초. 1499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Alexander VI)에 의해 정식 대학교로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
마드리드콤플루텐세대학교
요약 에스파냐의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국립 대학교.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대학교 중 하나이자 에스파냐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학교이다.
원어명구분개교일소재지전임 교원수(명)학생수
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
국립
1293년
에스파냐 마드리드
9731명(2009)
9만 1251명(2009)
마드리드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지역에 광대한 규모로 자리 잡고 있는 에스파냐 최대의 국립 대학교이다.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대학교 중 하나로, 1293년 카스티야 왕국의 산초 4세(Sancho IV)가 설립한 알칼라 일반 학교(Estudio de Escuelas Generales de Alcalá)가 그 시초이다. 1499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Alexander VI)에 의해 정식 대학교로 문을 열었다. 현재 에스파냐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명문 대학교로, 2009년 기준 학부생 6만 1598명과 대학원생 2만 9653명을 합쳐 총 9만 1251명이 재학하고 있다. 그중 외국 유학생 수가 5000여 명이다. 교수를 포함한 교직원 수는 2009년 현재 총 9731명에 달한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설립 이래 각 방면에 걸쳐 수많은 인물을 배출, 에스파냐 국가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학교로 평가받는다. 학문의 거의 전 분야에 걸쳐 학과가 개설되어 있는데, 특히 법학, 문헌학, 지리학, 역사학, 고고학, 의학, 교육학, 경제학, 문학, 정치학 등의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교내에 30개가 넘는 도서관이 있다.
. 출처: 마드리드콤플루텐세대학교(두산백과)
6. 포르투갈. 코임브라대학(Universidade de Coimbra). 1290년 문학에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포르투갈의 6대왕 디니스(D. Dinis)가 교황 니콜라스 4세의 허가를 얻어 리스본에 ‘에스투두 제랄(Estudo Geral:Studium Generale)’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포르투갈 최초의 대학교이다.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코임브라 대학교.
코임브라대학교
[ Coimbra University ]
요약 포르투갈 중부 코임브라주(州)의 주도(州都)이자 고대도시인 코임브라에 위치한 포르투갈 최초의 대학교. 세계적으로도 매우 오래된 대학으로 꼽힌다.
공립
1290년
포르투갈 6대왕 디니스
포르투갈 중부 코임브라주 코임브라
1,663명
1만 9921명(2008)
www.uc.pt
약칭은 ‘UC’이다. 1290년 문학에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포르투갈의 6대왕 디니스(D. Dinis)가 교황 니콜라스 4세의 허가를 얻어 리스본에 ‘에스투두 제랄(Estudo Geral:Studium Generale)’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포르투갈 최초의 대학교이다. 설립 당시 예술학부, 교회법학부, 시민법학부, 의학부가 있었고 이후 수준 높은 교육과 연구를 통해 사회 지배세력을 양성하고 정치·사회적으로 포르투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010년 기준 인문학부, 법학부, 의학부, 과학·기술학부, 약학부, 경제학부, 심리학·교육학부, 스포츠학·체육학부의 8개 학부에서 다양한 학부·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캠퍼스는 교회로부터의 자유 문제로 1307년 코임브라로 이전했다가 1338년 가 아폰수 5세가 다시 리스본으로 옮겼고 이후에도 도 도시 간으로 이전을 반복했다. 1537년 주앙 3세(Joao III) 때 리스본에서 코임브라로 완전히 이전하였다. 주 캠퍼스는 몬데고강(Rio Mondego)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오래된 교회와 좁은 도로들 사이에 있다.
부속기관·시설로는 중앙도서관, 과학박물관, 아카데믹박물관, 과학입문센터, 식물원, 학술원, 운동장, 종합경기장, 천문대, 출판사, 1500년대 초에 건축된 상미겔교회(Sao Miguel Chapel) 등이 있다. 1985년 설립된 유럽의 선도적 대학연합회 '코임브라그룹(Coimbra Group)' 소속이다...
. 출처: 코임브라대학교 [Coimbra University] (두산백과)
7.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1384년 신학부가 부설되면서 파리에서 초청한 신학자 앙리 드 강이 파리대학을 모델로 대학을 재조직. 1623년에 예수회에서 인수.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빈 대학교.
빈 대학교
[ University of Vienna ]
요약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Universität Wien
국립
1365년
루돌프 4세
오스트리아 빈
6,408명(2009)
약 8만 5000명(2009)
www.univie.ac.at
1365년 3월 12일 오스트리아 대공인 합스부르크왕가(王家)의 루돌프 4세가 형제인 알베르트 3세, 레오폴트 3세와 함께 프라하대학에 대항하여 독일 문화권 제2의 대학으로서 빈에 설립하였다. 설립 당시에는 법학·의학·문학의 3학부로 출발하였으나 1384년 신학부가 부설되면서 파리에서 초청한 신학자 앙리 드 강이 파리대학을 모델로 대학을 재조직하였다. 1520년에는 독일어권 대학 중에서 가장 많은 학생을 수용하기에 이르렀으나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급격히 쇠퇴하여 1623년에 예수회에서 인수하였다.
18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교육개혁에 의해 부활되고, 의학·법학·역사학 등의 분야에서 빈학파를 형성하여 그 이름을 떨쳤으며, 1848∼1850년 문교부장관 L.튤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 많은 개혁을 단행하였다. 전세계의 독일어권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대학교이며 중앙 유럽에서 3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또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교육·연구기관이기도 하다.
2010년 기준 가톨릭 신학, 프로테스탄트 신학부, 법학부, 사회과학부, 경제학부, 학부, 철학·문화학부, 철학·교육학부, 수학부, 지구과학·지리학·천문학부 등 15개 학부에서 170개 이상의 다양한 학위과정을 제공한다. 학위과정은 학사학위 52개, 석사학위 108개, 박사학위 10개 외에 7개의 수료과정과 많은 교사 훈련과정이 있다.
캠퍼스는 따로 정해지지 않고 빈 전체적으로 60여 군데에 흩어져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비엔나 역사지구’의 링슈트라세(Ringstraße)에 위치한 메인 건물은 1877~1884년에 지었으며 대학의 주요 행정·실무 사무소들이 자리 잡았다. 부설시설로는 도서관, 식물원, 통역학센터, 스포츠학·대학스포츠센터, 분자생물학센터 등이 있다.
. 출처: 빈 대학교 [University of Vienna] (두산백과)
8. 벨기에. 루뱅가톨릭대학교(Catholic University of Louvain ). 1425년 교황 마르티노 5세(Martinus V)와 브라반트(Brabant)의 요한 4세가 처음 설립.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루뱅 가톨릭대학교.
루뱅가톨릭대학교
[ Catholic University of Louvain ]
요약 벨기에 브라반트주(州) 루뱅라너브(Louvain-la-Neuve)에 위치한 벨기에 최고(最古) 대학교.
Université Catholique de Louvain
자유대학교
1425년
벨기에 루뱅라너브, 브뤼쉘, 몽스, 샤를루아, 나뮈르 등
30,957명(2018년)
https://uclouvain.be/
1425년 교황 마르티노 5세(Martinus V)와 브라반트(Brabant)의 요한 4세가 처음 설립했다. 이듬해 1426년 강의가 개설되었으며 설립 초기 신학과 민법, 교회법, 의학, 인문학의 5개 학부를 두었다. 1516년 대학교 내 콜레기움 트릴링궤(Collegium Trilingue)가 설립된 후 유럽 전역에서 학생들과 학자들이 모이면서 유럽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가톨릭대학으로 1519년 쾰른대학교(Universität zu Köln)와 더불어 루터(Martin Luther)의 사상을 최초로 비판하는 등 16세기 있었던 종교개혁에 학문적으로 대항하였다. 1755년 응용수학과 응용과학 과목이 신설되었다. 1794년 벨기에가 프랑스에 병합된 후 1797년 폐교되었다가 1816년 다시 개교하였으며, 당시에는 수리자연과학부 1개 학부를 갖추고 있었다.
학교의 공식 언어는 네덜란드와 프랑스어 두 가지였는데, 1960년대 말 두 언어를 사용하는 그룹 간 문화 갈등이 심화되었고 결국 폭동으로 이어졌다. 이에 1966년 가톨릭 교계의 회의를 거쳐 1968년 학교는 네덜란드어 사용 학교와 프랑스어 사용 학교로 분리되었다. 네덜란드어 대학교는 루뱅에 남아 1970년 교명을 ‘Katholieke Universiteit Leuven’라 하였으며, 프랑스어 사용 학생 및 교수들은 루뱅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대학 도시인 루뱅라너브(Louvain-la-Neuve : 신 루뱅)를 조성하고 1971년 2월 교명을 ‘Université catholique de Louvain’이라 하였다.
2020년 기준 학부는 보건과학, 과학기술학, 인문학의 3개로 구분된다. 보건과학부 내에는 의학·치의학부와 약학·바이오의학부, 공공보건학부 등 4개 학부, 과학기술학부에는 과학부와 생물공학부 등 4개 학부, 인문학부에는 법학부와 신학부 등 6개 학부로 총 14개 학부를 갖추고 있다. 학부와 석사, 박사과정이 제공된다. 캠퍼스는 총 7개로 루뱅라너브가 메인캠퍼스며, 다른 캠퍼스는 브뤼쉘(Brussels)을 비롯해 에노주(州)의 몽스(Mons)와 샤를루아(Charleroi), 투르네(Tournai), 나뮈르주(州)의 나뮈르(Namur) 등에 위치한다.
교내에는 2개의 대학병원, 19개의 도서관 등이 있다. 대학도서관은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고딕 및 르네상스 시기 필사본을 포함한 수십만점의 자료가 소실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도서관은 전쟁 후 미국과 다른 유럽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1928년 재건되고 자료들도 채워졌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재가 발생해 많은 자료들이 소실되었다.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었던 기록물은 현재 대학기록관에 보존되고 있으며 벨기에 국립기록보관소의 자료들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 출처: 루뱅가톨릭대학교 [Catholic University of Louvain] (두산백과)
9. 스웨덴. 웁살라대학(Uppsala universitet). 1477년에 웁살라 대주교 야코브 울브손(Jakob Ulvsson)의 주도로 북유럽 최초의 대학으로 설립.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웁살라 대학교.
웁살라대학교
[ Uppsala University ]
요약 스웨덴 중동부 웁살라주(州)의 주도(州都) 웁살라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Uppsala Universitet
공립
1477년
스웨덴 중동부 웁살라주 웁살라
Gratiae veritas naturae(Truth through God's mercy and nature)
6,000명
대학 19,900명, 대학원 2,000명(2008)
www.uu.se
1477년에 웁살라 대주교 야코브 울브손(Jakob Ulvsson)의 주도로 북유럽 최초의 대학으로 설립하였다. 50여 명의 학생으로 개교하였으며 설립 당시 덴마크 지배하의 연합왕국이던 스웨덴의 문화적 독립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설립 후 얼마 동안 재정 빈곤과 학교 내외의 분쟁으로 자주 운영이 침체되었으나, 구스타브 2세(1611~1632)가 강국 스웨덴의 기반을 마련하고 국내에도 다양한 개혁을 실시하면서 능력 있는 관리 양성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구스타브 2세가 1624년 대학 설립을 위해 넓은 토지를 기증하였고 1626년 대학헌장을 선포함으로써 대학으로서의 기초가 확립되었고 코펜하겐대학과 함께 북유럽의 학문적 중심이 되었다.
2010년 기준 문리·사회과학, 의학·약학, 과학·기술의 3개 부문에 신학·법학·예술·언어학·사회과학·교육학·의학·약학·과학기술의 9개 학부가 있다. 각 학부에서 학부과정과 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캠퍼스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으며 웁살라 곳곳에 대학 건물이 산재한다. 대학 본관을 비롯한 주요 건물은 퓌리스강(River Fyris) 서쪽 연안의 대성당 주변에 위치한다. 네오클래식 양식의 대학 본관은 1880년에 세워졌고 대성당의 첨탑 건너편에 북유럽 고대 문자인 룬(Rune)이 새겨진 바위들이 있다. 대학 도서관인 카롤리나 레디비바(Carolina Rediviva)에는 4세기 울필라 주교가 성서복음을 고트어로 번역한 것 중 유일한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다.
부설시설로는 역사박물관인 구스타비아눔(Gustavianum), 국제적으로 알려진 지진연구소, 부속병원, 식물원, 린네정원, 관측소, 생물학연구소, 정보기술센터 등이 있다...
. 출처: 웁살라대학교 [Uppsala University] (두산백과)
10. 스위스. 바젤대학교. 1459년 11월 12일 바젤 시민이 세워 교황 비오 2세의 허가를 받아 설립.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바젤대학교.
바젤대학교
[ University of Basel ]
요약 스위스 바젤슈타트주(州) 주도(州都) 바젤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다.
Universität Basel
공립
1460년
스위스 바젤슈타트주 바젤
1만 1360명
www.unibas.ch
1459년 11월 12일 바젤 시민이 세워 교황 비오 2세의 허가를 받아 설립하였고 1460년 4월 4일 바젤대성당에서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처음부터 신학부·법학부·의학부·예술기능부의 4개 학부로 구성된 종합대학으로 설립되었으며, 스위스에서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독일어권 대학이다. 설립 이후 몇 세기 동안 많은 학자들이 대학교로 오면서 바젤시(市)는 일찍이 도서 인쇄, 휴머니즘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5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몇 차례 존폐 위기를 맞았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곧바로 위기를 극복하고 전통을 이어왔다. 예술기능부에 1818년 역사학부, 1937년 과학부 과정을 두었다.
2010년 기준 신학부·법학부·의학부·인문학부·과학부·경제경영학부·심리학부의 7개 학부로 구성된다. 6개의 학제연구기관, 스위스열대연구소, 프리드리히 미셔 생명의학연구소 같은 연계 연구소가 있다. 1971년 설립한 생명과학센터(Biozentrum)에서는 의학부의 약리학, 신경생물학은 물론, 과학부의 생화학, 생물물리학적 화학, 미생물학, 구조생물학, 세포생물학에 관한 수준 높은 기초연구를 수행한다.
부설시설로 스위스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서관을 비롯해, 매스터전자현미경연구소(REM)를 비롯하여 해부학박물관, 생체기계정형외과연구소, 분자미생물학이론 연구센터, 경제연구센터, 식물원 등이 있다.
. 출처: 바젤대학교 [University of Basel] (두산백과)
2]. 동유럽(Eastern Europe).
1. 체코. 프라하대학교( University of Prague). 134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룩셈부르크가의 카를 4세가 세운 중부 유럽 최초의 대학. 설립 당시에는 파리대학교를 모방.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프라하 대학교.
프라하대학교
[ University of Prague ]
요약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Universita Karlova
국립
종합대학
1348년
룩셈부르크가 카를 4세
체코 프라하
카를로바대학교라고도 한다. 체코 교육부가 직접 운영하는 국립대학이다. 134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룩셈부르크가의 카를 4세가 세운 중부 유럽 최초의 대학으로서, 프라하 시내 곳곳에 산재한 대학 건물 중 카롤리눔(Carolinum)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건물로 손꼽힌다. 설립 당시에는 설립 당시에는 파리대학교를 모방하여 신학.법학·의학·철학의 4분과제를 도입하였고, 보헤미아·바이에른·폴란드·작센에서 모인 4개 교사조합을 중심으로 자치적으로 운영되었다.
15세기 이 대학 강단에 섰던 종교개혁가 요하네스 후스의 영향으로 종교와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중세 지성들의 요람 역할을 했으나 1419년부터 시작된 후스전쟁의 여파로 독일인 교사와 학생 일부가 라이프치히로 옮겨감으로써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30년전쟁의 결과 다시 가톨릭 교단의 관장 아래 놓였다. 1882년 체코대학과 독일대학으로 분리되었고, 1920년에는 체코대학이 카를대학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나치스 지배 때 폐쇄되었다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부활하면서 독일대학은 폐지되었다.
수학·물리학, 철학, 법학, 가톨릭신학, 사회·정치과학 등 인문·사회·자연과학을 망라하는 16개 단과대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위과정은 3년 과정의 학사학위[Bakalar], 5년 과정의 석사학위[Magister]와 추가로 3년 이상을 공부하면 얻을 수 있는 박사학위로 구성되어 있다. 의학부에서는 일반의학 박사학위가 6년 과정이다.
부설연구소로 신학연구센터(CTS), 경제연구센터(CERGE), 대학사연구소, 천문연구소가 있으며 그밖에 컴퓨터사이언스센터(CUCC), 유럽정보센터, 언어직업훈련센터, 환경센터, 기초과학연구소, 중앙도서관 등의 시설이 있다. 각 단과대학은 교외지역인 펄체오에 1개, 흐라데츠 크랄로베(Hradec Králové)에 두개의 단과대학이 있고 나머지는 프라하 시내에 있다.
. 출처: 프라하대학교 [University of Prague] (두산백과)
2. 폴란드. 야기엘론스키 대학교(Jagiellonian University). 1364년 5월 12일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 3세(Kazimierz III)에 의해 일반 대학(Studium Generale)으로 처음 설립된 것으로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1400년 7월 야기에워 왕(King Vladislaus Jagiełło)에 의해 다시 설립되면서 신학부 신설.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야기엘론스키대학교
[ Jagiellonian University ]
요약 폴란드 마우폴스키에주(州) 크라쿠프(Kraków)에 위치한 폴란드 최고(最古)의 연구 중심 공립대학교.
Uniwersytet Jagielloński
공립대학교
1364년
폴란드 마우폴스키에주(州) 크라쿠프(Kraków)
39,552명(2019년)
https://www.uj.edu.pl/
1364년 5월 12일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 3세(Kazimierz III)에 의해 일반 대학(Studium Generale)으로 처음 설립된 것으로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설립 당시 인문학, 의학, 법학 3개 학부를 갖추었다. 카지미에시 3세가 사망하자 1390년대까지 문을 닫았고 1400년 7월 야기에워 왕(King Vladislaus Jagiełło)에 의해 다시 설립되면서 신학부가 신설되었다. 이후 대학은 왕립야기엘론스키대학(Royal Jagiellonian College)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5세기에는 유럽 각지에서 200명 이상의 학생이 매년 입학했고 특히 법학, 수학, 천문학 분야 교육에 명성이 높았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지역이 종교에 따라 나눠지고 16세기 후반 유럽 내 대학 수가 증가하면서 외국인 학생의 입학이 크게 줄어들었으나 학교는 계속 유지되었고, 16세기 말 교명이 크라쿠프대학(Kraków Academy)으로 바뀌었다.
1773년 국립교육위원회가 조직되고 휴고 코원타이(Hugo Kołłątaj)가 개혁을 주도하면서 1777년부터 1786년 사이 대학 조직을 개편하였다. 또한 천문대와 식물원, 대학클리닉 등의 설립이 시작되었다. 1795년 크라쿠프지역이 오스트리아로 병합되면서 1805년에는 리비우대학교(Lviv University)에 통합되기도 하였다. 1817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교명으로 바뀌었다. 1846년 크라쿠프가 다시 오스트리아에 점령된 후 대학 구조는 오스트리아식으로 개편되고 독일어가 주요 언어가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갈리지아(Galicia)에 자치권이 부여되면서 다시 학내에서 폴란드어를 사용했고 건물이 새로 설립되는 등 인문학과 과학분야의 프로그램이 모두 확대됐다. 1923년에는 농학부가 개설되고 1939년에는 도서관이 설립되었다. 제2차 세계기간 동안 나치 점령을 받으면서 폐교되었으나 1942년부터 비밀리에 교육은 다시 재개되었다. 이후 신학과 농업학, 의학부가 폐쇄되는 등 대학구조에 큰 변화를 겪었으며, 일부 학자들의 연구활동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2020년 현재 법·행정학, 의학, 보건학, 물리·천문·응용컴퓨터학, 생물학 등 16개 학부 아래 학부와 석사, 박사과정을 두고 있다. 대학중앙도서관은 많은 소장 자료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등 중세시기 작성된 원고 등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약 4만 명의 학생이 재학중이고 교직원 수도 약 4천 명에 이른다...
. 출처: 야기엘론스키대학교 [Jagiellonian University] (두산백과)
3]. 미국.
1. 하버드대학교. 1636년 매사추세츠 식민지 일반의회(General Court)의 결의에 따라 설립되었으며, 1639년 도서와 유산을 기증한 J.하버드 목사의 이름을 따서 하버드대학이라 명명.영국의 옥스포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학료(學寮) 제도를 모방한 조직으로 출발.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하버드 대학교.
하버드대학교
[ Harvard University ]
요약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케임브리지시(市)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한다.
사립
1636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시
Veritas(진리)
2,110명(2008)
대학 6,700명, 대학원 1만 3600명(2008)
www.harvard.edu
1636년 매사추세츠 식민지 일반의회(General Court)의 결의에 따라 설립되었으며, 1639년 도서와 유산을 기증한 J.하버드 목사의 이름을 따서 하버드대학이라 명명하였다.
영국의 옥스포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학료(學寮) 제도를 모방한 조직으로 출발하여, 식민지시대에는 목사 양성에 필요한 종교교육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1869년부터 40년간 학장을 지낸 C.W.엘리엇은 독일 유학의 경험을 살려 전문적 학문연구기관으로 개혁하고 선택과목제를 도입하였는데, 이 제도는 뒤의 개인지도제 및 전원학료제 실시와 함께 미국 대학 커리큘럼(교육과정)의 원형이 되었다.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한다.
대학 운영과 관리는 학장과 5인의 평의원·회계주임으로 구성된 하버드 법인(法人)과, 졸업생이 우편으로 선출하는 이사회라는 2개의 의결기관이 맡고 있다. 전자는 재정과 집행 운영을 책임지고, 후자는 조언과 자문 기능을 맡는다.
기본적으로 11개 주요 학문 조직(10개 대학과 1개 연구소)으로 구성된다. 10개 대학은 문리·의과·치의과·신학·법학·경영·디자인·교육·보건·행정이며, 각 대학은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전문대학원과 분과(division)를 관장한다. 1개 연구소는 래드클리프고등연구소(Radcliff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로, 1999년 래드클리프칼리지를 개편한 것이다. 문리대학에 학부대학인 하버드칼리지(Harvard College)과 일반대학원, 공학·응용과학대학원, 평생교육부(Harvard Division of Continuing Education)가 있다. 일반대학원은 이론에 바탕을 둔 학문 중심이며, 전문대학원은 현장실무교육과 연구 중심이다.
대학 1학년생은 전원 올드야드 기숙사에 수용되어 대학생활 오리엔테이션을 받게 되며, 2학년에서 4학년까지는 하우스라고 일컫는 각 학료에 배치되어 교양과목(liberal art)을 중심으로 각 전공분야의 교육을 받는다.
와이드너도서관을 비롯한 부속도서관에 정기간행물을 비롯한 각종 도서가 소장되어 있다. 그밖에 유명 부속시설로 하버드 미술박물관, 하버드대학교 허배리아(Harvard University Herbaria), 하버드 광물학박물관, 루이스 애거시즈 비교동물박물관, 하버드 셈족박물관 같은 박물관과 포그미술관·푸슈라이징거미술관·하버드천문대 등이 있다.
캠퍼스는 보스턴 중심에서 찰스강(江) 건너 연안의 케임브리지 시가지 하버드 야드(Harvard Yard)에 있으며, 하버드 스퀘어(Harvard Square)를 둘러싼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과 하버드 스타디움을 비롯한 여러 체육시설이 찰스강의 또 다른 쪽 연안인 보스턴 인근의 올스턴(Allston)에 있다. 또한 의과대학원, 치과대학원, 보건대학원이 보스턴의 롱우드 메디컬아카데미 지구(Longwood Medical and Academic Area)에 있다...
. 출처: 하버드대학교 [Harvard University] (두산백과)
2. 예일대학교. 1701년 10월 9일 제임스 피어폰트(James Pierpont)가 이끄는 독립파(獨立派) 목사들이 킬링워스(Killingworth)에 세운 칼리지어트 스쿨(Collegiate School)에서 비롯. 이후 세이브룩과 웨더스필드를 거쳐 1718년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대학에 많은 기부를 한 E.예일을 기념하여 학교명을 예일대학으로 바꿈.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예일대학교.
예일대학교
[ Yale University ]
요약 미국 코네티컷주(州) 뉴헤이븐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한다.
사립
1701년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번
Lux et veritas(빛과 진실)
339ha
3,619명(2009)
대학 5,247명, 대학원 6,169명(2009)
www.yale.edu
1701년 10월 9일 제임스 피어폰트(James Pierpont)가 이끄는 독립파(獨立派) 목사들이 킬링워스(Killingworth)에 세운 칼리지어트 스쿨(Collegiate School)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세이브룩과 웨더스필드를 거쳐 1718년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대학에 많은 기부를 한 E.예일을 기념하여 학교명을 예일대학으로 바꾸었다. 1787년 종합대학이 되었고, 1847년에는 미국 최초로 박사과정을 두고 학위를 수여하였다. 1930년대부터 학생들이 캠퍼스 안에서 생활하는 기숙형 칼리지를 설립하였으며 창립 이래 영국식 교육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한다. 미국에서 3번째로 오래된 대학교이다.
대학교 조직은 크게 학부과정인 예일칼리지, 문리과대학원, 전문대학원의 3가지로 구성된다. 예일칼리지는 대학교의 중심을 이루며 2009년 기준으로 2,000개 이상의 학부과정이 있고, 건축학, 예술, 신학, 연극, 공학·응용과학, 삼림·환경학, 법학, 경영학, 의학, 음악, 간호학, 보건학, 종교음악의 13개 전문대학원 과정이 운영된다. 부설시설로는 베이네케 희귀본·필사본 도서관, 스털링기념도서관, 하비커싱 의학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도서관, 미술관, 예일영국미술센터, 피바디자연사박물관, 예일악기컬렉션(Yale University Collection of Musical Instruments), 라디오방송국, 마시식물원, 예일 자연보존지역, 골프코스를 비롯하여 많은 연구센터가 있다.
캠퍼스는 뉴욕에서 동북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뉴헤이븐의 시가지에 있다. 건물 대부분은 1917~1931에 지은 신고딕풍 건물이며 그밖에 고딕풍 학부 건물, 조지아풍으로 지은 코네티컷홀(1750)을 비롯하여 대학의 상징물이 된 건물이 많이 있다. 또한 남녀공용 기숙사, 아파트 등 여러 건물이 들어서 있고, 캠퍼스 부근은 '느릅나무의 거리'라고 불릴 정도로 조용하고 쾌적하다. 많은 학생들이 캠퍼스 안의 12개 기숙형 칼리지에서 생활한다. 학문, 스포츠를 비롯한 대부분의 부분에서 하버드대학교와 경쟁관계에 있다...
. 출처: 예일대학교 [Yale University] (두산백과)
3. 조지타운대학교. 예수회에 소속된 대학으로, 1789년 1월 미국 최초의 로마가톨릭 대주교 존 캐럴(1735~1815)에 의해 미국에서 첫 번째로 설립된 로마가톨릭대학.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조지타운 대학교.
조지타운대학교
[ Georgetown University ]
요약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사립
1791년
존 캐럴
미국 워싱턴 D.C.
Utraque Unum(Both into One)
0.4㎢(주 캠퍼스)
1,268명(2008)
대학 1만 8696명, 대학원 9,676명(2008)
www.georgetown.edu
예수회에 소속된 대학으로, 1789년 1월 미국 최초의 로마가톨릭 대주교 존 캐럴(1735~1815)에 의해 미국에서 첫 번째로 설립된 로마가톨릭대학이다. 1791년 11월 22일 12명의 학생과 몇 명의 교수로 조지타운칼리지(Georgetown College)라는 교명으로 설립하였다. 1851년 의과대학과 1870년 법학대학이 각각 설립되었다.
2010년 기준 4년제 학사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으로 조지타운칼리지(1789), 간호·보건대학(1903), 로버트 에멋 맥도너 경영대학(1957), 평생대학(1956), 에드먼드 A.월시 국제·외교대학(1919)이 있고 대학원은 문리대학원(1820), 의과대학원(1851), 법학대학원(1870)이 있다. 학위과정은 학사·석사·박사 및 전문학위로 편성되며 에드먼드 A.월시 국제·외교대학, 로버트 에멋 맥도너 경영대학, 평생대학에서는 석사학위도 수여한다. 학생들에게 해외에 나가 공부할 기회가 많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고 특히 외교 부문 전공은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교수진으로 유명하다.
워싱턴D.C.에 학부 캠퍼스, 메디컬센터, 법학대학의 세 곳의 캠퍼스가 있다.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2㎞ 떨어진 번화가에 위치한 학부 캠퍼스와 메디컬센터가 주 캠퍼스를 이루며, 대학 상징이자 문화유산 건물로 지정된 힐리 홀(Healy Hall)이 있다. 수도에 자리를 잡은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정부·비정부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한다. 버지니아주 알링턴 카운티와 카타르, 터키, 이탈리아에도 교육기관이 있다.
부설기관으로 도서관, 지진관측소, 우주 천문대, 언어실습실, 우드스톡신학센터(Woodstock Theological Center), 이탈리아의 피렌체 근처에 있는 찰스아우구스투스 스트롱센터(Charles Augustus Strong Center)가 있다...
. 출처: 조지타운대학교 [Georgetown University] (두산백과)
4].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교와 샹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러시아는 동아시아 중국.한국이나, 서유럽.동유럽에 비해 대학역사가 길지 않은 나라지만, 2차대전 승전국이며 군사강대국입니다.
1. 모스크바 대학교. 1755년 1월 25일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Elizaveta Petrovna) 여제가 시인·과학자·언어학자·계몽사상가인 미하일 로모노소프의 대학 설립 제안을 받아들여 칙령을 내린데서 출발.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모스크바 대학교.
모스크바대학교
[ M.V. Lomonosov Moscow State University ]
요약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
Москов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국립
1755년
M.V.로모노소프
러시아 모스크바
Наука есть ясное познание истины, просвещение разума(Science is clear truth and the education of reason)
약 2.1㎢
약 4,000명(2009)
대학 약 4만 명, 대학원 7,000명(2009)
www.msu.ru
정식 명칭은 'M.V.로모노소프 모스크바국립대학교'이고 약칭은 ‘MSU’이다. 줄여서 ‘로모노소프대학교’라고도 한다. 1755년 1월 25일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Elizaveta Petrovna) 여제가 시인·과학자·언어학자·계몽사상가인 미하일 로모노소프의 대학 설립 제안을 받아들여 칙령을 내렸고 같은 해 4월 26일 개교하였다. 1940년 미하일 로모노소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붙인 현재의 정식 명칭으로 바꾸었다.
1804년의 대학법에 의해 인문, 물리·수학, 의학, 윤리·정치학의 4학부를 설치하였다. 19세기에는 러시아 문화의 중심부를 이루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학자가 활동하였으며, 출신계급을 망라하는 교육·연구의 전통을 세웠다. 1917년 러시아혁혁명 이후 크게 발전하였다.
2010년 기준 기계학·수학학부, 물리학부, 화학부, 생물학부, 토양과학부, 지리학부, 지학부, 재료공학부, 역사학부, 철학부, 언어학부, 법학부, 경제학부, 언론학부, 아시아·아프리카학부 등의 29개 학부, 350개 학과, 야간부·통신교육부 및 대학원에서 57개의 학부과정, 168개의 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캠퍼스는 모호바야 거리에 있으며 면적 100만㎡의 레닌 힐스(Lenin Hills)를 비롯해 유서 깊은 건물들이 많다. 부설시설로는 도서관, 4개 박물관, 식물원, 핵물리연구소·역학연구소·천문연구소를 비롯한 10여 개의 연구소, 미디어센터·국제교육센터·국제레이저센터·사회학연구센터를 비롯한 20여 개의 연구센터, 과학파크, 출판국, 레크리에이션 센터, 영재기숙학교 등이 있다...
. 출처: 모스크바대학교 [M.V. Lomonosov Moscow State University] (두산백과)
2.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으로, 1724년 1월 28일에 표트르 1세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앙사범학교를 모체로 1819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으로 설립.
.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국립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 Sain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
요약 러시아 북서부, 핀란드만(灣) 안쪽에 있는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국립대학교.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이다.
Санкт-Петербург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국립
1724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Hic tuta perennat(Here we stay in safety)
약 6,000명(2009)
대학 약 3만 2000명, 대학원 약 4,000명
www.spbu.ru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으로, 1724년 1월 28일에 표트르 1세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앙사범학교를 모체로 1819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으로 설립하였다. 19세기 중엽 혁명적 민주주의자 N.G.체르니솁스키 등의 활약으로 러시아의 자연과학사상의 중심이 되었다. 사회과학 연구를 탄압하던 제정러시아의 사회정세 때문에 주로 자연과학 분야에서 빛나는 전통을 세웠으며, 지금도 그 경향이 남아 있다.
수학(數學)의 페테르부르크 학파로 불리는 P.L.체비쇼프, A.M.랴푸노프를 비롯하여 화학분야의 D.I.멘델레예프, 물리학의 E.K.렌츠, 생물학의 I.I.메치니코프, I.P.파블로프, 토양학(土壤學)의 V.V.도쿠차예프 등은 모두가 이 대학과 관련을 맺은 사람들이다. 1924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레닌그라드로 변경됨에 따라 교명을 레닌그라드대학(정식 명칭은 A.A.즈다노프 기념 국립 레닌그라드대학:Leningradskii gosudarstvennyi universitet imeni A.A.Zhdanov)으로 개칭하였다가 1991년 다시 원래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2010년 기준 생물학·토양학부, 아시아·아프리카학부, 경영학부, 지리학·지구생태학부, 지질학부, 언론학부, 역사학부, 수학·역학부, 의학부, 국제관계학부, 응용수학부, 물리학부, 문헌학부, 철학·정치학부, 화학부, 경제학부, 법학부, 군사학부의 20개 학부와 스포츠·체육학과에서 학부·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역사 지구 내에 있는 바실리에프스키섬(Vasilievsky Island) 캠퍼스와 페테르호프(Peterhof) 캠퍼스의 2개 주(主) 캠퍼스가 있으며 부속시설로는 도서관, 박물관, 출판부 등이 있다...
. 출처: 국립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Sain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두산백과)
{V}. 한국의 성균관대는 國史에 나오는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에서 이어진 600년 전통의 대학으로 현재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입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백과사전(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출판사 백과사전(두산백과, 종교학 대사전, 교육학사전, 중고생 학습사전) 및 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학술적 의견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성균관대학교가 일본 강점기에 교육기능을 폐지당하고 전문학교등으로 격하되는 과정을 서술하며, 國史영역(교과서 및 참고서 포함)에 나오는 조선 성균관에서 이어진 대학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필자의 World Class Universities 기준은 Historic, Royal임. 왕정전통이 없는 국가는 역사가 오래된 대학들[미국의 Harvard처럼]입니다. 미국은 왕정전통의 영국 식민지였지만, 독립전쟁을 거치고 미국인들이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인정하는 Harvard. 왕정전통을 가진 다른대학이 있어도 필자는 Harvard를 선택하겠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하버드대학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학: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1636 설립) 일류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하나.
성균관대와 학술교류를 맺는 대학은 많지만 큰 나라는 세개 정도, 강대국은 두개 정도, 대부분의 국가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오래되고 Royal전통이 있는 대학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강대국이거나 그런 나라는 아니지만 조선이란 나라가 기록문화를 가진 문화강국이었고, 불법.강제의 일제 강점기를 거친 후, 과도기에 Royal대인 국사 성균관 자격 宮성균관대(한국 최고대)와 교황 윤허 대학인 Royal 서강대(성대 다음)의 공생관계로 필요한 측면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차대전 패전국이자, 전쟁범죄국가, UN적국인 일본의 강제 불법 점령기로 수난을 겪었던 나라기 때문에, 대중언론에서는 대학이나 종교 관련, 일본 강점기 잔재나 그 추종세력들의 거센 저항을 받으며, 갈등을 겪고 있는 나라입니다.
한국에서는 Royal대인 성균관대와 교황윤허 Royal서강대(성대 다음)가 가장 학벌이 높습니다. 사설 입시지나 입시학원 배치표는 교과서나 법률,백과사전과 비교할 바 아닙니다. 주권.학벌없는 패전국 일본잔재 서울대 뒤에서 마음대로 등록하던 해방당시 신문을 이용, 국사 성균관(성균관대)에 덤벼온 왜구 서울대 카르텔은 일본으로 축출하기 전에는 끝까지 성균관대에 덤빌 운명으로 보여집니다. 불교 Monkey라 하느님에게도 덤빔. 유교도 인정않았음(해방후 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성명 유교 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하는유교국으로 복구). 일제강점기 유교를 인정 않으며 강제 포교한 일본 신도(불교),불교, 기독교중 기독교 하느님.예수도 인정않던 일본 신도.불교Monkey나라(자기들이 강제 포교 종교로 들여와 놓고 신부를 겁주고 목사를 고문.구타하며 점쇠천황이 하느님.예수보다 높다고 압박). 일본 신도(불교).일본불교 수장인 성씨없는 점쇠 賤民천황이 마당쇠賤民 서울대(불교Monkey) 전신 경성제대를 설립함. 성균관은 격하.폐지하여 해방후 미군정법령으로 성균관 복구하는 법률을 만들어, 성균관대가 그 성균관 자격으로 지금까지 이어지며, 6백년 넘는 역사 인정받고 있음. 대중언론에서는 왜구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왜구 서울대 카르텔에 공략당해옴.
여하튼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균관대학.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균관대입니다. 일제가 격하.폐지하여,해방후 미군정때,법률로 성균관을 복구시키기로 하여, 그 당시 해방한국에서 가장 신분이 높던 남.북 유림(그때는 미.소군정 시대로 남북왕래 가능) 1천여명이 모여, 독립투사이신 이승만.김구선생을 고문으로, 독립투사 김창숙 선생을 위원장으로 하여, 성균관에 대자를 더붙여 성균관대를 설치(복구형식)키로 결의하여,향교에 관한 법률로 성균관대 재정에 기여토록 법률을 만들었습니다.그렇게 이어져,6백주년 기념행사때는 세계사에 나오는 자격좋은 교과서 대학인 볼로냐.파리대학 총장과, 별도로 영국 옥스포드대.독일 하이델베르크대(교황 윤허대학) 총장등 세계적으로 유서깊은 대학 총장들이 성대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 예수회 창립자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에 대한 설명.
예수회의 창립자. 세례명은 이니고. 스페인 북부 바스크의 기프스코아에 있는 로욜라성에서 태어나고... 그는 야곱스 데 워라기네의 『황금전설』과 루돌프 폰 작센의 『그리스도의 생애』에 감동해서 회심의 빛을 보았다. 그는 죽음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21년 가을에 회복, 이듬해 3월 몬세라트의 분도 수도원을 방문해서 죄의 고백을 하고, 그 근처의 만레사에서 묵상과 고행의 생활(1522~23)을 보냈다. 이는 그의 저작 『영신수련』(1548)의 기본이 되었다. 예루살렘 순례(1523~24) 후, 바르셀로나에서 라틴어(1524~26), 알칼라와 살라망카에서 고등교육(1526~27), 파리에서 철학과 신학(1528~35)을 배우고, 36년 베네치아에서 신학을 수료해서 이듬해 6월 24일 사제로 임명받았다. 이 무렵 그는 그의 이름 이니고 대신에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37년 말부터 로마에 정주해서 『회칙초안』을 쓰고, 40년 9월 교황 바오로 3세에 의해서 예수회 창립이 인가되어 41년 4월 8일 총장으로 선발되고, 죽을 때까지 그 직에 헌신했으며 로마학원의 창립(1551)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중심사상은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과 <교회봉사>의 영성에 있다.
.출처: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tius de Loyola]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VI}. 세계사에서는 세계 4대 문명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 중국 황하문명, 인도문명과 별도로, 그리스 에게문명을 문명의 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은 중국의 한나라 태학(이후 위나라 태학, 그리고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승계),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을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대학의 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의 세계종교로는, 유교, 기독교, 불교를 고대의 3대 세계종교로 보고, 중세시대의 이슬람은 후발 세계종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계사의 4대 발명품은 중국의 종이, 화약, 나침판, 인쇄술. 이처럼 중국문화는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인 서유럽의 종교문화, 사상, 철학, 대학, 과학의 발전만큼 중요한 세계적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사로 보면, 세계 4대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 황하문명, 인더스문명)과 그리스지역의 에게문명이, 인류문명의 시초입니다. 그런데 원래 세계 4대문명과, 에게문명은 다신교신앙이었으며, 半人半獸의 형태를 가진 대상을 신격화하는 선사시대의 과정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독교사상은 다신교의 헬레니즘을 계승한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한후, 인격신 중심의 그리스도교(헤브라이즘)가 중심이 되고, 헬레니즘사상도 오랫동안 같이 병존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고대에 세계종교로 성립된 세계종교는 동아시아 유교, 로마제국 기독교, 인도 아소카왕때의 왕성한 포교로 인도지역중심 불교가 3대 세계종교였습니다. 이슬람교는 나중에 중세시대에 서아시아 중심 세계종교가 되었습니다. 인도는 불교 이전 인더스 문명과 정복민의 신앙에서 형성된 브라만교가 선발종교였음.,
그 후에,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성직자계급) 다음계급인 크샤트리아(정치.군사담당)출신 부처가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는 무신론적 특성을 보였는데, 최고계급인 브라만에 제사용품을 공급하는게 하나의 불만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부정하여, 누구나 바른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석가모니의 불교 사상이 각광받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같은 크샤트리아 계급인 아소카왕때, 적극적인 포교를 하여, 세계종교로 인정받다가, 나중에 다시 브라만교가 불교를 탄압하면서, 천 몇백년동안 인도에서는 억압받고 있습니다. 불교인구는 일본,태국 및 동남아 약소국들로, 그 수가 몇억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전통적 세계종교 유교나, 가톨릭 및 중세시대의 세계종교 이슬람교는 10억 이상의 세계종교 인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에서 싹튼 다신교 신앙중 황하문명의 유교와, 인더스문명의 브라만교는 지금도 힌두교로 이어지고 있는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지역과, 이집트 문명 지역은 중세시대의 이슬람교의 무자비한 포교로 이슬람국가로 변했습니다. 에게문명의 헬레니즘은 기독교와 경합하다가, 점차 기독교가 강력한 종교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유교는 최고신이신 하느님[(天):만물의 창조신,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최고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숭배하며, 그 밑에 여러 하위신이 있는 다신교신앙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인도의 브라만교.힌두교도 다신교 신앙입니다. 인도에서 만들어진 불교는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는 부처의 무신론적 불교 Monkey신앙. 그리고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은, 헬레니즘의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던, 로마제국에서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신앙으로 변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유태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치 않아서, 기독교사회에서 박해를 받아왔습니다.@불교는 인도정복자들이 만든 브라만교의 상당부분을 이어받았고(다시 브라만교에 억압당해 인도는 천 몇백년동안 불교를 억압하며, 브라만을 섬기는 힌두교로 이어짐) , 기독교는, 이스라엘보다,로마제국에서, 헬레니즘과 융합되어, 원죄의식등을 가지는 세계종교로 계승된 측면이 강합니다. 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으로서,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유교와 가톨릭, 한국사, 세계사, 국제법, 헌법등을 종합 반영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로 세계의 역사와 문화, 대학들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관련자료를 인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2025년 3월 18일 화요일
유교문화 24절기 춘분. 2025년 3월 20일(음력 2월 21일) 부터 15일간은 춘분(春分) 절기입니다. 춘분은 보통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같은 절기로 언급됩니다. 시중풍속으로 춘분즈음에는 들나물을 캐어먹는다고 합니다. 춘분절기때는 큰 역사(役事)를 일으켜서 농사를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유교 경전 예기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유교문화 24절기 춘분. 2025년 3월 20일(음력 2월 21일) 부터 15일간은 춘분(春分) 절기입니다. 춘분은 보통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같은 절기로 언급됩니다. 시중풍속으로 춘분즈음에는 들나물을 캐어먹는다고 합니다. 춘분절기때는 큰 역사(役事)를 일으켜서 농사를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유교 경전 예기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1]. 춘분(春分)절기때는 유교에서 최고신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 다음의 하위신이신 오제[五帝. 다신교 전통의 유교에서 조상신 계열로 승천하여 최고신 하느님(天)다음의 하위신이 되심]중의 한분이신 봄의 신[춘(春)의 제(帝)] 태호(太皥)께서 다스리는 절기입니다.
참고로 예기(禮記) 월령(月令)의 오제(五帝)는 다음분들입니다.
춘(春)의 제(帝)는 태호(太皥), 하(夏)의 제(帝)는 염제(炎帝), 추(秋)의 제(帝)는 소호(少皥), 동(冬)의 제(帝)는 전욱(顓頊). 그리고 계하(季夏)의 달인 음력 6월에는 중앙에 황제(黃帝)를 넣고 있습니다.
[2]. 유교경전인 예기에 나타나는 춘분
1.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나타나는 춘분
日夜分 則同度量 鈞衡石 角斗甬 正權槪 是月也 耕者少舍 乃修闔扇 寢廟畢備
毋作大事以妨農之事 是月也 毋竭川澤 毋漉陂池 毋焚山林
춘분(春分)에는 도(度)나 양(量)을 바르게 하고 저울대와 추를 고르게 하며 말(斗)과 휘(甬)를 비교하여 바르게 하고 저울과 평미레를 바로잡는다. 이 달에는 농사짓는 자가 잠시 쉰다. 궁궐의 문을 수선하고 침묘(寢廟)를 완전히 정비한다.
백성을 부리는 일은 이것으로 끝내고 큰 역사(役事)를 일으켜서 농사를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또한 이 달에는 천택(川澤)의 물을 마르게
하여 물고기와 짐승을 몰살시키는 일이 없게하고, 방축을 마르게 하지 않으며 산림을 불태우지 못하게 한다.
. 필자 주 1). 日夜分에 대해 이 책의 번역자는 춘분(春分)이라 해석하고 있습니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역해자(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3]. 사전류에 서술된 춘분(春分)
1. 국어사전에 춘분春分
명사
이십사절기의 하나. 경칩(驚蟄)과 청명(淸明)의 사이에 들며 양력 3월 21일 무렵이다. 태양이 춘분점에 이르러 적도의 위를 직사(直射)하여 밤과 낮의 길이가 거의 같지만, 빛의 굴절 현상 때문에 낮의 길이가 약간 더 길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2. 한자사전에 서술된 춘분(春分)
춘분(春分)
24절기(節氣)의 넷째. 경칩(驚蟄)과 청명(淸明)의 사이로 양력(陽曆) 3월 21일 무렵. 주야(晝夜)의 길이가 같음.
제공처:(주)오픈마인드
3.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에 서술된 춘분
정의
24절기의 하나.
내용
태양의 중심이 춘분점(春分點) 위에 왔을 때이며, 음력 2월, 양력 3월 21일경이다. 태양은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고 지구상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 춘분점은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이다.
춘분을 전후하여 철 이른 화초는 파종을 한다. 그리고 아울러 화단의 흙을 일구어 며칠 남지 않은 식목일을 위하여 씨뿌릴 준비를 한다. 춘분을 즈음하여 농가에서는 농사준비에 바쁘다.
특히, 농사의 시작인 초경(初耕)을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 해 동안 걱정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또 음력 2월중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2월 바람에 김치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2월 바람은 동짓달 바람처럼 매섭고 차다.
이는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불게 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꽃샘’이라고 한다. 한편, 이때에는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먼 길 가는 배도 타지 않는다.
. 출처: 춘분[春分]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필자 주 2). 24절기는 황하문명 ,유교의 오랜 전통을 가진 중국에서 만들어진 전통적 역법으로, 24절기.유교의 각종 명절.조상제사등은 불교와 관계 없음. 24절기는 한나라시대 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걸쳐 동아시아의 세계종교로 정립된 유교국들의 전통이며 종교적 개념을 아우르며, 천체의 주기적 현상을 기준으로 하여 세시(歲時)를 정하는 방법임.
4. 한국 세시풍속사전에 서술된 춘분(春分)
정의
24절기의 네 번째 절기. 춘분(春分)은 경칩(驚蟄)과 청명(淸明)의 중간에 드는 절기로 양력 3월 21일 전후, 음력 2월 무렵에 든다. 이날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 곧 황도(黃道)와 적도(赤道)가 교차하는 점인 춘분점(春分點)에 이르렀을 때, 태양의 중심이 적도(赤道) 위를 똑바로 비추어, 양(陽)이 정동(正東)에 음(陰)이 정서(正西)에 있으므로 춘분이라 한다. 이날은 음양이 서로 반인만큼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추위와 더위가 같다. 이 절기를 전후하여 농가에서는 봄보리를 갈고 춘경(春耕)을 하며 담도 고치고 들나물을 캐어먹는다.
내용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이날 조정에서 빙실(氷室)의 얼음을 내기 전에 소사(小祀)로 북방의 신인 현명씨(玄冥氏)에게 사한제(司寒祭)를 올렸다. 『고려사(高麗史)』 권63 지17 길례(吉禮) 소사(小祀) 사한조(司寒條)에 “고려 의종 때 상정(詳定)한 의식으로 사한단(司寒壇)은 맹동과 입춘에 얼음을 저장하거나 춘분에 얼음을 꺼낼 때에 제사한다. 신위는 북쪽에 남향으로 설치하고 왕골로 자리를 마련하며 축판에는 ‘고려 국왕이 삼가 아무 벼슬아치[某臣] 아무개[姓名]를 보내어 공경히 제사합니다.’라고 일컫고, 희생으로는 돼지 한 마리를 쓴다. 제사하는 날에 상림령(上林令)이 복숭아나무로 된 활과 가시나무로 만든 화살을 빙실(氷室) 문 안 오른쪽에 마련해놓고 제사가 끝나도 그대로 둔다. 사관(祀官)이 재배를 하고 삼헌(三獻)을 하며 축은 불에 태우고 음복을 한다.”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제63권 예고(禮考)10 사한조(司寒條)에 “사한단은 동교(東郊)의 빙실 북쪽에 있는데, 제도는 영성단(靈星壇)과 같고 현명씨(玄冥氏)를 제사한다. 『오례의(五禮儀)』에는 계동에 얼음을 저장하고 춘분에 얼음을 꺼낼 때에 제사를 지낸다. 찬실(饌實: 음식과 기물), 준뢰(尊罍: 술 그릇), 생뢰(牲牢: 희생물), 헌관(獻官), 향의(享儀)는 명산대천의 의례와 같으나 다만 폐백이 없고, 축문에는 조선국왕감소고우 현명지신(朝鮮國王敢昭告于 玄冥之神)이라 일컫는다.”라고 하였다. 『고려사』 권84 지38 형법 공식 관리급가조(官吏給暇條)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관리에게 이날 하루 휴가를 주었다. 또 이날 경주지방에서는 박(朴), 석(昔), 김(金) 삼성(三姓)의 초대 왕에 대한 능향(陵享)이 있다.
속신
이날 날씨를 보아 그 해 농사의 풍흉(豊凶)과 수한(水旱)을 점치기도 하였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권15 증보사시찬요(增補四時纂要)에 의하면, 춘분에 비가 오면 병자가 드물다고 하고, 이날은 어두워 해가 보이지 않는 것이 좋으며, 해가 뜰 때 정동(正東)쪽에 푸른 구름 기운이 있으면 보리에 적당하여 보리 풍년이 들고, 만약 청명하고 구름이 없으면 만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열병이 많다고 한다. 이날 운기(雲氣)를 보아, 청(靑)이면 충해(蟲害), 적(赤)이면 가뭄, 흑(黑)이면 수해, 황(黃)이면 풍년이 된다고 점친다. 또 이날 동풍이 불면 보리값이 내리고 보리 풍년이 들며, 서풍이 불면 보리가 귀(貴)하며, 남풍이 불면 오월 전에는 물이 많고 오월 뒤에는 가물며, 북풍이 불면 쌀이 귀하다고 하였다.
. 춘분[春分]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4]. 일제강점기를 거쳐, 혼란했던 대학, 중.고등학교 문제는, 법적 기준과 주권.자격 기준으로, 중.고교의 경우, 어느정도 대학진학률등이 높아왔던 학교들이, 倭잔재학교보다 우선순위를 가져야 합니다. 자체의 군사력으로, 독립하지 못해서, 왜구 잔재학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시중의 대중언론.사설입시지의 왜곡을 겪으면서,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권력이 아주 강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어떻게 할 수가 앖어, 중학교 무시험전형, 대도시 고교 평준화로 부분적 봉합을 시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소정의 성과 기대합니다. 서강대는 명나라때부터 중국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유교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높고, 서양에 유교와 공자님을 학술적으로 잘 소개해준 귀족계파 예수회산하 대학입니다. 불교 Monkey 일본 강점기를 거치고, 교육.종교.학교.대중언론.공무원 분야등에서, 실무권력을 갖지못한, 성균관과 유림들이었는데, 일본 항복후, 미군정때, 총독부 인원들이 재등용되어, 다시 복구한 국사 성균관(성균관대)자격을 약탈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성균관대에 도전해온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추종세력, 각종 왜구학교들의 주권없는 약탈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법과, 역사, 사실은 아주 중요합니다. 필자는 성대출신입니다. 국가주권처럼 성균관(성균관대)의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학벌도 아주 중요합니다. 성균관의 승계 대학 성균관대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복잡한 국제법상의 갈등이 얽혀있습니다. 해방당시 다른 대학들은 이 법적 갈등의 당사자대학들이 아닙니다. 유교의 하느님숭배,조상숭배와 舊신분제 전통을 잘 이해하던 예수회의 귀족계파 서강대는,대한민국 정부 출범이후 국사 성균관교육이 지속되면서, 양반 성대를 이해하던 대학임.이뒤로 조선성명 복구된 5,000만 한국인 뒤 주권.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불교 Monkey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그 미만대학들.@대중언론,사설 입시지, 후발 법령은, 국제법, 한국사(국사 성균관교육. 성균관대 자격), 세계사, 국가주권의 상위법.상위 국제관습법 못이깁니다.
@@2차대전-->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선전포고(을사조약.한일병합등 불평등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그 이후 카이로선언. 카이로선언이후, 프랑스.구소련.폴란드가 승인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연합국 국가원수들의 합의문이며, 미군정법률보다 상위법인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의 상위법으로 자격있는 국사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로 교육기능 승계이전)-->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한국에 주권이 없다고 항복한 일본. 성씨없는 일본 점쇠(일본에서는 천황)가 세운 경성제대 및 여타 초급대, 중.고등학교들 @그런데, 상위법인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 의해,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한국영토에서 축출해야 될 패전국 일제잔재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개칭하고, 공자묘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하는 하위법률이 제정됨 (성균관은 일제 강점기에 교육기능 폐지되어, 미군정기에 복구함). 미군정당시의 문교부 공무원 및 자문그룹들이, 하위법인 미군정법률을 제정하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로 상위법자격 성균관(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서 자격있는 성균관)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꾀한것임.*미군정 군정법령 제 15호.1945년 10월 16일 @이 약탈을 피하기 위하여,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 김구, 위원장:김창숙)를 개최하여, 성균관대를 설립하기로 결의함. "1945년 12월 10일 자유신문 보도기사(成均館大學 재단을 촉성, 1,000여 대표 참가로 全國儒林大會)가 국사편찬위 자료에 있음.@.미군정기의 국사 성균관교육. *학제. 성균관 태학.이상은 유학에 관한 학교이나 또 중앙과 지방에 외국어학과 의학, 율학, 천문지리학 등을 가르치는 각 기관이 있음.* 필자주::성균관(태학)만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구이고, 개화기의 기타 교육기구는 중등교육기구들입니다. @법령 제102호.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1946년 8월 22일@그리고 김창숙 성균관장이 전국 유림대회 결의대로 성균관대를 미군정에 등록하고 대학으로 인가받음.성균관 후신 경학원에서 강의하던 김창숙 선생이 성균관장이 되고, 1946년 9월 25일성균관대학의 설립을 인가받고 초대학장에 취임하였습니다.이 때부터, 성균관대는 대학기구로, 성균관은 공자님 제사기구인 성균관으로 공식 2원화된것임. 성균관대가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내용은 성균관대와 성균관의 입장이 동일합니다.@조선성명복구령.[시행 1946. 10. 23.] [군정법률 제122호, 1946. 10. 23., 제정] @미군정령 제 194호 6조(1948년)는,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과 성균관대학의 유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제6조 향교 재단의 재산으로부터 생하는 수입은 좌의 목적 이외에는 사용함을 부득함.1. 성균관 급 성균관 대학의 유지. *향교재산관리에관한건[군정법령 제194호, 1948.5.17.,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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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
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6]. 잘 읽어보시고 상위법(국제법,헌법)>하위법, 상위규범(한국사,세계사, 주권등)>하위규범(대중언론, 사설 입시지, 사설 입시학원 분석)간의 상하관계를 구분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 서강대는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끝. 기타大는 불인정. 주권과 자격!.문맹이나 초등학교 출신 조선 유교 한문성명 가진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겠음. 이 뒤로 주권.자격.학벌이 없어 대학으로 인정할 수 없는 패전국 일본 점쇠(성씨없는 일본 불교 Monkey계열로, 근대에 막부타도하고 천황으로 옹립되어, 하급군인들의 상징이 되었음)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불교 Monkey 경성제대후신 서울대 및 그 미만 부하로 살아야하는 대학들. 필자는 성대출신 윤진한(1983학번)임. 한국대학들 자격을 결정하는 합법적.역사적 정통성을 가졌다고 판단하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대출신 사상가.문필가임. 국가주권이나 대학, 교육.종교분야에서, 합법적.합리적 검토과정과 이의제기, 교정과정이 없으면, 한국은, 국제법.헌법의 상위법자격도 모르고, 상위규범도 모르며, 무지몽매한 상태가 되어, 주권.자격없는 불법.일제강점기 잔재와 추종세력들의 횡포에, 평생 눈뜨고 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임시정부가 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에, 대일선전포고까지 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해방당시에는, 임시정부의 힘이 미약하여,자체의 군사력으로,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지 못했지만, 미군정의 종료이후, 제헌의회부터는 임시정부를 반영하여, 1988년 시행된 현행헌법 前文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헌법이 성립되었습니다. 주권.자격없이 대중언론.사설입시지를 통하여 평생 약탈해도, 인정받지 못함.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칠 수 없는 대학들의 약탈이 대중언론.사설 입시지를 통하여, 강력하게 형성되었지만, 正史.定論과 너무 상반됨.대중언론에서 주권없는 대학욕심보다, 조선성명 가진 한국인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대학관련, 상위법과 상위규범을 무시하거나 인지하지 못한채, 일제강점기에서 이어진 대중언론과 조선일보등의 입시기사를 반영한 그 이후의 사설입시지, 그 뒤에 대대적으로 만들어진 입시학원과, 이를 그대로 보도하는 전국의 대중언론, 그 하위기준대로 진학지도하는 교사들, 그리고 그대로 따르는 학부모들이 대다수가 되었습니다. 본인들이 원치 않아도 대중언론은 그렇게 글을 씁니다. 이러한 주권없는 일제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추종세력들의 약탈현상을, 그대로 따르게 된 시중의 흐름을, 눈 뜨고 좌시할 수 없어서, 지난 20년동안 블로그로 글을 써왔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대중언론의 기사에, 댓글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합법적 인터넷미디어인 댓글과 블로그밖에 가진게 없습니다. 정치문제와 별개입니다. 필자는 승전국 미국 선교사가 세운 전주 신흥고 출신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다녔던 배재학당의 배재고는 고종이 교명을 하사한 휘문고나 구한말 양정고와 비슷한 역사적 정통성과,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구한말의 인천고, 부산 동래고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고등학교들입니다. 보성고.중동고.중앙고도 민족학교들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서울의 동성고, 대구 계성고나, 순천 매산고, 목포 문태고등에도 관심있습니다. 그리고 대전 충남고, 충북 세광고, 강원 강릉고, 제주 오현고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균관대나 서강대 및 필자의 게시물 독자들은, 불교나라 일본에 대일선전포고한 대한민국 임시정부(프랑스, 구 소련, 폴란드가 임시정부 승인)의 자격을 염두에 두고, 대한제국 황실복구에 관심가져보시기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3675328446
[7]. 필자의 당부사항.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세계사의 교황 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귀족사제 이나시오 사제가 설립한 귀족대학)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으로 보호받습니다. 그리고 성균관대의 자격은, 세계사에서 인정되는 중국의 황하문명, 한자(漢字), 한나라시대의 세계종교 유교, 중국의 태학(이후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 세계4대 발명품(중국의 발명품인데,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으로 가르침. 종이,화약, 나침판, 인쇄술)등과 결부되어, 세계사로 이해해야, 세계인들에 더욱 확실히 접근하기 쉬운 측면이 많기 때문에, 교과서로 가르치는 한국사만큼, 학교교육의 세계사도 중요합니다.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 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내몽고는 청나라때 중국영토가 되었음)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의 24절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24절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는 몇해 되지 않으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정신적 유산인 이 24절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발전.계승시켜야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275696355
2.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2190490049
3.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4.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471962475
5.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6.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7.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8.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9.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10.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11.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s://blog.naver.com/macmaca/110185393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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